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V.시인마뇽의 문학산책/시인마뇽의 소설습작

2.폐주 하이맛 국왕의 환생전말기(2006)

시인마뇽 2007. 1. 4. 07:34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은  송백산악회 회원들의 닉네임입니다.  

사전 양해없이 사용한 점을 용서바랍니다.


                            

                                        폐주 하이맛 국왕의 환생 전말기

 


  1606년 9월1일자  백두실록의 “나는 왕이로소이다”편을 보면 한반도에 자리한 백두왕국의 하이맛 국왕이 반군과 맞서 싸우다 점봉대전에서 반군대장 비엠떠블유에 대패해 총애했던 두 남자 공길이와 장생을 잃고 폐위된 것으로 적혀있습니다. 당대의 명승 송백보 스님이 남긴 반야유사에는 어릴 적 친구인 반정대장 비엠떠블유로부터 마지막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그가 참회의 눈물로 그 분께 간구하여 천상의 나라로 들어올려졌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오백년이 지난 하이맛국왕의 최후를 이제 와서 뜬금없이 들먹이는 것은 달포 전에 학소대에서 목욕재계를 한 선녀가 하늘나라로 돌아가겠다며 집을 뛰쳐나가, 한 주 내내 주왕산을 오르내리며 선녀를 찾아 헤맸다는 나뭇꾼이 폐위된  하이맛국왕을 만났다고 전화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선녀가 도망가자 얼이 빠져도 한참을 빠졌다며 몇 백 년 전에 죽은 그가 어떻게 다시 살아 올 수 있겠냐며 일축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랬더니 한 열흘 후에 하이맛 국왕이 왕비 하마부인과 같이 주왕산 남동쪽에 자리 잡은 주산지를 거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이래도 못 믿겠냐고 전화를 해대는 나뭇꾼의 성화에 못 이겨 국왕의 출현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한성벌 최고의 발발이 여성대장 라라에 추적팀 조직을 부탁했습니다.


  2006년 6월11일 아침7시 10분 잠실벌을 출발해 청송국 주왕산으로 향했습니다.

하이맛국왕을 찾겠다고 잠실벌에 모여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그 중에서 60명을 선발하여 차 2대에 나누어 태우느라 정시에 떠나지 못하고 출발시간이 조금 늦어졌습니다. 강도라는 도적이 간헐적으로 출몰하는 위험한 주왕산을 뒤지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일당을 줄 형편이 못되어 자원봉사자만으로 팀을 짜라고 부탁했는데  어찌 그리 많이 불러 모을 수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라라대장 왈 지난 봄 영화 “왕의 남자”가 천만을 넘는 관객을 끌어 모은 후 하이맛 국왕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으로 바뀌어 추적 팀 모집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며 시중에 떠도는 얘기들을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습니다.


  첫째 하이맛국왕이 쓸데없이 부동산과 전쟁을 벌이느라 일자리를 못 만들었다고 온갖 비난을 다 받았는데 이것이야말로 다시 새겨볼 일이라는 것입니다. 부동산 가격을 잡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고 무턱대고 일자리만 만든다면  죽어라고 몇 십 년을 일해도 제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할 것이 뻔한데 집값을 못 잡는다면 차라리 놀고 지내고 집을 안사는 편이 몸도 편하고 배가 아플 일이 없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둘째 하이맛국왕이 왼손만 잘 듣고 왼쪽 귀만 열어두고 오른 쪽 눈은 가리고 사는 등 너무 왼쪽만 챙기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인데 그동안 너무 오른 쪽만 자주 쓰고 위했더니 신흥 오적들이 국기를 흔들 만큼 극성을 부려 잠시 왼쪽의 힘을 빌려 이이제이한 것을 가지고 그리 난리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왼쪽으로 너무 가면 오른쪽의 오적보다 더 포악무도한 북방계깡패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는데 뭐 미쳤다고 그리했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이맛이 국왕이 되고나서 경제성장률이 옛날보다 못하고 먹고 살기가 어려워 졌다는 혐의에 대한 반론은 이러했습니다. 전대미문의 엽전난리를 극복하고자 선왕께서 카드발급 자판기를 전국의 방방곡곡에 설치하여 카드사용을 권장하는 통에 성장기반이 무너진 것을 가지고 그 사이 각종 이익을 챙긴 반정공신들이 떠들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시적 성장이 아니라 장구한 세월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을 꾀할 수 있도록 로드맵을 준비하고 이를 실천할 위원회를 설치하고 시스템을 정립한 국왕의 처방은 백번 옳았다는 것이 최근에 결성된 하모사회원들의 주장이라 합니다.


   하이맛국왕의 업적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이 결정적으로 세를 얻게 된 것은 영화 “왕의 남자 ”가 극장가를 휩쓴 후였습니다. 하이맛국왕이 왕의 남자들과 사랑행각을 벌이며 미풍양속을 해쳤다는 비판은 동성애가 엄연하게 언저리문화로 정착 되가는 오늘날에는 전혀 문제될 게 없습니다. 아니 삼천궁녀를 삼천궁남으로 바꾸어 남녀평등을 도모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 왕의 남자를 본 분들이 공통적으로 내리는 평가였으며, 한 왕의 측근은 왕의 여인시대를 끝내고 한 세기 앞서 왕의 남자 시대를 열고자 했던 하이맛국왕의 투철한 시대정신을 우매한 백성이나 고지식한 비엠떠블유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역사적 비극이라고 말했습니다.


  11시40분 주산지 주차장에다 추적대원들을 풀었습니다.

작년 이 맘 때 있었던 절골 전투에서 영남제국의 대군에 일격을  당한 강방국의 주력부대들이 인근의 대둔산으로 퇴각해 올 봄부터는 부분적으로 주왕산의 관광이 허용되기는 했어도 얼마 전 왜의 침입을 받은 영남제국이 대부분의  주둔군을 철수해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풀 수 없었습니다. 10여분 후 일전에 하이맛국왕이 왕비 하마부인과 함께 거닐었다는 주산지를 뒤져보았으나 논에다 물을 대느라 나무뿌리가 들어나도록 저수지에서 물을 빼내는 바람에 하마부인이 좋아했던 물에 잠긴 왕버들을 볼 수가 없게 되어 그가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대원들에 철수를 명하고 절골 들머리로 모이라 했습니다. 귀신은 사람과는 달리 늘 다니던 길만 다닌다는 나뭇꾼의 의견이 옳은 듯싶어  하이맛국왕을 보았다는 그에게 무전기를 채워 앞장서도록 했습니다. 주력대원들은 절골계곡으로 들여보내 하이맛국왕의 초상화를 보여주며 계곡을 훑도록 했고, 국왕이 볼 일을 다 보고 주왕산 정상에서 그 분께 고해 하늘나라로 되돌아갈 수 도 있겠다 싶어 차돌바위를 대전사로 미리 보내 주왕산을 오르도록 했습니다.


  13시20분 가메봉 상봉에 먼저 도착한 대장은 나뭇꾼이 아니고 구름을 타고 나는 구름나그네였습니다. 그가 왕비 하마부인의 옷으로 보이는 한복을 찾았다며 들뜬 목소리로 타전해와 나뭇꾼에 연락해 확인을 부탁한 후 대문다리에서 쉬고 있었는데 얼마 후 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한복은 하마부인의 것이 아니고 바로 선녀의 옷이라며 자기는 이제 더 이상 국왕을 찾을 뜻이 없고 이 옷을 가지고 빨리 집으로 내려갈 터이니 그리 알라는 통보였습니다.


  14시30분 가메봉과 왕거암사이의 안부사거리에다 자리를 펴고 허기진 대원들에 점심을 먹였습니다. 그사이 구름나그네대장과 라라대장 그리고 젊디젊은 영영대장을 따로 불러 어떻게 하면 그를 찾을 수 있을까 구수회의를 열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을 풀어 사냥하듯이 그를 찾는 것은 돌아가신 국왕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효과도 없을 터이니 이쯤해서 추적팀은 해체하고 몇 사람만 뽑아 살아생전 공길이와 장생을 데리고 자주 들렀던 내원마을과 제1,2,3폭포 그리고 학소대로 가서 저녁까지 기다려보자는 것이 대장들의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왕위에서 쫓겨나면 숨어살 곳으로 봐두었다는 주왕굴을 추가하기로 하고 가장 먼  주왕굴은 구름을 타고 나는 구름나그네가, 아직도 하이맛국왕 시절의 옛 생활풍속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는 내원마을은 부엌살림이 변화가 있는가를 챙겨보기 위해 여성대장인 라라가, 발품을 가장 많이 팔아야 할 폭포 세 군데는 최연소대장인 영영대장이, 마지막으로 두 마리 학들이 애틋하게 살다가 애절하게 헤어졌다는 이별의 학소대는 글품을 팔아먹고 사는 제가 맡기로 하고 각자 무전기를 걸머메고 목적지로 출발했습니다.


  15시가 조금 못되어 주왕봉정상을 오른 차돌바위가 첫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주왕산 정상에서 만난 산도깨비에게 최근에 누가 이곳에 올라왔냐고 물었더니 5월 중순이후로는 날씨가 후덥지근해져  이 밋밋하고 볼품없는 정상에 올라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심심해 미칠 것 같다고 답을 해왔다 합니다. 이제 그만 저 건너 가메봉으로 놀러가야겠다고 산도깨비도 자리를 떴다면서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어와  내려와도 된다고 답했습니다.


  15시30분 라라대장에게서 무선전화가 왔습니다.

내원마을에는 이제껏 왕이나 대통령내외가 왕림한 일은 역사 이래 한 번도 없었고 최근 들어 관광객들이 자주 와 북새통을 이루는 바람에 돌아가신 조상들이 노했다는 것과  마치 임금처럼 거들먹거리는 관광객들이 혹시나 하이맛국왕이 변신해 나타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 원주민의 이야기라고 전해왔습니다.


  16시10분 잰 걸음으로 제3폭포와 2폭포를 들러보고 제1폭포에서 쉬고 있다는 최연소 영영대장이  보고를 해왔습니다. 요즈음은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인지 폭포에서 떨어져 생을 마감하겠다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24시간 망을 보고 있는데 왕으로 보일 만큼 늠름하고 후덕해 보이는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관리원의 말을 전해왔습니다.


  16시30분 한 시간 전에 주왕굴에 도착했다는 구름나그네대장이 그만 자리를 떠도 되겠냐고 물어왔습니다. 구름을 타고 날라 주왕굴로 내려서니 음습한 바람이 새 나오고 여기저기서 이상한 곡소리가 계속 들려 어서 자리를 뜨고 싶다는 것입니다. 신라의 마장군이 쏜 화살을 맞고 피를 토하며 죽어 주방천을 붉게 물들였다는 주왕의 원혼이 떠다닐지도 모르는 이 굴속에 하이맛 국왕이 머물 일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왕암에 내려가 최근에 주왕굴을 들른 사람을 보았느냐고  물어 보았다 합니다. 그랬더니 한 밤 중이라면 몰라도 낮에는 귀신조차  나오지 않았다며 정 귀신이라도 만나고 싶으면 내려갔다가 밤에 다시 올라오라고 하니 철수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해 그리하라고 답했습니다.


  17시 조금 지나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대원들을 트럭에 태워 모두 한성벌로 올려 보냈습니다. 차돌바위, 구름나그네, 라라와 영영대장을 학소대로 불러 어찌할까를 논의했더니 선녀를 찾으려고  나무꾼이 꾸며낸 황당한 얘기를 믿고 이 멀리 귀신을 찾아 내려온 것이 잘못이었다며 철수할 것을 강력히 요구해 저만 이곳 학소대에서 하루를 묵으며 더 기다려보기로 하고 나머지 대장들은 모두 떠나보냈습니다.


  학소대에 드리운 깎아지른 암벽의 그림자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이 본격적으로 나래를 피고 협곡사이로 내려앉자 사방이 캄캄해졌고 학소대를 휘돌아 흐르는 물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이 몇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발 하이맛국왕이 잠시라도 나타나 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하늘의 별을 세고 있는데 별안간 하늘이 깜깜해지고 제1폭포 위의 암반에서 누군가가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살금살금 그 쪽으로 옮겨가 그들이 나누는 얘기를 엿듣고 나서 깜짝 놀랐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대화의 내용으로 보아 그들이 바로 폐위된 하이맛국왕과 그를 내쫓은 비엠떠블유가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비엠떠블유(이하 비엠): 오랜만 이네. 한 오백년 되었지. 그런데 무슨 일로 이 깊고도 먼 곳으로 나를 불러내었나? 그때 그 일로 아직도 내게 서운한 일이 남아서인가?


하이맛: 반갑네. 다 내가 실덕을 해서 그런 것을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때 그래도 자네가 봐주어 그 분께 기도를 드릴 수 있었고 그 분이 내 기도를 들어 주어 나를 하늘나라로 들어올리지 않았는가? 항상 자네한테 고마워하고 있네.


비엠 :그리 얘기하니 더욱 미안하군. 하마부인은 잘 지내고 있나? 자네가 지상을 떠난  후 나는 죽어라고 산맥을 쫓아 다녔다네. 그 사이 통일이 되어 백두산 장군봉까지 백두대간을 열 번 이상 종주했고 1정간 13정맥을 전부 마쳤네. 기맥과 지맥도 모두 종주하고 요즈음은 분맥과 단맥을 뛰고 있다네. 그런데 만나자고 한 이유는 무언가?


하이맛: 얼마 전 그분이 불러 갔더니 그분께서 내게 한반도 경상도 땅 오지에  청송국이 있는데 그 나라를 다스릴 왕을 뽑는다고 영남제국에서 연락이 왔다며 한번 응시해보라고 말씀을 주셨네.


비엠: 그래서?


하이맛: 거역할 수가 없어 두 달 전에 서라벌로 가 면접시험을 치렀다네. 물론 합격했네. 그런데 영남제국의 황제가 내게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네. 첫째 죽을 때 까지 왕을 해야 하고 둘째 현지로 부임해 근무해야 한다 했네.


비엠: 당연한 것 아닌가? 뭐가 문제가 된다고 그러나?


하이맛: 문제는 그 다음 조건이네. 가족들을 데려올 수 없다는 거야. 가족과 함께 있으면 물욕이 생겨 제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거네.


비엠: 그래서 부인에 얘기를 했나?


하이맛 :하마부인에 얘기를 했지. 이러이러한데 어찌해야하냐고? 얼마나 어렵게 합격한 시험인데 그냥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비엠 :면접시험이 어려웠던 모양이지? 그래 뭘 물어보던가?


  여기서 잠시 그들의 대화가 끊어지고 침묵이 흘렀습니다.

하이맛은 작정한 듯 그의 오랜 친구 비엠떠블유에게 자기 이야기가 지루하더라도 참아달라며 그분에 들려 올려진 후 이제까지 어떻게 살아왔나를 자세하게 말했습니다. 1606년 9월1일 점봉대전에서 참패하여 폐위된 하이맛국왕이 그분께 들려 올려진 후 어느 정도 고되게 생활을 했을 것으로 짐작은 했으나 그래도 십수 년을 한 나라의 왕으로 군림했던 그가 천상의 나라에서 슈퍼마켓을 꾸려나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이맛이 국왕자리에서 쫓겨난 것은 그의 끝없는 탐욕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잘 아시는 그분께서 이 자야말로 천상의 나라에 살고 있는 다른 선인들과는 달리 물욕이 있어  슈퍼마켓을 운영할 만 할 최적임자라고 판단하여 그의 기도를 듣고 나서 바로 들어올렸다는 것입니다. 이곳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지 아니면 다시 내려가 비엠떠블유에게 처형되던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는 그 분의 말씀에 울며 겨자 먹기로 슈퍼마켓을 맡았는데 왕이 되기 전에 불암골에서 셈본을 배운 일이 있고 일 욕심이 있는지라 채 3년도 되지 않아 슈퍼마켓을 크나큰 할인매장체인으로 키웠다 합니다. 할인매장 체인의 상호를 “하이마트”로 정하고 나서 그 분께 돈을 관리하는 경리가 필요하다며 부인을 데려올 것을 간청해 허락을 받아낸 것이 하마부인이 이 글에 등장한 배경이었으며 이 때부터 그녀가 “하이마트”를 운영하는 “하이맛”의 부인이다 하여 “하마부인”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천상의 나라로 들어올려진 지 정확히 오백년이 흘렀습니다.

자칭 후강무왕이라 칭하여 난을 일으킨 강도라는 포악무도한 자가 반란에 실패하고 자기나라에서 쫓겨나 이곳 주왕산으로 흘러들어온 얼마 후 온갖 감언이설과 공갈협박으로 세를 모아 이곳 주왕산 주변에 강방국을 세운 것이 백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강방국의 발호에 골머리를 앓아온 영남제국의 황제 또한 야소교를 믿는지라 어느 날 그분을 찾아뵙고 도움을 청했습니다. 딱한 사정을 다 들은 그 분은 황제를 불러 “내 전직 왕을 한 사람 데리고 있는데, 그냥 천상의 나라에서 썩히기 아까우니 황제가 직접 만나보고 테스트해 마음에 들면 청송국의 왕으로 데려다 쓰라”고 말씀해 이곳 서라벌에서 면접시험이 이루어졌습니다.


황제: 먼 곳을 오느라 고생했다. 나는 영남제국의 황제니라.


하이맛: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분의 안부 말씀을 올립니다.


황제: 단도직입적으로 내 몇 가지를 묻겠다. 청송국의 주왕산에는 포악무도하기로 이름난 강도라는 자가 있다. 너는 그를 어찌 해치울 것이냐?


하이맛: 저는 백두대국을 통치하며 훌륭한 신하를 많이 데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다시 모인다면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황제: 내 듣기로는 실정을 하여 그 나라에서 쫓겨났다 하는데 누가 너를 따르겠는가?


하이맛: 그것은 벌써 오백년 전의 일입니다. 그들도 이제 저에 대한 원망은 다 사라졌을 것입니다. 설사 아직도 남아 있더라도 체 친구 비엠떠블유가 얘기하면 모두 돌아 올 것입니다.


황제: 그래 누가 강도에 대적할 만 하겠느냐?


하이맛; 산도깨비가 있습니다.  그의 빠른 걸음은 이제껏 따른 자가 없습니다. 치고 빠짐이 전광석화 같이 잽싸서 강도는 계속 맞다가 주먹 한번 못 써보고  쓰러질 것입니다. 여차하면 돌격대장 돌백이 그를 도와줄 것입니다. 필요하면 악깡도 붙이겠습니다.


황제: 단 셋이서 되겠느냐? 이번 기회에 산식구들을 모두 동원하거라.


하이맛: 여인네도 있고 노인네도 있습니다. 산과들, 산바람, 산수유, 산으로, 산이슬, 산적 그리고 산쭈꾸미로도 모자란다면 마지막으로 특공대장을 부르겠습니다.


황제: 그만하면 됐다. 내 듣기로는 강도는 주왕산에 사는 짐승들의  도움을 받는 것으로 들었다. 그래도 저들만으로  이길 수 있겠느냐?


하이맛: 산도깨비는 노랑여우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녀가 꾀를 내어 도와줄 것입니다. 일전에 아이큐테스트를 했더니 백두국에서 여우의 머리가 가장 좋았고 그중 노랑여우가 최고였습니다. 노랑여우의 동생인 노랑초록도 머리가 뛰어나다고 칭찬이 자자합니다. 또 엽기토끼가 주왕산 짐승들을 포복절도시킬 만한 엽기적인 꾀를 내어 웃겨서 힘을 못 쓰게 할 것입니다.  그래도 달리면 곰들 중에서 가장 힘이 센 곰세를 투입하겠습니다.


황제: 마음이 놓인다.  매번 싸워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더 훌륭한 것이다. 그래서 장수도 있어야하지만 협상가도 있어야 한다. 누가 적임자더냐?


하이맛: 평화이옵니다.  그 분께서도 아끼시는 인물이옵니다.


황제: 협상 결과를 발표할 대변인도 필요할 것이다.


하이맛: 한 마디도지지 않고 꼬박꼬박 말대답을 하는 댓 글의 명수 짱이는 어떨 런지요?


황제: 네가 알아서 하거라. 너도 오다가 보았겠지만 주왕산에는 독초가 많아 인근 주민들이 잘못 먹고 죽은 일이  다반사였다. 이 독초도 모두 강도가 심었고 강도만이 해독제를 만들 수 있다 하느니라.


하이맛: 그 문제라면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백두대국에는 우리 몸에 독한 야생초와 나무들 을 족집게처럼 가려내는 자운영이라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조선국의 허준 선생에게서 의술도 배웠다 합니다.


황제: 그렇다면 좀 마음이 놓인다. 그래도 상처받은 주왕산을 어루만질 어진 산이 있어야하는데 그래 찾으면 있겠느냐?


하이맛: 대모산이 있습니다. 큰 대자 어미 모의 대모산입니다. 백두대간의 모든 산들이 고개 숙인 산입니다.


황제: 알았다. 그런데 사시사철 일만하고 살 수는 없는 것. 때로는 백성들이 즐겁게 놀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하느니라.


하이맛: 막걸리 팀이 있습니다. 여흥은 이들이 아주 싼 값으로 제공할 것입니다. 고스톱도 허락하신다면 싹쓸이도 한몫할 것입니다.


황제: 맨 날 술만 퍼 마실 수는 없는 것. 왜 동호인 모임 같은 것은 없느냐?


하이맛: 많습니다. 그중 "노는 날 뫼 오르기 " 모임이  가장 단단합니다.  카페도 차리고 특별히 카페지기도 두어 다른 모임에서 벤취마킹을 한다고 법석입니다.


황제: 그래 카페는 누가 지킨다 하더냐? 값나가는 양주도 많을 터인데.  그 카페에서는 풀피리 연주도 들을 수 있다더냐?


하이맛: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카페가 아니라  인터넷에다 차린 카페입니다. 이런 카페에서는 지킴이 보다 꼬심이가  더욱 중요하기에 꼬시기의 달인인  고숙이가 지키고 있습니다.


황제: 왕실에는 그럴 듯한 그림도 걸어 놓아야 하느니라.


하이맛: 세한도가 있습니다. 황제님의 편전에도  그가 그린 수묵화가 걸려있습니다.


황제: 아무려면 그림이 잘 찍은 사진만 하겠느냐? 네 친구 비엠떠블유는 안되겠더라.


하이맛: 잘 보셨습니다. 비엠떠블유는 주 특기가  읽기와 오르기와 일하기입니다. 찍기가 아닙니다. 그의 사진  수준은 진사는 꿈도 못 꾸고 지금은 찍사 수준에도 못 미칩니다.


황제: 그러면 누가 있단 말이냐? 네 솜씨는 그래도 조금 낫다 만은.


하이맛: 사진이라면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무이라는  진사가 있습니다. 굳이 그에 필적할 진사를 찾는다면 월인거사가 마음에 드실 것입니다. 


황제: 노래는 어떠하냐?


하이맛:  ......


황제: 왜 말이 없느냐?


하이맛: 가무에 능한 사람도 필요하십니까? 비엠떠블유 얘기로는 블루베리여인이 "서른 즈음"을  즐겨 부른다 하는데 솜씨는 잘 모르겠습니다. 솜씨와 관계없이 끝까지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그래도 완쭈가 최고입니다. 비엠떠블유도 요델송은 좀 부르는데 황제님께서 그의 고음을 참아내실 수 있을 런지요?


황제: 블루베리란 대간 길 이기령 아래 부수베리가 고향인 그  키 큰 애 말이냐? 나도 고향이 그 곳이니라. 나는 고음은 딱 질색이다. 몇 해 전 안동을 방문한 영국의 여왕이 자기 딸 앤공주가  참하다고 해 며느리를 삼았더니 뻑 하면 아들 녀석과 큰소리로 싸워 이제는 테너든 소프라노든 고음을 내는 사람들은 다 싫어졌다. 나중에 네가 왕이 된 후에 열린음악회를 열어 뽑자꾸나.  1부 면접은 이만하자. 점심 먹고 두 점에 다시 시작하겠다.


  그분의 추천서 덕분에 몇 개의 난해한 질문이 빠져 하이맛은 오전의 면접시험을  비교적 수월하게 치렀습니다. 하이맛이 가장 걱정한 질문은 "너는 왜 그 많은 여인들을 제쳐두고 공길이와 장생을 좋아했느냐?", "네가 18년간 백두국을 다스리는 동안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었다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 "네가 왕위에 있는 동안 너와 잠자리를 같이 하지 못해 목매달아 죽은 궁녀가 몇이냐?" 등이어서 모범답안을 만들어 밤새 외웠는데 역시 통이 큰 황제님이라 개인의 과거사규명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 크게 다행이었습니다.  오후시간의 면접도 같은자리에서 칼같이 정확하게 두 점에 시작되었습니다.


황제: 그래, 점심은 맛있게 들었느냐? 우리 영남제국에서는 점심은 들지 않고 거르느니라. 자고로 점심이 무엇이드냐? 점심때가 되면 밥은 먹지 않고 가슴에 점만 찍어 둔다 해서 점심이라 하지 않더냐? 오늘은 내 특별히 점심을 내었다.


하이맛: 고맙습니다.


황제: 내 중요한 것을 빼먹을 뻔 했구나. 여기 오는 길에 주왕산의 암봉들을 보았느냐? 주왕산의 기암과 시루봉 그리고 연화봉 이것들이 한 날 한시에 심술을 부리면 어느 누구도 살아남기 힘드니라.


하이맛: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제게는 천자봉이 있습니다. 하늘아래 제일 높은 봉이 천자봉입니다. 문제될 게 전혀 없습니다. 황제님이 빠트린 병풍바위는 차돌바위가 맡으면 됩니다.


황제: 몇 가지만 더 물어보자꾸나. 적들이 급습해오면 이를 알릴 비상종은 있느냐?


하이맛: 물론입니다. 할베방울 종도 있고 아찌방울 종도 있습니다. 종지기는 방울이가 맡을 것입니다.


황제:  그만하면 됐다. 백성들에 새벽이 왔음을 제 때에 알려야 게으름을 부리지 않느니라.


하이맛: 그 일은 먼동이 맡을 것입니다.


황제: 하늘의 비는 누가 관리할 것이냐?


하이맛: 구름나그네가 있고 새털구름도 있습니다. 이 들이 바쁘면 구름체가 맡을 것입니다.


황제: 겨울에 내리는 눈은 어찌할 것이냐?


하이맛: 지난 해 북방계깡패들의 등살에 못 이겨 백두국으로 탈출해온 겨울눈이 있습니다.


황제: 안동댐이 들어선 후 안개가 자주 끼어 그 또한 걱정이다.


하이맛: 안개비가 있사옵니다. 웬만한 안개들은 다 긁어모아 비를 뿌리게 하는 재주를 갖고 있다 하옵니다.  그래도 교통사고를 많이 유발하는 이른 아침에 끼는 안개만은 새벽안개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황제: 내린 비는 어찌 할 것이냐?


하이맛: 호수에 담아 둘 것입니다. 수원지 보호에 평생을 바친 수원 땅의 순수가 그 호수를 관리할 것입니다. 황제님께서 아침에 호수에 납신다면 아침산책이 뒤따르도록 하겠습니다.


황제: 전기는 어찌할 것이냐?


하이맛: 산과 들을 데리고 대간과 정맥, 지맥과 기맥을 모두 조사한 비엠떠블유는 좀 시끄럽기는 해도 입지여건 상 풍력발전이 가장 경제적이라 합니다. 그 일은 바람돌이에 맡기겠습니다.


황제: 꽃도 가꾸어야 하느니라.


하이맛: 들국화도 있고 수선화도, 안개꽃도  있습니다. 온갖 들꽃이 다 있습니다. 물꽃인 연꽃도 예쁩니다. 또 이곳 영남제국에서는 코스모스라 불리는 코모도 있습니다. 어울림이나 어울마당 남매들에 금잔디가 꽃들과 어울리는 지를 알아보고 괜찮다면 금잔디도 심어볼 까 합니다.


황제: 누가 그 꽃들을 가꾼다 하더냐?  배꽃계집애들큰배움터를 나온 여인들이 그래도 꽃은 잘 알 것 아니냐?


하이맛: 그렇지 않사옵니다. 꽃은 어디서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와는 전혀 관계가 없고 꽃보다 아름다운 여인네들이 더 잘 가꾼다는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미인들이 너무 많아 이점 또한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토종미인 중에는 심산유곡에서 한 여름 밤을 밝히는 반디의 여왕 참반디가 으뜸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이민 온 미인들도 토종미인 못지않습니다.


황제: 이민 온 미인이라면 하마부인 말이더냐?


하이맛: 그녀는 제 처이옵니다. 한참 못 미칩니다.


황제: 과공은 예가 아니다. 남 앞에서 자기 부인을 지나치게 낮추는 것은 앞으로는 삼가 하거라. 그러면 누구를 이름 함이냐?


하이맛: 너무 많아 일일이 거명하기가 힘들 정도입니다. 그분의 말씀대로 살고자 애쓰는 세실리아, "부비니?"가 잘못 발음된 것으로 오해를 자주 받는 보비니 , 그리고 소피아  .......


황제: 소피아라? 혹시 이타리에서 왔다더냐? 소피아로렌이라는 배우와 어떻게 되는지 알아 보거라? 가까운 친척이라면 내 사인 좀 받아달라고 부탁하려고 그런다. 지난번 로마에 갔을 때에 사인을 받으려고 하루여인과 함께 하루 종일 따라 다녔는데 헛 탕만 쳐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토종미인과 귀화미인 섞여 있다면 갈등이 생길 터인데 그 갈등은 어떻게 푼다 하더냐?


하이맛: 사인 건은 소피아에 알아보겠습니다. 어느 집단이나 갈등이 있겠지만 제게는 왕언니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습니다. 여인들이 왕비보다 그녀를 더 존경했습니다. 새내기 여인들은 짱온니가 맡아도 충분합니다.


황제: 하나 궁금한 것이 있다. 이민 온 여인들은 있는데 귀화해온 남정네들은 없다더냐?


하이맛: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제 친구 비엠떠블유도 고조할아버지가 덕국에서 귀화했습니다. 원포르쉐, 이마프러스, 오크, 몽벨 모두 귀화인들입니다. 법운지 보살님과 함께 사는 초이스대장도 미국에서 건너왔다 합니다. 그런데 왜 중요한 주택문제는 말씀이 없으신지요?


황제: 그건 네 전공 아니냐? 나는 네 부하 중에 아파트를 지워주고 키를 넘겨주는 턴키베이스에 능한 키맨을 알고 있다. 그로부터 이미 다 들었다. 집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통시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래야 거래세를 거두어들일 수 있어 왕실의 곳간이 비지 않는단다. 주택거래는 거간꾼이 있어야 하는데 내 전문가 한사람 소개하겠다.


하이맛: 그가 누구이옵니까?


황제: 아파트 거래로 세금도, 네금도 아닌 다섯금을 모은 오금동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한동안 바빠서 백두왕국을 잊고 살았는데 최근에 다시 그 카페에 들락거리나보더라. 젠니라는 여인이다. 알고 있었느냐?


하이맛: 생면부지의 인물이옵니다. 제가 좀 테스트를 하고 나서 써도 될 런지요?


황제: 당연하지. 나도 그분께서 추천한 너를 테스트하고 있잖느냐? 그래도 너무 어려운 문제는 내지 말거라.  주택건설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교육이다. 너는 앞으로 누구로부터 교육문제를 자문 받을 생각이냐? 


하이맛:디딤돌 부부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디딤돌이라는 참고서를 내어 학생들에도 많이 친숙한 인물이옵니다.  비엠떠블유도 그 방면에는 일가견이 있습니다.


황제:  이제 비엠떠블유는 그만 빼 거라. 이것저것 집적대기만 하지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지 않느냐? 교육문제는 그분도 관심이 많으시다. 유치원도 보육원도 많이 지어야 할 것이다.


하이맛: 벌써 둥이여인에 얘기를 해놓았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누구나  그녀를 귀염둥이나  예쁜둥이로  불렀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본인 스스로가 "귀염"과 "예쁜"은 짐스럽다고 빼고 둥이 만 남겼습니다.. 그래도 얘들과 같이 놀아줄 수 있는 사람은 둥이 만한 인물이 없습니다.


황제: 양로원도 신경써야 한다. 늘 인생에 무엇이 있는 가 궁금해 하는 인생뭐있어 여인을 그곳에 파견하거라. 인생을 많이 사신 노인 분들이 인생에 뭐있는지 답을 줄 것이다. 너도 알겠지만 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네가 다스리던 오백년 전 백두국이 아니니라. 그래서 내 질문이 길어지는 것이다. 청송국의 백성들은 이제까지 뭣하나 제대로 배불리 먹은 적이 없어 맛을 모르고 살아 왔다. 그런데 네가 선정을 베풀면 이내 나라살림이 좋아 질것이고 그리되면 맛있는 음식을 찾게 될 것이다. 누가 이 백성들에 요리를 가르칠 수 있겠느냐? 


하이맛: 허브향이 최적임자이옵니다.


황제: 향이라고? 나는 향이 들어간 음식은 딱 질색이다. 굳이 향이 들어가야 한다면 풀향기를 쓰거라.


하이맛: 이름이 향이옵고 하는 일은 요리입니다. 백두국 최고의 요리사입니다. 허브향이 싫으시면 꿈향기는 어떠하실 런지?


황제: 그런 향도 있다더냐? 한번 보내보아라.


하이맛: 향이 아니옵니다. 백성들의 꿈을 가꾸는 일을 맡고 있는 여성 최고의 관리이옵니다.


황제: 됐다. 이제 남은 것은 돈 문제구나. 나도 유식한 말 좀 해보자. 누군가가 “Money is the 6th sense.” 라고 했다. 이 돈이 없으면 나머지 5감이 작동이 안 되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얘기다. 그래 돈은 충분히 갖고 있느냐?


하이맛: 영국의 소설가 서머세트 모옴이 한 말입니다. 저는 20대 때 그의 소설 “Of Human Bondage"에서 이 글을 읽고 하도 감명을 받아 제 친구 비엠떠블유에 책을 빌려주며 읽어 볼 것을 강권했습니다. 저는 이 날을 위해 천상의 나라에서 할인매장을 차려 돈을 좀 긁어  모았습니다. 그리고 돈 버는 법도 배웠습니다.


황제: 완벽하구나. 시쳇말로 짱이로구나. 해피엔딩이로구나. 마지막으로 묻겠다. 너를 들어 올린 그 분과 제자들이 왜 혼자 살고 계신지 알고 있느냐? 가족이 있으면 물욕이 생겨서니라. 너 혼자 이곳에 와서 왕이 되겠다면 내 그 자리를 평생 동안 보장하겠다.  그리 할 수 있겠느냐?


  하이맛 국왕의 얘기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달 포전 그가 하마부인과 여기 주왕산에 나타난 것은 과연 하이맛 혼자 내려와  청송국을 다스릴 수 있을까 걱정하는 하마부인의 성화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나서 지상에 내려온 하마부인이 길안내도 하고 말벗이 되어 줄 여인을 물색하다가 마침 내원마을에 한 선녀가 나무꾼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을 인터넷에서 알아내어 그 선녀에 메일을 보낸 것이 이 사건의 단초가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들만의 비밀스런 대화는 조금 더 계속되었습니다.


비엠: 그래, 어쩔 생각인가? 나라고 신통한 답이 있겠는가?


하이맛: 자네도 알듯이 지금 와서 내가 무슨 욕심이 있어 면접시험을 치른 것은 아니네. 이것이 그 분의 뜻이고 나도 선정을 베풀어 옛날의 실정을 만회하고 싶네만 그렇다고 하마부인과 헤어져 나만 혼자 이곳에 내려와 살 생각은 없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자네가 맡아서 하면 어떻겠는가? 자네는 어차피 혼자 살 것이고 황제께 말씀올린 분들을 나보다 더 잘 알지 않는가?


비엠: 에끼 이 사람. 나는 벌서부터 야인이었네.


하이맛: 내일까지 답을 주게나. 모레는 나도 황제께 말씀드려야 하네.


  먼동이 트기 훨씬 전에 그들의 비밀모임은 끝났고 그리고 결론 없이 헤어졌습니다.

그들이 칠흑 같은 밤을 도와 남몰래 만난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왕위를 논하는 일이라서 우선 황제 눈을 피해야 했고 강도도 알아채지 못하게 만나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비밀스런 만남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그 둘 중 누구라도 청송국을 다스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그만 눈을 붙이고자 넙적한 바위에 등을 눕혔습니다.  얼마 후 핸드폰 소리가 울렸습니다. 방금 선녀가 돌아왔다며 낮의 일을 미안해하는 나무꾼의 전화였습니다.

(2006.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