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천명소 탐방기2(곡운구곡)
화천명소 탐방기2
*탐방일자:2019. 8. 20일(수)
*탐방지 :강원화천 소재 곡운구곡
*동행 :나홀로
우리나라의 여러 구곡은 중국의 무이구곡(武夷九曲)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인 것 같습니다. 무이구곡이란 중국 푸젠 성(福建省)에 있는 우이 산(武夷山)의 아홉 굽이의 계곡을 이르는 것으로, 일찍이 송(宋)나라의 주희(朱熹)가 구곡가(九曲歌)를 지은 데서 나온 말이라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적고 있습니다.
이번에 찾아 나선 곡운구곡(谷雲九曲)은 강원도화천군사내면의 용담리와 삼일리 등에 걸쳐있는 5Km 구간의 계곡을 이릅니다. 곡운구곡에 대해서는 강원도청의 홈피에 설명의 글이 올라와 있어 여기에 옮겨 실습니다.
“곡운구곡은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의 용담리와 삼일리 등에 걸쳐있는 계곡이다. 조선 후기 성리학자인 김수증의 자취가 서린 곳으로, 강원도기념물 제63호이기도 하다. 김수증이 관직을 버리고 은둔생활을 하며 후학을 위해 힘쓴 곳도 곡운구곡이다. 곡운구곡의 명칭은 바로 김수증이 지었다. 김수증이 관직을 버리고 화천에서 은둔생활 중에 용담계곡의 절경 9곳을 찾아내어 곡운구곡이라 명명한 것이다. 곡운구곡이란 방화계, 청옥협, 신녀협, 백운담, 명옥뢰, 와룡담, 명월계, 융의연, 첩석대 이렇게 9가지를 말한다. 이러한 9곳의 절경에는 곡운구곡에 대한 구절이 적힌 비석이 세워져 있다.”
곡운(谷雲)은 화악산에서 발원한 지촌천 중에서 풍광이 빼어난 일부 구간을 지정해 곡운구곡(谷雲九曲)으로 명명한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의 호(號)입니다. 병자호란 때 주화파를 이끈 지천 최명길과 대립한 척화파의 거두 청음 김상헌의 손자인 곡운 김수증은 형조정랑과 공조정랑을 두루 역임한 조선조 숙종 때의 문신입니다. 숙종 원년인 1675년 동생 김수항(金壽恒)이 송시열(宋時烈)과 함께 유배되자 곡운은 벼슬을 그만두고 다섯 해 전 화천에 마련한 농수정사(籠水精舍)로 돌아가 곡운구곡을 경영합니다. 1682년 조세걸((曺世傑)을 시켜 곡운구곡도를 그리게 한 곡운은 1689년 기사환국으로 송시열과 김수항이 죽자 벼슬을 그만두고 화음동(華蔭洞)으로 들어가 정사를 짓기 시작합니다. 1694년 갑술옥사 후 다시 여러 관직에 임명되어 제수되나 모두 사퇴하고 화악산골짜기로 들어가 은거하면서 성리학에 심취하여 북송(北宋)의 성리학자들과 주자의 성리서를 탐독했다고 한국민족문화백과대사전은 적고 있습니다. 곡운이 지은 시(詩)와 문(文)은 그의 문집 『곡운집(谷雲集)』에 실려 있습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사창리행 버스에 오른 시각은 오전 10시 반이었습니다. 포천의 일동과 이동을 거쳐 올라선 광덕산의 캬라멜고개는 강원도와 경기도의 도계로 10여 년 전 한북정맥을 종주할 때 몇 번 넘었던 고개입니다. 고개를 넘어 화천군의 사내면으로 접어든 버스가 사창리버스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12시 반이 조금 못되어서였습니다. 택시를 타고 화천 쪽으로 십수 분간 달려 제1곡인 방화계에 도착해 곡운구곡 탐방을 시작한 시각은 12시43분이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시선집 「산행일기(汕行日記)」에서 “서원 안에 곡운 화첩(谷雲畵帖)이 있는데 구곡(九谷)의 천석(泉石)을 그린 것으로서 그린 이는 조세걸 (曺世傑)이었고, 제어(題語)는 곡운이 지었다. 무이도가(武夷櫂歌)의 운(韻)을 곡운이 제창하고 여러 자질(子姪)들이 각각 1곡씩 읊은 것인데 모두가 그의 수필(手筆)이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곡운이 임신년 봄에 제창한 시는 아래와 같습니다.
絶境端宜養性靈 절경이라 성령 수양 알맞은데
暮年心跡喜雙淸 만년의 심적은 맑은 풍월 즐길 뿐이네
白雲東畔華山北 백운산 동쪽 화산 북쪽이라
曲曲溪流滿耳聲 굽이굽이 시내소리 귀에 가득 들려오네
곡운구곡에 세워진 9개소에 표석에는 각 지점의 명칭과 한글로 된 시가 적혀 있습니다. 표석에서 옮겨놓은 한글 시의 원문은 다산의 「산행일기(汕行日記)」에서 따 왔습니다. 원문의 번역문 및 지명과 관련된 간단한 설명은 다산의 「산행일기」 22일자분을 번역한 고전종합DB에서 따온 것임을 밝혀둡니다.
1.곡운구곡 제1곡 방화계(傍花溪)
일곡이라 세친 여울 들어오기 어려우니
복숭아꽃 피고지고 세상과 격하였네
깊은 숲길은 다해 오는 사람 없으니
어느 곳 산가에 사는 사람 있으리
一曲難容入洞船 일곡이라, 좁은 동천 배도 용납하기 어려운데
桃花開落隔雲川 복사꽃 피고지는 운천이 막혀 있네
林深路絶來人少 숲 깊고 길 끊겨 찾아오는 이 드문데
何處仙家有吠煙 어느 곳 선가에 개 짖고 연기이나
제 1곡 방화계의 표석은 56번국도가 지나는 화천군사내면용암리의 지촌천변에 세워져 있습니다. 표석에는 바로 아래 지촌천의 방화계(傍花溪)를 노래한 곡운구곡가가 적혀 있었습니다. 곡운구곡이 시작되는 방화계는 수량도 많았고 물 흐름도 제법 빨랐습니다. 바닥이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 굽이져 도는 계곡에 면해 있는 도로 쪽의 넓은 반석에 내려갈 수 없는 것은 천변에 수직방향의 시멘트 벽을 쌓았고, 그 위에 달리는 차가 계곡으로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가드를 설치해 계곡에의 접근이 원천 봉쇄되어서입니다. 달리는 차들로 세상과 격해 있던 17세기의 한적한 방화계를 떠올리는 것은 무리이다 싶지만, 그래도 화악산에서 발원해 화천의 북한강으로 내달리는 지촌천 방화계의 물 흐름은 여전히 도도해 보였습니다.
1곡을 지은 곡운은 “1곡은 방화계(傍花溪)인데 서오촌(鉏鋙村)으로부터 서쪽으로 돌아 오리곡(梧里谷)을 지나 하나의 시내를 건너는데, 이것이 곧 곡운동구(谷雲洞口)이다. 산현(蒜峴)을 넘으면 산수가 두루 돌고 수석이 맑고 장엄하니 이것을 방화계라 한다.”라고 했습니다.
2.곡운구곡 제2곡 청옥협(靑玉峽)
이곡이라 험한 산에 옥봉우리 우뚝하니
흰 구름 누른 잎은 가을빛을 발한다
걸어 걸어 돌사다리 신선세계 가까우니
속세 떠나 몇 만겹 들어온 줄 알겠네
二曲峻嶒玉作峯 이곡이라, 우뚝한 산 옥봉을 이뤘는데
白雲黃葉映秋容 흰 구름 누른 잎 가을 경치 이루었네
行行石棧仙居近 돌다리 가노라니 신선집이 가까워라
已覺塵喧隔萬重 알랴 소란한 진세 천만중 막혔음을
제1곡의 방화계를 출발해 56번 도로를 따라 사창리 쪽으로 향했습니다. 갓길이 좁아 질주하는 차량들이 지나갈 때면 위협이 느껴지는 도로를 따라가다 용정쉼터에서 왼쪽 계곡으로 내려가는 좋은 길이 보여, 잠시 지촌천의 천변으로 내려가 점심식사를 한 다음 다시 도로로 올라가 걷기를 계속했습니다. “곡운구곡의 고장 화천군사내면”의 표지석이 세워진 로타리 동산을 지나 시멘트 벽 위에 세워진 ‘곡운구곡 제2곡 청옥협(靑玉峽)’의 표석 앞에 다다른 시각이 13시34분으로, 제1곡에서 40분가량 걸린 것 같습니다.
표석 아래 소(沼)는 진초록 색깔을 띠어 물이 깊게 느껴졌습니다. 춘천 쪽으로 보이는 삼각봉이 옥봉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우뚝 서 있는 모습이 곡운구곡가의 옥봉 같았습니다. 곡운이 걸었을 돌사다리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아 신선세계에 다가가겠다는 야무진 꿈은 바로 접었습니다. 물소리는 여전히 컸고 굽이져 물 흐름도 여전해 지촌천의 본모습이 이런 것이다 싶었습니다.
2곡을 지은 곡운의 아들 창국(昌國)은 “2곡은 청옥협(靑玉峽)으로서 화계(花溪)로부터 5리를 지나 하나의 산을 돌면 석잔(石棧)이 옆으로 비껴 있어 좌측으로 위험한 시내를 내려다보게 되고 우측으로 층층이 높이 솟은 봉우리를 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청옥협이다.”라고 했습니다.
3.곡운구곡 제3곡 신녀협(神女峽)
삼곡이라 빈터에는 신녀자취 묘연한데
소나무에 걸린 달은 천년을 훌렀세라
청한자 놀던 뜻을 이제사 알겠으니
흰 돌 위에 나는 여울 그 모양이 아름답다
三曲仙蹤杳夜船 삼곡이라, 신선 자취는 밤배가 아득한데
空臺松月自千年 빈 누대에 송월만이 스스로 천년일레
超然會得淸寒趣 청한한 정취 초연히 깨쳤나니
素石飛湍絶可憐 흰 돌 나는 여울 너무도 아름답네
청옥협에서 상류 쪽으로 얼마 걷지 않아 해발 885M의 샛등봉을 오르는 들머리인 도로변의 물안교를 지났습니다. 청옥협에서 제3곡인 신녀협까지는 제1곡인 방화계보다 훨씬 가까워 청옥협 출발 24분 만에 도착했습니다. 제3곡 신녀협의 옛 이름이 기정(妓亭)임을 일깨우고자 세웠을 것 같은 육모정은 그저 수수해보였지만. 그 아래 구름다리인 곡운구곡 출렁다리는 다리 양끝 위에 빨간색의 토마토 조각물을 얹혀 놓아 눈에 확 띄었습니다. 출렁다리를 건너갔다 되돌아오면서 다리 한 가운데에서 신녀협의 꽤 넓어 보이는 반석과 포트홀(pot hole)을 사진 찍었습니다. 정자 옆 가게주인으로부터 남은 곡운구곡의 위치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들은 후 신녀협을 출발했습니다.
3곡을 지은 곡운의 종자(從子) 창집(昌集)은 “3곡운 신녀협(神女峽)인데, 옥협(玉峽)을 지나 약간 벌어지는 듯 이 시냇물을 따라가면 여기에 이르게 된다, 옛날 이름은 기정(妓亭)이다. 그래서 내가 신녀협(神女峽)이라고 하였다. 물위에 매월당(梅月堂)의 유적이 있다.” 라고 했습니다.
4.곡운구곡 제4곡 백운담(白雲潭)
사곡이라 시냇물 푸른 바위 기대보니
가까운 솔 그림자 물속에서 어른댄다
날뛰며 뿜는 물 그칠 줄을 모르니
기세 좋은 못 위엔 안개 가득 끼었네
四曲川觀倚翠巖 사곡이라. 푸른 바위 의지해 내를 내려볼제
近人松影落毿毿 가까이 솔 그림자 삼삼히 떨어지네
奔潨濺沫無時歇 분류하는 물거품 그칠 때가 없어
雲氣尋常漲一潭 언제나 구름기운 못 위에 넘실대네
56번 도로를 따라 2-3분 직진하다가 왼쪽 송정교를 건넜습니다. 341번 도로를 따라 서진하다가 왼쪽 지촌천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여 그 길로 천변으로 내려갔습니다. 지촌천을 따라 걸으며 보아온 것 중에서 가장 넓은 반석 곳곳에 크고 작은 포토 홀이 있어 자연학습장 같았습니다. 물에 씻겨 반석의 화강암 암면이 깔끔한데다 중간에 규석이 감입되어 몇 개의 백색선이 평행하게 뻗어 나가는 것이 볼 만 했습니다. 이에 더하여 물에 잠긴 흰색의 반석이 투명하게 보여 물 속 반석의 크기도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도로로 복귀한 후 몇 분을 더 걸어 제4곡 백운담에 이르렀습니다. 물놀이금지구역을 알리는 경고판이 세워질 정도로 물이 깊은 지는 나무들로 가려 알 수 없지만, 하천의 폭은 매우 좁아 보였습니다. 백운담이 어느 곳인지 특정하지 못했지만, 군부대정문 앞 커브 길 아래 반석이 물에 잠긴 못이 아닌가 싶어 사진을 찍어 왔습니다.
4곡을 지은 곡운의 종자(從子) 창협(昌協)은 “4곡은 백운담(白雲潭)인데, 여협(女峽)으로부터 작은 시내를 건너 한 언덕을 돌아서 시내를 따라가면 여기에 이르게 된다.” 라고 했습니다.
5.곡운구곡 제5곡 명옥뢰(鳴玉瀨)
오곡이라 밤은 깊어 냇물소리 들리니
옥패를 흔드는 듯 빈 숲속에 가득하다
솔문을 나서면서 가을 밤 고요한데
둥근 달 외로운 거문고 세상 밖에 마음이라
五曲溪聲宜夜深 오곡이라, 시내 소리 깊은 밤에 더 좋아
鏘然玉佩響遙林 패옥처럼 쟁쟁하여 먼 숲을 울리네
松門步出霜厓靜 송문을 벗어나니 서리 언덕 고요한데
圓月孤琴世外心 둥근달 외로운 거문고 세상 밖의 심경일세
제5곡 명옥뢰는 제4곡 백운담에서 10분 거리로 가까웠습니다. 군부대 정문을 지나자 계곡 건너 남쪽으로 정상이 구름에 가린 웅장한 화악산이 아주 가깝게 보였습니다. 가을에 명옥뢰를 찾아왔다면 깊은 밤에 시내 소리 듣고 둥근 달 외로운 거문고를 켜면서 세상 밖의 심경이 되어 보기가 보다 용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5곡을 지은 곡운의 종자(從子) 창흡(昌翕)은 “5곡은 명옥뢰(鳴玉瀨)로서 운담(雲潭) 수백 보 위에 있다. 산 밑에 두어 집 가복(家僕)이 살고 있다.” 라고 했습니다.
6.곡운구곡 제6곡 와룡담(臥龍潭)
육곡이라 그윽한 곳 푸른 물을 베개 삼고
천 길 물 송림사이 은은하게 비친다
시끄러운 세상 일 숨은 용은 모르니
물속에 들어 누어 한가히 사누나
六曲幽居枕綠灣 육곡이라, 그윽한 집 푸른 물굽이 베개 삼아
深潭千尺映松關 일천 자 깊은 못 그림자 솔문을 비치네
潛龍不管風雲事 잠긴 용 풍운의 일 관여하지 않고
長臥波心自在閒 깊은 물속에 오래 누워 스스로 한가롭네
제6곡 와룡담은 제5곡 명옥뢰에서 4-5분 거리로 거의 인접해 있습니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못의 물 색깔은 그다지 깊지 않아서인지 연초록색을 띠었습니다. 바로 위의 못은 물속의 모래밭(?)이 훤히 들여다보였습니다. 앞서 본 못보다 조금 깊고 넓어 보이는 와룡담을 바라보노라니 시끄러운 세상일에 관여하지 않고 깊은 물속에 누워 한가롭게 세월을 보내는 와룡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6곡을 지은 곡운의 아들 창직(昌直)은 “6곡은 와룡담(臥龍潭)인데 명옥뢰(鳴玉瀨)와 서로 접해 있다. 버들숲가에 물이 쌓여 맑고 깊다. 서쪽으로 농수정(籠水亭)을 바라보면 은연히 송림(松林) 사이에 비친다.” 라고 했습니다.
7.곡운구곡 제7곡 명월계(明月溪)
칠곡이라 넓은 못은 얕은 여울 연했으니
저 맑은 물결은 달밤에 더욱 좋다
산은 비고 밤은 깊어 건너는 이 없으니
큰 소나무 외로이 찬 그림자 던진다
七曲平潭連淺灘 칠곡이라, 평평한 못 얕은 여울 연했는데
淸連堪向月中看 맑게 이는 잔물결 달을 향해 볼만하네
山空夜靜無人度 산도 비어 고요한 밤 지나는 사람없고
唯有長松倒影寒 소나무 그림자만이 물속에 들어 차갑네
제6곡 와룡담에서 제7곡 명월계로 가는 길에 오른쪽으로 100m 떨어진 곡운영당(谷雲影堂)을 들렀습니다. 곡운영당은 곡운이 1670년에 지은 농수정사 자리에 세운 영당(影堂)입니다. 1675년 동생 김수항이 유배되자 곡운은 벼슬을 그만두고 농수정사로 돌아와 ‘곡운’이라고 이름을 짓고 은거했습니다. 곡운이 사망한 후 1704년에 이 지역 선비들이 이 자리에 세운 곡운영당은 대원군의 서원철폐정책으로 많이 훼손되었다고 합니다. 화천군 사내면의 유도회는 매년 봄가을 곡운 김수증과 삼연 김창흡, 동봉 김시습, 명탄 성규현의 추모제를 지내오다 1991년 곡운의 추모비를 세웠고, 2007년 11월에 곡운영당을 다시 지었다고 안내판은 적고 있습니다.
곡운영당에서 차도로 복귀해 조금 더 걸어가자 영당교 바로 옆에 제7곡 명월계의 표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곡운구곡가의 시구(詩句)처럼 물이 얕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개천이어서 곡운이 이곳을 제7곡으로 선정한 까닭이 궁금했는데, “저 맑은 물결은 달밤에 더욱 좋다”라는 시구(詩句)를 읽고 나서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7곡을 지은 곡운의 종자(從子) 창업(昌業)은 “7곡은 명월계(明月溪)인데 영당(影堂) 앞에 있다.” 라고 했습니다.
8.곡운구곡 제8곡 융의연(隆義淵)
팔곡이라 함은 물 아득히 괴어 있고
때 마침 저 구름 그늘을 던지누나
맑기도 하여라 근원이 가까운가
물속에 노는 고기 앉아서 바라보네
八谷淸淵漠漠開 팔곡이라, 맑은 못 넓게도 열렸건만
時將雲影獨沿洄 이따금 구름 그림자 홀로 오르내리네
眞源咫尺澄明別 참 근원 지척이라 맑고 밝음 유별나니
座見儵魚自往來 오가는 피라미떼 앉아서도 보이누나
제1곡에서 7곡까지는 모두 지촌천 북쪽 도로변에 표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만, 제8곡과 9곡은 표석이 남쪽 천변에 서 있어 영당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북진했습니다. 탱크가 길 양 옆으로 포진해 있는 삼거리를 지나 제8곡 융의연과 제9곡 첩석대의 표석이 있는 러브 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린이 물 놀이터와 팬선(?)이 들어선 러브 팜은 지촌천변의 휴양지로 가족이 함께 와서 여름휴가를 보내도 될 만큼 공간이 넓게 보였습니다. 천변으로 다가가자 앞서 가게주인이 일러준 징검다리가 보였고, 바로 그 위에 제8곡 융의연의 표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냇가로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넜다면 “맑기도 하여라 근원이 가까운가”라는 시구가 가슴에 와 닿았을 텐데, 냇가로 내려가지 않아 맑은 물속에 노니는 물고기를 완상할 수 없었습니다.
8곡을 지은 곡운의 종자(從子) 창즙(昌緝)은 8곡은 “융의연(隆義淵)인데, 영당(影堂) 서쪽에 있다.” 라고 했습니다.
9.곡운계곡 제9곡 첩석대(疊石臺)
구곡이라 층층바위 또다시 우뚝한데
첩첩히 쌓인 벽은 맑은 물에 비치네
노을 속에 저 물결 송풍과 견주우니
시끄러운 그 소리 골짜기에 가득하다
九曲層巖更嶄然 구곡이라, 암벽이 층층한데
臺成重壁映淸川 겹벽이 대를 이뤄 맑은 내에 비치네
飛湍暮與松風急 흐르는 여울물 솔바람과 급하니
靈籟嘈嘈滿洞天 그 울림소리 동천에 가득 요란하네
곡운구곡의 마지막 제9곡인 첩석대는 제8곡의 융의연에서 1-2분밖에 안 걸리는 지근거리에 있습니다. 러브 팜에서 이곳은 급류가 발생하여 위험하오니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판을 세운 표석 아래 천변 건너편에 중벽(重壁)이 대를 이룬 회백색의 널따란 바위를 보자 이것이 첩석대임을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9곡을 지은 곡운의 외손(外孫) 홍유인(洪有人)은 “9곡은 첩석대(疊石臺)이다. 또 서쪽으로 돌아가게 되면 좌우에 암석이 기괴하고 물이 그 사이로 쏟아져 내린다. 조금 올라가면 조그마한 탑이 있고, 그 가에 길이 있으니 백운령(白雲嶺)으로 향하게 된다.” 라고 했습니다.
제9곡 첩석대를 마지막으로 곡운구곡 탐방을 마치고 346번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지촌천을 가로지르는 일광교를 건넜습니다. 10여분을 더 걸어 도착한 사창리버스정류장에서 춘천 가는 버스를 타고 지촌천변의 56번 도로를 달려 춘천시 사북면의 지촌리를 지났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북한강은 수면 위로 비가 내려 조금은 적막해 보였습니다. 말고개 터널을 통과한 후 춘천댐을 지나 도착한 춘천시외버스정류장에서 남춘천역으로 이동해 상봉행 전철에 오르는 것으로 하루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
곡운구곡을 돌아보고 알게 된 지형상의 특징을 들라면 곡운구곡이 들어선 지촌천이 구불구불 굽이져 흐른다는 것과 곡운구곡 곳곳에서 돌개구멍으로 불리는 포토홀(pot hole)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곡운구곡이 구불구불 흐르는 것은 지촌천이 감입곡류(嵌入曲流, incised meander)여서 그런 것입니다. 감입곡류란 지반의 융기 또는 하강으로 산지나 고원지대의 유수의 낙차가 커져 침식작용이 활발해지는데, 이때 하천의 양쪽이 하방침식을 받아 하천이 깊게 파여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처럼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것을 말합니다. 곡운구곡의 포토홀(pot hole) 역시 대개의 포토홀과 마찬가지로 암괴나 자갈이 요지(凹地)에 들어가 급히 흐르는 물살에 따라 회전운동을 하면서 주위를 깎아내려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탐방사진>
1.곡운구곡 제1곡 방화계(傍花溪)
2.곡운구곡 제2곡 청옥협(靑玉峽)
3.곡운구곡 제3곡 신녀협(神女峽)
4.곡운구곡 제4곡 백운담(白雲潭)
5.곡운구곡 제5곡 명옥뢰(鳴玉瀨)
6.곡운구곡 제6곡 와룡담(臥龍潭)
7.곡운구곡 제7곡 명월계(明月溪)
8.곡운구곡 제8곡 융의연(隆義淵)
9.곡운계곡 제9곡 첩석대(疊石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