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동진강 따라 걷기

동진강 따라 걷기1(여우치발원지 빈시암-김명관 고택-칠보버스터미널)

시인마뇽 2026. 5. 18. 13:11

탐방구간: 여우치발원지 빈시암-김명관 고택-칠보버스터미널

탐방일자: 2026. 5. 15()

탐방코스: 종산리여우치정류장-여우치발원지 빈시샘-종산리여우치정류장-운주사-외능교

                -평사리천/동진강합류점- 김명관고택-칠보면 사무소-무성서원-칠보버스터미널

탐방시간: 105-1730(7시간25)

동행       : 나 홀로

 

 

 

   동진강이란 전북 정읍시 산외면 종산리 묵방산 여우치 마을의 빈시암에서 발원하여 전북지역 남부를 북서쪽으로 흘러 서해로 유입되는 강을 이릅니다. 이 강의 유로연장은 51.03Km이고 유역면적은 1,136Km2, 유역면적 기준으로  바다로 바로 흘러 들어가는 하천 중에서 국내 10위를 점하고 있다고 나무위키백과는 적고 있습니다.

 

  동진강처럼 발원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은 하천도 드문 것 같습니다. 이는 각 기관과 문헌마다 기록이 일치하지 않아서라는데, 일제강점기 때 대규모 치수사업으로 물길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나무위키백과에 따르면 기록상 동진강의 발원지 후보로는 전북 정읍시의 산외면 종산리 묵방산 남쪽 계곡 여우치 마을의 빈시암, 내장산 까치봉 북동쪽 계곡의 까치샘, 산외면 상두리 국사봉 남쪽계곡과 산외면 목욕리 촛대봉 남동쪽 계곡 등 모두 4곳이 있습니다. 그동안 가장 유력한 발원지로 꼽혔던 내장산 까치샘 대신 묵방산 여우치마을의 빈시암으로 확정된 듯 하다고 나무위키백과가 적고 있는 것은 4곳의 발원지 중 빈시암이 하구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동진강 따라 걷기를 시작한 곳은 묵방산 여우치마을의 빈시암입니다. 카카오맵에는 동진강이 내장산 북동쪽의 까치샘(?)에서 발원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도 굳이 빈시암에서 시작한 것은 유로길이가 빈시암 쪽이 까치샘 쪽보다 2Km 가량 길고, AI도 동진강의 발원지가 여우치마을의 빈시암이라고 답해주어서였습니다.

 

  여우치마을에서 동진강발원지인 빈시암 옆에 세운 안내판에 몇 가지 중요한 정보가 적혀 있어 여기에 옮겨 실습니다.

 

  “동강 발원지 빈시암 頻川 BINSIAM /이곳은 동진강이 시작되는 곳으로 백두대간 호남정맥 5구간 중 묵방산 7부능선에 자리한 정읍시 산외면 여우치마을이다. 빈시암은 300여년 동안 용수(농업용, 가정용)로 사용하였다. 그동안 동진강 발원지를 정하지 못하였으나 항상 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이곳이 발원지로 밝혀졌다. 여우치마을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빈시암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복원하였다. / 여우치(如牛峙): 소와 같은 고개/ 빈시암(頻泉 ): 샘이 마르지 않고 나온다/ 201379/ 여우치 마을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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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같이 서둘러 오전 530분에 산본 집을 나섰습니다. 전철로 평택지제역으로 이동해 76분에 출발하는 정읍행 SRT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818분에 정읍역에서 하차해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십 수분 기다렸다가 850분경에 승차한 151-5번 버스는 목욕리를 경유해 10시경에 이 버스의 종점인 종산리여우치마을 정류장에 도착했습니다.

 

  105분 종산리여우치마을 버스종점을 출발해  왼쪽 시멘트도로로 들어섰습니다. 북쪽으로 약1Km  가량 걸어 여우치마을에 도착해 마을회관 인근의 빈시암 샘터를 찾아갔습니다. 밭에서 일하시는 주민께 빈시암발원지를 물었는데, 귀찮아하는 기색이 전혀 없이 친절하게 답해주었습니다. 지난주에 다녀온 형산강의 발원지와 달리 표지석은 세워지지 않았지만 물이 반쯤 찬 빈시암 샘터 옆에 안내판을 세우고 주변에 붉은 색의 개양귀비(?) 꽃밭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몇 집 안 되는 작은 여우치마을의 주민들이 정성 들여 동진강의 발원지를 관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32분 여우치발원지인 빈시암을 출발했습니다. 졸졸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올라온 길로 되내려가는 길에 축사에서 쉬고 있는 한우 및 흑염소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20분을 채 못걸어 되돌아간 버스종점을 막 지나 팽나무교에 다다르자 엄청 많은 냇물이 굉음을 내며 빠르게 흘러 내려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지도를 보니 이 하천은 조금 위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평사리천이 틀림없는 , 어떻게 해서 저리도 많은 물이 흐를 수 있나 자못 궁금했는데, AI에게 물어 섬진강댐의 물을 유역변경으로 동진강의 평사리천으로 끌어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여우치발원지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은 소수력발전소 앞 팽나무교 아래에서 평사리천과 합쳐져  서쪽으로 흘러내려갔습니다.

 

  팽나무정을 거쳐 길옆의 운주사를 지나면서 대웅전을 둘러보고자 했으나 입구에서 견공들이 짖어대어 그만두었습니다. 그 대신 건너편의 칠보성당종산리공소를 둘러본 후 4백 년 된 느티나무 아래 정자에서 햄버그를 꺼내 들어 점심식사를 대신했습니다. 평사리천을 따라 낸 749번 종운로를 따라 내리쬐는 햇볕을 그대로 받고 걸어서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121분 왼쪽으로 산내면사무소로 가는 길이 갈리는 종운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옆 평사리천 가에 자리 잡은 종산보건진료소를 들렀는데 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이런 벽촌의 주민들도 보건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전 세계에서 부러워하는 빼어난 의료보험제도와 전국 곳곳에 자리한 보건소에서 근무하는 공중의들의 수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토록 우리나라 보건의료 시스템이 잘 작동되고 있는데 무리하게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천명 늘리려다가 실패하고 끝내는 정권을 잃은 것을 보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싶었습니다.

 

  도도히 흐르는 평사리천을 따라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종운로는 양옆으로 가로수 이팝나무들이 흰 쌀밥을 닮은 하얀 꽃을 활짝 피워 볼만 했습니다. 외관이 날렵해 보이는 창 힐링센터를 거쳐 민하2교와 1교를 차례로 건넌 후 귀촌학교 민들레홀씨를 지났습니다.

 

  133분 외능교를 건너 평사리천 좌안의 제방길로 들어섰습니다. 다리 건너 노거수 느티나무 아래 벤치가 없어 쉬어 가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쳤습니다. 땡볕의 제방길을 따라 시계반대방향으로 진행하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은 것은 운암댐의 섬진강 물을 도수관으로 받아 빠른 속도로 흘러내려가는 평사리천이 바로 옆에서 시원하게 흘러서였습니다.

 

  산외중앙교회를 지나 산외면의 한우거리로 들어섰습니다. 한때는 외지의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성시를 이뤘다는 한우거리가 간판도 퇴색하고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아 썰렁했습니다. 산외면사무소 앞의 홍보판에 실린 인물들을 보고 동학의 지도자 김개남이 이곳 산외면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김개남(金開南, 1853~1894)“21세에 동학에 입교하여 접주로 활동하다가 나라가 무너지고 외세에 침탈을 당하는 시대에 백성을 구하고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큰 뜻을 품고 1894년 전봉준과 함께 봉기하여 동학농민혁명의 선봉장으로 활약한인물로 산외면 동곡리 지금마을에 묘가 있다고 합니다.

 

  한우거리를 지나 용두교에 이르러서야 평사리천과 동진강의 합류점을 그냥 지나친 것을 알았습니다. 제 두 눈으로 두 하천의 합류점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동진강 좌안의 제방길로 들어섰습니다. 용두교에서 약 1Km 거리의 평사리천/동진강의 합류점에 다다르기까지 강변에 자리한 산외교회와 섬진강캠핑장을 차례로 지나면서 강변 풍경을 완상했습니다.

 

  1414분 산외1교 부근의 평사리천/동진강의 합류점에 이르자 평사리천의 도도한 물 흐름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카카오맵에는 동진강은 산외면의 상두리에서 발원해 흐르는 강물로 만병저수지를 거쳐 여기 합류점에 이르기까지 유로연장은 약 7Km인데 비해, 여우치발원지에서 여기 합류점까지 유로연장은 약9Km, 이번에 제가 따라 걸은 여우치 빈시암-팽나무교-평사리천/동진강 구간의 유로길이가 2Km 가량 더 긴 것으로 나옵니다. 두 하천의 합류로 세를 불린 동진강은 강폭이 넓어져 이제껏 보아온 평사리천보다 조금 더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동진강 강변에 설치된 용취입보와 동곡취입보를 차례로 지나 다시 용두교에 이르렀습니다. 취입보(吹入洑, Diversion Weir))란 하천의 물을 농경지나 관개지역으로 원활하게 끌어들이기 위해 하천을 가로막아 수위를 높이는 농업용수자원 공급시설인데, 이런 취입보가 1Km 거리에 두 곳이나 설치된 것으로 보아 하류 쪽으로 동진강의 물을 대야 할 농경지가 꽤 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두교를 건너 동잔강 우안의 비포장 제방길로 들어서자 풀들이 길을 덮어 어린 시절 고향길을 걷는 것 같았습니다. 동진강 양안으로 넓은 들판이 펼쳐져 야산으로 둘러싸인 평사리천을 걸을 때와 달리 공간감이 느껴졌습니다. 2Km 가량 되는 제방을 따라 걸으며 신촌교와 무명교를 차례로 지나 공동교 다리 앞에 다다른 시각은 1446분이었습니다.

 

  이번에 동진강을 따라 걸으며 처음으로 둘러본 정읍의 명소는 동진강 우안에 자리한 정읍 김명관고택(井邑金命寬古宅)’입니다. 행랑채 ·사랑채 · 안행랑채 · 안채 · 별당 등으로 구성된 이 고택은 조선 후기에 건축된 주택입니다. 1971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 고택은 1790년대의 건축으로 집터의 꾸밈은 풍수지리설에 따랐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 정조 때의 사대부인 김명관(金命寬, 1755-1822)17세 때 짓기 시작하여 10년 만에 완성한 이 고택은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행랑마당이 있고 ㄷ자형 바깥 행랑채가 있습니다. 사랑채는 서남쪽에 대청이, 동남쪽에 2칸의 사랑방과 ㄱ자로 꺾여 1칸의 침방이 있으며, 안채의 서쪽에는 따로 별당이 건축되어 있고, 서당채는 안채 뒤 북쪽으로 따로 담장을 쌓아 건축하였다.”라고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김명관 고택을 둘러보며 느낀 것은 고래등 같은 99칸의 대저택을 보고도 전혀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 고택이 부유한 자산가로 평범하게 살아온 주인 김명관의 평온한 성품을 닮아 소담스러워 보여서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 한옥의 완벽한 표본으로 평가받는 정읍김명관고택을 주마간산격으로 휘둘러보아  이 고택을 정성들여 지은 김명관 주인께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618분 칠보면사무소 앞에 도착해 동진강 따라 걷기를 마쳤습니다. ‘정읍 김명관 고택에서 공동교를 건너 동진강 좌안의 제방 길로 들어섰습니다. 평사리천의 물을 받아들여 유량이 늘어난 동진강의 물 흐름을 지켜보다가 언뜻 생각난 것은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만석보(萬石洑)였습니다. 동진강의 제1지류인 정읍천과 태인천이 만나는 곳에 고부 군수 조병갑이 만석보를 축조하고 수세를 거두어들인 것이 계기가 되어 농민들의 분노가 대하를 이루어 분출한 것이 동학농민혁명입니다.

 

  제방길을 벗어나 동진강 위 고가다리인 쌍룡교를 그 아래로 지났습니다. 칠보면에 발을 들여 정읍시에서 세운 칠보충훈탑 안내판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안내판에 실린 칠보발전소탈환전투소개 글을 읽는 것으로써 칠보 충혼탑참배를 대신했습니다. .

 

  “국가산업 부흥의 원 동요소인 전력을 생산하는 섬진강발전소와 송전시설은 험준한 산간 노령산맥에 위치하고 있어 6 · 25 이후 재산공비(在山共匪)의 유일한 파고 대상인 반면, 이 시설의 수복과 수호 경비는 당시 중대한 국가적 긴급한 과제일 뿐 아니라 실로 삼남지방의 전력 여부를 좌우하였다.

 

  마침내 9.28수복 당시 광주 주재 국군정예의 지원을 얻은 애국경찰과 지방 향토청년 및 발전소 직원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발전시설의 운전과 삼남지방의 전력공급에 위협이 발생하게 되자, 1951617일 칠보지구 특별경비대대가 편성, 이곳에 배치되어 군경 및 발전소원, 애국청년 등과 함께 발전소를 시수하다 69명이 산화하였다.

 

  이와 같이 극악무도한 공비를 상대로 원활한 발전과 송전을 우|하여 순직한 칠보특별경비대대를 비롯한 그 외 군경 및 발전소 직원, 애국청년 등 위국충정한 영령 100여주의 위대한 업적을 영세불망키 위하여 1954625일 충혼탑을 건립하였다, 이 탑은 철근콘크리트로 높이 15m, 총용적 32m2이며, 매년 현충일 참배가 거행되고 있다.”

 

  칠보수력발전소를 지나 복호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칠보교를 건넜습니다. 시산교차로에서 태산로를 거쳐 동진강 우안의 칠보중앙로를 따라 걸어 시가지로 들어서자 송현섭노래비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 노래비는 이 지역의 3선 의원이었던 송현섭님이 가사를 쓰고 김정일님이 작곡한 것을 모친의 백년장수를 기원하며 송현섭님이 부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입니다. 이 비에 새겨진 노래 오래 오래 살아주세요의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세상살이 고달프고 괴로울 때면 마음은 달려가네 어머님 품속으로/ 사랑스런 눈빛으로 나를 보며 두손으로 안아주었죠 / 세월따라 변해가는 어머님의 그 모습이 이 자식의 가슴속을 울려줍니다/어머님 어머님 오래 오래 살아주세요/흐르는 세월을 아쉬워하며 나를 사랑하고 키워주신 어머님/ 이 몸이 잘되라고 두손 모아 그 얼마나 빌었습니까/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어머님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리까/ 어머님 어머님 오래 오래 살아주세요/ 어머님 어머님 오래 오래 살아주 세요 노래비 35 1TV 방영 마음은 달려가네 어머님 품속으로 어머님 어며님 오래 오래 살아주세요 오래 오래 살아주세요.”

 

  칠보버스터미널 건너편의 다방을 들러 냉커피로 더위를 식힌 후 무성서원으로 향했습니다. 동진강과 칠보천의 합류점을 지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무성서원에 다다랐습니다. 무성서원(武城書院)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9대서원의 하나입니다. 670여개의 우리나라 서원 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서원은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 안동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과 논산 돈암서원 등인데, 이중 제가 들른 서원은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도동서원과 이번에 탐방한 무성서원 등 5곳입니다.

 

  이곳 무성서원은 1615년에 지역 유림들이 통일신라 시대 학자이자 관료인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908년 이후)선생을 기려 건립한 호남의 대표적인 서원입니다. 최치원이 태산태수로 있을 때 생사당을 세웠고, 1483년에 정극인(丁克仁, 1401-1481)이 세운 향학당이 있던 현재 위치로 옮긴 후 옛 지명을 따라 태산사로 불렸습니다. 이후에 태인현감 신잠(申潛, 1491~1554)이 지역의 학문을 발전시키고 떠나자 지역 유림이 이를 기리는 생사당을 세웠습니다. 1615년에 태산사와 신잠의 생사당 그리고 향학당을 합쳐 태산서원이 되었다가 1696년에 숙종이 武城書院의 현판을 내려 주어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고 무성서원안내팜플렛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서원은 통상 제향영역, 강학영역, 교류 및 유식영역으로 나뉘는데 무성서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는 서원의 주요기능이 성리학 가치에 부합하는 이상적 지식인을 양성하고, 지역의 대표적 성리학자를 사표로 삼아 제향하며, 지역사회의 공론을 형성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무성서원의 제향공간인 태산사 사당에 배향하는 인물은 최치원, 정극인과 신잠 외에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 등 모두 7분입니다. 강학공간에는 강학활동을 위한 핵심시설인 명륜당과 유생들이 개인학습을 하던 건물인 강수재가 들어서 있습니다. 교류와 유식공간(遊息空間)에는 서원의 교류와 유생들의 유식을 위해 지은 누각인 현가루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성서원의 건물배치에서 눈에 띈 것은 유생들이 개인학습을 하던 건물인 강수재를 강당과 떨어져 다른 동에 지었다는 것입니다.

 

  17시30분 무성서원을 둘러본 후 칠보버스터미널로 이동했습니다. 1743분에 칠보버스터미널을 출발하는 정읍행 버스에 올라 약 40분 후 정읍역에 도착,. 1910분발 수원행 열차에 올라 하루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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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에 동진강을 탐방하면서 섬진강의 물을 유역변경을 통해 동진강으로 끌어들인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유역변경(流域變更, Watershed Transfer)이란 하천의 물줄기를 인위적으로 바꾸어 본래 흘러가던 곳이 아닌 인접한 다른 하천이나 바다로 물이 흐르도록 방향을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진강은 강길이가 51Km로 짧고 유역면적도 1,136Km2에 불과해 집수면적이 좁을 수밖에 없습니다. 집수면적이 좁아 동진강의 물만으로는 만경평야 등의 넓은 농경지에 충분한 농업용수를 공급할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한 한 댐이 바로 섬진강의 물줄기를 막아 만든 섬진강 댐입니다. 섬진강댐은 길이 344m, 높이 64m의 다목적 댐으로 총저수용량은 466백만m3에 달합니다.

 

  섬진강댐의 강물을 수계가 다른 동진강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유역변경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설치한 도수터널이 두 개가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 하나는 섬진강댐에서 산외면 종산리 팽나무교 인근의 소수력발전소로 이어지는 도수터널입니다. 이 터널의 길이는 759m로 길지 않습니다. 소수력발전소에서 방류되는 섬진강의 물은 바로 아래 팽나무교에서 빈시암에서 발원하여 내려오는 계곡물과 만나 평사리천을 이루어 기세 좋게 서쪽으로 흘러 내려갑니다. 팽나무교 다리를 건너며 눈길이 간 것은 여우치가압장입니다. 동진강의 발원지인 고지대의 여우치마을로 상수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이곳에 가압장을 설치한 것은 2021년의 일입니다.

 

  또 하나의 도수터널은 섬진강댐에서 칠보수력발전소로 이어지는 터널입니다. 이 터널의 길이는 6Km 가량으로 꽤 긴 편입니다. 이 터널을 통해 흐르는 섬진강 물을 받아  아래로 떨어지는 낙차를 이용하여 발전하는 것이 바로 칠보수력발전소입니다. 차 타고 지나면서 여러 번 본 바 있는 칠보수력발전소의 총 설비용량은 34.8Kw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 발전소에서 방류하는 물줄기는 두 갈래로 나뉘는데, 그 하나는 계화도간척지 청호저수지까지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60년대에 만들어진 동진강도수로(67킬로미터) 쪽으로 보내는 물줄기이고, 또 다른 하나는 농번기가 아닌 경우 그냥 동진강 본류 쪽으로 흘려보내는 물줄기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