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백두대간 종주기

백두대간 종주기42(연칠성령-이기령)

시인마뇽 2007. 1. 3. 11:07
                                                백두대간종주기42


                           
 *대간구간:연칠성령-고적대-갈미봉-이기령

                             *산행일자:2005. 10. 2일

                             *소재지  :삼척시/정선군/동해시

                             *산 높이 :고적대1,354미터/갈미봉1,260미터

                             *산행코스:이기동-이기령-갈미봉-고적대-연칠성령-사원터

                                            -삼화사-주차장

                             *산행시간:11시3분-18시20분(7시17분)   

                             *동행      :송백산악회

 


 

  어제는 바람과 벗하며 대간 길에 내려선 가을을 맞느라 바빴던 하루였습니다.

이기령에서 연칠성령까지 약 8키로의 대간 길을 혹시나 안개가 가릴까보아, 그래서 대간 길을 찾아 나선 이 가을이 안개 속에서 헤매다 그냥 돌아갈까 보아 구름을 하늘 높이 내친 바람이 정말로 고마웠고 덕분에 깊어가는 가을을 한껏 탐닉할 수 있었습니다. 한 달 전 댓재-연칠성령의 대간 길에 짙게 깔린 안개가 두타산과 청옥산을 숨겨놓고 그 속살을 내보이지 않은 것도 어제의 가을 세레머니를 준비하느라 그리했다 싶으니까 짙은 안개로 제대로 본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투정을 부렸던 저의 속 좁음이 새삼 부끄러웠습니다.


  연칠성령-고적대-갈미봉-이기령의 대간 길을 역순으로 밟고자 아침 7시 조금 넘어 잠실을 출발한 송백산악회의 대간종주산행을 고교동창인 이 교수와 처음으로 같이했습니다. 모처럼의 연휴를 즐기고자 집을 나선 행락 차들로 고속도로가 붐벼 11시에야 쌍용양회의 석회석채석장 근처에 자리한 이기동 마을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1978년 쌍용제지에 입사하여 모기업인 쌍용양회의 동해공장을 방문했을 때 두타산에 매장된 석회석의 양이 100년을 캐내고도 남는다는 어느 공장 간부분의 설명을 듣고 놀랜 적이 있었습니다.  석회암은 조개나 산호와 같은 석회질 물질이 잘게 부서진 후 먼 바다에서 퇴적되어 굳어진 것으로 따뜻한 바다에서 주로 형성된 암석인데 이 암석이 두타산을 이루고 있다함은 동해안이 융기해 어제 밟은 대간 길을 만들었음을 입증하는 산 증거라 하겠습니다. 지질시대에 생성된 석회암을 오늘에 되살려 시멘트회사를 만들고 제가 그 회사 계열사에서 18년간 일하면서 아들 둘을 학교에 보냈기에 억겁의 세월을 삼키며 서서히 융기한 조륙운동이 참으로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11시3분 해발 200미터가량의 이기동마을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주력이 뛰어난 친구에 능력껏 내달려보라고 권하고 저 역시 15시 이전에 갈미봉 너머의 사원터 갈림길에 대고자 서둘렀습니다. 20분을 걸어 오르자 시멘트포장길이 끝났고 작은 밭떼기에 빽빽이 들어선 메밀이 하얀 꽃을 소북이 피워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훤칠한 적송들이 숲을 이룬 해발 500미터대의 널찍한 길을 지나 식수로 마셔도 좋다는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계곡을 건너자  마침 여성회원 한분이 땅에 떨어진 다래가 농익어 먹기에 좋다고 일러주어 다래를 주워 먹었습니다. 그 분의 말씀대로 제 맛이 났습니다만 어렸을 때 어머니가 겨 속에 묻어두었다 내 주었던 그 다래 맛만은 못하다고 느껴진 것은 어머니의 자식사랑을 맛 볼 수 없어서였습니다.


  12시27분 해발 810미터의 고개마루 이기령에 도착해 5분간 숨을 골랐습니다.

고적대로 가는 길은 고즈넉하고 호젓했습니다. 땅을 기는 듯한 낮은 키의 산죽들이 내준 길을 따라 얼마고 걷자 아름드리 적송들이 이 길을 이어갔고 갓 낸듯한  돌길이 다시 대간 길을 이어갔습니다. 산객보다 바람이 그 길을 먼저 밟고 아침 일찍 산속에 드리운 안개를 하늘 높이 멀리 내쫓아 날은 흐렸지만 한 달 전 종주산행 시와는 달리 보고자 하는 것은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13시7분 능선 길옆에서 산악회원들과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게 눈 감추듯 후닥닥 김밥 2줄을 먹어 치운 후 쉴 새 없이 다시 산행을 이어간 것은 사원터갈림길에 15시안에 닿아야 B코스를 밟지 않고 대간 길을 모두 밟는 A코스를 탈수 있어서였습니다. 이기령에서 맞기 시작한 바람이 점점 거세졌지만 이제 막 들기 시작한 단풍잎들을 떨 굴 만큼 드세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점심을 들고 있는 약수터를 지나 한 봉우리를 옆 지르는 너덜 길을 걸으면서  초록의 나무 잎들이 노랑과  빨강 색들로 물들기 시작해 3색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10월 첫 주의 산속에서 만추의 가을과는 다른 풋과일 같은 풋풋한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13시56분 전망바위에서 관조한 가을정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 댔습니다. 산 속의 새들도 이 정경에 넋을 잃어 손님맞이 노래 부르기를 잊고 있었기에 소리를 이어가는 것은 살아 있는 새들의 울부짖음이 아니고 생명이 없는 공기가 자리를 옮기며 노래하는 바람이었습니다. 태고의 음향을 재생한 듯한 드센 바람소리가 싫지 않은 것은 동해의 바다가 억겁의 세월을 삼켜가며 아주 천천히 일어서서 만든 이 대간 길과 역사를 같이했을 그 바람소리였기 때문입니다.


  14시19분 해발1,260미터의 갈미봉에 올라섰습니다.

부지런히 뭔가를 기록하는 제게 도움이 되라고 개념도를 건네준 삼척에 사신다는 산객분의 마음 씀이 고마웠습니다. 갈미봉에서 내려서 얼마고 걷자 까마귀가 비로소 존재를 알려왔습니다. 기왕이면 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면 좋을 것을 뭔가 모를 불만이 가득 차 까악까악 짖어대는 까마귀를 반갑게 맞는 데는 산 밑에서 환송하는 까치보다 산위에서 환영하는 까마귀가 훨씬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해온 저 나름대로의 훈련이 있었습니다.


  14시51분 사원터갈림길을 지나 A코스에 들어섰습니다.

고적대를 오르는 중 보호수목 7-5-1-4의 팻말이 붙어있는 나무의 이름이 무엇일가 궁금했습니다. 분명 키가 큰 침엽수인데 줄기가 희끗희끗한 부위가 많이 있어 제가 알고 있는 침엽수는 아닌 것이 분명하기에 도감을 찾아 확인하고자 줄기만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동사면의 급경사로 일어날 수 있는 실족사를 방지하기 위해 쳐놓은 나무펜스를 지나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자 수직의 바위들이 버텨주고 있는 갈미봉이 이제 막 불붙기 시작한 가을의 전령사 단풍들과 어울려 보기 드문 절경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15시 24분 1,353미터의 고적대에 올라섰습니다.

백두대간의 봉우리 중 드물게 “대”로 명명된 고적대는 두타산과 청옥산과 더불어 해동3봉으로 불리는 영봉으로 의상대사가 이 곳에서 수행을 했다합니다. 고적대에 올라서자 한 달 전에 오른 두타산과 청옥산, 그리고 이 두 산을 잇는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다시 한번 오르고 싶다는 욕망이 일 정도로 아름다운 실루엣에 잠시 넋을 잃었습니다.


  이기령에서 이곳까지 대간 길을 안내한 바람이 이제 제 몫을 다한 듯 그 소리가 잦아졌습니다. 어제는 들 자리와 날 자리를 헤아리는 바람이 저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시인 김 수영님이 찬송한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 삶의 지혜를 꿰뚫고 있는 풀들도 또한 저의 스승이었습니다. 대체로 우리나라에서는 바람이 그리 대접받는 것 같지 않습니다. 바람을 접미어나 접두어로 하는 단어 중 긍정적의미를 갖고 있는 우리말이 흔치 않기에 말입니다. 바람둥이, 바람쟁이, 바람몰이 등의 단어들이 그렇고 늦바람, 치마 바람, 춤바람 등도 그렇습니다. 가장 힘이 센 바람인 태풍은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자연의 바람은 공기의 이동을 뜻합니다. 바람이 없다면 공기의 이동이 없기에 대류가 일어나지 않아 모든 기상현상은 정지될 것입니다. 태풍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바다로 흘러간 물을 육지로 다시 끌어들일 방법이 제한되기에 육지의 물은 계속 감소할 것입니다. 물이 부족해 바닷물을 담수화해 사용하는데 큰 돈이 드는데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육지로 담수화된 바닷물을 끌어올리는 태풍을 그 피해만 보고 원망하는 것은 지혜로운 태도가 아닙니다. 산바람이든 신바람이든 제 때 바람이 불어주기를 바라면서 연칠성령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15시54분 연칠성령에 다다랐습니다.

고적대에서 잦아들기 시작한 바람이 연칠성령에 다다르자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단풍과 절애의 암벽, 그리고 대간 길 능선의 실루엣에  빼앗겼던 눈을 다시 찾아 야생화로 돌린  것은 연칠성령의 진파랑 투구꽃이었습니다. 


  돌무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연칠성령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신 후 해 떨어지기 전에 무릉계곡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하고자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한 달 전에 다녀갔던 길이고 그때처럼 미끄럽지 않아 20분을 단축한 50분 만에 칠성령계곡을 건넜습니다. 연칠성령에서 칠성령으로 내려서는 능선을 중심으로 좌우의 날개가 대간 길임을 어제야 처음으로 알았는데 왼쪽으로는 이기령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고적대와 갈미봉이 올라서있었고 오른 쪽 날개의 댓재로 이어지는 대간 길에 청옥산과 두타산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17시2분 옛 사원터에 들어선 대피소를 지났습니다.

임란 때 유생들이 모여 의병활동을 벌였고 제왕운기를 지은 고려말 문신 이승휴의 귀의처이기도 했던 사원터를 지나 다다른 계곡에서 잠시도 쉬지 못하고 내달아 문간재를 거쳐 학소대를 지난 시각은 지난번보다 1시간이 이른 18시 정각이었습니다.

 

  18시20분 주차장에 도착해 7시간 남짓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 저녁을 마치고 소주 몇 잔을 걸친 친구와 버스 안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서울로 올라왔는데  산악회에서 제공한 저녁 식사가 없었다면 긴 시간 배를 골려5시간 가까이 걸린 귀경길이 더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