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밤샘발원지-연석사입구-거인마을
탐방일자: 2026년5월22일(금)
탐방코스: 밤티마을-밤샘발원지-밤티마을-연석사입구-시평마을
-이리남중교회수양관-거인마을
탐방시간: 10시28분-15시35분(5시간7분)
동행 : 나 홀로

산은 강의 어머니입니다. 강이 시작되는 발원지가 거의 다 산속에 있고, 모든 강은 발원지에서 하구에 이르기까지 강을 둘러싸고 있는 둘레산줄기가 대주는 물을 받아 바다로 흘러갑니다.
이번에 탐방을 시작한 만경강(萬頃江)은 전북 완주군 동상면의 밤샘에서 발원하여 전주, 익산, 김제, 군산을거쳐 서해로 흘러드는 호남평야의 젖줄이자 전북의 대표적인 하천입니다. 만경강의 발원지인 밤샘은 동상면 사봉리의 원등산(713m) 남동쪽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밤샘에서 발원한 만경강은 고산천, 소양천, 전주천, 삼천천, 익산천, 탑천, 화평천 등의 지류의 물을 받아 세를 불려 서해로 흘러갑니다. 밤샘 발원지에서 강 하구까지 유로연장(流路延長)은 81Km이며, 유역면적(流域面積)은 1,602Km2로 남한의 하천 중에서 8번째로 넓습니다.
만경강에 물을 대는 둘레산줄기는 북쪽 금강하구-조약봉분기점 구간의 금강정맥, 동쪽 조약봉분기점-묵방산 구간의 호남정맥, 남쪽 묵방산-봉화산의 구간의 모악지맥 등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박성태님이 지은 『신산경표』에 따르면 만경강의 둘레산줄기는 모악지맥 76Km, 호남정맥 57Km, 금강정맥 131Km 등 전장(全長)이 약 264Km에 달합니다. 만경강 북쪽의 금강정맥은 금강과 만경강을 가르는 수계이고, 남쪽의 모악지맥은 만경강과 동진강을 나누는 수계라는 것을 이번에 만경강 탐방을 준비하면서 확실히 알았습니다.
이번에 첫 구간의 탐방을 마친 만경강이 제가 이제껏 걸어온 5대강과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넓은 들판을 흐른다는 것입니다. 제가 따라 걸은 한강 등 5대강은 상류 쪽에 감입곡류가 발달해 몇 곳에서는 천애의 절벽 아래로 강물이 구불구불 흐르는 구간을 지나야 했습니다. 이런 구간들은 강줄기를 따라 걷기가 쉽지 않아 차도를 따라 빙 돌아갔습니다. 하류 쪽에도 영산강을 제외하고는 평야가 넓지 않아 들판을 굽이굽이 흐르는 자유곡류를 보지 못했습니다. 모악지맥을 경계로 나뉘는 북쪽의 만경강은 만경평야를 흐르고, 남쪽의 동진강은 김제평야를 흐릅니다. 옛날에는 이 두 강은 넓은 평야를 굽이굽이 흐르는 자유곡류 하천이었다는데, 지금은 유로를 직강화하여 자유곡류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도 몇 곳에서는 우각호 등 자유곡류의 흔적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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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을 아침 6시19분에 출발하는 전라선 열차에 올라 한동안 차창 밖에 펼쳐진 들판 풍경을 완상했습니다. 3시간 후 전주역에서 하차하여 택시를 타고 소양면소재지로 향했습니다. 전주역에서 소양까지 택시로 이동하지 않았다면 10시5분에 출발하는 밤티마을행 83번 버스를 놓칠 뻔했습니다. 소양을 출발한 83번 버스가 얼마 달리지 않아 두부마을 화심을 지났습니다. 1990년대 모 회사의 충호남영업부장으로 일할 때 여러 번 들렀던 화심을 지나면서 눈여겨 본 것은 규모가 큰 중국음식점이었습니다. 그 많던 두부집은 거의 다 사라지고 중국집이 들어선 것을 보고 세월이 무상함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화심을 지나 동상로를 따라 꼬불꼬불한 고개를 넘어 밤티마을 정류장에서 하차했습니다.
오전 10시28분 밤티마을 버스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55번 동상로를 따라 남진, 웃밤티정류장을 막 지나 다다른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꿈나무학습체험장과 음식점 중국성을 차례로 지나 밤샘교를 건넜습니다. 남쪽으로 1.5Km 떨어진 만경강의 발원지인 밤샘을 향해 남진하다 제법 물이 깊은 사방댐을 보았습니다. 안내판에 따르면 사방댐(砂防댐, Debris Barrier)이란 “산림계류의 안정과 산사태 및 토석류로부터 하류지역의 인명, 재산 피해 예방을 위해 설치한 시설”을 이릅니다. 2층건물의 동상편백숲연수원을 지나자 아스팔트포장도로가 시멘트포장도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들어선 곳이 ‘만경강발원샘 생태공원’ 안이라는 것은 종합안내판을 보고 알았습니다. 도로포장이 시멘트에서 미끄럼방지 포장으로 바뀐 것은 오름길이 점점 가팔라져서일 것입니다. 무당개굴 쉼터를 지나 오른쪽 데크다리를 건너 편백나무 숲속으로 들어섰습니다. 숲속에 낸 짧은 야자 매트길을 따라가 바로 앞 만경강의 발원지인 밤샘샘터에 이르렀습니다. “만경강 발원샘(밤샘)‘의 표지목과 밤샘을 사진 찍은 후 밤샘을 살펴보았는데 동진강의 빈시암샘터물보다 한결 정갈해 보였습니다.
11시45분 발원지인 밤샘을 출발해 만경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무당개굴 쉼터를 막 지나 길가 벤치에 앉아 햄버그를 꺼내 든 후 오후 탐방을 이어갔습니다. 북쪽 아래 밤티마을로흘러 내려가는 만경강 상류의 계곡이 청정하다는 것은 이 계곡에서 1급수에서만 볼 수 있는 버들치와 토종물고기 퉁사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밤샘교를 건너서부터는 나무 그늘이 별로 없어 후드가 달린 모자를 쓰고 걸었습니다.
삼거리에서 오른 쪼으로 이어지는 55번 동상로에 들어섰습니다. 웃밤티 정류장을 거쳐 오른쪽으로 영신교회가 보이는 밤티마을 정류장을 지나 북진했습니다. 한낮의 기온이 섭씨 25도를 오르내리는데도 그다지 덥지 않은 것은 아직은 지구가 덜 더워져 지열이 느껴지지 않아서일 것입니다.
만경강 물줄기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떨어져 나 있는 동상로를 따라 걸어 북진하면서 주변에 꾀꼬리가 많아 이름 붙여졌다는 황조리마을 입구를 지났습니다. 여기 동상면의 황조리마을이 소양면의 대승한지마을 및 동상면의 밤티마을과 더불어 깨끗한 계곡물과 닥나무를 이용해 전통 '고려지(한지)'를 생산하던 주요 원산지 중 하나였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황조리마을 지나 돌담 골목이 잘 보존된 시평(詩坪)마을에 이르기까지 왕복 2차선의 좁은 차도를 따라 걷느라 바로 옆을 달리는 차량들에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13시38분 연석사(碾石寺) 입구를 지났습니다. 시평마을 입구를 막 지나 만경강 우안의 제방 길을 따라 걷고자 왼쪽 제방길로 들어섰습니다. 제방길을 따라 걷다가 잠시 멈춰 시평교에서 내려다본 만경강은 발원지에서 약 4Km가량 흘러 이 다리에 이르기까지 지류의 물을 받아들여서인지 유량(流量)이 많이 늘어났고, 달뿌리 숲을 헤집고 흐르는 강물의 유로(流路)가 제법 넓어 보였습니다.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아 온 산하가 푸르른 데다 만경강의 강물 또한 맑기가 그지없어 제가 청정지역을 걷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제방 길이 끝나 다시 55번 동상로로 복귀했습니다. 연동정류장에 이르자 2007년4월2일 금남정맥의 마지막 구간을 종주하고자 해발928m의 연석산을 오를 때 연석사를 지난 일이 생각났습니다. 19년 전 제 블로그에 올린 아래 산행기를 읽으며 그때 지난 연석사를 떠올렸습니다.
“아침 8시48분 연동마을 차도에서 마지막 종주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피암목재-서봉-연석산 구간의 종주산행을 마치고 전주시 산정동의 한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택시를 타고 연동마을로 되돌아갔습니다. 연석가든에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하차해 오른쪽으로 난 임도 길로 들어섰습니다. 대웅전만 달랑 보이는 계곡 건너 연석사가 황사가 가시자 전날 내려올 때 보다 훨씬 산뜻하게 보였습니다. 조선조 영조 때 산경표를 펴낸 실학자 신경준 선생이 말씀하신 대로 길은 따로 주인이 없고 길 위를 걷는 사람이 바로 주인이라면, 저를 앞질러 내닫는 한 젊은이가 이 임도의 주인임에 틀림없기에 부지런히 걷는 그의 뒷모습을 임도와 함께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저만치 보이는 연석산에 이끌려 점점 산속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다가 계곡을 만나 징검다리를 건넜습니다. 아름답기로야 미라보다리 등 세에느강을 가로지르는 파리의 다리들이 최고이겠지만, 이러한 다리들은 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기에 물속에 일정 간격으로 돌덩이를 놓아, 건너는 사람들과 다리, 그리고 흐르는 물이 다툼 없이 한데 어우러지는 정겨움은 징검다리가 단연 으뜸일 것입니다.”
연석사 입구를 지나 다시 만경강 우안의 제방 길로 들어섰습니다. 연동교를 거쳐 따로 어로가 나 있는 작은 보를 지났습니다. 강 가에 화사하게 핀 연분홍의 엉겅퀴 꽃이 인사를 해와 이 또한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말이 먹이를 먹는 형상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마을 뒷산의 산봉우리가 사봉(飼峰)입니다. 다시 차도로 복귀해 이 봉우리에서 유래된 신사봉(新飼峰) 마을입구를 지나 신사마을 정류장에 이르자 벤치가 보여 잠시 쉬어 갔습니다. 이리남중교회수양관을 거쳐 대야호를 16Km 남긴 원사봉 마을 입구를 지나자 외관이 깔끔한 사봉교회가 두 눈을 끌었습니다.
다시 만경강 우안의 제방길을 따라 걸어 원사교에 이르자 강폭이 더욱 넓어졌습니다. 파란 유니폼을 입은 6.3 지방선거 여성운동원 한 분이 저를 보고 인사를 해왔습니다. 선거운동원이 저를 보고 반가워한 것은 제가 투표권이 없는 외지인이라는 것을 몰라서 그리했겠지만, 설사 알았다고 해도 유권자를 직접 대하기가 정말 어려운 이런 벽촌에서 저를 만나 무척 반가웠을 것입니다.
15시35분 83번 버스종점인 거인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원사교를 지나 만경강 우안의 제방길을 따라 걷다가 눈길이 간 것은 주변 경관이 수려한 작은 소(沼, ?)입니다. 넓은 암반 아래 자리한 이름 없는 소는 물이 맑고 수심이 깊지 않아 바닥이 보였습니다.
제방 길이 끝나 다시 55번 동상로로 올라섰습니다. 동상면토종한봉꿀농장을 지나 묵계마을 입구에서 왼쪽 아래 제방길로 들어서 2Km가량 떨어진 동상면민교까지 만경강 우안의 제방길을 따라 걸었는데, 한동안 차량들을 신경을 쓰지 않고 걸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묵계교를 지나 강변에 그물망이 설치된 것을 보았습니다. 강변의 넓은 밭은 무와 쪽파가 잘 자라 온 밭이 푸르렀습니다. 오른쪽 차도 너머로 보이는 주홍색의 뾰족한 첨탑 건물이 동상교회일진데 그렇다면 조금 떨어져 보이는 시가지는 동상면소재지일 것입니다.
동상면민교를 건너 동상면민운동장을 사진 찍은 후 만경강 좌안 길을 따라 북진하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카카오맵을 보았습니다. 길을 잘못 든 것을 확인하고 바로 동상면민교로 돌아가 이 다리를 건넜습니다. 이 다리에서 3-4분 거리의 거인산촌마을에 도착해 소양 가는 버스가 16시10분에 출발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버스 출발까지 반 시간 가까이 남아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1Km 가량 떨어진 고종시감나무 시조목과 200m 거리의 충혼탑은 다음에 찾아보기로 하고, 대신에 거인(巨仁)마을 안내판의 소개글을 꼼꼼히 읽었습니다.
“거인마을이라 이름 지어진 유래는 마을에서 어질고 큰 사람이 많이 나오길 염원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인근에도 묵계(墨溪)마을과 먹바위, 필동(筆洞), 벼루소 등 선비를 의미하는 이름을 가진 지역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도 이 지역은 옛부터 인재들을 소중히 해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거인마을은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고 품질의 친환경 고종시 곶감과 복분자, 오미자 등을 생산, 판매 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제품들은 소비자 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농가 소득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16시10분에 거인마을을 출발한 버스가 소양에 도착한 것은 반 시간가량 지나서였습니다. 소양정류장에서 50분 정도 기다렸다가 17시30분에 소양을 출발하는 810번 버스에 올라 전주역으로 이동했습니다. 인근 음식점에서 저녁을 사든 후 19시57분 전주를 출발하는 수원행 열차에 탑승하는 것으로써 하루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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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마을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현지의 주민 한 분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분께서 밤티마을이 천주교신자의 피난처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몇 가지를 AI에게 물어 궁금증을 풀었습니다.
천주교신자들이 밤티마을로 피신한 경위는 대략 이러합니다. 1801년의 신유박해, 1839년 의 기해박해, 1866년의 병인박해를 거치면서 전라도 지역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은 전주 등의 도심을 떠나 산간 오지로 숨어들었다고 합니다. 인근의 고산 지역과 천호산 일대에 대규모 교우촌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더 깊은 숲속이었던 동상면 밤티마을까지 신자들이 흘러 들어온 것입니다.
밤티마을은 만경강의 발원지인 '밤샘'이 있는 곳입니다. 깊은 산속이지만 사철 깨끗한 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옹달샘이 있어, 피난 온 신자들이 식수를 해결하고 정착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밤티마을로 숨어든 신자들은 신분을 숨기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화전(火田)을 일구었습니다. 주변에 흔했던 밤나무에서 밤을 채취하고 곶감을 만들며 연명했습니다. 밤티마을 주변에는 과거 금을 캐던 금광 굴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신자들은 평소에는 화전을 일구며 살다가도, 관군이 마을 입구까지 들이닥치거나 수색이 심해지면 이 깊은 바위 굴이나 토굴 속으로 몸을 숨겨 목숨을 보존하곤 했습니다.
관군의 눈을 피해 평신도들이 중심이 되어 비밀리에 기도와 의식을 올리는 공소 공동체를 형성했습니다. 사제가 상주할 수 없는 환경이었기에 교우 들끼리 서로 의지하며 신앙을 지켰고, 가끔 밤을 틈타 찾아오는 파리외방전교회 신부 등 외국인 선교사에게 성사를 받으며 박해의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제가 세례를 받아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은 2000년의 일입니다. 1989년 어머니께서 저와 집사람 모두 천주교에 입교하라는 유언을 남기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집사람은 그해 겨울 세례를 받았고 저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다가 2000년 집사람이 이 세상을 뜬 후에야 천주교에 입교했습니다.
그 후 약 15년 동안 주일미사를 거의 빠지지 않고 드린 제가 천주교와 멀어진 것은 신부님의 지나치게 진보 쪽으로 편향된 정치지향적인 강론을 해서였습니다. 2019년 코로나19 펜데믹이 시작되면서 성당과 더욱 멀어져 요즘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일미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온갖 박해를 이겨내고 밤티마을로 들어와 3대가 천주교신자로 살아 왔다는 주민분의 이야기를 듣고 특정한 신부의 강론이 듣기 싫어 거의 냉담자가 된 저 자신을 돌아보고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어떻게든 잘못된 생각을 고쳐먹고 신실한 신자로 돌아가야겠다면서도 그리하지 못하는 것은 그동안 믿음이 약해진 데다 그동안의 타성 때문일 것입니다. 오는 주일에 미사에 참여하는 것으로써 타성에서 벗어나고자 하는데 잘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탐방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