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병산
*산행일자:2006. 11. 12일
*소재지 :충북 보은
*산높이 :877미터
*산행코스:서원리-칼바위능선-구병산-853봉-토골사지터-적암리휴게소
*산행시간:10시32분-17시2분(6시간30분)
옛 조상들에는 산봉우리를 받쳐주는 절애의 암벽이 병풍처럼 보였던 것 같습니다.
어제 오른 충북 보은의 구병산도 아홉 개의 암봉이 마치 병풍을 두른 것 같다하여 그 같은 이름을 얻었다합니다. 경기도 파주의 제 고향에도 그런 산이 있습니다. 이조의 영조 임금께서는 생모 최 숙빈의 묘지인 소령원을 자주 찾으셨습니다. 뒷산 고개 마루에 올라서서 정북 방향의 높은 산을 보시고 그 산 이름을 물은 즉, 한 신하가 산 모습이 세찬 바람에 나뭇잎이 다 떨어져 벌거벗은 나무들과 같다하여 풍락산으로 불린다고 답을 올리자 금으로 병풍을 친 형상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금병산으로 고쳐 부르라고 명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생긴 모양이 흡사하다 하여 한 자리에서 붙박이로 산봉우리만을 떠받치고 있는 암벽을, 접었다 펼 수 있도록 만들어 보관과 운반을 용이하게 한 병풍에 비유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비유 속에는 암벽처럼 장대하고 튼튼한 병풍을 얻어 영원을 추구하겠다는 속내가 숨어 있음이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어제는 속리산의 장대한 산줄기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충북알프스의 명산 구병산을 올랐습니다.
그제 한남금북정맥 종주를 매듭짓느라 갈목재를 출발하여 속리산 천황봉을 오르면서 남쪽에 위치한 구병산 산줄기를 눈여겨보아서인지 어제 처음 오른 이 산이 그리 낯설지 않았습니다. 증평I.C에서 중부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증평을 거쳐 정이품송이 서있는 곳까지 갔다가 되돌아서 505번 지방도로를 따라 갈목재 넘고 터널을 지나 이번 산행의 출발지인 보은군 외속리면의 서원리에 도착했습니다. 차창 밖에 펼쳐진 늦가을의 텅 빈 논밭 정경이 이날따라 빈자리가 많이 난 버스 안처럼 허전하고 쓸쓸해 보였습니다. 한남금북정맥 종주를 입산금지기간 전에 마치고자 이 산악회의 정기산행을 다섯 주나 거른 터라 그동안 뵙지 못한 산님들을 이번 산행 중 만나 뵙게 되면 엄청 반가우리라 기대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나오시지 않아 섭섭하고 아쉬웠습니다.
아침10시32분 서원리 고시마을에서 하차하여 서원교를 건넜습니다.
화장실 바로 옆에 세워진 충북알프스 안내판이 이번 산행의 들머리였습니다. 나무계단을 10분 가까이 오른 후에도 직등 길은 계속되어 묘지 2곳과 바위 길을 올라 서원리1.1Km, 구병산 7.1Km의 첫 번째 이정표가 서있는 돌무더기의 무명봉에 올라서는데 40분이 걸렸습니다. 직등 길을 오르는 동안 콧잔등에 땀이 방울방울 맺힐 정도로 힘들었지만 구름 한점 없는 높은 하늘에 쾌청한 늦가을 날씨 덕분에 북쪽 정면으로 거대한 암벽이 받쳐주고 있는 전날 오른 속리산 천황봉이 아주 가깝게 보여 반가웠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동진을 계속했습니다. 밑에서 받쳐주는 몸체는 튼실한 바위지만 풍화작용이 진행 중이어서 나무들이 자라날 수 없는 굵은 모래가 표토를 이루고 있는 능선 길이 527봉에 이르기까지 7-8분여 계속되었는데 대체로 나무가 없는 날 등 길이어서 햇살이 더욱 따사롭게 느껴졌습니다.
11시30분 오른쪽으로 봉비리로 갈리는 무명봉 삼거리에 올라섰습니다.
527봉에서 두 번째 이정표가 서 있는 봉비리 갈림길까지 동진하는 능선 길 왼쪽 아래로는 아침에 넘어온 터널 속으로 이어지는 505번 지방도가 나란히 지났습니다. 우측사면이 천길 낭떠러지인 암릉길을 오르내려 다다른 봉비리갈림길 구릉삼거리에서 잠시 목을 축이며 쉬었습니다. 세 번째 이정표가 서 있는 안도리 갈림길의 무명봉에 이르는 길에 칼날 능선을 지났습니다. 암릉 길의 오르내림이 심한 정도나 규모 면에서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지만 바윗길의 날카로움은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훨씬 뛰어넘어 짧은 거리의 칼바위 능선을 지나기가 아찔했습니다.
12시38분 네 번째 이정표가 서있는 665봉(?)에 다다랐습니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안도리로 갈리는 무명봉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한참을 내려섰다가 다시 암봉으로 올라서는 길에 만난 바위표면을 덮고 있는 흑갈색의 지의류가 색달라 보여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매소포타미아 문명 때부터 존재가 알려진 지의류는 광합성을 하는 아주 간단한 구조의 식물체인 조류와 곰팡이의 균류가 공생하는 독특한 생명체여서 고대부터 지금까지 살아남았을 정도로 적응력이 강하다 합니다. 서원리에서 구병봉까지 중간지점인 665봉에 올라 정수리에 들어앉은 묘지 옆에서 일행 몇 분들과 함께 점심을 들면서 20분여 푹 쉬었습니다. 머리 위에 남중한 햇살로 등 따시고 점심을 배불리 먹어 잠시 눈을 붙이고 가도 좋을 듯한 평화로운 시간을 얼마 후 깨기가 아쉬웠습니다.
13시2분 4키로 남은 구병산의 정상봉을 오르고자 665봉을 출발했습니다.
급하게 내려섰다가 만난 암봉을 옆 질러 665봉 출발 32분 후에 왼쪽 아래 삼가저수지로 갈리는 753봉(?)에 올라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다시 내려섰다가 또 다른 암봉을 오르며 이 봉우리가 정상봉일 것이라는 기대가 사라진 것은 곧바로 오르지 않고 봉우리를 우회하는 길이 나있어서였습니다. 암봉을 왼쪽으로 에돌면서 바위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너덜 길을 지나서 다시 능선 길을 만나자 한 봉우리 건너로 높이 솟은 구병산 정상이 가까이 보였습니다. 지도상에 명기된 백지미재의 위치를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 찜찜한 터에, 정상에 조금 못 미쳐서 여름에는 냉풍이 겨울에는 훈풍이 솔솔 불어나오는 산속의 에어컨디셔너인 풍혈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울릉도 도동 및 진안 대두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풍혈지인 여기 구병산에서 풍혈의 바람을 담아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사진으로 풀었습니다.
14시35분 해발 877미터의 구병산 고스락에 올라섰습니다.
정상에 오르기까지 저희 산악회회원을 빼고는 아무도 걷지 않는 고즈넉한 이 산이 정상에 오르자 한 산악회의 꽤 많은 분들이 자리 잡고 있어 시끌벅적했습니다. 암봉으로 이루어진 정상은 시야가 탁 트여 전망이 최고여서 서원리에서 시작된 충북 알프스의 산줄기들 전모가 거의 다 눈에 잡혔습니다. 내친 김에 몇 번 더 출산하여 43.9키로의 충북알프스를 종주하겠다는 욕심이 일었습니다. 정상을 배회하는 까마귀들이 사람들의 환호에 보답하듯 상공을 한번 비행한 후 보다 조용한 곳을 찾아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역시 사람들의 목소리가 까마귀의 까옥대는 울음소리를 압도했습니다. 정상석을 안고 사진을 찍는 분들이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아 정상석 촬영을 포기하고 10분간의 휴식을 끝낸 후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15시30분 표지석이 서있는 853봉에 올랐습니다.
한번 정상에 오른 터에 또 다시 정상과 비슷한 높이의 새로운 봉우리를 오르는 것은 이미 다 끝났다는 생각 때문에 심리적으로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첫 번째 안부로 내려서자 오른 쪽으로 하산하는 B코스 표시가 되어 있어 잠시 머뭇거리다 후미의 몇 분들과 함께 다시 맞은 편 봉우리로 향해 예정대로 A코스를 탔습니다. 암봉 한 곳을 왼쪽으로 우회하며 밧줄을 잡고 오른 능선 길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853봉에 오르자 전망이 정상봉 못지않았습니다. 지나온 정상을 카메라에 담은 후 안부로 내려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이곳에서 충북알프스 주능선에서 벗어나 오른 쪽으로 난 절터 길로 내려섰습니다.
16시24분 토골사 절터를 지났습니다.
안부에서 절터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 길이어서 무릎을 보호하고자 속도를 늦추었습니다. 나중에 된비알의 이 길을 올라 안부에서 충북알프스 종주를 이어갈 생각을 하자 벌써부터 걱정됐습니다. 토골사 절터는 초라했습니다. 몇 십 평 밖에 안 되어 보이는 빈터 가장자리에 작은 돌들이 듬성듬성 놓여있어 애당초 토골사가 큰 절이 아니고 말사이거나 암자였던 것으로 생각됐습니다. 물이 말라붙은 바로 아래 약수터는 수질시험성적이 이렇고 저렇다는 안내문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17시2분 25번 국도변의 적암리주차장에 도착해 6시간 반 동안의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몇 달 만에 이 산악회의 정기산행에 참가했다는 한 분과 함께 후미로 쳐져 하산하면서 자식 들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른데다 낙엽이 길을 덮어 자칫 잘못해 엉덩방아를 찧을까 조심하느라 하산 길이 더뎠습니다. 가지만 남은 나무에 주렁주렁 열려있는 감들이 햇살을 듬뿍 머금어 저녁풍광을 한껏 풍요롭게 했습니다. 적암리로 내려서 그동안 밟았던 암봉 들을 되돌아보자 과연 구병산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거지 국에 밥을 말은 한 그릇만으로도 최고의 만찬이었는데 여기에 시원한 맥주 한 캔이 더해졌으니 저로서는 등 따시고 배부른 뒤의 행복감에 도취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관광시즌이 아직 끝나지 않아서인지 중부고속도로가 엄청 막혀 밤10시 반이 다 되어 잠실로 돌아 왔습니다. 산행을 머리 속으로 준비하는 인도아클라이밍(In-door climbing)도 산을 오르는 것만큼 즐겁기에 차가 막히면 종종 인도아클라이밍으로 시간을 죽이곤 했습니다. 눈을 감고 총북알프스 종주계획을 머리에 떠올리며 어제도 버스 안에서 인도아클라이밍으로 긴 시간을 버텨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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