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5.황정산
*산행일자:2006. 9. 3일
*소재지 :충북 단양
*산높이 :959미터
*산행코스:빗재-남봉-황정산-영인봉-원통암-대흥사주차장
*산행시간:10시45분-15시57분(5시간12분)
*과천시산악연맹
8월의 여름으로부터 방금 가을을 전해 받은 9월 초 사흗날의 하늘과 땅에 가을의 넉넉함과 원숙함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충북 단양의 황정산에 올라 수직으로 솟구쳐 격렬하게 몸 놀리던 시꺼먼 적란운을 대신해 하얀 깃털모양의 새털구름이 하늘 높은 곳에 떠있는 것을 보고 그동안 바빴던 제우스신도 이제 여유를 찾아 숨 좀 돌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여름 내내 햇빛을 받아 일용할 양식을 만들어 내느라 분주했을 초록색의 벼들이 알알이 익어가 산골자기 논배미가 서서히 황금색으로 변화해 가는 것을 보고 이 가을의 풍요로움이 더해 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두 달 만에 과천시산악연맹의 회원들과 함께 황정산의 암릉 길을 오르내렸습니다.
대간길이 지나는 인근 황장산에 자생하는 금강송 황장목을 이 산에다 옮겨 놓아 광활한 정원으로 조성해 놓고 이 산을 황정산으로 이름 붙인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 것은 암릉 길 곳곳에 적송들이 서 있어 이 산에 있는 어느 한 암봉이라도 조그맣게 줄여서 집 뜰로 옮겨 놓는다면 훌륭한 정원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였습니다.
아침10시45분 해발 636미터의 빗재를 출발해 동쪽의 남봉으로 치켜 올랐습니다.
과천을 출발하여 도락산과 황정산을 동서로 가르는 575번 지방도로 들어서 들머리인 빗재에 다다르기까지 3시간 반은 족히 걸렸습니다. 모처럼 버스를 가득 채운 회원들과 함께 앞으로 2년간 산악회를 이끌고 갈 새로 뽑힌 여성회장과 지난 2년간 회원들의 안전산행에 각별히 신경써온 전임 남성회장 모두 황정산 등정 길에 함께 나섰습니다. 낙엽송과 잣나무가 우거진 숲을 지나서 키가 작은 나무들이 간신히 머리를 가릴 정도의 그늘을 만들어 준 가파른 능선 길을 반시간 가까이 올라 전망바위에 이르렀습니다. 이 바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북동쪽에 자리 잡은 도락산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다시 능선 길을 치켜 올랐습니다.
11시40분 해발 945미터의 남봉에 도착했습니다.
전망바위에서 노송이 함께 한 905 암봉과 서쪽의 뱃재마을로 내려서는 910봉을 차례로 오른 후 수 분 뒤에 남북으로 뻗어나가는 주능선 상의 남봉에 다다랐습니다. 남봉에서 왼쪽으로 확 틀어 수림이 울창한 능선 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선 915봉에서부터 본격적인 암릉길이 시작됐습니다. 100대 명산에 선정된 맞은편의 도락산에 비하면 아직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때 묻지 않은 비경의 산이라는 세평이 무색하게 어제는 많은 분들이 이 산을 올라 좁은 산길이 붐볐습니다. 915봉에 오르자 정동쪽으로 소백산 연화봉의 천문대가 눈에 잡혀 황정산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12시14분 해발 959미터의 황정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한 회원분의 도움으로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나자 함께 오른 배낭에 미안한 생각이 들어 이제껏 해왔듯이 정상석 옆에 배낭을 세워놓고 사진을 남겼습니다. 산 밑에서 불어 올라오는 골바람에 가을이 실려 있어 한결 시원했습니다. 북서쪽 하늘에 도너츠 모양의 환형을 그린 상층운의 새털구름이 드높아진 가을하늘을 지상으로 보다 가깝게 끌어당기는 듯 했습니다. 동쪽 멀리 남북으로 뻗어나가는 능선 길이 작년에 힘들여 밟은 대간 길이다 싶으니까 장대한 이 산하가 더욱 다정다감하게 다가오는 것 같았습니다. 키가 작은 소나무밭을 잠시 지나 암릉 길에 다시 닿기까지 간간히 하얗게 활짝 핀 구절초를 만나 카메라에 실었습니다.
13시22분 영인봉에 올라 회원들과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황정산 정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영인봉으로 옮기는데 한 시간이 걸릴 정도로 많이 지체되었습니다. 한 여름 땡볕더위에 한동안 산행을 삼갔던 많은 분들이 가을 들목에 들어서 한꺼번에 산을 올라서인지 로프를 잡고 오르내리는 암릉 길에서는 여지없이 한 줄로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925봉에서 내려서는 길에 걸려 있는 두 줄의 로프 중 앞의 몇 분이 낡은 로프를 잡고 내려서는 것을 보고 저도 그 로프를 잡고 내려왔는데 거의 다 내려와서 스르르 줄이 풀렸습니다. 줄이 너무 낡아 끊어진 것으로 이 줄에 전적으로 의지해 내려섰다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도 있었을 것 같아 낡은 줄을 거둬내 버렸습니다. 영인봉 바로 앞 봉에 다다르자 굽어진 소나무 두 그루가 교묘한 자태로 최고의 곡선미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암봉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된비알의 영인봉으로 올라서자 다른 산악회의 많은 분들도 이 곳에다 자리 잡고 점심을 들고 있어 시끌벅적했습니다.
13시48분 점심 식사를 끝내고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까까비탈의 암벽으로 이루어진 오른 쪽 동사면 바로 밑에서 대흥사로 내려서는 대흥사골이 시작되었고 이 대흥사골에서 불어오는 골바람이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었습니다. 영인봉에서 810봉을 우회하여 안부로 내려선 후 바로 앞에 우뚝 선 작은 암봉을 올라 주변 경관을 돌아보자 정북쪽으로 월악산의 영봉으로 짐작되는 높게 솟은 고봉들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810봉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는 능선으로 다른 회원들이 하산하고 있어 지도를 꺼내 확인해보았지만 북쪽으로 진행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 그대로 직진했습니다. 눈비라도 만나면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암릉 길을 한참 동안 걸어 또 다른 암봉에 다다랐습니다. 일행 한 분이 방금 전에 제 길로 왔다면 왼쪽 아래 있어야 할 원통사를 오른 쪽 아래로 보았다고 말씀을 해주어 길을 잘 못 들었음을 직감하고 나침판을 꺼내 보자 저희들이 들어선 길은 괴물바위로 삥 돌아 대흥교로 내려서는 엄청 먼 길로 확인되어 810봉 바로 아래 안부로 되돌아갔습니다. 30분을 알바로 까먹고 안부로 되돌아와 원통사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목을 만난시각은 14시36분이었습니다.
15시3분 산중턱에 자리 잡은 작은 암자 원통암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표지목이 서있는 안부에서 동쪽 능선 길로 접어들어 얼마고 걷다가 전망바위 못 미쳐서 왼쪽 숲 속으로 내려섰습니다.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숲길을 따라 얼마고 내려가 샘터가 있는 원통암 암자에 이르렀습니다. 산 아래 대흥사의 말사로 “청산에 살라하네”의 명 시조를 남기신 고려 말 고승 나옹화상께서 기거하셨던 원통암은 인근의 칠성암이 신단양팔경의 한 곳으로 선정된 후 찾는 분들이 부쩍 늘어났다 합니다. 넙적한 기반암에 평평한 바위를 수평으로 올려놓고 다시 그 위에 잘 다듬어진 장방형의 바위 4개를 수직으로 세워놓아 마치 손바닥을 편 모양을 한 예쁘장한 바위 하나가 원통암 바로 옆에 반듯하게 서 있어 눈길이 갔습니다. 원통암을 출발하여 말라버린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임도를 만났습니다. 이곳에서 고인 물로 대충 손발을 닦은 후 대흥사로 내려갔습니다.
15시57분 대흥사에서 5시간 남짓 걸린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암릉 길, 절애의 암벽, 소나무, 그리고 9월의 바람과 구름이 함께한 황장산 산행은 한마디로 아기자기했습니다.
“한국의 산하”에 따르면 신라 말에 창건된 단양군 대강면의 대흥사는 건평이 6천 평이나 되는 대찰이었다고 합니다. 1876년 의병과 일본군의 교전 중에 소실되었다는데 지금은 넓은 터에 아직 세월의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석불입상과 새로 지은 절 몇 채만 세워져 있는데 옛날의 영화를 재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부처님의 보살핌을 받는 대찰도 난리를 피해가지 못하고 타버리는데 하물며 부처님을 따르지 않는 중생들이 오래 이름을 남길 수 없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사리가 이러할 진데 이미 성공한 많은 분들이 세상에 이름을 드러내 오랫동안 남기고자 단명의 장관자리를 마다않고 덥석 물어 그동안 애써 지켜온 소신을 훼절하는 것을 보노라면 어리석은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 모두 산에 오르는 시간에 밑에 남아 먹거리를 맛있게 준비한 몇 분들의 수고 덕분에 뒤풀이가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분들이 산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시조 한수로 달랠 수 있도록 원통암에서 머무셨던 나옹화상 혜진스님의 시조 “청산에 살라하네”를 올리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청산에 살라하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네
청산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