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암산 (홍천)
*산행일자:2009. 6. 21일(일)
*소재지 :강원홍천
*산높이 :백암산1,099m
*산행코스:밤까시/가령폭포삼거리-가령폭포-865봉-백암산-밤까시갈림길
-가령폭포1.8Km 전방지점 능선-가령폭포-연화사입구
*산행시간:10시8분-15시(4시간52분)
*동행 :과천산사랑 산악회원
흰 바위의 백암산도 흰 구름의 백운산에 버금갈 만큼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습니다.
강원도 홍천이 숨겨놓은 백암산은 산림청에서 명산100산으로 선정한 전남장성의 백암산, 백암온천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경북울진의 백암산, 그리고 금남정맥이 지나는 충남금산의 백암산에 이어 제가 네 번째로 오른 백암산입니다. 이번에 오른 홍천의 백암산이 앞서 오른 세 곳의 백암산들과 대별되는 것은 흰색이든 회색이든 이렇다 할 거암이 눈에 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산 이름에서 언뜻 느껴지는 것은 이 산은 골산이어서 암릉 길을 오래 걷겠다 싶었는데 실제로는 서울의 청계산 못지않은 육산이어서 모처럼 편안하게 원점회귀산행을 즐겼습니다. 오지의 이 산이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영춘지맥을 종주하는 산객들이 이 산을 지나면서 산행기를 남겨서인 것 같은데, 이날 이 산 남쪽의 연화사 쪽으로 몰려든 산악회 버스들이 무려 8대(?)였다 하니 이 정도라면 이 산도 앞으로는 더 이상 신비스런 오지의 산으로 대접받기는 힘들 것입니다.
이틀 전 수리산을 깔끔하게 종주하고 나자 자신감이 생겨 과천산사랑산악회에 백암산을 같이 가겠다고 신청했습니다. 지난 달 태백산을 다녀온 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계속해 산행을 미뤄오다, 거의 넉 주 만에 큰 맘먹고 산본 시내를 에워싸고 있는 수리산 산줄기를 빙 돌아 안양의 병목안으로 하산했습니다. 5시간을 걸었는데도 염려했던 허리통증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아 백암산 산행을 신청했지만 이 산이 이름 그대로 바위산이 아닐까 걱정도 되었습니다. 초반에 오름길의 경사는 급했어도 전형적인 육산인데다 하산 길에 계곡을 만나 탁족까지 하는 등 5시간의 산행이 모처럼 여유로웠고 편안했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땅바닥이 축축해 저희들이 살고 있는 북반구에서 낮이 가장 길어지고 태양의 남중고도가 가장 높아지는 하지(夏至) 를 맞아 후끈거리는 지열을 막아주었고, 낙하거리가 50m를 넘는 가령폭포의 하얀 물줄기가 이제 막 시작되는 여름더위를 삼켜버려 산행 내내 그다지 더운 줄 몰랐습니다. 오랜만에 지방 고산의 원정 산행을 성공리에 마치고 귀가해 맥주 한 캔을 따마시면서, 앞으로 살아가는 것이 이와 같다면 누가 인생을 아름답다고 아니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산은 이렇듯 삶에 긍정적 에너지를 불어넣어주기에 저는 하산하자마자 또 다른 산행을 꿈꾸곤 합니다.
오전10시8분 밤까시/가령폭포 삼거리에서 백암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451번 지방도에서 0.1Km 북쪽으로 들어가 하차한 지점이 왼쪽으로 밤까시 길이 갈리는 삼거리였습니다. 삼거리에서 오른 쪽의 가령폭포 길을 따라 십분 남짓 걸어 자그마한 대웅전만 또렷하게 보이는 연화사에 이르렀습니다. 5분을 더 걸어 다다른 계곡을 건너 7-8분을 걸어 오르자 홍천9경의 한 곳인 가령폭포가 50여m 높이의 장대한 전신을 드러내 보였습니다. 카메라를 세로로 세워야 간신히 전신을 담을 수 있는 가령폭포에 관한 아무런 전설이 전해지지 않는 것은 먼 옛날에는 이 산이 하도 깊어 가령폭포를 찾는 사람들이 아예 없었거나 아니면 이곳 선조들의 문학적 상상력이 빈약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개의 폭포들은 폭포수의 낙하거리에 비례하여 그 아래 소의 깊이와 크기가 결정되는데 여기 가령폭포는 폭포의 높이가 상당한데도 그 아래 소가 별로 깊어 보이지 않아 금강산의 선녀들이 이 폭포로 원적 오는 것이 별반 내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1시23분 865봉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가령폭포 출발 몇 분 후 다다른 삼거리에서 오른 쪽 능선으로 올라서자 가파른 된비알길이 이어졌습니다. 길도 좁고 전날 내린 비로 물기가 남아 있어 또 다시 허리를 다칠 까 조심해서 걸었습니다. 오름 길에 두 아름은 실히 되 보이는 노송들이 꽤 여러 그루 서있어 노송능선이 명불허전임을 알 수 있었는데, 이 능선을 지키는 것은 하늘을 찌르는 노송들만 아니었고 다른 산의 산죽보다 훨씬 키가 낮은 앉은뱅이 산죽들도 함께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야생화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싶어 얼마간 서운했는데 활짝 핀 새하얀 산 목련 한 송이가 참으로 소담스러워 보였습니다. 구름이 완전히 걷히고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파고들자 숨죽였던 산새들이 재잘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가령폭포에서 능선을 따라 올라 300m가량 고도를 높이느라 진땀이 났지만 봉우리삼거리인 865봉에 다다르자 골바람이 불어와 금방 등 뒤가 시원해졌습니다. 나무와 꽃, 그리고 새들과 바람이 이 산의 주인일진데 잠시 머물다가는 저 같은 객들은 주인들 모르게 아니 온 듯 다녀가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 이들에 눈인사를 건네는 것조차 조심스러웠습니다.
12시18분 해발1,099m의 백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오른쪽으로 비레올 길이 갈리는 865봉에서 왼쪽의 정상으로 이어지는 2.1 Km 능선길이 높낮이가 심하지 않아 걸을 만 했습니다. 노송능선의 산죽보다 키가 조금 큰 산죽들이 땅바닥을 뒤덮은 능선 길을 따라 956.7봉에 올랐다가 내려선 곳이 지도에 나와 있는 초원안부 같았습니다만, 주위가 펑퍼짐해 안부라고 불릴만한 고개를 찾지 못했습니다. 주홍색의 산나리와 눈을 맞춘 후 올라선 정상은 좁기는 했지만 맨땅의 평평한 곳으로 GPS 수신을 돕기 위해 주위나무들이 일부 베어져 있었습니다. 정상에 올랐어도 무성한 나뭇잎들로 시야가 막혀 강원도 특유의 장대한 산줄기를 카메라에 담아오지 못했습니다. 바로 아래 그늘에서 먼저 온 회원들과 점심을 함께하느라 20분 남짓 쉬었습니다. 이 높은 봉우리에서 질경이를 캐는 여심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12시40분에 정상을 출발해 영춘지맥에 발을 들였습니다. “산양의 수염”이라는 꽃말을 갖고 있는 눈개승마는 된 바람만 불어온다면 당장에라도 꽃술들을 멀리 여행 떠나보낼 듯 산들바람에도 크게 온 몸을 흔들었습니다. 자연의 건강미가 물씬 느껴지는 얼룩말 무늬의 물푸레나무 숲을 지나 첫 번째 삼거리인 밤까시 갈림길에 이르렀습니다. 정상에서 0.4Km 떨어진 이 삼거리에서 똑바로 뻗어나가는 길이 영춘지맥 같았고, 저는 가령폭포로 내려가는 왼쪽 능선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14시5분 첫 번째 계곡을 건넜습니다.
영춘지맥 길이 갈리는 첫 번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얼마간 내려가자 왼쪽으로 산줄기가 보였습니다. 능선 길을 걸으면서도 나뭇잎에 가려 보지 못했던 산줄기가 확연하게 보이자 답답했던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첫 번째 삼거리에서 15분 남짓 내려가 만난 두 번째 삼거리에서 갈라지는 두 길 모두 가령폭포로 이어지기에 그냥 직진했습니다. 노송능선의 노송처럼 아름드리는 아니지만 훤칠한 키의 적송들이 햇빛을 받아 더 밝게 보였습니다. 내리막길에서 잠시 멈춰 서서 뒤따라오는 사람들에 길을 비켜준 것은 그들 중 한분이 뱉어내는 쌍스러운 욕설을 듣기 싫어서였습니다. 세 번째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내려서자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렸고 이내 노랑 버섯이 보였습니다. 올 들어 처음 만나 본 이 버섯이 제게 스스럼없이 함박웃음을 내보인 것은 이 버섯 또한 이 산의 주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첫 번째 계곡으로 내려서자 앞서간 그분들이 서로 등 멱을 해주느라 왁자지껄 했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두 인자(仁者)는 아니라 해도 산을 오르내리고 있는 중에는 사람들이 한결 더 어질어진다는 것은 다음의 통계로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월간 “산”지에 따르면 한 달에 한 번 이상 산을 오르는 등산인구가 무려 천삼백만 명이 넘는다 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산에서 이제껏 살인사건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은 이들 모두가 본래 어질어서가 아니고 산을 오르면 사람들 거의다가 산 속에 있는 시간만은 어질어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제게는 제 나이쯤 들어 보이는 한 남자분의 거침없는 욕설이 정말로 듣기에 거북했습니다. 누가 듣지 못하도록 자기들끼리 작은 소리로 욕을 한다면 모르겠는데 마치 산신령에게라도 고하듯이 큰 소리로 특정정치인에 욕을 퍼붓는 것을 보고 증오로 똘똘 뭉친 사람들은 산신령도 어찌할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퇴계 이황선생께서 송암 권호문에 “인지(仁智)의 이치는 사람들이 형상을 통하여 근본을 구해서 모범의 극치를 삼게 하려는 것이지 산과 물에서 인(仁)과 지(智)를 구하게 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라 말씀하신 이유가 산에 몇 번 오르면 자기의 품행과 관계없이 인자(仁者)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임을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15시 연화사를 조금 지나 대기 중인 버스를 만나 하루산행을 마쳤습니다.
첫 번째 계곡을 건넌 후 두 번인가 산허리를 에돌아 묘지고개에 올라섰습니다. 이 고개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 두 번째 계곡인 가령골을 건넌 시각이 14시22분으로, 이 계곡에서 짐을 내려놓고 십 수 분간 쉬었습니다. 저 아래 가령폭포로 흐르는 계곡물이 제법 차 탁족을 하기에 딱 알맞았으며, 여인네들만 없었다면 발가벗고 목욕을 해도 좋을 만큼 수량도 넉넉했습니다. 무더운 여름 날 옛 선비들이 몰래 즐겼던 풍습이 있었으니 그 하나는 햇빛이 잘나고 동남풍이 부는 날 산위에 올라가 상투를 풀고 머리를 빗질하는 즐풍(櫛風)이었고, 또 하나는 하체를 햇볕에 노출시켜 말리는 거풍(擧風)이었다 합니다. 즐풍은 이미 흘러가 없어진 풍습이지만, 거풍만은 저 혼자 대간이나 정맥을 종주할 때는 바람이 잘 통하는 고봉에 올라 팬티를 내려 사타구니에 바람을 쐬면서 꾸준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능선을 가로 질러 다다른 가령폭포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물 떨어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50여m의 높이를 한 숨에 떨어지는 물소리가 아주 컸어도 전혀 소음으로 들리지 않고 맑은 청음으로 다가오는 것은 기계음이거나 사람들의 괴성이 아니고 자연이 빚어내는 소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화사를 지나 버스가 서있는 곳으로 내려가자 정성들여 준비한 찌개와 시원한 맥주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산 정상의 높이가 해발1,099m라 해도 출발점의 해발고도가 500m가 다 되어 이번 산행은 서울의 청계산을 오르는 것보다 조금 더 힘들고 산행시간도 약간 더 긴 정도였습니다. 산행코스가 비교적 수월해 산행에 쓰고 남은 에너지가 상당한 것 같았습니다. 몸속에 남아 있는 화학에너지를 모두 다 소리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바람에 귀가 버스 안이 조금 시끄러웠던 것은 아무려면 사람들이 내는 고성이 자연의 청음을 따라갈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청음을 빚어내는 산이 그래서 더욱 더 고마운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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