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구간: 탑골샘 – 탑골공소터-유촌마을 갈림길
탐방일자: 2026. 6. 16일(화)
탐방구간: 내와경로당-유촌마을 갈림길-탑골공소터-삼백육십오일사-탑골샘
-유촌마을 갈림길-내와경로당
탐방시간: 9시54분-14시50분(4시간56분)
동행 : 나 홀로


2020년1월 섬진강에서 시작한 6대강 따라 걷기는 지난 4월 한강을 마지막으로 모두 끝마쳤습니다. 섬진강, 영산강, 금강, 낙동강, 안성천, 한강 순으로 탐방을 마친 6대강의 총 길이는 1,800Km가 조금 더 됩니다.
6년에 걸쳐 6대강 탐방을 마친 후, 지난 두 달간은 바다로 바로 흘러드는 주요 강들의 발원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지난 4월에는 충청남도 삽교천의 신풍저수지, 5월에는 전라북도 동진강의 여우치 빈시암, 만경강의 밤샘, 경상북도 형산강의 인출샘, 이달 6월에는 전라남도 탐진강의 성터샘에 이어 이번에 울산시 태화강의 탑골샘 등 6개 강의 발원지를 다녀왔습니다. 삽교천, 만경강과 동진강은 서해로, 탐진강은 남해로, 태화강과 형산강은 동해로 흘러듭니다.
이번에 다녀온 탑골샘은 울산시를 관통해 흐르는 태화강의 발원지입니다. 낙동정맥이 지나는 백운산(893m) 동쪽의 골짜기에 위치한 탑골샘은 해발고도가 550m대로, 울산시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산118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여기 탑골샘은 인출샘이 형산강의 발원지로 확정되기 전까지 이 강의 발원지로 알려졌던 곳이기도 합니다.
탑골샘이 태화강의 발원지로 밝혀진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20년 전인 2006년 울산발전연구원은 울산시의 의뢰를 받아 태화강의 길이를 실측했습니다. 그 결과 하구까지의 유로연장이 울주군 상북면 가지산 쌀바위는 45.43㎞, 최장 거리 발원지인 울주군 두서면 백운산 탑골샘은 쌀바위보다 2.11㎞가 긴 47.54㎞로 밝혀짐에 따라 탑골샘이 태화강의 발원지로 확정되었습니다.
가지산과 쌀바위샘, 그리고 백운산은 2013년 낙동정맥을 종주할 때 들렀고, 탑골샘은 이번에 찾아갔으니, 태화강의 발원지로 거론된 가지산과 백운산, 그리고 쌀바위샘과 탑골샘은 모두 다녀온 셈입니다.
이번에 첫발을 들인 태화강은 백운산의 탑골샘에서 발원해 울산만의 명촌교 앞에서 동해로 흘러드는 강으로 유로연장은 47.54Km이고 유역면적은 644Km2에 달합니다. 태화강을 둘러싸 물을 대고 있는 산줄기의 길이는 제가 조사한 바로는 태화강 좌안-남양산-정족산 구간의 남암지맥이 20.2Km, 정족산 – 가지산-백운산 구간의 낙동정맥이 44.0Km, 백운산-묵장산-원고개구간의 호미지맥이 38.9Km, 원고개 –삼태봉 –태화강 우안의 삼태지맥이 40.5Km 등 총143.6Km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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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14분 경기도군포시의 산본역을 출발, 6시22분 평택지제역에서 SRT열차로 환승해 울산역으로 향했습니다. 8시5분 울산역에서 하차해 40분 남짓 기다렸다가 8시48분 내와로 가는 313번 시내버스에 탑승했습니다.이 버스가 1시간 가까이 달려 울산시울주군두서면내와리의 내와경로당 앞 두서내와정류장에 도착한 시각은 9시45분이었습니다.
내와마을은 옛날부터 도시와 거리가 먼 두메산골로 교통이 불편한 곳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북으로는 괘발, 덕천, 이조까지 걸어가서야 경주를 왕래할 수 있었고, 동으로는 활천과 봉계를 지나 울산으로 통하였으며, 서로는 소호령을 넘어야만 청도와 밀양 등지로 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경주나 언양에 있는 시장에 갈 때도 말이나 소를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오지의 벽촌이었기에 천주교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전 9시54분 내와경로당을 출발해 남쪽으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며 앙증맞아 보이는 자그마한 내와저수지를 지나 왼쪽으로 유촌마을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내와마을회관에서 약 1.3Km를 걸어 유촌마을갈림길 에 이르기까지 내리쬐는 햇볕을 가릴 만한 그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갈림길에 이르러서야 제가 걸어온 길이 영남알프스둘레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왼쪽으로 유촌마을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세워진 안내판에 제가 걸어야 할 가매달길이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두서면미호리에서 탑골로 이어지는 가매달은 태화강 백리길이 숨겨둔 보물로 가매달에는 선녀탕, 구이소, 소금쟁이소, 요강소 등 10개의 소와 6개의 징검다리가 있으며, 개미허리골은 영남알프스둘레길과 태화강 백리길이 만나는 곳으로, 개미허리골 아래 내와(內瓦)마을은 기와를 굽고 쇠를 녹이던 불매골이었다는 것이 소개글의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유촌마을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려가 탑골샘에서 흘러 내려오는 미호천을 만났습니다. 탑골샘을 1.8Km남겨둔 다리를 지나 탑골의 내력을 알려주는 안내판을 보았습니다.
안내판의 소개 글에 따르면 백운산에서 탑이 굴러내려 이름을 얻은 탑골의 상류에 태화강의 발원지가 있습니다. 1801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탑골에서 살기 시작했고, 그 뒤 공소가 만들어졌습니다. 탑곡 교우촌은 경주, 밀양, 의성에서 피난 온 고령 박씨, 밀양 박씨, 반남 박씨 집안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로 1839년에서 1983년까지 존속되었다고 합니다. 태풍피해로 공소가 내려앉은 데다 독가촌 강제 이주 정책으로 거의 이농하면서 현재는 공소 터만 남아 있습니다. 철문이 굳게 잠긴 탑곡공소 옛터를 지나 삼백육십오일사를 지났습니다.
11시1분 탑골샘 입구에 이르렀습니다. 단출한 한옥 두 채가 전부인 삼백육십오일사를 막 지나 다다른 탑골샘 입구에는 아치형의 문과 백운산탑골샘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탑골샘을 1.2Km 남겨놓은 백운산 탑골샘 입구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100여m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걸어 계곡 위에 놓인 데크다리를 건너자 탑골샘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보였습니다. 탑골샘 0.8Km 지점을 지나자 오름 길이 경사진 비탈길로 바뀌어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너덜길을 지나 별안간 발걸음을 옮길 적마다 왼쪽 엉치뼈가 아파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간이 쉼터를 지나 탑골샘 0.4Km 전방 지점에 이르러서는 통증이 더 심해져 발걸음을 옮겨놓을 때마다 그냥 털썩 주저앉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12시18분 탑골샘에 도착했습니다. 탑골샘 0.4Km 전방 지점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하산하려다가, 이렇게 그만두면 언제 다시 올 수 있으랴 싶어 꾹 참고 산오름을 계속했습니다. 제 세상을 만난 듯 재잘대는 산새들이 밉살스러웠던 것은 고관절이 아파 고통스러워하는 제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노래만 불러댔기 때문입니다.
보폭을 짧게 하고 걷다 쉬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올라 데크 길에 들어서자 통증은 조금 약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내 하얀 페인트로 쓴 “태화강 발원지 백운산 탑골샘”의 바위 앞에 이르자 엄청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도 그러할 것이 약 2,800Km에 이르는 1대간9정맥을 종주하고 약 1,800Km를 조금 상회하는 6대강 등 여러 산줄기와 강줄기를 따라 걸었지만, 이번처럼 고관절이 아파 발걸음을 옮겨 놓기가 고통스러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힘들게 오른 여기 탐골샘은 태화강 최장거리의 발원지로, 백운산계곡 해발550m 지점의 절터 주변 상에 위치하고 있다고 합니다만, 고관절이 아파 절터를 찾아보지는 못했습니다. 탑골샘은 다른 산의 발원지처럼 샘터가 아니어서 조금은 실망스러웠습니다. 탑골샘은 절터에서 10m가량 아래 바위틈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지점을 칭하나,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고 반경 3m 정도의 주위에서 물이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이렇게 흘러나오는 수량(水量)은 약 15톤/일로 풍부한 편이며, 이 물은 계곡을 따라 흘러 미호(복안)저수지를 거쳐 대곡천으로 흘러 태화강에 합류됩니다.
하산 길이 걱정되어 제대로 쉬지 못하고 바로 탑골샘 발원지를 출발했습니다. 내려가는 길에는 스틱에 의지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서인지 올라갈 때보다 고통이 덜했습니다. 탑골샘 발원지를 출발해 유촌마을까지 진행하겠다는 원래의 계획을 접고 이번 여정의 출발지인 내와경로당까지만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올라온 길로 되내려가는 중 이름 모르는 산꽃이 눈에 띈 것은 통증이 덜 해서였습니다.
탑골사입구와 삼백육십오일사를 차례로 지나 다리를 건너면서 태화강 상류의 물 흐름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산만 보이는 오지의 탑골에서 숨어 살면서 천주교를 믿어온 탑골 신자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의 냉담자로 돌아선 저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유촌마을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조금 못 미친 곳에 설치된 의자에 앉아 햄버그를 꺼내들어 시장기를 달랬습니다. 왼발을 절뚝거리며 걸어 내려가 다다른 내와경로당 앞 정자에서 앉아 쉬면서 택시를 불러 울산역으로 향했습니다. 울산역에서 1시간 남짓 기다렸다가 17시6분에 울산역을 출발하는 SRT 열차를 타고 귀가 길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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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산본집에서 멀지않은 한림대 성심병원의 정형외과를 찾아가 진료를 받았습니다. X –Ray 사진을 판독한 의사선생님께서 고관절에는 이렇다 할 이상은 보이지 않으며, 염증이 생겨 통증이 있는 것이니 얼마간 산을 오르는 일은 삼가라면서 처방전을 주셨습니다. 앞으로 보름 간 하루 두 번 식후에 약을 복용하면 나질 것이라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안도했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고관절 통증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이제껏 해온 강을 따라 걷는 일을 계속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강을 따라 걷는다고 해서 평지 길만 걷는 것이 아닙니다. 강안이 가파른 절벽일 때는 빙 돌아가거나 산에 낸 가파른 길을 오를 때도 있습니다. 고관절 통증이 완치되지 않는다면 이런 산길들을 걸어 올라가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직립보행이 얼마나 중요한 가는 1973년 허리를 다쳐 디스크 수술을 받고 나서 확실히 알았습니다. 근무하던 학교를 6개월간 휴직하고 수술을 받은 후 반년 가까이 집에서 주로 누워 안정을 취했습니다. 그때 염원했던 것은 빨리 쾌유하여 다른 사람들처럼 직립보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직립보행이 가능해져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해 1대간9정맥과 여러 지맥들을 종주하고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을 오르내렸습니다.
70세를 훌쩍 넘긴 2000년에 무릎에 무리가 가는 등산 대신 비교적 편안히 걸을 수 있는 강 따라 걷기에 나섰습니다. 다행히도 허리와 다리가 튼튼해 우리나라 6대강을 모두 종주할 수 있었고 나머지 주요강의 발원지 탐방에 나섰습니다.
고관절 통증으로 장시간의 직립보행이 힘들다면 더 이상 강을 따라 걷는 것도 불가능해, 삶의 활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오래 걷는 것은 자제하고자 합니다. 매일 2만보씩 걷는 것을 1만5천보로 줄인 것이 한 달밖에 안 되었는데, 앞으로 얼마간은 5천보로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직립보행에의 염원이 저를 다시 세워 정상적으로 걷게 만드리라 굳게 믿으며 이 글을 맺습니다.
<탐방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