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달성보-도동서원-구지동오토캠핑장입구
탐방일자: 2024년11월7일(목)
탐방코스: 달성보-논공꽃단지 –현풍중고교-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달성사업소
-도동서원 -구지하얀가람표지석-구지동오토캠핑장입구
탐방시간: 11시26분-16시45분(5시간19분)
동행 : 나 홀로
캄캄한 밤에 시골길을 혼자서 걸어보면 빛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63년에는 시골집에서 30리가량 떨어진 파주 금촌의 중학교를 다니느라 늦은 가을부터 초봄까지 주중에는 거의 매일 시골의 밤길을 10리 가까이 걸은 적이 있습니다. 혼자서 칠흑같이 깜깜한 밤에 야산을 넘어 시골길을 걷는 것은 당시로는 공포 그 자체였기에 거의 뛰듯이 걸어간 것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본다는 것은 빛이 비쳐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이는 어떤 물체든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하고 나머지를 반사하면서 형체를 드러내기 때문에 빚어지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햇빛이 대기권에 퍼질 때 파장이 짧은 청색 광선은 공기 입자와 충돌해 사방으로 퍼져 멀리까지 가지 못하지만, 파장이 긴 적색 광선은 공기 입자와 충돌하는 비율이 낮아 공기 속을 통과해 멀리까지 갈 수 있다고 합니다. 태양이 남중하는 한낮에는 햇빛이 지구에 도달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지구 대기층의 두께가 저녁에 비해 비교적 짧아 하늘이 푸르게 보입니다만,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는 저녁 무렵에는 태양 빛의 기울기가 작아져 통과해야 하는 대기층이 길어진다고 합니다. 파장이 짧고 산란하는 각도가 작은 파란빛은 대기층을 통과하지 못하고 파장이 길고 산란하는 각도가 큰 빨간빛만이 대기층을 통과합니다. 하늘이 한낮에는 파랗게 보이는데 저녁 시간에 붉게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열흘 전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 낙조의 시간에 보았던 달성보와 이번에 하늘이 새파란 정오 즈음에 본 달성보가 형상은 같았지만 감흥은 같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감흥이 달랐던 것은 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볼 때마다 감흥이 줄어들어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지난번에는 해가 질 무렵 적색광의 석양에 조사되는 달성보를 보았는데 이번에는 한낮에 머리 위로 남중한 백색광의 태양광선이 내리쬐는 달성보를 보아서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열흘 전에는 석양에 조사되는 낙동강의 잔잔한 물결이 평안함을 안겨주었는데, 이번에 한낮에 찾아가 만나본 달성보의 강물 방류가 꽤나 힘차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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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역에서 지하철1호선으로 갈아타 설화명곡역에서 하차했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까워 택시를 타고 지난번에 낙동강 탐방을 마친 달성보로 이동했습니다.
11시26분 달성보를 출발했습니다. 달성보 아래 달성노을공원을 지나 강변 숲을 지나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들이 엄청 크게 들렸습니다. 새들도 겨울잠을 자나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드는 것은 여름에 산에 가면 쉽게 들을 수 있는 새소리가 겨울에는 들어본 일이 거의 없어서입니다. 한낮의 기온이 섭씨 20도로 떨어져 걷기에 딱 좋았지만 강변 숲의 나무들은 여전히 푸르렀고 아직도 봄 여름에 피는 꽃들이 눈에 띄어 이러다가 이 땅에서 가을이 실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도 되었습니다. 길옆 의자에 앉아 점심을 든 후 걷기를 계속해 논공꽃단지에 이르렀습니다. 두 해전 임진강댑싸리공원에서 보았던 붉은 색의 댑싸리와 주홍색의 백일홍, 노랑색의 해바라기들이 활짝 핀 꽃단지를 둘러본 후 레스토랑 강변정을 지나자 자전거도로는 다시 강변 숲사이로 이어졌습니다. 대나무숲을 거쳐 경북고령군개진면과 대구시달성군현풍읍을 이어주는 박석진교를 교각 아래로 지나 다다른 카페 노엘의 뒤뜰에서 조망이 빼어난 강변 풍광과 저 멀리 보이는 중부내륙낙동대교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3시12분 현풍중 ⸱ 고교를 지났습니다. 카페 노엘에서 비슬로를 따라 걸어 현풍읍내 시가지로 향했습니다.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현풍교차로를 지나 직진하자 현풍중 ⸱ 고등학교가 보였습니다. 이 학교를 지나 현풍3교 다리를 건넌 후 오른쪽으로 꺾어 현풍천 좌안의 낙동강자전거길로 들어섰습니다. 10년 가까이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던 여기 현풍고 출신의 한 지기(知己)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습니다. 현풍천이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합류점을 지나 길 건너로 대구공공시설관리공단달성사업소가 보이는 곳에서 조금 더 걸어 원오교를 지나 뒤를 돌아보자 박석진교와 그 아래 낙동강의 풍광이 참으로 수려해 보였습니다. 길가의 진노란 꽃송이가 청초하면서도 소담스러운 들국화를 보고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소설가 정비석 선생의 수필 『들국화』가 생각났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는 들판이나 산속에서 피는 들국화가 선생한테서 사랑받은 것은 잡초 사이에서 찬 이슬을 흠뻑 머금고 피어 있는 자태가 그윽하고 기품이 있어 보여서였습니다.
15시10분 도동서원에 도착했습니다. 원오교를 지나 낙동강좌안의 곧게 뻗은 제방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자 해발1,084m의 비슬산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16년 전인 2008년 4월에 대구의 참사랑산악회원들과 함께 현풍의 비슬산과 대구의 앞산을 연계해 종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만 60세로 체력이 달리지 않아 장장 9시간을 넘겨 걸어 산행을 마쳤는데, 이제는 주력과 지구력이 모두 저하되어 6시간 이상 걸리는 종주산행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제방 길이 끝나고 낙동강자전거길은 도동터널로 이어져 강을 따라 걸으면서는 처음으로 터널길을 지났습니다. 오가는 차들로 엄청 시끄러운 전장 340m의 도동터널을 지나 내려선 곳은 도동서원(道東書院)입니다.
도동서원은 1605년(선조 38) 지방 유림들이 뜻을 모아 조선 전기의 문신인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입니다. 이 서원이 ‘道東’이라고 사액(賜額)된 것은 1607년의 일이고,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를 추가로 배향한 것은 1678년의 일입니다. 뒤로는 대니산이 자리하고, 앞에는 낙동강이 조망되어 풍광이 빼어난 도동서원은 1867년에 내려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아 있는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5년 전인 2019년에 도산서원 등 다른 8곳의 서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2층 누각의 수월루(水月樓)를 거쳐 중정당으로 들어서자 하얀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마루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젊은이들은 이 서원에 얼마간 머무르며 유교를 채험을 통해 학습하고 있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서원 안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가 한강 정구가 이 서원의 중건을 기념해 심은 것으로 알려진 노랗게 단풍이 든 수령 약 4백년의 노거수 은행나무를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16시45분 구지오토캠핑장에 도착해 제27회 낙동강 따라 걷기를 마쳤습니다. 이번 탐방의 끝점인 구지오토캠핑장까지 남은 거리는 약5.2Km로 부지런히 걸으면 저녁 5시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서둘러 도동서원을 출발했습니다. 강 건너 고령 쪽에 층리가 선명한 하식애(河蝕崖)가 절경을 이루고 있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곳에 하식애가 발달한 것은 낙동강이 이 부근에서 왼쪽으로 크게 휘돌아 흐르면서 오랜 세월 바깥쪽 강안(江岸)을 서서히 침식해온 결과라 하겠습니다. 차도를 따라 걸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하얀 조형물 ⌜구지하얀가람⌟이 서 있는 제방길로 올라섰습니다. 시계 반대쪽으로 크게 반원을 그리며 남쪽으로 이어지는 제방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대구교육낙동강수련원을 향해 달리는 학생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제방 안쪽의 들판은 마늘과 단무지들로 여전히 푸르렀고, 제방 바깥쪽 강변은 넓게 자리한 갈대들이 넘실거려 안쪽과 바깥쪽이 대비되었습니다. 강변 길을 걸으며 감탄한 것은 갈대의 색변화였습니다. 16시 즈음의 어느 한 순간은 흰 눈이 내린 것으로 착각할 만큼 갈대밭이 하얗게 보였는데, 얼마 후 다시 본 갈대밭은 흰색은 사라지고 살짝 주황색으로 바뀌었습니다. 구지오토캠핑장에 도착하자 차를 몰고 와 야영을 하는 젊은이들이 보였습니다.
구지오토캠핑장 입구 삼거리에서 택시를 불러 현풍공영버스터미널로 향했습니다. 17시40분에 현풍을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대구서부정류장으로 이동한 다음 대구역으로 옮겨 19시42분발 수원행 열차로 귀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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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길을 따라 걸으며 밤길을 걸은 일은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길을 잘못 들어 늦어지는 바람에 밤에 길을 걸은 적은 있었는데, 그때 걸은 길은 산길이었지 강 길이 아니었습니다. 백두대간이나 9정맥을 종주할 때 야간산행을 하느라 몇 번 밤길을 걸은 적이 있고, 산행이 늦어져 밤길을 걸은 적도 서너 번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밤길 산행은 2005년10월16일 설악산의 미시령을 출발해 황철봉을 올랐다가 저항령으로 내려간 산행입니다. 이 지대가 너덜지대여서 걸을 때는 위험해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쳐다보지 못했지만, 중간에 쉴 때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들을 마음껏 올려다 보았습니다. 그날 밤 난생 처음으로 달무리를 보았습니다. 달 주위에 나타나는 동그란 빛의 띠로, 대기 중에 떠 있는 먼지나 얼음알갱이에 의해 햇빛이 굴절, 반사되기 때문에 생기는 달무리를 난생 처음 보면서 황홀해 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낙동강 강길을 걷는 길에 달 밝은 보름 즈음에 하루를 날 잡아 강변에 숙소를 얻어 밤을 보낼 생각입니다. 강물에 비쳐진 둥근 달을 보고 싶고, 총총히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싶습니다. 별빛이 쏟아지는 강변의 밤 풍경이 어떠할까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탐방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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