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신풍저수지-애향동산-홍성역
탐방일자: 2026. 4. 20일(월)
탐방코스: 신풍저수지-홍동저수지-운월2교-애향동산--29번도로굴다리-홍성역
탐방시간: 9시9분-14시59분(5시간50분)
동행 : 나 홀로

지난 4월2일 한강의 마지막 구간 탐방을 끝으로 유역면적 기준 5대 강에 속하는 한강, 낙동강, 금강, 섬진강과 영산강의 탐방을 모두 마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역면적이 여섯번째로 넓은 안성천은 작년 여름에 전 구간을 따라 걸었습니다. 10대 하천 중 아직 걷지 못한 하천은 충청남도의 삽교천, 전라북도의 동진강과 만경강, 그리고 경상북도의 형산강 등 4개 하천뿐입니다.
이번에 첫발을 들인 삽교천(揷橋川)은 충청남도의 오서산에서 발원해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하천입니다. 이 하천은 유로길이가 61Km로 10위권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유역면적은 1,649Km2로 7위를 점하고 있습니다. 삽교천으로 흘러드는 주요 지류로는 청양군 화성면에서 발원하는 무한천(無限川), 천안시 광덕면에서 발원하는 곡교천(曲橋川), 당진시 면천면에서 발원하는 남원천(南院川) 등이 있습니다. 남한에서 가장 큰 저수지인 예당저수지의 물도 무한천을 따라 삽교천으로 흘러듭니다.
삽교천의 유역을 가르는 분수계는 삽교천의 본류와 지류들에 물을 대는 둘레산줄기입니다. 삽교천의 둘레산줄기는 소략하면 아산만 동안의 석화산에서 금북정맥의 석문봉에 이르는 석문지맥, 석문봉에서 성거산에 이르는 금북정맥, 성거산에서 아산만 동안의 영인산에 이르는 영인지맥 등입니다. 이 둘레산줄기의 길이는 제가 조사한 바로는 석문지맥 52Km, 금북정맥 166Km, 영인지맥 59Km 등 총 약 255Km에 달합니다.
삽교천의 분수계를 이루는 산 중에서 가장 높은 산은 충남홍성군장곡면의 오서산(烏棲山)으로 해발고도는 791m에 달합니다. 다음으로 높은 산으로는 해발 676m의 가야산, 해발 653m의 석문봉, 해발605m의 원효봉, 해발 573m의 성거산, 해발 570m의 백월산, 해발 504m의 흑성산 등이 있습니다. 저는 2006년 금북정맥 종주 때 이 봉우리들을 모두 밟아 삽교천과의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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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을 오전 6시55분에 출발하는 익산행 장항선을 타고 달려가 광천역에는 8시49분에 도착했습니다. 광천역은 충청남도에서 서대산 다음으로 높은 산인 오서산을 등산할 때 몇 번 들른바 있습니다. 광천역에서 택시를 타고 십수분 달려 삽교천 따라 걷기의 출발점인 홍성군장곡면장곡리의 신풍저수지에 도착했습니다. 이 저수지는 규모가 작고 수심이 얕아 저수지로서 기능은 이미 상실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카오맵에는 여기 신풍저수지가 삽교천의 최상류로 그려져 있어 이 저수지에서 시작했는데, 이곳이 우리나라 8대 하천인 삽교천의 발원지라 할 만한 표지물은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아침9시9분 신풍저수지를 출발했습니다. 지척의 오서산은 안개에 가려 정상은 고사하고 능선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풍저수지에서 북쪽을 향해 흐르는 도랑 수준의 삽교천을 따라 걸으며 알게 된 것은 삽교천처럼 평야를 흐르는 하천은 구불구불 흐르는 곡류가 아니고 거의 직선으로 흐르는 직류라는 것입니다. 신풍저수지에서 40여 분을 걸어 장곡보건지소에 다다르기까지 샛노랗게 활짝 핀 애기똥풀과 쓰레질을 해 놓아 모를 이식할 준비를 끝낸 논 배미를 보고 나자 온 산하가 봄을 맞을 채비를 이미 끝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장곡보건지소 앞에서 96번 도로를 건너 장곡초등학교를 지나자 이내 삼거리가 나타나 오른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차도를 따라 걷느라 잠시 벗어났던 삽교천으로 다시 다가가 얼마간 걸어가자 저만치 떨어진 홍동저수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홍동저수지는 홍성군의 장곡면과 홍동면에 걸쳐 있는 저수지로 홍성군에서는 홍양저수지 다음으로 큰 저수지입니다. 홍동면의 친환경농업단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이 저수지가 한눈에 보아도 절경이다 싶은 것은 호안(湖岸)의 대부분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되어 있어 자연미가 그대로 살아 있어 그러할 것입니다.
홍동저수지 우안 길을 걸으며 눈여겨 본 것은 찌그러진 ‘홍동저수지 수질관리 실명제’ 안내판입니다. 이 제도는 한국농어촌공사가 2011년부터 저수량이 50만톤 이상이거나 낚시터 등으로 이용되는 주요 저수지에 도입한 제도라고 하는데, 안내판이 훼손되어 고지 사항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습니다. 안내판을 보고 확인한 정보로는 이 저수지의 총저수용량이 1,049m3이며, 만수면적은 40.7ha이고, 1955년에 설치되었다는 것, 그리고 수질검사항목은 총유기탄소(TOC), 총 질소(T-N), 총 인(T-P), 부유물질(SS)이라는 것 등입니다. 안내판이 서 있는 홍동저수지 우안의 길 건너 늪에 갈대(?) 밭이 조성된 것은 저수지로 유입되는 오염원을 정화하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여유롭게 고기를 낚는 강태공 한 분과 인사를 나눈 후 홍동저수지로 흘러드는 작은 지류를 거슬러 올라가 609번 도로변의 도산2리버스정류장에 다다랐습니다.
10시57분 삽교천 위 다리인 첫 번째 화신교(花新橋)에 도착했습니다. 도산2리버스정류장에서 왼쪽으로 609번 도로가 이어졌습니다. 이 도로를 따라 홍성실로암교회를 지나서 나지막한 고개를 넘었습니다. 장곡면지정1리 표지석 앞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가 다시 만난 삽교천의 다리는 화신교로 한자인 ‘花新橋’가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다리 위쪽 도로변에 세워진 안내판은 삽교천의 첫 번째 표지판으로, 카카오맵에는 여기서부터 삽교천으로 표기되어 있고, 이제껏 걸어온 신풍저수지 – 홍동저수지 구간의 하천은 상송천으로 적혀 있습니다. 화신교에서 다시 만난 삽교천은 그새 수량(水量)도 늘고 폭도 넓어져 하천다운 면모를 갖춰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 지역 주민들이 여기 삽교천을 홍동천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홍동천 벚꽃나무’를 훼손하지 말라는 안내판을 보고 알았는데, 여기 홍동천의 벚꽃은 이미 지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간간이 이 다리 저 다리를 건너다니면서 이쪽저쪽의 들판에 내려앉은 봄을 카메라에 정성스레 담아왔습니다.
12시20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운월2교를 출발해 삽교천 따라 걷기를 이어갔습니다. 첫 번 째 화신교를 출발해 운월2교에 이르기까지 만난 삽교천의 다리는 두 번째 화신교, 화문교, 문당교와 흥원교 외에도 몇 개 더 있습니다. 여러 다리를 건너다 삽교천의 좌안과 우안을 오가면서 1시간 가까이 걸었는데 쉬어갈 만한 벤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홍동면 면소재지 인근에 자리한 애향공원(愛鄕公園)에는 의자나 벤치가 있을 것 같아 발걸음을 서두르다가 운월2교에 조금 못 미쳐 벤치가 있어, 이 벤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로 점심을 들었습니다. 구름이 잔뜩 낀 데다 바람이 세게 불어 기온이 떨어져서인지 요기를 했는데도 한기가 느껴져 따끈한 커피가 간절하게 생각났습니다.
상반월입구정류장과 운월리창정마을입구정류장을 차례로 지나 애향공원에 다다른 시각은 12시48분입니다. 하류 쪽으로 내려갈수록 수량(水量)이 늘어나는 것은 애향공원 옆 삽교천에 작은 보가 설치되어 있어서입니다, 보에 잠긴 물이 상당 부분 떨어진 벚꽃들로 덮여 수면이 하얗게 보였습니다. 물 위에 떨어진 벚꽃잎에 가려 햇볕이 수면 아래에 미치지 못하고 보에 걸린 꽃잎들이 흘러 내려가지 못해 썩는다면 봇물이 오염될 수 있다 싶어 조금은 걱정되었습니다. 자그마한 ‘애향공원(愛鄕公園)’ 안에 야외공연장이 설치된 것도 의외이다 싶었습니다. 이 공연장에서 닷새 후인 4월25일 10시부터 15시까지 ‘봄맞이 큰 장’이 선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노래 공연도 같이 열릴 것 같습니다.
13시18분 운월교를 건너 삽교천 좌안길로 들어섰습니다. 애향공원을 둘러본 후 운월교를 건너 삽교천의 좌안길로 들어서자 하천 건너 높이 솟은 홍동감리교회의 십자가가 눈을 끌었습니다. 종현천이 삽교천으로 흘러드는 합류점 앞의 송월교를 건너 북쪽으로 이어지는 우안길로 들어서자 오른쪽에 넓게 자리한 팔괘리(?) 들판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들판에서 논갈이를 마치고 다른 논으로 이동하는 트랙터를 뒤따라가면서 우리나라 농촌의 근대화를 이룩해 놓은 박정희대통령을 생각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선도로 우리나라가 근대화하면서 농촌의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 농촌의 인력난이 심각해졌습니다. 박대통령은 이 문제를 영농의 기계화로 극복하고자 했는데, 이 과정에서 효자 노릇을 단단히 한 농기계가 바로 트랙터였습니다. 아직도 농촌의 인력난은 해결된 것이 아니기에 동남아의 여러 나라에서 인력을 수급받아 농사를 짓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농회사의 확대도 인력난을 해결하는 데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방 길을 걸으면서 모처럼 봄기운이 약동하는 들판을 바라보노라니 새삼 생각난 시는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였습니다. 이 묵직한 화두를 다시 떠올리는 것은 한반도의 반이 넘는 북반구에는 아직도 봄이 오지 않아 북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어서입니다.
14시15분 29번도로 아래의 굴다리를 지났습니다. 삽교천을 따라 북진하다가 29번도로를 얼마 앞두고 오른쪽으로 꺾어 농로로 접어든 것은 삽교천 우안의 제방길이 29번도로에 막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아서였습니다. 오른쪽 농로를 따라 걷다가 이내 왼쪽으로 꺾어 29번도로 아래 굴다리를 지났습니다. 3단 접이 우산으로는 가리기가 힘들 정도로 비가 제법 많이 내려 사진을 찍기가 매우 불편했는데 오래지 않아 비가 그쳐 다행이다 했습니다. 구룡정미소와 구룡교차로 앞을 차례로 지나 비를 가릴만한 CJ대한통운택배물류센터 앞에서 잠시 멈춰 카카오맵을 보고 홍성역으로 가는 길을 확인했습니다. 다시 삽교천 우안길로 올라가 건너편에 가지런한 하상부지가 조성될 정도로 넓어진 이 하천을 바라보자, 하천도 하구 쪽으로 내려가면서 점점 자란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다시 들어선 삽교천 우안길은 21번남부순환로의 삽교천을 지나 충절로818번길 다리 앞에서 끝났습니다.
14시59분 홍성역에 도착해 첫 구간의 삽교천 따라 걷기를 마무리했습니다. 삽교천의 우안길이 충절로818번길 다리 앞에서 끝난 것은 이 다리 앞에서 홍성군 제1의 홍양저수지에서 흘러내려오는 정성천이 삽교천에서 합류하는데 장성천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건설되지 않아서였습니다. 충절로818번길의 무명교(?)로 삽교천을 건너 굴다리를 지나서부터 홍성역에 이르기까지는 카카오맵이 가리키는 대로 찾아갔습니다. 기와지붕의 한옥 역사가 눈에 띄는 홍성역에서 얼마간 대기했다가 6분가량 연착한 15시49분발 용산행 기차를 타고 귀가 길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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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따라 걸은 삽교천의 ‘삽교(揷橋)’는 충남예산군에 위치한 삽교읍의 지명입니다. 전남함평의 ‘학교(鶴橋)’가 학다리로 불리듯이 ‘삽교’ 또한 ‘삽다리’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학교’보다 ‘학다리’가 정겹고 ‘삽교’보다 ‘삽다리’가 살갑게 느껴지는 것은 ‘학다리’나 ‘삽다리’ 모두 정감 있는 옛 이름이어서 그러할 것입니다.
삽교의 삽다리는 섶다리가 변하여 불리는 것이라 합니다. 섶다리는 나뭇가지와 흙을 엮어 만든 전통적인 다리입니다. 이 다리는 추수가 끝나는 10월 말경에 설치하여 장마가 시작되기 전인 5월 중순경에 철거하거나 그냥 떠내려 보낸다고 합니다.
삽다리가 섶다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은 1860년대 무렵 흥선대원군이 부친인 남연군 묘를 조성할 때 행차하기에 다리가 좁아 섶으로 다리를 더 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그럴듯하게 들립니다. 삽다리가 섶다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을 지지하는 전설도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옛날에 지금의 삽교 옆에 새아씨가 살았습니다. 이 새아씨는 친정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친정으로 가고자 했으나 다리를 건너지 못해 애를 태웁니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이 섶으로 다리를 놓습니다. 새아씨는 이 섶다리를 건너 친정을 다녀옵니다.”
섶다리는 제가 어렸을 때인 1960대에는 제 고향인 경기도 파주에서 본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섶다리 중 대표적인 것은 ‘영월 판운리 섶다리’ 아닌가 합니다. 평창강을 사이에 두고 밤뒤마을과 미다리마을을 연결해온 영월 판운리 섶다리는 2025년 평창강을 따라 걸을 때 들른 적이 있습니다만, 장마철을 앞두고 철거해 섶다리는 보지 못했습니다. 엣날에 섶다리는 도처에 놓았던 전통적인 다리로 삽교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삽다리가 섶다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믿을 만한 것은 못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삽다리가 ‘샅다리’에서 유래했다는 '샅다리' 설이 ‘섶다리’ 설보다 더욱 믿을 만한 것은 다음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샅다리’설의 요체는 사이를 뜻하는 ‘샅’과 들을 뜻하는 ‘다리’가 합쳐져 ‘샅다리’로 불리다가 세월과 함께 변화해 ‘삽다리’로 불렸다는 것입니다. 삽교읍 일대에 펼쳐진 넓은 평야지대가 삽교벌이라 불리는 것을 보아 삽다리가 샅다리에서 유래했다는 설은 그다지 무리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삽교벌이 얼마나 넓은지는 삽교천의 다음 구간을 걸을 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뜻입니다.
<탐방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