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지역 명산/지역명산 탐방기

A-31.고래산 산행기

시인마뇽 2007. 6. 19. 06:13
                                          고래산


            *산행일자:2007. 6. 17일

            *소재지  :경기 남양주

            *산높이  :백봉587m/고래산529m

            *산행코스:마석경성아파트-마치고개-백봉산-수레넘어고개-고래산-먹치고개 

            *산행시간:9시11분-16시56분(7시간45분)

            *동행    :경동동문산악회원 4명

 


  어제의 종주산행은 새삼 길의 의미를 깨닫게 해준 고마운 산행이었습니다.

세 번의 한북천마지맥 종주를 순탄하게 해온 저희들이 어제는 마치고개-먹치고개의 네 번째 구간에서 엉뚱한 길로 잘 못 내려가 다시 올라오느라 40분여 진땀을 흘렸습니다. 재작년 4월 저 혼자서 이 구간을 지났을 때는 모두 세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맸는데 이번에는 그 때 큰비를 맞으며 학습한 덕분에 백봉산-수레넘어고개의 중간 지점인 송전탑 부근에서 딱 한 번 알바를 했습니다. 이번 알바로 종주산행이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고 더 많은 준비와 세심한 운행이 필요함을 배웠기에 먹치고개에서 산행을 마치고 가진 뒤풀이에서 중국출장차 이번 산행에  참여하지 못한 한 유한준 동문이 혼자서 이 구간을 알바를 하지 않고 종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는데 뜻을 모았습니다. 


  길이란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라고 국어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기에 짐승들이 다니는 이동통로를 길이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또 어쩌다 한 두 사람이 지나간 곳도 길이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은 길이란 많은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산행 중 길 찾기에 애를 먹는 것은 가고자 하는 곳에 아예 길이 없거나 아주 희미하게 나서입니다. 또 길이 여러 방향으로 나있어 어느 길이 제 길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 때도 애를 먹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길 찾기의 어려움을 극복한 분들은 바로 개척자이자 지도자 들입니다. 아예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낸 분은 개척자입니다. 이런 분들이 없었다면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이 극히 한정되어 있어 거의 같은 길만 왔다 갔다 하는 야생동물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답답한 삶을 살아왔을 것입니다. 여러 길 중에서 한 길을 골라 제 길로 이끄는 사람들을 지도자라 불러도 좋을 것입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이길 저 길을 수 없이 다녀서 모든 길이 제 길 같이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산 아래에서 사람 사는 이치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프론티어 들이 있는 가하면  온갖 달콤한 말로 나쁜 길로 내모는 사이비지도자가 있고 제 길을 앞에 두고도 무능해서 엉뚱한 길로 이끄는 무능한 지도자도 꽤 많습니다. 어제 길안내를 잘 못해 죄송했던 제가 새삼 느낀 것은 새롭게 길을 내고 제 길로 바로 이끌어 주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였습니다. 그러기에 알바도 한 인생인 것 같습니다.


  아침9시11분 마석을 조금 못 가 경성아파트 앞에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중국에 출장 간 유한준 동문이 빠지고 동문산악회에 회의장을 내준 조동식 동문이 새롭게 합류했습니다. 8시20분 경 청량리 역에서 마석 행 좌석버스에 올라 탄지 50분이 채 안되어 마치고개 바로 밑의 터널을 막 지나 경성아파트 앞에서 하차했습니다. 짐을 챙긴 후 아파트단지로 너무 깊숙이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느라 옛길을 따라 지난번에 내려선 마치고개의 마루로 올라서기까지 20분이 넘겨 걸렸습니다.


  9시34분 마치고개에서 왼쪽 산길로 들어서 4구간종주를 시작했습니다.

고개 마루에서 얼마고 오르자 왼쪽 아래에 넓게 자리 잡은 비전힐스의 그린필드가 시원스레 보였습니다. 그 건너 멀리로 용문산 정상과 세모꼴의 백운봉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하늘이 쾌청해 한낮에는 성하의 무더위가 위세깨나 부릴 것 같았습니다. 능선 오른 쪽 아래의 철 지난 스키장이 썰렁해보였습니다. 호평의 대단위아파트단지가 가까이 있어서인지 백봉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여러 명 만났습니다.


  10시43분 해발587m의 백봉을 올랐습니다.

스키장 위 암봉을 조금 지나 오른편이 깎아지른 절벽인 봉우리를 왼쪽으로 에돌아 백봉에 다다르자 먼저 오른 많은 분들로 정상이 붐볐습니다.  서쪽 먼 곳에 자리한 북한산과 도봉산의 암봉 들이 너무 산뜻해 한 때나마 바위를 한다고 열 올렸던 대학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내달23일이 제게 록 크라이밍을 가르쳐준 선배 한분이 알프스에서 조난사를 당한지 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선배에게서 닉카바지를 물려받으며 열심히 바위를 할 것을 다짐했지만 재주가 기대에 못 미쳤고 졸업하자마자 지방에서 교직생활을 하느라 더 이상 록크라이밍을 하지 못했지만, 그 때 익힌 도전정신만은 그대로 살아있어 저 혼자서 꾸준히 정맥종주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선배는 1972년에  한국산악회에서 알프스훈련대로 프랑스에 파견을 보냈을 만큼 뛰어난 크라이머 이면서 기타와 사진에도 조예가 깊은 아티스트였습니다. 후배들에 모범을 보인 지도자이자 알프스에도 새롭게 코스를 낸 개척자였기에 많은 후배들이 따랐습니다. 1977년 7월23일 샤모니 산군의 푀테리봉 남서벽에서 조난사를 당한 선배의 죽음을  이 나라의 원로 산악인 손경석 님도 그의 저서 “등산 반세기”에 글을 실어 슬퍼했습니다. 지맥의 마루금은 정상 바로 아래 헬기장을 지나 한강이 보이는 남동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얼마 후 시작된 내림 길이 송전탑까지 계속됐습니다.


  12시15분 40여분의 알바 끝에 다시 송전탑 위치로 되돌아 왔습니다.

백봉에서 한참을 내려가 만난 송전탑에서 조금 올라가 406봉에 다다랐습니다. 2년 전 이곳에서 길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다가 간신히 길을 찾은 터라 이번에도 길 찾기에 과다하게 신경이 쓰였습니다. 406봉에서 송전탑으로 되돌아가다 만난 첫 번째 봉우리에서 동쪽으로 난 산줄기로 들어섰습니다. 이제껏 걸어온 길보다 좁기는 하지만 사람 다닌 흔적이 분명하고 지도상의 길과 방향도 같은 데다 2년 전에 지나간 기억이 어렴풋이 나 주저 않고 이 길로 내려섰습니다. 20분 가까이 내려서자 공활지가 나타났고, 골짜기 건너로 점심을 들기로 예정한 339봉이 높이 보여 길을 잘 못 들었음을 직감했습니다. 계곡으로 내려섰다가 바로 치고 올라가면 339봉에 다다를 것 같아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자 생각보다 계곡이 깊고 숲도 우거져 포기하고 20분 넘게 오던 길로 다시 올라 송전탑으로 원위치 했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주위를 살펴보니 먼저 출발한 데서 송전탑 쪽으로 조금 내려서자 동쪽으로 큰 길이 나 있었습니다. 백봉에서 송전탑에 내려선지 40여분 후에 간신히 제 길을 찾아 동진했습니다만 도가니가 실하지 못해 고전하는 송기훈 부회장에 생고생을 시켜 정말 미안했습니다. 339봉으로 가는 길은 앞 선 알바를 보상할 듯 길이 넓고 편안했으며 길섶의 엉겅퀴 꽃이 눈을 끌었습니다. 송전탑 출발 반시간만에 통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원두막 같은 쉼터의 339봉에 올라섰습니다. 이 곳에서  40분여 송기훈 부회장이 정성들여 준비한 먹거리를 맛있게 들면서 푹 쉬었습니다.


  13시25분 339봉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잠시 후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안부에서 맞은 편 봉우리를 향해 십수m를 오르다가 봉우리 중턱에서 오른 쪽으로 난 좁은 길로 들어서 지난번에 길을 잘 못 들어 수레넘어 왼쪽 아래 휴게소로 내려선 알바를 피해갔습니다. 오른 쪽 산비탈을 타고 내려가다 묘지를 거쳐서 안부사거리를 지난 후 또 다른 송전탑 앞에 다다랐습니다. 왼쪽 방향의 송전탑을 지나서 산불감시초소에 이르러 급경사의 수레넘어 고개 절개지를 따라 철조망 앞까지 내려섰습니다. 철조망 앞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풀숲을 헤치며 나가다 철조망이 끝나는 곳에서 차도로 내려섰는데 반 팔 차림의 다른 대원들은 이 길을 지나느라 애를 먹었을 것입니다. 차도를 건너 왼쪽 위 고개마루로 오르다가 마루에 다다르기 직전 잠시 쉰 후 오른 쪽 길로 들어선 시각이 13시55분이었습니다.


  14시26분 삼각점이 서있는 320봉에 다다랐습니다.

수레넘어 고개 마루에 조금 못 가 오른 쪽 길로 들어서 몇 걸음 옮겼더니 왼쪽 위로 희미한 길이 나타나 이 길을 따라 능선의 임도 길로 올라섰습니다. 군용도로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임도에는 잡풀이 많이 났고 이런 저런 여름 풀꽃들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능선 길에 자리한 해주최씨 상석을 지나 오름 길이 가파른 320봉에 올라서자 지형도에도 없는 삼각점이 세워져 사진을 찍었습니다. 320봉에서 10분도 못 내려가 땅 바닥에 산악군행로 0.5Km 지점이라는 팻말이 쓰러져 있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확 꺾어 다시 임도로 내려섰습니다.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가 마치 사막과 같은 산 사면을 통과해 얼마 후 숲길로 들어서자 나뭇잎 사이로 능선 왼쪽의 골프장이 보였고 오른 쪽 아래로 송전탑이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오름 길은 320봉에서 끝났고 320봉에서 왼쪽으로 내려가 골프장 절개지 꼭지점에 이르렀습니다. 2년 전에 공사 중이었던 골프장이 완공되어 클럽하우스가 바로 아래 보였고 그 오른 쪽으로 고개를 넘는 포장도로도 보였습니다. 절개면 꼭지점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 나무들을 듬성듬성 심어놓은 차도 바로 위의 동물이동통로(?)를 지난 시각이 15시14분이었습니다.


  16시10분 해발529m의 고래산을 올랐습니다.

골프장의 동물이동통로를 지나 절개면의 흙이 유실되지 않도록 심어 놓은 풀이 제법 자라 이 풀들을 붙잡고 절개면을 쉽게 올랐습니다. 2년 전에 비를 맞으며 이 절개면을 오르기가 정말 힘들었기에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도로공사가 끝나고 풀들을 심어 놓아 다행이었습니다. 절개면을 올라 잠시 숨을 고른 후 얼마고 걷다가 이번 산행의 깔딱고개 길을 만났습니다. 20분 가까이 계속된 된비알의 깔딱고개를 눈 딱 감고 단숨에 올랐습니다. 해발470m대의 헬기장에서 깔딱고개 오름은 끝났고 헬기장을 지나 숲 속으로 들어서자마자 지맥 길이 오른 쪽으로 갈리는 능선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무릎이 신통치 않은 송부회장과 새로 합류한 조동식 동문은 갈림길에서 휴식을 취하고 나머지 세 명은 마루금에서 벗어나 고래산으로 향했습니다. 낮은 봉우리 2개를 더 넘어 13-4분 후에 삼각점과 철봉이 세워진 고래산 정상에 올라서자 이제껏 걸어온 지맥길이 한 눈에 들어와 반가웠습니다. 북쪽으로 가까이 천마산이 보였고 그 왼쪽 뒤로 철마산이, 오른 쪽 멀리로 주금산이 흐릿하게 보여 저 먼 길을 탈 없이 걸어온 저희들이 새삼 대견스러웠습니다.     


  16시57분 먹치고개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고래산에서 다시 능선삼거리로 내려와 기다리는 일행들과 합류해 물을 들며 잠시 쉬었습니다. 헬기장 바로 위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남쪽으로 내려서며 2년 전 혹독하게 알바를 한 지점을 생각했습니다. 헬기장에 오르기 한 참 아래에서 오른 쪽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가 희미하던 길도 완전히 끊긴 데다 천둥번개가 쳐대어 엄청 무서웠습니다. 골짜기로 내려섰다가 능선으로 올라서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며 정신없이 뛰어 먹치고개 북쪽 아래 한 음식점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번 산행에서 헬기장을 지나자마자 능선삼거리를 바로 찾은 것은 무엇보다 날씨가 쾌청해서지만 지난번의 알바경험도 일조를 했습니다. 헬기장-먹치고개 중간쯤에 길 양옆에 서있는 바위를 보고 일행 들 모두 사진을 찍고 가자는 생각을 같이 한 것은 아름다운 정경을 보는 눈들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얼마 후 다다른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한 참을 내려가 차도가 지나는 먹치고개에 내려섰습니다. 갑산을 넘어 새재고개까지 진출하겠다는 애당초 계획을 수정해 먹치고개에서 종주산행을 마친 것은 송전탑 부근에서 알바를 해 40분을 까먹었으며 날이 무더워지고 길 찾는 데 신경을 써 많이들 피곤해 해서였습니다. 고개마루 음식점 산야에서 간단히 뒤풀이를 마친 후 덕소로 나가 용산행 전철을 탔습니다.


  생전에 선배께서 들려주었던 로제 듀프라의 유작시 “그 어느 날”을 30주기를 맞아 선배의 영령께 올립니다. 선배께서는 샤모니에서 로제 듀프라의 누이동생 앞에서도 이 시(?)를 노래했다 합니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그 어느 날”시의 전문은 꽤 긴데 선배께서 들려준 시는 어떤 영문에서인지 아래와 같이 짧았습니다. 이제 다시 읽어보니 이 시는 듀프라의 시를 빌려 이 시처럼 짧게 사신 선배께서 남기신 유언처럼 들렸습니다. 삼가 편안한 쉼을 빕니다.


                   그  어느 날             

                                         -듀프라- 

          언젠가 그 어느 날 산에서 죽으면

          오랜 산 친구에 전하여 주게


          어머니에게는 편안한 죽음이었다고

          사내답게 죽었다고, 아버지에게- 


          전하여주게 다정한 나의 아내에게

          내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살아가 달라고


          자식들에게는 내가 밟던 발자욱들이

          고향바위산에 남아 있다고-


          친구여! 산에 조그마한 케륜을 쌓아서

          무덤을 만들어 주게


                -픽켈을 세워서-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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