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마뇽 2007. 4. 25. 01:11

                                       마이산(2)


 

        *산행일자:2008. 7. 16일(수)

        *소재지  :전북진안

        *산높이  :685m

        *산행코스:진안읍사무소-450봉-강정골재-마이산-30번국도

                  -가름내재-옥산동고개-사옥마을

        *산행시간:10시23분-18시53분(총8시간30분/정맥구간7시간39분)

        *동행    :나홀로

 


  

  전북 진안은 해발4백m가 넘는 고원으로 되어 있어 지대가 높습니다.

이 진안고원에 우뚝 솟은 마이산은 세계에서 유일한 부부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발685m의 수마이봉과 이보다 14m가 낮은 암마이봉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이 부부봉에 가까이 다가가면 벌집 같은 큰 구멍들이 꽤 많이 보입니다. 온 몸에서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간 것 같은 이 구멍들을 바라보노라면 이들 부부가 살아온 삶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듭니다.


  마이산은 중생대 백악기말 진안분지의 퇴적암이 오랜 세월에 걸쳐 융기와 침강을 반복하면서 차별 침식을 받아 형성된 산으로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 가을에는 마이봉, 겨울에는 문필봉 등 계절에 따라 달리 불리기도 한답니다. 계절뿐만 아니라 시대적으로도 그 이름이 달리 불렸으니 삼국시대에는 서다산, 고려시대에는 용출산, 조선조 초기에는 속금산으로 불렸다가 3대 임금인 태종 때부터 부부봉의 두 바위가 말의 귀를 닮았다 하여 마이산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영남육괴와 옥천조산대사이에 생긴 단층선을 두고 2개의 지각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사다리꼴 형태로 지반이 꺼져 내린 후, 이곳에 만들어진 호수에 퇴적층이 두껍게 쌓여 형성된 것이 마이산의 일생이 시작된 진안분지입니다. 진안분지는 지하 깊은 곳에서 굳은 역암층이 약4천만년 동안 지각이 양쪽으로 물러났다가 밀려들어오는 침강과 융기를 8회이상 반복하면서 400m이상 솟아올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마이산의 천연콘크리트 역암은 진안분지에 생성된 퇴적암층이 지각변동을 겪으며 융기하여 지표면에 노출된 것입니다. 마이산의 역암층을 구성하는 역(역) 즉 자갈의 크기는 최대 1m나 된다 합니다. 역암이 지표에 노출되어 풍화와 침식을 받으면 역 주위의 점토나 모래가 풍화되어 역이 그 자리에서 빠져나가게 됩니다. 이렇게 차별침식으로 만들어진 풍화혈을 타포니(tafoni)라 하는데 마이산의 타포니는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지금도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 합니다.( 이 부분의 거의 다가 이우평님이 지은 “한국지형산책”에서 따왔음을 밝힙니다.)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아픔을 감내하며 몇 천만년이나 말없이 제 자리를 지켜온 마이산의 일생은 가히 감동적입니다. 마이산의 일생에 저보다 훨씬 앞서 감동한 분이 계셨으니 그 분이 바로 부부봉에서 떨어져나간 돌들을 모두 모아 돌탑을 쌓아 올린 이갑용 처사님입니다. 이분은 1885년에 입산하여 도를 닦으시다 1957년 98세로 영면하시기까지 무려 30년간 120개의 돌탑을 쌓으셨다 합니다. 전국8도에서 가져온 몇 개의 돌들이 탑 쌓는데 들어간 천지탑을 빼고는 다른 모든 탑들이 모암에서 떨어져 나간 돌들을 주워 쌓아 놓은 것이기에 이 탑들은 암수 두 마이봉의 분신과도 같은 것입니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모암에서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다하더라도 아주 멀리 사라진 것이 아니고 바로 아래 탑사 주위에 또는 풍화혈 안에 돌탑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이들 부부봉의 아픔도 많이 덜어졌을 것입니다. 이렇듯 훌륭한 처사님을 만나 영생을 누릴 부부봉이 한편 부럽기도 했습니다.


  오전10시23분 진안읍사무소를 출발해 지난번에 잘 못 하산한 450봉으로 향했습니다.

괜히 꾸물대다가 25분정도 산본 집을 늦게 나서는 바람에 강남에서 첫차를 놓치고 40분 늦은 아침6시10분 발 전주행 고속버스에 올랐습니다. 첫차 보다 55분 늦은 8시55분에 전주에 도착해 3백m 떨어진 시외버스터미널로 옮겨 한참을 기다리다 9시40분에야 진안 가는 직행버스에 올랐으니 25분 늦게 집을 출발한 것이 몇 번 버스를 갈아타면서 종국에는 시간차가 1시간 반으로 늘어났습니다. 모든 일이 다 때가 있는 법인데 잠시 게으름부리다 왕창 늦어진 시간을 만회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한전 옆 산길로 들어가 지난번에 옷을 갈아입느라 쉬었던 묘지에 올랐습니다. 묘지에서 450봉으로 올라서는 길을 찾지 못해 7-8분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풀숲에 가려진 길을 용케 찾아 본격적인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KBS TV 진안중계소를 지나 개활지 능선에 올라서자 450봉이 가깝게 보였습니다.


  11시5분 450봉 앞 묘지에서 남쪽으로 뻗어나가는 금남호남정맥 길을 이어갔습니다.

진안중계소를 지나 오른 개활지능선에서 직진해 왼쪽 아래로 천주공원 길이 갈리는 쉼터에 도착해 잠시 숨을 고른 후 3-4분을 더 걸어 450봉 앞 묘지에 다다랐습니다. 지난번에 무심코 지나친 이 봉우리에서 남쪽 길로 하산했어야 했는데 동쪽으로 진행하는 바람에 목적지인 강정골재로 내려서지 못하고 진안읍사무소 앞으로 잘 못 내려가 이번에 다시 오른 것입니다. 묘지에 다다르자 강정골재로 이어지는 방향으로 표지기가 붙어 있어 길 찾기가 쉬웠습니다. 왼쪽 사면이 벌목지여서 키를 살짝 넘는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능선 길을 덮고 있어 때맞춰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10분 남짓 잡목숲길을 헤쳐 나가는 시간이 엄청 길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450봉 출발 25분이 지나 다다른 시멘트고개 길에서 개사육장 바로 옆을 지나 버섯재배용 참나무들이 가지런히 세워진 능선으로 올라섰습니다. 주홍색의 시멘트정자를 지나 얼마간 직진하자 강정골재 절개지 상단이 나타나 왼쪽으로 내려갔습니다.


  11시50분 강정골재 앞 차도를 건넜습니다.

절개지 상단에서 왼쪽 아래 크리스탈모텔 입구로 내려가 차들이 뜸하게 지나가는 때를 기다려 중앙분리대를 넘었습니다. 오른 쪽 고개 마루로 가다가 왼쪽의 낮은 시멘트벽을 올라선 다음 오른 쪽 절개면 상단으로 이어지는 배수로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절개면 상단에서 왼쪽으로 꺾어 4-5분가량 마루금을 이어가다가 나지막한 첫 번째 봉우리에서 짐을 내려놓고 17분을 쉬면서 등의 땀을 식혔습니다. 무턱대고 서두르다가 된 알바라도 하게 되면 목적지인 옥산동고개까지 진출하지 못할 것 같아 갈림길마다 꼼꼼히 표지기를 체크하고 산행기도 다시 보느라 비교적 평탄한 길인데도 산행이 더뎠습니다. 오른 쪽 사면이 간벌지인 능선 길을 지나며 지난번에 오른 부귀산을 뒤돌아보기도 하고 어렸을 때 시골 어머니께서 선산에서 많이 캐 오신 청도라지 꽃 한 송이를 사진 찍기도 했습니다.


  13시20분 꼭대기가 제법 넓은 암봉인 525봉에 다다랐습니다.

임도를 가로 질러 오른 쪽 사면이 벌목지인 땡볕의 능선 길을 걸어 숲길로 들어선 후 한참을 올라 490봉에 올라섰습니다. 해발고도가 450m-490m 사이의 능선 길을 걸어 525봉 바로 앞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는 능선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10m가량 떨어진 너럭바위의 암봉인 525봉에 오르자 시야가 확 트여 전망이 일품인데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사방을 둘러보며 카메라셔터를 연신 눌러댔습니다. 최고의 볼거리는 코앞으로 다가선 마이산의 두 암봉이었지만 남서쪽의 광대봉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와 비룡대 팔각정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늘로 옮겨 점심을 들은 후 다시 암봉으로 돌아가 모처럼 거풍을 즐겼습니다. 호남정맥을 종주 중인 서 상경님의 한 산행기에 따르면 옛날 분들도 산에 오르면 머리를 풀고 바람에 빗질하는 즐풍을 한 후 바지를 벗어 거풍을 즐겼다 하는데 저 역시 한 여름에는 호젓한 정맥 길을 혼자서 종주할 때 바람이 잘 통하는 쉼터에서 바지를 내리고 사타구니의 땀을 식히곤 합니다.


  14시55분 탑사 아래 상가 앞 넓은 마당으로 내려섰습니다. 

525봉에서 30분을 쉰 후 13시50분에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이 암봉을 왼쪽으로 에돌아 맞은편의 봉우리에 올라서자 방금 지나온 525봉이 수직으로 깎아지른 절애의 암벽이어서 양 옆으로 날개만 달아준다면 당장이라도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성황당 돌탑이 세워진 안부사거리에서 폐타이어 계단을 올라 제2쉼터에 도착해 잠시 쉰 후 왼쪽으로 꺾어 내려갔습니다. 곧바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다 다시 폐타이어 길을 올라 넓은 헬기장이 들어선 해발540m의 봉두봉에 다다른 시각은 525봉 출발 40분 후인 14시30분이었는데, 이 봉우리의 삼각점은 헬기장 바로 아래 갈림길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갈림길에서 10분 여 내려가 만난 안부에서 출입금지 경고판이 앞을 가로막아 암마이봉으로 오르는 마루금을 이어가지 못하고 오른 쪽으로 에돌아 탑사아래 넓은 공터로 내려섰습니다. 


  본격적인 마이산 탐방은 다음부터였습니다.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고 싶은 욕망을 누르고 탑사 대웅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이갑용 처사께서 쌓아놓은 탑들은 몇 번을 보아도 신비로웠습니다. 이 분이 공들여 쌓은 수많은 탑을 보고 예술이란 자연에 손을 대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고 정성들인 손길을 자연에 더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다른 데서 반듯한 돌들을 가져와 탑을 쌓은 것이 아니고 마이산의 두 모암에서 떨어져 나온 돌들을 모아 쌓은 것이어서 더욱 그러했을 것입니다. 커다란 자갈이 떨어져 나가 움푹 파진 암마이봉의 타포니 안에 탑을 쌓은 이갑용처사의 역사(力事)는 부처님의 절대적인 도움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렇지 않고서야 깎아지른 암벽의 한참 위에 자리한 움푹 파진 곳을 무슨 수로 기어 올라가 탑을 쌓았겠느냐 싶어서입니다. 대웅전 뒤에 정교하게 쌓아놓은 천지탑이 이 처사의 예술적 생명을 무한대로 늘려놓으리라 생각하면서 숫마이봉의 은수사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암마이봉의 탑사에 비하면 숫마이봉의 은수사는 뭔가 모르게 초라했습니다. 대적광전과 숫미이봉을 카메라에 담은 후 정맥으로 복귀하는 길을 찾았습니다. 조선조를 연 태조 이성계가 이 절에 와 기도를 드리는 증표로 씨앗을 심은 것이 크게 자라 돌배가 줄줄이 열린 청실배나무를 지나 시꺼먼 비닐 거적을 덮어씌운 간이 창고 위 산속으로 들어섰습니다. 표지기를 따라올라 다다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묘지에 오르자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아 정맥 길로 올라서기가 쉽지 않았는데 떼거리로 덤벼드는 모기들의 공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15시50분 숫마이봉 동쪽의 정맥 길로 올라섰습니다.

묘지에서 곧바로 올라선 해발 540m의 능선이 바로 정맥 길이었으니 암마이봉 앞 출입금지판에서 정맥 길을 벗어난 지 1시간7분만에 복귀한 셈입니다. 왼쪽 바로 옆에 높이 솟은 숫마이봉을 뒤로 하고 오른 쪽으로 내려가 30번 국도로 향했습니다. 3-4분을 내려가 만난 묘지에서는 끈질기게 따라붙었던 모기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대신에 잠자리와 매미들이 이 산의 주인행세를 했습니다. 왼쪽 사면을 벌목하느라 올라왔을 불도자의 바퀴자국이 선명한 능선을 따라 내려가다가 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왼쪽 사면에 낙엽송과 적송만 남겨두고 나머지 일반 소나무들은 모두 베어낸 것은 제선충 때문이라 생각하자 안타깝고 두려웠습니다. 15분을 더 걸어 다다른 440봉에서 7-8분을 쉰 후 또 다시 오른 쪽으로 꺾어 3-4분을 내려가 십자안부에 닿았습니다.


  16시41분 30번국도 앞 고개 마루로 내려섰습니다.

십자안부에서 다시 올라 나지막한 봉우리 몇 개를 넘어 왼쪽으로 꺾어 내려갔습니다. 콩밭 가를 지나 30번 국도에 내려서기까지 나뭇잎에 가려 지나온 마이산의 두 암봉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국도를 건너 묘지 위를 지나 직등 길을 오르느라 흐르는 땀이 불러들인 모기들이 신이 나서 윙윙거리며 얼굴을 맴돌았습니다. 455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490봉에 이르기까지 잡목풀숲 길을 지나는 35분 동안 나뭇가지와 산딸기 가시들이 제 얼굴을 수없이 때리고 찔렀습니다. 하늘로 승천하려다 여신이 꾸물대는 통에 사람들에 들켜 그대로 굳어버린 산신부부가 서로 등을 돌린 것은 남편 산신이 아내 산신에 화를 내고 싸웠기 때문이라는데 오른 쪽 간벌지 너머로 다시 모습을 보인 마이산의 부부 봉이 이제는 화해를 한 듯 정겹게 보였습니다. 부부봉은  왼쪽 아래로 파란 지붕의 민가가 보였고 오른 쪽 멀리로 30번 차도가 보였습니다.


  17시37분 가름내재로 내려섰습니다.

490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묘지를 지난 후 고추밭 바로 아래 아스팔트 차도가 지나는 가름내재에 당도했습니다.  아침에 늦게 산행을 시작해 너무 늦으면 여기 가름내재에서 종주산행을 마치는 것도 염두에 두었기에 일단 쉬면서 더 이상 산행할 것인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택시를 불러 진안으로 바로 갈까하다가 기왕 택시를 부를 바엔 한 시간 정도 더 가서 옥산동고개에서 마치는 것이 다음 산행을 수월하게 할 것 같아 다시 짐을 챙겼습니다. 일단 끝내자고 마음먹었다가 생각을 바꾸어 다시 한다 하자 발걸음이 더욱 무거웠습니다. 바로 위 능선에 올라서기까지 표지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지도를 보고 몇 개의 오름 길 중 맨 오른 쪽에 난 공사용 길로 들어섰습니다. 공사용 길은 8부 능선에서 끝났고 나머지 길을 그냥 똑바로 올라 능선 길로 올라섰습니다.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몇 걸음을 옮기자 노란 표지기가 보여 엄청 반가웠습니다.


  18시44분 옥산동고개마루에 도착해 이번 구간 종주산행을 끝냈습니다.

가름내재에서 올라선 능선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5분간 오른 봉이 535봉이었습니다. 왼쪽으로 내려가 안부를 지나자 별안간 숲 속이 깜깜해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산행 중 내내 무덥고 후덥지근해 한 번은 소나기가 쏟아질 것이라 예상했었고 그동안 참아준 것만도 고맙다는 생각에서 그냥 비를 맞고 걸었습니다. 몇 분 후 더 이상 맞다가는 배낭 속까지 다 젖을 것 같아 가던 길을 멈추고 배낭을 벗자마자 비가 그쳤습니다. 535봉에서 22분을 걸어 옥산동고개마루에 도착했습니다. 지도에 나와 있는 대로 왼쪽으로 좁은 농로길이, 오른 쪽으로 트랙터가 다닐만한 넓은 농로길이 나 있었습니다. 오른 쪽으로 10분을 내려가 18시55분에 사옥마을 첫 집 앞마당에 도착,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4-5분을 기다렸다가 저녁 7시에 출발하는 진안 행 군내버스에 올라 택시비를 절약했습니다. 1시간 전에 지난 가름내재를 넘어 진안터미널에 도착하기까지 20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인근 식당에서 순대 국을 사 든 후 7시50분 발 전주행 직행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자 돌아앉은 부부봉이 생각났습니다. 당신들의 더 큰 고통은 살점이 떨어져나가 생긴 것이 아니고 아직도 화해하지 못하고 토라져 사는 데서 비롯되었기에 누구라도 빨리 손을 내밀고 서운함을 털어버리라고 한마디 고언을 전하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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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산 (1)


                   *산행일자:2007. 4. 22일

                   *소재지  :전북 진안

                   *산높이  :685m

                   *산행코스:30번국도변 인공수정소-합미산성-광대봉-524.5봉-비룡대

                                   -봉두봉-탑사-암마이봉/숫마이봉 안부-북부주차장

                   *동행    :송백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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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아산을 다녀오고 나서 산에 드는 입산이 정상을 오르는 등산의 단순한 과정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산 안에 내가 있음”은 우리 선조들이 견지한 입산의 자세라면 “내 안에 산이 있음”은 서양인들이 등산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정복욕의 또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저 역시 산속에 들어가 산 식구들과 이런 저런 묵언의 대화를 나누며 느긋하게 이 봉우리 저 봉우리를 바라다보고 돌아오는 입산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필코 정상을 오르는 등산을 해야 직성이 풀려 군사기지가 들어선 몇 몇 산을 제외하고는 산행할 적마다 거의 다 정상을 빼놓지 않고 올랐습니다. 어쩌다 정상을 못 오르고 하산하게 되면 “**산 산행기”라고 산 이름을 표방하는 것이 낯간지럽고 민망해 산행기를 남기기가 뭣했습니다.  어제 두 번이나 다녀온 마이산을 또다시 찾은 것도 이번만은 반드시 정상을 오른 다음 제대로 된 명산100산 산행기를 남기고 싶어서였는데 4시간 남짓 걸어 다다른 암마이봉 바로 밑 안부에서 2014년까지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공고문을 보고 많이 허탈해 했습니다. 오른 쪽으로 에돌아 천천히 탑사로 내려오면서 오를 수 없는 마이산을 몇 번이고 뒤돌아보자 어느새 허탈감은 사라졌고 대신에 저를 반겨 맞는 마이산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이 산도 정상에 올랐다면 산의 정수리를 밟는 들뜸에 붕 떠 발밑에서 힘들어하는 이 산의 진정한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이산의 생성비밀은 심하게 천연두를 앓은 아이의 얼굴처럼 바위표면 여기저기에 뚫려 있는 크고 작은 구멍들에 있습니다. 이렇게 바위표면 여기저기에 벌레 먹은 사과처럼 움푹움푹 구멍이 파여 있는 현상을 타포니(Tafoni, 풍화혈)라고 하는데 이러한 타포니는 입상붕괴라고 하는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다 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어제 만나본 마이산이 우리나라에서 타포니를 관찰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암봉입니다.  약 1억 년 전인 중생대의 백악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마이산의 자리 터는 거대한 담수호였으며 이 담수호에 굴러들어온 자갈들이 쌓여 역암이라는 퇴적암을 만들었고 이 퇴적암이 습곡운동으로 횡압력을 받아 융기해 거대한 암수 두 암봉으로 변신한 것입니다.  융기한 두 암봉이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받아 모암에 박혀있던 자갈들이 하나 둘씩 빠져나가 작은 구멍이 생겼고 이 구멍들도 세월의 등살에 못 이겨 그 크기를 늘려가 오늘날의 마이산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마이산의 복잡한 생성비밀을 밝혀낸 지리학자들보다 훨씬 앞서 나름대로 이 산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찾아냈는데 그것이 바로 이산에 얽어 엮어낸 전설과 설화입니다. 아득한 옛날에 신선부부가 두 자식을 데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가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바위산이 되었다는 간단한 전설에서 퇴적암의 융기를 신선의 등천으로 패러디하면서도 하늘나라에 오르지 않고 바위산으로 머무르는 것으로 끝맺음한 것에서 비경의 마이산을 하늘나라로 알고 그냥 이 곳에서 머물러 살겠다는 조상들의 절제된 지혜를 읽었습니다..


  아침 10시40분 30번국도 변 인공수정소 맞은편의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거의 두 달 만에 함께하는 송백산악회원들과의 산행이어서 뵙고 싶은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단골멤버 몇 분들이 보이지 않아 서운했습니다. 지난겨울 주흘산을 함께 산행했던 동년배 한 분과 자리를 같이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어 3시간 반의 버스길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기다렸다가 금남호남정맥 종주 길에 마이산을 들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그래도 산림청에서 100산의 하나로 선정한 명산을 목적지로 오르지 않고 경유지로 들르는 것이 예가 아닌 것 같아 눈 딱 감고 송백산악회의 산행에 합류했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땅바닥이 촉촉했습니다. 연초록 나뭇잎들이 가지 끝에서 파릇파릇 돋아나고 조팝나무가 하얗게 활짝 웃어 합미산성터로 향하는 오름길이 상쾌했습니다. 산성의 굄돌로 쓰였을 돌들이 깔려있는 산길을 지나 그리 넓지 않은 공터에 다다르자 먼발치로 이름모르는 암벽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첫 번째 암봉을 오른쪽 난간 길로 우회한 다음 연초록 낙엽송과 진초록 잣나무 밭을 지났습니다. 두 번째 난간 길로 암릉을 올라 다다른 495봉에서 수박파티가 열려 철 이른 수박 두 조각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얻어먹는 입이 아무리 즐겁기로서니 등짐지고 올라와 회원들에 베푸는 주인분의 가슴 뿌듯함에 비할 바가 못 될 것이기에 다음 산행에도 혹시 하고 기대하게  됩니다.


  12시1분 해발 609미터의 광대봉에 올라섰습니다.

495봉에서 편안한 솔밭 길을 지나 오른 쪽 아래로 고금당으로 갈리는 삼거리 안부에 다다라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왼쪽으로 태자굴로 가는 길이 나있는 능선 갈림길에서 직진해 철제 난간을 잡고 가파른 암릉길을 올라 삼각점과 표지석이 서있는 광대봉에 다다르자 외줄 하산 길로 내려서는 산객들이 대기하고 있어 넓지 않은 광대봉 정상이 엄청 붐볐습니다. 정면으로 마이산의 암수 두 암봉이 눈에 들어오는 와 반가웠습니다. 줄을 서서 하산을 기다리는 중 나이든 남정네들 몇 사람이 새치기니 아니니 하며 서로 목청을 높이는 통에 시끄러웠는데 이번에는 밧줄을 잡고 내려서는 제게 이리해라 저리해라 하며 눈치 없이 시시콜콜 코치를 해대는 또 다른 남정네의 과잉친절로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외줄 병목 길을 내려가느라 20여분이 지체되어 남은 길을 서둘러 가다가 장거리산행을 처음 해본다는 여성분을 만나 속도를 줄였습니다. 봉우리 몇 개를 지나 삼각점이 박혀있는 고금당 바로 위의 524.5봉에 올라 오른 쪽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저와 함께 맨 뒤에서 걷던 앞의 여성분이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다친 데는 없었으나 다리에 쥐가 나 결국에는 눈앞의 비룡대를 오르지 못하고 남편 분과 함께 안부삼거리에서 오른 쪽 아래 남부터미널로 하산했는데 후미를 맡았으면서도  끝까지 동행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14시12분 해발527미터의 나봉암에 올라 2층 전망대인 비룡대에 올랐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암릉길을 올라 저희 후미팀을 고금당에서 기다리는 산악회 대장분과 통화하고 나서야 일행들이 점심 식사를 한 고금당을 들르지 않고 똑바로 524.5봉으로 올랐음을 알았습니다. 이미 오후1시 반이 지난 시각이어서 능선 길에 주저앉아 후미 한분과 함께 서둘러 점심을 든 후 비룡대로 내달렸습니다. 100개의 계단을 걸어 오른 비룡대에서 바라다본 마이봉은 암마이봉 꼭대기의 나무들의 가지가 보일 정도로 선명했습니다. 렌즈고장으로 수리를 맡겨 어렵게 나선 마이산 나들이를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끝내나보다 싶었는데 마침 후미를 같이 한 분이 열심히 사진을 찍어 나중에 카페에서 스크랩해가기로 했습니다. 오른쪽 부부시비로 내려서는 안부를 지나 제2쉼터에 다다라 잠시 쉬었습니다.


  15시4분 탑사로 내려섰습니다.

나무의자가 설치된 제2쉼터에 오르자 오리모양의 놀이배가 떠 있는 저수지 탑영제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이산의 움푹 파인 구멍들이 지난날의 모진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면  아담한 규모의 탑영제 저수지에서 탑사로 이어지는 화사한 벚꽃 길은 현세의 넉넉함을 내보여주어 서로 대비됐습니다. 헬기장이 들어선 해발540미터의 봉두봉에서 왼쪽 안부로 내려가 암마이봉에 바짝 다가서자 진가민가 했던 등산로폐쇄 안내판이 서 있어 크게 낙담했습니다. 수직으로 200m정도만 고도를 높이면 암마이봉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탑사로 하산하면서 오를 수 없는 암마이봉을 힐끗힐끗 올려다보자  1억년 이상을 이 자리에 지켜선 마이산이 낙담하고 내려서는 저를 불러 세워 휭 하니 그냥 내려가지 말고 구멍이 많이 나 있는 자기 얼굴을 다시 보고 가라고 말을 건네 왔습니다. 억겁의 세월을 물속에서 품어온 자갈들을 지각변동의 대 혼란 속에서도 놓치지 않고 뭍으로 끌고 올라와 애지중지 품어왔는데 공해에 찌든 이 땅에서 호흡하기 힘들어 다시 물속으로 돌아가겠다며 자기 품을 떠나는 것이 안쓰럽고 서운하다는 마이산이 앞으로도 계속해 그렇게 떠나보낼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몸에서 피한방울만 나도 온갖 난리를 떠는 데 살점이 뚝뚝 떨어져나가는 고통을 감수하는 일이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싶었습니다. 탑사로 내려선 후 마이산의 고통을 얼마라도 덜어준 한 분이 계셨음을 알았습니다. 퇴적암의 시대로 되돌아가겠다며 모암을 떼쳐 나온 자갈들을 다시 불러 모아 마이산 바로 아래 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라는 분입니다. 떨어져나간 자갈들을 다시 붙이지는 못해도 주워 모아서 쉽게 내려다보이는 곳에 탑을 쌓은 이 처사님의 지극정성에 감동한 마이산이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심하게 흔들릴망정 결코 무너지지 않도록 이 탑들을 보살펴왔을 것입니다.


  15시40분 북부주차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탑사에서 암수 두 봉 사이의 고개를 넘어 북부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길도 비경이었습니다. 암수 마이산을 가르는 고개 마루에서 내려다 본 돌탑들이 압권이었고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대웅전 대신에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대적광전과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시는 무량수전이 들어선 은수사에도 눈이 갔습니다. 다만 자갈이 떨어져 나가 움푹 파인 구멍 안에 촛불을 밝히며 산신령께 도움을 청하는 것은 살점이 떨어져나가 아파하는 마이산에 좀 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정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기꺼이 산 이름을 내걸고 산행기를 쓴 것은 정상을 오르는 등산만 산행이 아니고 산 속에 발을 들여 정상을 바라다보고 오는 입산도 산행이 분명함을 증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전처럼 암마이산은 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안고 떠난 산 나들이라서 등산로폐쇄공고문을 보고나자 얼마고 실망했지만, 마이산과 그 아픔을 공감하고 같이 나누었다는 생각에서 귀경 길은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모암에서 떨어져나가는 자갈들을 주워 모아 탑을 쌓는 이 처사님의 후예들이 남아있는 한 우리의 마이산이 자갈들처럼 예라 모르겠다하며 백악기로 되돌아가겠다고 진안 땅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 입니다.그래서 안심하고 잠실에서 하차하여 몇 분들과 자리를 같이하며 알콜 결핍증을 해소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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