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구간:삽당령-석기봉-닭목재
*산행일자:2006. 3. 5일
*소재지 :강원강릉/정선
*산높이 :화란봉1,069미터/석기봉982미터
*산행코스:삽당령-대화산삼거리-석기봉-희봉-화란봉-닭목재
*산행시간:10시30분-15시50분(5시간20분)
*동행 :송백산악회
경칩을 하루 앞둔 삼월 초닷새 날 봄을 찾아 나선 곳은 강원도의 강릉시와 정선군을 경계 짓는 삽당령-화란봉-닭목재 구간의 백두대간 길이었습니다. 영동고속도로를 빠져나와 35번 국도를 타고 삽당령에 이르기 얼마 전에 댐만 보이지 않았다면 어느 분의 지적대로 호수라고 부르는 것이 수려한 주변 경관과 훨씬 잘 어울릴 듯싶은 오봉저수지를 지나며 잔잔한 물결조차 일지 않는 이 저수지의 수면에서 이른 봄날 아침의 냉랭함을 느꼈습니다.
몇 분들이 제게 송백문단에 라라를 등장시킨 하이맛 친구의 안부를 물어왔습니다.
닥터 지바고의 명성을 적절히 활용해 갑자기 유명해진 이 친구가 조침령-단목령 구간의 산행기를 소설로 써 올리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하마부인과 함께 유럽으로 훌쩍 여행을 떠난 지 두주가 넘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지금쯤 비행기 안에서 알프스산맥을 넘으며 약속한 산행소설의 실마리를 잡고자 고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몇 천 미터의 알프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보다는 몇 백 미터의 삽당령을 오르는 버스가 더 힘에 겨울 것이고 백두대간의 마루금 위에 자리 잡은 한 봉우리에서 안부의 고개로 내려섰다가 몇 십 미터를 걸어서 다시 오르는 것이 더 숨이 찰것이기에 알프스 산맥 상공에서 산행소설의 얼개를 짜는 그의 구상이 대간 길 안부의 고개를 오르내리며 거친 숨을 몰아쉰 후라면 더욱 구체화되고 정교하게 완성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 10시30분 해발 680미터의 삽당령에서 종주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삽당령 고개에서 임도를 버리고 오른 편의 능선 길로 접어들어 낙엽송림을 지났습니다. 3월 들어 날씨가 포근해져 밤새 얼었다가 녹기를 반복했을 산길이 미끄럽고 질펀해 발을 내딛기가 상당히 조심스러웠습니다. 20여분 후 송전탑에서 임도로 잠시 내려섰다 다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20분 가까이 더 걸어 862봉에 올라서자 뒤편으로 두 주전에 올랐던 두리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여 반가웠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30분을 더 걸어 대화실산 삼거리에 닿기 까지 산죽사이로 난 길도 여전히 미끄러웠습니다.
11시40분 대화실산 삼거리에 도착해 오른 쪽으로 90도 가까이 방향을 틀자 길 양옆으로 잡목을 베어 낸 방화선 길이 나있었습니다. 발 밑 가까이에 넓은 밭이 자리 잡고 있었고 북서쪽 멀리 소황병산의 초원이 눈에 잡혀 이 모두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밤새 뿌렸던 봄비가 멈추고 하늘이 쾌청해져 산행을 하기에 최적의 날씨여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만을 믿고 출산을 포기한 분들이 전혀 냉기가 느껴지지 않는 완연한 봄바람을 맞으며 시원스레 나있는 이 방화선 길을 걷는 저를 본다면 무릎을 치며 아쉬워할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사실과는 전혀 다르게 저를 보고 교수 같다하여 조금은 부담스러웠는데 방화선 길을 같이 걸은 안개비님이 흙 범벅이 된 제 바지가랑이를 보고 개구쟁이 같다하여 조금은 뜻밖이었지만 저의 숨겨진 일면을 잘도 끄집어냈다 싶었습니다. 몇 년 전 백두산의 서파능선을 종주할 때 어느 한분이 저를 보고 고바우로 불러줘 친근감을 느꼈는데 개구쟁이는 그런 느낌이 더욱 강한 닉네임이라 생각되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방화선 길을 지나 다다른 979봉 독바우에서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석두봉으로 향했습니다.
12시35분 해발 982미터의 석두봉에 올라섰습니다.
비좁은 암봉의 정상은 사방에 막힘이 없어 이번 산행에서 최고의 전망처로 여겨졌습니다. 앞쪽으로 고루포기산에서 북동쪽의 능경봉으로 이어지는 대간 길이 선명하게 보였고 뒤쪽으로는 대화실산(?) 북사면에 그대로 남아 있는 하얀 눈이 제 눈을 끌었습니다. 막힘없이 전해지는 드센 바람에서도 온기가 느껴져 겨울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이 봄에 저항하는 잔설이 녹아 없어질 날도 그리 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펑퍼짐한 안부로 내려서서 십수분간 느긋하게 점심을 들은 후 다시 종주 길에 나서 산죽 밭을 지났습니다. 이번 산행 내내 만난 산죽 중 이 구간의 산죽이 가장 실해 키가 허리를 넘었고 제 색을 찾아가는 초록색의 잎들이 생동감이 넘쳐 보였습니다. 아름드리 적송들이 숲을 이룬 송림을 지나 990봉에 도착하기 직전 왼쪽으로 확 꺾어 아직도 녹지 않은 잔설을 밟으며 경사 길로 내려섰습니다.
14시16분 해발1,066미터의 희봉에 도착했습니다.
희봉에 오르기 직전의 눈길이 가파르고 미끄러워 조금 힘들었습니다. 희봉에 세워진 표지목 옆에서 눈 위에 털썩 주저앉아 귤을 까먹으며 목을 축였습니다. 주위를 돌아보았지만 이렇다할 봉우리는 눈에 띄지 않았고 이 희봉도 두루뭉술하고 펑퍼짐해 봉우리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990봉에서 희봉까지 마루금은 희봉 직전의 짧은 오름 길을 빼 놓으면 비교적 고도차가 별로 없는 평평한 능선 길이어서 걷기에 편했습니다만 속도를 높여서인지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눈 위에 주저앉자 처음에는 쿠션감이 있어 편안하다 싶었는데 점차 궁둥이에 냉기가 전해지고 눈이 녹아 물기가 스며드는 것 같아 다시 일어서 북서쪽의 화란봉으로 향했습니다.
15시 정각 해발 1069미터의 화란봉에 올랐습니다.
희봉에서 급하게 100여미터를 내려서 편안한 길을 얼마고 걷다가 200미터 가량 다시 오르는 길이 이번산행의 깔딱 코스였습니다. 숨을 몰아쉬며 깔딱 길을 오르자 정작 화란봉은 왼쪽으로 7-80미터 비껴서 있었습니다. 화란봉을 오른 모든 분들에 기념사진을 찍어주고자 일찍이 정상에 올라 대원들을 기다리고 있는 송백의 댄디 맨 나무꾼님이 사진 찍기를 권해와 같이 오른 몇 분들과 함께 추억남기기에 동참했습니다. 세월 따라 쌓여가는 추억을 기록으로 남기면 역사가 됩니다만 아름다운 추억만 역사로 남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메지는 절규의 추억도,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추억도 모두를 역사로 남기고 싶은데 21세기를 살아가는 이 땅의 후손들이 영광의 21세기를 열고자 몸 바쳐 20세기를 살다가 먼저 간 분들을 끄집어내 부관참시를 해댄다면 누가 감히 추억을 역사로 남길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산행기를 올리는 일이 별안간 두려워졌습니다. 누가 압니까? 훗날 경방기간에 대간 길을 몰래 종주한 저의 산행기를 보고 벌금을 물이고 이름석자를 여기저기 방을 붙이겠다고 덤벼들지 말입니다. 단골 후미부대의 반가운 면면들과 사진을 함께 찍고 남은 과일들을 서로 나누어 먹느라 15분을 쉬었습니다.
지도에 등고선이 조밀하게 그어져 있어 닭목재로 내려서는 마루금이 얼마나 급경사인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미끄러지다 삐끗해 부실한 허리를 다시 다칠까 염려하여 아이젠을 꺼내 차고 하산 길에 들어섰습니다만 이제껏 걸어온 길과는 달리 대부분의 흙길이 말라 별로 미끄럽지 않았습니다. 경북 봉화의 춘양목을 연상케 하는 거목의 적송들과 암릉 길을 걸으며 내려다 본 닭목재 왼편의 골짜기와 넓은 밭떼기들이 함께 빚어내는 저녁시간의 넉넉한 풍경이 고즈넉하고 평화로웠습니다. 경사가 급한 암릉 길을 벗어나 이 산의 늘푸른 바늘잎나무들을 모두 모아 놓은 듯한 적송과 잣나무 그리고 키가 작은 어린 전나무들이 함께 살고 있는 평평한 길을 지났습니다.
15시50분 해발706미터의 닭목재로 내려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삽당령-닭목재 구간 종주로 지리산의 천왕봉에서 오대산의 신배령까지는 한 구간도 빠짐없이 종주를 한 셈입니다. 그 위로도 마지막 구간인 미시령-진부령 등 3구간만 남아 있어 백두대간 완주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4월2일 진부령에서 백두대간 완주를 자축하기 위해서는 이 달 안으로 남은 두 구간을 마쳐야 하고 그래서 그중 한 구간은 저 혼자 뛰어 볼 생각입니다.
어느새 나뭇가지 끝부분이 물이 올라 발그스레했습니다.
이제 알몸으로 마루금을 지켜온 넓은잎나무들이 오랜 시간의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가 봅니다. 산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것은 야생동물만이 아닙니다. 산속의 뭇 생명체들이 한겨울을 이겨내는 지혜가 바로 겨울잠이기에 어떤 식으로든 나름대로 겨울잠을 잔다 합니다. 한여름 무성했던 푸른 잎들이 하는 일은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른 잎들은 나무뿌리에서 끌어 올린 물과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로 햇빛의 도움을 받아 포도당을 만들고 산소를 배출하는데 이 반응을 광합성이라 부릅니다. 나무들은 낮 동안에는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만들고 밤 시간에는 거꾸로 낮에 만든 포도당과 산소를 활용해 숨쉬기를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가을이 되어 나뭇잎들이 단풍이 들어 푸르름을 잃는 다는 것입니다. 푸르름을 잃고 단풍이 든다는 것은 나뭇잎들의 색소가 초록색을 띠는 클로로필 엽록소가 없어지고 단풍색을 내는 안토시아닌이나 치아민 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데 이런 색소들이 지배하는 잎파랑이는 햇빛을 받아도 더 이상 광합성을 할 수 없다 합니다. 살아남고자 숨쉬기를 계속해야 하는 단풍잎들은 영양분은 하나도 만들지 못하면서 여름 내내 만든 포도당만을 소모해 숨쉬기를 하느라 영양분을 모두 소진해 끝내는 나무전체가 굶어 죽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나무들은 눈물을 머금고 여름날에 고생했던 나뭇잎들을 과감히 떨쳐내고 가지에 남아 있는 물기를 빼내어 뿌리로 보낸 다음 겨울잠을 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입니다. 만약 나무들이 이 자연의 순리를 따르지 않고 단풍잎들을 그대로 놔둔 채 겨울을 내고자 한다면 그들 스스로가 아사하기까지 겨울 내내 공기 중의 산소를 탕진하고 이산화탄소만을 뿜어 낼 것이 자명한데 이리되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의 밀도가 증가되어 온실효과가 커지고 그래서 지구의 온난화가 가속되는 것은 어느 누구든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야 비로소 1차대전 중 젊은 나이에 전사한 미국의 시인 조이스 킬머(Joyce Kilmer)가 시는 바보 같은 시인이 짓지만 나무는 하느님이 만들었다고 칭송한 속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순명해 화사했던 잎들을 과감히 떨어내는 아픔을 감수하고 알몸으로 겨울을 내며 깊은 동면에 빠졌다가 다시 땅 속에서 물을 빨아 올려 가지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나무들의 모든 것을 저는 정말 사랑하고 아끼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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