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지역 명산/지역명산 탐방기

A-51.월롱산 산행기

시인마뇽 2010. 1. 12. 13:09

                                                    월롱산

 

                                  *산행일자:2010. 1. 8일(금)

                                  *소재지 :경기 파주

                                  *산높이 :229m

                                  *산행코스:용주서원-용상사-월롱산정상-팔각정-LG기숙사

                                  *산행시간:14시3분-17시34분(3시간31분)

                                  *동행 :나홀로

 

 

   하얀 눈이 홀대받는 도시를 떠나 고향땅 월롱산을 올랐습니다.

경기도 파주에 자리한 이 산은 제가 아직 정상을 오르지 못한 몇 안남은 고향 산이어서 언제고 한 번은 올라야겠다고 벌써부터 별러왔습니다. 이 산은 그 높이가 고작 해발229m밖에 안 되는 나지막한 구릉(?)이어서 언제고 짬날 때 파주의 다른 산과 연계해 오르려고 이제껏 산행을 미뤄왔는데, 몇 십 년 만에 처음으로 많이 내린 새하얀 함박눈을 온전하게 품고 있을 이 산을 이때 올라야 고향의 온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겠다 싶어 서둘러 산본 집을 나섰습니다. 서울의 DMC역에서 경의선 열차로 바꿔 탄지 채 1시간이 안되어 월롱역에 도착했습니다. 월롱역에서 하차해 인근 음식점을 들러 점심을 사든 후 택시를 타고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용주서원으로 옮겼습니다.

 

 

  이번에 들른 용주서원은 조선조 청백리로 녹선된 휴암 백인걸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입니다.

연산군 3년인 1497년에 태어나 선조 12년인 1579년에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휴암 백인걸선생은 정암 조광조선생의 유지인 격물치지와 택민의 정치를 일으키려고 애쓴 유학자이며 대사헌 직까지 맡았던 분으로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 선생을 쓸 만한 인재라며 조정에 추천도 했습니다. 선생은 명종 즉위년인 1545년에 수렴청정을 시작한 문정왕후가 정치권력을 강화하고자 청정시작 한 달 만에 반대파 사림들을 숙청한 을사사화를 일으켰을 때 왕후의 조치가 그릇된 것이라며 강경하게 반대하다 감옥에 갇히기도 했던 강직한 분이셨습니다. 이런 선생이 태어난 곳은 제 고향 파주가 아니고 한성입니다만, 조정에서 물러난 후 머문 곳이 서원촌으로 알려진 바로 월롱이고, 그 인연으로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 이곳에 세워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깥마당의 홍살문을 지나 대문 앞에 이르자 문이 굳게 잠겨 있어 담 너머로 안을 들여다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륜당과 내외삼문 밖에 다른 건물이 보이지 않는 이 서원은 그 규모가가 아주 작아 제사를 올리는 사당,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당, 기숙사인 동제와 서제, 서적을 펴내는 장판고와 보관하는 서고, 제기를 보관하는 제기고 등 일반 서원에 배치되는 건물들이 다 들어앉기에는 턱없이 좁았습니다. 다른 서원들과는 달리 빈약하기 짝이 없는 이 서원이 파주시의 향토유적1호로 지정된 것은 그만한 역사적 가치가 있어서일 텐데 저는 아직도 그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있지 못합니다.

 

 

  14시3분 용주서원을 출발했습니다.

스틱이 아니었다면 시멘트 길인 줄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이 쌓여 있는 넓은 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십분 가량 걸어올라 파평윤씨 묘를 만났습니다. 묘지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봉분이 더욱 볼록해 보였습니다. 나무다리 건너 약수터를 그냥 지나치고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올라 다다른 능선사거리는 5년 전 한북오두지맥종주 길에 지났던 곳입니다.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섰고 나무의자가 세워진 능선사거리 쉼터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지난 번 시간에 쫓겨 들르지 못했던 용상사를 둘러보고자 곧바로 내려갔습니다. 눈길이 끝나고 시멘트 길이 시작되는 곳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올라 이 절의 관문인 일주문을 지났습니다. 일주문에서 위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작은 절이 용상사의 이름을 얻은 것은 1018년 거란의 침공해왔을 때 고려조 현종임금이 여기 월롱산으로 피신해 이 절에 머물렀기 때문이라는데 천년고찰 용상사는 현란한 단청 색으로 그 오랜 역사를 덮어놓은 듯 했습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미동도 하지 않는 대웅전의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온산을 하얗게 뒤덮어 시간을 잠재운 하얀 눈과 어울려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15시1분 능선사거리쉼터로 되돌아왔습니다.

한 낮의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앉은 아담한 집 한 채를 지나 능선 사거리로 복귀했습니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오두지맥 길에 가득 쌓인 눈을 밟고 오르면서 이번 눈이 몇 십 년 만에 겪는 대설이라는 언론보도가 거짓이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누구 말마따나 저리 많이 쌓인 눈이 흰색이기를 망정이지 빨간 색이나 노란 색이었다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질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새삼 자연의 섭리가 신비롭게 느껴졌습니다. 곳곳에 이정표가 세워져 길을 잘 못 들어 눈길을 헤매지는 않겠다 싶어 마음이 놓이자, 임진왜란 때 조선 승병에 패해 떼죽음을 당한 왜군의 시체가 즐비했다는 용상사 아래 골짜기가 아주 안온해 보였습니다. 제가 근처 문산중학교를 다니던 196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이 산은 임진강을 넘어온 간첩들의 은신처여서 결코 평온한 산이 아니었습니다. 이 산 밑을 지나다니던 학생들이 숨어 있는 간첩을 보고 신고를 해 반공조회 때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휴전선이 지척인 이 산 아래 LG필립스의  LCD단지가 들어선 것은 이제 우리 대한민국이 북쪽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여하한 도전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16시정각 해발229m의 월롱산을 올랐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LG기숙사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계단을 걸어 오르자 벙커(?) 위에 세워진 깃봉 아래 넓은 쉼터가 보였습니다. 나뭇잎이 무성한 한 여름이라면 넓게 그늘을 만들었을 여러 그루의 참나무가 빙 둘러 서있고 그 아래 벤치 몇 개가 쓸쓸하게 자리한 쉼터에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별로 없어 주위의 눈이 깨끗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넓은 쉼터를 지나 다다른 월롱산성 안내판이 서 있는 삼거리에서 지난번 한북오두지맥을 따라 오른 쪽으로 내려가는 바람에 들르지 못한 이 산의 정상을 밟고자 이번에는 왼쪽 길로 들어서서 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기간봉 군부대가 가깝게 보이는 체육공원에서  먹이를 구하다 지쳤는지 날지를 못하고 뒤뚱대며 걸어가는 새한마리를 만났습니다.  표지석이 세워진 정상에 다다르자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사진에 많이 나오는 깎아지른 절벽이 보였습니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황적색의 아찔한 암벽아래 협곡을 내려다보며 그랜드캐넌의 한 부분을 옮겨놓은 것 같은 이런 절경을 어디서 다시 만나볼 수 있으랴 싶어 사진 몇 커트를 찍어 왔습니다. 아찔한 암릉 길에서 벗어나 다시 체육공원으로 내려섰습니다.  정상에서 월롱산성 안내판을 지나 LG 기숙사 갈림길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평평한 능선이 이 산의 특징입니다. 옛날부터 제가 이 산을 다르게 본 것은 대개의 산들이 정상을 중심으로 삼각추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는데 이 산의 정상은 한쪽 끝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반대쪽으로 능선이 평평하게 이어져 정상이 전혀 산봉우리 같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조들은 이런 능선이 산정에 배 떠나가는 모양의 형국을 하고 있다며 그 모습이 반달을 닮았다 하여 월롱산(月籠山)이라 불렀습니다.

 

 

  17시3분 팔각정에 올랐습니다.

되돌아간 계단아래 갈림길에서 그대로 북진해 LG기숙사로 향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삼거리에 다다랐습니다. 이 삼거리에서 팔각정자를 들르고자 LG기숙사 길에서 벗어나 왼쪽 아래 길로 내려섰습니다.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하는 내림 길이 경사가 급해 가드에 연결해 놓은 줄을 잡고 내려가느라 시간이 좀 지체됐습니다. 한참 동안내려가 계곡을 건너며 다 내려왔다 했는데 왼쪽 능선으로 다시 올라가야 팔각정자를 만난다는 이정표를 보자 조금은 힘이 빠졌습니다. 이번 산행 최고의 깔딱 길을 걸어 올라선 능선의 넓은 임도 길이 다름 아닌 한북오두지맥 길임을 알고 나자 월롱산성 안내판 삼거리에서 지맥을 타고 바로 왔다면 훨씬 빨랐을 것을 미련하게 빙 돌아왔다 싶었습니다. 오른 쪽 위로 5-6분을 더 걸어 이른 삼거리에서 오두지맥 길은 왼쪽 차도 건너 기간봉으로 이어지고 팔각정 가는 길은 위로 뻗어나갔습니다. 팔각정 조금 못 미친 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 단 몇 분 동안 아무도 지니지 않은 신설을 밟아 봉우리에 오르면서 눈위에 길을 새로 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헬기장이 들어선 넓은 공터의 정상에서 내려가 만난 팔각정은 LG필립스 LCD단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최고의 전망처였습니다. 임진강이 멀지 않고 산이 바람을 막아주어 장풍득수(藏風得水))의 명당 자리가 바로 여기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이 포근하고 넓은 터를 월롱산이 오랫동안 잘 보존해온 덕에 이런 대단지가 들어섰다 생각하자 이 산에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일었습니다.

 

 

  17시34분 LG기숙사 건너편 버스정류장에서 한나절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팔각정에서 정북 방향으로 내려가는 기숙사 길에도 눈이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나는 뽀드득 소리가 시골의 눈길을 걸어 다니던 어린 시절을 떠 올렸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때가 더 추웠고 눈도 더 많이 내렸던 것 같습니다. 큰 눈이 그친 뒤 산에 올라 토끼를 몰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 오른 것은 애들은 그저 눈 놀이 삼아 토끼를 몬 것뿐이고 그렇게 잡은 토끼고기는 약주를 드시는 어른 들 몫이었다는 것이 억울했기 때문입니다. 어둠보다 조금 빨리 월롱산 산림욕장 입구를 지나 단지 내 넓은 차도로 내려섰습니다. 차도 건너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다 본 아파트촌이 이름 그대로 “정다운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이 통해야 할 것인데 이 산이 한 몫 단단히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은 것은 아파트 주민들이 이 산을 땀흘려 오르면서 인사말을 서로 주고 받으면  절로 정이 통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4세기 전반 경에 백제가 "성의 외벽은 수직의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성의 내부는 평지성처럼 가용면적이 매우 넓어 천연의 요새를 이룬" 월롱산에 퇴뫼식산성을 축성해 국방을 튼튼히 했듯이, 21세기 들어 한 기업은 이 산 아래 넓은 뜰에 LCD 대단지를 조성해 나라경제를 일으키는 데 일조했습니다. 이제 월롱산은 임금이 난을 피해 숨어드는 외진 곳이 아니고 전 세계에 LCD를 생산해 공급하는 확 트인 곳으로 그 역사적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전철 안 귀가 시간이 천년 세월이 확 바꿔놓은 월롱산의 역사가 앞으로 천년 동안 어떻게 달라질까 상상하는 시간이어서 가슴 뿌듯했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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