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65.서독산 산행기
서독산
*산행일자:2017. 4. 19일(수)
*소재지 :경기광명
*산높이 :서독산222m
*산행코스:황룡사버스정류장-서독산-활공장-군부대초소
-안서초교-박달고개-군부대정문-박달고개
*산행시간:11시58분-15시38분(3시간40분)
*동행 :나홀로
지난달 15일부터 광명시의 오리서원에서 매주 수요일 오전10시부터 12시까지 인문학강좌를 수강하고 있습니다. 총10주로 짜인 이 강좌에서 서예, 음악, 시문은 물론 역사, 정치 등 다양한 장르를 배우고 있어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강의가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가곤 했던 제가 이번 주에는 산 속의 연초록 나뭇잎이 무척이나 싱그러워 인근의 서독산(書讀山)을 올랐습니다. 산 이름이 서독산(書讀山)인 것은 혹시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선생께서 이 산을 올라 책을 읽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선조 최고의 재상으로 존경받는 오리 선생이라면 능히 책을 들고 이 산에 올라 독서를 했을 것입니다. 해발 200m대로 고도가 낮은 편이고 오름 길에 위험한 곳이 전혀 없는 이 산을 오르내리는 것은 선생께서 생존해 계셨던 5백여 년 전에도 별반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산(茶山) 정약용 (丁若鏞)선생은 약종, 약전 형님들과 함께 향리인 능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해발600m대의 철문봉을 자주 올라 학문을 연마했다는데, 오리선생께서 향리의 이 산을 외면하셨을 리가 만무했을 것입니다.
저도 산을 오를 때는 책을 꼭 챙겨갑니다. 어느 한 산줄기를 정해 종주하는 제가 주로 가는 산들은 거의 다가 먼 지방에 있어,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꽤 깁니다. 제가 책을 휴대하는 것은 차 안에서 무료한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지만, 가끔은 집근처 산을 올라 독서삼매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작년 한해 소설을 포함해 총121권을 읽을 수 있었던 것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책을 읽는 버릇이 몸에 밴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오전 11시58분 황룡사버스정류장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오리서원에서 안양 쪽으로 300-400m 떨어진 황룡사버스정류장을 출발해 곧바로 밭가로 길이 난 오른 쪽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지난 2일 이 길로 하산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연초록의 나뭇잎이 70%(?) 가량 산을 덮어 그새 봄이 몰라보게 난숙해졌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들머리에서 이십분을 조금 못 걸어 다다른 능선을 타고 올라가 서독산 정상과 거의 같은 높이의 무명봉에 올랐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시작된 남진 길은 한남구름단맥이 갈라지는 한남정맥의 150m봉까지 계속됩니다만, 이번에는 거리 상 중간 가량 되는 박달재까지만 진행했습니다.
12시40분 해발222m의 서독산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앞서 도착한 무명봉에서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조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선 봉우리가 서독산 정상인 전망대 봉우리입니다. 광명시의 동쪽만 볼 수 있는 반쪽자리 전망처인 이 봉우리가 이 산의 정상봉이라고 확신하게 된 것은 지난번에 그냥 지나친 측량기준점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전망대에서 만난 한 젊은 친구로부터 한남구름단맥 종주 길의 대강을 전해 들었습니다. 박달재까지만 가겠다는 원래 계획을 수정해 이 단맥이 갈라지는 한남정맥의 150m봉까지 진행하기로 하고 도고내오거리로 내려가 안서초교로 이어지는 남진 길로 들어섰습니다.
6년 전 이 산줄기를 종주한 신경수님이 명명한 한남구름단맥이란 수암봉 북서쪽에 자리한 한남정맥 상의 150m봉에서 북쪽으로 분기되어 박달고개-도고내오거리-가학산-구름산-도덕산-광명시청을 차례로 지난 다음 목감천과 안양천에 합류되는 지점에서 끝나는 산줄기로 그 전장은 약 16Km에 달합니다. 지난 2일 광명시청 인근의 철산역을 출발해 도덕산-구름산-가학산-도고내오거리 구간을 끝내고 서독산을 거쳐 황룡사버스정류장으로 하산 한 바 있어, 이번에 도고내오거리-박달고개-150m봉의 남은 구간을 마저 다하고자 산행을 서둘렀습니다.
13시31분 첫 번째 활공장을 출발했습니다. 도고내오거리에서 2.6Km 전방의 안서초교로 가는 남진 길은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능선 왼쪽 아래 허리 길로 이어졌습니다. 날씨도 쾌청하고 전날 내린 비로 연초록 나뭇잎에 생기가 감도는데다 감미로운 봄바람이 더해져 산행하기에 더 할 수없이 좋았습니다. 자연 여유도 생겨 진달래, 늦깎이 벚나무와 조팝나무들이 꾸민 산상의 화원에도 눈길을 주었습니다. 오래 걷지 않아 다다른 첫 번 째 활공장은 비교적 넓은 편으로 서쪽 아래 군부대가 훤히 내려다보였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가지고 간 좌구명의 『춘추좌씨전』을 십 수분 간 읽어 서독산(書讀山)에 대한 예의를 차렸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탄광이었을지도 모르는 굴을 사진 찍은 후 남진 길을 이어갔습니다. 더러 더러 바위 길도 지나 두 번째 활공장에 이르렀는데, 해발180m로 표기된 서독산 정상 표지목이 걸려 있어 의아했습니다.
14시26분 약수터 갈림길을 지났습니다. 서쪽 아래로 가깝게 보이는 남안양톨게이트를 사진 찍은 후 두 번째 활공장을출발했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 경사가 완만한 넓적한 바위에 올라 광명시 동쪽을 조망하며 먼발치의 관악산을 카메라에 옮겨 담아왔습니다. 10분도 못 걸어 군부대 초소와 철책이 보여 걱정했는데 20-30m를 앞에 두고 오른 쪽 아래로 급경사 길이 나있어 다행이다 했습니다. 능선에 설치한 군부대 철책을 오른 쪽 아래로 에돌아 약수터에 이르렀습니다. 물의 양은 넉넉했지만 수질이 어떤지 몰라 사진만 찍고 마시지 않았습니다. 약수터 갈림길에서 직진하는 한우마을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행로가 바뀌는 안서초교 길로 올라갔습니다. 십분 넘게 비알 길을 올라가 능선에 이르자 지금껏 에돌아온 군부대 철책이 방향을 확 바꾸어 남쪽 아래로 이어졌는데 이 철책이 지나는 능선이 한남구름지맥의 마루금임에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군부대가 신경 쓰여 마루금을 버리고 남서쪽 아래 안서초교 길로 빙돌아 내려갔습니다.
15시38분 박달고개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마루금에서 벗어나 한참 동안 내려가자 안서초교가 보였습니다. 안서초교 앞 차도로 내려가 차도를 따라 왼쪽으로 이동하면서 군부대 정문을 지났습니다. 머리 위로 고가도로가 지나는 안양과 목감사거리를 잇는 차도를 건너 왼쪽 박달고개로 올라갔습니다. 지난 주에 와봤던 길이어서 눈에 익은 차도를 따라 걸어 올라 박달재를 넘었습니다. 이 고개에서 조금 내려가 오른 쪽 양봉장으로 이어지는 차도를 따라 걷다가 나지막한 오른 쪽 산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 한남구름단맥 능선에 합류했습니다. 묘지를 몇 기 지나 올라선 봉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군부대철책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손자뻘의 초병이 길이 아니지 다녀서는 안 된다고 해 내려선 정문 앞에서 다시 철책을 따라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옛날 같으면 간곡히 사정해 어떻게든 올라갔겠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그리하지도 못합니다. 초병들이 막아 더 이상 종주산행을 이어가지 못하고 앞서 넘은 박달고개로 다시 돌아가 이번 산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저의 독서습관은 전적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입니다. 학교라고는 단 한 번도 문지방을 넘어보지 못했는데도 어깨너머로 한글을 깨우친 어머니는 5일 장이 서면 머릿짐을 이고 십리를 더 걸어 오일 장이서는 읍내 장터에 가서 육전소설을 빌려와 읽곤 했습니다. 농사철이 끝나 한가한 때면 마실 온 동리 아낙들에 『숙영낭자전』, 『옥루몽』, 『심청전』 등을 읽어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60년이 더 지난 지금에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어머니가 힘들어하면 어린 제가 낭송을 거들어 드렸기 때문입니다.
7년 전 저는 돌아가신 어머니께 ‘어머님 前 上書’를 올린 일이 있습니다. 이 아들이 당신을 꼭 빼어 닮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책을 읽어왔으며 이런 독서문화는 당신 손자들에도 온전히 전해져 이 나라 최고의 대학들을 다니고 있음을 고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읽고 보관해온 1,523권의 책을 분류해 블로그에 올리는 것으로 ‘어머님 前 上書’를 마무리했습니다. 내년 봄에 ‘어머님 前 上書’를 다시 올릴 뜻입니다. 그간 7년 동안 추가로 읽은 책이 5백 권이 다 되며, 어머니가 즐겨 읽은 고전소설도 여러 권 통독했습니다. 무엇보다 내년 봄이면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가게 되어 이 자랑스러운 소식을 어머니께 올리고자 합니다.
며칠 전 세 살 박이 손자를 만났습니다. 아들이 자랑스럽게 전하는 말은 손주 녀석이 책을 엄청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눈이 나빠지지 않도록 너무 많이 책을 읽지 못하게 하라고 말했으나, 속으로는 누구 자손인데 그러지 않으랴 싶어 어깨가 으쓱거렸습니다. 오래 전에 저는 피터 J. 리처슨과 로버트 보이드가 함께 지은 “유전자만이 아니다(Not by genes alone:How culture transformed human evolution)”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의 주 내용은 인간의 진화경로를 바꾸게 한 것은 유전자만이 아니고 문화도 한 몫 한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께서 14살에 시집오셔서 우리 집에 책 읽는 문화를 일구어 놓은 덕분에 저와 아들, 그리고 손자들에게서도 책읽기가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더할 수 없이 고맙고 존경스러워 이 글을 덧붙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