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공지천하구-남춘천교-신촌천합수점
탐방일자:2016. 12. 8일(목)
탐방코스: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공지천하구-방송대학습관
-남춘천교-석사교-태백교-신촌천합수점
탐방시간: 14시36분-16시48분(2시간12분)
동행 : 나홀로
그동안 저는 수많은 산줄기를 따라 걸었습니다. 2004년에 1대간9정맥의 종주를 시작해 2006년에 백두대간 을, 2014년에 9개 정맥 종주를 모두 끝내 도상거리 기준으로 2,800km 가량의 산줄기를 따라 걸었습니다. 여기에 기맥, 지맥과 단맥 종주를 더하면 제가 걸은 산줄기의 길이는 4천Km가 더 됩니다. 한 구간도 빼놓지 않고 작성한 산행기는 1대간9정맥과 여러 지맥들의 종주 정보를 필요로 하는 분들과 공유하고자 제 블로그에 올려놓았습니다. 덕분에 산줄기를 따라 걷는 종주산행과 산행기 작성 모두 아주 익숙한 편입니다. 이렇게 쌓인 종주기는 270여 편으로 제게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한 자산입니다. 그간 두 발로 써온 산행기 몇 십 편을 골라 두 권의 책을 내놓은 것도 저의 소중한 자산을 두 아들에 전해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요즘 ‘산줄기 따라 걷기’의 대안으로 ‘물줄기 따라 걷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70줄이 가까워지면서 이제껏 잘 해온 종주산행을 몇 년이나 더 이어갈 수 있을까하고 걱정이 되는 것은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고 담력도 현저히 줄어드는 것 같아서입니다. 걸음이 느린데다 메모를 하느라 산행이 한참 더뎌 다른 사람들과 동행을 하는 것이 제게는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제가 백두대간의 반쯤과 9정맥의 거의 전 구간을 혼자서 종주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서 산행하는 것이 점점 부담스러워 얼마 전부터 보다 안전한 ‘물줄기 따라 걷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줄기 따라 걷기’의 첫 걸음은 춘천의 공지천(孔之川)에서 내딛었습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공지천(孔之川)이란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 학곡리에서 발원하여 삼천동 북한강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을 이르는 것으로, 그 길이는 하천연장이 5.6Km, 유로연장이 6.7Km 입니다. 학곡리에서 발원한 공지천은 신촌천, 학곡천과 후하천의 물을 받아서 세를 불린 후 북한강으로 흘러들어가 북한강의 제1지류이자 한강의 제2지류가 됩니다. 이런 공지천이 춘천시민으로부터 아낌을 받는 것은 이 하천이 시내를 동서로 관통하면서 여러 곳에다 휴식공간과 운동공간을 제공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공부하는 즐거움 중에 하나는 연상(聯想, association)의 나래를 보다 넓게 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난생 처음 접하는 것도 어디서 한 번 본 듯하고 들은 듯해 생판 낯설지 만 않은 것은 연상작용 덕분입니다. 안내판을 보고 남춘천교 다리 아래 하천 이름이 공지천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제 머리에 퍼뜩 떠오른 것은 소설가 공지영이었습니다. 공지영이 떠오르자 어쩌면 이 작가가 이 천변을 따라 걸었을 것 같았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걸었을 까 자문하다 그녀의 소설제목에 나오는 무소처럼 당당하게 걸었을 것이라고 답을 내렸습니다. 그리 생각해서인지 천변을 산책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힘차고 당당해 보였습니다. 하천 폭이 넓지 않은 공지천의 물 흐름이 빨라 보인 것도, 그래서 천변으로 내려가 사진을 찍은 것도 공지천의 이름이 주는 친근감 때문이었습니다.
춘천역에서 하차해 북쪽으로 400m 가량 떨어져 있는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春川大捷記念平和公園)’을 찾아갔습니다. 공지천의 끝점에서 2Km 가량 떨어진 평화공원에서 ‘공지천 따라 걷기’를 시작한 것은 춘천지구전투의 역사적 의의를 살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춘천시 근화동의 춘천호반변에 자리한 이 공원은 6. 25전쟁 당시 우리 국군이 북한군을 맞아 벌인 전투에서 처음 승리한 춘천지구전투를 기념하기위하여 세운 것으로 2000년 6월26일에 개장됐습니다. 이 공원에 전시된 기념탑과 조형물을 살펴보고 카메라에 옮겨 담으면서 가슴 뭉클 했던 것은 국군과 온 시민이 하나 되어 싸웠다는 기념탑건립취지문을 읽으면서였습니다.
“국군6사단을 중심으로 애국시민, 학생, 경찰이 하나 되어 전차를 앞세우고 기습 남침하는 북괴군 6,600여명을 사살하고, 전차18대를 완파하는 등 파죽지세로 침공해오는 북괴군을 3일간 지연, 저지시킴으로써 수원방면으로 진출하여 국군 주력을 포위하려던 북괴군의 남침계획을 무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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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36분 자전거길이 시작되는 이 공원에서 방축 길을 걸으며 ‘공지천 따라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말해 이곳에서 공지천 하구에 이르는 2.1Km의 방축길은 봄내길 4코스인 의암호나들길입니다. 오른 쪽 아래로 춘천호반과 면해 있는 의암호나들길을 따라 남서쪽으로 이동하는 길에는 평일인데다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산책하는 분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낙엽들이 바람에 쓸려 길 위를 나뒹구는 모습이 초겨울의 강변 분위기를 스산하게 했습니다. 시내와 하중도를 잇는 레고랜드진입교량의 건설공사가 1/4가량 남은 다리를 언제 이어놓을 수 있을지 알지 못하지만 완공만 되면 이 도시의 명물이 될 것 같습니다.
방축 위 도로에서 내려가 강변의 시멘트 길을 걸었습니다. 날씨가 쌀쌀한데도 강가에는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낚는 젊은 강태공들이 드문드문 보였습니다. 북한강과 소양강이 어우러져 빚어놓은 드넓은 춘천호반이 포근하게 느껴진 것은 믿음직한 삼악산이 이 호반을 지켜주고 있어서입니다. 강변 시멘트 길은 유원지로 조성된 공지천과 북한강이 만나는 합류점 앞 ‘만남의 풍차’ 카페에 다시 방축 길로 이어졌습니다. 인근의 에티오피아 한국참전기념관을 들러 전시물들을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6 . 25 전쟁 때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파병하여 강원도 일대에서 전투를 치르며 우리나라를 지켜준 이 나라에 감사의 뜻을 표하고 길 건너 기념탑에서 사진을 찍은 후 공지천변으로 내려갔습니다.
15시18분 공지천교 아래 구름다리에서 본격적으로 ‘공지천 따라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앞서 걸은 2.1km의 강변길은 정확히 말해 공지천변길이 아니고 북한강변길이어서 ‘공지천 따라 걷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황토색 바닥에 아취형의 아기자기한 구름다리는 사람만 다니고, 차들은 그 위의 공지천교로 다녔습니다. 다리 아래 물이 많이 탁해 보이는 것은 놀이 배가 다닐 수 있도록 물을 가두어 유원지로 조성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공지천 북쪽 천변 길을 따라 동쪽으로 진행하면서 물오리 몇 마리가 유영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 위의 여유로운 모습이 물 아래 두 발이 쉬지 않고 움직여준 덕분이라 생각하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싶었습니다.
하구를 벗어나자 하천 물이 깨끗했습니다. 이 하천 남/북 양쪽으로 낸 천변 산책로는 자전거도 다닐 수 있도록 포장이 되었고, 물을 건널 수 있도록 곳곳에다 징검다리를 놓았습니다. 철교를 밑으로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산책로는 천변을 벗어나 방축 위 데크 길로 이어졌습니다. 차로와 접해 놓은 데크길을 지나며 남쪽 건너편의 아파트가 물속에 드리운 모습을 사진 찍었습니다. 천변에 도열한 아파트들에서 기하학적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졌지만, 물속에 투영된 아파트에서는 차분하고 포근한 감이 들었습니다.
데크 길은 방송대학습관 가까이에서 공지교 아래로 내려가 천변과 나란한 방향으로 이어졌습니다. 공지천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꽤 여럿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는 아취형의 공지교가 가장 아름답고 모던해 보였습니다. 천변 산책로와 하천 사이에 심어놓은 갈대들이 산들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는 해를 아쉬워하는 몸짓이다 싶었던 것은 며칠 후면 70대에 접어드는 제 나이 때문일 것입니다. 효자교를 지나 만난 교량은 남춘천역에서 강원대로 걸어갈 때 건너는 남춘천교로,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밋밋한 다리입니다.
남춘천교에서 다리 하나를 지나 천변 남쪽의 상업용건물(?)들을 보면서 답답한 느낌이 들었던 것은 건물들을 천변에 너무 바짝 붙여지어서입니다. 앞서 지나온 데크 길 건너 아파트는 하천 폭이 넓고 수량도 많아 냇물에 아파트가 투영될 정도였지만 여기만 해도 상류여서 그런 정도로 많이 흐르지 않아 더욱 그러했습니다. 천변에 달랑 나무 한 그루 서 있는 모습도 자리를 잘 못 찾은 듯 낯설어 보였습니다. 학교 갈 때 다리 위에서 본 두루미들이 이 나무에 앉았더라면 썰렁한 기분이 덜 했을 텐데 하면서 계속 동쪽으로 진행했습니다.
이름이 독특한 석사교 다리를 지났습니다. 이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조금 가면 춘천교육대학교가 나옵니다. 이 학교와 한림대 의대는 처가집 조카들이 졸업했거나 다니고 있고, 강원대는 중학교 미술교사였던 집사람이 두달 가까이 연수를 받았으며, 저는 지난 봄 강원대 대학원에 입학해 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춘천의 대학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71년입니다. 그해 가을 제가 다닌 서울 쪽 대학생 100여명이 성심여대생들과 집단으로 미팅을 했는데 그 장소가 지금의 한림대 자리인 성심여대 캠퍼스였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자 위수령이 내려졌고 대학교에 휴교령이 떨어져 그해 가을이 유독 스산했었습니다. 석사교 다리 밑의 공연장이 아이디어 작품이다 싶은 것은 큰 돈 안들이고 자그마한 공연장을 만들어서인데, 다리보수공사로 얼마간 공연은 못할 것 같습니다.
16시48분 ‘공지천 따라 걷기’의 첫 구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석사교를 출발해 거두교를 지날 즈음 천변에 살짝 내려선 어둠이 감지되어 발걸음을 빨리 했습니다. 앞서가는 한 아저씨와 견공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져 부지런히 걸어도 따라잡지 못했습니다. 물속에서 놀던 물새들도 잠자리를 찾아 나설 듯 물가 모래밭에서 세 네 마리씩 옹기종기 모여 웅성거렸습니다. 춘천시가 조성한 공지천의 산책로는 태백교를 조금 지나 끝났고 물길은 세갈래로 갈라졌습니다. 지도에서 확인해본 즉, 한줄기는 신촌천이고 또 한줄기는 고은리로 이어졌는데 이 두줄기는 모두 대룡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하천입니다.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물줄기는 학곡리의 금병산 중턱까지 이어지는데 어느 것이 공지천의 본류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산책로 끝점의 표지석을 사진 찍은 후 징검다리를 건너 몇 곳에 다가가 다음에 진행할 천변 길을 탐색한 후 천변길로 되돌아가 남춘천역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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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남짓 공지천을 따라 걸으면서 그 위에 놓은 공지천교, 공지교, 효자교, 남춘천교, 석사교, 거두교, 태화교 등 여러 교량을 지났습니다. 공지천은 물을 바로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와 데크다리(?)도 많아 가히 '다리박물관(Bridge Museum)'이라 부를 만 합니다. 아쉬운 것은 그 많은 교량 중에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다리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시심(詩心)을 불러일으킬 만한 징검다리가 있어 참으로 다행이다 했습니다.
이제껏 제가 본 다리 중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세느강의 다리입니다. 13년 전 파리에서 유람선을 타고 세느강을 오르내리며 세느강은 세계 최고의 다리박물관이다 했습니다. 꽤 많은 세느강의 다리들 중에서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다리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리가 놓인 연대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제각기 다른 양식으로 축조되어 외관은 각기 달라도 아름답기 그지없었습니다. 강변의 건물도 한강처럼 기하학적인 아파트만 있는 것이 아니고 시대를 달리하는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이 세워져 세느강의 다리와도 잘 어울렸습니다. 프랑스의 시인 아폴리네르가 “미라보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 내린다”라고 노래할 수 있었던 것도 세느강 위 다리박물관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공지천 위 다리들을 다시 놓을 때는 세느강의 다리들을 참고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공지천의 발원지가 백과사전에는 학곡리로 나오는데 시민단체인 "춘천발전포럼"은 고은리의 수뢰관폭포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학곡리가 맞다면 발원지는 금병산이 되고, 고은리가 맞으면 대룡산이 발원지가 됩니다. 육안으로는 학곡리 쪽이 조금 더 길어보이는데 고은리 발원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혹시 한강처럼 지리적발원지와 역사적 발원지가 다르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태백산의 검룡소가 한강의 발원지로 밝혀지기 전에는 오대산의 우퉁수에서 한강이 발원했다고 배웠습니다. 저는 백과사전에 나오는 대로 공지천은 학곡리에서 발원해 학곡천, 후하천, 신촌천의 물을 받아 북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만 좀더 조사해 확인해볼 일입니다.
‘물줄기 따라 걷기’는 아직은 익숙지 않아 ‘산줄기 따라 걷기’보다 훨씬 더 종주기를 쓰는 일이 어렵습니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물이 산보다 이야기 거리가 많아 글쓰기도 용이해질 것입니다. 앞으로 자주 써보고 관련도서도 많이 읽어 참고할 뜻입니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다고 투정부리지 않는 것은 제 산행기 또한 그런 노력이 뒷받침되어 오늘에 이르렀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