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반월천 따라 걷기

반월천 따라 걷기1(수리사-덕고개갈림길-반월호수)

시인마뇽 2025. 6. 8. 00:26

탐방구간: 수리사-덕고개갈림길-반월호수

탐방일자: 2025. 6. 6()

탐방코스: 군포시중앙도서관-수리사-덕고개갈림길-반월호수-반월호수둘레길

                -죽암천-대야미역

탐방시간: 1520-1930(4시간10)

동행       : 나 홀로

 

 

  이번에 수리사에서 반월호수까지  따라 걸은 반월천(半月川)은 경기도 군포시 속달동 수리산에서 발원하여 화성시 매송면 원리에서 시화호로 유입하는 지방하천입니다. 반월천은 수도권의 주요 수계인 한강과 안성천 수계에 모두 벗어나 있는 고유의 서해 수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습니다. 서해로 바로 유입되는 반월천에는   죽암천, 건건천, 송라천 등의 제1지류가 합류됩니다.

 

  제가 따라 걷고자 하는 구간은 수리산의 수리사에서 시작해 시화방조제의 오이도항까지로 그 전장이 35Km 남짓합니다. 반월천의 길이를 13Km로 적고 있는  위키피디아에서는 반월천의 끝점을  화성시매송면원리의 반월3교 인근까지로 적고 있습니다만, 시화방조제의 축조로 반월천의 하천수와 서해의 바닷물을 만나는 합류점이 화성시매송면 원리에서 시화방조제로 밀려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발원지인 수리산에서 합류점인 시화방조제까지 걸어볼 뜻에서 이번에 수리사-덕고개갈림길-반월호수를 잇는 반월천의 첫 구간을  걸었습니다.

 

  반월천의 하구가 어떻게 변해왔는가는 위키피디아에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반월천의 하구는 경기도 화성시 매송면 야목4리와 안산시 상록구 본오1동이 만나는 부근으로, 이곳은 본래 바닷가였으나 지금은 지속적인 매립 공사가 진행되어 실질적인 바다는 시화호 바깥에 있다. 야목4(빈정마을)에는 조선 시대 이래로 빈정포(濱汀浦)라는 포구가 있었으며,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빈정포에는 인천을 거쳐 일본으로 유출할 목적으로 매송면 일대의 곡물이 모여들었다. -(중략)- ‘빈정(濱汀)’은 물가라는 뜻으로, 도로교인 반월3교 앞에 옛 협궤 수인선이 지나던 빈정천철교가 남아 있다. 수인선의 개통으로 빈정포에서 싣고 내리던 물자는 점점 철도를 통해 운송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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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 식사 후  집에서 쉬는 중에  불현듯 반월천이 생각나  오후 3시 조금 전에 산본 집을 나섰습니다. 시내버스로 군포시중앙도서관으로 이동해 반월천이 시작되는 수리사로 향했습니다. 

 

  1520분 군포시중앙도서관을 출발했습니다. 포장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진행해 서서히 고도를 높여갔습니다. 반 시간 가까이 걸어 도착한 임도5거리에서 오른 쪽 임도로 들어섰습니다. 아직은 낮 최고기온이 25도를 넘지 않은데다 간간히 바람이 불어 임도를 걷는 동안 생각보다 덥지 않았습니다. 왼쪽 아래로 수리산도립공원탐방안내소로 가는 길이 갈리는 수리사입구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서 새롭게 본 것은 데크길이었습니다. 포장도로 대신  계곡 바로 옆에 낸 데크 길을 걸은 것은 계곡을 흐르는 물줄기가 어디서 시작되는 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는데, 데크길이 끝나는 수리사 입구 바로 아래에서 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수리사는 그동안 여러 번 다녀간 절이어서 이번에는 대웅전만 둘러보았습니다.

 

  수리사(修理寺)는 신라 진흥왕(540-576) 때 창건된 천년 고찰로 왕손인 운산대사가 "몽불수기(夢佛受記)" 부처님을 친견하고 반드시 부처가 된다는 기별(記別)을 받아 견불산(見佛山) 수리사(修理寺)라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 절은 조선 시대 이전에는 대웅전등 36동의 전각(殿閣)12개의 부속 암자를 지닐 정도로 규모 있는 사찰이었으나 임진왜란 중에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장군이 이 절을 찾아와 재건하고 말년을 입산수도(入山修道)한 것으로 안내판은 적고 있습니다.

 

  이곳 수리산이  6 · 25전쟁 당시 수도 서울지역 탈환과 인천지역 및 김포반도 수복작전의 일환으로  1951130-24일까지 썬더볼트 작전이 전개된 한수 이남의  주요 지역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 국군은 미군, 터키 군과 연합해 여기 수리산에서 썬더볼트 작전을 펴 북한군 1군단 예하 부대와 치열하게 교전한 끝에 마침내 승리하여 1951210일 서울의 재탈환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습니다. 

 

  1643분 수리사를 출발해 반월천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데크 길을 따라 내려가 수리사입구사거리를 지나자 왼쪽으로 납덕골공원으로 들어서는 다리가 보였습니다. 수리사에서 흘러내려온 계곡물 반월천은 이 다리를 지나 납덕골공원에서 흘러내려오는 계곡물을 받아들인 후 오른쪽으로 휘어져 수리산도립공원탐방안내소를 끼고 흘렀습니다.

 

   제가 눈여겨 본 것은 공원 안의 반월천에 설치된 사방댐입니다. 사방댐은 경사가 심한 계곡에 설치하여 토사가 흘러 내려가는 것을 줄이고, 계곡의 경사를 낮추어 유속을 줄여 홍수피해를 줄이기 위해 설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사가 완만한 이곳에 설치된 사방댐은 탐방객들에게 사방댐의 효과를 알려주기 위해 설치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사방댐 옆에 세워진 안내판에 따르면 사방댐은 상류에서 유출되는 토사를 저지하는 효과가 있고, 토사가 가득 찬 후에도 게곡바닥의 침식을 방지하고, 산기슭을 고정시키며, 토사유출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다고 합니다.

 

  현충일 휴일을 맞아 수리산도립공원탐방안내소가 자리한 메쟁이골공원을 찾아온 젊은 가족들이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반월천을 왼쪽에 끼고 차도를 따라 내려가 카페 악토버나인과 음식점 수리산두꺼비를 차례로 지나 반월천을 따라 남진하다가 덕고개갈림길에서 지방하천 반월천 ’의  안내판을 보고 제가 따라 걷고 있는 하천이 경기도에서 관리하는 지방하천 반월천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1732분 왼쪽으로 덕고개 길이 갈리는 덕고개갈림길에 이르렀습니다. 이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6m가량 동진하면 군포8경의 한 곳인 덕고개당숲에 다다르게 되는데, 이미 여러 번 방문했던 터라 이번에는 들르지 않고 그대로 직진했습니다. 덕고개갈림길에서 남진해 반월천과 덕고개로 이어지는 임도 앞에 이르기까지 길이 좁아 오가는 차량에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그래도 길가 논배미에 정연하게 이식된 초록색의 벼들을 보자 답답한 가슴이 탁 트이는 듯했습니다. 왼쪽으로 덕고개에 이르는 임도입구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휘어 흐르는 반월천을 따라 걷지 않고 차도를 따라 걸은 것은 반바지를 입고 풀숲길을 걷다가 자칫 잘못해 뱀에 물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1815분 반월호수에 도착해 1구간 탐방을 마쳤습니다. 임도입구삼거리의 부처골정류장에서 잿개메골정류장에 이르는 차도는 잿개메골마을을 우회하는 도로로,  승합차가 지나도 잠시 멈춰 섰다가 다시 걷곤 했을 만큼 도로가 협소했습니다. 이 길도 그간 여러 번 걸었던 길이어서 개가 심하게 짖어대는 지점이 어디쯤인 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익숙한데, 이번에는 어인 일인지 개 짖는 소리를 듣지 못해 개가 그새 수명을 다해 이 세상을 뜬 것은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좁은 길을 따라 8m 가량 걸어 다다른 잿개메골정류장 앞에서 다리를 건넌 후 왼쪽으로 꺾어 반월천우안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하천이 갈대 등 수변식물로 덮여 반월천의 물 흐름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동고속도로를 밑으로 지나 다다른 둔대교에서 반월호수로 흘러드는 반월천을 지켜본 후 둔대교를 건너 시계반대방향으로 진행했습니다.  호수 건너 해발150m의 야트막한 퇴미산이 한 눈에 잡히는 지점에 세워진 반월호수 비석을 카메라에 옮겨 담는 것으로써 반월천 따라 걷기의 1구간 탐방을 마무리했습니다.

 

  1930분 대야미역에 도착했습니다. 반월호수에서 바로 시내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생각을 바꾼 것은 군포8경의 한 곳인 반월호수에서 맞는 저녁노을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어서였습니다. 반월호수를 시계반대방향으로 돌면서 느낀 것은 반월호수와 퇴미산이 서로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반월호수나 퇴미산  어느 하나도 너무 크지 않아 한 눈에 들어오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군포대야물말끔터를 지난 후 반월천으로 흘러드는 죽암천을 거슬러 올라가 대야미역에 도착해 전철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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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사는 군포시 산본에서 가장 가까운 하천은 안양천과 반월천입니다. 두 하천의 물이 서로 섞이지 않는 것은 수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의왕시의 지지대고개 아래에서 발원한 안양천은 서울의 양천구 목동에서 한강으로 흘러드는 한강계 하천이고, 군포시의 수리산에서 발원한 반월천은 바로 서해로 흘러드는 서해계에 속하는 하천입니다. 안양천과 반월천을 가르는 분수령은 의왕의 백운산과 군포의 수리산을 이어주는 한남정맥 산줄기입니다. 한남정맥 산줄기를 경계로 안양천은 북쪽으로 흘러 한강에 흘러들고, 반월천은 남쪽으로 흘러 서해에 합류됩니다.

 

  안양천은 2020년 가을에 두 구간으로 나누어 종주하고 여행기를 남긴 바 있습니다. 반월천은 몇 번 수리사에서 반월저수지까지 따라 걸은 적이 있지만 반월천 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걸은 것이 아니어서 여행기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몇 번 다녀온 수리사를 이번에 다시 찾아가 첫 구간을 시작한 것은 여행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였습니다.

 

  로마의 명장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기원전 47년 폰토스의 파르나케스2세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직후 로마 시민과 원로원에게 보낸 승전보에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라고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감히 여행을 다녀와서 갔노라. 보았노라. 썼노라.”라고 외치려면 반드시 여행기를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2000년 이후입니다. 그래서 제가 빼놓지 않고 여행기를 남기기 시작한 것은 20년이 좀 더됩니다.  산행기를 쓰기 위해 이미 오른 산을 다시 오른 적은 몇 번 있지만, 하천 탐방기를 쓰기 위해 이미 따라 걸은 하천을 다시 찾아 걸은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