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안성천 따라 걷기

안성천 따라 걷기5(최종회: 카페 아카이브-평택대교-아산만방조제)

시인마뇽 2025. 10. 25. 22:35

탐방구간: 카페 아카이브-평택대교-아산만방조제

탐방일자: 2025. 10. 23()

탐방코스: 카페아카이브-평택대교-국제대교-대안4리경로당-평택호과광단지-아산만방조제

탐방시간: 917167(6시간50)

동행       : 나 홀로

 

 

 

  지난 6월 안성시삼죽면내강리에서 시작한 안성천 따라 걷기는 이번에 아산만방조제에서 끝났습니다. 안성천이야말로 한남정맥 이남의 경기도 땅을 흐르는 가장 큰 하천으로, 안성과 평택의 드넓은 곡창지대에 물을 대주는 젖줄이라는 것을 다섯 번의 안성천 따라 걷기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이제껏 안성천은 이름 그대로 하천이어서 그 크기가 이름난 강에 비할 바가 못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 하천의 끝점인 아산만방조제에 도착해 드넓게 펼쳐진 평택호를 조망하고서, 안성천이 비록 하천의 길이는 짧지만 하구의 강폭은 제가 다녀온 섬진강, 영산강이나 금강에 못지않게 넓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하천의 크기를 가늠하는 유역은 하천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로 정해집니다. 안성천은 북쪽으로 한남정맥과 한남서봉지맥이, 그리고 남쪽으로는 금북정맥과 금북영인지맥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산줄기들이 둘러싼 안성천의 유역에는 경기도의 군포시, 수원시, 의왕시, 화성시, 용인시, 안성시, 오산시, 평택시 등 9개 시와 충청남도의 천안시, 아산시 등 2개시 등 총 11개 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유역 안에 안성천의 본류와 여러 지류들이 흐르고 있는데, 안성천으로 바로 흘러드는 제1지류만도 조령천, 금석천, 한천, 청룡천, 입장천, 도일천, 진위천, 교포천, 둔포천과 도대천 등 10개 천에 이릅니다. 안성천의 유역면적은 1,722Km2으로 영산강의 3,551Km2, 섬진강의 4,913Km2, 금강의 9,912Km2에 훨씬 못미치지만, 하구의 강폭은 오히려 더 넓어 보였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성경 구절에는 욥기 87절의 네 시작은 미약(微弱)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昌大)하리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비유적으로 많이 쓰이는 이 구절이 하나도 틀리지 않다 싶어 발원지에서 하구까지 안성천을 따라 걸으면서 몇 번이나 되뇌었습니다. 안성천의 끝이 창대할 수 있는 것은 중간에 지류의 물을 받아들여 세를 불려 가능했을 것입니다. 세상 사는 이치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초나라 출신의 책사 이사(李斯)가 진()나라 국왕 정()에게 올린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진()나라 국왕 정()이 타국 출신 식객들을 국외로 추방하려고 축객령(逐客令)을 내리자, ()나라 출신의 책사 이사(李斯)는 국왕께 태산은 흙덩이를 사양하지 않아 거대함을 이루었고 (泰山不辭土壤故能成其大), 하해는 가는 물줄기를 사양하지 않아 깊음을 이루었다 (河海不擇細流故能就其深).” 라는 내용의 간축객서(諫逐客書)를 올려 축객의 부당함을 간했습니다. 진왕 정은 이를 받아들여 중국을 통일한 후 황제로 즉위해 진시황제가 되었습니다.

 

  안성천은 그 시작이 미미하지만 가는 물줄기의 물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세를 불리기에 그 끝이 창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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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 준비가 철저하지 못해 충주시 양성면의 한강을 따라 걸으려는 계획을 변경해 안성천을 따라 걸었습니다. 원래 계획은 판교역에서 양성온천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한강을 따라 원주시부론면행복센터까지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집 근처 군포시청 앞에서 버스를 타고 판교역으로 가서 오전 8시22분에 출발하는 양성온천역행 열차를 타기로 한 계획이 뒤틀린 것은 이미 만원 상태인 버스가 군포시청 앞에서 정차를 하지 않고 그냥 내달렸기 때문입니다. 제가 버스를 기다린 아침 7시 시간대가 통근 시간임을 생각하지 못하고 집을 나서 버스를 두 대나 그냥 보내는 바람에 예정에 없던 안성천으로 행선지를 바꾸었습니다.

 

  917분 카페 아카이브를 출발했습니다. 평택역에서 택시를 타고 가 도착한 고풍스러운 카페 아카이브에서 안성천 우안의 자전거길로 들어섰습니다. 강 위에 정박해 있는 모형인 듯한 백색의 작은 요트 ‘Archive’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자전거길을 따라 걸어 안성문화공간 버들숲 카페를 지났습니다. 차도 바닥에 쓴 볼라드 주의문구가 계속 눈에 띄어 그 뜻을 확인해본 즉,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차량이 보행지역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교통시설물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 뜰은 그새 새싹들이 돋아나 봄을 다시 맞은 듯 새파랬습니다. 길음리 선착장을 지나 노랑등대휴게소에 다다랐는데, 문이 닫혀 있어 그냥 지나쳤습니다. “금계국이 아름다운 평택강”‘의 표지판을 지나 평택대교에 이르기까지 강변의 자전거길은 대부분이 직선으로 이어져 단조로웠습니다.

 

  이 길을 걸으며 강 건너 평택기지 위를 비행하는 헬리콥터를 보았습니다. 평택기지 앞을 흐르는 안성천은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백제의 싸움, 임진왜란, 청일전쟁 등 큰 전쟁을 치른 전적지입니다. “이곳이 전적지가 된 것은 대로(大路)가 지나는 육로 교통의 길목이었고, 바다가 가깝다는 지리적 조건 때문이었다.”라고 김해규님은 저서 평택의 역사인물 문화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어서 삼국시대에는 5세기 고구려에게 패하여 한강유역을 빼앗긴 백제가 안성천을 경계로 국경을 이뤘고, 임진왜란 때는 평양성 전투에서 승리한 명나라 군대가 철갑기병 4천으로 대승을 거두었던 현장이었다. 또 근대에는 동학농민전쟁 진압을 명분 삼아 출병한 청 · 일 양군이 청일전쟁을 전개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했다.”라고 추기했습니다. 또 하나 덧붙일 것은 미군의 최대해외기지가 바로 안성천의 좌안에 들어선 평택미군기지라는 것입니다

 

  1125분 평택대교를 지났습니다. 사장교인 평택대교를 지나 얼마 후 건넌 하천은 무명천으로, 하천 폭이 꽤 넓어 다리의 길이가 300m에 달했습니다. 이 인도교를 건너 작은 공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쉰 후 국제대교로 이어지는 직선 길의 자전거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오른쪽으로 심복사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 국제대교에 이르자 수달이 서식하는 평택강입니다라는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국제대교에 이르러 잠시 걸음을 멈춘 것은 안성천 우안의 강변길을 계속 걸을지 말지를 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카카오맵에는 국제대교에서 2Km 가량 더 가면 길이 끊기는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길이 끊긴 곳에서 오른쪽으로 마안산을 끼고 도는 우회 길이 나 있다면 그 길을 따라 걸으면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국제대교로 되돌아가야 해 잠시 망서렸습니다. 때마침 길이 끊긴 곳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한 분을 만나  마안산을 우회하는 길이 나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분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진행하기를 참 잘했다 싶은 것은 길이 끊긴 곳까지 가는 강변길의 주변 풍광이 수려했고, 길이 끊긴 곳에서 마안산을 우회하는 길이 나 있어서였습니다.

 

  국제대교를 출발해 서해랑길로 명명된 강변의 자전거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얼마 후 오른쪽으로 평택호관광단지 6.8Km’표지판이 걸려 있는 삼거리에 이르자 이 길을 따라 평택호관광단지로 갈 까 생각하다 내친김에 길이 끊긴 곳까지 가보기로 마음먹고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등대 미니아춰(?)가 서 있는 신왕포구나루터를 지나 전방 공사 중이라며 줄을 쳐 놓아 길을 막은 곳에 도착한 시각은 1159분입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가다 느티나무 앞에서 좌회전해 조금 걸어가자 평택호관광단지 6.1Km표지판이 보였습니다. 여기서부터 강변에 자리한 한국소리터까지는 이 표지판과 카카오맵을 보고 길을 찾아갔는데, 마안산을 우회하는 시골 길을 잘못 들을 까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카페 벌과 꿀을 들러 와플로 점심을 때운 후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걸어 대안2리다목적회관을 1317분에 지났습니다.

 

  1337분 대안4리경로당을 지났습니다. 대안2리 다목적회관을 지나 꽤 큰 느티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대안4리 경로당에 이르자 커다란 연자방아와 디딜방아가 보였습니다. 이제껏 보아온 어느 것보다 커 보이는 이 연자방아는 1700년경에 설치된 것으로 정미소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이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해 곡식을 빻아온 공동의 재산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연자방아는 당연히 소가 돌렸으리라 생각했는데, 안내문에는 이 돌을 끌어 돌리는데 말도 쓰였다고 합니다.

 

  대안4리경로당에서 우회전해 농로를 따라 걸은 것은 안전한 다리로 도대천을 건너기 위해서였습니다. 막상 가보니 공사가 진행 중으로 다리가 없어져 건너지를 못하고,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둑방 길을 따라 도대천을 거슬러 올라가 기산1교 다리를 건넜습니다. 대로로 가는 길에 시멘트길의 농로 바닥에 깔개를 깔고 들깨를 터는 아낙네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이런 풍경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주 본 것이어서 반가웠습니다. 그때 멍석이나 가마때기를 깔고 들깨나 참께 등을 터는 일은 어머니, 누님이나 형수님이 맡아 했습니다. 이분들은 모두 돌아가시어 이제는 밭으로 따라가 잔일을 도왔던 저만 홀로 남아 있습니다.

 

  155분 평택호관광단지 앞 한국소리터에 이르렀습니다. 안중역을 지나는 철로를 지나자 도대천 주변의 넓은 벌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반듯하게 구획진 논배미들은 3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이미 벼를 베고 가을걷이를 끝내고 얼마간 지나 다시 새싹이 파릇파릇 돋아난 논, 아직 벼가 그대로 남아 있어 황금색을 띠고 있는 논, 수확은 끝났지만 아직 새싹이 돋아나지 않아 회갈색(?)을 띠고 있는 논들이 병존해 색 대비가 더욱 뚜렷했습니다.

 

  기산3리 마을회관을 지나 뾰족한 삼각뿔 지붕이 보였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이 건물은 평택호예술관이었습니다. 평택호관광단지 옆 지붕이 둥근 돔형의 농악 마을 야외공연장을 지나 한국소리터로 내려서 반듯한 좌상(坐像)의 지영희(池瑛熙, 1909~1979) 선생을 만나 뵈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이제껏 해금과 피리 명인으로 널리 알려진 지영희 선생의 존함을 처음 들었습니다. 이 지역 평택에서 태어난 선생은 1937년 조선음악연구소에 입소하여 악사가 되었고, 1938년에는 한성준무용단(韓成俊舞踊團)의 반주악사로 활약했습니다. 해방 후 1946년에는 서울중앙방송국 전속국악사가 되었고, 1960년에는 국악예술학교 교사로서 유망한 신인들을 많이 길러낸 선생은 해금산조와 피리 시나위를 통한 피리산조의 길을 열게 한 뛰어난 민속음악인 중의 한 분이라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적고 있습니다.

 

  167분 아산만방조제에 도착해 안성천 따라 걷기를 전부 마쳤습니다. 한국소리터 앞 평택호길을 건너 평택호 우안길을 따라 걷다 평택호관광안내소를 들러 2층의 지질시대 전시물을 둘러보았습니다. 아래의 해설 글을 읽고 나자, 그동안 어렴풋이 알았던 지질시대의 의미가 보다 명료하게 이해되었습니다.

 

  지질시대란 지구가 생성된 이후부터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1만 년 전까지의 기간을 이릅니다. 이 지질시대는 화석이 매우 드물게 발견되는 은생누대(隱生累代)’ 외 다양한 화석이 발견되는 현생누대(顯生累代)’로 나눌 수 있다. 이중 현생누대는 생물의 출현, 멸종과 같은 생물계의 커다란 변천사를 바탕으로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나뉜다. 특히 고생대는 현대생물문의 절반 이상이 등장한 시기이다. 고생대 초기 캄브리아기에는 대부분의 무척추바다동물이 등장했는데 이를 캄브리아기 생물 대폭발이라고 한다.” 라고 전시물에 적혀 있습니다.

 

  관람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해설을 맡으신 분께 버스 시간을 물었더니, 이분께서 조금 있다가 퇴근길에 자기 차로 평택 시내까지 태워 줄 테니 안심하고 방조제를 다녀오라고 말씀을 해주어 고마웠습니다.

 

  평택호길에서 왼쪽으로 갈리는 좁은 길을 따라 걸어 한국농어촌공사평택지소호관리소앞에 도착해 안성천 따라 걷기를 끝마쳤습니다. 아산만방조제와 평택호를 사진 찍은 후 15년 전 한남서봉지맥 종주를 마치고 내려선 현충탑을 찾아가 순국선열들을 뵈었습니다.  묵념을 올린 후 평택호관광안내소로 돌아가 해설사분의 차를 타고 평택시내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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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언급한 도서 평택의 역사인물 문화에 실린 평택의 역사적 인물로 정도전, 원균, 조광조, 오달제, 최수성, 이서, 이괄, 홍익한, 심순택, 안재호 등이 있습니다. 이분들이 모두 평택에서 출생한 것은 아닐 테지만  이런저런 인연이 있어 평택의 인물로 소개됐을 것입니다.

 

  제가 이제껏 천착해온 평택의 인물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가수 정태춘(鄭泰春)입니다. 1964년에 이곳 평택에서 태어난 정태춘은 1978년 자작곡 앨범 시인의 마을로 가요계에 데뷔합니다. 그 후 떠나가는 배, 북한강에서, 촛불등 시대와 사람들을 같이 노래합니다. 제가 정태춘의 노래를 좋아하는 것은 그의 노래가 사회성과 서정성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저도 모르게 정태춘의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국악적인 음률이 더해져서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정태춘의 저항 가요가 마냥 생경하지만 않은 것은 그의 처 박은옥이 감미로운 목소리를 더해 주어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작년에 김민기 가수가 타계함에 따라 텅 빈 가슴을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를 부르며 달랠 수 있어  다행이다 싶습니다.

 

<떠나가는 배>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곳이 어드메뇨

강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너를 두고 간다는 /아픈 다짐도 없이

남기고 가져갈 것 없는 /저 무욕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언제 우리 다시 만날까

꾸밈없이 꾸밈없이 홀로 떠나가는 배

바람 소리 파도 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

바람 소리 파도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

바람 소리 파도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