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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산행기(광양)

시인마뇽 2013. 5. 2. 12:29

                                                                   백운산

 

                                                

                                                *산행일자:2013. 4. 20일(일)

                                                *소재지 :전남광양

                                                *산높이 :1,218m

                                                *산행코스:진틀마을주차장-진틀삼거리-백운산

                                                             -신선봉-진틀삼거리-진틀마을주차장

                                                *산행시간:11시40분-17시10분(5시간30분)

                                                *동행 :경동고24회 명백회회원 20명

 

 

 

  1970년대 초 처음으로 시골 중학교에 부임해 물상을 가르쳤습니다. 대학에서 전공한 과목은 화학이지만 중학교 과학은 물상과 생물로 나누어져 화학만을 따로 가르칠 수는 없었습니다. 생물과목에 속하지 않는 모든 내용은 모두 물상으로 들어가 이 과목에는 제가 전공한 화학 외에도 물리와 지구과학이 더 들어있었습니다. 물리는 화학과 인접한 학문이어서 ‘일반물리’외에도 ‘물리화학‘ 등 몇 과목을 들었지만, 지구과학은 그렇지 않아 겨우 ‘일반지구과학’ 3학점만 이수했습니다. 이런 정도로 지구과학의 한 분야인 ‘물의 순환’을 가르치기가 쉽지 않아 애를 많이 먹은 일이 어렴풋이 생각난 것은 이번에 오른 백운산에서 예상치 못한 눈을 만나서였습니다.

 

  구름과 눈의 생성은 물의 순환 과정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하늘에서 내린 비는 극히 일부분 땅 속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이루고 많은 양은 물줄기를 따라 내로 그리고 강으로 흘러들어가고, 이렇게 흘러든 물은 바다로 흘러갑니다. 물의 일생이 이렇게 끝난다면 온 세상은 물이 부족해 시끌벅적할 것입니다. 흘러간 물이 우리 곁으로 다시 흘러올 수 없는 것은 물은 그 양과 관계없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이동하기 때문입니다. 이리되면 우리의 상공에서 내릴 비가 없어집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 구름입니다. 물은 항상 그 표면에서 증발이 일어납니다. 수증기로 변화한 물은 하늘 높이 올라가 구름을 만듭니다. 구름을 전후좌우로 이동시키는 것은 바람입니다. 바다에서 증발된 수증기가 구름이 되어 육지 상공으로 이동할 수 있는 것은 바람 덕분입니다. 구름이 제 몸무게를 못 이겨 지상으로 떨어지는 것이 비 또는 눈입니다. 바다의 물을 대륙으로 대량으로 이동시키는 일은 고맙게도 태풍이 맡습니다. 물이 증발되어 구름이 되고 구름이 응결되어 비나 눈이 되어 내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물은 또다시 증발되어 구름이 되는 과정을 반복하는 순환을 통해 지구상의 물은 동적 평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전남광양의 백운산(白雲山)은 남해가 멀지않은 한반도 남쪽 끝머리에 자리한 고산입니다. 봄의 한 가운데 자리한 4월이 스무날을 맞았는데도 벌써 떠났을 겨울에 이 산은 아직도 눈을 태워 보내지 않았습니다.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것을 평화라 칭한다면 겨우 내내 숨죽였다 모처럼 고개를 살짝 들은 새싹들은 이 위장평화에 속아 목숨을 잃을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얀 눈에 덮여 고개만 간신히 내밀고 있는 새싹들이 저 상태로는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입니다. 방풍의를 껴입은 저희들도 한 시간 가량 앉아 점심식사를 하면서 점증하는 냉기에 몸이 떨고 있는데 파릇파릇한 새 순이 이 추위를 견뎌낸다는 것은 정말 지난한 일로 보였습니다.

 

  이 산에 백설(白雪)을 내리게 한 것이 다름 아닌 백운(白雲)이라는 것은 앞서 살펴본 물의 순환에서 이미 밝혀진 사실입니다. 이 산 이름이 백운산(白雲山)인 것이 구름이 많아서라면 이 산에 비 또는 눈이 많이 내리라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4월 하순에 이 산을 오르면서 비를 맞았다면 그럴 수 있다 싶어 할 텐데 고개를 갸우뚱한 것은 비가 아니고 눈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 산이 해발1,200m를 넘는 고산이어서 바닷가보다 7도 이상 기온이 낮다는 것을 고려했다면 이 산을 오르면서 눈을 만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인데도 저희 모두 놀라워한 것은 산행안내 책임을 맡은 저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부끄러웠습니다.

 

  오전11시40분 진틀마을 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사진애호가 대 여섯 명의 친구들은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순천의 정원박람회로 직행했고 스무 명의 등산애호가들은 두 시간 거리의 백운산 정상을 향해 병암계곡 길로 들어섰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눈이 펄펄 내리는 것을 보고 얇은 봄옷을 입고 산행을 강행해야할 지 고심했는데 눈 대신 비가 살짝 내려 다행이었습니다. 들머리를 떠나 병암계곡 길을 지나면서 물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와 백운산이 역시 고산이다 했습니다. 봄이 불러들인 연록색의 나뭇잎들을 보고 떠나버린 겨울을 떠올리기가 쉽지 않은 터라 고속도로에서 눈을 맞은 일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계곡 길을 따라 올랐습니다.

 

  12시48분 신선봉과 정상으로 길이 갈리는 진틀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염려했던 눈비는 세가 약해져 잔비만 내려 그냥 맞고 걸을 만했습니다. 계곡이 끝나는 진틀삼거리로 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지 않아 계곡 가에 내려앉은 봄을 완상하며 오르기에 딱 좋았습니다. 왼쪽으로 신선봉 가는 길이 갈리는 진틀삼거리에서 첫 쉼을 가진 후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길을 능선으로 올라섰습니다. 움푹 들어간 계곡을 따라 낸 길을 걸을 때와는 달리 능선에 오르자 바닥을 덮은 눈이 보였습니다. 오른쪽으로 억불봉 길이 갈리는 능선삼거리에 이르자 백설이 길을 완전히 덮어 사방을 둘러보아도 도시 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잠잠하던 하늘에서 눈이 내려 저도 모르게 서서히 겨울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14시15분 해발1,218m의 백운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길 왼쪽으로 안개에 가려 끝이 보이지 않은 암벽이 보였고 머리 위로 이 산 정상의 거암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날씨가 좋았다면 산 아래 섬진강과 먼발치로 남해바다가 보였을 터인데 이 산 정상에 머물고 있는 백운이 시야를 가려 뭣 하나 제대로 조망하지 못했습니다. 표지석이 세워진 정상에서 급하게 사진을 찍은 후 밧줄을 잡고 내려가 이내 바람이 닿지 못하는 아늑한 곳에 이르렀습니다.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은 선두팀원들은 점심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산을 시작했고 저를 포함한 후미의 몇 명들은 뒤늦게 점심을 들어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50분가량 점심을 들고 나서 15시가 조금 넘어 신선봉으로 향했습니다.

 

 

  16시8분 3시간 여전에 지난 진틀삼거리에 내려섰습니다. 백운산 정상에서 신선봉에 이르는 능선은 호남정맥의 마루금으로 2007년 이번 산행의 선두를 맡은 이규성 교수와 함께 한 번 걸은 일이 있습니다. 그 때는 신선봉에서 직진해 한재로 내려갔는데 이번에는 구름 속에 몸을 숨긴 신선봉 바로 아래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틀삼거리로 내려갔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느라 1시간 가까이 가만히 앉아있는 동안 온 몸을 휘감았던 으슬으슬한 냉기는 신선봉을 지나고도 한참동안 지속되어 겨울산행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준비부족을 자성했습니다. 얼마 후 눈이 녹아 질펀해진 길을 지나느라 바짓가랑이에 잔뜩 흙을 묻힌 후에야 진틀삼거리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17시10분 진틀마을 주차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오름 길의 삼거리가 갈림의 삼거리였다면 하산 길의 삼거리는 모임의 삼거리여서 진틀삼거리부터는 갈라진 두 길이 모여 만든 한 길로 내려갔습니다. 이렇듯 갈림과 모임이 하나일진데 68년에 갈라진 남북이 끝내 다시 모이지 못해 북쪽의 대간 길을 이어가지 못 하는 것을 못내 서러워하고 있습니다. 하산 길에 답곡계곡 건너편에 자리한 산줄기를 덮은 백운을 보았습니다. 도솔봉에서 남쪽으로 내뻗은 이 산줄기를 가리고 있는 흰 구름이 펼쳐보이는 풍경이 담담한 색채의 수채화를 닮은  듯했습니다. 대기 중인 버스가 선두보다 한 시간 이상 늦게 도착한 후미들을 실고 향한 곳은 광양 읍내의 한 음식점이었습니다. 동행한 한 친구 덕분에 이 음식점에서 입에서 살살 녹는 연한 한우를 를 마음껏 든 후 광양을 출발해 11시를 넘겨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고교 졸업 후 처음으로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한 반을 같이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이름만 알았을 뿐 서로 통성명을 하지 못했으니 난생 처음 만났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성이 같은 동문이 이 친구밖에 없다는 것을 안 것은 졸업앨범을 보고나서였는데 우(禹)씨가 워낙 희성이라서 한 번 만나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제가주변머리가 없어 이제껏 그런 기회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이 친구는 졸업 후 저의 큰일에 꼬박 경조금을 보내왔습니다. 두 아들을 장가보낼 때는 축의금만 보내왔지만 13년 전 집사람을 먼저 보낼 때는 문상을 왔었다는 데 경황 중에 만나서인지 저는 기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친구가 자기 큰일에는 동창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아 이제껏 감사의 뜻을 전할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일방적으로 받기만 해 이 친구에 영 미안했는데 이번에 같이 버스를 타고 가 그동안의 후의에 고마움을 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친구의 온후한 인상에서 60대 중반의 인품이 느껴졌고 동창들이 전하는 호평이 명불허전이다 했습니다. 반갑고 고마운 이 친구를 만나게 해준 백운산에도 감사의 뜻을 전하고자 합니다.

 

 

*추기:방송대국문과 4학년1학기 시창작론의 시짓기 과제물로 이번 산행을 소재로 한 시를 제출했습니다.

 

                                       

     백운산의 봄

 

 

4월이 봄과 함께

산에 오른다

흰 구름 노니는 정상을 향해

 

백운의 이형태

하얀 백설이

산 중턱에 내려와 봄을 맞는다

 

새 봄은 새 싹 덮은

백설에 놀라

혼자서 오던 길로 줄행랑친다

 

4월은 혼자서

산에 올랐다

백설이 내려앉은 차디찬 정상

 

어느새 어제가

곡우이려니

이제는 겨울도 자리 물리려

 

4월에 봄 안부

살짝 묻는다

새봄이 얼마나 뒤쳐졌냐고

 

4월이 서둘러

하산을 한다

겨울의 자리물림 뜻을 전하려

 

봄이 숨 가쁘게

산을 오른다

흰 구름 정상의 겨울 만나려

 

전라도 광양의

백운산 정상

봄은 이렇게 똬리를 튼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