XI.강줄기 따라걷기/금강 따라걷기

금강 따라 걷기25(햇무리교-불티교-공주 금강교)

시인마뇽 2022. 12. 2. 09:07

탐방구간: 햇무리교-불티교-공주 금강교

탐방일자: 2022. 11. 23()

탐방코스: 햇무리교-독락정-세종보- 불티교 -석장리박물관

- 금강신관공원- 금강교-공주종합버스터미널

탐방시간: 89-1700(8시간51)

동행 : 나 홀로

 

 

  보()를 단순히 논에 물을 대기 위한 수리 시설의 하나로, 둑을 쌓아 흐르는 냇물을 막고 그 물을 담아두는 곳으로 좁게 정의한다면, 4대강 보의 기능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4대강 보는 낙동강, 한강, 금강, 영산강 등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축조된 시설로, 그 기능이 단순히 논에 물을 대는데 국한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토해양부/K water가 발간한 안내전단 다시 찾은 우리 강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에 따르면, 4대강 살리기 사업이란 기후 변화에 따른 물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수질 · 생태계 개선 · 레저문화 공간 확충 · 경제위기 극복 등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가는 국가적 차원의 핵심사업을 이릅니다. 안내전단을 꼼꼼히 읽어보고 제가 이해한 4대강 보()4대강을 살리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핵심시설로, 대규모 홍수를 예방하고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며 오염물질의 농도를 낮추어 수질오염도를 저감하고, 나아가 소수력발전소를 부설해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등의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 것  등입니다.

 

  세종보는 길이 223m의 전도식가동보와 길이125m의 고정보 등 총 348m의 보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전도식 가동보란 수문을 90도로 세우면 물을 담고, 0도로 눕히면 수문이 강바닥에 밀착되면서 물이 방류되는 구조로 되어 있는 보를 말하는데, 세종보에는 이런 개량형 전도식 게이트가 3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세종보는 강 우안의 설비용량 2,310kw(770kw X 3)의 소수력발전소, 중간에 전장348m의 가동보와 고정보, 강 좌안에 상 · 하류 생태계를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자연수로형 어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1,280억원을 들여 건설한 세종보는 수질 오염을 이유로 작년 1월 국가물관리위원회에서 철거를 결정해, 지금은 해체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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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수원역을 출발한 열차는 짙은 안개를 뚫고 1시간가량 달려 727분 부강역에다 저를 내려놓고 부산으로 내달렸습니다. 부강역에서 이번 탐방의 출발점인 세종시의 햇무리교까지는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이동 거리는 짧았지만 공무원들 출근시간이 시작되어 생각보다 도로가 붐볐습니다. 세종시 초입의 세종교차로에서 하차해 길 건너 햇무리교 다리 아래로 내려가 자전거전용도로로 들어섰습니다.

 

  아침 89분 햇무리교에서 25번째 금강 따라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 손이 시릴 만큼 강변 공기는 안개가 짙게 끼어 냉랭했습니다. 공주시까지 14.5Km 남았음을 알리는 현 위치 세종 No. 29' 안내판이 세워진 지점을 출발해 남서진하면서 금강 우안의 자전거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갈대밭의 하얀 갈대들이 떼를 지어 고개를 숙이고 서있는 모습을 보고 잠시 숙연해 진 것은 하얀  미사포를 쓰고 주님께 미사를 올리는 여신도들의 모습이 연상되어서였습니다. 잠시 자전거 길에서 벗어나 왼쪽 강가로 다가가자 복층으로 되어 있는 환상형의 금강보행교가 위용을 드러내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다리에 놓여 있는 나무들이 아직도 푸르러 생목은 아닌 것 같은데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926분 독락정(獨樂亭)에 들렀습니다. 금남교와 힌두리교를 차례로 지나 나리진나루터의 언덕에 자리한 정자 독락정에 올랐습니다. 고려 때 최영장군과 함께 탐라를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운 임난수(林蘭秀, 1342-1407) 장군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면서 조선 임금이 내려준 벼슬을 사양한 충절을 기리기 위해 아들 임목이 창건한 이 정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고쳐지어서인지 조금도 단청의 색상이 바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  화사했습니다. 이 정자를 찾아온 후손들이 가운데에 들인 방에서 공부도 하고 쉬다가 내려다보았을 금강 또한 6백여년전의 모습은 다시 보기 어려운  것은 세종시가 들어서서 변화가 불가피해서였을 것입니다. 

 

  물오리들이 떼를 지어 유영하는 정겨운 풍경을 사진 찍고 찾아간 곳은 세종보관리동의 4대강 자전거길 인증센터였습니다. 가파른 데크 계단을 올라가 들른 인증센터 바로 위층의 세종보갤러리카페에서 직원분을 만나,  앞으로 긴요하게 쓰일 국토종주자전거여행 수첩과 국토종주자전거길 지도를 구해왔습니다. 카페에 편히 앉아 생강차를 마시면서 세종시에 사신다는 40(?) 아주머니 두 분을 만나  잠시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섬진강과 영산강 따라 걷기를 마치고 작년 6월 발원지인 전북 장수의 뜬봉샘을 출발해 여기에 이르기까지 25번 탐방 길에 올랐음을 설명 드리자, 매우 흥미로워 해 제 블로그를 알려드렸습니다. 두 발로 걸어 자유로이 여행하는 저를 부러워하면서 격려도 해준 두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지근거리의 세종보를 찾아갔습니다.

 

  1042분 세종보에 다가가 토사로 메워진 가동보와 고정보를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금강 우안의 세종보수력발전소 건물이 없었다면 세종보가 어디에 설치됐는지 쉽게 찾기 힘들 정도로 토사로 보가 메워져 제 기능을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동을 멈춘 소수력발전소와 고정보 사이에 설치된 가동보로 금강의 물은 흐르고 있었지만 그 폭이 넓지 않아 강다운 면모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세종보 설치가 잘못된 것인지, 문재인 정부의 보 해체 결정이 잘못된 것인지를 분명 가려야 하는 것은 물경 1,280억이라는 거액의 예산이 세종보 건설에 이미 쓰였기 때문입니다. 작년 1월 국가물관리위원회는 세종보 해체를 결정하면서, 해체시기를 중앙정부, 지방정부와 지역주민들이 협의해 결정하도록 했습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선출된 세종시의 시장은 보 철거를 반대해 국가물관리위원회의 결정대로 과연 철거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가동보를 열어놓아, 보를 메운 토사를 파내어야 저수가 가능하고 소수력발전소도 가동할 수 있을 것 같아 보입니다. 철거하든 존치하든 서둘러 결정해야 더 이상의 에산 낭비를 막을 수 있지 않나 싶어 몇 마디 덧붙였습니다.

 

  1224분 불티교 앞에 이르렀습니다. 세종보를 출발해  금강교 바로 아래 합류점에서 금강에 합류되는 대교천을 건넜습니다. 대교천보행교를 건너 얼마 후 올라선 자전거전용도로 해제지점에서 불티교까지 96번 차도를 따라 40분가량 고개를 바짝 들고 조심해서 걸었습니다. 철을 잊은 아기똥풀이 샛노란 꽃을 피워 진노란 들국화꽃들과 아름다움을 겨루는 노변풍경이 유유히 흐르는 금강의 풍광과 어우러져 만추의 한 낮 정경이 훨씬 푸근하고 넉넉하게 느껴졌습니다. 불티교를 건너 금강자연휴양림의 산 중턱에 자리한 2층 누각의 창연정(蒼硏亭)을 사진 찍으면서 손자와 함께 들른 지난 4월의 여행을 떠올렸습니다. 큰아들과 며느리가 주선해 초교1년생의 손자와 함께 공주의 공산성과 박물관,  그리고 세종시의 금강자연휴양림과 수목원을 둘러본 상춘여행은 꼬마 손자가 오래 기억했으면 합니다. 트러스 구조의 진홍색 불티교를 거의 다 건너서야 자전거전용도로가 금강 좌안에 나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전거 길을 따라 다시 불티교를 건너 강가로 내려가 두 손을 씻는 것으로써 금강과  인사를 나눈 후 금강 우안의 자전거길을 이어갔습니다. 강 건너 천애의 암벽을 건너다보면서 강변 풍경이 비경이 되려면 강변에 곧추선 천애의 암벽은 필수요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24분 금강하구둑 전방100Km 지점을 지나 얼마 후 공주 땅으로 들어섰습니다.

 

  145분 공주시의 석장리 박물관에 다다라 전시물을 둘러보았습니다. 공주시로 들어서자 강변의 갈대밭이 꽤 넓어보였습니다. 이어지는 약 4의 석장리 꽃 단지는 봄에는 유채꽃, 튤립과 수선화가, 여름에는 플록스가,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구절초가 활짝 피어 볼만 했을 텐데, 겨울을 코앞에 둔 11월 하순의 꽃단지는 하얀 꽃의 구절초와 조그마한 핑크색의 작은 꽃만 보여 조금은 스산했습니다.

 

  석장리가 널리 알려진 것은 국내 최초로 구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어서입니다. 구석기유적지와 전시관 및 파른 손보기기념관은 7년 전 군포시민들과 함께 탐방한 적이 있어, 이번에는 전시관과 파른 손보기기념관만 휘 둘러보았습니다. 구석기시대란 인류가 처음 등장한 때부터 최후빙하가 끝나는 1만 년 전까지의 수 백 만년에 걸친 시기를 이릅니다. 1만 년 전에 시작된 신석기시대와 대별되는 것은 그 석기모양이 간석기 직전단계의 뗀석기라는 것, 농업/목축 이전의 사냥과 채집단계라는 것, 주거양식도 정착단계의 움집이 아닌 동굴, 바위그늘, 막집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민무늬토기, 덧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등의 신석기시대 토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1963년 미국의 대학원생 Albert Mhor 부부가 홍수로 인해 무너진 금강변의 지층에서 뗀석기를 발견하고 서울대를 찾아가 같이 발굴할 것을 요청했지만, 우리나라에는 구석기기가 존재 않는다며 거절당했습니다. 그 다음 연세대를 찾아가 당시 역사학을 가르친 손보기교수를 만난 덕분에 발굴 작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연세대 발굴팀은 1964-1992년의 28년 동안 12차례 발굴작업을 진행해 한국구석기의 존재를 입증하는 개가를 올렸습니다.

 

  시인 나태주는 석장리 박물관이라는 부제가 달린 시() 그냥 한 번 와보면 안다그냥 한 번 와보면 알 것이다/ 왜 공주가 오랜 인간의 낙토였고/ 인간이 꿈꾸던 아름다운 땅이었는지/ 그것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끝맺었습니다. 제가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을, 그것도 그냥이 아니고 역사교수도 모시고 와보았어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명석함에서 시인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어서일 것입니다. 공주가 왜 오랜 인간의 낙토였는지는 더 공부하기로  하고 박물관을 나왔습니다.

 

  1520분 명탄서원을 들렀습니다. 석장리박물관을 출발해 자전거도로를 이어갔습니다. 무릉천과의 합류점에서 오른 쪽으로 하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박동진판소리전수관을 들를 수 있는데 시간이 여의치 못해 그냥 지나쳤습니다. 신공주대교가 지나는 월송교차로 인근에서 잠시 자전거길을 벗어나 명탄서원을 다녀왔습니다.

 

  명탄서원(鳴灘書院)은 조선의 성종21(1490) 지방 유림의 공의로 이명성(李明誠)과 이명덕(李明德) 형제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연기군 금남면의 명탄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사액서원으로,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온 것으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적고 있습니다. 형 이명성(李明誠, 생몰연도 미상)은 조선이 건국되자 벼슬을 마다하고 두문동에 은거해 고려왕조에 절의를 지킨데 반해, 아우 이명덕(李明德, 1373-1444)은 조선건국 이후 나라의 기틀을 잡는데 일생을 바쳤으며, 과거에 급제해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하니, 누가 진정 충절을 지킨 것인지 따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조7(1731)에 현 위치로 옮겨 임란 때 소실된 것을 복원한 이 서원은 대원군 때 철폐되었다가 1955년에 후손들이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중앙의 신문과 양 옆의 협문, 명탄서원, 사당 충절사와 구 강당 고직사, 그리고 뒤편 산에 묘지가 들어선 명탄서원을 일별한 후 서둘러 자전거 전용도로로 복귀했습니다.

 

  1643분 공산성 건너편의 금강교 철교앞에 도착해 25구간 탐방을 마쳤습니다. 북서쪽으로 흐르는 금강을 따라 걸으며 사진을 찍기가 불편할 정도로 해가 많이 기울고, 강바람이 점점 세게 불어 몸에서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금강홍수통제소와 공주대교를 차례로 지나 금강신관공원으로 들어섰습니다. 이 공원은 32번 도로 아래로 잔디광장-축구장-야구장-롤러 스케이트장-농구장과 인라인스케이트장-RC써킷-잔디 축구장-잔디광장 순으로 여러 구장들이 연 이어 있고, 강가로는 갈대와 버드나무 등 수변식물들이 밭을 이루고 있으며, 그 사이로 인도와 자전거전용도로가 나 있었습니다. 강 건너편에는 지난 봄 손자와 함께 들른 공산성이 자리했고, 강 한가운데는 길쭉한 하중도가 차지하고 있어 금강변의 경관이 볼만했습니다. 미르섬으로 건너가자 금강을 배경삼아 사진을 찍는 20대의 젊은 연인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젊어서 집사람과 열애에 빠져보지 못했다면 가슴이 데워지지 않아 그 후의 인생은 열심히 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미르섬을 빙둘러본 후 32번 도로로 올라가 금강하구둑을 92.5Km 남겨놓은 금강교를 사진 찍는 것으로써 스물다섯 번째 금강탐방을 끝마친 후, 공주종합버스터미널로 이동해 1710분에 출발하는 조치원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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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보에 관한 제 생각은 철거가 아닌 존치입니다. 여러 환경단체는 보를 막으면 물 흐름이 늦어져 체류 시간이 길어지고 그로 인해 수질이 오염된다는 주장을 펴면서 그 실례로 녹조를 들고 있습니다. 전공분야가 아니어서 확언할 수 없지만, 보를 막으면 수량(水量)이 늘어나 외부로부터 유입된 오염물질을 희석시켜 보를 설치하기 전보다 오염정도가 낮아지리라 봅니다. 보를 설치해 수질이 더 오염되느냐 마느냐는 유속이 늦어져 오염이 증가되는 정도와 수량(水量)의 증가로 오염원이 희석되어 감소되는 정도의 차이로 결정될 것 같습니다.  두 경우의 정량적 차이는 각각의 BOD를 측정해 비교하면 그 답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그리 간단히 풀릴 문제가 아니기에 아직도 해체시기를 결정짓지 못하는 것이 아닌 가 싶기도 합니다. 

 

  수질관리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하천에 배출되는 오염원을 줄이는 것입니다. ‘K-water 금강통합물관리센터의 안내전단에 금강수질오염줄이기를 위한 유용한 정보외 지침이 실려 있어 요약해 옮겨놓습니다. 첫째, 금강의 수질 오염 원인입니다. 농경지, 축사, 산업 등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활동의 결과로 모든 곳에서 수질오염물질이 발생되고 있습니다. 오염물질은 생활하수나 산업폐수처럼 특정한 지점에서 발생하는 점오염물질과 농경지에 남아 있는 농약, 비료나 가축의 배설물 등 광범위한 장소에서  불규칙적으로 발생하는 비점오염물질로 나뉩니다. 둘째, 금강의 수질오염 현황입니다. 물 속 산소를 고갈시키는 유기물은 농지56.8%, 축산19.9%, 생활20.1% 등에서 배출되고, 조류를 발생시키는 영양분인 인성분도 농지40.5%, 축산29.9%, 생활21.9% 등에서 배출됩니다.  급선무는 농지에서 배출되는 오염원을 줄이는 것이 아닌 가 합니다. 셋째, 오염을 줄이기 위해 해야 할 일입니다. 화학비료 및 농약사용을 줄이고, 비올 때 야적된 퇴비는 덮개로 덮어주고, 볏짚이나 농업잔유물(지표피복재)로 밭고랑을 덮어주며, 파종할 부분만 갈고, 고랑에 작은 둑을 쌓으며, 밭가장자리에 작은 웅덩이(저류지)를 파고, 마지막으로 비료포대, 폐농약 병 등을 수거하는 등 농지에서 배출되는 오염원을 우선적으로 줄일 것을 적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농지에서 발생하는 오염원 배출을 최대로 줄이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라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예방적 조치로 사후 관리보다 효과가 커 반드시 실천되어야 할 것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