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5)
*산행일자:2010. 10. 2일(토)
*소재지 :강원 인제
*산높이 :대승령1,2010m
*산행코스:남교리-십이선녀탕-대승령-대승폭포전망대-장수대
*산행시간:9시40분-17시20분(7시간40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 송기훈회장 등 29명
남교리에서 십이선녀탕을 거쳐 대승령에 이르는 길은 대학교 3학년 때인 40년 전 여름 경동동문산악회원들과 함께 밟은 길입니다. 그 때 같이 오른 선후배중 이번 산행을 동행한 경동고 동문은 정하선 선배가 유일했습니다. 이번에 4시간이 채 안 걸린 길을 40년전에는 남교리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부터 올랐어도 해가 진후에야 십이선녀탕계곡을 벗어난 것은 과다한 짐 때문이었습니다. 짐이 가벼워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인지 40년 만에 다시 보는 십이선녀탕이 그때보다 훨씬 아름다워 보였고 이만하면 과연 선녀가 내려와 놀다갈 만하다싶었습니다.
옛날에 옥황상제가 사는 궁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선녀들이 목욕을 하는 궁을 시궁(時宮)이라 불렀다 합니다. 옥황상제는 옥황 즉 하늘의 큰 황제여서 하늘과 땅을 모두 어우르기에 천지왕으로도 불리는 우리나라 무속신화의 최고의 신입니다. 이런 분을 옆에서 받드는 선녀라면 옥황상제의 도움으로 하늘나라든 이승이든 저승이든 가리지 않고 나다녔을 법합니다. 시궁에서 목욕을 하는 선녀들이 바깥 목욕탕으로 나들이를 나선 곳이 우리나라에 꽤 여러 곳 있는데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을 낳은 금강산의 상팔담과 여기 설악산의 십이선녀탕이 대표적인 목욕탕들입니다. 옥색의 담소가 높고 깊은 골짜기 속에 폭 들어가 있어 선녀가 목욕을 하기에는 천혜의 장소임에 틀림없는 금강산의 상팔담을 직접 찾아가 본 터라 십이선녀탕계곡에 그에 견줄만한 목욕탕이 과연 있을까 궁금해 하다가 포근함과 안온함이 금강산의 상팔담을 뛰어넘는 복숭아탕을 보고서야 이 탕을 찾는 선녀들이 꽤 많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 두 선녀가 일시에 지존의 옥황상제를 떠나 여기 십이선녀탕으로 내려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기에 소(沼)가 여덟 곳 밖에 없어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번에 십이선녀탕을 찾은 29명의 일행 중 선녀를 닮고 싶어 하는 지상의 여성분들도 겨우 네 분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먼 하늘에 살고 있는 12선녀가 한꺼번에 여기 십이선녀탕으로 나들이를 나설 리가 절대로 없었을 것이기에 하는 말입니다.
9시40분 남교리의 십이선녀탕 입구를 출발했습니다. 춘천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서 남교리까지 2시간 반이 조금 못 걸렸습니다. 십이선녀탕계곡 오른 쪽에 남쪽 방향으로 나 있는 편안한 길을 따라 얼마간 오르다 첫 번째 합수점에서 지계곡을 건너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날씨가 선선하고 길이 넓은 데다 카메라 고장으로 사진을 찍지 못해 산 오름이 생각보다 빨랐습니다. 해맑은 웃음을 머금은 길섶의 투구꽃과 바닥이 훤히 보이는 명경지수의 소(沼)를 카메라에 옮겨 담지 못했지만 한 후배동문으로부터 정성스레 찍은 사진들을 넘겨받아 40년 만에 다시 오르는 십이선녀탕의 비경을 제 블로그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8-9m(?)높이의 회백색 암벽이 1-2m 폭(?)의 협곡을 만들고 그 협곡사이로 비취색의 물이 흐르는 비경을 보고 십이선녀탕은 역시 설악산의 계곡답다 했습니다. 산행시작 50분이 채 안되어 계곡물이 하얀 물결을 일으키며 바위 밑으로 떨어지는 응봉폭포(?)를 보았는데 다른 산의 이름 난 폭포들에 비해 초라해 보였습니다. 폭포에서 20분을 더 걸어 만난 속이 텅 빈 고목 속으로 들어가 나무와 하나가 된 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11시18분 복숭아탕 전망대에 이르렀습니다. 40년 전 이 계곡을 처음 오를 때 수도 없이 계곡을 건너며 계곡을 따라 오르느라 미끄러운 바위 길을 지났고 몇 번이고 구두를 적셨습니다. 몇 년 전 수해를 크게 겪은 후 계곡 가에 새롭게 길을 잘 정비해 놓아 큰 비가 와도 어려움이 전혀 없어 보였지만 그 때 계곡을 덮은 나무들을 끌어낸 후 일정 크기로 잘라 길 가에 쌓아둔 나무더미를 보고 당시의 참상이 어느 정도 짐작됐습니다. 해발600m로 고도를 높이자 진홍색의 단풍이 눈에 띄었지만 아직은 철이 일러 제 색깔을 내지 못했습니다. 데크 길이 끝난 데서 몇 분간 가파른 바위 길을 올라 데크 전망대에 올라서자 용탕으로도 불리는 복숭아탕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움푹 들어간 소(沼)를 보고 복숭아보다는 태아가 자라고 있는 어머니들의 안온한 자궁이 연상되었습니다. 선녀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이 땅에 내려앉은 착지점이 바로 여기 복숭아탕이어서 해발700m의 고도가 속세와 선계를 가름하는 높이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원래 탕숫골로 불린 이 계곡이 십이선녀탕계곡의 이름을 얻은 것은 복숭아탕을 시작으로 그 위에 연이어 자라 잡은 크고 작은 소들 덕분인데 다 합해도 선녀 숫자에 넷이 모자라는 여덟밖에 안 된다합니다. 그래도 소들이 독탕에서 가족탕 그리고 대중탕에 이르기까지 그 크기가 다양했고 높은 곳에 위치해 선녀들이 몰래 숨어 목욕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을 것입니다.
14시9분 해발1,360m의 능선 끝 지점에 올라섰습니다. 소가 끝나는 곳에서 조금 더 올라가 커다란 나무아래 넓은 곳에 자리 잡아 50분 가까이 점심을 든 후 12시50분경 오후 산행을 이어갔습니다. 산 속 깊숙한 곳에서도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은 십이선녀탕 계곡도 해발고도가 1,000m가 가까워지자 물소리가 잦아들더니 얼마 더 안 올라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물소리가 끊어져 조용해진데다 더러 더러 회백색의 고사목들이 보여 휴일이 아니었다면 숨소리가 들릴 만큼 적막했을 텐데 장수대 및 한계령에서 산행을 시작한 산객들을 많이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기에 바빴습니다. 경사가 급해지면서 돌계단을 걸어 오르는 산 오름의 속도가 더뎌졌습니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남교리에서 7.2Km를 걸어 다다른 “능선끝지점” 봉우리 쉼터에서 십분 가까이 머무른 후 오른 쪽으로 꺾어 대승령으로 향했습니다.
15시13분 해발1,210m의 대승령에 다다랐습니다. 능선 끝 지점에서 고도차가 거의 없는 편안한 능선 길을 십 수 분간 걸어 봉우리삼거리에 도착하자 오후 3-4경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할 기세로 시꺼먼 구름들이 하늘을 덮었습니다. 암봉이 우뚝 솟아 의연해 보이는 해발1,430m의 안산은 아직도 제가 오르지 못한 봉우리로 능선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반시간 거리에 자리하고 있어 충분히 다녀올 수 있었는데 국립공원에서 입산을 금하고 있어 그저 바라다만 보았습니다. 편안한 능선 길에서 다리에 쥐가 나 수 분간 쉬어야 했던 한 동문이 봉우리삼거리를 지나 왼쪽 길로 내려가는 중 다른 다리에서 쥐가 또 다시 나 그 자리에서 얼마간 쉬어 갔습니다. 안부에서 다시 올라 삼각점이 박혀 있는 대승령 봉우리에 이르고 나서야 대승령도 다른 영(嶺)들처럼 깊숙한 안부일 것이라 생각한 제 예단이 틀렸음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해발1, 210m의 대승령에서 곧 바로 진행하면 귀때기청봉을 거쳐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서북주능을 종주하게 되는 데 저는 2.7Km 거리의 장수대로 하산하고자 오른 쪽 길로 내려섰습니다.
16시42분 데크 전망대에서 대승폭포를 조망했습니다. 대승령에서 약하게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십 수분이 지나자 제법 굵어졌습니다. 대승령에서 해발760m의 대승폭포 전망대로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완만했습니다. 전망대에서 건너다 본 대승폭포는 그 높이가 88m에 달해 물이 많이 흐르는 장마철에 왔다면 폭포수가 떨어지는 장면이 장관이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느껴질 정도로 시꺼먼 암벽을 타고 흘러내려가는 가느다란 폭포수가 주변의 곧추선 암벽에 주눅들은 양 초라했습니다. 여기 대승폭포와 더불어 조선의 3대폭포인 개성의 박연폭포는 다녀오지 못해 가물 때 폭포수의 물줄기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되지 않지만 6년 전 한 가을에 찾아간 금강산의 구룡폭포는 그 높이가 150m에 이르는 거대한 폭포로 여기 대승폭포보다 물이 조금 많이 흐른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대승폭포가 저의 눈을 끈 것은 폭포의 규모나 물 흐름의 세기가 아니었습니다. 대승폭포에 관련된 전설이 색다르게 느껴졌으니 다름아닌 이 전설의 주인공인 대승이 전설의 시대에 살면서 암벽등반을 했다는 점입니다. 먼 옛날 한계리에 살고 있는 대승이라는 총각이 어느 날 폭포가 있는 돌기둥 절벽에 동아줄을 타고 내려가 돌버섯을 따고 있는 중 산 짝 만한 지네가 동아줄을 뜯어 막 끊어지려는 참에 죽은 어머니가 “대승아 대승아”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동아줄을 타고 절벽 위로 올라가 목숨을 구했다는 전설의 줄거리를 뜯어보면 동아줄을 타고 깎아지른 절벽을 오르내린 대승이야 말로 당대 최고의 록 클라이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승이의 피가 오늘의 젊은이들 몸속에도 면면히 흐르고 있어 박영석, 엄흥길, 한왕상과 오은선 등 우리의 아들 딸들이 해발 8천m가 넘는 히말아야의 고봉 14개를 완등하는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17시15분 장수대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대승폭포 전망대에서 장수대로 내려가는 하산 길은 된비알 길이어서 나무계단을 설치하지 않았다면 오르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도로 건너 높이 솟은 봉우리가 7년전에 올랐던 가리봉이고 그 오른 쪽에 뾰족 솟은 봉우리는 한국의 마터호른이라 불리는 주걱봉으로 아직 오르지 못한 봉우리인데 안개가 이봉우리를 휘감고 있어 신비롭게 느껴졌습니다. 44번 도로가 지나는 장수대에서 저녁을 함께 든 후 18시 반이 조금 못되어 귀경길에 올라 고교동문들과의 10월 정기산행을 마쳤습니다.
이번에 십이선녀탕을 오르며 선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벗어놓은 옷을 몰래 감추고 어떻게 해서든 인연을 맺어 덕을 보려는 못난 사내들이 너무 많아 선녀들이 이 계곡에서 마음 놓고 목욕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전설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우리의 산하가 너무 각박해 이제는 더 이상 옥황상제를 가까이서 모시는 선녀들이 내려올 만한 곳이 못됩니다. 이 땅에서 반딧불이가 사라지면서 형설지공의 옛이야기가 잊혀 지듯이 숨겨진 비경이 사라지면서 우리의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전설도 같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이달 중순 경 조용한 평일 날 다시 찾으면 목욕을 핑계대고 단풍나들이에 나설 선녀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 아직 만남의 희망을 접지 않았습니다.
<산행사진>
*위 사진은 정병기 동문이 찍은 것입니다.
- 칠갑산
- 2010.10.12 17:32
- 언제 올라도 멋진 설악입니다
가을빛이 참 곱게 물들고 있고요
십이선녀탕의 물빛도 여전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 시인마뇽
- 2010.10.13 09:16
- 그래서 설악이지요.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설악산(4)
*산행일자:2006. 10. 21-22일
*소재지 :강원 속초/양양/인제
*산높이 :1,708미터
*산행코스:오색-대청봉-소청대피소-무너미고개-마등령/양폭산장-비선대-설악동
*산행시간:총 19시간10분
*동행 :경동동문7명(이규성,장광종,이기후,이달헌,서중원,김남진부부)
삼각산 뫼 뿌리에 우뚝 선 모교 교정을 1965-7년의 3년 동안 쉼 없이 오르내린 고교동기들 몇몇이서 한반도 동녘 끝에 우뚝 솟은 설악산에 도전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는 일인데 베테랑도 힘들어하는 험난한 암릉길 공룡능선을 탄다는 것은 난생 처음 대청봉에 오르는 동기들에는 그저 단순한 산행이 아니고 새로운 도전임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러기에 1박2일의 설악산 등정을 성공리에 마칠 때까지 가슴 설레면서도 두려운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경원선이 닿는 금강산에 비해 설악산은 교통이 불편하여 찾는 이들이 훨씬 적었다고 합니다. 설악산은 고도가 1,708미터로 금강산보다 70미터 더하고 한반도 남녘에서 한라산과 지리산 다음으로 세 번째로 높은 고산입니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으로 한 숨에 내닫는 백두대간이 남한 땅에 발을 들여 처음으로 높이 일군 고산이 바로 설악산으로 눈 많기로 으뜸인 설산이자 바위들이 온갖 형상을 빚어낸 이 나라 최고의 악산이기도 합니다.
동기들 몇 명과 함께 공룡능선을 뛰기로 했다면서 고교동기인 이 교수가 제게 동행을 요청해왔습니다. 처음에 그의 제의를 거절한 것은 올 3월에 시작한 한남금북정맥 종주를 이 달 안에 마치고자 함이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동창들과의 산행에 참여하지 못한 그동안의 미안함을 덜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여 생각을 고쳐먹고 동참했습니다. 이번 동창들과의 산행은 여느 산행과는 달리 시간을 뛰어넘는 산 나들이였습니다. 소청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어 시간을 다투지 않아도 될 만큼 여유로웠고 또 졸업 후 38년이 지났어도 “국적은 바꿔도 학적을 바꿀 수 없다”는 동창애가 긴 시간을 뛰어 넘어 저희들 가슴 속에서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시간을 의식 않고 설악산의 속살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여서 이번 산 나들이에서는 이제껏 자세히 적어온 시간기록을 많이 생략했습니다.
@10월21일:오색-설악폭포-대청봉-소청대피소
아침 6시 30분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했습니다.
이 교수를 대장으로 동기 6명과 한 친구의 부인을 포함해 모두 8명이 한 팀이 되어 설악산 등정 길에 나섰습니다. 오색에 이르기 바로 전에 지난여름 수마가 할퀴고 간 한계령을 넘으며 설악산이 감내했을 아픔이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한계령을 넘자 희뿌연 안개가 더욱 짙게 깔려 남설악의 단풍세레머니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가을단풍은 역시 설악산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습니다. 자연의 비경을 접할 때마다 말이나 글로는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한계에 봉착해 차라리 침묵이 금임을 느끼게 됩니다. 무지개의 아름다운 일곱 가지 색을 오색영롱하다고 다섯 색으로 줄여 말하고, 도레미화솔라시의 칠 음계를 궁상각치우의 오음계로 축약해온 우리 선조들로부터 배워온 것은 가능한 한 줄여서 표현을 하는 것이어서 설악산의 비경을 제대로 풀어서 묘사한다는 것이 짐스러웠습니다.
오전 10시 설악산국립공원 오색분소를 출발했습니다.
대장 이 교수가 선두를 섰고 제가 후미를 맡았습니다. 배낭 속에 있는 먹거리를 뱃속으로 옮겨놓아도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무겁기는 마찬가지인데 짐을 덜었다고 좋아하는 것은 결국 오르내림은 같은데도 육교보다 지하도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그래도 뉘나 나나 할 것 없이 짐을 덜고자 모두 뱃속을 채운 후 매표소를 출발했습니다. 제1쉼터에 이르기까지 온몸을 불살라 치러내는 단풍제전이 아직은 끝나지 않아 단풍색이 아름다웠습니다. 얼마고 더 올라 매표소-대청봉의 중간지점인 설악폭포에 다다르자 선두와 후미그룹이 분명하게 나누어졌습니다. 이 대장과 세 동문이 선두그룹을 형성했고 나머지 다섯 명은 한참을 떨어져서 뒤를 이었습니다.
설악폭포 옆을 지나자 물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대청봉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산속의 오후가 떠들썩했고 생기가 넘쳐흘렀습니다. 미국인도 중국인도 이 산을 찾아 설악산의 국제적 명성을 더해주었는데 유네스코에서 한계령 건너 점봉산 구간을 보존구역으로 지정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습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넓은잎나무들은 가지에서 잎을 떨어내 나목으로 변해가고 있었으며 대신에 바늘잎나무들이 수종을 바꿔가며 푸르름을 이어갔습니다. 아름드리 적송이 제 1 쉼터의 푸르름을 대표하는 침엽수였다면 설악폭포에서는 전나무의 진초록 바늘잎들이 가을단풍을 돋보이게 했습니다.
제2쉼터로 오르는 길은 계단이 많아 힘들었습니다.
등산로 주변의 황폐화를 막기 위해 계단을 설치하는 것이 불가피하더라도 계단 또한 인공의 설치물이어서 가능한 한 최소로 줄여야 할 것입니다. 제2쉼터를 지나 후미그룹이 다시 둘로 나뉘어져 한 동창 부부가 먼저 치고 올라갔고 나머지 두 명과 제가 대열 뒤끝에 섰습니다. 또 다른 침엽수 분비나무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제 2쉼터를 지나서였습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나무들도 만났습니다. 된비알의 오름길은 제 2쉼터까지이고 그 다음은 비교적 완만한 길이어서 걸을 만 했는데도 마지막 후미그룹의 쉬는 횟수는 점점 늘어났습니다. 이 시간쯤이면 방을 빨리 배정받고자 소청대피소로 내달린 이 대장 등 3명은 대청봉에 오른 후 중청으로 하산 할 것이고 그 뒤를 이은 부부 커플은 대청봉을 눈앞에 두고 오붓하게 둘이서 고산데이트를 즐기고 있으리라 생각됐습니다.
오후 4시경 해발 1,708미터의 설악산 정상봉인 대청봉에 올라섰습니다.
화채봉과 중봉은 한눈에 잡혔지만 기대했던 동해바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람도 냉기도 먼발치로 물러나 대청봉이 이처럼 따뜻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먼저 오른 부부 팀이 긴 시간을 기다려 저희들을 반갑게 맞아 고마웠습니다. 생애 최초로 설악산 정상에 올라 선 동문들의 상기된 표정들을 카메라에 담고 나서 두 동문이 각각 준비해온 술과 안주로 정상주를 마시며 설악산 등정을 자축했습니다. 맨 꼭대기에서 자라고 있는 마지막 침엽수는 난장이 잣나무인 눈잣나무였습니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 날 듯한 땅을 기는 눈잣나무는 설악산과 금강산에서 자생하는 보기 드문 오엽송이이어서 대청봉을 오를 때마다 빼놓지 않고 눈인사를 건넸습니다. 가야동계곡에서 골바람이 몰고 온 안개가 대청봉을 에워싸기 직전에 중청대피소로 내려서 대청봉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저녁 5시가 조금 못되어 소청대피소에 도착했습니다.
중청대피소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중청을 오른쪽으로 에돌아 소청에 다다랐고 왼쪽 길로 내려서 소청대피소에 다다르자 방 잡기에 성공한 이 대장과 한 동문은 봉정암으로 내려가 다른 동문만이 혼자서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청대피소로 내려서는 중 눈앞에 펼쳐진 용아장성릉의 암릉길이 기기묘묘한 암봉들로 절경을 이루고 있어 순간을 놓칠세라 부지런히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저녁식사를 마치고자 100여미터 떨어진 샘터에서 물을 길어와 서둘러 라면을 끓여댔습니다. 햇반과 함께 들은 소찬이 어느 만찬보다 성찬일 수 있었던 것은 긴 시간 흘린 땀과 시간을 뛰어넘는 우정 때문이었습니다. 두 동문이 봉정암에서 되돌아와 8시간 반 동안의 대청봉 등정을 자축하고자 8명 모두가 술잔을 높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공룡능선에 도전하겠다는 전의를 다졌습니다.
이대장이 미리 잡아 놓은 방으로 옮겨 한 시간여 술잔을 나누며 빡빡머리의 고교시절을 반추했습니다. 잠시 밖으로 나가 실루엣이 아름다운 밤의 능선을 조망하고 쏟아지는 별들을 맞고자 했으나 밤안개가 더해진 칠흑 같은 밤이 하늘과 산을 모두 삼켜버려 이내 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10월22일:소청대피소-희운각-무네미고개-마등령/양폭산장-비선대-설악동
새벽 4시10분에 소청대피소를 출발했습니다.
공룡능선 종주를 다짐하는 출정식은 모두 모여 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반시간 가까이 밤을 뚫고 소청의 넓은 공터로 올라서자 골바람이 실어온 안개가 얼굴을 에워싸 냉기가 느껴졌습니다. 소청에서 잠시 머물며 대열을 가다듬은 후 골짜기 깊은 곳에 자리한 희운각 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대청봉에서 무너미고개로 이어지는 대간 길이 통제되어 여러 번 소청을 거쳐 희운각으로 내려섰지만 낮이고 밤이고 경사가 급해 다리가 후들거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는 새벽안개가 길을 촉촉하게 적셔놓아 하산 길 여기저기서 엉금엉금 기어 내려가느라 엉덩방아도 찧었고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눈 아래로 희운각이 어슴푸레 눈에 들어오면서 눈높이로 대청봉과 화채봉을 잇는 화채능선이 한눈에 들어왔고 이내 능선 너머에서 태양이 준비한 일출의 영향으로 온 능선이 불그스름해 장대한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아침상은 희운각에다 반시간 가까이 먼저 도착한 이 대장이 주선해 차렸습니다.
라면과 햇반을 함께 넣고 끓여 쌀과 밀가루의 퓨젼으로 빚어낸 설악산표 희운각탕이 일미인 것은 대장의 버너질과 친구부인의 손맛이 더해진 덕분입니다.
7시35분 갈림길 무너미고개에서 공룡능선팀과 천불동계곡팀이 갈렸습니다.
길도 갈리고 사람도 갈리는 무너미고개에서 입학시험을 치르는 고사장의 수험생처럼 초조해하는 능선팀과 설악산의 속살을 샅샅이 헤집어 보겠다며 느긋해하는 계곡팀의 면면을 모두 잡아낸 사진이 어떻게나올까 벌써부터 궁금했습니다. 대장이 안내하는 공룡능선팀에는 어제의 선두팀에 3명이 추가로 합류했고 무릎이 아프다는 한 동문과 저 둘이서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했습니다. 공룡능선과 맞은편의 용아장성릉이 국내 최고의 암릉 길이라면 천불동 계곡은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제일가는 계곡길이어서 산행을 마친 후 각 팀들의 후일담도 들을 만 하겠다 싶었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착실히 천불동의 비경을 하나도 빼 놓지 않고 완상했습니다.
무너미고개에서 얼마고 내려서자 수 많은 암봉 들이 계곡을 에워싸 바깥세상과 완전히 절연된 것 같았습니다. 거대한 암봉들이 빚어낸 V자형의 깊은 계곡을 따라 바쁘게 내닫는 골짜기물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 폭포 아래 소입니다. 오색에서 대청으로 오르는 길을 수종을 달리하는 바늘잎나무들이 안내를 맡았다면, 천불동 계곡의 이정표는 단연 폭포와 담이었습니다. 대청봉의 빗물과 눈 녹은 물을 받아 설악동으로 내닫는 연주골 계곡 물이 염주폭포, 천당폭포와 양폭포를 만들었고 양폭산장을 지나 5개의 폭포를 이어서 집대성한 오련폭포가 마지막 폭포였습니다. 폭포가 끝나고 귀면암을 지나자 소보다 조금 더 큰 담이 천불동의 명소를 이어갔습니다. 용소골과 칠선골 그리고 잦은바위골의 골짜기 물을 차례로 받아 설악동으로 내닫는 천불동계곡이 명경지수의 이호담과 문수담을 만든 후 설악골 계곡물도 마저 받아 비선대와 와선대의 넙적한 바위장을 깨끗하게 씻어냈습니다. 거대한 암봉에 내려앉은 천상의 선녀들이 천불동 계곡을 탐하여 폭포로 내려섰다가 목욕을 한 후 다시 하늘나라로 올라간다는 단순한 플로트로는 설악산이 나무꾼과 선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금강산을 당해낼 수 없기에 와선대에 쉼터를 그리고 비선대에 활공장을 만들어 놓고 마고선녀를 기다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시 30분경 비선대에 도착했습니다.
통증이 도져 중간에 주저앉을까 걱정되어 여느 때보다 쉬는 횟수와 시간을 늘려 잡았습니다만 무릎통증을 꾹 참고 힘들게 5시간을 걸어 내려온 한 동문이 고마웠습니다. 비선대에서 설악동주차장까지는 오가는 관광객이 많았어도 길이 넓어 소통이 원활했습니다. 와선대에서 맥주와 파전으로 무사산행을 간단히 자축한 후 설악동주차장으로 내려갔습니다.
오후2시반경 주차장에 도착하여 10시간 남짓한 계곡팀의 이틀째 산행이 끝났습니다.
한편 공룡능선 길을 안내한 이대장이 능선팀의 산행기록을 다음과 같이 알려왔습니다.
무너미고개에서 반시간 남짓 걸어 신선대에 올라섰습니다. 북서쪽으로 뻗어가는 공룡능선과 가야동계곡 건너 서쪽의 용아장성릉이 자웅을 겨루는 기기묘묘한 암봉들을 제대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설악산이 숨겨놓은 비경이 아름답게만 보일 정도로 아직은 기운이 남아돌았기 때문입니다. 도봉산의 선인봉과 북한산의 인수봉을 이어놓은 듯 장대한 1275봉 왼 쪽 아래 고개마루에 이르기까지 신선봉을 출발해서 2시간이 걸렸습니다. 오후의 비소식이 발걸음을 재촉해 생각보다 운행속도가 빨랐습니다.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하는 내림길에서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만 1275봉에서 두 시간을 더 걸어 나한봉을 지났고 너덜겅을 지나 마등령에 도착하기까지 20분 남짓 걸렸습니다.
12시40분 경 공룡능선의 끝 지점인 마등령에 도착했습니다.
주먹밥과 떡으로 시장기를 달래가며 20분여 쉬었습니다. 초행길 대원들이 베테랑과 거의 같은 시간인 5시간 만에 공룡능선을 주파했다는 것은 기필코 해내겠다는 대원들의 굳은 의지와 이대장의 차분한 안내 그리고 오후 1시까지 비 내림을 참아준 제우스신의 배려에 힘입어서였습니다.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내려서는 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공룡능선을 마쳤다는 안도감에 다리가 풀린 데다 오랜 시간 참았던 제우스신이 비를 뿌리기 시작해 생각보다 운행이 더뎠습니다. 잰 걸음으로 내달린 한 친구가 3시경에, 아킬레스건이 아프다는 도 다른 친구가 3시반경에, 나머지 3명과 함께 내려온 이 대장이 40분 후인 4시10분경에 비선대에 도착했고 곧 이어 와선대로 옮겨 막걸리 한잔으로 공룡능선 종주를 자축했습니다.
저녁5시 설악동 주차장에 도착해 장장 13시간에 걸친 능선팀의 고된 산행도 끝났습니다.
계곡팀이 먼저 속초 시내로 옮겼습니다.
저녁 7시40분 막차를 예매해놓고 인근 사우나장에 들러 목욕을 하는 동안 능선팀도 속초로 이동하여 사우나장에 합류했습니다. 천불동계곡으로 같이 내려온 한 동문이 푸짐하게 저녁상을 마련해 1박2일간의 설악산 등정을 다함께 자축했습니다. 자정이 다되어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해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고자 작별인사를 나누고 각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번 등정으로 어떤 일이든 저희 동문들이 뜻을 모아 힘을 합친다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제껏 오르지 못한 설악산의 대청봉과 암릉길 공룡능선을 뛰어보겠다고 뜻을 세우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성공적으로 설악산 등정을 마친 것은 대원들 이 서로 격려하고 산행대장을 맡은 이교수가 잘 이끌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공룡능선의 종주욕심을 과감히 버리고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한 무릎통증으로 고생한 동문의 아름다운 결단이 능선 팀의 완주를 도왔음도 기록해둡니다.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무박산행으로 12시간이면 족한 거리를 신참대원들과 함께 19시간을 넘게 걷는 것이 공룡능선을 몇 번이나 종주한 대장에게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새내기대원들에는 아무리 시간을 늘려 잡아 천천히 걸어도 힘든 코스였을 것입니다. 대장도 애썼고 다른 동문들도 고생하셨습니다. 부부가 함께 공룡능선 종주한 대기록을 남긴 홍일점 한 분에도 축하인사 드립니다.
모처럼 시작된 동문들과의 고산등정이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설악산(3))
*산행일자:2006. 1. 1일
*소재지 :강원 양양/속초/인제
*산높이 :1,708미터
*산행코스:한계령-끝청-대청봉-희운각산장-무너미고개-마등령-설악동
*산행시간:1시57분-16시15분(14시간18분)
*동행 :송백산악회
2006년 원단의 새아침을 설악산에서 맞았습니다.
1969년 여름 방학 때 멋모르고 한라산을 오른 후 38년간 높고 낮은 산들을 계절을 가리지 않고 수 없이 오르내렸지만 정월초하루 새아침을 산정에서 맞이하기는 어제가 처음이었습니다. 날이 흐려 일출을 보기 어렵다는 일기예보에 괘념치 않고 산행 길에 나선 것은 마침 송백산악회의 대간 종주가 한계령-대청봉-마등령 구간으로 잡혀있어 이제껏 설악산의 겨울모습을 한번도 가까이서 보지 못한 제게는 정월 초하룻날 겨울의 설악산을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여서 설사 일출을 못 본다 해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욕심이 나면서도 며칠 전까지 쉽게 결정하지 못한 것은 2003년 1월 대관령-고루포기 산행 중 얼굴에 동상이 걸려 된 고생을 했고 그 이듬해 초가을 한계령-대청봉-마등령의 똑같은 코스로 종주를 해서였는데, 다행히 날씨가 풀려 동상걱정을 아니해도 좋을 것 같아 잠실로 나가 버스에 올랐습니다.
새벽 1시57분 한계령을 출발하여 대청봉으로 향했습니다.
칠흑 같은 밤을 뚫고 서북주능으로 오르는 대원들의 번쩍대는 랜턴 빛에 놀라 도망쳤을 설악산의 산도깨비에게 너무 요란하게 새해 인사를 한 듯싶어 미안했습니다. 한계령 출발 얼마 후 제 뒤로 열 분밖에 없다는 대장 분의 얘기를 듣고 더 쳐지면 9시까지 무너미고개에 닿지 못해 종주길인 공룡능선을 타지 못하고 천불동계곡으로 빠질 것 같아 산 오름을 서둘렀습니다. 눈의 산 설악산에도 강원도의 다른 산과 마찬가지로 큰 눈이 내리지 않아 걷기에 불편할 만큼 많은 눈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서북주능에 오르기까지 미끄러운 눈길을 여러 번 오르내리느라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다른 나무들은 밤잠을 자고 있는 동안 명찰을 달고 길 섶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만주고로쇠나무, 분비나무와 물푸레나무 등이 16개월 만에 다시 찾은 저를 반겼습니다.
3시34분 귀때기봉과 끝청으로 갈리는 서북주능의 삼거리에 올라섰습니다.
경사가 급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몇 번을 반복해 오르내리느라 숨이 가빴지만 삼거리에서 쉬지 않고 바로 오른쪽으로 꺾어 끝청으로 향했습니다. 눈앞의 눈만 제대로 보일 뿐 별들도 숨어버린 깜깜한 밤길에 할 수 있는 것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것뿐이었는데 헤드랜턴과 안경이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불빛이 희미해져 새전지로 갈아 넣었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랜턴은 환하게 길을 밝혀주었지만 안경만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동상을 막고자 가리개로 눈, 코와 입만을 내놓고 다른 부분은 전부 가리자 입김과 콧바람이 닿아 안경에 성에가 끼는 바람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국에는 안경을 벗고 맨 눈으로 산행을 했는데 정확하게 착지를 찾아 발을 내딛는 것이 익숙해질 때까지 눈(eye)과 눈(snow)의 싸움이 계속되어 눈이 아파왔고 머리가 띵해왔습니다. 특히 안경을 벗고 눈 덮인 너덜겅을 지날 때에는 자칫 잘못 해 다칠까 염려되어 길지 않은 너덜 지대가 짧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삼거리 출발 50분후 물을 꺼내 마시면서 아주 옅은 불그스레한 구름 띠가 먼발치 능선에 걸쳐있는 것을 보고 긴긴 겨울밤도 끝내는 쇠하고 밝아오는 아침을 물리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자연을 지배하는 로고스의 위대함이 절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6시48분 해발 1,708미터의 대청봉에 올라 정상을 지켜온 표지석을 보듬으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24분 전 중청대피소에서 시간을 계산해보니 대청봉을 올라도 9시전에 충분히 무너미고개에 도착할 것 같아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청봉을 올랐으나 제대로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돌풍에 쫓겨 서둘러 내려오느라 깜박 잊고 산상기도를 빼먹었습니다. 저보다 훨씬 앞서 세례를 받은 하이맛 친구가 먼저 이곳에 올라 제 몫까지 기도를 올렸을 것이 분명하고, 저 또한 안성의 칠장산에서 한남정맥 종주를 끝내면서 무릎 꿇고 주님께 180키로의 정맥 길을 혼자서 마칠 수 있도록 건강과 건각을 주셔서 고맙다는 감사기도를 올린 지 며칠 안 되어 그 기도로 가름하면 되겠다는 편의적인 생각을 잠시 했다가 제 자신도 깜짝 놀라 주님께 정말 죄송하다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끝청에서 대청까지 1.8키로의 대간 길은 비교적 쉬운 길임에도 한 시간이 다 걸려 도착한 것은 대피소에서 대청봉에 오르며 점점 거칠어지는 이곳 특유의 드센 바람이 발걸음을 더디게 해서였습니다. 이 바람에 살아남고자 바짝 엎드려 땅을 기는 듯한 끈질긴 생명체 눈잣나무 들이 일출을 반시간 가량 남겨놓은 마지막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어 이번에는 눈인사도 하지 못한 채 내려왔습니다.
중청대피소에서 바람을 피해 2-3분을 쉬었습니다.
귤을 까기 위해 잠시 오른 손의 장갑을 벗었다 끼었더니 그새 손끝이 얼어 아려와 스틱을 왼손에 잡고 얼어오는 오른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어 녹이며 가느라 소청의 갈림길까지 걷는 자세가 편하지 못했습니다. 두터운 구름층을 뚫지 못한 태양이 여느 때처럼 장대한 일출 세레머니를 연출하지는 못했지만 소청에 들어서자 어둠을 완전히 몰아내 하얀 눈으로 덮인 설악산의 진면목을 아낌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새로 산 그물망의 아이젠이 소청의 꺾임 길에서 50분가량 걸어 1.3키로의 까까비탈의 눈길을 안전하게 내려서는 데 단단히 한 몫 했습니다. 전에 쓰던 아이젠은 눈길을 내려 올 때면 툭하면 벗어져 다시 매기 일쑤였는데 새 아이젠은 한 번도 벗겨지지 않아 제시간에 댈 수 있었습니다.
8시21분 희운각 대피소에 내려서서 맥주 1캔을 사들며 공룡능선을 타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다졌습니다. 때 마침 생각지도 않은 친구 하이맛이 나타나 반가우면서도 한편 산행대장으로부터 넘겨받은 무전기 때문에 이제껏 그리해 온 것처럼 혼자 내빼지는 못하겠지만 대신에 빨리 가자고 성화할 것이 분명해 이를 피할 겸해 같이 갈 후미그룹의 단골멤버들을 찾아보았으나 아무도 만나지 못해 신경이 쓰였습니다. 천불동으로 하산하는 다른 대원들은 앉아서 느긋하게 따끈따끈한 라면을 들고 있는데 선채로 게 눈 감추듯 인절미를 먹어 삼킨 후 신임 후미대장 하이맛의 채근에 쫓기듯 출발하느라 제가 희운각에 머무른 시간은 이친구가 머무른 30분에 1/3도 못되는 겨우 9분 동안이었습니다.
8시30분 희운각대피소를 출발해 공룡능선으로 내달렸습니다.
40분 후 신선대에 올라 구름에 반 쯤 가린 용아장상능을 훑어보기까지도 그리 힘든 줄 몰랐습니다. 서둘러 산행을 하느라 잊었던 카메라를 꺼내들고 용아장상능과 공룡능선의 마루금을 카메라에 옮겨 담는 사이 동행한 한분은 먼저 자리를 떴고 뒤이어 저희들도 배낭을 챙겨 1275봉으로 향했습니다. 마등령 3키로 전방지점인 고개마루 천화대에 오르느라 진을 뺐더니 공룡능선의 설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적어도 1275봉까지는 힘든 줄 모르고 산행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아직도 1275봉은 저만치 보이는데 희운각에서 보충한 원기가 된비알의 암릉길을 오르내리느라 많이 소진되었고, 그래서 귤을 꺼내 요기를 했습니다. 오른 쪽 암면에 먼저 간 산 꾼을 기리는 묘비가 붙어 있어 잠시 숙연해 하다가 다시 1275봉으로 향했습니다. 1275봉을 0.3키로 남겨 놓은 샘터는 다른 계절이라면 대간 꾼에는 더 할 수 없는 오아시스일 터인데 어제는 샘물이 흐르다 얼어 붙어 빙판을 이루고 있어 이 샘터의 임시휴업은 얼마고 계속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10시58분 1275봉 왼쪽의 고개마루에 올라서 숨을 골랐습니다.
지난번에는 이곳에서 퍼지고 쉬며 기운이 남아돌아 오른 쪽의 1275봉을 마저 오르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보며 마냥 부러워했는데 이번에는 저희들 말고는 아무도 없어 한 겨울의 공룡능선 종주가 그리 쉽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2시간 반 동안 겨우 3.1키로를 걸어온 실력으로는 아직도 2키로가 남은 마등령에 닿는 데 시간 반은 훨씬 넘겨 걸릴 것 같아 4시간 안에 공룡능선을 주파하겠다는 제 꿈은 이미 물 건너가 무산됐지만 갈 길이 멀어 다시 일어나 나한봉으로 향했습니다. 그동안 저의 완보를 갑갑해하던 하이맛 친구도 지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치 오르기 위해 내려가는 것 같았고 내려서기 위해 오르는 것 같은, 평지 길은 하나도 없고 오직 오르내림만 잇는 2박자 길이어서 조금은 지겨웠습니다. 그래도 가야동계곡 위에 만개한 설화를 카메라에 옮겨 담는 동안 숨을 돌릴 수 있어 피로를 덜었습니다. 저희들보다 30분 늦게 희운각을 출발한 송백의 한 젊은 분이 일행 4명이 뒤따라온다는 소식을 전하고 얼마 안 있어 휭 하니 앞서 갔습니다.
12시35분 나한봉에 다다르자 어느 정도 안심됐습니다.
나한봉 또한 몇 번이나 고개를 오르내려 다다를 수 있는 곳이어서 마지막 남은 진을 다 빼고 나서야 지날 수 있었는데 중간 중간에 가야동 계곡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한자리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했습니다. 마등령에서 희운각으로 향하는 몇 분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제 철이면 인파에 밀려 시간깨나 잡아먹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로프를 붙잡고 내려서서도 된비알의 고바위 길을 한 두 차례 더 지나서 나한봉에 다다랐습니다. 나한봉을 넘어서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너덜겅을 조심해서 지나느라 또 시간을 까먹고 나자 산악회 집행진의 뛰어난 판단에 힘입어 지난 10월에 미시령-황철봉-마등령구간의 길고 긴 너덜지대를 통과했기를 망정이지 이번처럼 눈이 싸인 한 겨울에 지났다면 위험하고 산행이 더뎌 엄청 고생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시56분 희운각 출발 4시간26분 만에 해발1,245미터의 마등령에 도착했습니다.
왼쪽으로 난 길이 지난 10월에 내려섰던 오세암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직진하면 황철봉으로 가는 마등령 삼거리 안부에 서있는 돌탑이 접수한 산객들의 주 소원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나무오리가 자리를 튼 돌탑 밑에서 본부에 마등령에 안착했음을 보고하고 따끈한 커피로 몸을 덥힌 후 8분간의 쉼을 끝내고 3.7키로 남은 비선대로 향했습니다. 몇 분 후 오른 전망대에서 급경사 길로 내려서자 살 속을 파고드는 바람을 피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는데 얼마 후 이보다 몇 배 더한 골바람이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선대에 내려서자 그동안 잠재웠던 하이맛의 성화가 되살아나 설악동주차장까지도 편한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배불뚝이 살찐 뱁새가 키다리 황새를 따라잡는 방법은 황새가 걷는 동안 뛰는 길 밖에 없기에 저항령계곡의 합수점을 건너고 신흥사를 지나 주차장에 다다르기 까지 걸으면서 뛰어야만 했습니다. 한계령에서 희운각까지의 오버페이스로 공룡능선을 정말 힘들게 종주했다는 하이맛의 진단이 그르지 않다면 저는 그의 오버페이스를 가져온 잘못된 판단에 고마워해야 했습니다. 그의 명석한 두뇌가 글 쓰듯이 제대로 작동되어 희운각까지 제 속도로 왔다면, 그리고 공룡능선을 후딱 끝내고 홀라당 비선대로 내려갔다면 된똥을 되게 싸며 따라갔던지 아니면 결별의 수순을 밟았어야 했는데 어디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총기가 흐려져 때 맞춰 오버페이스를 해주었기에 그나마 제 두 다리가 온전할 수 있어 크나 큰 다행이었습니다.
16시15분 설악동 주차장에 도착해 14시간이 넘는 길고 먼 종주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저희들의 늦은 산행으로 출발하지 못하고 버스에서 장시간 기다린 분들에 죄송했습니다. 떡국을 배불리 먹고 난 후 들꽃님에 단골 후미멤버들의 행방을 물어 천불동으로 먼저 내려와서 앞차로 먼저 떠났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번 종주성적이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라고 자위했습니다. 하이맛 친구가 한계령-대청봉-마등령-설악동 종주시간을 보다 짧게 추정토록 해 결과적으로 심대한 오류를 가져오게한 자료를 저도 일부 제공했고, 더 빠른 시간에 설악동에 도착할 수 있겠다고 큰소리친 잘못이 제게도 있기에 버스에서 마냥 기다린 분들에 정말 죄송했습니다. 그의 논문 작성에 공동작성자로도 등재되지 않은 제가 이 정도로 죄송해한다면 북치고 장구를 쳐 독자를 무리하게 끌어들이고 혹세무민한 하이맛 이 친구는 석고대죄를 해야 마땅하고 그리한다 해도 송백산악회에서는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다시는 무책임한 논문 아닌 잡문이 송백논단에 등재되는 일이 없도록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송백산악회에서 조사위원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이 올 것 같아 더 이상 강력한 성토는 삼갈 뜻입니다.) 저희들을 뒤이어 공룡능선을
2006년 첫 산행으로 최고의 험지중의 하나인 공룡능선을 종주했음은 오래 새기고자 합니다. 카페에서 댓글로만 인사를 나누었던 방울할비님과 평화님의 얼굴을 뵈었고 모처럼 오랜 지기와 함께 산행하며 성공적으로 마친 한계령-대청봉-마등령구간의 백두대간 종주가 2006년 들어 첫 산행임을 기록하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종주한 일행 분들의 아름다운 산행이야기를 요약하면 이름그대로 끝까지 빠짐없이 전 구간을 밟느라 진이 빠진 여성한분을 동행한 남자대원 두 분이 헌신적으로 모시고 내려오느라 늦었다는 미담인데 이분 들 모두 고생하셨고 따뜻한 봄날 따로 만나 막걸리라도 나누며 어제의 공룡능선 종주를 반추하면 힘들었던 기억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산행사진>
설악산(2)
*산행일자:2005. 10. 16일
*소재지 :강원속초/인제
*산높이 :황철봉1,397미터
*산행코스:미시령-황철봉-저항령-마등령-오세암-백담사
*산행시간:2시13분-13시30분(11시간17분)
*동행 :송백산악회
어제는 산행을 마치고 서울로 귀경하면서 순조롭게 자리물림을 하는 자연의 섭리에 대해 저 나름대로 성찰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벽녘 산행 중 때마침 보름을 하루 앞둔 거의 꽉 찬 둥그런 달의 조촐한 달넘이에 뒤이어 속초 앞바다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화려한 해돋이를 지켜보며 밤과 낮의 소리 없는 자리바꿈을 읽었습니다. 요 몇 주 동안 많은 산객들의 발걸음을 설악으로 돌리게 한 가을단풍 또한 한 여름을 지배해온 초록의 클로로필이 가을을 상징하는 붉은 색의 안토시아닌과 노랑색의 크산토필에 자리를 물려준 결과이기에 이 또한 때가 되면 물러서고 들어서는 계절의 적절한 변화 시기를 헤아릴 줄 아는 자연의 로고스 덕분이라 여겨졌습니다. 산행을 끝내고 백담사에서 2시간 여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새치기를 시도하는 뭇 군상들을 지켜보며 들고 나는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 이 아수라장의 세상은 자연과 분명하게 대비됨을 보았습니다.
잠실을 출발해 4시간 여 밤을 달린 버스가 새벽 2시10분 경 해발 767미터의 미시령에 도착했습니다. 작년 9월 덕유산 삿갓재에서 헤아렸던 초롱초롱한 별들의 무리를 어제 새벽 다시 만났으며 그중 매일 한번씩 북극성을 중심으로 그 주위를 돌고 있는 북두칠성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8백년 전 별나라 소식을 전해준 북극성 별빛이 어제는 북새통의 이 세상소식을 듬뿍 실고 미시령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저도 마등령-황철봉-미시령 구간을 역순으로 종주하고자 서둘러 미시령을 떠났습니다.
새벽2시13분 밤을 뚫으며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버스4대의 대 군단이 일렬로 대오를 이루는데 7-8분이 걸려 2시21분에야 철조망을 넘어 본격적인 산행 길에 들어섰습니다. 4-5분 후 정상적인 등로에 합류한 후 반시간 남짓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재작년 연초부터 금년 말까지 만3년 간 자연휴식년에 들어 간 미시령-마등령 전 구간을 관계당국에서 입산을 금하고 있어 별 수 없이 대간꾼들은 밤을 도와 정식 등로에서 조금 벗어난 곳의 개구멍바지를 통과해 대간 길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2시57분 1,000미터 대의 무명봉에 세워진 삼각점을 확인했습니다.
미시령에서 무명봉에 이르기 까지 달과 별들이 어우러져 헤드랜턴의 길 밝힘을 도와주었습니다. 앞사람을 놓칠세라 쉬지 않고 올라서인지 오른 쪽의 창암계곡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도 등의 땀을 식혀주지 못했고 아직 너덜지대를 만나지 않아 편안한 산 오름이었는데도 발을 잘못 내딛어 사고라도 날까보아 신경을 쓰느라 모처럼 만에 밤하늘에 펼쳐진 별 잔치를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2000년 8월 일본의 고산 다테야마를 올랐을 때 바로 밑에 자리 잡은 해발 2,400미터대의 초원 무로도를 “별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라는 컨셉으로 관광객을 부르는 광고전단을 보았습니다. 고산에서 하늘을 수놓는 깨끗하고 산뜻한 수많은 별들 중 자기별을 찾아보는 재미도 솔깃할 터인데 어제는 빽빽한 일정으로 그리하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드디어 너덜길이 시작됐습니다.
기계적 풍화작용의 결과로 산사면 방향으로 흘러간 돌덩어리 암괴가 무수히 널리 퍼진 너덜지대를 이루는 암괴류(block stream)는 3-4백만 년 전인 신생대의 고온다습한 간빙기에 화강암질의 암류가 심층풍화작용을 활발히 받은 결과 다량의 핵석이 만들어졌고, 이 핵석이 후빙기로 접어들면서 많은 비를 내린 기후변화로 인해 하부로 이동되어 만들어졌다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크고 작은 너덜지대 6개를 지나야 구간종주를 마칠 수 있다하니 이번 대간 종주는 너덜길을 얼마나 안전하게 지나느냐가 관건일 듯싶었습니다. 지난여름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여성 산객 한분이 안개가 가득한 이 너덜지대를 지나면서 환상산행에 빠져 엄청 고생을 했다는 산행기를 보고 비가 오거나 어두워지면 절대로 너덜지대를 지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어제는 개구멍바지를 들키지 않고 통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밤 시간을 택했습니다.
너덜바위에 부딪혀 깨지고 까진 산객들이 부지기수라서 저라고 성한 몸으로 온전하게 통과하리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용케도 구멍에 빠져 허우적대지는 않았지만 발을 제대로 옮기는 데만 신경을 쓰다가 머리로 바위를 치받아 그 충격으로 이빨이 부러지는지 알았습니다.
4시3분 급경사의 너덜길을 올라 다다른 1318봉에서 짐을 내려놓고 이제껏 발끝만 쳐다보았던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별들에 눈길을 주었습니다. 오염된 도시에서 쫓겨나 산위에 자리 잡은 별들을 찾아와 눈길을 준 제게 별들이 함박꽃 웃음으로 답례하는 듯했습니다. 드세진 바람으로 등골이 써늘해져 이내 짐을 챙겨 황철봉으로 향했습니다. 너덜지대를 벗어나 숲길을 지나며 나뭇잎사이를 헤집고 들어와 길을 밝혀주는 꽉 차 보이는 달이 고맙고 다정다감하게 느껴졌습니다.
4시47분 해발 1,391미터의 고봉이 황철봉 임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1318봉에서 황철봉까지는 경사가 완만해 밤길이라도 걸을 만 했습니다. 낮 시간의 산행이라면 산행기를 제대로 쓰기 위해 산세와 생물들의 몸짓을 묘사할 수 있는 의태어를 많이 아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어제처럼 밤을 도와 산행을 할 때에는 조용한 밤에 나는 다양한 소리를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의성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황철봉에서 전망바위로 옮기면서 처음으로 달넘이를 보았습니다. 저녁시간 해넘이처럼 그 주위를 온통 붉게 물들이지는 못했지만 해맑은 달이 제 몸 하나는 분명하게 붉게 물들여 장엄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5시2분 삼각점이 설치된 전망바위에 올랐다 바로 우측으로 하산하며 너덜지대로 들어선 것이 이번 산행 최대의 알바를 빚은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거의 똑바로 내려서면 저항령에 내려서게 되는데 너덜지대에서 집단으로 길을 잃어 원 위치해 제 길로 들어서느라 한참을 헤맸습니다. 블루베리님과 후미를 이루어 천천히 저항령으로 내려서느라 일행들과 한참 멀어진 것 같았습니다.
6시17분 너덜길이 시작되는 3부 능선쯤에서 아침을 들며 해돋이를 보았습니다.
속초 앞바다를 붉게 물들인 후 바다를 차고 올라서는 해돋이는 시간반전 보았던 달넘이에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화려하고 장대해 마치 이임식과 취임식을 차이를 보는 듯 했습니다. 달넘이와 해돋이를 동시에 본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습니다. 보름 즈음의 날이 좋은 날 무박으로 동해안의 고산을 산행해야 얻을 수 있는 행운이었기에 이 행운을 잡은 기쁨을 후미길동무인 블루님과 함께 했습니다. 다시 고바위의 너덜 길을 오르는 고행이 반시간 가량 이어졌습니다. 오늘의 길손들을 맞고자 수백만 년 전부터 갈고 닦아온 너덜 길의 바위들에 힘들더라도 따뜻한 눈길을 주어 그 노고에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 7시2분 반시간가량 너덜 길을 올라 다다른 전망처에서 내려다 본 저항령계곡에는 예의 이 시간에 쉽게 볼 수 있는 운무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아 가을 산속의 현란한 아침 정경을 마음껏 탐닉했습니다. 1250봉의 거대한 암봉을 오른쪽으로 옆 질러 다시 능선에 올라선 다음 아침을 들고 있는 산행대장 한분과 일행 몇 분들을 앞질러 후미를 벗어났습니다.
8시43분 먼발치로 울산바위가 눈에 잡히는 전망바위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마등령 전위봉인 1327봉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에서 1327봉 직전의 너덜지대까지는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지만 비교적 무난한 대간 길이어서 산행 중 블루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능선에서 단풍들을 바짝 다가서서 관찰하면 벌써 칙칙해져 실망하게 됩니다. 건너편의 산들은 단풍이 아름답게 들었는데 지금 걷고 있는 이 산의 단풍이 그리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얼마고 떨어져서 관조하는 여유가 있어야 세상사가 즐거울 수 있다는데 뜻을 같이 했습니다. 나무보다는 숲이, 또 산봉우리들을 모두 잇는 산줄기들의 실루엣이 언제 보아도 믿음직스럽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관찰의 눈이 아닌 관조의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눈의 여유가 공백을 만들고 이 공백을 채우는 것이 문학과 예술이 할 일임을 산행 중 대화를 통해 배웠습니다.
9시22분 1327봉에 오르느라 마지막 너덜 길을 올랐습니다.
이 너덜지대는 이제껏 밟아 온 것보다 바위들이 잔 것으로 보아 더 오랜 세월 갈고 닦여졌다 생각하니 더 깊은 정이 느껴졌습니다. 1327봉에 오르자 설악의 험난함을 상징하는 공룡능선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뒤를 돌아보며 지금까지 밟아 온 황철봉에서 여기 1327봉까지 연봉들을 이어보자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다양함이 느껴졌습니다.
9시33분 설악동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의 마등령에 도착, 도상거리 10.7키로의 마등령-미시령 구간의 대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공룡능선과 설악골의 비경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마등령에서 오세암까지 하산로는 내리받이 길이었습니다.
고도를 낮출수록 막 들기 시작한 단풍이 한층 깨끗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만해 한용운 스님이 조용히 생각을 키우며 오르내렸을 한적한 이 길이 어제는 단풍세레머니를 즐기고자 찾은 산객들로 붐볐습니다. 남쪽 끝에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귀때기청봉에서 대청까지의 서북주능이 오르기는 힘들어도 보기에는 아주 젊잖아 보였습니다.
10시40분 다섯 살 난 신동이 성불했다 해서 이름 붙여진 오세암에서 일행 몇 분들과 함께 떡과 과일을 들어 요기를 했습니다. 여러 채의 건물이 들어선 오세암은 결혼 한해 전에 함께 찾은 29년 전의 고즈넉한 산사가 아니었기에 그 때처럼 집사람이 살아서 되돌아온다 해도 이 암자에서 손을 잡고 영원한 사랑을 되 뇌이지는 못할 것 같았습니다. 오세암만 세속화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12시20분에 지난 영시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두 암자의 세속화가 이러할 진데 백담사라고 옛 그대로일 수 없음이 자명할 것이기에 더 이상 집사람의 자취를 찾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3시30분 백담사에 도착해 11시간 남짓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2시간 여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나이 든 분들이 자행하는 부끄러운 짓거리를 보면서 아직도 학교에서 공중도덕심을 높이기 위한 교육이 제대로 행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내려선 내설악에는 이 가을의 마지막 제전인 단풍이 무르익기 시작했습니다.
나뭇가지 가지마다 힘들었던 여름을 담아내느라 피멍이 들은 단풍잎의 처절한 아름다움이 뿜어내는 색은 당연 붉은 색입니다. 모처럼 오랜 시간 산행을 하느라 고생한 분들에 사랑은 기쁘던가 아프던가 물어오며 중년 들어 간장이 저려오는 아픔이어든 가을날 울음 빛 단풍에 젖어들라고 노래한 시인 박재삼 님의 시선 “산에서”를 올려드리며 너덜 길의 산행기를 맺고자 합니다.
산에서
그 곡절 많은 사랑은
기쁘던가 아프던가
젊어 한창 때
그냥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기쁨이어든
여름날 헐떡이는 녹음에 묻혀들고
연중들어 간장이 저려오는 아픔이어든
가을날 울음빛 단풍에 젖어들거라.
진실로 산이 겪는 사철속에
아른히 어린 우리 한 평생
그가 다스리는 시냇물도
여름엔 시원하고
가을엔 시려오느니
사랑을 기쁘다고만 할 것이냐
아니면 아프다고만 할 것이냐
<산행사진>
설악산 (1)
*산행일자:2004.9.26일 *동행 :덕유산악회
어제는 우리나라 최고의 악산인 설악산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16-17일 덕유산을 종주하느라 여름휴가를 보낸 제게는 추석연휴가 놓칠 수 없는 산 나들이의 호기이기에 어느 산을 어떤 코스로 오를까 벌써부터 행복한 고심을 해왔습니다. 이제껏 가보지 않은 새 산을 골라 오를까, 아니면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고산을 다시 올라 볼까 골몰히 생각하다가 설악산을 오르기로 하고 내년에 시작할 백두대간 종주를 저 혼자서 할 수 있나를 점검하기 위해 한계령에서 마등령까지의 구간을 뛰어 보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대청봉-마등령의 공룡능선이 백두대간에서 가장 오르내리기가 힘들다는 코스중의 하나이기에 이 코스를 뛰어 제 체력을 테스트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동안 대청봉을 세 번 올랐습니다.
어제 새벽 2시 4분 한계령에서 설악산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3시25분 해발 1,200미터대의 출발 2키로 지점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3시 41분 서북주능에 올랐습니다.
4시 45분 한계령에서 4.1키로를 걸어 다다른 지점에서 짐을 풀고 목을 추겼습니다.
5시57분 해발 1,604미터의 끝청에 올라섰습니다.
6시55분 한계령에서 8.3키로를 걸어 설악산의 정상인 해발 1,708미터의 대청봉에 올랐습니다. 대청봉에서 내려다 본 설악의 연봉들이 말없이 그 자리를 지켜와 28년만에 다시 찾은 저를 반갑게 맞이해준다고 생각하니 절로 고마움이 느껴졌습니다. 이 이른 아침에도 서둘러 설악에 오른 수많은 분들로 정상인 대청봉은 여전히 붐볐습니다. 정상주위의 평원에 자생하는 눈잣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제 눈을 끌었습니다. 시베리아와 같은 추운 지역에서 자란다는 눈잣나무는 하도 키가 작아 땅바닥을 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시인 김수영님의 "풀"의 끈질긴 생명을 그대로 닮았다 해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기에는 가지가 옆으로 퍼져 쉽지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의 표지석은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어하는 분들이 선점하여 별 수없이 조금 내려와 대청봉을 알려주는 표지목에 배낭을 놓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바람이 몰고 온 구름이 시야를 가리기 시작해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8시20분 해발 1,050미터의 희운각에 내려섰습니다.
9시 10분 희운각에서 1.1키로를 걸어 올라 신선봉에 다다랐습니다.
지난 2월 대학산악부의 선후배들과 함께 동계훈련차 설악에 들어와 공룡능선을 오르내린 승진이가 생각났습니다. 제게 아버님이라 부르며 따라준 녀석은 2년전 키나바루산을 가이드 해준 유수대학의 산악부출신의 재원으로 그 후 한북정맥의 몇 봉우리를 함께 올랐습니다. 지난 5월 미국으로 건너간 녀석이 몇일 전 9월30일에 결혼을 한다는 메일을 보내왔는데 딸자식으로 여겨온 녀석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축하할 수밖에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11시4분 1275봉 바로 밑의 안부에서 숨을 골랐습니다.
12시48분 공룡능선 마지막봉인 나한봉에서 또다시 짐을 풀었습니다.
13시12분 너덜지대를 조심스럽게 통과하여 얼마후 해발 1,240미터의 마등령에 도착했습니다. 희운각을 출발한지 4시간 32분만에 마등령에 다다라 5.1키로의 공룡능선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마등령에서 쉬지 않고 3.7키로 남은 비선대로 바로 하산했습니다. 황철봉을 거쳐 미시령까지 뛰어야 설악산을 종주했다고 말할 수 있을 터인데 체력도 달리고 시간도 없어 아쉽지만 이번 산행에서는 공룡능선을 무사히 마친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14시9분 비선대를 2.5키로 남겨 놓은 지점에서 덕유산악회의 가이드분에 제 위치를 알려주고 먼저 떠나라고 했는데 기다릴 터이니 서둘러 하산하라는 답을 해와 고마웠습니다. 남아 있는 모든 힘을 두발에 모아 뛰었습니다만 이미 12시간을 걸어 힘이 많이 빠졌기에 생각만큼 속도가 붙지 않았습니다. 계곡을 채웠던 구름이 때때로 자리를 비켜주어 천불동의 비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만 서둘러 하산하느라 사진을 찍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15시40분 비선대에 다다라 산악회에 전화를 걸어 먼저 떠나라고 재차 당부했습니다.
비선대에서 1키로가량 걸어와 물가로 내려섰습니다.
16시 45분 설악동의 노루목에 세워진 먼저간 산악인을 기리는 묘비를 들러 보았습니다. 그들의 열정적인 산사랑이 씨가 되어 오늘의 산악문화를 일구어 냈다는 제 생각입니다. 양적으로는 산악운동의 대중화가 거의 이루어 졌다고 생각되기에 질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살아있는 산사람들이 뒤이을 일입니다.
건각의 산꾼들이 12시간에 마친다는 길을 14시간 반에 끝내고서도 기쁨이 충만한 것은 별러왔던 공룡능선을 무사히 마쳤다는 자부심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설악산의 종주를 마치고 나서 백두대간을 저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아름다운 이 강산에서 태어나 뿌리를 내리고 살다가 언제인가 다시 돌아갈 제가 이 산하에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존경은 바로 이 산하를 찾아가 이 산하의 고마움을 직접 가슴으로 느끼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내년에 백두대간을 종주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자 합니다.
이번 종주로 설악의 속살들을 샅샅이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8부능선에 머무르고 있는 단풍도 절정에 이르기까지는 한 열흘 걸릴 것 같아 아직은 시작단계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지리나 덕유보다 바위가 승하다보니 산행 중 야생화도 그리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땀흘려 공룡능선을 오르내리면서 가야동 계곡의 숨겨진 비경을 카메라에 담고나자 삶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저도 모르게 흥분되었습니다.
저녁 6시 속초에서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바다가 시원해 보였고 황금색의 벼들이 가득 찬 논뜰에서 가을이 익어감을 보았습니다. 설악으로 산나들이를 다녀와 되찾은 에너지로 더욱 더 열심히 일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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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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