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II.시인마뇽의 명소탐방/국내명소 탐방기

107.철원명소탐방기2(한탄강주상절리길)

시인마뇽 2019. 10. 13. 00:16

                                                         

                                                *탐방일자:2019. 9. 21()

                                                *탐방지   :강원도 철원소재 한탄강주상절리길

                                                                    (고석정-칠만암 구간)

                                                *동행      :나홀로

 

 

 

 

 

 

 제가 임진강의 제1지류인 한탄강의 강줄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강이 래프팅의 명소로 알려져서만은 아닙니다. 네 해전 미국의 서부명소를 여행하는 길에 그랜드캐넌을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그 후 TV에 나오는 한탄강을 몇 번 보면서 한국의 그랜드캐넌이 바로 이 강이다 싶어 꼭 한 번 다녀오겠다고 별러왔습니다.

 

 

   한탄강(漢灘江)은 강원도평강군의 백자산에서 발원하여 철원평야지대를 관통한 후 경기도 연천군전곡읍의 도감포에서 임진강에 합류되는 임진강의 제1지류이자 한강의 제2지류로, 강 길이는 133.4km에 달합니다.

 

   한탄강과 철원평야에 관한 이 글의 지형적 고찰은 전적으로 이우평님의 한국지형산책에서  따왔음을 미리 밝힙니다. 그리고  매우 유용한 책을 지으신 저자 이우평님에 감사말씀 올립니다. 

 

   한국전쟁 때 수복한 철원평야는 한탄강을 따라 발달해 있습니다. 한탄강을 따라 상류에서 철원땅의 근남 육단리-김화 학사리-철원 화저리-동송 이평리-관인 탄동리-갈말 군탄리를 지나 포천 땅의 영북 운천리로 이어지는 지역에 걸쳐 있는 철원평야는 다량의 현무암이 분출되어 이루어진 용암대지로 그 평균두께는 약 120m에 달한다고 합니다. 70만 년 전에 시작해 30-10만 년 전에 이르기까지 최소 11회에 걸쳐 분출한 용암의 분출구는 북한의 평강 남서쪽에 위치한 해발415m의 오리산으로 추정됩니다.  이 오리산에서 분출한 용암은 남쪽으로 흘러내려가면서 구() 한탄강 유로를 따라 멀리 임진강의 동파리까지 흘러갔는데 그 길이가 무려 96Km에 이릅니다.

 

   철원평야와 같은 대규모의 용암대지가 형성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일대를 포괄하는 지체구조(地體構造)인 추가령구조곡(楸哥嶺構造谷)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이우평님은 일러주었습니다. 추가령구조곡이란 서울에서 원산을 잇는 직선상의 좁은 골짜기로 한반도를 남북으로 양분하는 중요한 경계선을 이릅니다. 단층들 사이에서 약한 띠를 이루던 화강암체가 해발580m의 추가령을 분수계로 남대천과 임진강에 의해 차별침식을 받아 만들어진 단층선곡(斷層線谷)이 바로 추가령구조곡입니다.  이 구조곡의 깊은 골짜기 여러 곳에서 약한 틈을 따라  용암이 분출되었습니다. 추가령구조곡을 따라 놓은 철도가 바로 서울을 출발해  경기도의 연천과 강원도의 철원을 지나 원산까지 이어지는 경원선(京元線)입니다.

 

............................................................................................................................

 

 

 

   한탄강의 주상절리길은 승일공원에서 시작해 송대소, 직탕폭포, 칠만암을 차례로 지나 ()양지리 통제소에 이르는 전장11Km의 도보 길로, 철원군에서는 이 길을 한여울길로 명명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탐방한 한탄강은 승일공원-고석정-승일공원-송대소-직탕폭포-칠만암 코스로 6시간 가까이 걸린 것으로 보아 12km는 족히 걸은 것 같습니다. 한탄강이 다른 강과 확실히 구별되는 것은 넓은 평원 한 가운데에 25-40m의 폭의 땅이 30m가량 파져나가 형성된 깊숙한 현무암의 협곡을 따라 흘러내려가,강가나 수직의 절벽 위로 다가가지 않으면 강 흐름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침9시경 동서울터미널을 출발한 시외버스가 포천과 운천을 거쳐 종점인 신철원터미널에 도착하기까지 2시간이 거의 다 걸렸습니다. 버스에서 하차해 동쪽으로 2Km 남짓 떨어진 삼부연 폭포를 둘러본 후 승일교로 이동했습니다.

  

 

  베트남참전기념비, 6. 25참전기념비, 마그루드장군송덕탑기념탑과 맹호부대장소덕비 등이 들어선 승일공원을 돌아본 후 한탄강 위에 놓인 세월의 때가 잔뜩 낀 낡은 시멘트 다리 승일교와 그 옆에 새로 놓은 주홍색의 철교인 한탄대교가 명징하게 대비되어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승일교1948년 북한에서 시작한 건설공사가 한국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전후에 한국정부에 의해서 10년 만인 1958년 완공을 본 남북합작의 상징적 교량입니다. 이 다리의 이름이 이승만과 김일성의 가운데 글자를 따서 지었다는 설이 전해지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만,제게는  한탄강을 건너 북진하다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박승일(朴昇一) 대령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이야기가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오전 1142분 승일공원을 출발해 강가로 내려가자 래프팅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시끌벅적했습니다. 다리 밑으로 한탄대교를 지나 한탄강 동쪽의 강변 위에 놓은 데크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십수분 진행하다가 어느 한 분에 고석정으로 가는 길을 물었더니, 그 분의 대답인즉, 이 길은곧 끊기고 강 건너 쪽으로 길이 나 있다고 해 오던 길로 되돌아가 한탄대교를 건넜습니다. 다리 건너 왼쪽으로 난 숲길로 들어서 한탄강변 위에 놓은 데크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표피가 희멀건 자작나무 숲과 동글동글 베개용암(pillow lava)’이 드러나 있는 곳을 지나 고석정이 가까워지자 한탄강을 오르내리는 유람선이 보였습니다.

 

   탐방 시작 한 시간이 다되어 고석정에 다다랐습니다. 정자 고석정(孤石亭)이 국민관광지로 널리 알려진 데는 한탄강 강가에 우뚝 솟은 높이 10m가량의 바위 고석(孤石)과 그 아래 강변 풍광이 한편의 그림처럼 수려한데다, 이 빼어난  경관에  신라의 진평왕과 고려의 충숙왕이 노닐었고 조선의 의적(?) 임꺽정이 은거한 이야기가 더해져서일 것입니다.

 

   여기 고석정은 용암이 흘러들어 강을 메우기 이전의 원() 지형과 용암분출로 형성된 용암대지, 그리고 용암대지가 된 후 한탄강의 새로운 물길이 만든 깊은 협곡의 모습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어서 더욱 주목되는 곳입니다. 용암분출 이전의 기반암이었던 화강암을 현무암이 매곡한 후에 한탄강의 새로운 물길이 두 암석의 접촉부를 침식하면서 지금의 한탄강 물길을 만들어내어 현재 한탄강의 유로가 옛 유로와 거의 일치한다고 합니다.

 

   고석정을 출발해 승일공원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잠시 쉬면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저 아래 굽이져 흐르는 강물과 세월을 함께 실어 나르는 한탄강을 내려다보자 22년 전 한 여름에 고석정을 함께 들렀던 집사람이 생각났습니다. 과천 집을 출발해 파주와 연천의 명소들을 들러본 후 철원의 고석정에 도착했을 때는 캄캄한 밤이어서 인근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아침 일찍 고석정의 강변으로 내려가 한탄강과 주변 풍광을 즐긴 일이 생생하게 기억났습니다. 3년 후 집사람이 타계해 이렇게 살아생전 같이 여행했던 길을 혼자서 걷노라면 곁에 있음이 바로 행복이었음이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1331분 승일교를 건너 돌아간 승일공원에서 한탄강 주상절리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주상절리길 출발점을 조금 지나 오른 쪽 산위로 나 있는 가파른 데크계단을 걸어 오르자 이내 통나무 계단길이 계속되어 집에 두고온 스틱이 아쉬웠습니다. 해발 180m(?) 가량의 산 위에 올라 참호를 이어주는 교통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이 길에서 벗어나 소나무 숲길을 걸었습니다. 태풍 라라로 누런 벼들이 쓰러져 있는 논을 지나 평지로 올라서자 큰길가에 떼 지어 화사하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꽃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진화양봉원을 지나 승일교1Km/태봉교4.2Km’지점에서 숲 속으로 들어가 협곡으로 내려가 뒤돌아보자 주홍색의 한탄대교와 회색의 승일교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넙적 바위들이 여기 저기 모여 있는 이곳이 혹시 마당바위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진초록의 강물이 마당바위와 함께 빚어낸 협곡의 풍경을 사진 찍으면서 맷돌처럼 구멍이 숭숭 나 있는 현무암을 보고 이 강을 따라 마그마가 흘러내린 것을 확인했습니다.

 

   강변 풀숲 길을 따라 얼마간 걷다가 다시 평지로 올라서 잘 익은 누런 벼들로 가득 찬 논과 이미 수확이 끝나 벼 포기의 그루터기만 남아 있는 텅 빈 논을 같이 보자 이제껏 생각 없이 보아온 논이 벼들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무덤이었다는 생각이 불현 듯 났습니다. 눈에 거슬리는 것은 먼발치로 꽤 높아 보이는 산 중턱 몇 곳에 설치한 태양열집적판으로, 저리 늘려나가다가는 많은 산들이 나무들이 베여지고 깎아내려져 산사태가 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도 되었습니다.

 

   수심이 깊어 위험하고, 다슬기 채취를 막고자 무단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의 경고판이 붙어 있는 철제문이 잠겨 있어, 그 옆으로 난 샛길로 들어가 강변으로 내려갔습니다. “송대소3.2Km/승일공원2.1Km"의 표지목이 서있는 강변의 양수장을 지나면서 한탄강의 물 흐름을 가까이서 지켜보았습니다. 다시 평지로 올라가 만난 논 가 데크 길을 따라 걷다가 다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고갯마루에 세워진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린 후 강가로 내려가 예쁘장한 구름다리를 건너 강둑 위 전망대로 올라서자 직립한 절벽의 강의 양안(兩岸), 협곡의 강 가운데 자리한 돌개바위, 강변의 희멀건 넙적 바위, 그리고 동쪽 먼발치로 보이는 날카로운 연봉의 명성산, 이들이 어울린 풍광은 다른 강에서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진풍경이다 싶었습니다. 다시 조금 내려가 작은 다리를 건너서 들어선 숲길에서는 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십 수m 아래 한탄강의 협곡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다시 올라가 들른 곳은 송대소팬션/캠핑으로 팬선 안 데크 길에서 주상절리의 한탄강이 잘 내려다 보였습니다. 휴게소에서 사이다와 건빵을 사들어 요기를 한 후 십 수분 쉬었습니다. 강변 가까이 내려가 조망한 송대소는 한탄강 최고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강 건너 직벽의 깔끔한 주상절리와 이 벽이 감싸주어 더할 수 없이 아늑해 보이는 진초록의 소()를 보자 별천지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겨울에 강이 완전히 얼고 난 후 저 소 한가운데에 서서 주상절리의 직벽을 올려다본다면 그 느낌이 어떨까 새삼 궁금해져 철원군에서 주최하는 겨울축제에 참가해 협곡의 얼음길을 한번 걸어볼 뜻입니다. 철원 땅이 숨겨둔 깊숙한 곳의 연못 송대소라면 계절이 빚어내는 풍광이 비경일 것이기에 봄여름 가을겨울 철마다 찾아와 보고 또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송대소에서 황금빛 논으로 올라섰다가 통나무계단길로 들어섰습니다. 자작나무숲사이로 나 있는 데크 길을 걸으며 활짝 핀 들국화와 눈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현무암의 너덜겅을 거쳐 갈말읍 상사리와 동송읍 갈말리를 이어주는 태봉대교를 다리 아래로 지난 시각은 165분이었습니다. 언뜻 보아서는 한탄대교와 다를 바 없는 주홍색의 철제다리 태봉대교가 널리 알려진 것은 국내 최초의 상설 다리형인 52m 높이의 번지점프장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강변에 자리한 팔각정을 들러 먼저 와 담소를 즐기시는 노인 분들에 갈 길을 물어 직탕폭포가 멀지 않다는 것과 바로 위 돌다리로 강을 건너 팬션으로 올라가면 칠만암으로 이어지는 강둑길이 잘 나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승일공원에서 여기 태봉대교까지는 강변과 강둑을 계속해 오르내리느라 5.7km의 거리를 걷는데 2시간 반 남짓 걸렸지만, 여기서부터는 길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나자 해떨어지기 전에 칠만암에 도착할 것 같아 마음이 놓였습니다.

 

   평탄한 강변 차도를 따라 십 수분 간 북진해 다다른 곳은 직탕폭포였습니다. 일자(一字) 모양의 기암이 층을 이루어 빚어낸 직탕폭포는 한탄강의 전폭에 걸쳐 있어 그 폭이 무려 80m에 이르고 높이도 3m가 된다고 하니 한국의 나이아가라로 불려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한탄강의 상류에 저 넓은 폭포로 쉬지 않고 흐를 정도로 수량이 풍부하다는 것도 특기할 만합니다. 직탕폭포에서 조금 더 걸어 돌다리를 건넜습니다. 이 다리를 그저 징검다리라고 부르기에 좀 뭣한 것은 다리로 건너야 하는 강폭이 여느 하천보다 훨씬 넓다는 것과 다리를 놓는데 쓰인 돌이 징검다리의 돌 보다 엄청 크다는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다리를 놓은 돌들을 떠내려가지 않도록 덮개를 씌워 시멘트로 이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맑은 물이 세차게 흐르는 한탄강을 돌다리로 건너 팬션 위 평지로 올라섰습니다.

 

   한탄강 서쪽 절벽 위에 자전거길로 조성한 평지의 주상절리길은 길 안내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만, 나무들이 시야를 가려 한탄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은 몇 군데 되지 않았습니다. 평지 길로 올라서자 서쪽으로 금학산에서 고대산으로 이어지는 의연한 산줄기와 그 앞까지 펼쳐지는 드넓은 동송벌을 바라보면서 서력905년 개경에서 이곳 철원으로 천도하고 911년 국호를 태봉국으로 개명해 한 나라를 경영해보겠다는 궁예의 웅지를 읽었습니다. 주상절리길에 설치된 쉼터 중에서 한탄강을 조망할 수 있는 데가 몇 곳 되지 않은 것은 나무들이 가로 막아서이지만, 덕분에 앞만 보고 내달릴 수 있었습니다.

 

   앞서 돌다리를 건너며 참으로 강물이 맑다 했는데 그 까닭이 한탄강 상류를 동송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 덕분임을 안내판을 보고 알았습니다. 몇 곳에서 내려다 본 한탄강의 풍광이 고혹적인 것은 앞서 보아온 한탄강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무당소를 지나 다다른 오덕리 마을(?) 앞에서 자전거 길이 마을 안으로 이어져 강둑에서 잠시 벗어났다가 이내 복귀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는 아주머니 한 분께 물어 칠만암이 멀지 않다는 답을 듣고 나자 발걸음이 자연 느려졌습니다. 얼마 후 왼쪽으로 농로가 갈리는 삼거리에 다다르자 평화누리길 표지목이 서 있어 엄청 반가웠습니다. 지난 53일 해가 져 오덕사거리에서 중단한 평화누리길13코스는 여기 삼거리를 지나 칠만암에서 끝나기에, 조만간 못 다한 오덕사거리-칠만암 구간을 걸을 뜻입니다.

 

   승일공원을 출발해 9.4Km 떨어진 여기 칠만암에 이르기까지 4시간 남짓 걸렸습니다칠만암 안내판에서 데크 계단 길로 내려가 협곡 한 가운데 자리한 칠만암을 조망했습니다.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자연 경관이 마치 수만개의 바위를 한데 모아 놓은 것처럼 기기묘묘한 조화의 신비를 이루고 있다 하여 칠만암으로 불린다고 적혀 있는 안내판에 따르면 이곳은 조선조 광해군 때 명장인 김응하 장군의 형제가 젊어서 무예를 닦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내 어둠이 감지되기 시작해 칠만암 탐방을 마치고 오덕사거리로 향했습니다.

 

   칠민암에서 남서쪽의 오덕사거리까지는 평화누리길로 이어져 길안내가 잘되어 있었습니다. 한탄강을 따라 오던 길로 돌아가다가 삼거리에 이르러 평화누리길 표지판이 안내하는 대로 오른 쪽 농로로 들어섰습니다. 동송벌의 반가량은 이미 벼 수확이 끝나 잘 익은 벼들이 넘실거리는 온전한 황금빛 들판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오덕감리교회의 종탑이 높이 보이는 덕고개 앞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로를 따라 10분가량 더 걸어 지난번에 평화누리길13코스를 중단한 오덕사거리에 도착한 시각은 어둠이 막 자리 잡은 1831분이었습니다. 20분을 조금 못 기다려 도착한 시내버스를 타고 동송터미널로 이동해, 1910분 발 동서울행 버스에 오르는 것으로 한탄강주상절리길 탐방을 모두 마쳤습니다.

 

 

............................................................................................................................

 

 

   주상절리길 탐방 중 내내 궁금했던 것은 한탄강의 형성과정입니다. 이우평님의 한국지형산책에 따르면 대략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00만 년 전까지 오랜 기간 침식을 받아 저평화된 구릉지대를 한탄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는데, 오리산에서 점성이 낮은 현무암이 여러 차례 분출하여 한탄강유로를 따라 흘러 내려오면서 저지대를 메웠습니다. 현무암이 저지대를 메워 평탄지형을 만든 후 한탄강이 이전 유로를 따라 다시 흐르면서 침식을 가해 깊은 협곡을 만들었다고 이 책은 적고 있습니다.

 

   이번에 따라 걸은 한탄강의 물길이 깊은 협곡을 만들며 흘러 갈 수 있었던 것은 현무암의 주상절리와 한탄강의 빠른 물살 때문임도 이 책을 읽고 알았습니다. 첫째, 뜨거운 용암은 식을 때 표면부터 냉각되면서 수축이 이루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에너지가 여러 방향으로 동일하게 퍼져 대개 육각형의 주상절리가 형성됩니다. 용암대지에 한탄강의 물이 흘러들면서 주상절리의 절리면을 따라 침식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수직절벽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둘째, 상류와 하류의 용암대지 고도차가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용암대지의 해발고도가 상류 쪽 동송읍에서는 약 180m이고, 하류쪽 영북 운천리에서는 약 120m로 두 지점간의 표고차가 무려 60m에 이릅니다. 이로 인해 급물살이 강바닥을 깊게 깎아내 협곡이 형성된 것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