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I.강줄기 따라걷기/탐진강 따라 걷기

탐진강 따라 걷기1(성터샘 발원지-청룡분교장-암천교차로)

시인마뇽 2026. 6. 6. 00:54

탐방구간: 성터샘 발원지-청룡분교장-암천교차로

탐방일자: 2026. 6. 2()

탐방구간: 성터샘 발원지-봉황동정류장-청룡분교장-운월삼거리-암천교차로

탐방시간: 1249-1643(3시간54)

동행       : 나 홀로

 

 

  이번에 첫 발을 들인 탐진강은 영산강, 섬진강과 더불어 전라남도 3대강의 하나로 알려진 강입니다. 2007년 호남정맥 종주 길에 산 위에서 내려다본 탐진강을 강 하구까지 따라 걷고자 이 강의 발원지인 궁성산의 성터샘을 찾아 나섰습니다.

 

  탐진강은 전남영암군금정면세류리에 위치한 해발 488m의 궁성산 성터샘에서 발원해 영암과 장흥 및 강진을 거쳐 남해로 흘러드는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강입니다. 이 강은 유치천, 옴천천, 부산천, 부동천, 평화천, 금강천, 파산천, 금사천과 강진천의 물을 차례로 받아들여 세를 불려가며 흘러 내려가 남해의 강진만으로 유입됩니다.

 

  이 강의 유로연장은 55Km이고, 유역면적은 509Km2로 남한에서 14번째로 넓습니다. 이 강 유역에는 용반평야, 부산평야, 장흥평야와 강진평야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탐진강에 물을 대주는 둘레산줄기는 서쪽 땅끝기맥의 땅끝-바람봉분기점 구간, 북쪽 호남정맥의 바람봉분기점-사자산 구간, 동쪽 사자지맥의 사자산-탐진강 좌안하구 구간 등으로 이어집니다. 이 둘레산줄기의 총길이는 땅끝기맥 122km, 호남정맥 28Km, 사자지맥 47Km 등을 합하여 197Km에 달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탐진강의 유래에 대해 신라 문무왕 때 탐라국 고을나(高乙那)15대손인 고후(高厚), 고청(高淸) 등의 형제가 내조할 때 구십포(九十浦)에 상륙하였다는 전설에 연유하여 탐라국의 탐()자와 강진의 진()자를 합하여 탐진(耽津)이라 부르게 되었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탐진강의 옛 이름은 “맑은 물이 흐르는 양지 바른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예양강(汭陽江)이며, 지금도 이곳 장흥주민들은 탐진강을 예양강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이 강의 이름이 '탐진강'으로 기록된 최초의  공식문서는 1912년에 발간된 조선지형도입니다. 이후 '탐진강'은 공식명칭이 되어 지금까지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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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진강의 발원지를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습니다. 광주종합터미널에서 버스로 금정면 소재지까지 가서 택시로 갈아타 발원지인 궁성산 성터샘까지는 택시로 이동할 계획이어서 광주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금정 가는 표를 끊으려 했습니다. 여기 광주종합터미널에서는 금정면으로 가는 버스가 아예 없다는 것을 알고 나자 무척 난감했습니다.

 

  여러 궁리 끝에 1055분에 광주종합터미널을 출발하는 영암행 버스에 올라 1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신북정류장에서 하차했습니다. 이 정류장에서 미리 부른 금정 택시를 타고 탐진강의 발원지인 궁성산 성터샘으로 향했습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어 다다른 봉황동 정류장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좁은 시멘트길로 들어섰습니다. 골프장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자 지도에 나오는 기동제저수지가 보였습니다. 길이 시멘트도로에서 비포장임도로 바뀌자 택시가 심하게 덜커덕거렸습니다. ‘탐진강 발원지표지목이 서 있는 임도삼거리에서 하차해 택시를 돌려보내고 발원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1249분 발원지인 성터샘을 출발했습니다. 임도삼거리에서 발원지까지 거리는 100m 정도로 가까웠지만,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 길이 무성한 풀들로 뒤덮인 데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로 바닥이 질펀했습니다. 4-5분을 걸어 발원지를 알리는 탐진강발원지 성터샘이라 쓰인 표지석과 돌을 쌓아 네모반듯한 성터샘 샘터를 보자 가슴이 뛰었습니다. 재빨리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은 후 주룩주룩 내가 내려 더 이상 머무르지 못하고 임도삼거리로 돌아갔습니다. 금정면의 모정2제 저수지로 이어지는 북쪽 임도길을 버리고 택시로 올라온 동쪽 길로 되내려갔습니다.

 

  둑에 올라가 기동제 저수지를 보자 발원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 정도 규모의 저수지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성터샘에서 지속적으로 샘물을 흘려 보내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동제 저수지 아래 논에는 이제 막 모내기를 마친 벼들이 물에 잠겨 있었습니다. 이 논배미들을 보자 고향의 고래 논이 떠올랐습니다. 고래 논이란 산골짜기에 자리해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 논을 이르는 말로 비가 제때 오지 않으면 제때 물을 대지 못해 마른 상태가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는 건답 논과 대비된다 하겠습니다. 1950년대 말 초등학교를 다닐 때 고래논 5마지기를 사들이노라 한 해 겨울을 메밀수제비로 거의 매 끼니를 때운 적도 있었습니다.

 

  기동제저수지에서 조금 내려가 아크로CC를 지나면서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흠뻑 맞으며 골프를 치는 골퍼들을 보고 동질감을 느낀 것은 이 비오는 날에 산골 깊숙이 자리한 발원지를 찾아가 강을 따라 걷는 저 또한 저들과 다를 바가 없다 싶어서였습니다.

 

범죄없는 마을 세류리 봉황동마을을 지나 봉황동 정류장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덕룡로로 들어섰습니다. 비가 내려 우중충해진 길을 환히 밝히는 것은 길가에 활짝 핀 샛노란 금계국과 노랑꽃창포(?) 꽃이었습니다. 왼쪽으로 나주 가는 길이 갈리는 세류교차로에서 직진해 보성 쪽으로 향했습니다.

 

  1427분 금정초교청룡분교장을 들렀습니다. 세류교차로에서 약 1.5Km를 걸어 이미 폐교된 청룡분교장을 들렀습니다. 교정 입구에 세워진 작은 도서관, 시골살이 상담, Healing Center’ 라는 문구의 청룡문화공간안내판을 보고 운동장과 그 뒤 교실을 살펴보았습니다. 무성하게 자란 잡풀로 운동장이 뒤덮인 것으로 보아 실제로 청룡문화공간은 운용되지 않는것을 같았습니다.

 

  여기 동산리마을은 집이 몇 채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교회와 마을공동창고가 있고 버스정류장도 같이 있어 공동체 마을로서 손색이 없어 보였습니다. 바로 앞 동산교를 건너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탁류로 변해버린 탐진천의 거친 물 흐름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빗줄기는 약해졌지만 그치지를 않아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야 했지만, 오가는 차들이 별로 없어 푸르러진 주변 산하(山河)를 마음 편히 둘러보았습니다. 얼마 후 도착한 기암마을 정류장에서 잠시 쉬면서 가져간 떡을 꺼내 들어 에너지를 보충했습니다. 내산교를 건너 작은 보()를 넘쳐흐르는 탐진천을 바라보면서 내가 지금 강 하류를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도 했습니다. 월암마을을 지나 얼마 후 차도에서 잠시 벗어나 오른쪽 아래 제방길로 내려섰습니다. 이번 탐방에서 유일하게 제방길을 걸어 오른쪽 중산마을로 건너가는 세월교 앞에 이르렀습니다. 조금 더 비가 내렸다면 이름 그대로 다리를 넘쳐흐르는 물이 다리를 씻어내는 것을 볼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1549분 장흥 땅에 발을 들였습니다. 중산마을 앞 세월교를 지나 나지막한 고개를 넘자 이내 장흥군 유치면의 도로표지판이 보여 이제껏 걸어온 길이 영암군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장흥 땅에 발을 들이자 장흥이 낳은 소설가 이청준(李淸俊, 1939-2008) 선생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오늘까지 천착해 온 우리나라 작가는 광장의 최인훈(崔仁勳, 1934-2018) 선생과 당신들의 천국의 이청준 선생입니다. 두 선생의 문제작들을 읽으면서 사고의 폭을 넓혀 간 덕분에 젊은 날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두분 모두 작고하셔서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문학을 통한 두 분의 치열한 지적 탐구는 항상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202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이 장흥 출신의 소설가라는 것과 이 작가가 이청준 선생과 동향으로 동년배인 한승원선생의 따님이라는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흥 땅에 발을 들이자 탐진천 건너 천변에 곧추서있는 천애의 절벽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 절벽을 지나 길가 밭에다 참깨를 심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밭에다 참깨를 심는 시기가 논에다 모내기를 하는 시기와 거의 같다는 것은 이번에 알았습니다.

 

  1643분 암천교차로에 도착해 탐진강의 첫 구간 따라 걷기를 마쳤습니다. 할머니와 헤어져 오른쪽으로 유치 가는 길이 갈리는 운월삼거리를 지나자 길가에 우뚝 솟은 송곳 같은 추암(錐巖)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추암(?)이 중생대 말기 때 용암이 분출하여 형성된 화산암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 것은 탐진강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천관산이나 강진 일대의 산들이 약 7천만-8천만 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 말기에 일어난 격렬한 화산폭발과 용암분출이 일어났던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언덕을 넘어 외딴집 진입로에 서 있는 종려나무 몇 그루를 보았습니다. 이 종려나무가  한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제가 걷고 있는 이곳 장흥 땅이 한반도 남단에 자리하고 있어 가능했을 것입니다. 왼쪽으로 발산마을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 강 건너 대천보건진료소로 길이 이어지는 암천교에 이르자 강폭이 조금 넓어 보였습니다.

 

  암천교를 지나 대천교를 건너면서 운월천과 탐진천의 합류점을 사진 찍었습니다. 발원지에서 여기 합류점까지 물줄기를 따라 걸으며 알게 된 것은 탐진천의 상류가 생각보다 감입곡류가 발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탐진천 상류를 에워싸는 산들이 높지 않아서인 것 같은데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대천교를 건너 암천교차로의 대천 정류장에 다다름으로써 탐진강의 첫 구간 탐방을 마쳤습니다. 버스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어 장흡읍내 택시를 불렀습니다. 택시를 타고 장흥 읍내로 이동중 장흥댐 옆을 지났습니다. 기사분의 설명인즉 장흥댐은 생활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건설한 것이어서 농업용수는 공급하지 않아 장흥댐 아래로 강물을 흘려보내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습니다.이는 나무위키에 실린 장흥댐은 총 저수용량 19,100만 톤의 다목적댐으로, 탐진강 하류의 홍수 피해를 방지하고, 댐이 있는 전라남도 장흥군을 비롯해 주변에 있는 목포시, 강진군, 해남군, 영암군, 무안군, 신안군, 완도군, 진도군 등에 생활용수/공업용수/농업용수를 공급한다.”는 소개 글과 달라. 확인해 보고자 합니다.

 

  장흥터미널을 182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광주종합터미널로 가서 광주송정역까지는 전철로 이동했습니다. 21시 정각에 광주송정역을 출발하는 SRT열차에 올라 잠을 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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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탐진강을 처음 본 것은 200799일의 일입니다. 그날 피재-골치 구간의 호남정맥을 종주하면서 그 아래 탐진강을 사진 찍었습니다. 다음 글은 그날 제 블로그에 올린 산행기에서 따온 것입니다.

 

  “1014분 사거리안부인 장평우산갈림길로 내려섰습니다. 405봉에서 잠시 내려섰다가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길을 걸어 서쪽으로 전망이 확 트이는 전망바위에 다다랐습니다. 바로 앞 구간을 지날 때 나뭇잎 사이로 빠끔히 얼굴을 내보인 탐진댐(오늘의 장흥댐)이 비로소 전신을 다 드러내 보였습니다. 탐라국사람들이 육지로 올라와 처음으로 배를 대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는 탐진강을 높이 막아 전라남도 서남해안지역에 공업용수와 생활용수를 원활히 공급하고자 만든 다목적댐 탐진댐은 그 규모가 주암댐의 40% 정도로 작아 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듯 했습니다. 초록빛 물 색깔도, 산허리를 적시고 있는 강물도, 파란색과 주홍색의 현대감각의 교각들도 어느 하나 표를 내며 나서지 않고 어우러져 빚어내는 조화로운 댐의 정경은 장흥군이 숨겨둔 또 하나의 비경이었습니다. 반 시간 가량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편안한 길을 걷다가 얼마 동안 내려가 장평우산 갈림길에 다다랐습니다. 안부에 내려서서 하늘 높이 유영하는 새털구름을 보고 가을이 왔다 했는데, 새들에 밀릴까 보아 마지막 목청을 돋우는 매미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나서 아직도 지난여름이 이 산하에 드리운 그림자를 다 거둬가지는 않았다 싶었습니다. ”

 

  이번에는 탐진강의 상류인 탐진천을 따라 걸었지만, 다음에는 19년 전 산에서 내려다 본 장흥호(옛 탐진호)의 호반길을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탐방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