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마뇽 2007. 3. 13. 09:13

                                            조계산(3)


                          *산행일자:2007. 7. 21일

                          *소재지  :전남순천/보성

                          *산높이  :조계산884m/고동산709m/백이산584m

                          *산행코스:선암사주차장-조계산-고동산-빈계재-백이산-석거리재

                          *산행시간:6시40분-17시47분(구간종주 8시간46분/총 11시간7분)

                          *동행    :나홀로

 

 

 

  혼자서 정맥 길에 발을 들인지 여러 해가 지났건만 아직도 멧돼지와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지 않고 긴장상태가 계속되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사라진 이래 최고의 맹수로 군림하고 있는 멧돼지는 저처럼 혼자서 정맥을 종주하는 산 꾼들에는 위협적인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먹이사슬에서 사람이 최고 정점에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이기 덕분이고, 호신용으로 쓸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1m가 조금 넘는 스틱 하나만을 믿고 산 속에서 멧돼지와 한판 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멧돼지와 서로 해치지 않고 도와가며 지내자고 친선조약을 맺어 지켜나가는 것이 상책이고, 아예 멧돼지가 나타날 만한 길을 비켜가 산속에서 조우하지 않는 것이 중책이며, 어쩔 수 없이 만나서 피할 수 없다면 기죽지 않고 한판 붙어보는 것이 하책일 것입니다. 마루금을 이어가야하는 종주 꾼들은 멧돼지가 다니는 길이 정맥 길이라면 달리 피해서 다른 길로 갈 수는 없기에 중책을 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판 붙어보는 하책은 더더구나 안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상대가 도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멧돼지라 하더라도 제 진정을 알려주어 어떻게 친선조약을 맺고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을까 하고 상책을 궁리하는 것입니다.


  말이 좋아 친선조약이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멧돼지가 무슨 수로 조약을 맺을 수 있을 까 싶었는데 얼마 전 멧돼지에 먹이를 주며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어느 산 속의 노부부를 텔레비전에서 보고나서 짐승과의 대화에는 정성이 깃 들인 묵언의 대화가 더 유용함을 알았습니다. 그런 후로는 혼자서 산에 들면 멧돼지를 돈공으로 부르며 오늘 하루 서로 불편하게 하지 말고 가까이 지내자고 마음속으로 비는 일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제가 아직도 멧돼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저 포악한 멧돼지가 제 진정을 정말 헤아릴 수 있을까 설사 그리하고 싶어도 언어가 다른데 제 진정을 알아낼 수 있을 까 의심하면서 저의 항심이 깨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멧돼지가 분탕질을 한 흔적을 보면 스틱으로 돌을 치고 헛기침을 하며 멧돼지에 제가 지나감을 알려주는데 이 스틱소리가 상당히 멧돼지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는가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멧돼지는 이 소리를 피해 자리를 옮겨갔습니다. 스틱으로 효과를 본 저는 언제부터인가 멧돼지와 가까이 지내고자 하는 노력보다는 손쉬운 스틱소리로 멧돼지를 내쫓는데 치중해왔습니다.


  어제는 멧돼지 한 마리가 이 스틱소리에 대담하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조계산의 큰굴목재를 출발한지 반시간이 조금 넘어 산불감시초소를 막 지났습니다.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이 역력해 감시초소 4-50m전방에서부터 스틱소리를 내며 어서 빨리 사라지라고 혼자서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이정도로 사람소리를 내면 웬만한 멧돼지들은 자리를 옮기지만 어제 간과를 한 것은 내리는 비였습니다. 멧돼지도 털 달린 짐승이라 비가 퍼붓는 날에는 한 곳에서 비를 피해 움츠리고 있는데 이런 날 자리를 옮겨달라고 스틱을 쳐대면 저라도 짜증이 났을 것입니다. 2004년 9월 덕유산의 빼재에 못 미쳐서 멧돼지가 비를 맞으며 능선 길을 가는 제게 비켜가라고 경고음을 계속 보내 길에서 한참 아래로 내려가 돌아간 일이 있었습니다만, 이번에도 어디엔가 숨어 있는 멧돼지가 쩌렁쩌렁하게 산을 울리며 더 이상 다가서지 말라고 경고음을 보냈습니다. 지난 달 한재에서 멧돼지와의 소리싸움을 제가 한번 이긴 적이 있어 이번에도 더 큰 소리를 내며 밀어붙일 양으로 앞으로 나갔더니 멧돼지의 굉음이 다시 한번 산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멧돼지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하고 나서 어쩌겠습니까, 제가 물러서야지요. 큰 소리로 3-4합을 더 겨뤄본 후 안 되겠다 싶어 먼저 꼬리를 내리고 감시초소로 물러났습니다. 그 다음부터 진퇴양난이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뒤늦게나마 다시 마음속으로 돈공을 불러내어 화해할 것을 얘기하며 7-8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전진했습니다. 저의 화해를 받아들였는지 돈공은 어디론가 자리를 옮겼고 저는 두려움 속에 서둘러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멧돼지들이 여기저기에 변을 보는 것은 여기서부터는 자기 영역이니 들어서지 말라는 경고하기 위해서랍니다. 이를 잘 알면서도 정맥 길을 이어가는 저로서는 달리 피해갈 방도가 없어 난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제가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고 마루금을 잇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것이니 양해해 달라고 돈공에 제 진심을 전하고자 그리 애쓰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길을 내주지 않을 듯한 멧돼지가 결국 길을 내준 것으로 보아 앞으로는 돈공들과 어느 정도 대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 제가 진정 저 멧돼지를 포함한 모든 산식구와 한 일원이 될 각오가 세워졌다는 전제에서 말입니다. 


  아침6시40분 선암사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밤차로 순천에 내려와 역사에서 2시간을 보낸 후 5시50분에 출발하는 선암사행 첫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얼마큼 지나자 버스 안에는 승객이라고는 저 밖에 없어 괜스레 기사분에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벼들이 거의 다 자란 시골 논 뜰이 가을의 풍요로움을 잉태해가고 있어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삼인당 연못까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넓은 비포장도로를 걸어 선암사 경내로 들어서자 아침청소로 스님들이 분주했습니다. 배낭을 메고 나다니기가 미안해 대웅전과 그 유명한 해우소만 사진 찍고 바로 경내를 빠져 나왔습니다. 비를 맞자 더욱 어둡게 보이는 울창한 편백나무 숲을 지나 다다른 대각암 사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들어서 장군봉으로 향했습니다.


  9시1분 해발 884m의 장군봉에 올랐습니다.

두 주전 내려올 때는 반시간도 채 안 걸린 대각암사거리-샘터 길을 이번에 오르는 데는 한 시간이 다 걸릴 정도로 경사도 급하고 계단도 많았습니다. 가까이에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샘터에서 십 여분을 쉬면서 차디찬 샘물을 받아마시자 밤차에 시달린 몸과 마음이 한결 개운했습니다. 산죽들이 정상 가까이까지 길안내를 해준 오름길은 비가 내려 미끄러웠습니다. 이 산의 상봉인 장군봉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번번이 날씨가 나빠 한번도 전망이 제대로 트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마침 비가 그친 틈을 타 모여든 잠자리 떼들이 정상석을 맴돌며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일러주어 고마웠습니다. 정상석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비로소 정맥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9시50분 선암사와 송광사로 길이 갈리는 십자안부인 큰굴목재로 내려섰습니다.

장군봉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확 틀어 남쪽을 향해 고도를 낮추어 갔습니다. 한국판 “노아의 방주”의 전설을 갖고 있는 배맨바위의 아래쪽 바위에 올라서자 구름이 이동하면서 조계산의 산자락들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가히 장관이었습니다. 계곡을 가득 메웠던 구름들이 산 능선으로 물러나면서 내보이는 정경은 언제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서둘러 카메라에 옮겨 실었습니다. 경사 길이 끝난 작은굴목재에서 큰굴목재까지 넓은 길은 오르내림이 별로 없고 편안한 흙길이어서 가히 명상의 길이라고 명명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굴목재에 이르러 짐을 내려놓고 10분을 쉬는 동안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부부 한 팀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분들이 이번 산행 중 만난 유일한 분들입니다. 두 주전 송백산악회와 산행 시 제가 너무 뒤쳐져서 노고치를 출발해 여기 굴목재까지 오지 못하고 중간에 장군봉에서 하산을 해서 결국 이번에 다시 장군봉을 올라가  돌아오느라 주차장에서 바로 큰굴목재로 올라서는 것보다 2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10시54분 장안치를 지나며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조계산이 굴목재에서 끝나서인지 이 고개를 지나 첫 봉우리를 오른쪽으로 우회하자 길이 다시 좁아졌고 이내 풀숲길이 나타났습니다. 임도를 지나 산 오름을 계속하는 동안 멧돼지가 방금 분탕질을 한 것 같은 흔적이 나타나 긴장됐습니다.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진 봉우리에 올라 심호흡을 한 후 스틱으로 돌을 두드리고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며 2-3분을 전진하자 능선 왼쪽 아래에서 몸을 숨긴 멧돼지가 괴성을 질러댔습니다. 서너 번 맞고함을 쳤는데도 물러서지 않고 으르렁대어 별 수 없이 초소로 되돌아가 한판 붙기로 마음을 다져먹고 멧돼지의 출현을 기다렸습니다. 마음 한구석에는 멧돼지가 이쯤해서 마루금을 이어가야하는 제 사정을 감안해 조용히 물러서줄 것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이 곳에서 종주산행을 중단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시간이 얼마고 흐른 후 다시 앞으로 나섰더니 다행히도 돈공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습니다. 삼각점이 세워진 700.8봉까지 정신없이 내달려 시계를 보니 10시45분으로 감시초소를 떠난 지 10분밖에 안됐는데 몇 시간이 지난 것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본격적인 풀 숲길이 나타나 팔다리가 가시에 찔리자 비로소 멧돼지의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경고메시지만 보내고 자리를 비켜준 멧돼지가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12시13분 해발 709m의 고동산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장안치에서 올라선 697봉 바로 왼쪽 아래 공사장에 기자재가 널려있었습니다. 풀들이 무성한 넓은 헬기장을 지나 660봉을 넘는 길에 멧돼지가 지난 흔적이 다시 보여 긴장됐습니다. SKT기지국이 있는 시멘트도로로 내려서 차도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고동산에 오르고자 왼쪽 길로 들어서 7-8분을 걸었는데 고동산이 나타나지 않아 나침판을 꺼내보았습니다. 엉뚱하게도 제가 고동산과는 정반대방향인 북쪽으로 나가고 있었습니다. 10m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에서 자칫 잘 못하다가는 이 곳에서 계속 맴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멈춰 서서 생각을 가다듬었습니다. 다시 원 위치해 큰 길로 나온 후  10분 가까이 북진을 계속하자 왼쪽으로 희미하게 고동산 정상에 자리한 중계탑시설물이 보였습니다. 안개만 걷히면 쉽게 찾을 산을 마음을 졸이며 오르다 보니 밋밋한 초원의 구릉에 세워진 정상석이 엄청 반가웠습니다. 잠자리 한 마리가 바로 옆에 앉아 인절미를 먹고 있는 저를 끝까지 지켜보아 조금은 민망했습니다. 고동산에서 고동치로 내려서는 철쭉 숲길이 고생스러웠습니다. 편안한 큰 길로 가도 만날 것을 고집스레 풀 숲길을 헤치며 마루금을 이어가는 것은 다름 아닌 정맥종주이기 때문입니다. 고동치의 시멘트도르를 건너 임도를 따라 봉우리를 우회해 직진하다가 봉우리의 우회가 끝나는 즈음에서 임도를 버리고 왼쪽으로 꺾어 좁은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580봉과 구릉 길의 바윗돌무더기를 지났고, 녹슨 철조망이 쳐있는 봉우리를 지나 삼각점이 매설된 511.2봉에 오른 시각이 13시30분이었는데 풀 숲길을 지나느라 여전히 힘들었습니다.


  15시6분 빈계재를 건너 20분 남짓 쉬었습니다.

줄기차게 내리붓는 장대비는 아니었지만 가느다란 빗줄기가 시도 때도 없이 치근거리고 숲길을 뚫고나갈 때마다 옷이 젖어 짜증이 났습니다. 511.2봉을 출발한 얼마 후 키를 넘는 철쭉나무(?) 터널을 지나 519봉으로 오르면서 여름산행의 진수를 맛보는 듯 했습니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는 길에 이번에는 먼저 울타리보다 훨씬 새것인 마름모꼴 철망울타리를 만났습니다. 봉우리를 올랐다가 빈계재로 내려서기까지 반시간 동안이나 울타리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 무지막지한 풀 숲길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빈계재 조금 못 미쳐서 철망 울타리는 우측으로 꺾어 멀어지고 빽빽이 들어선 편백나무 숲을 지나며 이런 보너스 길도 있어서 정맥종주를 이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멧돼지와 승강이를 벌인데다 풀 숲길을 헤쳐 나가느라 여느 산행보다 더 힘이 들었는지 빈계재에 다다르자 시장기가 느껴졌습니다. 긴 시간을 쉬면서 남은 떡을 마저 들어 백이산을 걸어 오를 에너지를 충전했습니다.


  16시21분 시원하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발 584미터의 백이산을 올랐습니다.

빈계재에서 긴 휴식을 끝내고 봉우리에 오른 다음 오른쪽 사면이 벌목지인 능선 길을 지났습니다. 나지막한 봉우리 2개를 더 지나자 왼쪽 아래로 아주 가까이 바다가 보이자 그동안의 피로가 한 순간에 가셨습니다. 가을이 오면 환상적일 광활한 억새밭 길을 지나며 현재는 입산이 금지된 지리산 종석대의 드넓은 풀 밭길을 걷는 듯해 황홀했습니다. 마지막 가파른 비알 길을 단숨에 올라 백이산에 다다랐습니다.  표지석이 세워진 정상부는 평평한데다 사방이 탁 트인 최고의 전망지였습니다. 비가 그치고 산자락에 걸쳤던 구름들이 서서히 걷히어 이제껏 걸어온 능선길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먼발치로 꽤 높은 봉우리들이 여럿 보였는데 남서쪽의 높은 산만 존제산으로 여겨질 뿐 나머지 산들은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없어 제게는 모두 무명봉이었습니다. 봉우리 이름을 낱낱이 몰라 무명봉이라 쓴 것을 봉우리 이름으로 잘 못 안 한 후배가 선배님 산행기에는 왜 그리도 무명봉이 많이 나오느냐고 물어와 웃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 산행에서도 수많은 무명봉을 오르내리고 또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2,100산을 넘게 올랐다는 김정길님은 어떤 기준으로 그동안 오른 산들 하나하나를 셌을까 궁금했습니다. 지형도에 나와 있는 “**산”만 세야 하는지, “**봉”을 같이 세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자주 쓰는 무명봉도 이름을 알고 있다면 포함시켜야 하는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분이 대략적으로 추정한 남한의 산 2,500산을 기준으로 해서 80%를 넘게 오른 셈인데 지형도에 이름이 나와 있는 산을 기준으로 아직도400산을 채 못 오른 저로서는 이 분의 산 오름이 정말 감탄스러웠고 존경의 마음이 일어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17시47분 15번 국도가 지나는 해발240m의 석거리재로 내려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백이산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내리뻗은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가 넙적바위를 만나 짐을 내려놓고 등산화 속으로 스며든 빗물을 빨아들여 흥건해진 스타킹을 벗어 단단히 짜낸 후 다시 신었습니다. 한참을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봉우리에서 임도로 내려서는 동안 산자락에 내려앉기 시작한 어둠이 감지되어 하산을 서둘렀지만 풀 숲길과 나무터널 길이 여전했고 내림 길의 경사가 급해 생각만큼 속도가 붙지 않았습니다. 밋밋한 능선을 가로 넘는 임도를 건너 맞은편의 낮은 봉우리에 오르자 석거리재의 주유소와 휴게소가 보였고 얼마고 내려서자 주유소의 흰 개 한 마리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면서도 경계심을 풀지 못하고 계속 짖어댔습니다. 빈계재로 내려서 표지석을 사진 찍고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휴게소를 들러 맥주 2병을 사마신 후 외서리를 출발한 시내버스를 타고 벌교로 나가 다음 하산지인 무남이재에서 조성으로 가는 교통편을 확인했는데 택시이용이 불가피해 보였습니다. 벌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향하는 중 멧돼지와의 대치시간을 떠 올렸습니다. 대치의 근본 원인이 서로가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되어 혹시나 해치지는 않을까 못 믿는데 있기에 문제의 해결방안도 신뢰구축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돌이켜보면 한북정맥의 수원산에서 멧돼지를 처음 만나 경악했던 3년 전에 비해 이제는 비교적 차분하게 대할 수 있을 만큼 멧돼지에 대한 제 믿음이 많이 커졌습니다. 멧돼지 또한 저를 보고 무조건 덤벼들지 않고 자기 영역에 들어오지 말라는 정도의 경고메시지만 보내와 어느 정도 저를 신뢰하는 것 같았습니다. 워낙 큰 소리를 질러대 순간 두렵기도 했지만 조금 더 노력하면 멧돼지와의 관계가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기대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냥 지나쳤던 산나리와 비추리 꽃밭에서 앞으로는 마음 놓고 쉬어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산행사진>     


                      

                                         

                                

 

                                    조계산(2)


                 *산행일자:2008. 7. 8일

                 *소재지  :전남 순천/곡성

                 *산높이  :조계산884m/오성산606m/유치산530m

                 *산행코스:노고치-닭봉-유치산-오성산-두월육교(접치)

                           -조계산-선암사-선암사주차장

                 *산행시간:11시17분-19시7분(7시간50분)

                 *동행    :송백산악회 회원

 

 

   총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탄알 그 자체가 아니고 속도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혼자서 호남정맥을 종주해온 제가 그동안 뜸했던 백두대간을 함께 뛴 한 산악회의 회원들을 만나보고 싶어 이 산악회 특유의 빠른 산행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엄청 고되더라도 감수하리라 마음먹고 종주산행에 기꺼이 참여했습니다. 유명 “산”지의 출판사에서 펴낸 안내책자에 10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는 노고치-조계사-굴목재 구간을 이 산악회에서 목표한 7시간 안에 주파하고자 죽어라고 뛰었으나 결국에는 굴목재 조금 못 미친 조계산의 장군봉에서 구간종주를 마치고 선암사로 하산했는데 8시간이 다 걸렸습니다. 이번 산행으로 힘들었던 것은 긴 산행코스가 아니고 빠른 속도 때문이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의 미사치-노고치 구간의 종주거리가 이번 구간보다 훨씬 길었어도 제게 맞는 속도로 12시간에 걸쳐 산행한 결과 크게 고되지 않았음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님은 눈으로 들어온다는 에이츠의 명시 “Drinking Song"을 입버릇처럼 되뇌는 제가 3개월이 지나도록 한번도 이 산악회의 산행에 참여하지 못해 이러다가는 회원들의 눈에서 멀어져 영영 잊혀가는 것이 아닌 가해서 명산 조계산 산행팀과 같이한 호남정맥 종주에 동참했습니다. 버스 한대가 넘쳐 봉고차 한대가 따라가야 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함께 산행 길에 나섰지만 인사를 나눌만한 친근한 분들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구면의 몇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빈자리를 찾아 뒷자리에 앉았는데 옆자리의 한 분도 얼굴을 전혀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이분과 인사를 나눈 후 산경표와 산맥의 차이를 길게 설명해 드렸는데 처음 뵌 분에 주제넘게 시간을 많이 뺐었다는 생각이 들어 죄송했습니다. 잠실 출발 5시간이 거의 다되어 들머리인 노고치에서 하차했습니다.


  오전 11시17분 노고치고개에서 왼쪽으로 올라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충전기에 꽂아 놓은 바테리를 그냥 두고 와 들머리인 노고치를 카메라에 담지 못했지만 사진 찍는 시간이 절약되어 산행이 빨라질 수 있겠다 싶어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 같이 기념사진을 한방 찍은 후 잽싸게 왼쪽의 시멘트축대를 올라 산속으로 질주하는 일행들과 보조를 맞춘 것은 잠간뿐이고 이내 후미로 쳐졌습니다. 10분도 채 안 걸어 삼각점이 세워진 413.2봉을 지났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 오름을 계속해 620능선에 오르자 비교적 길이 평탄해졌지만 이 시간도 길지 않았고 노고치 출발 40분 만에 오른 634봉에서 북쪽으로 꺾어 안부로 내려갔습니다. 어느새 대오가 정해져 후미대장은 저보다 몇 년 연배이신 노익장을 자랑하시는 한 분이 맡으셨고 호남정맥 종주 팀의 영원한 후미라는 부부 두 분과 젊은 여성 한분이 그 뒤를 따랐는데 네 분들 모두 백두대간을 함께 오르내린 분들이어서 반가웠습니다.


  12시32분 헬기장이 들어선 해발 744m의 닭봉에 올랐습니다.

634봉에서 내려서 좌측사면이 벌목지여서 전망이 좋은 능선 길을 걸으며 배틀재를 지났을 텐데 정신없이 걷느라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해  찜찜했습니다. 산비탈에 일궈놓은 다랑 밭은 녹차재배지라는데 보성의 녹차 밭보다 훨씬 초라해 보였습니다. 얼마 후 커다란 암벽을 왼쪽의 너덜과 산죽 길로 우회해 능선으로 올라서자 모처럼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왔습니다. 능선을 올라 헬기장 바로 밑 그늘에서 쉬고 있는 후미팀 네 분을 만나 안도했습니다. 헬기장 한 가운데 배낭 하나가 달랑 있어 후미대장 분 것이 아닌 가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북쪽의 희야산을 다녀온 다른 회원 것이었습니다. 털썩 주저앉아 쉬고 갈 형편이 못되어 선채로 목을 축인 후 바로 헬기장을 출발했습니다. 앞서간 네 분을 따라잡기를 포기하고 나자 혹시나 길을 잘 못 들지 않을까 염려되어 배낭에 쳐 넣은 산행기와 지형도를 꺼내들었습니다. 잡목 숲을 지나 헬기장 출발 10분 만에 다다른 거암은 뱃바위가 틀림없는데 유치산 정상석이 서 있어 어리둥절했습니다. 조계산 너머 배바위와 이곳의 뱃바위의 이름들이 이 산이 바다가 융기해 만들어졌음을 입증하는 좋은 자료라고 생각하는 것은 외항의 망덕산에서 이 봉우리에 이르기까지 능선 길에 널려있는 하얀 조개껍질을 꽤 여러 곳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13시31분 해발530m의 유치산을 올랐습니다.

뱃봉에서 로프 줄을 쳐놓은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가 임도에 다다랐습니다. 바로 임도에서 숲 속의 산길로 들어서 모처럼 편안한 길을 걸었습니다. 13시를 막 넘어 도착한 닭재 바로 앞 구릉에서 후미팀과 함께 점심을 들었습니다. 유일하게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쉴 수 있는 점심시간은 고작 13분이었지만 졸고인 호남정맥 종주기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고마운 한분과 인사를 나누어 반가웠습니다. 13시15분에 선두팀이 점심을 들겠다는 오성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내 통나무의자와 이정표가 있는 십자안부인 닭재를 지났습니다. 닭재에서 15분을 걸어올라 삼각점이 세워진 유치산 정상에 다다랐는데 잡초가 무성했고 정작 이 봉우리에 있어야 할 정상석을 뱃바위에 세워놓아 산봉우리가 허전했습니다. 유치산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 길을 따라 한망이재로 내려섰다가 474봉에 올라 일행 한분이 건네준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474봉에서 391봉으로 옮기는 중 좌측 사면의 벌목지여서 전망도 좋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라오는 능선 길을 지났습니다. 유치산 출발 1시간이 다되어 깊숙한 안부인 두모재에 도착했습니다.


  15시15분 해발 606m의 오성산을 올랐습니다.

두모재에서 한 걸음에 오상산을 오르기는 경사도 급하고 짧은 길이 아니어서 선두대장이 일러준 대로  반시간 쯤 걸어올라 전망바위에서 5분을 쉬었습니다. 땅 바닥을 살짝 덮은 진초록의 둥굴레가 제법 넓게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이 군락지를 지나는 얼마 동안은 둥굴레의 싱그러움에 피로감이 가시는 듯 했습니다. 명산 팀과 종주팀의 무전기들이 거의 동시에 작동되자 주고받는 여러 교신소리로 쥐 죽은 듯이 조용했던 산속이 조금은 시끄러웠습니다. 이제껏 걸어온 길을 조망한 후 준비해간 쥬스로 목을 축이자 다시 기운이 샘솟았습니다. 오성산을 오르는 중 능선 길에서 만난 아침9시반경에 굴목재를 출발했다는 광주 분이 정상이 얼마 안 남았다고 일러주어 산죽사이로 난 된비알 길을 쉬지 않고 올랐는데 반시간이 거의 다 걸려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진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정남쪽으로 조계산이 보였는데 어느 분이 촬영한 무등산과 지리산의 정상봉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삼각점과 표지석이 세워진 오성산 정상에서 동쪽 아래에 진달래군락지가 자리하고 있어 봄이면 그 화사함이 장관이라 합니다. 철지난 진달래를 찾아보는 것보다 제시간에 선암사에 닿는 것이 급선무여서 남쪽으로 난 급경사 길을 따라 내려가 접치로 내달았습니다. 접치를 가로지르는 두월육교에서 이 산악회 회장 분에게서 식수를 공급받은 후 15시48분에 접치를 출발했습니다.


  17시48분 해발 884m의 조계산 정상봉인 장군봉에 올랐습니다.

산악회에서 배포한 지형도에는 접치에서 정상까지 1시간 10분 걸린다고 나와 있는데 저는 꼭 2시간 만에 정상을 올라 50분이 더 걸렸으며 제가 갖고 간 안내도보다는 20분이 덜 걸렸습니다. 접치에서  장박몬당까지 1시간40분 동안 한번도 쉬지 않고 올랐던 것은 정상까지 1시간 10분 소요된다는 지도를 믿어서였는데 반시간을 더 걸었어도 정상에는 근접도 못하고 겨우 능선삼거리에 도착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접치에서 절개면을 오르는 길에 철계단이 놓여 있어 오름길이 편했습니다. 절개면을 올라선 다음 넓은 길옆의 송전탑을 지나 나무 숲길로 들어서 이번 산행의 마지막 깔딱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카메라가 작동이 안 되어 조계산의 전설을 적어놓은 인오님의 전설안내판의 내용을 옮겨가지 못해 너무 아쉬웠습니다. “민재화장터이야기”, “장박골두꺼비처녀이야기”와 “송광사해우소와 화엄사가마솥이야기”를 적은 전설안내팻말을 차례로 지나 접치 출발 1시간 20분이 지났어도 장군봉-연산봉 능선길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접치를 4-5분 먼저 출발한 후미팀 4분이 어디쯤 가고 있을까 궁금해 무전을 때릴까 하다가 그만 두고 다시 20분을 걸어 장박몬당의 능선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지난 3월에 한번 걸었던 길이고 쉬지 않고 오르느라 많이 지쳐 바닥에 퍼져 앉아 5-6분을 쉬었습니다.

  “대저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중력에 대한 저항입니다.”  

1시간 40분을 쉬지 않고 오르면서 제 친구 하이맛의 산행기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중력에 대한 저항이 생명행위라면 저는 이 산을 오르며 치열한 삶을 산 것입니다. 단 한번도 중력의 방향과 똑 같은 방향으로 내려선 일이 없었기에 더욱 더 치열했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 한 방울의 땀을 짜내며 산을 오르면서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뿌리를 내리고 한자리에서 살고 있는 나무들이 한 없이 부러웠습니다. 그러다가 저들이 한곳에 저렇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것도 중력에 대해 치열하게 저항하며 하늘로 치솟는 생명행위를 수없이 반복해왔기에 가능했겠다는데 생각이 머물렀고 친구의 생명에 대한 독특한 정의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이런 점에서 의식을 잃고 겨우 숨만 쉬는 환자들을 식물인간이라 부르는 것은 아주 잘못된 표현입니다. 하늘 높이 줄기를 올리며 가지를 뻗는 나무들의 중력에 대한 저항을 간과한 경박한 표현으로 나무는 하느님이 만든다는 미국의 시인 조이스킬머의 감탄에도 반하는 것입니다. 나무들도 중력에 저항하며 치열하게 생명행위를 계속해왔기에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끌어올린 물로 하늘로부터 받은 햇빛의 도움으로 포도당과 산소를 만드는 광합성이라는 생명행위가 가능한 것입니다. 중력에 대한 순응이 생명행위라면 사람들은 벌써 땅속이나  바다 속으로 다 들어가 지구상에서 벌써 사라졌을 것입니다. 무거운 돌을 올렸다가 떨어지면 다시 올리는 시지푸스 신화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까뮤가 진단한 부조리(Absurdity) 때문만은 아니고 중력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이 처절하게 아름다워서입니다.


  장박몬당의 표지판이 세워진 능선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장군봉으로 향했습니다.

지난 3월 하늘을 덮었던 광란의 눈발 대신에 이번에는 구름이 하늘을 덮어 숲 속을 지날 때에는 산위에 내려앉기 시작한 어둠이 빨리 감지됐습니다. 돌탑이 세워진 정상에 다다라 굴목재로 내려갈까 아니면 보다 코스가 짧은 선암사로 바로 내려갈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선두대장과 후미대장 분에 무전을 보냈어도 응답이 없어 다음에 좀 힘들더라도 산행을 마치고 기다리는 분들에 송구스러워 B코스의 짧은 길을 택했습니다.


  19시7분 선암사주차장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장군봉에서 왼쪽 길로 내려서 선암사로 하산했습니다. 다음 구간 종주시에 다시 오를 길이 기에 주마간산 격으로 흘깃 보며 정신없이 내달렸습니다. 샘터와 돌탑을 거쳐 선암사에 내려선 시각은 18시40분으로 2.7km의 급경사 내림 길을 47분 만에 주파한 셈입니다. 지난 3월에 둘러본 선암사를 그대로 지나쳐 얻은 시간은 선암천에서 얼굴을 닦고 상의를 갈아입는데 썼습니다. 선암사주차장에 도착하자 야생화 대모님과 여성대장 분등 먼저 내려오신 분들이 저를 반겨 죄송하고 고마웠습니다. 누른 밥과 찌게 그리고 수박으로 포식한 후 귀경 길에 올랐습니다.


  B코스라도 해냈다는 뿌듯함과 이 산악회와는 명산탐방은 몰라도 종주산행을 같이 하기는 무리임을 확인한 씁쓸함이 교차됐습니다. 앞으로 저의 산행을 막는 것은 먼 거리가 아닌 빠른 속도에 있음을 확인했기에 무릎을 온건히 보존하며 오래오래 산행하기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저 혼자서 제 몸에 맞춰 천천히 산행하는 것이 맞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차피 조계산 정상을 다시 올라 정맥 길을 이어가야 한다면 다음에는 종주구간을 짧게 잡고 송광사에서 조계산을 오르며 바테리 문제로 그대로 지나친 인오님의 전설이야기를 담아볼까 궁리중입니다.


  귀경 길 버스 안에서 옆자리 분에 영화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이창동님이 감독하고 전도연/송강호 두 배우가 열연한 영화 “밀양(Secret Sunshine)"은 제게는 구원의 빛이 어떠해야하는 가를 일러주는 작품처럼 보였습니다. 유괴범에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기독교에 귀의, 돈독한 신자가 되어 유괴범을 용서하고자 교도소에 찾아갔다가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죄를 용서받았다는 유괴범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당사자인 자신이 아직 용서를 안 한 범인을 하느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는 가하고 분노하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인데 망월동 묘지에 자식을 묻은 광주 어머니들의 분노를 그린 것으로 알려진 노작가 이청준님의 ”벌레이야기“가 뼈대가 되었다 합니다. 병원에서 퇴원한 어머니에 은밀한 빛이 되어준 것은 하느님이 아니고 항상 곁을 같이하고자 헌신해온 자동차정비소 아저씨일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끝부분의 장면들이 작은 소읍의 지명인 고유명사 “밀양”을 구원의 빛을 의미하는 보통명사 "Secret Sunshine"으로 바꿔놓지 않았나 하는 것이 제 감상후기의 요지입니다. 그러고 보니 하늘에 저항해 땅에서 빛을 만나는 어머니의 절규는 중력에 반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 그 후의 어머니 소식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작가도 감독도 모두 어머니의 그 후 삶에는 두 손을 놓고 있기에 저라도 이어서 글을 써볼까 하는 쓸데없는 욕심이 일었습니다. 

 

 

 

 

                                                            <산행사진>

 

 

 

 

 

 

 

 

 

 

 

 

 

                                          조계산 (1)


                  *산행일자:2007. 3. 11일

                  *소재지  :전남순천

                  *산높이  :장군봉884미터/연산봉851미터

                  *산행코스:선암사주차장-선암사-비로암-작은굴목재-장군봉

                            -장박골삼거리-연산봉-송광굴목재-송광사-주차장

                  *소요시간:11시15분-16시40분(5시간25분)

                  *동행    :산정산악회

 


 

  제가 사는 산본에서는 안양케이블방송에서 매일 “전설의 고향”을 틀어주고 있습니다.

전설의 고향은  라디오에서 시작했다가 얼마 후 TV로 옮겨져 꽤 오랫동안 방송된 장수프로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의 모든 편익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 사회의 틀을 바꿔나가는 요즈음, 더 이상 신세대 젊은이들의 눈과 귀를 끌지 못해 공중파방송에서 사라진 한물간 “전설의 고향”을 이곳 지역케이블방송에서 누가 본다고 한 채널을 할애해 매일 방영하는 것일까 궁금했었는데, 어제 조계산에서 어느 한 분이 산 길 곳곳에다 해놓은 전설의 해설판을 보고나서 그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 전설과 신화, 그리고 민담을 모두 어우르는 설화는 사람들이 지어낸 최초의 픽션(fiction)입니다. 소설과 연극, 그리고 영화는 문자가 결실한 픽션이라면 설화는 문자가 생기기 훨씬 전부터 만들어진 황당무계한 가공의 이야기들이 주이기에, 있음직한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소설 등과는 그 내용이 많이 달라도 대상이 사람과 신, 자연 어느 무엇이든 우리네 삶에 끌어들이고자 애쓰는 점에서는 설화가 현대문학의 원류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먼 옛날 글자를 모르는 우리조상들이 어떻게 자연과 더불어 살았고 영웅호걸을 찬양했으며 그리고 천지신명과 어떻게 교섭했는가를 들려주는 것이 바로 설화입니다. 어제 조계산에서 접한 그 많은 전설들이 디지털에 매몰된 우리 고유의 아나로그적 가치들을 다시 드러내 우리 문화의 원형을 일깨워주었듯이, 시청자들이 “전설의 고향”을 다시 보는 것도 이 프로가 오래 숨겨진 한류의 원형을 잘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저 나름대로 그동안의 궁금증을 정리했습니다. 


  호남정맥을 종주할 때 오르면 되겠다는 생각에서 이제껏 미뤄온 조계산 산행을 서두른 것은 명산은 연봉들을 연결해 능선만을 오르내리는 “선의 산행”만으로는 마지막 2%의 갈증을 풀지 못함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백두대간 종주 때 덕항산을 지났어도 환선굴을 들러보지 못했고, 금북정맥 종주 시 덕숭산을 올랐어도 수덕사를 탐방하지 못해 산림청에서 명산100산으로 선정한 그 산들의 참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명산은 그 산 한 산만을 정해 산행하는 “점의 산행”이어야 숨겨진 비경을 제대로 볼 수 있겠다는 판단 하에 어제는 조계산 한 산만을 정해서 올랐기에 이 산보다 더 유명한 송광사와 선암사를 모두 들러볼 수 있었습니다. 


  아침11시20분 선암사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양재역에서 산정산악회의 조계산행 버스를 7시20분에 오른 후 4시간 만에 도착했습니다. 매표소를 지나자 하얀 눈송이가 하늘을 날기 시작했습니다. 1713년에 놓고 2004년에 보수를 마친 보물400호의 아취형의 다리 승선교를 지나 봄 색이 물씬 도는 삼인당 연못가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선암사 경내로 들어갔습니다. 이제껏 고즈넉한 곳에 다소곳이 자리한 암자보다 조금 큰 절일 것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저는 처음으로 선암사의 실체를 보고나서 적지 아니 당혹했습니다. 시인 정호승님이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가서 해우소에서 실컷 울라고 했던 선암사가 이렇게 큰 대찰인가 어리둥절했고, “태백산맥”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소설가 조정래님이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내며 문학적 자질을 키웠을지도 모를 선암사가 이렇게 북적대는 곳일 줄은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백제 때 창건된 고찰로 선교양종의 대표적 가람이 바로 선암사라는 것은 이 절에 와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사찰 이곳저곳을 들러보다가 “선암사 주지 **스님 당선을 축하합니다”라는 속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축플래카드를 보고나서 이제껏 제가 가졌던 선암사의 이미지가 허상이었음을 알게 되어 서운했지만, 경내의 삼층석탑과 남도의 봄소식을 전해 주는 새빨간 동백꽃 그리고 분홍꽃 매화를 보고나서는 이 절에 정이가기 시작했습니다.


  11시50분 선암사를 빠져나와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시멘트 길을 따라 올라 다다른 대각암에서 방향을 잘 못 잡아 북서쪽의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정서 쪽으로 길을 잡는 바람에 장군봉을 오르는데 반시간은 족히 더 걸렸습니다. 대각사의 공사장 옆 갈림길에서 서쪽 길로 들어선지 얼마 안 되어 계곡에서 물소리가 나 산악회에서 지정해 준 능선코스가 아님을 알았지만 산림청에서 선정한 명산100산답게 여기 저기 길이 잘 나있고 길안내도 잘 돼있어 갈림길로 되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전진했습니다. 계곡을 건넌 다음 밧줄을 걸어 놓은 작은 슬라브바위를 지나서  “비로암 길의 기형나무”라는 소제목으로 1979년 8월 “어빙”과 “주디”의 태풍의 내습으로 줄기가 처절하게 찢겨나간 참나무들이 그 후 어떻게 자라왔는가를 들려준 “조계산인 요산 잠수생 인오”님의 “생존”이라는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이 산을 제대로 알리고자 하는 이분의 노력은 곳곳에 해놓은 전설 안내판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카메라가 작동이 안 되어 이분이 채집한 전설의 내용을 찍어오지 못했습니다.


  13시14분 작은굴목재에 다다라 호남정맥길에 합류했습니다.

슬라브 바위를 지나서 원형이 잘 보존된 석성을 만났습니다. 석성을 지나 비로암 약수터에 다다라 잠시 숨을 돌린 후 조금 더 올라가 갈림길에서 바로 위의 암자를 들르지 않고 돌아가라는 안내대로 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산등성으로 우회하는 중 너덜겅을 지났는데 암괴가 크고 분포면적도 넓어 마치 무등산의 너덜겅을 지나는 듯 했습니다. 승선교에 바로 닿는 삼거리를 지나 작은굴목재에 올랐습니다. 간헐적으로 내리다 말다한 눈발이 본격적으로 뿌리기 시작해 이 곳에서 바로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장군봉으로 직진했습니다. 작은굴목재에서 장군봉을 거쳐 865봉까지는 호남정맥 길이어서 앞으로 2-3년 안에 다시 밟을 길이기에 눈여겨 다시 보았습니다.


  13시40분 해발 884미터의 조계산 정상봉인 장군봉에 올랐습니다.

작은굴목재에서 장군봉에 오르는 길이 이번 산행의 깔딱코스로 배바위로 올라서는 길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대홍수를 만난 사람들이 가축과 농작물 씨앗 등을 가득 실은 배를 이 바위에 묶어놓아 살아났다는 한국판 “노아의 방주”의 전설을 갖고 있는 배바위의 크기는 선운산의 배맨바위와 엇비슷해 보였습니다. 돌탑이 앉혀진 장군봉을 오르자 미친 듯이 휘날리는 눈보라가 한 겨울의 광풍과 매서운 추위를 재현했습니다. 금방 손끝이 아려오고 흰눈이 땅을 덮어 배는 고팠지만 이곳에서 점심을 꺼내 들기가 난망했습니다. 벌써부터 추위를 감지한 카메라가 태업에 들어가 조금 전에 지난 배바위는 물론 정상봉인 장군봉도 옮겨 담지 못하고 바로 연산봉으로 향했습니다. 안부로 내려서는 길에 눈송이가 하얗게 깔려 아이젠을 꺼내 찼습니다. 꽃샘추위의 앙칼짐이 순하기로 이름난 능선 길 산행조차 힘들게 했습니다.  광기의 눈보라가 잠시 멈춘 틈을 타서 길 섶에 앉아  후다닥 점심을 해치웠습니다.


  14시33분 장박골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출발 반시간이 조금 넘어 호남정맥 길에서 벗어나는 해발 865미터의 장박골몬당을 지났습니다. 장박골몬당에 관련된 전설을 해설한 “인오”님의 안내판이 있었습니다만 지금 기억나는 내용은 몬당이 산마루라는 것뿐입니다. 지나온 장군봉은 20분, 지나갈 연산봉이 45분, 직진 길 호남정맥 상의 접치고개까지 45분이 걸린다는 안내판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산죽 길을 따라 2-3분을 더 걷자 헬기장이 나타났습니다. 장박골몬당에서 20분을 더 걸어 송광사를 4.2키로 남겨 놓은 장박골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몇 분들이 이 삼거리에서 보리밥집으로 하산했고 저 혼자 직진해 맞은편 해발787미터의 장박산에 올랐습니다.


  15시04분 해발851미터의 연산봉에 올랐습니다.

장박산에서 남쪽 방향의 연산봉사거리로 이어지는 호젓한 참나무 숲길이 이제까지 질펀했던 진흙이 한 낮이 지나자 기온이 내려가서인지 꾸덕꾸덕해져 걸을 만 했습니다. 연산봉사거리에서 한 부부가 건네준 쵸코파이를 받아 호주머니에 넣고 곧바로 10분을 더 걸어 헬기장이 들어선 연산봉에 올라섰습니다. 장군봉에서 865봉까지는 호남정맥 길을 따라 북진을 했고, 865봉에서 서진해 장박산에 다다른 다음,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연산봉에 이르기까지 U자를 그리며 걸어왔는데 장군봉은 조계산의 주봉답게 어느 곳에서나 잘 보였습니다. 연산봉에 올라 쵸코파이를 건네 준 분의 도움으로 남쪽 호남정맥 길에 위치한 고동산과 북서쪽의 산자락에 걸친 그림 같은 주암호를 확인했습니다. 연산봉에서 가파른 길을 내려서 안부에 다다르자 넓은 잎 낙엽들이 소북이 쌓인 고즈넉한 길이 펼쳐져 이 길을 걷는 얼마동안 몸과 마음이 모두 평안했습니다. 짧은 산죽 길을 지나 쉼터로 만들어진 안부사거리인 해발720미터의 굴목재에 내려선 시각은 연산봉 출발 25분 후인 15시30분이었습니다. 곧바로 가면 전설어린 쌍화수나무가 있는 천자암으로 가게 되고 목적지인 송광사 길이 오른쪽으로 갈리는 굴목재에도 “인오”님의 쌍화수에 얽힌 전설을 들려주는 해설판이 세워져있었습니다.


  오른 쪽의 경사가 가파른 돌계단 길을 내려서 대피소를 지났고 얼마 후 계곡을 만났습니다. 대피소를 지나 조계종 송광사와 태고종 선암사의 스님들 사이를 갈라놓고자 저지른 어떤 마귀(?)의 악행을 막아냈다는 전설의 걸친바위를 지났습니다. 비룡폭포를 지나고 세 번째 나무다리를 건너 송광사 경내로 들어서기까지 순천시에서 나무줄기에 매달아 놓은 명찰덕분에 이 산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산식구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당단풍나무, 때죽나무, 생강나무, 졸참나무, 굴졸참나무, 굴참나무, 서어나무, 대팻집나무, 쪽동백나무, 산딸나무, 나도밤나무, 비목나무, 정금나무, 물오리나무, 합다리나무, 신갈나무, 까치동백나무, 사람주나무, 고로쇠나무와 편백나무가 조계산의 식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명찰은 얻어달지 못했어도 사시사철 푸르른 대나무와 산죽들도 빼놓을 수 없는 이 산의 식구들이었습니다. 


  16시25분 송광사에 도착했습니다.

초장에 길을 잘 못 들어 반시간 넘게 까먹은 바람에 불보사찰 통도사 및 법보사찰 해인사와 더불어 3대사찰의 하나로 알려진 승보사찰 송광사를 세심히 들여다보지 못해 못내 아쉬웠습니다. 대웅전의 규모에 압도된 저는 부지런히 경내를 둘러본 후 송광사를 빠져 나왔습니다. 언제고 순천에서 하루를 묵으며 순천만 갈대밭과 이번에 제대로 보지 못한 선암사와 송광사를 다시 찾아 볼 뜻이기에 아쉽기는 해도 주저하지 않고 주차장으로 내달렸습니다. 집에 돌아와 다른 분들이 올린 송광사의 사진들을 보고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위의 우화각이 주왕산 기슭의 주산저수지에 몸을 담근 왕버들처럼 다리아래 가득한 물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에 감탄했습니다.    


  16시45분 주차장에 도착해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미역국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인근 슈퍼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사들며 조계산 산행을 자축했습니다. 그리고 귀경 길에 올랐습니다.


  꽃샘추위의 마지막 시샘으로 조계산 산행이 그리 편하지는 못했지만, 이 산에 어린 이러저러한 전설들을 채집해 해설판을 해놓은 인오님 덕분에 어렵지 않게 현세와 먼 옛날을 오갈 수 있었으며, 명찰을 걸어놓아 그 이름과 쓰임새를 일러준 순천시 덕분에 이 산의 나무들과 보다 친해질 수 있었기에 모두에 감사드리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행사진>

 

*동행 :산정산악회

 

 

 

*더 이상 카메라가 작동안되어 장군봉-연산봉-송광사 정경을 카메라에 담아오지 못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