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11.사명산 산행기
사명산
*산행일자:2009. 5. 17일(일)
*소재지 :강원양구/화천/춘천
*산높이 :사명산1,198m
*산행코스:웅진리주차장-선정사-사명산-문바위-추곡약수
*산행시간:10시52분-17시16분(6시간24분)
*동행 :과천 산사랑산악회원 및 정 병기/김 의정, 박 현출님
어제 오른 사명산은 사명산(四明山)이 아니고 사명산(四冥山)이었습니다.
양구, 화천, 춘천은 물론 멀리 인제까지 4개 고을이 훤히 보인다 하여 四明山의 이름을 얻은 이 산이 어제는 간헐적으로 비가 내리고 20m밖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안개가 짙게 깔려 산행 중 내내 어두웠습니다. 이 산에 오르면 보너스로 받곤 하는 소양호와 파로호의 절경을 내려다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능선 길을 걷는 동안 냉기가 느껴지는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기도 해 마음까지 얼어붙는 듯 했습니다. 재작년 여름 비바람을 뚫고 오른 대암산에서는 정상에 머무르는 딱 몇 분 동안 구름이 걷히고 비가 그쳐 그 아래 펀취볼을 제대로 볼 수 있었기에 여기 사명산을 오르면서 내내 그런 행운을 기대했습니다. 이 산이 진정 사방이 밝은 四明山이라면 파로호와 소양호를 조망하겠다는 저희들의 작은 소망을 내치지 않았을 터인데 매정하게도 단 1분도 안개를 걷어내지 않아 두 담수호를 어둠 속에 묻어둔 것은 이 산이 이 날 하루는 “밝을 明”의 四明山이기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어서 저는 감히 “어두울 冥”의 四冥山으로 불러보는 것입니다.
밝음은 어둠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제 실체를 드러낼 수 없을 것입니다.
밤이 없는 낮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은 낮의 밝음을 밤의 어둠이 받쳐주기 때문입니다. 사명산의 밝음이 그 아래 소양호와 파로호의 절경을 제대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때로는 사명산을 온통 어둠으로 뒤덮을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어둠 속의 사명산이 잊혀 지지 않고 기억되는 한 아침햇살을 받고 잔잔히 일고 있는 담수호의 물결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더욱 아름다워 보일 것이기에 말입니다. 이렇듯 “밝을 明”과 “어두울 冥”은 사명산을 받쳐주는 양 기둥임이 분명한데도 사람들은 이 산의 밝음만 보고 四明山이라 부르며 안개가 이 산에 어둠을 불러들이는 것을 영 못 마땅해 합니다. 그래도 풀꽃들은 물기를 듬뿍 머금으면서도 전혀 상을 찡그리지 않고 四冥山의 안개를 반겨 맞는 듯 했습니다. 이 산이 四冥山으로 불려도 괜찮다 싶은 또 하나의 이유는 이 산이 임진왜란 때 격전지였다는 것입니다. 이산 남동쪽 아래 공리고개에 항일의병전적비를 세운 것은 전사한 선조들의 충정을 기리기 위한 것인데 아직도 어두운 명부(冥府)에서 심판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그 분들을 위해서도 이날처럼 안개 낀 날 만이라도 四冥山으로 부르는 것은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
군포사거리의 한성병원 앞에서 사명산 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매월 셋 째 주 일요일에 해온 경동동문산악회의 종주산행이 갑작스레 취소되어 지난 해 한북정맥을 같이 종주한 정 병기/김 의정 부부와 박 현출 님과 함께 과천 산사랑산악회의 사명산산행에 합류했습니다. 춘천을 지나 해발고도가 600m가 다되는 배후령을 넘으면서 작년10월 이 고개를 출발하여 용화산을 오르다가 바위에서 떨어져 등뼈를 분질러먹은 추락사고를 떠올렸습니다. 제 부주의로 사고를 당했지만 119산악구조대의 신속한 구조 및 헬기를 동원한 재빠른 후송, 한림대성심병원의 성심어린 치료와 자식들 및 주위 친지들의 지극한 보살핌에 힘입어 이렇게 다시 산에 오를 수 있음을 저는 엄청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고마움을 길이 기억하고자 “고마움의 탑”이라는 부제의 병상일기를 제 블로그에 실었습니다. 오전에 구름이 조금 끼다가 오후부터 갠다는 일기예보와는 달리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이 전혀 가시지 않았고 종종 비도 내렸습니다.
오전10시52분 웅진리 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승용차라면 1.5Km 떨어진 선정사까지 타고 갈 수 있겠지만 질퍽한 도로를 따라 무리하게 올라간다손 치더라도 버스를 돌릴 공간이 없어 주차장에서 하차해 선정사로 향했습니다. 산행시작 30분 만에 한때 불치병 환자들이 요양했다는 선정사에 도착해 경내를 휘 둘러보았습니다. 한글 현판의 약사전, 칠성각, 산신각, 명부전 등의 올망졸망한 건물에 비해 7층 석탑과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미륵부처상은 여느 사찰보다 작지 않았습니다. 대웅전이 따로 없는 선정사를 지나 왼쪽으로 임간도로가 갈리는 갈림길에 다다라 휀스를 막아 출입이 금지된 직진 도로 왼쪽으로 몇 십m 진행하다가 휀스가 끝나는 곳에서 제 길로 들어섰습니다. 큰비가 흐르면 빗물이 흘러내릴 돌 가닥 길을 뒤뚱거리며 걸어 오르느라 등 뒤로 땀이 흘러내렸습니다.
12시1분 임도를 건너 산속으로 다시 들어섰습니다.
진작 알았다면 앞서 삼거리에서 휀스로 막은 돌가닥 길로 가지 않고 조금 돌더라도 마음 편히 임도를 이용할 걸 하고 생각한 것은 나이 들어 욕먹을 짓은 가능한 한 하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임도를 건넌 후 10분 남짓 걸어올라 다다른 “사명산2.5Km/사명산1.5Km"의 표지봉이 서있는 삼거리에서 오른 쪽의 ”사명산1.5Km"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번산행의 깔딱 오름 길은 여기 해발730m(?)대의 이 삼거리에서 1130봉에 이르는 된비알 길로 1Km를 걸어 오르는 데 무려 60분이 걸렸습니다. 사방에 짙게 드리운 안개가 시야를 가로 막아 고도계를 차고 오르지 않았다면 된비알의 오름 길이 어디서 끝날지 전혀 감 잡을 수 없어 더욱 힘들었을 것입니다. 벌써 철쭉꽃이 지는가 해 아쉽다 했는데 고도를 조금 높이자 아직도 꽃을 피우지 못한 꽃망울들이 비를 흠뻑 맞아 개화시기가 더 늦어질 것 같았습니다. 땅만 보고 된비알 길을 오르는 중 맑은 날이라면 햇빛을 받아 반짝일 것을 그리하지 못하고 비를 맞아 축 쳐져있는 운모가 눈에 띄어 몇 개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왔습니다.
13시29분 해발1,198m의 사명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엄청 가파른 길을 1시간 가까이 곧바로 오르다가 왼쪽으로 꺾이는 우회 길을 몇 분간 더 걸어 사명산 정상을 0.5Km 남겨놓은 1130봉의 갈림길에 다다랐습니다. 오른쪽으로 안대리 길이 갈리는 이봉우리에서 왼쪽의 정상으로 이어지는 도솔지맥 길은 1162봉과 문바위를 지나 770봉에서 서쪽의 오봉산으로 이어지는데 저희들의 하산할 추곡약수터 길은 770봉에서 남쪽으로 갈립니다. 능선 길에는 전방의 고산답게 교통호가 보였으며 금붓꽃이 떼로 핀 군락지도 지났습니다. 1130봉 갈림길에서 16분을 걸어 올라선 사명산 정상에서 정상석만 보았을 뿐 사방에 안개가 짙게 깔려 아무 것도 조망할 수 없었습니다. 서둘러 사진 몇 장을 찍고 나서 정상을 출발해 10분 후 다다른 헬기장에서 일행들과 함께 도시락을 들었습니다. 비바람이 그치지 않아 후다닥 점심을 든 후 자리에서 일어나 문바위로 향했습니다. “사명산2.5Km/사명산1.5Km"의 표지봉이 서있는 삼거리에서 “사명산2.5km"안내판이 가리키는 왼쪽으로 오르면 도솔지맥의 1162봉과 만나게 되는데 이 봉우리의 헬기장을 14시17분에 지났습니다.
15시11분 출렁다리가 놓인 문바위에 올라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사명산1.3Km"의 표지봉이 서있는 1162봉에서 계속 남진하는 동안 이름 모르는 야생화들이 즐비하게 피어있어 “사명산2.5Km/추곡약수터”의 표지판이 세워진 992봉 앞에 이르기까지 힘든 줄 몰랐습니다. 992봉을 우회한 후 만난 해주최씨의 묘지는 고도가 높은 능선 길에 자리한 것치고는 손길이 많이 간 듯 깨끗해 보였습니다. 문바위에 이르는 능선 길을 걷는 동안 서쪽 아래에서 비바람이 몰아쳐 손이 많이 시렸습니다. 안개가 짙게 깔려 하마터면 출렁다리 앞에 다가서지 못하고 그냥 지나칠 뻔 했습니다. 두 암봉에 걸쳐 놓인 출렁다리는 위험해 건너갈 수 없고 다리 앞 한쪽 문바위에 세워진 7층석탑이 이 바위를 찾는 중생들에 축복을 내려줄 것 같았습니다. 다시 내려와 두 문바위 사이로 나있는 경사가 아주 급한 내리막길을 조심해서 내려갔습니다. 문바위에서 남서쪽으로 진행하면서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고 우회해 770봉 바로 아래에 다다른 시각이 15시54분이었습니다. 도솔지맥 종주 길은 이 봉우리에 오른 후 서쪽으로 이어지는 데 추곡약수터로 내려가는 하산 길은 이 봉우리를 왼쪽으로 돌아 정남쪽으로 뻗어나가는 능선을 타야 합니다.
정상에서 문바위에 이르는 능선 길이 야생화들의 천국으로 보인 것은 능선을 점령한 안개가 다른 볼 것들을 모두 차단해 더욱 그러했습니다. 마침 동행한 박현출님이 야생화들의 꽃 이름을 잘 알고 있어 모처럼 이들에 제 이름을 불러줄 수 있었습니다. 둥굴레, 금낭화, 쥐오줌풀, 금붓꽃, 벌깨덩굴, 홀아비꽃대, 피나물과 물솜대들이 야생화 천국의 주인공들로 이들 야생화마저 이 산에 자리하지 않았다면 안개가 눈을 가린 이번 산행은 엄청 삭막할 뻔 했습니다. 또 하나 이제껏 잘 못 알아온 둥굴레 꽃을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된 것도 이번 산행의 작은 수확이었습니다. 이분으로부터 배운 정말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아스피린이 쥐난 것을 푸는데 잘 들으니 비상약으로 갖고 다니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팀의 한 여인이 다리에 쥐가 나 능선 길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것을 보고 아스피린을 꺼내주며 그냥 삼키지 말고 꼭꼭 씹어 먹어야 흡수가 잘되어 약효가 빨리 나타나며 식도가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반드시 물을 같이 마셔야 한다고 설명을 덧붙인 이 분에 해열제인 아스피린이 어떻게 쥐가 난 것을 낫게 하느냐 물었더니 아스피린은 혈전용해 기능이 있어 피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답을 해주었습니다.
17시16분 추곡약수터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770봉에서 15분가량 남진해 만난 삼거리에서 직진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로 들어섰습니다. 껍질이 벗어진 노송들로 훤해진 능선 길을 한참 걸어 “옛날밥상”에서 걸어 놓은 허름한 추석약수터 행 안내판을 만나보자 제 길로 들어선 것이 분명해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집수 통이 서 있는 임도로 내려서 왼쪽 아래 추곡약수터로 향했습니다.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몽땅 틀린 것이 아님을 입증하려는 듯 뒤늦게 해를 내보여준 하늘이 얄미웠지만 이 순간을 놓칠세라 함박웃음을 웃어 보이는 야생화들을 미워할 수는 없었습니다. 임간도로를 20분 남짓 걸어 주차장에 도착해 산악회에서 준비한 국과 밥을 들었습니다. 시원한 맥주가 곁들인 뒤풀이 시간이 길 수 없었던 것은 귀가 길이 붐빌 것 같아서였습니다.
춘천에서 경춘가도를 피해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로 진행하다가 영동고속도로로 옮겼습니다.
이천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국도를 타고 가다가 용인에서 다시 영동고속도로로 올라서 북수원으로 향했습니다. 추곡 약수터에서 군포사거리에 이르기까지 경춘가도보다 길은 훨씬 멀었지만 거의 막힘이 없어 10시가 못되어 한성병원 앞에 도착했습니다. 옆 자리의 한 분과 나눈 이런 저런 과학이야기로 차안의 긴 시간이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같이 산행한 정 병기/김 의정 부부 및 박 현출님과 함께 건너편 해장국 집을 들러 아직도 남아 있는 마지막 2%의 알콜을 마저 채우며 사명산 산행을 돌아보았습니다.
이번에 오른 사명산은 사방이 훤히 보이는 四明山이 아니고 온 사방에 짙은 안개가 드리운 四冥山이었습니다. 소양호와 파로호를 조망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지만 덕분에 길가의 야생화들과 보다 가까워진 하루 산행이었습니다. 한 번 산행으로 모두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四明山이 문자 그대로 제 빛을 완전히 찾고 시야를 가리는 나뭇잎들도 모두 사라지는 한 겨울에 잔뜩 쌓인 하얀 눈을 밟으며 이 산을 다시 오를 뜻입니다. 그 때는 틀림없이 어두웠던 이번의 四冥山 산행이 아름답게 반추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제가 오르는 사명산은 四明山이든 四冥山이든 관계없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또 이 산을 오르는 제 인생도 똑같이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세월의 위대함에 힘입어 그 날이 반드시 오리라 믿으며 이만 사명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