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10.칠보산 산행기
칠보산 산행기
*산행일자:2014. 9. 26일(금)
*산높이 :칠보산810m, 등운산767m
*소재지 :경북 영덕/울진
*산행코스:휴양림 매표소-등운산-유금치-필보산
-유금치-유금사
*산행시간:10시52분-16시4분(5시간12분)
*동행 :경동고24회 김종화/이규성 동문
서양에 상상의 보물섬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실재하는 칠보산이 있습니다. 보물섬이 널리 알려진 것이 영국의 작가 로버트 스티븐슨이 지어낸 소설 “보물섬” 덕분이라면, 경북 영덕의 칠보산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중기 이 산을 찾은 한 중국인이 샘물을 마시고 그 묘미가 이 산의 일곱 가지 보물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혔다는 전설에 힘입어서입니다. 보물섬의 보물들은 값나가는 귀중품이라면, 칠보산의 보물들은 더덕, 황기, 산삼, 돌옷, 멧돼지, 철, 구리 등으로 산삼을 빼고는 이렇다하게 돈 될 만 한 것이 없습니다. 특이한 것은 멧돼지를 일곱 보물의 하나로 삼은 것인데 이는 산삼을 비롯한 더덕, 황기 등의 살아 있는 보물들을 인간을 비롯한 다른 동물들로부터 지켜내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여태껏 칠보산을 오르지 못한 것은 이 산에로의 접근이 쉽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동해안과 내륙을 동서로 가르는 낙동정맥의 삼승령 위 747.2m봉에서 갈라진 산줄기가 동쪽으로 뻗어나가다 바다를 얼마 앞두고 일궈낸 산봉우리가 칠보산입니다. 이 산을 오르려면 일단 낙동정맥을 넘어 동해안의 영해로 가야합니다. 이곳에서 군내버스를 타고 동해안을 따라 북상하다가 금곡리에서 하차해 왼쪽으로 시오리를 걸으면 이 산의 들머리인 칠보산 휴양림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번거로우면 영해에서 택시를 타야하는데 그 요금이 2만원으로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이번에 칠보산을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고교동문 이종규박사의 배려덕분입니다. 이 산에서 멀지 않은 평해에 병원을 차리고 주민들을 진료해온 이박사가 동문 몇몇을 초대해, 나들이를 나선 김에 칠보산을 들렀는데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어 어렵지 않게 칠보산 휴양림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이 산이 숨겨둔 일곱 가지 보물 중 단 하나라도 손에 쥘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첫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10시52분 휴양림매표소를 출발했습니다. 전날 밤 잠자리에 늦게 들어 바닷가 후포에서 일박을 했으면서도 일출을 보지 못할 정도로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자연 산행시작도 조금 늦어졌습니다. 휴양림입구 매표소에서 우리를 태워준 조현 목사와 헤어진 후 왼쪽 시멘트 길을 따라 남쪽으로 7-8분을 진행하다 전망대 바로 아래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본격적인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나무계단 길을 따라 오르는 서진(西進) 길이 경사는 다소 급했지만 날씨가 쾌청한데다 저희가 유일한 산객이어서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뻗은 소나무들이 숨 쉬는 소리가 들릴 만큼 오름 길이 고즈넉했습니다. 이곳 휴양림에서 잘 정비된 계단 길을 따라 오른 지 20분가량 지나 임도를 건넜습니다. 가파른 비알 길을 올라 경주최씨 묘지에 이르기 얼마 전 익히 이름을 알고 있는 투구꽃을 보아 반가웠습니다.
12시31분 해발767m의 등운산 정상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등운산 정상을 0.7Km 남겨 놓은 No.2-2 표지목 지점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이 평탄해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능선 길에 연이어 피어 있는 투구꽃에 눈길을 주느라 들국화를 보듬지 못했습니다. 정상석은 성미 급한 사람이 세웠음이 틀림없는 것은 등운산의 정상은 그곳에서 십 수m 떨어진 전망대가 세워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분의 산행기에 정상을 알리는 삼각점이 나오는데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늘을 찾아 반시간 가량 점심을 드는 동안 남달리 야생화에 박학한 김종화 동문과 요즘 산행에 부쩍 열심인 이규성 동문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이끌어 갔습니다. 헬기장을 조금 지나 서진(西進) 길은 끝이 났고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북진(北進) 길이 시작됐습니다. 강수확률 20%에 구름이 낄 것이라는 일기예보와 달리 깔끔한 하늘에 그늘 길이 시원해 산행하기 딱 좋았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휴양림 길이 갈리는 No.2-1 표지목 지점을 지난 시각이 13시 6분이었습니다.
13시25분 팔각정에 다다랐습니다. No.2-1지점에서 팔각정에 이르는 길은 고도차가 거의 없는 능선 길로 산상의 화원이 따로 없다 할 만큼 투구꽃을 비롯한 구절초(?) 등의 야생화 들이 활짝 피었는데 단연 돋보이는 꽃은 이번 산행에서 딱 한 번 만난 용담꽃이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용쓸개’로 명명하지 않고 ‘용담(龍膽)’으로 점잖게 부른 것은 이 꽃을 대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용의 쓸개보다 더 써서 이 꽃을 용담으로 이름을 정했다는 설명은 그럴 듯하지만 용이 실재하는 동물이 아니라는 것이 맹점으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용담은 한방에서 식욕부진이나 소화불량에 사용하며, 건위제나 이뇨제로 쓰인다 하니 다른 약처럼 입에 쓰기는 쓴가봅니다. 모든 꽃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용담꽃처럼 대접받는 것은 아닙니다. 앉은뱅이꽃, 개불알꽃과 일년생 만초인 며느리밑씻개의 꽃도 어엿한 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꽃들에 비속한 이름을 지어준 것은 이 꽃들을 얕잡아보아서입니다. 국화꽃은 오상절개라며 추켜세우면서 야생화를 얕잡아본 것은 그 옛날 우리 사회의 언어생태가 그다지 건강하지 않았음을 일러주는 것 같아 씁쓰레하기도 합니다.
해발700m가 넘는 높은 곳에다 팔각정을 설치한 것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칠보산의 보물을 찾아보라는 뜻에서일 것입니다. 팔각정에 오르면 이 산이 숨겨둔 일곱 가지 보물 중 어느 하나라도 눈에 띌 법하건만 그렇지 못한 것은 인간의 게걸스런 탐욕을 익히 알고 있는 맹수 멧돼지가 보물들을 모두 숨기고 자기도 함께 숨은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른 산에서 자주 보아온 멧돼지들이 분탕질한 흔적이 이 산에서만 유독 눈에 뜨지 않을 리가 없어 하는 말입니다.
14시34분 해발810m의 칠보산에 올라섰습니다. 팔각정에서 781m봉에 이르는 능선 길도 평탄했습니다. 우리나라 숲의 극상림으로 알려진 희멀건 서어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어 능선 길이 훤했습니다. 언제 올랐는지 모르게 힘 안들이고 올라선 781m봉에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781m봉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해 오른 쪽 아래로 유금사 길이 갈리는 유금치를 막 지나자 넓은 헬기장이 나타났습니다. 남서쪽 멀리 여러 대의 풍력발전기가 촘촘히 자리하고 있는 긴 능선이 두 해전 종주한 낙동정맥의 명동산 구간이어서 엄청 반가웠습니다. 십 수분 후 칠보산 정상에 올라서자 탁 트인 동해바다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중국인이 보물을 정하기 전에 칠보산에 올랐다면 동해를 조망할 수 있는, 그래서 장대한 일출을 온전히 지켜볼 수 있는 이 산 정상을 보물로 정하고 멧돼지를 뺐을지도 모릅니다. 먼저 오른 한분이 작성한 지도에는 정상에서 유금사로 내려가는 지름길이 표시되어 있지만 길이 흐릿해 유금치로 되돌아갔습니다.
16시4분 유심사 입구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유금치에서 동쪽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이 경사가 급해 7부(?) 능선쯤에서 지그재그 길로 바뀌었습니다. 휴양림 남쪽의 전망대에서 등운산으로 오르는 길이 송림길인데 비해 여기 하산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참나무였습니다. 유금천의 발원지로 여겨지는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한지 얼마 안지나 넓은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오른 쪽으로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가 다리 건너 조금 후 임도를 버리고 왼쪽 길로 내려갔습니다. 한 여름 장마철이라면 수량이 많아 제법 시끄러웠을 왼쪽 계곡에서 큰 소리 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산에 가을이 찾아와 만산홍엽을 뽐낼 날도 멀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유금사 입구의 유금교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모두 마치고 바로 위 유금사를 둘러보았습니다. 유금사는 신라 선덕여왕의 왕명을 받고 자장율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대웅전 뒤뜰에 보물684호로 지정된 영덕유심사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어 더욱 유명합니다.
이번 산행으로 국내의 칠보산 세 곳을 다 올랐습니다. 북한의 칠보산까지 셈하면 한반도의 칠보산은 모두 네 곳입니다. 경기 수원의 칠보산은 산삼, 맷돌, 잣나무, 호랑이, 사찰, 장사와 금으로 원래 보물이었던 황금숫탉이 사라져 팔보산에서 칠보산으로 바뀌었고, 충북괴산의 칠보산은 금, 은, 산호, 거저(바다조개), 마도(석영), 파리(수정)과 진주를 일곱 보배로 삼았다 합니다. 북한의 칠보산은 함경의 금강으로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산으로 원래 7개의 산이 있어 칠보산으로 명명된 것인데 나머지 여섯 산이 바다에 잠기고 지금의 칠보산만 남아 있다 합니다. 이렇듯 칠보산이 내세우는 보물이 여러 가지인데도 서로 겹치는 것은 오로지 산삼과 금뿐으로, 이것들은 시공을 뛰어넘어 수많은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보물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보물 금에 3가지가 있다는 것은 전날 밤 일행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알았습니다. 동기 조현 목사의 이야기인즉 황금(黃金)보다 소중한 것이 소금이고, 이들 둘보다 훨씬 더 귀중한 또 하나의 금이 바로 지금(只今)이라는 것입니다.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친 것이 바로 지금이라는 설명을 듣고 과연 그렇겠다 싶어 고개를 끄떡였습니다.
비록 일곱 보물 중 어느 하나도 찾지 못하고 하산했지만, 그보다 훨씬 소중한 보물이 ‘지금’임을 깨닫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깨달음의 자리를 마련해준 이종규 동문과 ‘지금’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준 조현 동문, 그리고 함께 일곱 보물을 찾아 칠보산 산행에 나선 김종화, 이규성 양 동문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