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지역 명산/지역명산 탐방기

B-18.금병산 산행기(춘천)

시인마뇽 2016. 6. 30. 16:32

                                                                금병산 산행기(춘천)

 

                                                                   *산행일자:2016. 6. 27()

                                                                   *소재지 :강원춘천

                                                                   *산높이 :해발 652m

                                                                   *산행코스:김유정역-서릉사거리-금병산-남서릉삼거리

                                                                 -김유정역

                                                                   *산행시간:1320-1758(4시간38)

                                                                   *동행 :나홀로 



 

 

   두 달 전 김유정문학촌을 다녀오고도 탐방기 작성에 손을 대지 못한 것은 올 봄에 입학한 강원대 대학원의 공부가 만만치 않아 김유정문학의 산실이랄 수 있는 금병산을 다녀오지 못해서였습니다. 지난 주 월요일 소논문 2편을 제출하는 것으로 1학기 과정을 마무리 짓고 어제야 비로소 소논문 작성에 참고하고자 빌린 도서들을 학교도서관에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에 김유정역에서 하차하여 춘천의 금병산을 올랐습니다.

 

   해발6m대의 금병산은 강원도의 산치고는 결코 높은 산이라 할 수 없는 그저 그런 산입니다. 이런 산이 많은 사람들에 회자되는 것은 일제강점기 봄봄, 동백꽃, 만무방등의 주옥같은 단편소설을 지어낸 소설가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의 고향 산이기 때문입니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은 유복하게 보냈으나 맏형의 탕진으로 궁핍하게 살다가 폐결핵으로 요절한 김유정이 시골에서 농사 지며 사는 사람들에 따뜻한 눈길을 줄 수 있었던 것은 후덕해 보이는 금병산을 진산으로 삼아 들어앉은 실레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서일 것입니다. 김유정의 소설에 실레마을과 금병산에 나있는 산길이 배경으로 자주 묘사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김유정이 태어난 실레마을(증리, 甑里)은 금병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움푹한 떡시루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김유정이 지은 봄봄12편의 단편소설에 나오는 점순이 등 쟁쟁한 인물들이 활동했던 무대도 실레마을과 금병산자락이었습니다. 금병산 자락에 낸 실레이야기길을 걷노라면 <들병이들이 넘어오던 눈웃음길>,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 <응오가 자기논의 벼를 훔치던 수아리길> 등 재미난 이야기마당을 무려 16개소를 만나게 됩니다. 금병산을 찾아오는 많은 분들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 길을 걷습니다. 저는 이번에 금병산의 정상등정을 목표로 해서 산행을 한 것이서 실레이야기길은 정상을 오르는 길에 몇 마당만 지나 그저 이런 길이구나 하는 분위기만 감지하고 내려왔습니다.

 

   1320분 김유정역을 출발했습니다. 김유정역에서 하차해 10분여 산행을 채비한 후 역사를 빠져나와 남쪽으로 조금 이동했습니다. 차도를 건너고 금병초교 왼쪽의 음식점 거리를 지나 김유정기적비(金裕貞紀績碑) 옆 안내판 앞에서 등산로를 확인한 후 좁아진 시멘트도로를 따라 동진했는데 이 길이 실레이야기길 중 근식이가 자기집 솥 훔치던 한숨길입니다. 마지막 민가인 음식점 금병산 봄봄앞 삼거리에서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곧 바로 왼쪽으로 이어지는 실레이야기길임도를 따라 진행하다가 벤치에 앉아 점심을 들면서 십 수분 쉬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임도 따라 가는 길에 산신각 가는 산신령길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있었습니다. 산신각과 철탑을 차례로 지나고 나자 임도가 왼쪽으로 꺾여 싸리골 저수지 위 계곡 쪽으로 이어졌는데 내려가는 이 길이 금병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맞는지 긴가민가해 주위를 돌아보며 천천히 걸었습니다. 이내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허름한 민가 아래 네다섯 걸음 될 만한 좁은 폭의 시멘트다리를 건넜습니다.


   1435분 체력단련장이 자리한 서릉사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시멘트다리를 건너자 통나무 계단의 도련님이 이쁜이와 만나던 수작골길을 오르다가 임도를 보수하고 내려오는 몇 분을 만나 이 길이 정상으로 오르는 길임을 확인했습니다. 천천히 걸어올라 만난 능선사거리는 체력단련장이 들어설 만큼 쉼터가 넓어 잠시 짐을 벗고 쉬었습니다. 직진 길은 실레이야기길로 넓은 임도로 이어졌고, 1리 길은 왼쪽 아래로 길이 갈렸습니다. 더 이상 실레이야기길을 따르지 못하고 오른 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정상가는 길을 올랐습니다. 오름 길에 이번 산행 중 유일하게 사람을 만났는데 곤충채집을 하는 대학생처럼 보였습니다. 철탑을 지나서도 쉬지 않고 올라 다다른 406m봉에서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른 후 잠시 후인 157분에 내려선 곳이 금병산 정상 1Km전방지점의 안부사거리였습니다. 왼쪽 아래로 2.2Km 내려가면 김유정 문학촌이 나오고 오른 쪽으로 만무방길이 갈리는 안부사거리에서 서릉 길을 따라 동진했습니다.

 

   16시 정각 해발652m의 금병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안부사거리에서 오래 오르지 않아 만난 적송지대는 바로 밑 왼쪽 아래로 낭떠러지 암벽이 받쳐주어 밋밋한 산길을 걷다가 모처럼 변화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올 들어 처음으로 매미소리가 귀에 잡혔고 경쟁하듯 재잘대는 새들의 노래 소리도 잘 들렸습니다. 평탄한 능선길이 해발 550m대부터 가팔라져 로프로 가드레일을 해놓은 것 같은데 막상 올라보니 생각만큼 경사가 급하지 않아 쉬지 않고 정상까지 내달음질쳤습니다. 넓은 데크에 세워진 정상석을 사진 찍고 나서 춘천시내와 대룡산을 조망한 후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 헬기장 모서리의 그늘진 곳에서 떡을 꺼내 들며 15분을 쉬었습니다. 서릉사거리에서 금병산까지 이어지는 서릉길이 동진길이라면 정상에서 하산하는 남서릉길은 서진 길입니다. 양 능선 가운데로 계곡물이 흐르는 싸리골이 자리하고, 그 싸리골 끝머리의 평평한 곳에 자리했을 넓은 들판은 지금은 철로가 가로 질렀습니다. 김유정 일가의 지주생활의 터전이 되었을 광활한 전답은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실레마을 일부에 김유정문학촌이 자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1715분 남서릉삼거리에서 오른쪽 아래 김유정역으로 가는 길로 내려섰습니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남서릉 길은 정상 바로 아래 헬기장을 지나 고도를 계속 낮추어 서쪽으로 이어집니다. 이 능선을 따라 걸어 한참 후 안부로 내려서자 오른 쪽 아래로 김유정문학촌 길이 갈리는데 이 길이 싸리골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안부를 지난 지 얼마 후 다다른 무명봉에서 잠시 쉰 후 계속 이어간 남서릉 길은 해발300m대에서 좀처럼 고도가 떨어지지 않고 날파리들이 계속 눈앞에서 알쫑거려 짜증스럽기도 했지만 여러 마리의 까마귀들이 산등성으로 올라와 까악 깍 울면서 저를 반겨 이들에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무명봉의 통나무 벤치에서 잠시 쉰 후 조금 내려가 몇 분을 걷자 오른 쪽 아래로 김유정역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금병산2.60Km/김유정역1.75Km/중외리(한돌)”의 표지목이 세워진 삼거리에서 중외리로 향하는 능선 길을 버리고 오른 쪽 길로 내려섰습니다.

 

   1758분 김유정역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능선 삼거리에서 김유정역으로 내려가는 길은 능선 길처럼 넓지 않아 하산 길이 고즈넉했습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내려가 다다른 체력단련장은 잣나무숲 산림욕장에 설치되어 있어 쉬어가기에 딱 좋은 곳이어서 그냥 지나치기가 많이 아쉬웠습니다. 얼마간 더내려가 내려선 임도는 정상을 오를 때 걸었던 길로 오른 쪽으로 조금 옮기면 산신각을 지나게 됩니다. 왼쪽으로 임도 따라가다 음식점 금병산 봄봄에서부터는 시멘트 길로 걸어 내려가 김유정역에서 금병산 산행을 마쳤습니다.

 

   김유정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다 금병산의 실레이야기길을 걸으며 작품을 구상했을 김유정을 떠올렸습니다.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김유정(1908-1937)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맏형의 유산탕진 때문이었습니다. 박녹주와의 일방적 연애가 실패로 끝나고 실레마을로 귀향한 김유정은 친구 안회남의 도움으로 1933년 잡지에 <산골나그네><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합니다. 김유정이 문단에 등단한 것은 1935<소낙비>로 조선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된 1935년입니다. 등단 두해 후인 1937년 이 세상을 뜨기까지 채 5년이 되지 않은 짧은 창작기간 중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면서 금따는 콩밭”, “노다지”, “만무방”, “”, “동백꽃30여편의 소설을 써냈습니다. 폐결핵으로 생을 마감한 김유정이 우리 문학사에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놀라운 창작열과 가난에 허덕이는 농촌과 농민에 대한 애정이 있어 가능했을 것입니다. 김유정 문학에 대한 저의 관심은 김유정문학촌 탐방기에 풀어놓을 생각이어서 여기서는 이만 맺고자 합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