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금오산권 환주기
환주기48:낙남정맥 3구간(고운동재-돌고지재)
*산행일시:2010. 5. 19일/ 8시37분-18시30분(9시간53분)
*소재지 :경남 하동/진주
*산높이 :칠중대고지565m, 방화고지652m
*산행코스:묵계초교-고운동재-길마재-칠중대고지-양이터재-방화고지-돌고지재
꼭 한 달 만에 낙남정맥을 다시 찾았다. 지난 달 고교동문 이규성 울산대 교수가 난코스를 같이 해주어 그 다음부터 나 혼자서 이어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었다. 내가 이번에 낙남정맥을 다시 찾은 것은 섬진강에 물을 대고 있는 산줄기 환주 산행을 하루 빨리 마무리 짓고 싶어서였다. 2007년 5월 광양의 외망에서 망덕산을 오른 것을 시작으로 그간 47회를 종주해 낙남정맥의 고운동재에 다다른 것이 꼭 한 달 전인 4월19일이었다. 이번에 이틀 연속 종주할 코스는 첫 날은 고운동재에서 돌고지재에 이르는 낙남정맥 길이고 둘째 날은 돌고지재에서 547m봉에 이르는 낙남정맥 길과 547m봉에서 수구재까지의 낙남금오지맥 길이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고운동재에서 묵계초교로 하산했던 그 길을 이번에는 거꾸로 올랐다. 1시간 넘게 걸은 아스팔트길이 지겹지 않았던 것은 고운동재에서 이어갈 낙남정맥이 아직 발을 들이지 못한 미지의 길이어서다. 미지의 길은 설렘의 길이다. 혼자 나서는 미지의 길은 그 설렘이 여럿이 같이 할 때보다 더하다. 섬진강을 둘러싼 산줄기를 이어 걷는 섬진강 산(山)울타리 환주를 마칠 날도 그리 멀지 않다. 넉넉잡고 3-4번만 더 출산하면 망덕산 강 건너 동쪽의 두우산에 다다를 것인데 남은 길이 웬만한 종주 꾼이 아니면 좀처럼 발을 들이는 산줄기가 아니기에 길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두 해전 사고를 당한 후 겁이 많아져 미지의 산길이 마냥 설레는 길만은 아니지만, 섬진강 산(山)울타리환주만은 가슴 설레는 길임이 틀림없다.
오전8시40분 묵계초교를 출발했다. 전날 밤 11시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심야버스를 타고 진주로 내려가 찜질방에서 3시간가량 눈을 붙였다. 아침7시10분 진주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하는 청학동행 첫 버스에 몸을 실은 것은 한 달 전 친구와 함께 낙남정맥의 두 번째 구간종주를 끝낸 고운동재를 다시 찾아가서 세 번째 구간종주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묵계초교에서 고운동재까지 한 시간 넘게 차도를 따라 걸었는데 오전에는 비가 오고 오후에 갠다는 일기예보대로 두 세 차례 빗방울이 떨어져 아스팔트길이 후끈거리지 않았고 땡볕을 피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 산중턱에 걸려 있는 흰 구름이 산골짜기 청학동을 더욱 그윽하게 만들어 고운동재로 오르는 아스팔트길도 걸을 만했다.
10시3분 고운동재에서 낙남정맥 종주를 시작했다. 고운동재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걸어 나지막한 봉우리에 올라서자 왼쪽 아래 고운호가 잠시 안개를 제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산야초를 재배하는 오른 쪽 사면에 일반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전기선을 쳐놓아 신경이 쓰였지만, 걱정했던 산죽 길은 길가의 키를 넘는 것들을 베어내어 지난번에 지난 산죽 길보다 훨씬 걷기가 편했다. 고운동재 출발 20분이 채 안되어 올라선 해발890m대의 봉우리 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내려선 후로는 이렇다 할 갈림길을 만나지 못했다. 조금 후 비가 점점 드세게 내린다 했는데 봉우리 두개를 넘는 동안 많이 사그라졌고 잘 정돈된 산죽 길을 지나자 비가 완전히 그쳐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비둘기만한 이름 모르는 산새 한 마리를 온전하게 사진 찍을 수 있었다. 높낮이 차가 별로 없는 편안한 능선 길을 걸으며 실로 오랜만에 안온함과 행복함을 느꼈다.
11시31분 798m봉에 도착했다. 8백m대의 봉우리를 몇 개 넘고 작은 늪지(?) 옆의 묘지를 지나 올라선 무명봉에서 3-4분간 쉰 후 편한 길을 걸어 다다른 한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해 동쪽으로 내려서자 비로소 물소리가 들렸다. 798m봉인 암봉에 올라서자 구름에 가렸던 산록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햇살이 나뭇잎사이로 비비고 들어와 숲을 밝히자 이 산의 식구인 산새들이 환호했다. 100m가량 고도를 낮추어 깊숙한 안부로 내려갔다가 가파른 오름길을 걸어 오르느라 힘들었다. 한참을 걸어 올라선 790.4m봉에 삼각점이 박혀 있어 지도상의 제 위치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기에 처음으로 짐을 벗어놓고 사과를 까먹었다.
13시2분 길마재로 내려섰다. 790.4봉m에서 18분간 쉰 후 자리에서 일어나 동쪽으로 향했다. 80m가량 고도를 낮추었다가 다시 올라선 무명봉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확 틀어 경사가 급한 길을 따라 내려가는 중 지리산에서 여러 번 본 노각나무가 눈에 띄어 잠시 멈춰 서서 카메라에 옮겨 담았다. 비를 맞아 수피가 시꺼멓게 보이는 소나무 숲길을 지나고 묘지를 지나 옥종면과 청암면을 이어주는 해발500m대의 길마재에 도착했다. 일기예보대로 오후에 들어서자 비가 완전히 멈췄고 햇살이 뜨거워 시멘트 길이 지나는 고개 마루 그늘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김밥을 꺼내들며 한참 동안 휴식을 취한 후 13시27분 자리에서 일어났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산불감시초소가 서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자 오른 쪽 아래 하동호가 꽤 넓게 보였다.
14시21분 삼각점이 세워진 해발565m의 칠중대고지에 올라섰다. 산불감시초소와 칠중대고지는 표고가 비슷했으나 그 사이에 500m대의 봉우리가 몇 개 있어 이들을 넘어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느라 비지땀을 흘렸다. 비가 내린 뒤끝이라 아직 지열은 없었지만 갑자기 더워진 공기가 온몸을 휘감아 칠중대고지에서 조금 떨어진 그늘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또 쉬었다. 봉우리 하나를 넘어 안부로 내려가는 중 내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달아나는 덩치 큰 짐승의 뒷모습을 보았는데 멧돼지가 틀림없어보였다. 오래 숨죽였던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어디서 한 잠 자고 가고 싶었지만 이번 산행의 끝 지점인 돌고지재에 언제쯤 다다를지 몰라 남쪽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그대로 진행했다. 얼마 후 왼쪽으로 확 꺾어 오른쪽은 자갈길이고 왼 쪽은 시멘트길인 양이터재에 내려선 시각이 15시 11분이었다.
16시25분 해발665.8m의 방화고지를 지났다. 큰 소나무 한 그루가 고개 마루를 지키고 있는 양이터재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내쳐 산 오름을 계속했다. 이제껏 내가 안부에서 쉬지 않고 계속 올라가 봉우리에서 쉬는 것은 올라갈 걱정 않고 마음 편히 쉬고 싶어서인데 이번처럼 한 여름 오후에는 더위에 많이 지쳐 안부에서 곧바로 봉우리를 치고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양이터재에서 동쪽으로 반시간 가량 치고 올라가 다다른 646m봉에서 바지를 내리고 거풍을 즐겼다. 평일 날 한적한 정맥 길을 종주할 때는 하루 종일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다여서 종종 마음 놓고 거풍을 즐기는데 이번에도 그러했다. 646m봉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방화고지로 진행하는 동안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 몇 개를 넘었고 시꺼먼 싸리 밭도 지났다. 646m봉 출발 35분에 다다른 방화고지에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 그리 깊지 않은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치켜 올라가 방화고지 출발 20분 만에 동쪽 맞은편의 652m봉에 올라갔다. 15분을 쉰 후 17시 정각에 자리를 떴습니다. 652m봉에서 남쪽으로 꺾어 급하게 내려선 것은 646m봉에서 남쪽으로 꺾어 안부로 내려선 것과 흡사해 지도를 보면 지나온 길이 마치 계단처럼 이어졌다. 표지기가 많이 걸린 봉우리를 넘어 다 파헤쳐진 묘지를 지났다.
18시30분 59번 국도가 지나는 돌고지재에 도착해 세 번째 구간종주를 마무리했다. 언제 봄이 왔었던가 싶은데 길가의 명감나무와 산딸기가 그새 가시를 날카롭게 다듬어 놓은 것을 보고 벌써 여름이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땅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철쭉 꽃송이가 실 날 같은 가는 끈으로 꽃봉오리에 매달려 있는 것이 화무십일홍의 마지막 모습처럼 측은해 보였다. 억새 길을 지나고 묘지를 지나 삼각점이 세워진 401m봉에 도착한 시각이 18시 정각이었다. 왼쪽 큰 길을 버리고 오른 쪽 희미한 수로(?)를 따라 내려가 탐스럽게 핀 산 목련을 보았다. 몇 걸음 더 옮겨 이름을 모르는 꺽다리 연분홍 꽃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 마지막으로 짐을 벗어놓고 푹 쉬면서 사람들과 달리 꽃은 떼거리로 모여 있어도 여전히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돌고지재를 지나는 59번 도로가 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길을 잘 못 들어선 바람에 연초록의 풋풋한 돌배(?)를 사진 찍을 수 있었다. 수로를 따라 59번 도로로 내려가 수준점이 세워진 왼쪽 돌고지재 마루로 옮겨 하루 산행을 마쳤다.
1만원을 들여 택시를 타고 옥종으로 내려가서 진주행 버스를 기다리는 중 슈퍼마켓 주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주인은 짬이 나면 옥산을 자주 오른다면서 내가 타고 있는 낙남정맥이 남강 때문에 중간에 한 번 끊어진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확인해보니 그 얘기가 옳았다. 낙남정맥은 다른 정맥과 달리 길이 끊겼는지도 모르고 종주 길에 오른 내가 부끄러웠다. 세 사람이 함께 가면 반드시 스승 한분이 있다 했는데 하동의 옥종 이 시골에서 내게 가르침을 줄 사람을 만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정맥을 종주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배울 수 있어서다.
환주기49:낙남금오지맥 1구간(돌고지재-547봉지맥분기점-2번국도청솔주유소)
*산행일자:2010. 5. 20일/ 8시7분-14시41분(6시간34분)
*소재지 :경남 하동
*산높이 :일천봉489m
*산행코스:돌고지재-547봉분기점-497봉-일천봉-황토재-2번국도 청솔주유소
도상거리가 630Km에 달하는 섬진강 산(山)울타리환주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호남기맥의 망덕산에 발을 들인 후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의 전 구간을 종주하고 백두대간의 6구간에 이어 전날 낙남정맥의 3구간도 마저 밟았다. 이제 마지막 남은 산줄기는 낙남정맥의 547m봉에서 분기해 하동의 두우산을 맨 끝으로 일군 후 섬진강 포구에서 끝나는 낙남금오지맥으로 신경수님은 그 길이가 약37Km에 이른다 했다.
어제 547봉에서 2번국도 청솔주유소까지 약7Km의 산줄기를 걸어 낙남금오지맥 첫 구간 종주를 마쳤다.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참고할 만한 자료는 신경수님의 낙남금오지맥 산행기가 유일해 산행 중 알바를 면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막상 낙남금오지맥에 발을 들이자 앞서 이 산줄기를 산행한 몇 분들이 곳곳에 표지기를 걸어놓아 적지 아니 도움이 되었고 덕분에 심각한 알바는 면했다. 욕심 같아서는 2번국도 청솔주유소에서 7-8km를 더 걷고 싶었지만, 가야할 산줄기가 나와 있는 지도를 미처 챙겨가지 못해 오후 3시도 안된 이른 시각에 산행을 마무리했다.
아침8시4분 돌고지재를 출발했다. 진주시외버스터미널을 6시50분에 출발하는 옥종 행 버스에 몸을 실고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시골풍경을 눈여겨보았다. 아직도 모내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것은 모판에 파종이 늦어서일 텐데 이는 지난 3-4월 중 이상저온의 날씨가 반복됐기 때문일 것이다. 옥종 터미널에서 택시를 불러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돌고지재로 옮겼다. 동쪽으로 난 시멘트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다가 경사가 매우 급한 오른쪽 산길로 들어섰다. 십 수분을 올라 시멘트 길로 복귀했고 얼마 후 다시 왼쪽 산길로 오르면서 고도를 높여갔다. 송림을 지나고 키가 낮은 철쭉 밭을 지나다 줄이 나뭇가지에 걸려 허리에 찬 카메라가 집에서 빠져나갈 뻔했다. 산행시작 50분 만에 삼각점이 박혀 있는 526.7m봉에 도착해 잠시 숨을 돌렸다.
9시18분 낙남정맥의 547m봉에서 낙남금오지맥종주를 시작했다. 526.7m봉에서 남동쪽으로 조금 옮기자 왼쪽 멀리로 지리산의 천왕봉과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웅장한 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남쪽으로 낙남금오지맥이 분기되는 547m봉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앞서 지난 분들의 발자취가 사라져 곤혹스러웠다. 여기저기 둘러보았으나 끝내 찾지 못해 나무 숲길을 뚫고 똑바로 내려가자 이내 임도가 나타났다. 왼쪽으로 조금 옮겨 다다른 임도삼거리에서 잠시 쉬면서 갈 길을 점검했다. 남쪽으로 시원하게 나 있는 시멘트임도를 따라 5-6분을 가다가 오른 쪽 샛길로 들어서자 낙동산악회와 비실이부부 등 여러분들의 표지기가 걸려 있어 반가웠다. 샛길을 따라 무명봉에 올라서자 이 지맥의 분기봉인 547m봉이 선명하게 보였다. 묘지를 지나 진고개로 내려서는 중 부스럭 소리가 나 얼른 돌아보니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셔 인사를 드렸다. 고사리를 따러 올라오셨다는 이 분이 이틀간의 산행 중 내가 유일하게 만나본 분이다. 인적이 거의 없는 한적한 지맥 길을 긴 시간 혼자서 걸으려면 야생화나 나무 또는 야생동물 등의 산식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도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해 내 편에서 일방적인 인사만 건넬 뿐이다.
10시32분 497m봉을 지났다. 할아버지와 헤어져 도착한 평평한 소나무 밭 안부에 진고개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솔밭 길이 일반 산길보다 마루금을 이어가기가 훨씬 어려운 것은 푹신한 솔밭 길에는 사람이 밟고 지나가도 흔적이 잘 남지 않아서다. 고도계에 나타난 수치와 억새풀을 보고 쉽게 알아챈 497m봉에서 깃봉이 쓰러져 있는 것은 보았으나 삼각점은 확인하지 못했다. 497m봉에서 다음 봉우리로 옮기는 중 옅은 자주색 꽃이 활짝 핀 오동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이번 산행의 골칫거리는 자주 끊기는 길이 아니고 한 번 잘못 건드리면 미세한 송화 가루를 쏟아 붓는 키 작은 소나무였다. 몇 번이나 송화 가루 세례를 받으며 470m대의 봉우리 두 곳을 지나 소나무 밭에서 10분 넘게 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중간에 길이 끊어져 더 이상 마루금을 이어갈 수 없어서였다. 한참동안 난망해하다가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곧바로 내려가자 임도가 나타났다. 임도로 내려선 다음 이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5-6분 걸어 올라가자 왼쪽 멀리 개활지 위를 지나가는 마루금이 보여 다시 왼쪽으로 8-9분을 되 내려가 임도삼거리에 다다랐다.
12시11분 489m봉에 이르렀다. 임도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공사로 시뻘건 황토 흙이 표면에 드러나 보이는 개활지의 왼쪽 위 능선을 따라 걸었다. 개활지가 끝나는 곳에서 맨살의 넓은 흙길이 나있는 대로 남쪽으로 올라가 일천봉의 표지목이 서 있는 489m봉에 올라섰다. 소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에서 점심을 들면서 모처럼 긴 시간 푹 쉬었다. “일천봉”에서 380m 떨어진 “선기동봉”을 거쳐 “해돋이”로 옮기는 중 잔디 대신 석재로 봉분을 만든 묘지를 보았다. 깊은 산 속의 묘지들이 거의 다 관리가 제대로 안되어 봉분이 무너지고 나무들이 묘지에 뿌리를 내리고 커 가는 것을 자주 본 나로서는 어떻게든 산에다 봉분을 만들고 조상들을 모시는 묘지문화는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무거운 돌 판을 올려놓아 돌아가신 분들을 힘들게 하는 이런 묘지는 아니고 굳이 산에다 모시려한다면 수목장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입산금지 경고판이 세워진 시멘트 길을 따라가다 왼쪽 산길로 들어가 몇 분 더 걸어 “선기동봉800m/해돋이50m/큰골봉1.01Km"의 이정표가 서 있는 넓은 공터 삼거리에 다다랐다.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 돌탑이 세워진 “해돋이” 봉우리에 올랐는데 이 봉우리가 지도에 나와 있는 장군바위 같았다. "해돋이"봉에서 마루금을 이어갈 길을 찾지 못해 다시 공터삼거리로 되 내려갔다.
13시35분 하동군의 횡천면과 북천면을 잇는 황토재에 도착했다. 공터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남쪽으로 7-8분을 내려가 시멘트길이 마루를 넘는 황토재에 이르렀다. 고개가 높지 않아 옛날에 학생들이 자전거로 이 고개를 넘어 통학하기에 별반 어렵지 않았을 것 같았다. 쉼터 통나무의자에 한참 동안 앉아 쉬었어도 이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는 것으로 보아 황토재는 고개로서 역할은 끝났고 나 같은 종주 객들이 쉬어가는 안부의 역할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지자체에서 친절하게 봉우리 이름을 적어 넣고 등산로를 그려놓은 안내판을 세워 고마웠는데 방위표시가 없어 아쉬웠다. 황토재 안부에서 통나무계단을 걸어올라 봉우리 몇 개를 넘으면서 남진을 계속했다.
14시41분 2번국도가 지나는 청솔주유소 앞에서 낙남금오지맥 1구간 종주를 마쳤다. 황토재에서 남쪽의 꼬치봉으로 가는 길 곳곳에 이정표를 세워 놓아 봉우리 2개를 넘어 378봉까지 마루금을 잘 이어갔다. 378m봉에서 남서쪽으로 내려가다 큰골봉 앞 안부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갔다. 얼마 후 내려선 2번 도로에서 청솔주유소가 보이지 않아 잘못 내려왔음을 직감했다. 지도를 꺼내 확인해보니 378m봉에서 동쪽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를 타야 했는데 잠시 착각해 남서쪽 산줄기로 내려온 것이 잘못이었다.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 왼쪽 위 고개 마루로 걸어가 청솔주유소에 이르렀다. 주유소에서 운영하는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사들며 첫 구간의 성공적인 종주를 자축했다. 많은 분들이 황토재로 알고 있는 이 고개의 이름이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았지만 가게 주인아주머니께서 수구재라고 일러주었다. 논에 나가 일을 하는 기사분에 연락해 택시 타고 북천으로 이동했다.
집에 돌아와 지도를 확인해보니 금오산에서 두우산에 이르는 길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지도에서 산줄기가 분명하게 나타날 만큼 고도가 높지 않아 내 실력으로는 지도에 마루금을 정확히 긋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리되면 지도를 보고도 방향을 잘 못 잡기 십상이어서 앞서 이 길을 간 분들의 표지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금오산을 지나서도 계속 붙어 있을지는 모르겠다. 걱정도 되지만 미지의 길을 이어간다는 설렘 때문에 가슴도 뛴다. 두세 번만 더 출산하면 섬진강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 환주가 끝나기에 설사 마루금을 이어가기가 좀 힘들더라도 그만한 어려움은 감수할 뜻이다. 나보다 훨씬 먼저 더 어려운 상황에서 이 길을 걸어 낙남금오지맥 종주를 마치고 “한국의 산하”에 산행기를 올려주신 신경수님에 비하면 내가 겪을 어려움은 문제될 것이 전혀 아니다. 표지기를 달고 산행기를 올린 여러분께 감사인사 올린다.
환주기50:낙남금오지맥 2구간(2번국도청솔주유소-12번도로금오산 입구)
*산행일시:2010. 5. 28일/ 8시15분-18시10분(11시간355분)
*소재지 :경남 하동
*산높이 :이명산 계봉548m
*산행코스:2번국도청솔주유소-안심마을입구-12번도로변금오산입구-진교버스정류장
길이 보이지 않는 산속에서 산줄기를 따라 걷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수도권을 지나는 한북정맥과 한남정맥에서 분기된 지맥들은 수많은 산객들이 이미 종주를 마친 터여서 길이 잘 나있는 편이지만 저 아래 남해안 가까이에 자리한 낙남금오지맥의 산줄기에는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전혀 없는 곳도 있어 마루금을 이어가기가 정말 힘들었다. 아침에 청솔주유소를 출발할 때만 해도 조금 서둘러 금오산을 넘어보겠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계봉을 지나서부터 몇 곳에서 길을 찾지 못해 헤매고 나자 무리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금오산 산자락을 지나는 12번 도로에서 2구간종주를 마쳤다. 방송대 기말고사가 한 달 밖에 남지 않아 웬만하면 이틀간 나들이로 섬진강 산(山)울타리환주를 끝내고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번에 금오산을 넘지 못해 다음 날 하동의 두우산까지 진출해 환주산행을 마무리 짓기가 어려워졌다.
목표했던 만큼 나가지는 못했지만 결정적인 알바로 중간에 산행을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지 않은 것만도 내게는 적지 아니 다행이다. 두 해전 용화산에서 사고를 당한 후 주력이 많이 떨어지고 길을 찾아 이어가는 감각 또한 많이 무뎌져 고생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여기 금오지맥 종주 길에 오른 것인데 이번 산행으로 길을 이어가는 동물적 감각은 제 궤도에 올라온 것 같아 가슴 뿌듯했다. 주력마저 되찾았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이고 보면 길을 찾아 가는 감각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올 가을쯤 낙남정맥 종주를 끝내고 나면 떨어진 주력도 종전만큼은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고 그리되면 내년 봄 하나 남는 낙동정맥 종주 길에 마음 편히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아침8시15분 2번국도 변 청솔주유소에서 낙남금오지맥의 두 번째 구간 종주 길에 올랐다. 흐린 날씨에 기온이 생각보다 낮아 산행하기에 딱 좋았다. “人心좋은 마음의 고향 北川”의 표지석이 세워진 고개 마루에서 동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가다 만난 두 곳의 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진행해 330봉을 우회했다. “고사리재배단지 외인출입금지 변상조치”라고 써 넣은 나무판 떼기를 보고 재배농민들이 얼마나 화가 났으면 변상조치를 하겠다는 경고문을 써놓았을까 싶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삼거리에서 남쪽으로 진행해 “황토재1.4Km/시루봉정상2.2Km"의 표지목이 세워진 나지막한 봉우리에 다다랐다. 이 봉우리에서 내려선 깊숙한 안부 아래로 경전선이 지나는 터널이 나있는 것 같은데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쳐 해발고도 340m대의 무명봉에 올라서자 아랫마을에서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내려가다가 완만한 길을 따라 한참동안 걸어 올라 만난 짧은 비알 길을 숨 가쁘게 올라 477m봉에 올라서자 삼각점과 "황토재2.8Km/시루봉0.8Km"의 이정표가 보였다.
9시53분 계봉에 다다랐다. 긴 의자에 편히 앉아 10분 가까이 머무른 477m봉을 떠나 계봉에 이르기까지 18분이 걸렸다. 평평한 길을 따라 진행하다 만난 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들어서 고스락이 평평한 이정표 상의 시루봉으로 올라가 “달구봉(鷄峰)”의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이봉우리가 1/5만 지형도에 나와 있는 계봉임을 확인했다. 계봉에서 동쪽으로 1.7Km 떨어져있는 해발570m의 이명산은 운무에 에워싸여 주봉인 상사봉의 상체만 보였고 북서쪽의 지리산도 주능선 바로 아래까지 안개가 꽉 차 능선 길이 직선으로 보였다. 잠시 안개가 바람에 밀린 사이 상반신을 내보여준 남쪽의 금오산을 넘어가려면 서둘러야겠다 싶어 곧바로 표지목의 “개고개(양보)”가 가리키는 남쪽 길로 내려섰다. 소원성취탑을 지나 내려선 안부에서 꼭 계곡길만 같은 왼쪽 길로 내려가다 “편백휴양림 100m”의 이정표가 세워진 삼거리를 지나 표지기가 몇 개 걸려있는 공터에 이르렀는데 길 찾기 좋은 길은 이곳에서 끝났다.
11시1분 오른쪽 위로 보리밭이 펼쳐지는 시멘트 길로 들어섰다. 표지기가 걸려있는 공터를 지나자 길이 희미해지는 가 싶더니 이내 없어져 일단 직진해 묘지에 이르렀다. 오른쪽으로 조금 이동해 바로 아래 시멘트 길로 내려서고자 하였으나 관목이 우거진 숲을 뚫고 나갈 수가 없어 다시 묘지로 되돌아와 잠시 숨을 돌렸다. 오른쪽이 안됐으니 왼쪽을 쑤셔볼 수밖에 없다싶어 그 방향으로 5-6분을 뚫고 나가자 시멘트 길이 나타났다. 마침 트랙터 위에 앉아 쉬고 있는 한 분이 보리밭 옆으로 똑바로 올라가면 된다고 말씀해줘 초록의 보리들로 꽉 찬 보리밭 왼쪽 길로 올라갔다. 보리밭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길이 사라져버려 지형도를 보고 방향을 잡은 후 왼쪽으로 꺾어 나지막한 봉우리를 올랐는데 이곳에서 길을 찾느라 십 분 가까이 헤매다가 다시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진행해 임도로 내려섰다. 12시 정각에 도착한 임도사거리에서 나지막한 무명봉에 올라 여기쯤에서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야 주영고개에 이를 것 같은데 그 쪽 방향으로 길이 나있지 않아 그대로 직진했다.
12시53분 주영고개에 도착했다. 무명봉에서 직진해 왼쪽 사면에 들어선 목축지에서 세월을 낚는 듯 한가롭게 쉬고 있는 한 우 몇 마리를 보고나자 능선에 전기가 흐르니 조심하라는 전기줄 펜스만 없었다면 더없이 평화로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묘지와 송전탑을 차례로 지난 지 얼마 후 직진 길이 사라져 오른쪽으로 꺾어 시멘트 길로 내려섰다. 길을 건너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가 아무래도 길을 잘 못 든 것 같아 일단 시멘트 길로 되돌아와 지도를 자세히 본 즉, 이 시멘트 길을 따라 서쪽으로 옮기면 십 수 분 안에 아스팔트 차도가 지나는 주영고개에 이를 것 같았다. 제 판단이 맞아 시멘트 길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한 지 7분만에 주영고개에 도착했다. 고개 마루에 “영산식육식당”입간판이 세워진 주영고개에서 차도를 건너 다시 산길로 들어서며 나뭇가지에 걸린 “섬진강 환종주/감마로드”라는 표지기를 보고 나보다 먼저 섬진강 산(山)울타리환주를 마친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자 맥이 좀 풀렸지만 감마로드 분의 표지기가 끝점인 하동의 두우강까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이제 길 잃을 염려는 없겠다싶었다. 먼저 이 길을 걸은 신경수님이 보았다는 217m봉의 삼각점을 확인하지 못하고 왼쪽으로 꺾어 남쪽으로 이어갔다. 오른쪽 아래로 길이 나있는 능선 삼거리에서 점심을 든 후 5분 간 걸어 과수원 윗길에 이른 시각이 13시53분이었다.
15시8분 안심삼거리에 도착했다. 과수원 윗길로 들어서자 남쪽으로 군사기지가 들어선 금오산이 아주 가깝게 보였다. 과수원 윗길이 끝나자 한동안 흐릿한 길이 이어지다가 얼마 후 경운기가 다녀도 될 만한 넓은 임도길이 나타나 안도했다.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능선삼거리에서 왼 쪽으로 확 꺾여 3-4분간 임도 따라 동쪽으로 진행했다.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아스팔트길로 내려서기까지 길이 좋아 모처럼 산행이 편안했다. 초록색 이끼가 낀 임도 길을 따라 걸어 송전탑 2개를 지나 아스팔트길로 내려선 후 이 길을 따라 왼쪽 아래로 내려갔다. SK이동통신탑과 (주)자연의 블록제품 생산 현장을 차례로 지나 1003번 도로와 만나는 안심삼거리 버스정류장 앞에 도착했다. 1003번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남해고속도로 밑으로 낸 지하도를 통과했다.
16시13분 12번 도로가 지나는 금오산들머리에 도착해 환주산행을 마쳤다. 지하도를 건너 들어선 밤나무 밭에 난 길을 따라 오른 쪽 능선으로 올라선 후 왼쪽으로 꺾어 나지막한 봉우리를 넘어가자 시멘트 길이 나타났다. 과수원 왼쪽 능선을 따라 꼭대기로 올라서자 오른 쪽으로 지리산의 주능선이 선명하게 보였고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지리산 영신봉의 위치도 가늠되었다. 과수원 꼭대기에서 다시 숲길로 들어가 길이 희미한 마루금을 이어가느라 얼마간 마음 졸이다가 안심삼거리를 지난 지 1시간이 다되어 건너편에 “I'm 허브”가 보이는 12번 도로를 건넜다. 경사가 완만한 이 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옮겨 고개마루에 도착하자 금오산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길이 보였다.
18시10분 진교 버스정류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다. 금오산들머리에서 12번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조금 이동해 왼쪽으로 난 산악자전거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문을 닫아 썰렁한 약수골랜드에 도착해 왼쪽 계곡을 건너자 금오산 등산로가 그려진 안내판이 보였다. 정상까지 4Km라면 오르는 데 2시간이 족히 걸려 이산을 넘어 가려면 야간산행이 불가피할 것 같아 멈추고 다시 고개 마루 들머리로 돌아갔다. 남은 떡을 마저 꺼내 든 후 그다지 멀 것 같지 않은 진교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고 12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비록 차들이 쌩쌩 달리는 차도를 따라 걷는 것이기는 했지만 저녁 무렵 시골 풍경이 정겹게 느껴졌다. 막 모를 내어 흙탕물이 흥건한 논배미를 카메라에 옮겨 담는 동안 아버지를 따라 모를 내러 다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시골에 남아 농사짓기가 싫어 죽어라고 공부했던 나는 아직도 귀향해서 살 생각이 없다만, 나이가 들수록 시골 풍경이 점점 정감 있게 느껴지는 것은 내 본바탕이 시골 촌놈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교에서 4-5분을 기다렸다 진주 가는 버스에 몸을 실고나자 아스팔트길을 오래 걸어서인지 발바닥이 계속 후끈거렸다.
여암 신경준선생은 길은 걷는 사람이 임자라 하셨다. 한참 헤매다가 길을 찾거나 새로 내어 진행할 때마다 이 길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기쁨도 없다면 누가 힘들여 길을 내겠는가? 내가 낸 길도 지나고 나면 새 주인을 기다릴 것이다. 먼저 표지기를 걸어놓은 몇 분들 덕을 많이 보았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의 주인이 되었던 분들이다.
환주기51:낙남금오지맥 3구간(12번도로금오산입구대송마을1.1Km 전방지점능선)
*산행일자:2010. 5. 29일/ 7시53분-15시40분(7시간47분)
*소재지 :경남하동
*산높이 :금오산849m
*산행코스:12번도로변 금오산입구-금오산-대송마을1.1Km 전방지점능-덕천리버스정류장
문명이 새로 만든 길은 문화가 다져주어야 비로소 제 몫을 할 수 있다. 인류역사에서 새롭게 길을 만드는 데는 문명의 발달이 큰 몫 했다. 먼 옛날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제국의 문명이 여타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발전했기 때문이다. 인류가 쌓아온 문명을 활용해 어렵게 열어놓은 길도 문화가 그 길을 다져놓지 않는다면 미완성의 길로 남게 된다. 문화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형성되고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에서 교류된다. 새 길 가까이에 사람들이 모여 살고 이 길로 서로 왔다 갔다 하면 길은 저절로 다져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길은 인류에 최고의 편리함과 편안함을 안겨준다. 이렇듯 길은 문명과 문화가 손잡고 일궈낸 것이기에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반열에 들어갈 만하다는 생각이다.
이번에 금오산을 오르며 길의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경남하동의 남해바다에 면한 금오산은 그 높이가 거의 850m에 이르러 KT의 통신기지와 공군기지가 들어앉을 정도로 요지의 산이어서 정상을 오르는 길이 여기 저기 잘 나있다만, 내가 이어가야 하는 이 산 북쪽 산줄기만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어서 그렇지 못했다. 12번 도로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북쪽 능선을 따라 이 산 중턱의 아스팔트길까지 오르는 2Km가 채 안 되는 능선이 낙남금오지맥의 마루금을 잇기 위해 내가 밟은 길인데 잡목들이 우거지고 가시나무들이 뒤엉킨 숲길이어서 이 숲을 빠져나가 아스팔트길로 올라서는데 2시간이 넘겨 걸릴 정도로 엄청 고생했다. 그리 고생을 하고나자 길이란 참으로 편리하고 편안한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문명이라는 씨줄과 문화라는 날줄이 교직되어 만들어진 것이 길이기에 제대로 된 길이라면 그 길에 문명의 편리함과 문화의 편안함이 깃들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 당연함에 묻혀 오래 잊고 지냈던 길의 고마움을 새삼 인식했다. 더불어 문명과 문화가 배제된 곳에서는 하루도 살 수 없음도 같이 느꼈다.
아침7시53분 12번 도로변에서 시멘트 길을 따라 남쪽 위에 자리한 금오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시멘트 길은 바로 끝나고 같은 노폭의 비포장 흙길을 따라 올라가 과수원 안으로 들어섰다. 다닥다닥 달린 이름 모르는 풋과일이 풋풋해 보이는 것도 잠깐이었다. 과수원꼭대기에 이르자 길이 끊겨 길을 새로 내어 마루금을 이어가야 했는데 이 일이 결코 애들 장난이 아니었다. 지나간 발자국이 보일 듯 말듯 남아 있는 흐릿한 길을 쫓아가다가 관목들이 꽉 들어찬 숲속으로 들어간 길을 찾아 이어가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했다. 이제 길을 찾아 마루금을 이어간다는 것은 포기했고 대신에 남쪽으로 방향을 잡은 후 그래도 나무들이 덜 우거진 곳을 찾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고도를 조금씩 높여갔다. 작년여름 이 길을 먼저 오른 신경수님의 “그리운 마음으로 하늘금 따라 백두산 가네”의 핑크색 표지기가 없었다면 이 길을 포기하고 다시 내려가 약수골랜드에서 출발하는 편안한 길로 올랐을 것이다. 산행시작 1시간 만에 올라선 해발고도가 380m가량 되는 능선에서 잠시 쉬었다. 12번 도로를 지나는 차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는데 어인 일인지 새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 차 소리가 끊어지면 사방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9시12분 해발고도 380m대의 공터를 출발했다. 간벌을 한 소나무 밭을 지나 묘지에 다다르자 희미한 길마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아 난감했다. 길을 가로막아 진행을 막는 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철쭉과 싸리나무였고 겉옷을 뚫고 사정없이 찔러대는 가시나무는 도둑을 막고자 시골집에서 심기도 하는 청미래 가시였다. 어렵게 나무숲을 뚫고 고도를 높여가다 묘지를 만나면 그래도 마음이 놓이는 것이 후손들이 성묘 차 다녀갔을 것이기에 잘하면 길이 나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묘지를 다시보자 그런 기대가 부질없어 보이는 것이 언제 후손들이 다녀갔는지 어림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묘지가 전혀 관리되지 않았다. 그래도 묘지의 공간은 여느 숲보다 넓어 쉬어가기에는 좋은 곳이기에 나무숲을 뚫고 갈 힘을 비축하기 위해 10분여 쉬었다. 건너 산자락에서 멧돼지가 포효하는 소리를 듣고도 두렵지 않은 것은 녀석이 이곳까지 와서 나를 해칠 리 만무하고 무엇보다도 이 숲을 어떻게든 빠져나가 금오산을 넘는 것이 더 다급한 일이어서 그러했다. 묘지를 지나 희미한 발자국 같은 것을 따라 좌우로 오가면서 고도를 높여 465m능선에 오르자 가지에 달랑 하나 남은 철쭉 꽃송이가 나를 반겼다.
10시35분 해맞이 쉼터로 이어지는 아스팔트로 빠져나와 잡목 숲과의 전쟁을 끝냈다. 465m능선에서 철쭉 꽃송이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곧바로 치고 올라 처사김해김공 묘지에 이르렀고 얼마 후 다다른 또 다른 묘지에서 짐을 풀고 푹 쉬었다. 고통스러운 잡목 숲 빠져나가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면서도 전혀 두렵지 않았던 것은 신경수님의 산행기를 읽고 이러리라고 각오한 바이고 지도, 나침반, 고도계 및 그동안의 경험을 총 동원한 진행이었기에 고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이 숲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해서였다. 그리고 비가 오지 않았고 오전 이른 시각이어서 초조하지도 않았다. 10분간의 휴식을 끝내고 앞서보다는 흔적 같은 것이 제법 보이는 희미한 길을 따라 5분을 오르자 포장도로가 나타나 이제 살았다 싶어 5분간 꼼짝 않고 서서 숨을 골랐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2-3분을 올라가 길 오른쪽에 서있는 “약수골1.4Km/해맞이정상2.6Km"의 이정표를 지났다. 이번 산행이 마루금을 이어가는 지맥종주가 아니었다면 나도 편안한 약수골 길로 올라왔을 것이다. 햇살이 따가워 그늘이 없는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다시 산길로 들어섰다. 이어지는 산길이 여느 산길보다 좁고 흐릿했지만 앞서 길이 없는 숲속을 뚫고 나와서인지 이 좁은 길이 마치 고속도로 같았다.
12시32분 해발849m의 금오산을 올랐다. 산길로 들어서자 새들이 쉬지 않고 조잘댔다. 나뭇잎에 가려 햇살이 미처 닿지 못하는 숲속에서 길을 찾아 헤맬 때는 침묵을 지켜 으스스한 분위기조성에 일조한 새들이 내가 훤한 곳으로 빠져나오자 마구 지저귀어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다. 지리산과 백운산의 사이를 굽이돌며 흐르는 섬진강이 한눈에 잡히는 전망쉼터에 이르자 밉살스런 새들의 재잘댐이 비로소 산상의 음악으로 들렸다. 전북장수의 팔공산에서 발원해 광양제철소 앞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섬진강이 내달려온 길이 220Km 안팎인데 이 강에 물을 대는 울타리산줄기가 630km에 이르기에 환주 산행 중에는 멀리 떨어진 섬진강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고생스러운 잡목 숲길을 빠져나와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이 내려다보이자 하도 반가워 나도 모르게 주기도문을 외웠다. 산 오름을 계속해 12시2분 경 삼각점이 박혀 있는 무명봉에 올라섰다. 얼마 후 왼쪽으로 내려가 아스팔트길을 따라 올라가며 통신소를 지나고 군부대를 왼쪽으로 휘돌아 길 아래 자리한 해맞이공원 위를 그냥 지나 금오산봉수대 앞으로 올라가 멈췄다. 정상에 군사기지가 들어앉아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금오산의 해발고도는 850m로, 바다 건너 정남쪽으로 보이는 남해의 금산보다 훨씬 더 높아 전망이 빼어났다. 여기서 맞는 해돋이 또한 일품일 것이기에 하동군에서 이 산 남사면에 해맞이공원을 만들었을 것이다. 봉수대 앞에서 조금 더 걸어 표지기가 많이 걸린 삼거리에서 왼쪽 아래로 덕천리 길로 내려섰다. 청소년수련원에서 올라오는 젊은이를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조금 내려가 점심을 들었다.
14시20분 “대송입구 1.1Km/정상(해맞이공원1.9Km)” 이정표가 세워진 능선삼거리에서 구간종주를 마쳤다. 20분 넘게 쉬면서 점심을 들은 후 13시7분에 오후 산행을 시작했다. 남쪽으로 내려가다 길옆의 마애불을 들러보았다. 굴 안의 암벽에 불상을 새겨 놓은 하동금오산마애불은 부처님 옆에 석탑도 같이 그려놓아 독특했다. 조금 더 내려가 왼쪽으로 청소년수련원 길이 갈렸고 금오지맥 길은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이 산 중턱을 가로지르며 너덜길로 이어졌다. 너덜길이 끝나고 나무계단 길을 따라 해발고도 500m대로 내려서자 경사가 완만해져 걸을 만했다. 거북의 등처럼 표면이 갈라진 바위를 지나 사방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큰 바위에 올라 남해바다를 조망했다. 올망졸망한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남해의 한낮 풍경은 졸리다 싶을 정도로 한가로웠지만 이 바다가 올려 보낸 바람은 그지없이 시원해 바로 이때다 싶어 바지춤을 내리고 거풍을 즐겼다. 이 바위에서 충분히 쉰 터라 7-8분 걸어 다다른 “대송입구 1.1Km/정상(해맞이공원1.9Km)” 삼거리에서 생각 없이 직진한 것이 금오지맥의 마루금을 벗어난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 삼거리에서 5-6분을 더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 능선을 따라 직진코자 했으나 길이 끊겨 가지 못하고 길이 잘 나있는 오른 쪽으로 내려섰는데 한참 뒤에야 이 길이 지맥길이 아니고 덕천리 마을로 내려가는 길임을 알았다.
15시40분 덕천리버스정류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다. 금오지맥의 능선삼거리에서 덕천리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도 완만하고 길도 잘 나있었다. 얼마간 내려가 만난 임도를 따라 오른 쪽으로 내려가자 시멘트길이 나타나 이제 동리가 가까워졌다 했다. 금오산등산로안내판이 서 있는 시멘트 길 삼거리 바로 옆으로 지도에 나와 있는 덕포소류지가 보여 마루금에서 이탈한 것을 확실히 알았지만 어차피 이번 산행으로 섬진강산줄기 환주를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대로 하산했다. 시멘트 길이 끝나고 아스팔트길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한 느티나무 쉼터를 들러 십 수분 간 편히 쉬었다. 모를 내느라 일손이 달리는 요즈음이 배낭을 메고 시골 길을 걷기가 민망한 때여서 동리 앞을 지나는데 신경이 쓰였다. 17번 도로와 만나는 주유소 건너편 슈퍼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든 후 1시간 가까이 기다려 16시30분에 전도로 나가는 버스에 올랐다.
길이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도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고 잘 이어간 마루금을 “대송입구1.1Km"지점에서 벗어난 것은 순전히 순간의 방심 때문이다. 가져간 신경수님의 산행기를 꺼내 읽었다면 직진해 덕천리로 잘 못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능선을 놔두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싶어 그대로 직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직진해서는 안 되는 것이 능선 끝머리에 낭떠러지 채석장이 있어 내려갈 수가 없어서다. 오랜만에 어려운 길을 뚫고 산행하고 나자 이제 어떤 어려운 길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번 산행의 최대소득이 바로 이 자신감이다.
환주기52:낙남금오지맥 4구간(대송1.1Km지점능선-두우산)
*산행일시:2010. 6. 4일/ 7시39분-1740분(10시간1분)
*소재지 :경남 하동
*산높이 :두우산191m, 용산153m
*산행코스:덕포소류지입구-대송1,1Km전방지점능선-용산-두우산-고포리우암 섬진강변
어제 경남하동의 두우산을 올라 섬진강 산(山)울타리환주산행을 마무리했다. 모교인 경동고 총동창회가 주최하는 삼각산 산사랑 대회를 불참하고, 한 대학친구가 주말산행을 같이하자는 모처럼의 제의를 마다한 채 그제 밤 진주로 내려간 것은 한 구간 남은 섬진강산(山)울타리환주산행을 마저 끝내고 싶어서였다. 자칫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다가는 6월27일로 예정된 방송대의 기말시험을 코앞에 두고 다녀오게 될 것 같아 어제 만사 제쳐놓고 마지막 구간을 종주 길에 나서 섬진강 산(山)울타리환주산행을 모두 마쳤다.
섬진강 산(山)울타리환주란 섬진강을 에워싸고 있는 울타리산줄기를 한 바퀴 빙 도는 종주산행을 내 나름대로 이름붙인 것이다. 섬진강에 물을 대는 울타리산줄기는 전남광양의 망덕산-백두대간의 영취산-경남하동의 두우산을 잇는 산줄기로 그 도상거리가 630Km에 달한다. 2007년 5월에 섬진강 하구인 광양의 외망에서 망덕산에서 첫 구간을 시작해 이 강의 서쪽 울타리 산줄기인 호남기맥과 호남정맥을 차례로 종주한 후 북쪽 울타리인 금남호남정맥을 마저 밟아 백두대간의 영취산에 다다른 것은 그해 9월이었다. 호남정맥을 종주할 때만 해도 섬진강을 머릿속에 두고 산행한 것은 아니었는데 그동안 생각이 진화해 내친 김에 영취산에서 두우산에 이르는 동쪽 울타리 산줄기도 마저 밟아 한 바퀴 빙 돌아보자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간 총52회를 출산해 망덕산-백운산의 호남기맥, 백운산-조약봉의 호남정맥, 조약봉-영취산의 금남호남정맥, 영취산-지리산 영신봉의 백두대간, 영신봉-547m봉의 낙남정맥과 547m봉-두우산에 이르는 낙남금오지맥을 차례로 밟아 출발지인 망덕산의 강 건너 두우산에 올라 섬진강 산(山)울타리환주를 모두 마치고 나자 생각대로 해냈다 싶어 정말 가슴 뿌듯했다.
아침7시39분 덕포소류지 입구에서 섬진강환주의 마지막 산행을 시작했다. 진주터미널을 아침6시30분에 출발한 하동행 첫 버스를 타고 전도로 가서 택시로 덕천리마을까지 이동했다. 마을을 막 벗어나 갑자기 길이 좁아지고 경사가 급해지는 시멘트 길에서 하차해 택시를 보내고 아침햇살이 뽀얗게 비치는 시멘트도로를 따라 오르다가 나뭇잎 사이로 덕포소류지가 바로 옆에 보이는 금오산등산로안내판 앞에서 오른 쪽 임도로 들어섰다. 임도가 끝나고 나무계단 길을 올라 길섶에 피어 있는 야생화들과 아침인사를 나누었다. 아침 이른 시간이어서 새들이 지저귀지 않아 더 없이 조용한 산길을 천천히 오르면서 혹시라도 길을 잘 못 들어 섬진강 하구의 두우산까지 진행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살펴달라고 속으로 빌었다. 길에서 벗어나 부글대는 뱃속을 비우고 나자 물을 마셔 빈속을 채웠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배가 꺼지면 힘을 쓸 수 없다며 참을 수 있을 때까지 미루다가 끝내 일을 보고나면 배를 빵빵하게 만들고자 물로 빈 배를 채우곤 했던 것이 불과 반세기 전의 일로, 그 시절에는 이맘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보리 고개가 어느 고개보다 넘기 힘 든 고개였다.
8시55분 “대송1.1Km” 전방지점의 능선에서 낙남금오지맥의 마지막구간에 발을 들였다. 지난 주 이 지점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 길로 들어서야 할 것을 능선 길로 곧바로 진행하다가 엉뚱하게 덕천리마을로 내려가는 바람에 마루금에서 벗어나 이번에 다시 오르는데 1시간 남짓 걸렸다. 가파른 나무계단 길로 내려가다 만난 산중턱의 삼거리에서 대송 길과 헤어지고 오른쪽으로 꺾어 진행하다 얼마 후 임도로 들어섰다. 풀들이 무성한 임도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 시멘트 차도로 들어선 후 뒤쪽을 돌아보자 지맥 길에 낭떠러지 채석장이 보여 “대송1.1Km” 전방지점에서 남쪽으로 길이 난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시멘트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마루금을 제대로 이어가고자 왼쪽 위로 갈리는 임도로 올라갔다. 길을 막는 잡목 숲을 뚫고나가지 못하고 50분 가까이 송전탑 주위만 맴돌다가 10시15분에 다시 시멘트 길로 돌아가 이 길을 따라 19번 국도를 향해 내려갔다.
11시 정각 19번 국도가 지나는 8262부대 앞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쉬었다. 19번 국도를 향해 시멘트 길을 걸어 내려가는 중 왼쪽으로 골망태카페가 자리하고 있어 잠시 들러 마루금을 이어갈 수 있을까를 점검해봤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시멘트 길을 따라 걸어내려 갔다. 반시간을 조금 못 걸어 만난 19번 국도를 따라 왼쪽으로 진행해 금정사입구를 지나고 고개마루까지 걸어 올라가 8262부대 앞에 이르렀다. 능선에 자리한 군부대를 피해 금오마을로 가는 오른 쪽 아스팔트길로 내려섰다. 오랜만에 감자밭을 지나며 만개한 옅은 연분홍색 감자 꽃들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다. 모내기가 한창인 논 뜰을 지나 왼쪽의 마루금으로 복귀한 곳은 금오마을 노인회관이 자리한 고개 마루였다. 여기서 오른 쪽 예비군 훈련장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낸 시멘트 길을 걸었다. 남중한 태양이 거침없이 내리쬐어 시멘트 길이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12시25분 해발153m의 용산에 올랐다. 예비군 훈련장으로 이어지는 길을 15분 남짓 걸어 다다른 느티나무 그늘아래에서 점심을 들었다. 바로 위가 공동묘지인 넓은 공터를 가려주는 느티나무 아래 그늘은 편히 앉을 의자는 없었어도 분명 오아시스였다. 20분 넘게 푹 쉰 후 자리에서 일어나 임도 따라 가다가 곧바로 오른 쪽으로 꺾어 산허리에 낸 큰 길을 따라 올랐다. 이내 왼쪽 위 산불감시센터가 세워진 용산에 올라가 잠시 숨을 돌렸다. 마루금이 뻗어나가는 방향으로 길을 찾지 못해 별 수 없이 희미하게 나있는 길을 따라 왼쪽으로 이동했다. 얼마 후 다다른 좁은 공터에서 길이 끊어져 대충 방향을 잡고 오른 쪽 아래로 내려갔다. 길이 나 있지 않아 조금 걱정이 됐으나 몇 분후 임도가 나타나 이 길을 따라 내려갔다. 묘지가 있는 삼거리에서 시멘트 길을 만나 오른 쪽으로 진행했는데 이 길에 바짝 붙어 낸 수로를 따라 콸콸 흐르는 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용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나가는 지맥 능선 남쪽 아래 산허리에 수로와 나란히 낸 시멘트 길을 따라 걸어 17번 군도로 고개마루에 도착한 시각은 12시55분이었다.
13시51분 별빛농장 조금 못 미친 임도 길에서 20분가량 쉬었다. 17번 군도를 지나 고가로 이 도로를 건넌 수로를 다시 만났다. 청암댐의 물을 해안가 개간지로 공급하고자 설치했다는 길이가 10Km는 족히 될 만한 수로를 따라 계속 서진하면서 시뻘건 황토 흙이 파헤쳐진 도로공사장을 지났다. 햇빛을 가릴 그늘이 별반 없는 수로 옆길을 1시간 반 넘게 걸어 지겹다는 생각이 들 즈음 수로는 별빛농장 안으로 사라졌고 임도 길은 오른쪽 위로 꺾여 능선으로 이어졌는데 수로를 따라 걷던 나는 능선에 이르기 직전 그늘에서 한참 동안 쉬었다. 자그마한 인공연못이 조성된 별빛농장을 빠져나가 임도로 내려갔다. 궁항마을 표지석이 서있는 59번 도로의 오른 쪽 고개 마루로 올라가 섬진강호텔 옆길로 들어섰다. 별빛농장에서 갈라진 수로를 14시51분에 다시 만났으나 바로 갈라지고 나는 두우산 가는 길로 올라갔다.
16시10분 해발192m의 두우산에 올라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을 조망했다. 수로 오른 쪽 위로 이어지는 두우산으로 가는 길은 시멘트 길로, 이 길이 내뿜는 지열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시멘트 길이 끝나는 임도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들어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늘을 찾아 다시 쉬었다. 섬진강 울타리산줄기가 끝나는 두우산 정상이 멀지 않은데다 지맥 길도 차가 다닐 만큼 넓고 평평해 긴장이 풀려서인지 잠시 쉬는 사이 졸음이 몰려왔다. 다시 일어나 한참 동안 걸어 다다른 임도사거리에서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서 두우산을 올랐다. 돌탑이 세워진 해발192m의 두우산 정상에서 섬진강산줄기 환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돌봐주신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린 후 옆 자리의 전망바위로 자리를 옮겼다. 섬진강휴게소가 곧바로 보이는 전망바위에서 호남정맥 종주 차 첫 번째로 올랐던 강 건너 망덕산을 사진 찍었다. 2007년 5월 망덕산에서 시작해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과 백두대간 및 낙남정맥 일부 구간을 차례로 밟아 낙남금호지맥에 들어선 것이 그 3년 후인 지난 5월이었고 한 달도 채 안되어 이 지맥의 끝점인 여기 두우산에 오른 것이다. 전북장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220km 거리를 숨 가쁘게 달려와 여기 강 하구를 거쳐 바다로 흘러들어가 일생을 마치지만 이 강에 물을 대는 약630Km에 이르는 울타리산줄기는 자기 자리를 계속 지켜왔고 앞으로도 지켜갈 것이다.
17시40분 고포리우암 섬진강변에서 섬진강산(山)울타리환주산행을 마무리했다. 전망바위에서 반시간 넘게 쉰 후 두우산 남동쪽 끝머리인 고포리로 하산했다. 두우산 동쪽 사면은 경사가 가파르고 길이 나있지 않아 남쪽 임도를 따라 빙 돌아 내려갔다. 햇살은 여전히 따가웠지만 섬진강산줄기환주라는 큰일을 해내 강 하구로 향하는 발걸음은 마냥 가벼웠다. 광양제철이 지척인 강 하구 둑에 올라 건너편 망덕산을 다시 사진 찍은 후 강가로 내려갔다. 그동안 가슴에 담아둔 섬진강의 강물을 두 손을 모아 담아보는 것으로 환주기념 세레머니를 마치고 용포리 버스정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3월 방송대에 입학해 처음 맞는 기말시험이라 아무래도 시간을 내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기말시험을 끝내고 7월부터 다시 낙남정맥 종주를 이어가고자 한다. 폭염이 끝나는 9월부터 약220km에 달하는 섬진강 본류의 강줄기를 따라 걸어볼 뜻이다. 내년부터 낙동강, 한강, 금강, 영산강 등 우리의 대표적인 젖 줄기에 물을 공급하는 산(山)울타리들을 차례로 환주할 생각이다. 산(山)울타리환주가 끝나는 강부터 본류의 물줄기를 따라 걸어보는 것도 실천에 옮길 계획이다.
섬진강 산(山)울타리환주산행에 도움을 준 여러분들에 진심으로 감사 말씀 올린다. 3구간을 우정 산행한 고교동기 이규성교수와 호남정맥 종주 시 여러모로 도움을 준 순천의 깜상님에 특별히 고마움을 표한다. 한국의 산하 사이트에 호남저맥 종주기를 올려 참고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성봉현님과 따라가기님과 함께 오른 조계산 사진을 쓸 수 있도록 보내준 천자봉님에도 감사말씀 드리고 그간 댓글로 격려해주신 많은 분들에도 같은 뜻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