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호남정맥 종주기

호남정맥 종주기 3 (외회갈림길-백운산-한재)

시인마뇽 2007. 6. 9. 17:34
                                    호남정맥 종주기 3


               *정맥구간:외회갈림길안부-백운산-한재

               *산행일자:2007. 6. 6일

               *소재지  :전남광양

               *산높이  :백운산1,218m

               *산행코스:지계교-외회갈림길안부-매봉-백운산-신선대-한재-논실

               *산행시간:8시-17시20분(총9시간20분/구간종주7시간20분)

               *동행    :경동고 이규성동문 

                                            

 

   달포 만에 호남정맥 종주 길에 다시 나섰습니다.

지난 달 첫 산행에서는 정맥까지 왔다 갔다 하는데 드는 시간과 돈을 아끼고자 이틀 연속 마루금을 밟아서인지 허리가 아프고 옆구리가 결려 서둘러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X-Ray를 판독한 의사선생께서 별 이상이 없다며 처방해준 약을 먹었더니 두 곳의 이상증세가 감쪽같이 사라져 산행을 계속 할 수 있었지만 무리한 산행은 일단 피하겠다는 생각에서 정맥종주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그렁저렁 한달 여 쉬었습니다. 이러다가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면 올 여름은 그냥 주저앉을 것 같아 달이 바뀐 것을 기화로 벌써부터 백운산 정상을 오르겠다고 별러온 고교친구와 둘이서 호남정맥 종주 길에 올랐습니다. 백두대간상의 영취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나온 커다란 산줄기가 3정맥 분기점인 565봉에서 다시 갈라져 호남정맥을 일구어 남쪽으로 내닫다가 광양의 백운산에서 끝나는 것으로 기록된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에 따른다면 백운산을 오르는 이번 산행이 사실상 호남정맥 종주산행의 시작인 셈인데 제가 굳이 바다에 접한 망덕산에서 출발한 것은 호남정맥에서 가장 높은 백운산을 아무런 뜸도 들이지 않고 바로 후다닥 오르는 것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였습니다. 


  아침8시 외회마을의 장안민박집 앞 다리에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순천역에서 택시를 타고 광양으로 옮겨 터미널과 가까운 농협 건너편 정거장에서 회계가는 첫 버스인 30번 시내버스를 25분이나 기다렸어도 오지를 않아 별 수 없이 진상까지 버스타고 가서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회계로 갔습니다. 어엿한 정류장을 들르지 않고 그냥 가버린 버스회사에 분통이 치밀어 올라 이를 삭이느라 아침부터 힘들었습니다. 외회마을에 도착해 장안민박집 앞의 다리를 건널 즈음 제 나이 즈음의 남자 한분이 건너갈 수 없다고 버럭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사유지이니 다른 길로 돌아가라는 주인분의 고성에 세상에 버젓한 길을 가로막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맞고함으로 대응하다가 고성을 낮추고 주인분의 이야기를 들어본 즉 길을 막은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다리 건너 민박집을 하는 주인분이 정성들여 재배하는 동산의 고사리를 관광버스를 타고 온 한 떼의 산객들이 산으로 들어가서 모두 따갔다는 주인분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그들의 몰지각한 소행에 저도 화가 났습니다. 법 이전에 생존차원에서 길을 내줄 수 없다고 고집하는 주인 분에 저희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님을 한참 동안 설명 드리고 화를 내서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더니 심기가 풀린 주인분이 길을 내주어 가파른 시멘트 길을 지나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지난번에 하산한 외회갈림길 안부에 다다라 잠시 쉬면서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한 저의 속 좁은 소갈머리를 부끄러워했습니다.


   8시36분 외회갈림길 안부에서 왼쪽으로 꺾어 호남정맥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여기 안부의 높이가 360m대이니 860m는 더 올라가야 백운산 정상에 이르게 되어 이번 산 오름이 쉽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커다란 바위의 437봉을 지나 십자안부 천황재를 지났는데 양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하도 희미해 이 고개가 지도상에 나와 있는 천황재가 정말 맞는 가 의심이 갔습니다. 삼각점이 세워진 헬기장의 512.3봉에서 연초록의 새 가지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키 작은 소나무 여러 그루를 만나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우리나라 산림의 41%를 점하고 있는 소나무 숲이 위기를 맞는 것은 재선충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소나무가 우리 산림의 대표적 수종이 된 것은 다른 나무들보다 양분과 수분이 적게 들어 우리나라 기후와 토양에 잘 적응해서도 그렇지만 난방용 땔감으로 나무가 주로 쓰였던 옛날에는 한번 베어내면 그 밑동에서 다시 줄기가 자라지 않는 소나무보다는 새로운 줄기가 끊임없이 돋아나는 참나무 등이 더 많이 쓰였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땔감으로 나무들이 쓰이지 않는 요즈음 천이싸움에서 밀려 극상림의 자리를 참나무에 내주어야하는 소나무를 보노라면 왠지 모르게 초록의 싱그러움도 잃은 듯하고 가지도 축 늘어져 보기에 안쓰러웠는데 곧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어린 소나무를 만나보자 정말 반가웠습니다.


  10시40분 해발 865.3m의 매봉을 올랐습니다.

512.3봉에서 직진하여 오른 적송지대의 588봉에서 오른쪽 길로 내려섰다 840능선으로 오르는 중 눈에 띈 길바닥의 빨간 버찌열매에 전혀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절대적으로 당분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언 땅이 녹기시작하면 칡뿌리를 캐는 것으로 시작해 버찌와 오디와 산딸기를 따먹고자 산에 자주 올랐습니다만, 갖가지 과자와 음료 등 단 맛의 주전부리 감이 넘쳐나는 요즈음 달콤한 열매를 따먹고자 산에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능선삼거리에서 왼쪽 능선 길을 따라 올라 삼각점이 매설된 매봉에 다다랐으나 나뭇잎에 시야가 가려 아무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매봉에서 내려섰다 바로 오른 구릉에서 오른 쪽 길로 진행해 827봉에 올랐습니다. 827봉에서 백운산으로 향하는 중 백운산을 올랐다가 하산하는 젊은이를 만나 외회로 내려가는 길을 알려줬습니다.


  12시53분 묘지가 들어선 1115봉에서 조금 내려서 그늘진 곳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젊은이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어 긴급구조안내판에 매봉으로 잘 못 적어 넣은 헬기장의 1016봉에 올랐는데 백운산 정상은 여기서도 3km 떨어져 있어 꽤 멀리 느껴졌습니다. 이번 구간의 끝 지점인 한재에서 왼쪽 논실로 내려가 21-3번 시내버스를 타야 광양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13시50분 다음 버스가 18시20분에나 있어 산행을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는 판단이 섰고, 그래서 그동안 참아왔던 친구가 커다란 카메라를 꺼내들고 본격적으로 사진 찍기에 나섰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 사진을 찍고자 일반렌즈를 접사용렌즈로 바꿔 끼고 나서 가만히 주시하고 있다가 한 순간을 잡아 촬영을 하는 친구에게서 산사진전문가가 되겠다는 열의를 읽었습니다. 자연 산행이 더뎌져 앞서 오른 한 분이 20분 걸린 길을 1시간 가까이 걸려 1115봉에 도착했습니다만 길섶의 야생화도 모처럼 임자를 만나 아름다운 자태를 뭇 사람들에 자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겨서인지 청아한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듯 했습니다. 40분 넘게 점심을 들면서 모처럼 편하게 쉰 후 13시37분 자리를 떴습니다.


  14시20분 해발1,218m의 백운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하늘은 푸르렀고 햇살은 따가웠지만 바람이 선선했고 정상이 암봉으로 되어있어 시야가 탁 트였고 시원했습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20분 가까이 올라 전망바위에 올라서자 이제껏 걸어온 능선 길이 한 눈에 잡혔습니다만 남동쪽의 뾰족봉과 북동쪽의 삼각봉이 어느 산인지 가늠되지 않았습니다. 지도를 꺼내보니 남동쪽의 높은 봉은 억불봉인 듯 했으나 또 다른 한 봉은 확인을 할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먼발치의 나무 꽃들이 하얗게 만발해 주위가 환했는데 백운산을 오르는 중 가까이에서 관찰한 결과 산딸나무꽃으로 꽃송이도 크고 생김새도 시원시원해 앙증맞은 풀꽃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전망바위에서 물이 흐른 흔적이 분명한 길을 올라 커다란 암봉의 백운산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백운산은 역시 호남정맥 최대의 거산이었습니다.

동서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산줄기가 거대했고 이만한 높이에 자리한 바위로는 보기 드물게  그 규모도 엄청 컸습니다. 그 많은 백운산 중 높이로는 함백산에서 가지 친 강원도 영월의 백운산이 1,426m로 제일 높지만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이곳 백운산이 광양의 제철공장에 용수를 대주고 산자락 여기저기에 전국 최고의 매실단지가 들어선 데다 생명수 고로쇠도 생산해 이만하면 웅장한 산세를 빼놓고라도 여러 백운산들을 대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쫓비산을 오르며 보았던 암봉은 이제와 다시 보니 백운산이 아니었고 이산이 동쪽 멀리에 망을 세운 억불봉(?)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서쪽의 신선바위는 지근거리에 놔두면서도 억불봉을 멀리한 것은 암봉들도 가까이에 놓아두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친구가 이 산에서 가장 찾아보고 싶은 꽃나무는 히어리이고 가장 만나보고 싶어 하는 산객분도 한국의 산하에 글을 올리는 히어리님이기에 이 산에 오르기 전 이분의 백운산 산행기 몇 편을 읽었습니다. 백운산하면 이분의 이름이 첫 번째로 연상되는 것은 산행기를 읽고나서 이 분의 백운산 사랑이 다른 분들보다 단연 앞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북쪽 멀리 포진한 지리산 주능선이 보이지 않아 아쉬워하면서 14시32분에 백운산 정상을 떴습니다.


  15시 54분 해발 860m의 한재로 내려서 3구간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정상에서 암릉을 왼쪽으로 우회해 신선대로 옮기는 중 등산객들을 또 만나 백운산의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철계단을 오르내려 올라선 신선대에서 10분을 쉬면서 부지런히 능선 길과 봉우리를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신선대에서 반시간 가까이 걸어 헬기장에 다다르자 목덜미를 내리쬐는 여름햇살이 뜨겁게 느껴졌습니다. 헬기장을 또 지나고 편안한 길을 걸어 장송이 들어선 한재로 내려서자 차가 지나다녀도 충분할 만큼 넓은 도로가 고개를 가로 질러 광양의 논실과 구례의 다압하천을 이어주었습니다.


  17시20분 논실 버스종점에서 하루 산행을 끝냈습니다.

한재에서 논실로 내려가는 길은 좌우의 서울대학교연습림 사이로 낸 넓은 길로 시멘트길과 맨 흙길이 번갈았습니다. 가다가 쉬기를 반복하면서 모처럼 느긋하게 사진을 찍은 친구가 찔레꽃 사진을 여러 커트 찍고 나서 장사익님의 노래를 떠올리는 것을 보고 1960년대 고교생으로 서울시내 유수대학 백일장을 휩쓸었던 이 친구의 문학적 상상력을 너무 오래 잠재웠다 했습니다. 하산 중에 계곡으로 내려가서 발을 닦으며 시간을 죽였어도 논실에 너무 일찍 도착해 일 없이 한 시간을 기다리기가 무료할 것 같아 잠시 쉬었다가 차도를 따라 얼마고 더 걸었습니다. 광양시내로 돌아와 친구는 제게 저녁을 산 후 서울로 돌아갔고 저는 찜질방에서 머무르며 다음 구간 산행을 준비했습니다.


  산경표상의 호남정맥 끝 지점인 백운산 산행을 겸한 이번 산행은 오랜 지기와 함께 해 힘든 줄 몰랐습니다. 흰 구름이 이산 고스락에 걸치지는 않았어도 묵직한 바위만으로도 멀리서는 허옇게 보일지도 모를 여기 백운산이 저희들의 산행을 지켜보았다면 속세의 사람들도 흰 구름처럼 마냥 떠돌며 가볍게만 사는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며 바위처럼 묵직하게 사는 법도 깨우쳤구나 하고 고개를 끄떡였을 것입니다. 이 산에 사는 야생화와 나무들, 또 산새와 짐승 등의 산식구들에 저희들처럼 산을 아끼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산속에 있는 동안은 모든 산객들도 똑같이 산 식구라고 일러 주었을 것입니다. 

 

 

 

                                                             <산행사진>

 

 

 

 

 

 

 

 

 

 

 

 

 

 

 

 

 

 

 

 

 

 

 

 

 

 

 

 

 

 

 

 

 

 

 

 

 

 

 

 

 

 

 

 

 

  • 붉은 동굴
  • 2007.06.08 11:26
  • 글과 그림 잘 읽었습니다. 좋은 그림이 많아 몸과 마음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림 몇 장 복사해 갑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소서!
  • 붉은 동굴
  • 2007.06.08 11:27
  • 자주 들러서 공부 많이 하겠습니다..
  • 시인마뇽
  • 2007.06.08 23:51
  • 졸고를 과찬해주셔서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산행기를 쓰는 것은 산을 중계방송하기보다는 그때 그때 산이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누군가는 산을 대신해서 얘기를 해야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