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장락단맥 종주기 1
*단맥구간:폭산-성현고개-봉미산
*산행일자:2008. 4. 17일(목)
*소재지 :경기양평/가평
*산높이 :폭산992m, 봉미산856m
*산행코스:산음1리정류장-휴양림매표소-폭산-성현-봉미산
-헬기장-새마을회관
*산행시간:10시25분-18시25분(8시간)
*동행 :나홀로
한강장락단맥 종주기를 매듭짓고자 2003년 8월에 진을 빼며 올랐던 폭산을 다시 찾았습니다.
신경수 님이 명명한 한강장락단맥이란 한강기맥이 지나는 용문산의 폭산에서 정북쪽으로 뻗어나가 봉미산, 보리산, 장터산과 왕락산을 차례로 일군 후 홍천강으로 가라앉는 산줄기를 이릅니다. 5년 전 백두산 종주에 대비해 용문사주차장-폭산-봉미산-산음리 길을 훈련코스로 잡아 12시간 넘게 산행을 했으면서도 종주산행의 개념이 없어 홍천강까지 이어볼 생각을 아예 못했으며 산행기를 남기는 것 또한 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지난 3월 봉미산을 다시 올라 보리산을 거쳐 널미재까지 진행했고 두 주전에 나머지 장락산과 왕터산을 오른 후 홍천강변으로 하산해 일단은 장락단맥 종주를 마쳤습니다. 그럼에도 줄곧 뭔가를 빼먹은 것처럼 꺼림직 했었는데 이번 산행으로 장락단맥 종주기를 완성하게 되어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 홀가분했습니다.
산행기를 남기는 것은 제게는 큰일입니다.
산을 오르내리는 시간보다 산행기를 작성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추세여서 당혹스럽기도 합니다. 제게는 산행기가 단순한 산행기록이 아니고 다녀온 산과의 대화록이어서 그럴 것입니다. 산 속의 대화 상대가 점점 늘어나고 또 계속 바뀝니다. 저와의 대화 상대역이 봄철의 풀꽃에서 여름에는 나무 꽃으로, 가을 날 단풍이 한 겨울 설화로 계속 바뀌기에 웬만큼 준비를 하지 않고서는 저들과의 대화를 끌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 거리를 준비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자연 수다가 길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 대화록을 통해 잃어버린 언어들을 다시 찾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새롭게 역동적인 우리 말글을 많이 만나 제 언어로 심화시키는 희열도 같이 느낍니다. 대화의 상대가 산 식구들이어서 사람들이 퍼붓곤 하는 상스러운 욕을 동원하지 않아도 소통이 되어 더욱 기쁩니다. 그래서 제게는 산행기를 쓰는 것이 커다란 기쁨이기도 합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아침7시20분에 출발하는 홍천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 시간 조금 넘어 용문에서 하차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 5-6분 늦게 도착한 8시50분발 석산리행 버스를 타고 비슬고개를 넘어 휴양림으로 들어가는 산음상회 앞을 지났습니다. 기사분이 이 버스가 종점인 석산리로 갔다가 용문으로 돌아가는 길에 휴양림과 보다 가까운 고북까지 들어간다고 알려주어 이곳에서 내리지 않고 종점까지 갔습니다. 홍천의 대명비발디파크가 멀지않은 석산리에 다다르자 주변 풍경이 눈에 익다 했는데 한참 후 작년 여름 고교동창들과 소리산 산행 차 지났던 기억이 났습니다. 9시50분에 석산리를 출발한 버스는 산음리에서 휴양림으로 들어가는 길로 우회전하여 고북버스정류장에서 저를 내려주고 다시 산음상회로 되돌아갔습니다.
아침10시25분 산음1리의 고북버스정류장을 출발했습니다.
바로 앞 삼거리에서 포장도로를 놔두고 오른 쪽 시멘트 길로 들어선 것은 한참동안 개념도를 보고 결정한 것인데 시멘트 길은 이내 끝나버리고 공사장이 나타나 당황했습니다. 그 아래 논둑길을 지나서 차가 다닐 수 없는 천변의 넓은 길을 따라 가다가 왼쪽의 개천을 건너 포장도로로 올라 섰습니다. 삼거리에서 직진해 포장도로만 따라가면 될 것을 너무 개념도만 믿었다가 10분은 족히 늦어졌습니다. 정류장 출발 25분 후에 도착한 산음리 휴양림매표소를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어 입장료는 절약했지만 등산로안내도를 받아 참고하겠다는 제 계획이 차질을 빚어 산림문화휴양관 앞에서 어느 길로 오를 까 한참을 주저했습니다. 자연학습관찰로를 따라 오르기로 하고 다리를 되 건너 삼천골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남서쪽으로 진행했습니다.
11시58분 임도 변 쉼터에 도착했습니다.
심천골을 따라 좌우 양쪽으로 길이 나있어 확실한 등로를 만나기 까지 어느 길이 맞을지 불안했습니다. 계곡을 몇 번 건너 자연학습관찰로가 끝나는 지점에 도착해 장안산악회의 표지기가 걸린 등산로를 찾아서 낙엽송 숲길로 들어섰습니다. 얼마를 더 올라 다다른 풀숲 밭에서오른 쪽으로 꺾고 나서야 이제는 등산로가 확실하다 싶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틈틈이 얼굴을 내민 야생화들과 넓은 잎의 연녹색 야생초가 저를 반겨 산행 시작 후 줄곧 긴장을 풀지 못하고 200m가량 고도를 높였는데도 힘든 줄 몰랐습니다. “봉미산/천사봉”의 표지목이 서있는 임도를 건너 천사봉으로 오르는 나무계단길로 올라섰습니다. 여기에서 시작된 된비알의 까까비탈길은 폭산-성현의 주능선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한 시간 동안 꼬박 400m가까이 고도를 높이며 직등 길을 올라야 했습니다. 임도에서 나무계단을 올라 웬만큼 오르자 진달래꽃만 달랑 피었을 뿐 다른 풀꽃들은 보이지 않았고 나뭇가지에도 새 잎이 솟아나지 않아 땅바닥에 즐비하게 널려있는 죽은 나무들의 시신들이 더욱 을씨년스러워 보였습니다.
13시27분 해발992m의 폭산에 올라섰습니다.
임도 건너 나무계단으로 들어선지 20분이 채 안되어 두 번째 임도에 올라서자 낙석방지용 망을 씌운 흉물스런 절개면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오른 쪽으로 조금 이동해 왼쪽 산길로 올라가 절개면 꼭지점에 이르는 길이 경사가 참 급하다 했는데 이런 급경사 길이 45분간 계속되다가 된봉고개에 다다라서야 그 가파른 기세가 조금 수그러들었습니다. 이 구간의 산 오름이 더욱 힘들었던 것은 오름 길에 낙엽이 수북이 쌓여 미끄러워서였는데 그나마 북 쪽 으로 봉미산이 아주 가깝게 보여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성현고개에서 폭산으로 오르는 능선 길과 만나는 된봉고개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바로 폭산으로 오르는 중 수평으로 휘어진 참나무 줄기에서 두 개의 굵은 줄기가 수직으로 뻗어 오른 보기 드문 참나무를 만나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휴양림입구 출발 2시간 반 넘게 한 번도 쉬지 않고 된비알 길을 걸어 한강기맥이 지나는 폭산에 올라서자 5년 전에 없던 “천사봉 1004m”로 표기된 정상석이 서 있었습니다. 아직은 나목인 정상의 나무들이 한 낮에 내리쬐는 햇빛을 가려주지 못한데다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섭씨 25도의 온기가 5년 전 8월의 복더위를 방불했습니다.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용문산과 중원산, 그리고 도일봉이 2003년 한 여름에 모두 올랐던 산이어서 더욱 가깝게 보였습니다.
13시47분 폭산 정상에서 한강장락단맥 종주를 시작했습니다.
폭산 정상에서 20분간 쉬면서 점심을 들고 난 후 봉미산으로 향했습니다. 반시간 가까이 올라선 길을 되짚어 된봉고개로 내려가는 데 20분이 채 안 걸렸습니다. 경사가 급해 땅 속 깊이 들어간 스틱에 체중을 실었더니 확 휘어졌다 부러져버려 어비산으로 갈리는 삼거리봉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두 발이 푹푹 빠지는 급경사 길로 내려서기가 엄청 불편했습니다. 우중충한 낙엽송이 연초록색으로 치장하고 진달래꽃이 만개한 해발고도600m 대로 내려가 임도에 도착한 시각이 14시42분이었습니다.
15시27분 성현고개에 내려섰습니다.
임도에서 조금 떨어진 송전탑에서 성현고개로 내려서기까지 40분여 진달래 꽃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비슬산이나 고려산처럼 진달래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능선에 바짝 붙어 활짝 핀 진달래가 열어놓은 연분홍 꽃길이 환상적이었습니다. 성형고개에서 봉미산으로 오르는 길도 경사가 만만치 않아 중간에 몇 번이고 쉬면서 오른 5년 전의 힘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성현고개 바로 위 그늘에서 10분을 쉬면서 이번에는 쉬지 않고 단숨에 올라보겠다고 각오를 다진 후 길섶의 다소곳한 양지꽃과 현호색을 사진 찍느라 잠깐 잠깐 멈춰서인지 "봉미산1.34Km/성현고개1.4Km"의 표지목 지점까지 급경사 길을 한결 수월하게 올랐습니다.
17시3분 해발856m의 봉미산에 올랐습니다.
성현고개에서 봉미산 정상까지의 중간 쯤을 지나자 암릉을 오르는 길과 평평한 흙길이 번갈아 나타났습니다.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말라있는 늪지(?)를 이번에는 오른 쪽으로 돌았습니다. 지난달 가평의 설곡리에서 올랐을 때 이 늪지를 왼쪽으로 돌아가느라 보지 못했던 산음리행 하산 길을 5년 만에 다시 만나자, 운동화를 신고 하산하는 한 분과 함께 내려간 기억이 났습니다. 백두대간 종주를 벌써 마치고 국내에서 오른 산이 200산을 훨씬 넘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간 종주는 고사하고 100산 산행을 갓 넘긴 제가 운동화만 보고 그 분을 산행초보자로 예단했던 5년 전의 어리석음도 같이 생각났습니다. 늪지로 내려가 갈대(?)들을 사진 찍은 후 가파른 바위봉을 넘어 봉미산 정상에 다다라 한강장락단맥의 첫 구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북으로 곧게 뻗은 나머지 산줄기와 보리산 및 장락산이 정겹게 보이는 것은 한번 올라봤다는 데서 오는 반가움 때문일 것입니다.
18시25분 산음리 마을회관을 200m가량 앞둔 포장도로에서 승합차에 올라 8시간 만에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늪지로 되돌아가 산음리로 하산했던 5년 전의 하산 길을 버리고 이번에는 정서쪽으로 뻗어 내려가는 산줄기를 따라 내려갔습니다. 같은 산이라도 그 때마다 산행코스를 달리하고자 애쓰는 것은 새 길에 대한 동경 때문으로 용문사주차장-중원산-폭산의 오름 길 대신 산음휴양림-된봉고개-폭산의 가파른 길로 오른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704봉과 705봉을 차례로 지나 헬기장으로 내려서기까지 반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헬기장에서 잘 조림된 낙엽송림을 지나 내려선 임도를 가로질러 조금 더 내려가자 주홍색의 양철지붕 폐옥이 나타났고 이곳에서 산나물을 함께 따는 부부 두 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사람 사는 집이 폐가가 되었다면 그 앞의 텃논이나 텃밭 또한 버려진 것이 당연한데도 잡초가 무성한 공터를 보자 이 논과 밭을 일구며 먹고 산 선조들께 죄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1시간 5분 동안 3.8Km의 하산 길을 거의 다 걸어 좁다란 포장도로로 내려선 후 왼쪽으로 꺾어 0.8 km 떨어진 마을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앞서 만난 부부께서 타고 가던 차를 세워 포장도로를 걷는 저를 태웠습니다.
성남 집에서 승합차를 끌고 봉미산을 자주 찾는다는 이 분들이 막차가 끊겨 당혹스러워 했던 저를 양평읍내까지 태워줘 정말 고마웠습니다. 대부분의 차들이 손을 흔들어도 그냥 획 지나가버리는 데 이제껏 우정 차를 세워 저를 태운 분들은 모두가 산을 즐겨 오르는 분들이어서 과연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는 공자님 말씀이 허언이 아님을 확인했습니다. 1997년 금융위기를 겪은 후 산을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해 더러는 그만 올라왔으면 하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뜨입니다만 이 사람들도 오래 산을 찾다보면 이 두 분들처럼 산을 사랑하고 뭇 사람들에 인자해지리라 기대해보는 것은 산은 사람들보다 더 사람들을 사람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산행사진>
'V.지맥·분맥·단맥 > 한강장락단맥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강장락단맥 종주기 3 (최종회:널미재-장락산-미사리홍천강변) (0) | 2008.04.22 |
---|---|
한강장락단맥 종주기 2 (봉미산-보리산-널미재) (0) | 2008.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