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부명소 탐방기( 2015년)
*탐방기간:2015. 1. 26일(월)-2. 11일(수)
*탐방지 :미국서부소재 명소
-캘리포니아주 :1)로스앤젤레스의 LACMA , 그리피스천문대(Griffith Observatory)
2)샌디에고의 La Jolla해변, Balboa공원
3)Desert Hills Premium Outlets
4)Palm Springs Aerial Tramway
5)Irvine의 UCI 캠퍼스
6)Yosemite National Park
7)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Grace Catholic Cathedral
-아리조나주 :1)Grand Canyon
2)Monument Valley
-유타주 :1)Arches National Park
2)Bryce Canyon
3)Zion Canyon
-네바다 주 :1)Las Vegas
*동행 :큰아들
미국은 한 번 이민 가서 살고 싶은 로망의 땅입니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은 미국을 여행하고 돌아온 후, "미국의 민주주의"라는 책을 지어 찬양했습니다. 체코의 음악가 드보르작은 2년간 뉴욕에 머물면서 인디언 민요와 흑인들의 노래를 토대로 해서 미국을 신세계로 그린 ‘신세계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구한말 이인직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신소설 "혈의루"에서 미국을 신분 차별이 없는 정의로운 나라로 그렸습니다. 물론 모든 예술가가 미국을 약속의 땅으로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체코의 소설가 카프카는 그의 소설 "아메리카"에서 미국사회를 절망적으로 그렸습니다. 그러나 그가 단 한 번이라도 미국을 다녀왔다면 ‘아메리카’를 꿈의 나라로 묘사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도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부유해져, 이제 우리 국민은 옛날처럼 이민을 가고 싶을 만큼 미국을 마냥 부러워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이 여전히 부러운 것은 아직도 이 나라가 인류의 보편적 질서이자 가치를 신봉하는 모범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입니다. 이에 광활한 국토와 풍부한 부존자원, 그리고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천혜의 경관들이 더해져 많은 사람들이 몇 번이고 미국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됩니다.
제가 한창 일에 빠져있던 30-40대 때 회사에서 미국을 보내주어 세 번을 다녀왔습니다. 해외 나들이가 결코 쉽지 않던 때 두 번은 대학교로 몇 주간 연수를 간 것이어서 주말에 짬을 낼 수 있었습니다. 하와이, LA, 앤아버, 그리고 나이아가라 폭포 등이 그 때 가 본 명소들입니다.
이번 미국서부명소 탐방은 예전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한 달 먼저 미국으로 건너간 큰 아들이 계획을 짜고, 저는 그 계획대로 움직여 탐방에만 열중할 수 있었습니다. 보름 남짓한 기간 중 꽤 여러 곳을 탐방하고 맘껏 사진을 찍으며 제 나름 꼼꼼히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여행에 관한 거의 모든 것들을 아들이 챙겨준 덕분입니다.
회사 다닐 때 저도 기획력과 실천력을 인정받았다고 자부해온 바지만, 이번 탐방 길에 아들이 보여준 기획과 실천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습니다. 이 정도라면 회사에서 어떤 일을 맡겨도 책임지고 창의적으로 해낼 수 있겠다 싶어 한 없이 자랑스러웠습니다. 15년 전 타계한 집사람이 이런 아들을 보았다면 그 뿌듯함이 저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1일:2015년1월26일(월)-한국시간 기준
미국서부명소탐방여행은 저녁 8시가 다 되어 제가 탑승한 LA행 KAL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것으로 시작됐습니다.
짐을 꾸리는 데만 하루가 꼬박 걸린 것은 여행기간도 17일로 짧지 않은데다 산행준비도 같이 해서입니다. 산본 집을 떠나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중 큰며느리가 전화를 걸어 준비사항을 물어왔습니다. 혼자 벌어 살림살이가 빡빡할 작은며느리는 여행 중에 쓰시라며 얼마간 여행자금을 보탰습니다.
책은 무게가 많이 나가 딱 3권만 챙겼습니다. 한 권은 "상허 안병주교수 정년기념논문집II"으로 발간된 “동양철학의 자연과 인간”으로 8백 쪽이 넘는 꽤 두꺼운 책입니다. 작년 방송대국문과를 졸업할 때 영조 때 유학자인 여암 신경준의 자연관을 주제로 졸업논문을 제출해 동양의 자연관을 다룬 이 책이 그다지 생경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권은 중국과 우리나라 대사를 역임한 미국의 Lilley가 지은 “China Hands"로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미국과의 최근세사를 다룬 매우 흥미로운책입니다. 마지막 한 권은 일본의 요시노마코트가 지은 번역서 “동아시아 속의 한일2천년사”로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며 최근 심화되고 있는 한일 간의 분쟁의 기원을 알 수 있겠다 싶어 가져갔습니다.
제가 타고 가는 비행기가 KAL기여서 승무원들의 얼굴이 이 회사 모 상무의 얼굴과 오버랩됐습니다. 한 승무원의 서비스에 문제가 있다며 하선을 명하고 회항을 지시했다 하여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모 상무의 소행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입니다. 모상무의 회항지시와 은폐시도가 법을 어긴 것이기에 수사결과에 따라 의법조치하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언론이 다른 중요한 사건들을 다 제쳐놓고 이 사건에 올 인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든 것을 예단하고 온갖 비난을 퍼붓는 행태는 국민들에 일시적으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론의 정도라 보기는 어려울 같아서입니다.
*제2일:1월26일(월)-미국시간 기준
13시반경 LA공항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밟았습니다. 인천공항을 출발할 때 미국에서 임의로 선정하는 검색강화대상자로 지정됐다며 따로 불러내어 엄격하게 출국검사를 해서 입국할 때도 그리 하리라 싶어 긴장됐습니다. 어인 일인지 다른 손님들과 똑같이 짐 검사도 제대로 안 하고 쉽게 통과시켜주어 입국수속이 빨랐습니다. 공항을 나서자 한 겨울인데도 영상10도를 훨씬 웃도는 따뜻한 날씨 덕분에 입고 간 겨울옷이 거추장스러웠습니다.
대기 중인 아들 차를 타고 어바인(Irvine)으로 이동했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걸려 어바인의 산타바라(Santabara) 집에 도착해 짐을 풀었습니다. 아들이 거실을 쓰고 하나 밖에 없는 침실을 내게 양보해 출국할 때까지 내내 이방을 썼습니다.
주변이 조용하고 깨끗해 주택가로는 14년간 살았던 과천보다 더 좋아보였습니다. 아들이 손수 요리한 불고기를 배불리 먹은 후 여행 일정을 협의해 확정지었습니다.
*제3일:1월27일(화)
-탐방지: 로스앤젤레스의 LACMA(LA County Museum Of Art)와 그리피스천문대(Griffith Observatory)
아들과 함께 나선 첫날의 탐방지는 LA 시내 몇 곳입니다. 아침8시10분 경 집을 나와 첫 번째 탐방지인 LACMA(LA County Museum Of Art)에 도착한 시각은 10시20분으로 40분을 기다려 관람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 박물관을 찾아온 가장 큰 이유는 25년 전 집사람이 다녀간 곳이기 때문입니다. 회갑을 맞은 장모님을 모시고 동생들과 함께 미국에 여행 온 집사람이 LA에서 찾아뵌 분은 이곳으로 이민 오셔서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는 서울사대부고 은사 분으로, 이분의 헌신적인 조력 덕분에 집사람이 서울미대 회화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과는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본 후 14시에 매표소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일단 헤어졌습니다. 볼 것은 많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저는 7동의 Broad Contemporary Art Museum에서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그리고 건너편 5동의 Amson Building에서 근대미술전과 영화포스터를 보았습니다. 이 동에서 피카소의 1940-1960년대 회화들을 본 것은 행운인 것이, 거장 피카소의 진품을 이번에 처음 보아서입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4동의 중국관과 한국관입니다. 한국관은 전시된 작품수가 중국관보다 훨씬 적어 초라했습니다.
두 번째로 방문한 명소는 그리피스 천문대(Griffith Observatory)입니다. 남산 높이의 야산에 자리한 그리피스천문대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 주차에 애를 먹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태양의 생성과 일생, 일식과 월식, 공전과 자전 등에 관한 여러 전시물들을 보았습니다. 제 눈을 끈 것은 밀폐된 상태로 진열된 주기율표상의 몇몇 원소들입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한 제가 비활성기체 헬륨(He)과 방사능 원소 우라늄(Ur)을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에 처음 본 것이 또 하나 있는 바, 12인치 망원경입니다. 옥상으로 올라가 LA시내를 조망했습니다. 직선으로 뻗어나가 끝이 보이지 않는 시내도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비버리힐스와 할리우드거리는 1986년 방문 때 다녀온 곳이어서 이번에는 들르지 않고 곧 바로 어반인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4일:1월28일(수)
-탐방지:San Diego 소재 La Jolla 해변, Balboa 공원 및 Bay of Tuna
아침 8시20분경 Irvine 집을 출발해 10시 조금 넘어 LA 남쪽의 San Diego시에 도착하기 까지 아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80세가 넘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사회적분위기가 조성되었으면 좋겠다는 내 의견에 분명하게 반대하는 아들에게서 휴머니즘을 읽었습니다.
저는 80세 정도를 인간의 자연적인 수명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 이상 산다는 것은 인위적인 노력을 필요로 하는데 그런 노력이 과연 바람직하냐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우선 자식세대에 짐이 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 또 어느 동물도 자연수명을 연장하려 하지 않는데 유독 인간만이 과학기술을 앞세워 수명을 연장할 권리가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구의 유한한 자원을 인간이 마구 써버리면 다른 동물들은 그나마 자연수명도 포기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팔십 넘어 암이 걸리면 달게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샌디에고 시의 첫 번째 탐방지는 La Jolla 해변입니다. 눈앞에 펼쳐진 태평양은 일망무제의 광활한 바다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였습니다. 바다가 일망무제로 까마득히 보이는 것은 수평선까지 섬이 없기 때문이고, 수평선은 지구가 둥글어 보이는 것입니다. 제가 육지에서 꽤 멀리 보이는 수평선까지의 거리가 약4Km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 것은 시달거리(視達距離) D=2.09(√H + √h ) 의 공식을 알고 난 후입니다.
(참고로 D는 시달거리(視達距離, mile), H는 물체의 해면상 높이(m), h는 눈높이(眼高, m)입니다. 이 산식은 노계현의 저서"조선의 영토"의 289-290쪽에서 따왔습니다. )
날씨가 온화해서인지 여러 마리 물개들이 모래사장으로 올라와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물개를 처음 보고 역시 물속에 사는 동물이다 한 것은 털이 없는 피부가 매끈해서입니다. 또한 개이다 싶었던 것은 사람들이 다가가도 자리를 옮기지 않아서입니다. 바다 위를 나는 가마우지는 몇 번 본 듯한데 독수리를 연상시키는 페리칸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절벽의 해안단구는 이암(?) 층이 주이고 간혹 역암 층도 보였습니다. 해안을 걷는 해변의 길손들에서 평화로움을 느낀 것은 제 마음이 편안한 덕분일 것입니다.
La Jolla 해변에서 옮겨 간 곳은 Balboa공원입니다. 공원이 하도 넓어 어디가 끝인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우고 Balboa 공원을 바쁘게 돌아다녀 세 곳이나 관람했습니다.
첫 번째 찾아간 Sandiego Air & Space Museum에서 아폴로9호의 미니아춰와 세기적 탐사를 성공리에 마치고 지구로 돌아올 때 타고 온 우주선의 일부 부품들이 진열된 것을 보자 가슴이 찡했습니다. 비행기가 우주선으로 진화하기까지 항공기의 발전사를 조감했고, 최초로 대서양을 횡단한 비행사 린드버그와 여류비행사 한분도 사진으로 만나보았습니다. 일본의 진주만 습격을 소재로 한 영화를 10여분 보면서 해군성에서 반대한 것을 정치인들이 정치적 목적을 이루고자 무리하게 강행해 결국은 패전의 고통을 일본 국민에게 안겨주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우주박물관에서 나와 비교적 한적한 공원 안을 20여분 걸어 Tikmen Musium Of Art로 옮겼습니다. 미술관 안에 걸린 걸개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꽤나 큰 걸개가 자수를 놓아 만든 것이어서 그랬습니다.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풍기는 그림들이 주인 자그마한 이 전시관에서 라파엘의 유화“Madonna Of Pinks"를 본 것이 가장 큰 수확입니다.
자그마한 규모의 Botanical Building 식물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이 식물원은 나무로 빔을 만든 아취모양 식물원으로 벽과 천장이 없는 개방형이어서 이색적이었습니다. 여러 식물들과 꽃들을 둘러보면서 어디서 많이 본 듯하다고 느껴진 것은 여기 Sandiego의 위도가 제주도와 비슷해 아열대성 식물이 많이 보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화려하고 색상의 다양한 난의 꽃들을 사진 찍은 후 주차장 쪽으로 가는 트램(tram)에 올랐습니다.
Balboa 공원에서 Bay Of Tuna로 가는 길이 Sandiego시내를 관통해 얼마간 고풍어린 거리도 지나갔습니다. Bay Of Tuna에 도착해 USS Midway 박물관을 들어가려 했으나 코인을 준비하지 못해 차를 주차시킬 없었습니다. 별 수 없이 밖에서 미드웨이 호를 사진을 찍는 것으로 Sandiego 탐방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제5일:1월29일(목)
-탐방지:Palm Springs 소재 Mt. San Jacinto State Peak
사막에서는 식물이 아예 자라지 않는 것으로 알아온 저의 무식을 바로잡게 된 것은 LA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진 Palm Springs으로 가는 길에 처음으로 사막지대를 지나고 나서입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사막이란 강수량이 적고 식물이 거의 자라지 않으며 자갈과 모래로 뒤덮인 매우 넓은 불모의 땅을 이르는 것입니다.
아침8시40분경 집을 출발해 오랜 시간 사막지대를 지났습니다. 광활한 땅이 사막으로 불리는 것은 듬성듬성 풀만 자랄 뿐 나무숲이 보이지 않아서인데, 이는 연평균 강수량이 250mm이하로 비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제껏 영화에서 보아온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지대와 달리 그나마 풀이 보인 것은 얼마라도 비가 내려서입니다. 사막지대를 지날 때 날씨가 나빠 비를 만나지 않을 까 걱정하는 것이 기우임을 안 것은 여행을 끝낸 후입니다.
집을 출발한지 1시간 30분 후 Desert Hills Premium Outlets에 도착했습니다. Palm Springs에 앞서 먼저 들른 이곳은 품질도 좋고 가격이 매우 저렴해 미국의 서부지역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쇼핑의 명소입니다. 제가 찾는 등산복과 등산화는 국내에서 프레미엄 브랜드로 알려진 고가의 콜럼비아인데, 이곳에서는 중저가 브랜드로 반값도 안 되어 주저하지 않고 몇 점 샀습니다. 큰아들이 며칠 전에 두 돌을 맞은 조카 녀석에 선물하고자 아기 옷과 신발 등 용품을 고르는 것을 보고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10년 전에 먼저 결혼했으면서도 동생이 두 해전 아들을 낳는 것을 지켜본 큰아들 내외가 오는 7월에 첫 아기 출산을 준비하고 있어 더욱 그러했습니다.
Desert Hills Premium Outlets에서 점심을 든 후 Palm Springs으로 이동했습니다. 사거리에서 오른 쪽 소로로 들어가 산 중턱의 Valley Station에 주차시키고, 저 혼자서 360도 를 회전하는 트램 카(tram car)에 올라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사막지대 암산인 San Jacinto산의 State Peak를 왕 복하는 트램 카가 매우 가파르게 4km를 위로 올라가 승강장에 도착했습니다. 트램카로 올라간 State Peak는 그 높이가 2,555m로, 해발3,293m의 정상보다 738m 낮지만, 남한의 최고봉인 한라산보다 600m이상 높은 고봉이어서 여기저기서 잔설이 보였고 장갑을 끼어야할 만큼 날씨가 냉랭했습니다. 트램 카에서 내려 이 봉우리의 꼭대기에 마련된 전망대에 오르자 오른 쪽으로 눈 덮인 정상이 보였습니다. 왼쪽 아래로 미국의 유명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와 프랭크 시나트라도 쉬어갔다는 Palm Springs과 천 대는 족히 넘게 서 있는 풍력발전단지도 잘 보였고 콜로라도(?) 강줄기도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전망대에서 승강장 휴게소건물의 1층으로 내려가 Long Valley로 내려갔습니다. 시멘트 길로 이어진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 이 계곡 끝머리의 숲을 잠시 걸은 후 다시 승강장으로 올라오는 데 20분 가량 걸렸습니다. 지리산의 고사목에 비할 수 없이 큰 거목이 길가에 쓰러져 있어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승강장으로 다시 올라가 몇 분간 전시물과 영화를 본 후 Valley Station으로 내려갔습니다.
16시20분경 Valley Station을 출발하는 것으로 Mt. San Jacinto State Peak 탐방을 마쳤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 State Peak의 승강장 휴게소에 전시된 전시판의 한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In the end, our society will be defined not on ly by what we create but by what we refuse to
destroy.
창조만큼이나 파괴의 거부가 요망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에 오래 기억하고자 합니다.
*제6일:1월30일(금)
-탐방지:Irvine 소재 UCI 캠퍼스
꼭 책방을 들르고 싶어 UCI 캠퍼스를 찾아간 것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이 캠퍼스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이 발하는 젊은 기운을 감지하고 싶었습니다. 여기 UCI 캠퍼스로 몰려든 여러 나라 학생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캠퍼스 생활을 하나도 궁금했습니다. 또 미국 대학의 캠퍼스는 얼마나 넓은가도 보고 싶었습니다.
1970년대 초반에 졸업한 서울사대캠퍼스는 답답하리만큼 좁았습니다. 서울대학교의 사범대학 한 대학만 있는 용두동 캠퍼스는 부설학교인 사대부중과 운동장을 빼면 대학캠퍼스로는 정말 초라합니다.
1985년 하와이 주립대학에서 두 주간 연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머문 곳이 대학교 기숙사여서 낮과 밤을 캠퍼스에서 생활했습니다. 구내식당과 강의실을 오가며 만나는 학생들마다 인사를 건네 오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지자 처음 보는 이들도 반가웠습니다. 어느 나라건 젊은이들은 패기차고 발랄해 그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같이 젊어진다는 기분이었습니다.
1994년 앤아버의 미시간 주립대학에서도 두 주를 연수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때는 저를 보내준 쌍용그룹의 부장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연수를 받아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교유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호텔에서 머물면서 연수생 전용차로 울타리가 없는 미사간 주립대학의 캠퍼스를 왔다 갔다 하면서 앤아버 시내 전체가 미시간대학 캠퍼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 캠퍼스 서점에서 사온 경영서적은 회사로 돌아와 마케팅업무를 하면서 많이 활용했습니다. 이 대학정도라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아들을 유학보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1997년 회사일로 동경에 갔을 때 짬을 내어 동경대학교 캠퍼스를 들른 일이 있습니다. 캠퍼스 안으로 들어서자 한 번 와본 것 같다는 기분이 들은 것은 제가 대학시절 머물렀던 정영사 기숙사가 들어선 서울의대 건물이 일제강점기 때 동경제국대학교를 본 따서 지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 혼자 대중교통을 이용해 캠퍼스를 찾아가겠다는 것이 불안했던지 수업을 받으러 학교에 간 큰아들이 점심시간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 차를 타고 학교로 가면서 캠퍼스 탐방을 마치고 혹시나 저 혼자 걸어서 집으로 돌아갈 때를 대비해 몇 군데 사거리를 눈여겨 봐두었습니다.
12시50분 UCI 캠퍼스 도착해 저녁5시 강의장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후 아들과 헤어졌습니다. 캠퍼스 지도를 펴들고 나침반으로 갈 방향을 잡은 후 University Center 쪽을 찾아가 버스정류장을 확인한 것은 돌아보는 일이 빨리 끝나면 버스를 타고 저 먼저 집으로 돌아갈 뜻이 있어서였습니다. 도서관을 지나 시멘트 전신주와 비슷한 엄청 키가 큰 아열대수목(?) 을 사진 찍었습니다. 캠퍼스를 오가는 학생들의 면면을 보면서 과연 미국은 모든 인종이 함께 살고 있는 용광로다 했습니다. 캠퍼스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미국 경제의 넉넉함 덕분에 여기 학생들이 우리나라 학생들보다 더 여유롭고 밝아보였습니다.
제가 외국에 나가면 습관적으로 들르는 곳이 서점입니다. 제 책꽂이에 꽂혀 있는 여러 원서들은 외국여행 시 욕심나 사들인 책들로 거의 다 읽었습니다. 미시간 대학에서 연수받을 때 사둔 “Thriving on Chaos"등 몇 권의 경영서적은 회사 일을 해나는데 많이 도움 됐습니다. 이번에 찾아간 The Hill Bookstore는 생각보다 작아 책 고르기에 애를 먹었습니다. “Sniper"와 “Nuclear"등 2권을 사들고 나와 캠퍼스를 사진 찍다가 더 이상 찍히지 않은 것이 칩용량 때문임을 알고 다시 들어가 기존1gb의 칩을 대용량32gb으로 바꿨습니다.
16시가 조금 넘어 캠퍼스를 출발해 Santabara 집으로 향했습니다. 지도를 보고 여러 곳의 사거리를 건너 걸어가다가 차타고 올 때의 거리가 아닌 것을 안 것은 반시간 가량 지나서였습니다. 이러다가 길 위에서 밤을 맞겠다 싶어 서둘러 캠퍼스로 돌아갔습니다. 약속된 강의실 앞에서 아들을 만나 집으로 돌아가 단지를 네 바퀴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집을 출발해 서부명소 여러 곳을 탐방한 후 열흘 후에 돌아올 계획이어서 리스트를 만들어 미리 짐을 싸두었습니다.
*제7일:1월31일(토)
-탐방지:아리조나 주 Grand Canyon National Park의 South Rim
오늘부터 캘리포니아 주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서부명소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아침 6시40분 이른 시각에 집을 출발한 것은 열흘간의 긴 여정이 아리조나주의 Grand Canyon 탐방으로 시작되어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아서였습니다. 고속도로를 타고 북쪽으로 내달려 다다른 Barstrow에서 동쪽으로 꺾어 진행하는 중 오른 쪽 먼발치로 높은 산이 보였습니다. 이 산 능선의 이름이 Needle Mountain Ridge인 것은 능선이 바늘처럼 뾰족한 암봉으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해발고도가 1,500m를 훨씬 넘는데도 드넓은 평원이 이어지고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쉬어가고자 들른 두 곳의 휴게소는 우리나라처럼 식당이나 주유소가 보이지 않았고, 화장실과 의자, 그리고 자판기 등이 휴게소 시설의 전부여서 조금은 초라해 보였습니다.
사막지대를 지난 지 한참 후 아리조나 주로 들어가 북진하다가 Kingman에서 방향을 틀어 동진을 계속했습니다. 불모지에 가까운 사막을 벗어나자 초원과 목장이 나타났고 활엽수도 보였습니다. 집에서 380마일을 달려 14시에 도착한 Williams 분기점에서 오른 쪽으로 빠져나와 주유를 했습니다. 인근 KFC를 들러 점심을 든 후 1시간 남짓 북진했습니다. Grand Canyon National Park의 South Entrance를 지나자 사막지대와 초원지대에서 보지 못한 나무숲속에 길이 나있어 반가웠습니다. 길 양옆의 넓은 숲도 평평한 땅의 산이어서 산봉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은 앞서 지나온 사막지대나 초원지대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15시30분 경 Grand Canyon의 South Rim에 도착했습니다. 첫 번째 찾아간 전망처는 Hopi Point입니다. 안개가 감싸 협곡 안이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난생 처음 보는 Grand Canyon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대협곡 Grand Canyon은 과연 자연이 빚어낸 최대의 걸작입니다. 해발2,000m대의 광활한 고원을 강물로 저토록 절묘하게 깎아내어 장대한 협곡을 만들어 낸 자연의 위대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콜로라도 강이 오랜 세월 깎아내 만든 Grand Canyon은 그 바닥을 흐르는 강의 길이가 446Km, 폭이 29km, 깊이가 1.6Km라 합니다. 보통명사 ‘grand canyon’을 대문자 ‘Grand Canyon’로 바꾸어 고유명사화 한 것은 지구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이 신비로운 협곡에 걸 맞는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밖으로 드러난 암석층의 색상이 층마다 다른 것은 암석의 성분과 생성시기가 달라서입니다. 맨 위 Kaibab Formation은 밝은 회백색으로 2억7천만 년 전에 생성되었고, 다섯 층 아래 붉은 색의 Redwall Limestone은 3억4천만 년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맨 아래 Vishnu Basement Rocks는 18억4천만년-16억8천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아 콜로라도 강이 대평원을 깎아내어 협곡을 만드는데 14억년 이상 걸린 셈입니다.
셈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Grand Canyon에 발붙여 살기 시작한 최초의 인류는 12,000년-9,000년 전 돌로 만든 창으로 큰 몸집의 척추동물을 사냥해 먹고 살은 Paleo- Indian입니다. 그러나 Grand Canyon을 탐험한 것은 1540년 Hopis 가 이끈 스페인탐험대가 처음입니다. 그 때의 탐험지는 협곡 안이 아닌 South Rim이었고, 협곡 안은 1869년 John Wesley Powell가 이끈 탐험대가 처음 탐험합니다. 1901년 South Rim까지 철도가 개설된 후 1919년에 비로소 국립공원으로 지정됩니다.
Mohav Point에 이르자 비로소 안개가 가셔 협곡 안의 암벽이 선명하게 보여 사진 찍기에 바빴습니다. 협곡 건너 지평선처럼 보이는 것은 North Rim으로 겨울철에는 개방되지 않는다 합니다.
동상이 세워진 Powell Point는 앞서 본 두 Point보다 전망이 좋았습니다. 서쪽 Point로 옮겨 일몰을 보고자 이동하다가 안개가 많이 끼어 되돌아가 Visiting Center 인근 Mather Point를 찾아갔습니다. 때마침 안개가 가시기 시작해 석양이 드리운 Grand Canyon의 황홀한 일몰을 제대로 보았습니다. 언제 다시 볼 수 있으랴 싶은 이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영원한 것으로 바꾸는 것은 사진이 해냈습니다. 이 방면에 조예가 깊은 아들이 함께 해 사진을 찍어준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내비게이션이 잘 못 작동되어 캄캄한 숲속 길을 잠시 왔다 갔다 하다가 지도를 보고 제 길을 찾았습니다. South Entrance를 빠져나가 Valle에 소재한 전국 체인 Inn인 Best Western 에서 일박했습니다.
*제8일:2월1일(일)
-탐방지:Grand Canyon(Yavapai Point - Travelview Overlook지점 간 South Rim 및
Dessert View), 아리조나주의 Monument Valley
한국에서 달고 간 독감이 낫지 않아 약을 계속 먹는데도 별반 차도가 없어 애를 먹고 있습니다. 전날 밤 머리가 아프고 속이 매시꺼워 메모한 것을 노트북에 옮겨 놓지 못하고 일찍 취침한 덕분에 조금 좋아졌으나 여전히 속이 부글대 간단히 토스트와 과일로 아침요기를 했습니다.
아침 7시30분 Best Western 숙소를 출발해 Grand Canyon National Park 안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Yavapai Point에서 Museum을 함께 본 후 Grand Canyon 안으로 300m가량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트레일을 택한 아들과 11시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일단 헤어졌습니다.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저는 보다 쉬운 코스인 South Rim을 따라 걷기로 하고 9시 정각에 Museum을 출발해 서쪽으로 향했습니다. Museum에서 구매한 “Geology of Grand Canyon" 책을 미리 보았다면 Grand Canyon의 생성시대를 알려주고자 길가에 일정간격으로 세워놓은 암석을 보다 잘 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전날 아들에 붉은 색을 띠는 암층이 철광석 층이라 한 것은 잘못으로 Sandstone과 Limestone임을 안 것은 여기 암석을 보고나서입니다.
얼마간 걷자 산책을 나선 숙박단지 Lodging의 투숙객들(?)을 만나 아침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Grand Canyon의 해발고도가 해발2천미터대여서 길가 나무의자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은 것은 당연한 자연현상입니다. 제가 서있는 위치마다 Grand Canyon이 달리 보여 사진 찍기에 바빴습니다. 경사가 완만한 산길을 걷는 중 떼 지어 움직이는 여러 마리의 Yak옆을 지날 때 조금 겁도 났습니다.
1시간 45분을 걸어 다다른 Travelview Overlook 지점에서 Yavapai Point의 Museum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발걸음을 서두른 결과 약속시간인 11시를 조금 넘겨 Museum에 도착해 아들을 만났습니다.
Grand Canyon의 마지막 탐방지는 Dessert View입니다. Yavapai Point에서 동진해 12시경 Dessert View에 도착했습니다. 매장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원통형의 Dessert View Watch Tower 안으로 들어가 나선형으로 나있는 통로를 따라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Dessert View는 Grand Canyon의 동쪽 끝이어서 앞서 다녀온 서쪽의 Grand Canyon이 잘 보였습니다. Dessert View 동쪽으로는 이미 Grand Canyon의 세가 다해 그저 그런 사막처럼 보였습니다. 전망 탑 안의 벽면에 새겨진 색다른 그림은 언뜻 보아도 원주민의 그림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동쪽 먼발치로 보이는 눈 덮인 고산의 이름을 확인하지 못한 채 Dessert View를 출발해 다음 행선지로 향했습니다.
모든 미국인이 대대로 볼 수 있도록 그랜드 캐넌을 있는 그대로 남겨두자는 Theodore Roosevelt 미국대통령의 아래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Grand Canyon의 탐방을 마무리 짓고자 합니다.
President Theodore Roosevelt said of Grand Canyon, "Leave it as it is. The ages have been at work on it, and man can on ly mar it. What you can do is to keep it for your children, your children's children, and for all who come after you, as on e of the great sights which every American should see."
오늘의 마지막 탐방지는 유타주와 접해 있는 아리조나주의 Monument Valley입니다. Dessert View를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다다른 Cameron에서 시작된 북진 길은 광활한 사막을 지나는 길입니다. 철도와 나란한 방향으로 나 있는 사막 길을 지나면서 때 이른 아지랑이가 무럭무럭 피어오른 것을 보고 사막에 봄이 일찍 찾아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인디언 보호구역인 Najova 구역으로 들어가 The View Hotel에 짐을 푼 후 16시부터 Monument Valley의 Wildcat Trail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거의 흐르지 않는 도랑을 따라 난 길은 잘 다져진 이토로 되어 있어 발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West Mitten Butte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트레일을 반쯤 돌자 해가 뷰트(butte)에 걸려 어둠이 감지됐습니다. 뷰트(butte)란 평원의 고립된 산이나 언덕을 이르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얼핏 보니 상단이 하단과 같은 넓이로 평평한 입방체의 뷰트는 역암이 주인 혼성암의 기저층위에 수평방향의 층암이 위에 놓였고 맨 위 이암(?)층은 주상절리처럼 수직으로 세워져 보였는데 가까이서 자세히 본즉 맨 위층도 층암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풍화되어 깎여 나간 것이 아니가 싶습니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주위를 덮기 시작해 너무 서둘러서인지 잠시 현기증이나 쓰러질 뻔 했습니다. 겁은 났지만 아들에게 알리지 않고 저녁 식사 후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제9일:2월2일(월)
-탐방지:유타주의 Arches National Park
약을 계속 먹었는데도 독감이 낫지 않아 몸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잔날 밤 일찍 취침하느라 정리하지 못한 자료를 노트북에 옮겨 넣고자 일찍 일어났습니다.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린 지 얼마 안 되어 구토증이 나타나 즉시 멈추고 다시 침대에 누웠습니다. 구토증이 척추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해 붙인 페이스트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에 붙인 페이스트를 떼어버렸습니다. 아들은 차를 타고나가 Loop Trail을 돌았고 저는 집에 남아 베란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는 여러 뷰트들의 아침모습을 사진 찍었습니다.
Monument Valley가 이름 그대로 기념비적인 계곡인지는 알 수 없으나 평원에 우뚝 선 뷰트들이 햇살을 맞아 붉은 빛을 띠는 모습이 참으로 이색적이었습니다. 잘은 몰라도 이곳을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정한 것은 원주민들이 고혹적인 Monument Valley를 바라보면서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키워 나갈 수 있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의 관광객이 잘 찾아오지 않는 이곳을 제게 안내한 아들의 속뜻이 제게 원주민과 같은 생각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아들은 아마도 21세기의 참가치는 자연에 대한 외경심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아침9시경 The View Hotel을 출발해 유타주의 Arches National Park로 향했습니다. 곧바로 유타주로 들어가 장시간 사막지대를 지났습니다. 고속도로를 빠져나가 기름을 넣은 후 멀지 않은 Moab 시내를 지났습니다. Monument Valley에서 보았던 뷰트들이 간혹 보이는 길을 따라가 Arches National Park의 Visitor Center에서 잠시 머물러 쉬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Arches의 모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뛴 것은 활 모양으로 휜 문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신기하고 또 신기해서입니다. 팜플렛을 받아 들고 Visitor Center를 출발해 꽤 높은 고개를 넘었습니다. 트레일이 시작되는 Wolfe Ranch로 가는 길에 상층의 바위가 떨어질까 염려되는 Balanced Rock를 들러 사진을 찍었습니다.
12시55분 Wolfe Ranch를 출발해 왕복 3마일 거리의 Delicate Arch를 왕복하는 트레일을 걸었습니다. 1백미터는 족히 넘을 완만한 슬라브를 올라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을 잠시 따라 걸었습니다. 이내 암봉 왼쪽으로 낸 길을 따라 올라 해발1,474m의 Delicate Arch를 조망하는 전망지에 다다르자 먼저 와 기다리던 아들이 저를 반겼습니다. 가운데가 뻥 뚫린 Delicate Arch를 바라보며 저것이 바로 바람이 낸 문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자유롭게 이 문을 드나드는 바람이 제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자연을 경외하는 원주민들의 마음 편히 이곳에서 살았으면 하는 염원일지도 모릅니다. 조금 떨어진 Delicate Arch로 가는 길이 바위 길이어서 저는 포기하고 아들만 건너갔습니다. 표고차가 146m에 불과한 완만한 길을 천천히 내려가 15시 정각에 Wolfe Ranch에 도착했습니다.
Delicate Arch를 보자 미국의 언론인 토마스 프리드먼이 지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프리드먼은 맥도날드가 진출해 Golden Arch가 세워진 나라까리는 서로 전쟁을 안 한다고 하는데 Delicate Arch가 세워진 유타주는 어찌해서 원주민들이 미국과의 전쟁을 피하지 못 했는가 궁금했습니다. 설마하니 자연이 창조한 Delicate Arch가 일개 기업체인 맥도날드가 세운 Golden Arch보다 못할 리가 절대로 없다 싶어 더욱 그러했습니다.
Wolfe Ranch를 출발해 Windows Trail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차도에서 멀지 않은 North Window에 바짝 다가가서 보자 앞서 본 Delicate Arch보다 그 규모가 훨씬 컸습니다. 뒤로 돌아가 본 South Window도 엄청 커 이 두 창문이 세상에서 가장 큰 창문이겠다 싶습니다.
예술이 인생에 대비하면 긴 것은 분명합니다만, 자연에 비하면 그 수명이 턱없이 짧습니다. 자연이 빚어낸 이런 위대한 작품이 사람들이 만든 어떤 예술품보다 수명이 긴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은 것은 그렇지 않다면 힘들여 여기를 찾아와도 만나보지 못할 수도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에덴을 형상화한다면 아마도 이런 모양이 되겠다 싶은 Garden of Eden을 마지막으로 들렀습니다. 코끼리 모습을 한 뷰트가 인상적인 Garden of Eden에서 멀리 바라다 보이는 산이 눈 덮인 뾰족 봉이 La Sal산으로 꽤 높아 보였습니다. Visitor Center를 지나 올려다 본 Courthouse Wash Rock Art Panel도 장관이어서 Arches National Park를 벗어나기가 못내 아쉬웠습니다.
Arches National Park에서 Bryce Canyon으로 가는 길도 멀었습니다. 운전에서 손을 뗀지 10년 가까이 되어 오전 내내, 그리고 밤길을 4시간 넘게 운전한 아들을 도와주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19시경 잠시 도로를 빠져나가 저녁을 들면서 잠시 쉰 아들이 다시 2시간 넘게 달려 21시40분 Bryce Canyon 입구 숙소인 America's Best Value Inn & Suite에 도착했습니다.
*제10일:2월3일(화)
-탐방지:유타주의 Bryce Canyon National Park
오늘의 탐방지인 Bryce Canyon이 숙소에서 멀지 않아 다른 날보다 조금 늦게 일어났습니다. 페이스트를 떼고 나자 구토증과 어지럼증이 완전히 가셔 살 것 같았습니다. 체크인 사무실에서 토스트로 요기를 한 후 아침 9시에 숙소인 America's Best Value Inn & Suite를 출발했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달려 Bryce Canyon National Park의 주차장에 도착해 협곡탐방을 시작했습니다.
Bryce Canyon은 여러 모로 Grand Canyon과 대비됩니다. Grand Canyon은 콜로라도 강에 의한 침식이 주 생성원인인데 비해, Bryce Canyon은 생성의 주원인으로 일교차가 유달리 크고 지대가 높아 공기가 희박해진데 따른 왕성한 풍화작용을 먼저 듭니다. 생성시기도 Bryce Canyon이 훨씬 늦습니다. Grand Canyon의 최상층부인 Kaibab Formation은 2억7천만 년 전에 생성되었고, Bryce Canyon의 맨 위 Claron Formation은 생성시기는 5천5백만년전으로 무려 2억만년 이상 늦습니다. Grand Canyon의 절경은 침식 면이 선명하게 보이는 엄청 깊은 천애의 절벽임에 비해 Bryce Canyon은 풍화작용으로 떨어져나가고 남은 정교한 후두(hoodoo)가 주입니다. 규모면에서 Grand Canyon이 Bryce Canyon을 압도하는 것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9시46분 해발2,439m 높이의 Sunrise Point에서 협곡 안을 조망하는 것으로 Bryce Canyon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밤에 얼고 낮에 녹는 날이 연중180일 가량 지속되는 Bryce Canyon의 아침 기온은 장갑을 끼어야 될 만큼 냉랭했습니다. 맑은 날씨 덕분에 협곡 안이 잘 보였는데 Grand Canyon보다 훨씬 아기자기해 보였습니다. Sunrise Point를 출발해 Queens Garden Trail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Queens Garden은 Sunrise Point에서 왕복 거리가 2.9Km이며 표고차가 109m에 불과한 경사가 가장 완만한 트레일입니다. 걸음이 빠른 아들을 먼저 보내고 크램폰을 차고 눈이 녹아 질퍽한 지그재그 길을 천천히 따라 내려갔습니다. 위에서는 주로 머리통만 보인 원통의 후두(hoodoo)들이 협곡 안에서 바라보자 마치 파르테논 신전의 둥근 기둥처럼 보였습니다. 삼거리에 다다라 오른쪽으로 20m가량 옮기자 Queendale Trail이 끝나 다시 삼거리로 돌아가 경사가 완만한 길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Sunrise Point 출발 1시간 반이 조금 지나 Queens Garden 끝점의 사거리에 이르렀습니다. Sunset Point로 이어지는 두 길의 오름 길이 갈라지는 사거리에서 잎들이 파릇파릇한 관목들과 키가 큰 쎄콰이어들이 공존하는 눈 덮인 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11시35분 Peekaboo Loop Trail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계곡을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왼쪽으로 Horse Trail 길이 갈리는 삼거리가 나타났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 둥글게 한 바퀴 빙 도는 Peekaboo Loop Trail로 들어섰습니다. Peekaboo Loop Trail은 왕복거리가 8.8 Km이고 표고차가 479m나 나는 비교적 긴 트레일로 가장 낮은 곳의 해발고도는 2,264m입니다. 이 트레일을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면서 올라가다 먼저 와 저를 기다리는 아들을 만났습니다. 이름을 모르는 Viewpoint를 지나 다시 만난 아들이 제게 내려가는 길이 낙석과 낙빙을 만날 수 있는 길이니 조심하시라는 말을 전하고 먼저 갔습니다. 이 길을 지나 조금 내려가자 고사목이 보였고 태고의 음향을 전하는 바람소리가 은밀하게 느껴졌습니다.
12시38분 오른 쪽 위로 Bryce Point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삼거리에서 조금 내려가자 간이화장실이 보였습니다. 삼거리에서 12분을 걸어 아들을 다시 만난 곳은 The Windows of Wall이 잘 보이는 Viewpoint입니다. Bryce Canyon에서 가장 볼만한 몇 가지는 ‘Windows', 'Canyon Wall'과 ’Hood'입니다. 아들은 커다란 두 개의 창문이 높이 나 있는 The Windows of Wall을 배경삼아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다시 앞으로 나섰습니다. 혼자 남아 20분가량 쉰 후 Viewpoint를 출발해 내려가다 오르기를 몇 번 반복하다 벽돌로 축대를 쌓은 길도 지나갔습니다. 천정이 열린 좁은 문을 지날 때는 소백산의 칼바람에 못지않은 냉기어린 바람을 맞았습니다.
14시 정각 Peekaboo Loop Trail을 한 바퀴 다 돌고 출발점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칼바람을 맞으며 한 바퀴 돈 보람이 있다하는 것은 Bryce Canyon이 빚어낸 명품 ‘Windows', 'Canyon Wall'과 ‘Hood' 셋을 모두 지근거리에서 보아서입니다. 두 개의 ‘Windows'를 품고 있는 'Canyon Wall'을 보면서 중국의 만리장성을 떠올렸습니다. 만리장성을 가보지는 못했지만 사진으로 비교해도 자연이 빚은 여기 'Canyon Wall'이 사람들이 쌓은 만리장성보다 훨씬 정교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제가 정말 놀란 것은 ‘Hood'입니다. 여기 Hood들이 작년 6월 중국의 시안을 탐방할 때 보았던 병마용과 너무 닮아 보였습니다. 진시황제가 여기 Hood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아니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유사해 보였지만, 그 수와 정교함이 여기 Hood가 단연 우위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인디아나 존스라는 영화를 이곳에서 찍은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후드들이 빚어내는 풍경이 기기묘묘했습니다. Peekaboo Loop의 출발점에서 12분을 걸어 사거리로 돌아갔습니다.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 후 Sunset Point로 올라가고자 왼쪽의 Wallstreet Trail로 들어섰습니다. 7-8분을 걸어 오르다 되내려오는 외국인 한 팀에게서 이 길이 겨울철에 위험하다며 봉쇄되었음을 전해 듣고 사거리로 다시 돌아가 오른 쪽의 Navajo Loop Trail을 따라 올랐습니다.
15시30분 Sunset Point에 올라섰습니다. 사거리를 출발해 Sunset Point로 오르는 Navajo Loop Trail은 얼마간 경사가 완만해 오를 만 했습니다. 제게 Wallstreet Trail이 봉쇄됐음을 알려준 20대의 젊은 여성이 저를 앞질러 걸어가는 것을 보자 보폭이 작은 뱁새가 성큼성큼 앞으로 내닫는 황새를 지켜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내 오름 길이 된비알 길로 바뀌어 지그재그로 올라갔습니다. 2시간 가까이 Sunset Point에 먼저 도착해 뒤늦게 오르는 저를 반겨 맞은 아들과 함께 Rim을 따라 주차장으로 이동하면서 Sunrise Point를 들러 다시 한 번 Bryce Canyon을 조망했습니다.
16시 정각 주차장을 출발해 Zion Canyon 인근 Springdale로 향했습니다. Zion National Park를 관통하는 아주 색다른 차량전용 여러 곳의 터널을 통과하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잠시 차를 멈춰 세우고 Zion Canyon의 해넘이를 사진 찍었습니다. Bryce Canyon 출발 2시간 남짓 후 서부영화에 나오는 작은 도시가 연상되는 조금은 황량해 보이는 Springdale에 도착해 Pioneer Springdal-e Lodge에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제11일:2월4일(수)
-탐방지:유타주의 Zion National Park
감기가 낫지 않아 간헐적으로 콧물이 흐르고 기침이 났지만, 어지럼증과 구토증이 완전히 사라져 다행입니다. 이번 Zion Canyon 탐방 길의 백미는 Angel's Landing Trail입니다. 아들은 이 길이 바위공포증이 있는 제게는 매우 위험하다며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일단 가보고나서 같이 할지 말지를 결정하기로 하고 Pioneer Springdale Lodge 숙소를 출발했습니다.
아침8시20분 Zion National Park안의 West Rim Trail로 들어섰습니다. 숙소에서 East Entrance를 거쳐 이번 탐방의 출발점인 The Grotto주차장까지 가는데 50분이 채 안 걸렸습니다. Rim에서 협곡 아래로 내려갔다가 되올라가는 Bryce Canyon과 달리 여기 Zion Canyon은 협곡 밑에서 출발해 올라가는 것이어서 일반 등산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Grotto를 출발해 잠시 후 다리 위로 건넌 강은 North Fork Virgin River로 강폭은 좁으나 유량이 많고 엄청 맑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고기가 보일 것 같았습니다. 다리 건너 왼쪽으로 Kayenta Trail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오른 쪽 West Rim Trail로 오르는 중 깡충깡충 뛰면서 길안내를 해주는 검푸른 새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평지길이 끝나고 된비알의 오름 길이 지그재로 나 있어 오름길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습니다. 어제 Bryce Canyon을 탐방해서인지 아래가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길을 걸으면서도 현기증이 나거나 두렵지 않았습니다.
9시5분 철제다리를 건넜습니다. 다리 건너 Grotto쪽을 내려다보자 아찔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리 건너 양옆의 거대한 암봉 사이로 난 5백미터(?) 가량 되는 계곡 길은 넓지는 않았지만 평탄하고 그늘져 숨을 고를 수 있었습니다. 평탄한 계곡길이 끝나자 다시 지그재그길이 이어졌습니다. 벽돌로 축대를 쌓고 옆에다 수로를 설치해 모처럼 큰 돈 들여 낸 길이 오래 갈 수 있도록 한 것은 이 길을 오가는 관광객에 좋은 인상을 줄 것 같았습니다. 암반에 붙어사는 조그마한 나무 한 그루를 보고 이 험지에서 어떻게 비바람을 견뎌내고 살고 있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또 그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했습니다.
9시35분 Scout Lookout 지점에 도착했습니다. 지그재그 길을 따라 올라 평평한 Scout Lookout 지점에 이르자 넓은 공터에 모래밭이 있었고 간이 화장실도 보였습니다. 이곳이 해발 고도가 1,585m(5,284ft)인 West Rim Trail의 끝점입니다. 먼저와 기다린 아들이 이곳에서 시작되는 0.5 마일 거리의 Angel's Landing Trail은 2004년 이후 실족사한 사망자가 6명에 이를 정도로 위험하다며 만류해 저는 남고 아들 혼자서 떠났습니다. 아들을 보내고 평평한 바위에 바짝 엎드려 자동차가 아주 작게 보이는 계곡 밑을 내려다보면서 아찔함을 느꼈습니다. 아들이 저리 걱정하는데 아무리 쇠줄이 설치됐다고 해도 좌우가 절벽인 Angel's Landing Trail을 마음 편히 걸으면서 주변 절경을 제대로 사진 찍고 감상할 수 있겠나 싶어지자 안가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0시10분 저 혼자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Bryce Canyon을 걸을 때보다 만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지만, 대개가 젊은이들이고 나이든 분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록 Angel's Landing Trail을 밟지는 못했지만 Scout Lookout 지점까지 올라가 절애의 협곡아래를 사진 찍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하산 길에 계곡 사이로 비행하는 검은 까마귀(?)는 사진을 찍었지만, 승냥이와 거의 비슷하게 울음소리를 내는 짐승은 아마도 Mountain Lion 같기도 한데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올라갈 때 못 본 암벽에 새겨진 여러 금이 자연적으로 생긴 것임에도 자를 대고 줄을 친 것처럼 정연했습니다.
10시41분 철제다리를 다시 건넜습니다. 다리를 건너 내려가는 길에 찬찬히 Zion Canyon을 둘러보았습니다. 전날 탐방한 Bryce Canon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후드(hood)들의 정교함은 찾아볼 수 없지만 도봉산의 선인봉보다 몇 배 큰 주황색의 암봉이 여기 저기 우뚝 솟아 참으로 듬직했습니다. 다리에 거의 다 가서 North Fork Virgin River로 내려가 강물을 바라보자 마음의 안온해져 저도 모르게 존 바이즈의 'River In The Pines'를 흥얼거렸습니다. 아들을 만나 다리 건너 주차장으로 가서 West Rim Trail 걷기를 일단 마쳤습니다.
11시46분 다시 다리를 막 건너 아침에 빗겨 간 Kayenta Trail 탐방을 시작했습니다. 1마일 거리의 Lower Fall지점까지 왕복하는 짧은 길이어서인지 오전에 다녀온 길과 달리 노인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경북예천의 물도리처럼 300도(?) 이상 굽이도는 강물은 한참 떨어진 조금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아도 여전히 맑아보였습니다. 집단으로 자라는 선인장 중에서 몇 그루가 피운 꽃이 아름다웠습니다. 가는 물줄기가 떨어지는 Lower Fall이 햇빛을 만나 빚어내는 무지개가 참으로 영롱해, 그래서 여기에 Trail을 냈구나 싶었습니다. Grotto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가 쉼터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맛있게 해들었습니다.
14시 정각 Grotto 주차장을 출발해 네바다주의 Las Vegas로 이동했습니다. 2시간 남짓 달려 Las Vegas의 Sunset Station Hotel에 도착해 여장을 풀었습니다. 계속되는 운전으로 아들이 많이 피곤해보여 시내관광을 생략하고 카지노 안 뷔페식당에서 저녁을 들었습니다.
요세미티에서 머물면서 몇 군데 트레일을 걸으려 한 6-8일 사흘 내내 비가 내린다고 합니다. 감기가 낫지 않아 비를 맞고 탐방을 할 수 없어 내일은 일단 요세미티로 이동해 하루 밤을 잔 후 샌프란시스코로 갔다가 요세미티로 돌아가 8-9일 이틀만 하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했습니다.
Las Vegas에 오기까지 차안에서 정말 많이 본 것은 메사(mesa)입니다. 메사란 꼭대기가 평탄한 수평 암층으로 되어 있고 주변은 침식되어 급경사를 이룬 탁상 모양의 지형을 이릅니다. 해안의 육지가 침식되었을 때 지층위의 단단한 암석층이 남아 형성되었다는 메사를 보면서 우리나라에는 왜 저런 산(?)이 없을까 궁금했습니다. 이번 탐방을 통해 이제껏 제가 보아온 산이 전부가 아님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산이란 육지의 표면이 주위의 땅보다 훨씬 높이 솟은 부분을 뜻한다고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훨씬 높이 솟은 부분’이 산으로 불리려면 세모꼴의 봉우리여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에 탁상 모양의 메사를 처음보고 산으로 부르기에 주저했습니다. 밑에서 위로 올라갔다가 내려간 Zion Canyon은 등산을 한 것이 분명한데 위에서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간 Bryce Caynon에서도 등산을 한 것이라고 말해도 되는 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Bryce Caynon의 Rim 부분은 해발고도가 2,000m를 상회하는데 단지 평평하다는 이유로 산으로 불러서는 안 되는지 정말 혼란스러워 서울로 돌아가 산과 등산의 정의를 한 번 새겨볼 뜻입니다.
*제12일:2월5일(목)
-이동코스:Las Vegas - Barstow -Mojave-Bakersfield-Fresno-Oakhurst
오늘은 이번 여행 중에서 이동거리가 가장 긴 하루였습니다. 아침8시30분에 Las Vegas를 출발해 요세미티(Yosemite) 인근 Oakhurst까지 차로 가는데 8시간20분이나 걸렸습니다. 허리가 안 좋은 아들에게 이 긴 시간동안 전적으로 운전을 맡기는 것이 안쓰러웠습니다.
네바다주에서 캘리포니아주로 들어가 지난 Barstow는 LA에서 Grand Cynon으로 이동할 때도 지났습니다. 광활한 초원을 거니는 소들이 참으로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태양광발전소단지를 지나 낮게 뜬 비행기를 보고 아들은 냉전기간 중 소련을 공격하려 만든 F101기로 꽤 유명한 비행기라 했습니다. 수명이 끝난 비행기를 보관하거나 폐기해 비행기의 무덤이라 불리는 모하비의 사막지대를 지나면서 나지막한 산 위에 설치된 몇 백 개의 풍력발전기를 보았습니다. 이 발전기들이 동시에 돌지 않는 것은 바람의 행로가 달라서인 것 같습니다. 풍력발전기를 설치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이 소음이라 합니다. 사람들이 살지 않고 바람을 막는 높은 산이 없는 사막지대가 풍력발전기 설치의 최적지이기에 Palm Springs 일대에도 풍력발전기 대단지를 조성했을 것입니다.
Barstow에서 Fresno까지는 철로와 나란한 방향으로 도로가 나 있어 캘리포니아주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화물열차를 여러 번 보았습니다. 기차가 길다는 것을 새삼 느낀 것은 기차 1대가 끌고 가는 화물칸이 눈으로 세어본 즉 110칸 정도 되어 우리나라 화물차보다 엄청 길어보였습니다. 승객을 실은 열차가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미국에서 승객운송은 자동차와 비행기가 맡기 때문이 아닌 가합니다.
Bakersfield(?)에서 주유를 하고 잠시 쉰 후 점심식사는 Quildale(?)에서 했습니다. Bakersfield는 아몬드 농장이 많은 곳입니다. 전 세계 아몬드의 80%를 생산하는 미국의 생산지는 오직 캘리포니아 한 주뿐입니다. Fresino에 가까워질수록 오렌지 농장이 많이 보여과연 캘리포니아답다 했습니다. 우리 귀에 익은 선키스트(Sunkist)는 캘리포니아가 자랑하는 오렌지 주스 브랜드입니다.
16시50분에 Oakhurst에 도착해 Comfort Inn 숙소의 2층 방에 들었습니다. Yosemite National Park를 벗어나 남쪽으로 가장 가까운 도시여서 북적일 만데 한데 성수기가 아니어서 생각보다 한적했고 공기도 냉랭했습니다.
내일은 오후 4시부터 사흘간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내일 하루 요세미티를 탐방하고 모레 샌프란시스코로 가기로 일정을 다시 조정했습니다. 요세미티 탐방이 사흘에서 하루로 줄어들어 출국일자도 같이 이틀 앞선 12일에 출국하는 것으로 비행기 편을 변경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제13일:2월6일(금)
-탐방지:캘리포니아주의 Yosemite National Park
비가 오기 시작하는 오후 4시까지 Yosemite Valley의 탐방을 모두 마치려고 아침 일찍 Oakhurst를 출발했습니다. 6시40분에 숙소를 출발해 Yosemite National Park 안으로 들어가 꽤 긴 터널을 통과하자마자 차를 멈춘 곳이 서쪽 Viewpoint입니다. 햇살이 막 퍼져나가는 이른 시간에 조망하는 두 암봉 Half Dome과 El Captain은 탄성을 자아내기에 족할 만큼 거대했습니다. 돔(dome)을 반으로 잘라낸 듯한 Half Dome의 드높은 절벽을 바라보는 록 클라이머들은 가슴이 뛰었을 것입니다.
9시20분 Upper Yosemite Fall Trail에 발을 들였습니다. 전망대에서 동쪽 Yosemite Valley 안으로 이동해 차를 주차시키고 평지 길을 걸으면서 캐넌 안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든 것은 우람한 암봉들이 병풍을 치듯 계곡을 둘러싸서입니다. Upper Yosemite Fall 전방3.5mile(5.6Km) 지점에서 왼쪽으로 꺾어 본격적인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해발 3,800ft(1,140m) 지점에서 출발해 고도를 높여 가는 중 사진으로만 보아온 코요테를 만나 사진을 찍었습니다. 세 곳의 캐넌을 탐방하면서 적갈색(?)의 이암과 사암을 주로 보아오다가 여기 요세미티에 와서 회백색 화강암을 만나보자 반가웠고 이제야 비로소 산다운 산을 오른다 싶었습니다.
10시30분 Columbia Rock에서 저를 기다리는 아들을 만나 잠시 쉬었습니다. 화강암의 암괴류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올라 다다른 Columbia Rock에서 사진을 찍다가 빨간 색의 등산모가 돌풍에 날아가 본의 아니게 쓰레기를 남겼습니다. 서쪽 전망대애에서 본 El Captain의 Upper Yosemite Fall을 가까이서 보고자 El Captain의 남사면에 낸 길을 따라 올라 여기 최고의 전망대인 Columbia Rock에 이르자 동쪽에 자리한 Half Dome늬 전신이 뚜렷하게 보여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11시28분 하산하기 시작했습니다. Columbia Rock을 출발해 고도를 4,970ft(1,491m)까지 높였다가 조금 내려가 Upper Yosemite Fall이 잘 보이는 First Viewpoint에 이르렀습니다. 아들은 남고 저 혼자서 폭포를 다가가 볼 뜻으로 얼마간 오르다가 아무래도 길이 폭포 바로 옆을 지날 것 같지 않아 전망대로 되돌아가 아들과 함께 하산했습니다. 정이 든 모자를 날려버린 Columbia Rock을 지나 출발점으로 되돌아온 시각이 12시47분이었습니다.
내친 김에 아주 짧은 Lower Fall Trail도 마저 밟았습니다. 평지 길로 이어지는 이 트레일을 따라 걸어 조그마한 원형광장을 지났습니다. 몇 분 후 도착한 Lower Fall Viewpoint에서 Lower Fall이 아주 가까워 Upper Fall폭포에서 찍지 못한 사진을 마음껏 찍었습니다. 다리 건너 숲속을 잠시 거닌 후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들었습니다.
14시30분 Mirror Lake Trail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요세미티는 아들이 전에 혼자서 다녀간 곳이어서 길안내는 아들이 맡았습니다. 일정변경으로 하루 숙박비를 날린 Housekeeping Camp를 지나 잠시 걸은 포장도로를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Mirror Lake로 가는 길이 거의 평탄해 모처럼 아들과 보조를 맞추어 같이 걸었습니다. 출발지에서 계속 동진하며 50분가량 걸어 도착한 Mirror Lake는 규모도 초라하고 물도 그리 많지 않아 Half Dome과 가까이 있지 않는다면 이 호수와 비슷한 우리나라 변산의 직소폭포만 못하다는 평을 받을 것 같았습니다. 옛날에는 이 호수의 얼음과 모래가 요긴하게 쓰였다는 Mirror Lake는 주위가 모두 바위산이어서 겨울과 이른 봄에 그래도 물이 있지만 여름에는 그나마도 줄어든다고 합니다. Mirror Lake를 지나 남서쪽으로 흘러 Low Pine에서 넓은 개천에 합류되는 실개천을 따라 낸 길을 걸으면서 아들만 없었다면 존바이즈가 부른 River In The Pines를 소리 낮춰 부르고 싶었지만 아들이 함께해 하지 못했습니다. 주차장으로 되돌아가 Yosemite Valley 탐방을 모두 마치면서도 찜찜했던 것은 얼마 전 미국의 클라이머가 프리 클라이밍(free climing) 방식으로 등정한 암봉이 어떤 봉우리인지 알지 못해서였는데 나중에 몇 몇 산악인들에 확인해본 즉 그 암봉은 El Captain이었습니다.
16시20분 주차장을 출발해 Oakhurst로 돌아가는 중 이내 비가 내려 미국의 일기예보가 상당히 정확하다는 것과 그래서 내일 우중운전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모두 확인됐습니다. 새로 찾아간 Oakhurst Lodge는 출입문이 안 열려 옮긴 다른 방의 변기가 막혀 잘못 얻은 것이 아닌 가 했는데 곧바로 주인이 변기를 뚫어 그대로 묵었습니다. 인터넷에 전날 묵었던 곳보다 고객평가가 훨씬 좋아 예약했다는 아들 말대로 서비스는 신속했지만 사전점검이 좀 소홀한 듯 했습니다.
아들이 컴퓨터로 확인한 세계 최고령나무는 5천16년(?)된 캘리포니아의 파인 트리(pine tree)였습니다. 이제껏 요세미티의 4천년 된 세콰이어라고 말한 것은 제가 잘 못 안 것입니다.
요새미티 공원에서 돌아오는 중 차안에서 아들과 얼마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도 그랬듯이 아들이 합리를 지나치게 쫓는 것이 아닌 가 해 걱정도 됐습니다. 합리 추구가 반드시 몰인정을 수반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친 합리는 사람도 도구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러했습니다. 아무래도 어지러운 세상을 오래 산 나이든 분들이 합리성을 갖추기는 요새 젊은이들을 따라가지 못할 것입니다. 때로는 억지를 부릴 때도 있고 더러는 잘하고 있는 자식들에도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나이든 분들로는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들에 나이 들면 들수록 사람이 그리워지는 법이라며 정으로 주위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살아가는데 요긴한 덕목임을 일러주는 것으로 제 얘기를 마쳤습니다.
아무리 박하게 평가해도 두 아들이 제게 하는 것은 제가 부모님에 해드린 것보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몇 배 더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러 아들들이 서운하다고 느낄 때는 부모님에 한 것과 대비하는데, 그때마다 두 아들이 아들나이 때인 저보다 훨씬 효성스럽고 올곧다는 결론에 이르러 섭섭한 마음을 풀곤 합니다. 지금 다시 돌아봐도 철없이 두 어른에 대한 것 같아 후회가 되는 것은 그때가 지금 두 아들보다 가난하게 살아서만은 아닙니다. 경제적 빈곤 이상으로 정신적으로도 가난해 더 그랬을 것입니다.
나이 들어 혼자 살기 힘들어 하는 것은 수시로 엄습해 오는 고독 때문일 것입니다. 친구들을 자주 만나는 것도 훌륭한 치유법이겠지만 제가 택한 것은 고독의 밑바닥까지 체험해 극복하는 것입니다. 대간과 정맥을 종주하며 이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은 하루 종일 산 능선을 혼자 걸어서입니다.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산길을 혼자 걷노라면 자연과의 대화가 불가피합니다. 나무도 꽃도 새와 나비도 심지어는 멧돼지와 바위도 모두 친구로 삼아 묵언의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실어증에 걸리기 쉽습니다. 용케도 자연과의 대화가 가능해지자 이제는 혼자 어디 있어도 신기하리만치 외롭지 않아 바쁜 아들들이 자주 찾아오기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아들들이 자주 찾아온다면 오히려 불편해 산으로 도망갈 것 같습니다. 산과 더불어 저를 지켜주는 또 하나는 책입니다. 틈만 나면 책과 가까이 하고자 하는 것은 저자와의 대화가 가능해서입니다. 제 성격이 크게 모나지 않은 것은 책을 통해 이런 저런 분들과 많이 만나는 덕분일 것입니다.
두 아들에 제가 잘 한 것 하나는 제가 독서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 것입니다. 두 아들 모두 책을 좋아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두 아들을 불러다 놓고 이렇게 살라고 애기하는 것보다 저 나름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유효하다 싶어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제14일:2월7일(토)
-탐방지: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Golden Gate Bridge)와 Grace Catholic Cathedral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내려 어제 Yosemite Valley를 탐방한 것이 참 잘한 일이다 싶었습니다. 8시40분에 Oakhurst를 출발해 한 시간 넘게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려 미국 땅에도 우리나라와 같은 산골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산이 끝나자 다시 넓게 펼쳐진 평야에 캘리포니아가 자랑하는 오렌지 밭이 길가로 연이어 보였고 과수원도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뒤이은 초원은 목축지로 저 넓은 초원을 거닐며 풀을 뜯어먹는 소들을 보고 좁은 곳에 가두어 사료를 먹여 기르는 우리 젖소로는 경쟁에서 밀릴 것이 자명해 보였습니다. 한우라면 차별화가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가격이 비싸 국내시장에 제한된 것일 뿐 세계시장에서 우리 소들이 자리 잡기가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다른 나라와 FTA를 체결할 때 마다 농촌 지원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소이연이라는 생각입니다.
잠시 도로에서 벗어나 지명이 기억 안 나는 구릉 위의 전망대를 올라가 잠시 쉬었습니다. 먹구름이 하늘을 덮어 당장이라도 소나기가 쏟아 질 것 같은 날씨여서 탁 트인 사방을 휘둘러보고 다시 차에 올랐습니다. 도로와 나란한 방향으로 거의 직선으로 나있는 엄청 긴 인공수로는 목축장의 초원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비가 그치지 않은 평원의 도로를 내달리며 이 지대는 연간 강수량이 250ml 이하로 매우 건조한 사막지대가 아니어서 얼마든지 날씨가 궂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샌프란시스코에 진입해 긴 다리를 건너 Mule숲길을 걷고자 했으나 내비게이션이 가르쳐주는 대로 가다가 동네골목길을 만났는데도 아들은 용케 빠져나가 큰 길로 들어섰습니다. 어렵게 Mule숲길을 찾아 갔지만 입구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주차해야 했고 또 비가 내려 곧바로 금문교를 보러 갔습니다.
금문교 가까이의 전망지에서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조금 떨어진 산 중턱 도로변에 설치한 인근 전망지로 이동했습니다. 마침 비가 그쳐 영화에서 몇 번 본 금문교(Golden Gate Bridge)를 두 눈으로 직접 조망했습니다. 거리는 좀 멀었지만 안개가 끼지 않아 금문교의 온전한 모습을 사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언뜻 보니 생각보다 길지 않아 부산 앞바다의 영도다리가 연상됐습니다. V자 모양의 현수교로 교각의 색깔은 황금색이 아니고 적색이었습니다.
근접거리의 전망대로 이동해 빈자리에 차를 주차시키고 10분가량 걸어가 보다 가까이에서 금문교를 보았습니다. 서쪽 태평양이 병목을 거쳐 동쪽 만(bay)으로 연결되는 데 그 병목 위에 금문교를 설치했습니다. 육안으로도 물결이 세게 보여 다리공사가 난공사였음이 짐작됐습니다. 토치카(?)가 설치된 것으로 보아 격전지였던 곳으로 보이는 전망대에서 내려가 차로 직접 금문교를 지났습니다.
Marine Terminal로 옮겨 인근 중국집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여행 중 내내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때우다가 모처럼 코스음식을 먹노라니 이제 탐방여행도 끝나가는구나 싶었습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이 도시 최고의 성당인 Grace Catholic Cathedral를 들렀습니다. 마치 성남시의 옛 시가지와 같은 좁은 언덕길을 여러 번 오르내려 성당 앞에서 하차했습니다. 고딕식의 Grace Catholic Cathedral 건물이 높이 솟아 한참 떨어져 찍어야 성당 전체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성당 안이 개방되어 방문객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얼핏 보아 명동성당보다 조금 작아 보이는 이 성당 안에 들어가 라파엘의 어머니 상 그림을 보자 26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집사람과 저를 천주교로 이끄신 어머니의 신앙심은 매우 돈독해 제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가톨릭 교단에 정치지향적인 신부들이 적지 않아 요즘의 저는 갈등을 겪고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도 다른 나라에서 이렇게나마 성당을 들르는 것은 이 길만이 먼 훗날 어머니와 집사람을 만날 때 덜 부끄러워할 것 같아서입니다. 깔끔하고 모던해 보이는 성당 안을 둘러보고 공항근처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17시경 공항근처 숙소인 The Dylan에 도착해 짐을 풀고 푹 쉬었습니다. 저녁은 San Jose에 사는 고교동문 김종화군의 아들 부부와 함께 했습니다. 아들에 수학을 도와줘 국내 최고의 대학에 들어가는 데 큰 도움을 준 김종화선생은 우리 큰아들에 더할 수 없는 귀인으로, 그때 도움을 받지 못해 수학실력이 딸렸다면 제때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가지 못해 오늘처럼 훌륭하게 크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들 부부가 내는 식사가 제법 값나가는 중국요리였지만 미국에 여행 온 것을 환영해 사는 것이어서 어른인 제가 낼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며칠 후 서울로 돌아가 김종화 선생부부를 대접하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결혼한 지 몇 년 안 된 이들 부부가 자신을 가지고 열심히 사는 것 같아 보기에 좋았습니다. San Jose가 결코 가까운 데가 아닌데도 멀다 않고 달려와 맞아준 이들 부부가 고마웠습니다.
*제15일:2월8일(일)
아침 9시경 샌프란 시스코를 출발해 어바인 집으로 향했습니다. 태평양과 접해 있는 해안도시 샌프란시스코는 그 위도가 서울과 비슷합니다. 서울에서라면 눈이 내리는 2월 초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것으로 보아 샌프란시스코가 서울보다 따뜻한 것 같습니다. The Dylan 숙소를 출발해 LA로 내려가는 고속도로로 들어섰습니다. 1시간가량 달려 San Jose를 지나서도 비는 계속 내렸습니다.
비는 항상 여심(旅心)을 불러 일으켜 제 가슴을 뛰게 합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에 출장가 시코쿠를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오늘처럼 2월로 봄비가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승용차 안에서 바라다보는 바깥 풍경이 기차를 타고 내다보는 풍경과 다를 바 없을 터인데 그래도 기차여행에 더 정감이 가는 것은 옆자리의 생판 모르는 사람과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입니다.
중간에 주유를 하면서 잠시 쉰 후 12시 반경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IN-N-OUT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아들 얘기대로 맛좋기로 꽤 알려진 곳이어서 손님이 많아 북적댔습니다. 사막지대는 잘 보이지 않고 파릇파릇한 초원지대가 연이어져 봄기운이 완연하게 느껴졌습니다. 남쪽으로 내달려 엄청 넓은 호수를 지났습니다. LA에 다 와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어바인으로 향했습니다.
16시20분 어바인 집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풀고 그간 감기로 자제해온 맥주 한 캔을 아들과 함께 들며 무사탐방을 자축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가져간 3권 중 “동아시아 속의 한일 2천년사”를 다 읽었습니다. 고대부터 해방 시까지 약 2천년동안의 한일관계사를 쟁점중심으로 엮은 이 책을 읽고 나서 일본이 우리나라를 얼마고 업신여긴다고 생각했던 것이 나만의 편견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일본의 상대적 우월감이 일본인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역사적으로 축적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되었음을 이 책을 읽고 확실히 알게 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광개토대왕 비문을 증거로 제시한 임나일본부의 경상도 일대 지배론입니다. 저자는 상당히 객관 적 입장에서 대립되는 양설을 소개한 후 허구 쪽에 무게를 두어 저자 의견을 개진하는 등 중립적 입장에서 한일관계사를 바로 보고자 애쓴 점이 역력히 보였습니다. 제가 우리나라 사학자의 공정한 한일관계사 저서를 기대하는 것은 우리도 역시 일본을 충분한 이유 없이 비하하는 면이 농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제16일:2월9일(월)
아침 일찍 일어나 얼마 남지 않은 “동양철학의 자연과 인간”을 마저 다 읽었습니다. 집에서 갖고 온 세권 중 원서인 “China Hands" 한 권은 아직 다 읽지 못해 귀국길에 비행기에서 읽을 뜻입니다.
동양사상이나 철학을 정규과정으로 학습한 바가 없어 8백 쪽이 넘는 “동양철학의 자연과 인간”을 읽어나가기가 쉽지는 않았으나, 유명 학자들의 자연관을 일별할 수 있어 끝까지 읽었습니다. 아래 글은 제 블로그에 올린 독후감입니다.
“성균관 대학교의 안병주 교수의 정년을 기념해 출간된 이 책은 상허 안병주교수 정년기념논문집II로 안병주 교수의 ‘유교의 자연관과 인간’ 논문과 그의 제자들이 헌정한 논문 34편이 수록되어 동양철학을 조감하는데 이만한 책이 따로 있겠나 싶을 정도로 내게는 참으로 볼만한 책이었음. 작년 방송대 졸업논문으로 여암 신경준의 곤충시를 갖고 여암의 자연관을 주제로 쓴 일이 있어 이 책 전반을 꿰뚫는 동양의 자연관이 낯설지 않았음. 유학뿐만 아니라 노자, 장자의 노장사상은 물론 중국의 양명학도 소개되었고 조선의 유학자들의 자연관도 함께 실려 동양의 자연관을 폭넓게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임. 내가 하고 공부하고 싶은 우리 선조들의 유산기와 연계해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임”
숙소인 Santabara 단지를 두 바퀴 돈 다음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단지를 도는 동안 여기서는 여행지와 달리 서로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보아도 Santabara 단지는 최적의 주택단지임에 틀림없습니다.
시내 레고전문점에 가서 손자에게 선물할 2-5세용 레고 장난감인 듀프렉스(Duplex)를 샀습니다. 그간 이것 저것 산 것이 많아 짐을 꾸리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캐리어 두 대와 28 L들이 배낭에 짐을 쑤셔 넣어 혹시라도 공항에서 짐을 풀어헤치면 다시 쌓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작업은 여행 중에 메모한 것을 노트북에 입력하여 가져간 USB에 옮겨담는 것입니다. 그간 틈나는 대로 입력해 이 작업도 마무리했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야 해 자정이 되기 전에 취침했습니다.
*제17일:2월10일(화)-미국시간 기준
아침 7시경 어바인 숙소를 출발했습니다. LA시내가 가까워지자 고속도로에 차량이 늘어나 공항에 제때 도착하지 못할 까 걱정됐습니다. 다행히 차가 멈춘 적이 없어 9시경에 LA공항에 도착해 시간이 넉넉했습니다. 환송 나온 아들과 헤어진 후 곧바로 출국심사를 마쳤습니다. 캐리어 2대는 탁송하고 작은 배낭은 어깨에 매고 공항 대기실로 들어갔습니다.
대기실 양 끝을 3번 왕복해 매일 목표인 4Km는 족히 걸었습니다. 11시경 공항을 출발해 상공을 날았습니다. 비행기 안은 시간을 죽이는데 책이 최고입니다. 읽다가 졸리면 눈을 붙이면 되는 것이 몇 번을 자다 깨다를 해도 여전히 비행기는 상공을 비행해서입니다. 한 권 남은 “China Hands"를 소등 시간에도 읽어 250쪽 가량 진도를 나갔습니다.
*제18일:2월11일(수)-한국시간 기준
17시40분 경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찾아 통관하면서 짐을 다 풀어헤치면 다시 꾸겨 넣기가 만만치 않아 걱정을 했습니다. 큰아들이 사준 손자 옷가지와 제가 산 레고 선물, 값이 워낙 저렴해 사온 등산복과 등산화로 부피는 많이 나갔지만 값나가는 것이 없어 까다롭지 않게 통관을 마쳤습니다.
산본이 종점인 공항버스에 올라 집으로 가는 중 얼마 전 일어난 다중충돌사고로 고속도로가 막혀 반시간 가까이 지체됐습니다.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산본 집에 도착해 두 아들과 며느리에 귀국을 알리는 것으로 장장 18일간의 미국서부명소탐방을 모두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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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a Hands"는 귀국 사흘 후인 2월14일에 마저 다 읽었습니다. 이 책을 산 것은 7-8년 되었지만 영어로 된 원서여서 질질 끌다가 미국여행 덕분에 읽기를 마쳤습니다. 아래 글은 제 블로그에 올린 독후감입니다.
“몇 년 만에 영어원서를 독파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을 여행하고 LA에서 돌아올 때 기내에서 이 책 외에 달리 읽을 만한 것이 없어서였음. 장장 12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상공에서 보내면서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였는데 덕분에 이 책의 거의 반을 읽어낼 수 있었음. 주 저자인 James Lilley의 가족사로 시작되는 이 책에 따르면 미국 Standard Oil에 근무하는 저자의 아버지가 산동 반도의 청도에 근무하면서 3형제를 키운 것으로 되어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청도에 기독교고등학교가 없어 평양의 고등학교에 다녔다는 것임. 3형제의 막내인 저자가 중국 통이 된 것은 한국전쟁 발발 후 예일대학에서 러시아대신 중국을 공부하게 되고나서부터인데 그 후 주로 중국과 관련해 CIA와 외교부서에서 활동해왔음. 전두환 정권 때 한국대사로 근무하면서 민정이양을 순조롭게 하는 데 일조했으며 천안문 사건 때 중국대사로 일하면서 민주화운동을 이끈 부부를 도우면서도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유지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한 저자의 외교활동은 성공적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음성적으로 공작을 벌여 성공한 일은 하나도 없고 두 나라 관계를 정상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경제와 외교관계를 증진시키는 길밖에 없음을 천명한 저자의 경험적 지혜가 돋보이는 책이었음. 9년 전 파주 헤이리마을의 북 카페에서 산 중고책인 이 책에 저자의 친필사인이 들어있어 더욱 귀한 책으로 꼭 9년 걸려 다 읽은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뿌듯함.”
김종화 선생부부와의 점심 식사도 마무리 수순이어서 2월16일에 만나 같이 했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를 만난 자초자종을 들려주고 며느리를 잘 뒀다는 칭찬하자 흡족해 하는 표정은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탐방기를 정리할 겸 이구한 님이 지은 “이야기 미국사”와 전국지리교사모임 지리누리 회원분들이 같이 펴낸 “지리교사들, 미국서부를 가다”를 읽어 미국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보았습니다. 대형서점에 가서 전지 크기의 미국지도를 사 온 것은 그 다음입니다.
탐방기를 작성하면서 항상 제 머리에 맴돈 말은 “미국은 복 받은 나라다”라는 것입니다. 그 복이 오늘까지 이어진 것은 자유만주주의를 신봉하는 미국 국민의 위대함 때문이라 결론지으며 탐방기 작성을 마칩니다.
< 탐방사진>
1.LA 어바인의 산타바라(Santabara)
2. 로스앤젤레스의 LACMA와 그리피스천문대(Griffith Observatory)
1)LACMA
2)그리피스천문대(Griffith Observatory)
3.San Diego 소재 La Jolla 해변, Balboa 공원 및 Bay of Tuna
1)La Jolla 해변
2)Balboa 공원
3)Bay of Tuna
4.Desert Hills Premium Outlets와 Palm Springs 소재 Mt. San Jacinto State Peak
1)Desert Hills Premium Outlets
2) Palm Springs 소재 Mt. San Jacinto State Peak
5. Irvine의 UCI 캠퍼스
6.아리조나 주 Grand Canyon National Park의 South Rim
7.아리조나주의 Monument Valley
8.유타주의 Arches National Park
9.유타주의 Bryce Canyon National Park.
10.유타주의 Zion National Park
11.캘리포니아주의 Yosemite National Park
12.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Golden Gate Bridge)와 Grace Catholic Cathedral
1)금문교(Golden Gate Bridge)
2)Grace Catholic Cathed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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