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마뇽 2017. 6. 30. 03:14

                                                                   설봉산 산행기



                                                               *산행일자:2017. 6. 28()

                                                               *소재지 :경기 이천

                                                               *산높이 :설봉394m

                                                               *산행코스:설봉공원입구-설봉서원-영월암-설봉산-화두재

                                                                                    -이섭봉-학소정-설봉공원입구

                                                               *산행시간:1346-1850(5시간4)

                                                               *동행 :나홀로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이천(利川) 땅이 낯설지 않은 것은 요즘도 이천 쌀을 즐겨 사 먹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천 쌀은 여주 쌀과 더불어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될 만큼 밥맛이 뛰어나 가격도 다른 지역의 쌀보다 조금 높습니다. 올해로 19회를 맞는 이천쌀문화축제가 매년 10월에 열릴 수 있었던 데는 이천 쌀의 명성이 한 몫 단단히 했을 것입니다.



   이천의 에 벼화 변 ()’가 들어간 것이 그저 우연이 아니다 했는데, 알고 보니 이천(利川)의 어원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餘地勝覽)의 다음 글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벼()와 전혀 관계없는 이섭대천(利涉大川)’이었습니다.


 

   王太祖之南征也 師大軍行至郡 有徐穆者導之利涉南川 太祖喜之賜令 號入我朝 徐姓達官皆穆之裔 而利川之云亦取利涉大川之義也 (왕태조(王太祖)가 남으로 정벌할 때에 대군을 거느리고 군에 이르니, 서목(徐穆)이란 이가 인도하여 남천(南川)을 무사히 건넜다. 태조가 기뻐하여 지금의 칭호를 주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서씨(徐氏)로서 현달한 관원은 모두 목()의 후손이요, 이천(利川)이란 말 또한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뜻을 취한 것이다.)


 

   주역 (周易)14번이나 나온다는  이섭대천(利涉大川)은 그 사전적 의미가 강을 건너감이 이롭다는 것으로, 주역에서는 대체로 학문과 덕을 쌓고 몸을 기르면 험난한 과정이라 할 수 있는 大川을 건너 큰 공()을 세울 수 있었으며 온 天下가 이롭게 된다라는 뜻으로 쓰였다 합니다.


 

   이번에 13년 전에 한 번 올랐던 이천의 설봉산(雪峰山)을 다녀온 것은 지난번에 쓰지 못한 산행기를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설봉산(雪峰山)은 이천의 진산(鎭山)으로 설봉호수를 포근히 감싸고 있어 이천시민이 즐겨 찾는 산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餘地勝覽)雪峰山在府西五里鎭山라고 적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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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전철 경강선이 개통되어 설봉산을 다녀오기가 한결 수월해졌습니다. 분당선의 판교역에서 이천역을 지나는 경강선으로 갈아탔습니다. 판교 출발 40분가량 지나 도착한 이천역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 설봉공원입구에서 하차했습니다. 이천역에서 12번 버스를 제외한 모든 버스가 설봉공원 앞을 지난다해 택시로 이동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8번 버스를 탔는데, 20분이 채 안 걸려 설봉공원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길을 건넌 후 하천을 따라가다 음식점에 들러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이 하천을 따라가 설봉공원입구에 이르렀습니다.

 

 

   1346분 설봉공원입구를 출발했습니다. 공원입구에서 조금 올라가 설봉호수 순환로가 시작되는 제1쉼터의 출발점 0m” 지점을 지났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아 아담해 보이는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순환로는 인근주민에 최고의 산책로이겠다 싶은 것은 산책길에 이 호수를 포근히 감싸고 있는 설봉산의 기()도 함께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국내외 작가들의 조각품이 전시된 야외전시장을 지나 만난 큰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영월암쪽으로 향하다 욕심이 동해 예정에 없던 월전미술관을 들렀습니다. 월전 장우성화백의 작품은 물론 마침 전시중인 석운 하태진화백의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길 건너 서희역사관을 들러보지 못한 아쉬움은 고려의 서희선생과 조선의 이관의 선생, 최숙정 선생과 그리고 김안국 선생을 배향하는 설봉서원을 탐방하는 것으로 달랬습니다. 대금반의 수업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옛 선인들의 배움터 전통예절이 살아 숨쉬는 곳 설봉서원이라는 안내책자의 헤드라인이 헛말이 아니다 했습니다.


 

   1518분 설봉서원을 출발해 본격적인 산행 길에 올랐습니다. 서원 앞 삼거리에서 영월암을 향해 아스팔트길을 따라 0.3Km 가량 걸어 오르다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왼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통나무 계단 길과 조릿대가 무성한 숲 속의 샘터를 차례로 지나 삼형제바위에 다다랐습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과 아들 삼형제의 효심이 만들어낸 전설이 어린 삼형제바위와 영월암의 병풍바위(?)가 이번 산행에서 만나본 가장 큰 바위였습니다. 삼형제바위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자리한 영월암은 움푹진 곳에 위치한데다 가람배치가 오밀조밀해 의병들이 은신처로 삼을 만 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영월암은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가 개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존하는 유물들로 미루어보아 통일신라 후기나 고려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하니 영월암이 천년고찰인 것은 분명하다 합니다. 영월암에서 설봉산성으로 바로 가는 길은 없고 설봉산 정상을 거쳐 가야한다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시원한 냉수 한 바가지를 들이마신 후 곧바로 설봉산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1629분 해발394m의 설봉산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영월암 위 벤치에서 잠시 앉아 쉰 후 20분가량 능선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왼쪽 바로 위가 부학봉인 능선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0.2Km 거리의 설봉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데크 게단 길이 잘 나있었습니다. 정상석이 서 있는 설봉산 정상에 오르자 나뭇잎들로 삼면이 가려 있고 오로지 동쪽으로만 시야가 탁 트였습니다. 설봉호수와 이천시내가 한눈에 잡히는 정상을 떠나 부학봉삼거리로 되돌아갔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꽃을 이는 먼 /해와 달의 속삭임 / 비밀한 울음으로 비유한 박두진의 시 을 만나보았습니다. 설봉산이 학처럼 날개를 펴고서 이천시민을 굽어보는 것과 같다하여 이름을 얻은 이층의 누각인 부학루를 조금 지나자 오른 쪽 아래로 도드람산으로 연결되는 길이 갈렸습니다. 수입깔개를 깔아놓은 편안한 평지 길을 따라가며 청운봉을 지나서 백운봉에 이르렀습니다.

 

   1733분 이섭봉(利涉峰)에 올랐습니다. 오백년송이 한 자리 차지한 백운봉에서 365개의 계단을 걸어 내려가 깊숙한 안부사거리인 화두재에 다다랐습니다. 왼쪽 아래로 설봉호수 길이, 오른 쪽 아래로 도드람산길이 갈리는 깊숙한 안부 화두재에 관한 전설이 지명을 잘 활용해 이야기를 엮어 간 것이어서 흥미로웠습합니다. 이야기인즉, 중국사신이 효양산의 금송아지를 찾기 위해 오던 중 마장면 오천리에 와서 만난 노인으로부터 오천역을 지나 화두고개를 넘어 이천읍을 거쳐 억억다리를 건너서 구만리 뜰을 통과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되돌아갔다는 것으로,그 노인은 다름 아닌 효양산을 지키는 산신령이었다 합니다.    화두재에서 이섭봉까지 거리는 0.8Km 밖에 안 되고 길도 좋아 20분이 채 안 걸렸습니다. 이섭봉(利涉峰)이섭대천(利涉大川)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것이어서 쉽게 기억됐습니다. 이섭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조금 내려가자 이내 길이 평탄해졌습니다. 해가 길어지고 산이 낮아서인지 저녁 6시가 넘었어도 어둠이 내려앉지 않았습니다.


 

   1850분 설봉공원입구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이섭봉에서 학소봉을 향해 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그저 그런 모양의 연인바위를 지났습니다. 조금 더 가서 만난 석목원에 전시된 고목들이 하나같이 가다듬지 않은 나무뿌리와 줄기들로 그 형상이 가지각색이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왼쪽아래로 설봉호수 길이 갈리는 안부사거리를 지나 만난 학소정은 시멘트로 지어진 단층 정자로 이름처럼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학소정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만난 차도를 건너 왼쪽으로 조금 올라가 제5쉼터에 이르렀습니다. 댐 위로 낸 길에서 바라본 설봉호수와 이를 에워싼 설봉산 산줄기가 앙상블을 이루어 아늑함을 빚어내고 있는데다 이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꽤 넓은 수면을 조사하는 저녁 햇살이 마냥 평화롭게 느껴졌습니다. 댐 건너 1쉼터의 출발점 0m” 지점으로 돌아가 왼쪽 아래 설봉공원입구에 도착하는 것으로 원점회귀산행을 모두 마치고 이천역으로 가서 판교행 경강선에 몸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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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섭(利涉)의 대상인 대천(大川)은 복하천(福河川)이었다 합니다. 한남독조지맥의 독조봉에서 발원해 남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복하천은 청미천과 더불어 이천과 여주지방을 곡창지대로 만든 참으로 고마운 하천입니다. 왕건(王建)이 서목(徐穆)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건넌 남천이 다름 아닌 복하천입니다. 왕건은 복하천을 지체하지 않고 건너 후백제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서씨(徐氏)로 현달한 관원은 모두 목()의 후손이라 했는데 고려의 명재상 서희(徐熙)는 바로 서목(徐穆)의 후손입니다. 성종12년인 서력 993년에 거란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중군사로 북계에 나아가 거란의 소손녕이 이끄는 80만 대군을 담판으로 물리친 서희선생은 고려의 크나큰 복(福)이었습니다. 로마의 시저가 누구의 도움으로 루비콘 강을 건넜는지 모르지만 왕건은 서목의 도움으로 복하천을 건넜습니다. 이 하천에서 서목을 만났고 그 후손이 고려를 위기에서 구한 재상이 되었으니 복하천은 이름 그대로 복스러운 하천임에 틀림없습니다. 과연 복하천은 의병들이 숨어들어와 일본에 항거했던 이천의 진산 설봉산과 벗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할 만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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