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일자: 2022. 4. 9일(토)-10일(일)
탐방지 : 충남 공주시 공산성/국립공주박물관(4월9일)
세종직할시 금강수목원/산림박물관(4월10일)
동행 : 손자 및 큰아들며느리
제게는 막내아들이 낳은 초교3년생과 큰아들이 낳은 초교1년생 등 손자만 둘이 있습니다. 두 아들 며느리들이 금지옥엽으로 키우고 있는 두 손자들은 조상님들이 내려준 더할 수 없이 소중한 가보(家寶)입니다. 결혼이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 되어버린 이 나라에서 떡두꺼비 같은 손자를 안겨준 두 아들며느리야말로 최고의 효자 효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손녀를 하나씩 더 낳아 기른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자식들이 출가를 안 해 손주바보가 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몇 몇 친구들을 생각하면 손녀 운운 하는 것은 복에 겨워하는 말이다 싶기도 합니다.
제가 두 아들 며느리에게 고마워하는 것은 손자를 낳아 가문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것과 손자들을 건강하고 현명하게 잘 키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문을 이어가는 것은 종족보존처럼 모든 인류의 본능이자 의무라는 생각입니다. 요즘 많이 듣는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도 인류라는 종족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만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자식들이 결혼을 기피해 더 이상 존속이 불가능한 가문이 속출한다면 인류의 존속도 위협받아 지속가능한 성장은 공염불이 될 것입니다. 제가 우리 집 두 아들이 결혼해 자식을 낳은 것이 저희 가문승계와 인류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위대한 역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제가 깜짝 놀라는 것은 제가 어렸을 때보다 두 손자가 몇 백배 똑똑하다는 것입니다. 컴퓨터나 레고 등 가지고 놀며 스스로 터득한 것도 많지만, 엄마 아빠들이 가르쳐 준 것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두 손자의 똑똑함은 또래에 뒤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앞으로 더욱 건강하고 올곧게 커준다면 할아버지로서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큰아들 가족과 함께 제주도를 다녀온 지 어느덧 3년 반이 다 되어갑니다. 손자가 저와 함께 다녀온 제주여행은 겨우 4살 때의 일이어서 지금도 기억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이번에 손자와 함께 떠나는 여행이 의미 있는 것은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이번 여행을 충분히 기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서입니다.
이번에 손자와 함께 둘러본 공주시의 공산성과 세종시의 금강수목원은 금강변에 자리하고 있고, 공주시의 국립공주박물관도 금강에서 그리 멀지 않습니다. 공주의 공산성은 오래 전부터 찾아가보고 싶었던 곳으로 연말 쯤 금강을 따라 걷는 길에 들를 뜻이었는데, 큰아들 며느리가 이번 여행을 주선해 앞당겨 탐방했습니다.
1.공주시 공산성
여행 첫날(4월9)일 찾아간 곳은 공주시내의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공산성입니다. 1992년에서 1996년 사이에 2년 반을 모 회사의 충호남영업부장으로 일하면서 공산성 옆을 수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 때 공산성을 한 번도 들르지 않은 것은 한창 일할 40대여서 역사유적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였습니다. 현직에서 물러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고나서부터 공주는 부여와 더불어 한 번은 꼭 들러야할 탐방지로 생각했습니다.
사적 제12호로 지정된 공산성은 백제가 한성에서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이후 웅진 도성 안에 있었던 왕성입니다. 성 앞의 안내문에 따르면 공산성은 북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해발 120m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쌓은 천연의 요새로, 성벽의 전체 길이는 2,660m에 이릅니다. 토성과 석성이 함께 있었다가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다시 쌓은 이 성은 처음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 초에 공산성으로, 조선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바뀌어 불렸다고 합니다. 이 성은 백제 무왕이 5개월 머물렀고 의자왕이 일시 머물렀는데, 조선 시대에 인조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무른 곳이기도 합니다. 성 안에는 백제시대 추정 왕궁터를 비롯하여 임류각과 연지 등 백제왕궁관련 유적과 4곳의 문지(금서루, 진남루, 공북루, 영동루) 쌍수정, 쌍수정사적비, 명국삼장비, 영은사, 연지 및 만하루 등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공산성은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고 안내문은 적고 있습니다. .
손자와 함께 찾아간 공산성은 크고 견고해 보였습니다. 조선시대에 복원된 서쪽 문루(門樓) 금서루(錦西樓)를 올라가 성 안을 일별한 후 시계방향으로 성 위를 따라 걸었습니다. 왼쪽 아래 유유히 흐르는 금강 위에 놓인 두 곳의 다리 중 제 눈을 끈 것은 철교였습니다. 공주가 커지면서 금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늘어나 나룻배로 다 실어나를 수 없게 되자 나무로 다리를 놓았다 합니다. 이 다리가 홍수로 떠내려가자 나룻배 20-30척을 이어놓은 다음 그 위에 널빤지를 깔아 만든 배다리를 놓았는데, 이 다리도 오래 견디지 못해 튼튼한 다리를 다시 놓아야 했습니다. 1932년 충남도청을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기는 대가로 저 아래 금강철교를 놓았는데, 이 철교는 공주의 관문이 되었습니다. 가파른 계단 길을 올라가 바위 위에 세워진 공산정(公山亭) 앞에 이르자 세종시 쪽에서 흘러내려오는 금강의 강줄기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돌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중 별안간 현기증이 일어나 공북루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평지에 자리한 백제왕궁의중심지와 부속건물지를 둘러보았습니다. 진남루와 영동루는 다음에 다시 와서 둘러보기로 하고 이번 공산성 탐방은 금서루를 통해 공산성을 빠져나는 것으로써 끝마쳤습니다.
공산성은 임진강에서 보았던 고구려의 강안성(江岸城)보다 규모가 훨씬 커 성 안이 왕궁이 들어설 만큼 넓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조선의 도성인 한양도성에는 비할 수 없이 작았는데, 이는 삼국시대에 경기와 충청, 그리고 호남지역 만을 통치한 백제가 한반도 전체를 지배한 조선에 비할 바가 못 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2.국립공주박물관
점심 식사후 손자와 함께 찾아간 공주의 명소는 국립공주박물관입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국립박물관공주분관으로 개관되었다가 1976년에야 비로소 국립공주박물관으로 개칭된 이 박물관은 2004년 오늘의 장소로 신축 이전하여 개관된 후 13년이 지난 2017년에 관람객 6백만명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2층 건물의 국립공주박물관은 1층에 웅진백제실, 웅진백제어린이체험실, 디지털실감영상관 , 기획전시실, 강당 등 주요전시실들이 배치되어 있고, 2층에는 충청남도 역사문화실이 들어 있었습니다.
각자 보고 싶은 곳을 골라 보기로 하고 일단 헤어져 저 혼자서 주 전시실인 웅진백제실을 둘러보았습니다. 무녕왕과 관련된 유물 중 눈에 띄는 전시물은 목관(木棺)과 ‘영혼을 위한 백제의 마지막 신발’이었습니다. 1971년 공주무령왕릉에서 발굴된 무령왕과 왕비의 목관이 일본에서 자생하는 금송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백제와 일본과의 교류는 적지 아니 활발했던 것 같습니다. 무령왕과 왕비의 금동신발은 6세기 초에 만들어진 백제의 마지막 금동신발로 생전에 신은 것은 아니고 사후 시신의 발에 신기기도 하고 주변에 놓기도 했다고 합니다.
2층의 충청남도 역사문화실에서 만나본 인물은 사계(沙溪)김장생(金長生, 1548-1631)선생입니다. 율곡 이이의 문하생인 선생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호조정랑이 되었다가 호남지방에서 군량을 모으라는 명을 받고 잠시 군자감첨정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인조반정 후 서인의 영수격으로 영향력이 누구보다 컸던 선생의 문하에서 송시열, 송준길, 윤순거, 최명길 등 비중 높은 명사들을 즐비하게 배출되었다고 합니다. ‘충청감영과 호서예학’이라는 전시물에 “호서예학은 김장생을 중심으로 학맥을 형성하였으며, 특히 예의 대중화와 실용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조선예학의 표준이 되었다”고 적혀 있듯이 학계에서 선생이 차지하는 위상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제가 선생을 특별히 기억하는 까닭은 선생은 소설 「구운몽」의 저자 김만중의 증조부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별관의 충청권역수장고입니다. 말로만 들어오던 수장고전시실을 직접 보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여러 층의 랙(rack)에 보관된 여러 종의 토기는 유리가 씌워져 있었고 손이 닿을 수 없을 만큼 충분히 떨어져 있어 관람객에 의해 손상될 염려는 전혀 없어보였습니다. 각종 토기들이 무더기(?)로 보관된 수장고를 둘러 보는 것을 마지막으로 국립공주박물관 관람을 마쳤습니다.
3. 세종시 금강수목원
국립공주박물관 관람을 마친 후 세종시로 옮겨 금강수목원 인근의 무인팬션에서 손자와 함께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4월10일 아침9시에 금강 수목원 안으로 들어서자 손주녀석이 신나했습니다. 나무들에서 파릇파릇 잎이 돋아나고, 벚꽃은 이미 만개해 봄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금강수목원의 산책길을 따라 지그자그로 올라가 산 중턱에 자리한 정자에 이르렀습니다. 2층의 팔각정인 창연정(蒼硏亭)에 올라서자 세종시 쪽에서 흘러내려오는 금강이 한눈에 잡혔습니다. 금강의 좌안에 나있는 인도 전용의 소로를 보자 앞으로 이 구간을 지날 때 차도를 피해 금강을 따라 호젓한 길을 걸을 수 있다 싶어 가슴이 뛰었습니다. 벚꽃이 활짝 핀 나뭇가지들이 터널을 이루고 있는 황토 길을 손주 손을 잡고 함께 걷노라니, 함께 나들이를 나서기를 참 잘 했다 싶었습니다.
4. 세종시 산림박물관
금강수목원 산책을 마치고 산림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2층건물의 산림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 나이테가 선명히 보이는 둥근 목판들이 제 눈을 끌었습니다. 아까시나무는 나이테가 선명했지만 서어나무는 그렇지 못해 육안으로 수령(樹齡)을 헤아리기는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한국산림의 생태계 전시물을 일별한 후 지구의 온난화에 관한 전시물을 보았습니다. 지구온난화의 원인으로 인구 증가와 산업화에 따른 화석연료사용 증가로 온실가스가 배출되어 기온이 상승하는 온실효과를 들었고 , 그 영향으로 해수면 상승, 해양생태계 변화, 열대성질병 및 해충 증가, 사막화현상 가속화, 자연재해 발생증가 등을 적시했는데, 조금은 도식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논지라면 온실가스의 주성분인 이산화탄소를 극적으로 줄여야하는데, 그리했다가는 식물들이 광합성을 제대로 하지 못해 푸르른 지구를 사막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어 하는 말입니다. 박물관 한 가운데 뜰에 설치된 우리나라 전도의 조형물은 1대간 1정간 13정맥의 산줄기와 주요 강의 강줄기가 잘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남한 땅의 백두대간과 9정맥을 종주한 저로서는 북한 땅의 산줄기를 보고 가슴이 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북한 땅 백두대간을 마자 종주하겠다는 꿈을 가슴에 안고 박물관을 나와 산본 집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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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와 함께 두 번째 여행을 다녀온 후 느낀 것은 큰아들며느리의 효성에 감사하면서도 한편 돌아가신 부모님께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 두 분을 모시고 한 번도 여행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께서 손자와 함께 할 수 있는 자리도 제대로 마련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두 아들 며느리의 저에 대한 효심이 고마우면서도 부모님들에 부끄러운 것은 제가 두 아들만큼 자식노릇을 제대로 못해서입니다.
아버님은 멀미가 심해 차를 타지 못하셨는데, 이를 핑계로 아예 부모님을 모시고 어디를 여행하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오늘의 저만큼 손자들이 귀여웠을 텐데 함께 지낼 기회를 마련해드리지 못했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할아버지 할머니 모두 돌아가셔서 그분들과 함께 살아본 적이 없어 할아버지가 손주들을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는지를 몰랐습니다. 이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불효이기도 하지만, 자식들에게도 할아버지와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기회를 뺏은 것이다 싶어 깊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화창한 봄날에 고적과 숲을 함께 거닌 아들며느리와 손자에 진정으로 고마워하며 여행기를 맺습니다.
<탐방사진>
1. 공주시 공산성
2. 공주국립박물관
3. 세종시 금강수목원
4.세종시 산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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