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지맥·분맥·단맥/한강장락단맥

한강장락단맥 종주기 3 (최종회:널미재-장락산-미사리홍천강변)

시인마뇽 2008. 4. 22. 11:15

                                   한강장락단맥 종주기3

 

              *단맥구간:널미재-장락산-미사리홍천강변              

              *산행일자:2008. 4. 3일(목)

              *소재지  :경기가평/강원홍천

              *산높이  :장락산627m, 왕터산412m

              *산행코스:널미재-장락산-깃대봉-왕터산-미사리홍천강변

                              -미사2리 버스정류장

              *산행시간:8시21분-16시36분(8시간15분)

              *동행    :나홀로 

     

 

  경기가평의 설악면과 강원홍천의 서면을 어우르는 장락산은 한강장락단맥의 거의 끝자락에 위치한 바위산입니다. 2003년 8월 용문산주차장을 출발해 중원산과 폭산을 거쳐 봉미산을 오른 후 산음리로 내려가 하루산행을 마친 적이 있습니다. 한강기맥이 지나는 용문산의 폭산에서 갈라져 나온 이 산줄기가 남한 땅의 웬만한 산줄기는 거의 다 오른 신경수님이 한강장락단맥이라 명명한 바로 그 산줄기였습니다. 지난 겨울 경기 땅의 몇 개 지맥 종주를 마치고나자 이번에는 한강장락단맥의 남은 산줄기를 마저 이어보자는 욕심이 동해 두 주전에 다시 봉미산을 올라 보리산을 거쳐 널미재까지 진출했고, 어제야 비로소 남은 장락산과 왕터산을 마저 오른 후 홍천강변으로 하산해 한강장락단맥에 발을 들인지 4년 반 만에 단맥종주를 모두 마쳤습니다.


  어제 오른 장락산은 청명이 하루 밖에 안 남았는데도 아직도 본격적으로 봄을 불러들이지 않았습니다. 봄의 화신인 생강나무의 노랑꽃은 온 산에 흐드러지게 피었지만 한수 이남의 다른 산에서라면 벌써 온 산을 붉게 물들였을 진달래는 이 산에서는 뭐가 그리 조심스러운지 아직도 연분홍 꽃봉오리를 열지 않았습니다. 성미 급한 벌과 나비들이 참다못해 봄을 찾아 나섰는데 정작 이들을 반 긴 것은 장락산의 주인인 꽃들이 아니라 이 산을 지나는 과객인 저였습니다. 저 역시 이런 저런 봄꽃들을 탐해 이 산에 올랐기에 달랑 생강나무 한 수종만 노랑꽃을 피운 장락산이 그리 곱게 보이지 않던 차 홍천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에 제대로 가누기기 조차 힘든 몸을 이끌고 이 산을 찾은 벌과 나비를 보자 나몰라하고 그냥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안부에서 휴식 중인 제 주위를 윙윙거리며 맴도는 벌 한 마리는 이 봄의 전령으로 알고 반갑게 맞은 제 곁을 좀처럼 떠나지 않았고, 왕터산 조금 못가 무명봉에서 만난 호랑나비는 사뿐히 삼각점에 내려앉아 꽃을 기다리는 이 나비의 춘심을 카메라에 담는 제가 고마웠던지 삼각점 한 곳에서 제게 오랜 시간 포즈를 취해주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산에서 꽃을 피워 봄을 여는 것이 어찌 이 나무들만의 일이랴 싶었습니다. 저는 물론 벌과 나비 누구하나도 이 나무들에 너무 늦게 봄을 여는 것이 아니냐고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우 내내 딴 짓하다가 그저 새 옷을 갈아입는 것으로 봄맞이 준비를 다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나 어디에선가 아무도 모르게 숨죽이고 있다가 햇살이 따사로워지자 기지개를 펴고 봄나들이를 나선 벌과 나비들이 살을 에는 삭풍을 견뎌내며 겨울 산을 지켜온 나무들에 왜 그리 늦느냐고 투덜댈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산의 주인은 때만 되면 어디론가 사라져 몸을 숨기는 사람이나 동물들이 아니고 이 산에 붙박이로 뿌리를 내린 나무와 식물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태양은 따사로운 햇살을 내려주고 상공의 구름은 감로수 같은 단비를 내려 이 산이 어서 봄을 맞도록 도와주고 있는데 기껏해야 산불이나 내온 사람들이 더 빨리 봄을 즐겨보자고 이 산의 주인을 비난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아침8시21분 널미재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널미재를 지나는 모곡 행 첫 버스는 상봉터미널을 아침6시50분에 출발했습니다. 1시간20분을 달려 올라선 널미재에서 하차하여 짐을 챙긴 후 길 건너 자작나무 숲속으로 들어섰습니다. 이내 왼쪽 능선으로 올라가 북쪽으로 내닫는 한강장락단맥을 밟기 시작한지 몇 분 안 걸어 왼쪽 위곡리로 하산하는 삼거리를 지났습니다. 서쪽 산 밑에서 불어올라오는 바람이 냉랭해서인지 생강나무의 노랑꽃을 제외하고는 나무 꽃이나 풀꽃 어느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암봉이 딱 버티고 서있는 안부에 다다라 15분 넘게 암봉을 왼쪽으로 에돌며 로프를 잡고 된비알 길을 올랐습니다. 암봉 위의 밋밋한 능선 길에 자리한 아주 작은 뾰족 바위들은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옮겨놓은 미니아춰 같았습니다. 


  10시11분 표지석이 서있는 장락산을 올랐습니다.

미니아춰 능선 길을 지나  다다른 평평한 무명봉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627.2봉에 삼각점이 박혀 있었습니다. 널미재 출발 1시간 후에 올라선 이봉우리가 지도에 나와 있는 장락산 정상이다 싶어 조금 내려가 편히 쉴 만 한 곳에서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따라 마시며 10분 여 쉬었는데 장락산의 정상석은 이곳에서 북쪽으로 40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627.2봉을 지나자 암릉 길이 시작됐습니다. 왼쪽 아래로 공사 중인 고속도로가 보이는 능선 길을 따라 걸으며 암봉 몇 개를 더 지나 로프를 잡고 봉우리에 오르자 깔끔한 “장락산 627m"의 표지석이 서있었습니다. 서쪽 저 만치로 북한강이 보였고 바로 아래에 미 국회의사당을 빼 닮은 엄청 큰 하얀 건물이 보였는데 나뭇가지들이 앞을 가로 막아 건물의 전모를 볼 수는 없었습니다. 너른 돌들이 깔려있는 공터의 정상에서 편히 쉬며 따사로운 햇살을 맞는 동안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초록색의 예쁘장한 새한마리를 카메라에 담아보고자 했으나 순간포착이 서툴러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11시55분 왼쪽 아래로 미사리 길이 갈리는 삼거리 안부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장락산 정상에서 한참을 쉰 후 10시35분에 자리를 떴습니다. 하산지점인 미사리 부근에서 설악으로 나가는 버스가 17시10분에 있다고 해 서둘러 하산하다가는 2시간 이상 차를 기다려야하기에 쉴 것 다 쉬고 볼 것도 다 보면서 산에서 시간을 죽이는 것이 상책이다 싶어 정상에서 무려 24분을 쉬었습니다. 길지 않은 암릉 길을 지나자 능선 왼쪽으로 안전산행을 위한다며 노란 줄을 쳐놓았는데 아무리보아도 그런 갸륵한 뜻에서 한 일은 아닌 것 같고 그 아래가 사유림이어서 무단출입을 막고자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정도의 경사 길에 안전을 위해 줄이 필요하다면 웬만한 능선 길은 보기 흉한 줄을 다 쳐놓아야 맞는 것 아닌가 싶었습니다. "장락산 1Km"라 쓰인 아크릴 판이 땅바닥에 놓여 있는 능선 길을 지나 밋밋한 봉우리에 올라서자 바람이 제법 냉랭했습니다. 주상절리의 암봉을 옆으로 돌며 만난 진달래는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고 산 날씨를 더 관망하는 듯 했습니다. 왼쪽 아래로 2km를 내려가면 미사리에 닿는 안부삼거리에 "장락산2.4Km/왕터산4.3Km"라고 쓰인 이정표가 서 있었는데 이곳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점심으로 떡을 꺼내 드는 동안 벌 한 마리가 제 머리 위를 윙윙거리며 맴돈 것은 아직 이 산에는 벌을 끌어들일만한 꽃향기가 나지 않아 그동안 생경했을 떡 냄새에도 마음이 동했던 것 같습니다. 새까만 까마귀 두 마리가 머리 위를 날다가 큰 나뭇가지에 앉아 까옥까옥 울어대고 이에 질세라 작은 새 몇 마리도 연신 재잘거렸는데 윙윙거리는 벌의 날개 짓 소리가 이에 더해지자 이들의 삼중주가 마치 어서 빨리 이 산에 꽃을 피워달라는 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13시15분 해발559.1m의 깃대봉을 올랐습니다.

낭떠러지 기암들에 뿌리를 내린 낙락장송들이 많이 보여 혹시 장락산이라는 산 이름을 낙락장송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두 곳의 암봉을 에돌아 깊숙한 안부로 내려섰다가 오른 쪽 동 사면에 낙엽송이 빽빽하게 들어선 능선 길을 오르며 왼쪽 아래 홍천강을 연신 훔쳐보았으나 나뭇가지들로 가려 감질이 났습니다. 삼거리를 지나 똑바로 오르다 잠시 멈춰 서서 뒤돌아보자 남쪽 멀리로 보리산 산줄기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산림청의 산불감시 비행기가 이산 위를 낮게 나는 가 했는데 얼마 후 초음속 초계기가 굉음을 내며 하늘을 날자 쉴 새 없이 재잘거리던 산새들도 잠시 소리를 죽였습니다. 미사리 갈림길 출발 1시간이 거의 다되어 깃대봉(?)에 다다르자 호랑나비(?) 한 마리가 삼각점 위에 사뿐히 내려 앉아 얼마고 자리를 뜨지 않아 요염한 그 자태를 카메라에 담아올 수 있었습니다. 암봉 두 곳을 우회해 전망바위에 오르자 북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홍천강의 시원한 물줄기가 한 눈에 들어와 가슴이 탁 트였습니다. 문학적 상상력이 조그만 더 충만해도  시 한 수쯤은 너끈하게 지어 읊을 만한 홍천강의 저 비경을 보자 35-6년 전 인근의 홍천강변 모곡유원지를 아이들과 함께 다녀온 집사람이 생각났습니다.


  14시49분 해발410m의 왕터산에 다다랐습니다.

S자로 휘어 도는 홍천강과 합수점 건너로 흐릿하게 보이는 북한강의 청평호를 카메라에 옮겨 담으며 23분을 쉬고 난 후 14시8분에 전망바위를 출발했습니다. 4-5분후 올라선 “장락산4.75Km/왕터산2.0Km"의 표지목이 서있는 봉우리에서 내려다 본 홍천강의 절경은 앞서 쉬었던 전망바위 못지않았습니다. 깊숙한 안부로 한참을 내려갔다가 암릉 길을 막 지나 표지목이 서있는 왕터산에 오르기까지 왼쪽 아래로 하산 길이 나 있는 갈림길 두 곳을 지났습니다. 널미재에서 왕터산까지는 거의 곧바른 북행길이어서 능선을 이어가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지만, 왕터산에서 미사리 홍천강변으로 내려서는 길은 종종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가랑잎에 가려서 제대로 보이지 않아 생각보다 까다로웠습니다. 어렵사리 길을 이어가 능선에서 계곡으로 내려서다가 왼쪽으로 표지기가 걸려있어 그 방향으로 횡단을 했는데 더 이상 표지기는 물론 길도 보이지 않아 난감했습니다. 무조건 왼쪽 능선으로 올라서 앞에 보이는 마지막(?) 봉우리를 향해 전진하다가 다시 왼쪽 아래 계곡방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홍천강변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올 것 같았는데 이내 길 대신에 물이 조금 흐르는 계곡이 나타났습니다. 한 여름이라면 뚫고나가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해 보이는 계곡 안으로 들어가 조심해서 내려가다가 10분이 채 안되어 사람 다닌 흔적이 흐릿하게 보이는 길을 만났습니다. 계곡 오른 쪽 옆으로 난 이 길을 따라 2-3분을 걸어가다 계곡을 건너 몇 걸음을 옮기자 홍천강변으로 내려가는 넓은 길이 나타나 비로소 긴장을 풀었습니다.


  13시48분 미사2리 버스정류장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차도에 도착해 한강장락단맥 종주를 마무리했습니다. 계곡에서 벗어나 만난 넓은 길을 따라 홍천강변으로 내려가다 잠시 멈춰 서서 작은 연못과 그 아래 한옥 한 채를 사진 찍었습니다. 비포장 차도를 건너 홍천강으로 내려가고자 또 한 채의 한 옥 옆을 지나다 앞마당에서 일하시는 주인아주머니를 뵙고 정류장 가는 길을 물었습니다. 죽어라고 개가 짖어대는 바람에 더 이상 강변으로 내려가는 것은 포기하고 비포장도로로 되돌아가 미사2리 정류장을 향해 남진했습니다. 얼마 후 소나무 숲을 지나는 차도에서 홍천강이 바로 아래로 보여 강변으로 내려갔습니다. 곱디고운 모래들과 잔잔하게 물결이 이는 강물이 저녁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정경을 카메라에 담고 나자 국민가수 이미자님이 부른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노래가사가 생각났습니다. 이 노래가 방송을 타기 시작한 1970년대에는 엄마나 누나더러 같이 강변에서 살자고 응석을 부려도 됐겠지만 요즈음은 그 강변에 팬션이 들어 서있어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14시36분 미사2리 버스정류장에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맥주 한 캔이 간절하게 생각났지만 가게가 없어 1시간 가까이 꾹 참았다가 17시30분 발 설악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송산리를 지나서는 승객이라곤 저 혼자여서 기사 분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 분께서 장락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하얀 건물이 통일교박물관이며 주변 건물들도 통일교에서 세운 청심학교 건물이라고 들려주었습니다. 17시55분에 설악리를 출발하는 청량리행 시내버스를 탈 수 있도록 기사분이 신경써주어 19시 조금 지나 구리에서 옛 직장동료를 만날 수 있었기에 이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봄이 아직 안 왔다고 장락산의 나무들에 투정을 부려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온 몸으로 겨울을 이겨내고 머지않아 이 자연에서 봄을 끌어내는 일은 나무가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해낼 수 없습니다. 남의 잔치 상에 달랑 숟가락만 들고 가 빨리 밥상을 들이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더 이상 봄이 늦는다고 짜증을 내다가는 자연으로부터 영원히 추방될 수도 있겠다 싶어 노랑꽃이 만개한 생강나무를 만나본 것만으로도 장락산에 고맙고 또 고마워할 생각입니다. 

 

 

                                                             <산행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