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백두대간·정맥·기맥/호남정맥 종주기

호남정맥 종주기 16 (개기재-두봉산-봇재)

시인마뇽 2007. 10. 8. 22:20
                                 호남정맥 종주기 16


              *정맥구간:개기재-두봉산-돗재

              *산행일자:2007. 10. 2일

              *소재지  :전남 화순/보성

              *산높이  :두봉산631m, 태악산530m

              *산행코스:개기재-두봉산-말머리재-태악산-돗재-한천리삼거리정류장

              *산행시간:7시25분-17시2분(구간종주 9시간6분/총 9시간37분)

              *동행    :나홀로 

 


  영국의 소설가 서머세트 모옴은 그의 소설 “인간의 멍에”에서 “돈은 제 6감”이라 했습니다.

돈을 시각, 청각, 촉각, 후각과 미각의 5감에 이어 제 6감이라 칭한 것은 돈 없이는 앞서 열거한 5감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먹고 싶고,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이 아무리 많아도 돈 없이는 어느 것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우리 몸의 감각기능이  올 스톱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다시말해 돈이 없다면 몸뚱어리는 내 것이지만 몸뚱어리의 주기능인 감각은 내 뜻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 몸뚱어리의 진정한 주인이 내가 아니고 내가 갖고 있는 돈이라면 이는 분명 서글픈 일입니다. 우리 몸의 5감을 유감없이 작동시켜야 삶의 즐거울 수 있는데 돈이 없어 5감의 충동을 억제하고 금욕의 세월을 보내야 한다면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제껏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토록 냉혹하게 표현한 다른 글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등산은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등산이 전국민적 스포츠로 떠오른 것은 1997년 IMF 환란 이후의 일입니다. 몇 년전 한 일간지에 우리 나라 인구의 약 8%가 등산을 하고 있다는 기사가 난 적이 있습니다. 이 기사 내용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300만명 이상이 산을 즐겨 찾는다는 것인데 올 한해 프로야구를 보고자 운동장을 찾은 누적관중 수가 400만을 조금 넘음을 볼 때 정말 대단한 숫자입니다. 등산 인구가 이렇게 많은 것은 산에서는 돈 없이도 5감을 작동시키는데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시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깊은 골짜기와 야생생물의 낙원인 숲을 만나볼 수 있고, 풀 숲의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의 방향을 맡으며 산림욕을 즐길수 있고, 역동적인 계곡물 소리와 새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으며, 골바람을 맞아 피부가 시원한 감촉을 맛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산이기 때문입니다. 산 속에서는 비록 소찬이라도 도시의 성찬보다 훨씬 더 맛이 나는 것은 땀 흘린 후 미각이 돋아나서입니다. 이처럼 두 다리만 조금 고생시키면 돈 한푼 들이지 않고 정상적으로 5감을 가동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산입니다.


  제가 10년 넘게 거의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산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산에서는 돈이 제 6감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의 먼 산들을 혼자서 다녀오는데 드는 비용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안내산악회를 따라 간다면 돈도 시간도 모두 절약할 수 있는데 굳이 나홀로 산행을 고집하는 것은 걸음이 늦어서도 그렇지만 혼자서 등산할 때가 여럿이 같이 할 때보다 저의 5감이 훨씬 더 잘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단독산행이 돈이 좀 든다해도 한번 산에 들어가면 추가비용이 전혀 들지 않아 다른 스포츠에 비한다면 비용부담이 훨씬 적을 것입니다. 서너 주만 지나면 제가 밟고 있는 호남정맥에도 단풍이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그 때에는 저의 5감이 더욱 바빠질 것입니다. 서머세트 모옴이 살아 있다면 호남정맥 종주길에 한번 그를 초대해 산사람들에는 돈이 아니고 두 다리가 바로 제 6감이라는 사실을 체험토록 할 터인데 그리 할 수 없음을 못내 아쉬워하면서 개기재의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화순 시내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아침 6시20분경 이양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능주를 조금 지나 짙은 안개로 사고를 낸 차들이 길 한 옆으로 치워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양에서 만오천원에 택시를 잡아 개기재로 옮기면서 전날밤 지날 때 제대로 보지 못했던, 아침햇살에 안개가 밀려나며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  장치저수지를 보았습니다. 옥리를 지날 즈음 안개는 완전히 가셨고 그래서인지 이번 종주산행은 순조로울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7시35분 개기재를 출발했습니다.

들머리를 올라서자 버려진 밭떼기가 나타났는데 꽤 넓어 보였습니다. 묘지 2곳을 지나 구릉에 올랐고 얼마 후 양씨묘비가 서있는 묘지를 지났습니다. 산행시작 50분이 채 안되어 사방이 나무에 가려 하늘만 빠끔히 보이는 468.6봉을 올라 삼각점을 확인한 후 안부로 내려섰다가 지그자그로 난 임도를 따라 올랐습니다. 시야가 트이는 산 중턱의 죽산안공묘지에서 남쪽 산자락을 가득 메운 운해를 카메라로 잡아 보았습니다. 얼마고 가파른 비알 길을 올라 만난 평평한 능선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 8시57분에 535봉에 오르자 지난 번 봉화산에서 알바를 할 때 밤새 한 잠도 못자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던 예광탄 발사소리가 먼 곳에서 들려왔습니다.


  9시40분 해발631m의 두봉산을 올라 십분 남짓 쉬었습니다.

535봉에서 편안한 길을 따라 계속 북진을 했습니다. 한 두개 구릉을 넘어 웅덩이가 파있는 590에 올라 왼쪽으로 확 꺽어 진행했습니다. 껍질이 말쑥하고 키가 훤칠한 활엽수 숲길을 지나며 나무도 신사나무가 따로 있다면 이 나무가 틀림없다고 생각을 한 것은 신수가 훤하고 줄기 높은 곳에서 가지를 쳐 다른 나무들과 자리싸움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입니다.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된 듯 해 590봉을 지나면서 속도를 내 헐레벌떡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도착시간을 체크해보니 개기재에서 두봉산까지 2시간5분이 걸렸습니다. 지도에 나와 있는 시간보다 15이 덜 걸린 셈이어서 마음놓고 10여분을 쉬었습니다. 정상에서 바라다 본 하늘이 구름 한점 없이 높고 쾌청해 모처럼 가을 하늘의 참모습을 보는 듯 했습니다.  급경사 길을 조심해서 내려가는 중 배낭이 자꾸 등 뒤에서 저를 잡아당긴 것은 두봉산에서 사과를 꺼내 먹느라 열어 둔 배낭을 잠그지 않고 그냥 출발해서였습니다. 내림 길이었기를 망정이지 오름 길이었다면 배낭속에 들었던 내용물을 길바닥에 떨어트리고 그냥 갈 뻔 했습니다. 키를 넘는 산죽길을 걸어 내려가며 4년 전 어느 한분이 이 길을 지날 때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는 올무를 찾아보았으나 이제는 다 제거해서인지 단 한개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590봉에서 시작된 서진은 두봉산을 거쳐 550봉까지 이어졌습니다. 


  10시48분 해발522.4m의 촛대봉에 올라 섰습니다.

550봉에서 바로 앞 예재-개기재 구간에서 만나지 못한 조개껍질을 다시 보았는데 여러개가 함께 모여 있어 누군가가 꼬막을 싸들고 와 먹은 후 껍질을 버린 것으로 생각됐습니다. 오른 쪽으로 꺾어 산죽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서 만난 돌길이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힘들게걸어 올라 이제 촛대봉을 다 왔다 싶어 좋아했는데 안부 건너 높은 봉우리가 또 하나 보였습니다. 6분을 더 걸어 촛대봉에 오르자 편히 쉴만한 곳도 삼각점도 보이지 않아 답답했지만 때 맞춰 재잘대는 새소리만은 들을 만 했습니다. 촛대봉에서 10분을 쉰 후 급하게 안부로 내려섰다가 봉우리 하나를 넘어 467.5봉에 다다르기까지 반시간이 채 안걸렸습니다. 가을날씨 답지 않게 너무 덥다 했는데 어디에선가 한 동안 잠잠했던 바람이 다시 불어와 등의 땀을 식혀 주었습니다.


  12시18분 깊숙한 십자안부 말머리재로 내려서 점심을 들면서 20분 가까이 쉬었습니다.

467.5봉을 지나 밋밋한 능선 길을 걸으며 솔방울이 매달린 채 죽어 있는 소나무군을 보았습니다. 줄기와 가지는 오래 가지만 나뭇잎들이 정성들여 피운 꽃과 열매는 그 잎들과 더불어 한해를 넘기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다 말라 죽은 소나무 가지를 움켜쥐고 있는 솔방울이 제 눈에는 마치 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붙잡고 있는 비쩍마른 아프리카 아이들처럼 보여 측은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467.5봉에서 40분을 넘게 걸어 다다른 400봉에서 340m대의 말머리재로 내려서는 길은 경사가 꽤 급했습니다. 전남 화순의 한천면과 이양면을 소통시킨 말머리재로 내려서자 시장기가 느껴져 다른 때보다 좀 이른 시각에 점심을 들었습니다. 사람들의 소통은 다른 찻길에 넘겨주었지만 바람의 넘나듬은 옛날과 다름없어 점심을 들고 있는 동안 등 뒤가 계속 서늘했습니다. 12시36분에 작은 돌탑이 세워진 말머리재를 출발해 된비알길을 23분동안 꼬박 걸어올라 429봉에 올랐습니다.  옷을 뚫고 들어가 마구 팔다리를 찔러대는 명감나무는 정맥 종주꾼들에는 공적임이 분명한데 그 열매만은 어찌 저리도 새빨갛고 탐스러울 수 있는가 싶어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429봉에서 가파르게 내려섰다가  420봉을 오른 시각이 13시12분이었습니다.


  14시12분 해발530m의 노인봉을 올랐습니다.

420봉에서 조금 더가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 평평한 능선 길을 얼마고 걸은 후 된비알 길을 한참동안 올랐습니다. 목덜미를 내리쬐는 가을태양이 오름길을 더 힘들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삼각점으로 착각한 “전광98”의 시멘트구조물이 함께 자리한 성자봉을 오르는데 말머리재를 출발해 1시간이 넘겨 걸렸습니다. 지도 상에는 이 봉우리에서도 한참 떨어진 노인봉까지 1시간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어 이런 걸음이라면 한천리에서 저녁 5시 경에 출발하는 마지막 군내버스를 잡아타기가 어렵겠다는 계산이 나오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성재봉에서 쉬지 않고 내달려 18분만에 다다른 500봉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내려다 본 가을풍경이 일품이었습니다. 나뭇 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장치저수지가 다소곳이 자리한 남서쪽 아래로 저수지 뒤를 이은 논뜰에 황금빛 벼들이 가득해 풍요로움이 절로 느껴졌고 전날 1시간여 머무른 옥리마을과 이 마을을 지나 개기재로 이어지는 찻길이 참으로 한가롭게 보였습니다. 저수지와 논, 그리고 마을과 고갯길이 거의 일직선으로 보이는 500봉에서 왼쪽으로 확 꺾어 내려갔다가 직등길을 오르며 큰바위를 지나 노인봉에 다다른 것이 말머리재 출발 1시간36분 후이니 지도에 적힌 시간보다 반시간 이상 더 걸린 것입니다. 삼각점과 표지판이 걸려있는 노인봉에서 11분을 쉰 후 태악산으로 향했습니다.


  15시28분 해발530m의 태악산을 올랐습니다.

노인봉을 지나자 이제까지의 흙길과는 달리 돌길이 많이 나타나 태악산의 이름 값을 하는가 싶었습니다. 커다란 암봉으로 왼쪽으로 에돌며 바위를 안고 내려서기도 했습니다. 오른 쪽의 철조망 울타리 옆을 지나 얼마고 걷다가 암릉을 왼쪽 밑으로 돌아 능선에 오르자 곧추선  큰 바위가 나타났습니다. 얼마 후 무명봉에 올랐다가 가파르게 내려가서 평탄한 능선길을 걸었습니다. 능선길 아래로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갈리는 능선 삼거리에서 직진하여 아래로 묘지와 너덜길을 지났습니다. 510봉을 넘어 깔끔하게 손질한 널다란 묘지를 지나 바로 위의 암봉인 태악산 정상에 올랐더니 남쪽 멀리로 제암산이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시목치를 지나서는 어디서고 뒤돌아볼 적 마다 눈에 띄는 으젓한 산이 바로 제암산으로 과연 산들을 다스리는 제왕의 산이다 했습니다. 소나무와 밤나무가 곁을 같이 한 암봉 태악산에 오르자 마치 510봉을 다시 보는 듯 했습니다. 정상에서 7-8분을 쉬면서 여기서부터 부지런히 내달려 버스를 탈 것인가, 아니면 기왕 늦었으니 천천히 걸어 돗재에서 택시를 부를 것인가를 골돌히 생각했습니다. 좀 힘들더라도 서둘러 버스를 타는 것으로 마음을 다져 먹고 15시 35분에 태악산을 출발했습니다.


  16시31분 해발320m의 돗재에 도착해 구간종주를 마쳤습니다.

1시간 20분이 걸리는 하산 길을 봉우리를 3개를 넘어 56분만에 끝내느라 거의 뛰다 싶이 했습니다. 너덜 길 몇 곳을 지나 3번째 봉우리를 넘기까지 오름 길이 심하게 가파르지 않아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봉우리에서 돗재로 내려서는 길이 생각보다 멀었습니다. 찻길이 빤히 보이는데 길은 계속해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며 고도를 낮출 줄 몰랐습니다. 한참 후 왼쪽으로 급하게 내려가 822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봇재로 내려섰습니다. 한천 자연휴양림 후문(?) 앞 도로 변에 세워진 봇재의 표지석을 사진 찍은 후 차도를 따라 왼쪽으로 15분을 정신 없이 걸어내려가 자연휴양림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17시2분 삼거리 슈퍼 앞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한 젊은이를 불러 세워 버스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15분 후인 17시5분에 저 아래 삼거리 마을 슈퍼 앞에서 출발하며, 거기까지는 부지런히 걸어야 15분 정도 걸린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반은 걷고 반은 뛰다 싶이 해 출발 3분 전에 슈퍼 앞에 도착, 맥주 1병을 시켜 마시며 산음 마을을 들러나오는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이내 버스가 도착해 남은 맥주를 그대로 놓아 둔 채 광주가는 군내 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에 오르기 까지 1시간 27분 동안 있는 힘을 다해 정신없이 걸었더니 왼쪽 무릎에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등산에서는 돈이 제 6감이 아님을 온 몸으로 보여준 마지막 시간 반의 질주(?)가 제게는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대학 시절 서머세트 모옴의 “인간의 멍에”를 같이 읽고 여주인공 밀드레드를 화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눈 한 친구가 나중에 제 이야기를 듣고난 후 앞으로도 산을 계속 다니려면 하산 길을 서두르지지 말고 천천히 내려와 택시를 잡아타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돈이 좀 들더라도 무릎을 제대로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일깨워준 친구의 충고였습니다. 나이가 들어 몸이 부실해지면 돈은 더 위력을 발휘해 확고하게 제 6감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산에서만은 돈이 결코 제 6감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하려면 보다 철저한 몸관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