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2)
*산행일자:2008. 5. 11일(일)
*소재지 :경남산청/합천
*산높이 :1,108m
*산행코스:장박마을-너백이쉼터-황매산-황매평전-산불감사초소-안부
-둔내리황매산입구
*산행시간:11시15분-17시35분(6시간20분)
*동행 :경동고24기등 총 18명
(24기서중원회장, 김주홍부부, 김남진부부, 장광종부부, 장병일부부, 김종화,
이규성, 정준식, 이명재, 이기후, 백인목, 우명길, 29기정병기부부)
열이틀 만에 고교동창들과 함께 다시 찾은 황매산은 분홍색의 철쭉꽃으로 성시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직 몽우리를 터뜨리지 않은 철쭉꽃나무가 대극장의 무대 뒤에서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곳저곳에 소극장을 열어 손님을 끌어 모았던 4월의 진달래꽃은 이달 들어 온데 간 데 없이 사라지고 드디어 철쭉나무들이 황매산 평원에 꽃 몽우리를 터뜨리고 분홍 꽃을 활짝 피워 대극장의 막을 올렸습니다. 철쭉꽃에 무대를 제공해준 황매산 평원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고”와 드라마 “주몽”을 촬영했을 만큼 드넓어 스펙타클한 영화나 드라마의 무대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고원입니다. 이 넓은 무대를 가득 채운 황매산의 철쭉꽃은 여느 산의 철쭉들과는 달리 바짝 키를 낮추어 무대 위로 뛰어든 관객들을 돋보이게 하는 아량도 베풀었습니다.
철쭉은 이른 봄에는 꽃샘추위로 냉해를 입을까 몸을 사리다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진달래가 다 지고난 후 봄이 무르익어야 잎과 함께 꽃을 피우는 진달래과의 낙엽성 관목으로 여러 개의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진달래에 연이어 핀다하여 연달래로, 화전을 부쳐 먹는 진달래꽃을 참꽃으로 부르는 것과 구별해서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다하여 개꽃으로, 화사한 꽃을 피워 가던 길을 더 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만든다 하여 척촉(擲燭)으로도 불리는 철쭉꽃의 학명은 로드덴드론 슈리펜바키(Rhododendron schlippenbachii)라고 합니다. 학명의 뒷자리에 나오는 슈리펜바키(Schlippenbachii)가 우리나라 동해안에서 철쭉꽃을 처음 발견하여 서방에 소개한 한 러시아 해군장교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글을 읽고 나서, 그렇다면 혹시 우리나라가 혹시 철쭉꽃의 종주국이 아닐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꽃 그늘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 읽을 만큼 꽃잎이 넓은 목련꽃이 이 꽃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얘기를 듣는 것은 꽃이 피면 온 세상이 환해져 좋은데 꽃이 지고나면 땅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지저분해 싫다는 것입니다. 목련도 뜰 안이나 공원을 피해 산에서 피거나 꽃의 크기를 조금 줄인다면 꽃샘추위를 무릅쓰고 소담스런 꽃을 피운 공치사는 그만두더라도 떨어진 꽃잎이 지저분하다는 언짢은 이야기는 듣지 않을 것입니다. 이점에서 철쭉은 목련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생각입니다. 우선 바글대는 속세를 떠나 산에다 꽃을 피우기에 떨어지는 꽃이 어떠어떠하다고 비난하는 밉살스런 사람들을 만나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공자의 말씀대로 어진이가 산을 좋아하는데 땀 흘리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지는 꽃에 대고 욕을 해대서야 인자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철쭉은 시든 꽃잎을 하나하나 떨어뜨리지 않고 목련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앙증스런 깔때기 모양의 통꽃을 통으로 빼낸다는 것입니다. 만개한 꽃이 열흘을 넘기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 해도 땅에 떨어지고 나서도 고운 자태를 잃지 않고자 애쓰는 철쭉꽃을 보고나서 황매산을 찾은 많은 분들이 나이 들어 이 꽃처럼 추하지 않게 사라져 감을 배워간다면 황사가 내습할 때보다 더 많은 먼지를 마시고 황매산을 오르내린 것이 보람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오전 11시15분 경남산청의 장박마을 조금 못 미쳐서 하루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아침7시10분경에 잠실운동장을 출발해 경부와 대진 고속도로를 차례로 달리다가 생초IC를 빠져나와 장박리 마을 앞에 다다르기까지 무탈하게 잘 왔습니다. 장박리 마을을 100여m 남겨두고 먼저 온 차들로 길이 막혀 더 들어가지 못하고 하차해 황매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시멘트 길을 쭉 따라가면 떡갈재에 이르게 되는데 햇빛을 피하고자 초반에 숲길로 들어선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황매산의 철쭉꽃을 보려 모여든 인파들로 길이 막히고 먼지가 일어 짜증스러웠지만 달리 묘안이 없어 꾹 참고 산 오름을 계속했습니다. 샘터를 지나 다다른 묘지에서 왼쪽으로 꺾어 봉우리 하나를 우회하는 길에 접어들자 소통이 더 늦어져 너백이쉼터에서 점심을 들겠다는 계획을 바꾸어 가다가 적당한 곳에서 점심을 들며 오가는 사람들이 좀 뜸해지기를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쉴 곳을 찾았습니다.
12시22분 너백이쉼터로 이어지는 능선 길로 올라서서 길에서 조금 떨어진 평평한 적지를 찾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 밀려서 올라왔기에 힘은 들지 않았지만 시간지체와 먼지가 이번 산행을 어렵게 하는 전조 같아서 조금은 걱정됐습니다만 그래도 점심시간은 즐거웠습니다. 총18명이 준비한 점심상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차려졌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부부 동반해 온 다섯 쌍이 푸짐하게 상을 차려 언제고 그렇듯이 이번에도 성찬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음식이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매체였다 합니다. 설렁탕의 어원이 선농제 때 임금과 백성이 한 솥에 끓여 먹은 탕에서 유래했다 하는데 그렇다면 설렁탕은 임금과 백성들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데 일조를 했음이 틀림없습니다. 새 곳으로 이사를 가면 떡을 돌리는 풍습이 유지되는 것도 우리네 모두가 떡이 갖고 있는 소통의 기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행식구가 늘어날수록 소통의 시간이 더 필요하기에 자연 점심시간이 길어집니다. 혼자서 10분이면 족한 점심시간이 40-50분으로 늘어져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제는 그 정도의 시간은 당연하다고 전제하고 산행계획을 짜기에 초조해 하지 않고 즐겁게 점심시간을 보냅니다.
13시2분 점심식사를 끝내고 다시 산 오름을 이어갔습니다.
경사진 길을 15분가량 올라 떡갈재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너백이쉼터에 다다르자 철쭉 꽃이 환하게 핀 산상화원이 펼쳐졌습니다. 왼쪽 아래로 지난번에 눈길을 주지 못해 그냥 지나쳤던 합천호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와 더욱 반가웠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른 후 철쭉 군락지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여기저기에 듬성듬성 꽃을 피운 진달래와는 달리 떼지어 모여 있는 철쭉꽃들이 군락지를 가득 메워 다른 꽃들에 곁을 주지 않았습니다. 철쭉 꽃 군락지 사이로 난 길가의 떡갈나무도 새롭게 치장했습니다. 지난 번 혼자 왔을 때는 잎이 나지 않아 시꺼멓던 떡갈나무가 한 열흘 남짓한 사이에 떡을 싸고도 남을 만큼 넓은 연초록의 잎을 내어 훌륭하게 그늘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연초록의 떡갈나무 잎들과 선분홍의 철쭉꽃들로 산색이 다채로운 군락지를 지나는 중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느라 일행들 모두가 한껏 즐거워하는 모습들이었습니다.
14시11분 해발1,108m의 황매산을 올랐습니다.
철쭉꽃 군락지에서 가파른 길을 치켜 올라 남덕유산에서 황매산을 거쳐 진주남강으로 침잠하는 진양기맥의 산줄기가 왼쪽으로 갈리는 능선 삼거리에 올라서자 오른 쪽 가까이에 자리한 이 산 정상이 산객들로 꽉 차 발 딛을 틈도 없어보였습니다. 지난번에 오른 터라 이번에는 옆으로 그냥 지나 앞 봉우리로 향했습니다. 여기서부터 몇 개의 암봉을 완전히 통과하여 황매평전으로 내려서기까지 엄청 시간이 걸렸고 풀풀 나는 먼지로 많이 괴로워들 했습니다. 애써 시즌을 피해 산행하거나 시즌 중에는 평일이나 무박으로 산행해 단풍철에 내장산과 백암산을 연계해 산행을 했어도 이리 밀리지는 않았습니다. 좀 더 빨리 가려고 길옆으로 빠져 가다가 다시 길로 돌아오는 사람들로 제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들은 더욱 지체되었습니다. 시간지체와 먼지를 일으킨 주범인 사람들이 이렇게 괴로운데 사람들의 횡포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풀숲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한다면 길도 아닌 숲길을 마구 밟아 새 길을 내는 잔인함은 거두어야 할 것입니다. 산객들만 나무랄 일도 아닙니다. 철쭉 꽃 축제를 연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다 내놓고 좁은 길이 메져 터져도 내버려두는 당국의 무신경이 더욱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멀지 않은 바래봉에는 나무계단 길을 설치해 길의 황폐화와 먼지발생을 막고 곳곳에 데크를 만들어 사진을 찍어도 소통에 방해가 안 되도록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긴 시간 잘 참아 황매평전으로 내려서자 천국과 지옥이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지옥의 암릉길을 빠져나와 천국의 황매평전으로 들어서는 일행들 모두 가득히 들어선 연달래를 보고 천상의 화원을 여기 황매평전으로 누가 끌어내렸는지 몰라도 이정도 산상의 화원이라면 시간지체와 먼지쯤은 참을 만 하다고 생각을 바꾼 듯 보였습니다. 찡그렸던 얼굴을 다시 펴고 잠시 짬을 내어 카메라 앞에 서서 포즈를 짓기도 했습니다.
15시50분 산불감시초소에 집결했습니다.
황매산 정상에서 암릉길을 걸어 내려와 대 평원을 가로질러 산불감시초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40분이 걸렸으니 지난 4월 산행보다 점심시간을 빼고 나면 배는 더 걸린 셈입니다. 기사분이 제게 모산재주차장에는 차들이 꽉 차 더 올라가서 둔내 차도 변에 버스를 세워놓았다고 전화를 해와 아무래도 하산코스를 변경해야 할 것 같다고 일행들에 전하고 이제부터 저를 앞서지 말 것을 당부를 한 후 산불감시초소를 출발했습니다. 불과 열이틀 전에 공사 중이던 정자가 그새 산불감시초소보다 훨씬 크게 지어져 이제 쉼터이름을 바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철쭉단지가 끝나지 않아 길은 넓은데 먼지는 앞서 지나온 암릉 길보다 몇 배 더 심했습니다. 중간 중간의 억새 숲이 아무리 먼지를 잡아둔다 해도 길 섶의 철쭉꽃들이 사람들이 오르내리느라 일으키는 먼지를 피할 수는 없어 먼지세례를 듬뿍 받고 있었습니다. 이토록 먼지가 일도록 방치하면서도 “제12회황매산 철쭉제례”를 알리는 플래카드에 주관처로 이름을 올린 합천군의 이런저런 단체가 14개나 되어 그들의 무신경에 놀랐습니다.
16시30분 모산재 앞 안부 삼거리에 내려섰습니다.
먼지만 일지 않았다면 환상의 꽃길이었을 철쭉꽃 군락지의 끝자락에서 오른 쪽으로 급하게 내려가 안부에 다다르는 동안 몇 번이고 모산재 암릉길을 유심히 바라본 즉 암릉 길 끝자리의 순결바위 근처에 하산을 기다리는 산객들이 엄청 많아 보였습니다. 웬만하면 모산재-순결바위 암릉길로 안내하겠다는 생각을 견지한 것은 먼지로 생고생을 한 일행들에 황매평전과는 전혀 색다른 바위의 비경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습니다. 그 길로 가다가는 저녁 7시안에 버스를 탈 수 없을 것 같아 별 수 없이 포기하고 안부에서 왼쪽으로 꺾어 큰골 길로 들어서자 비로소 그늘도 지고 먼지도 일지 않는 정상적인 산길이 시작됐습니다. 중간쯤 내려서서 한자리에 모여 쉬면서 남은 먹거리를 모두 나눠 먹었습니다. 산행 중 우의가 돈독해지는 정도는 산행시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고 같이 모여 먹는 횟수에 비례한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기에 가져온 먹거리를 점심시간에 모두 풀지 않았나 봅니다.
17시35분 둔내 쪽 황매산입구에 도착해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습니다.
큰골에 흐르는 물이 깨끗하지 못하고 수량도 부족해 먼지를 씻어내지 못하고 차도로 올라섰습니다.모산재에서 황매평전 바로 아래 제례본부가 차려진 몽골텐트의 가건물까지 이어지는 차도로 올라서서 오른 쪽 아래로 조금 걸어 내려가 황매산 입구 차도삼거리에 닿았습니다. 차도 삼거리에서 왼쪽 위에 주차한 차를 찾아 하루 산행을 마무리하고 귀경길에 올랏습니다. 귀경길에 지나온 합천호는 과연 큰 저수지였습니다. 낙동강제1지류인 황강을 막아 댐을 만든 합천호 다목적댐은 갈수기에 낮아진 수위로 맨 허리가 그대로 드러나 보였습니다. 대전으로 빠져나와 서중원회장이 낸 삼겹살과 반주를 맛있게 들면서 다음 분기는 계곡산행을 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2006년 10월 공룡능선 등정을 목표해 모임을 갖기 시작한 고교동기 산모임이 이번 산행으로 산림청에서 선정한 명산100산 중 설악산, 덕유산, 포천백운산, 지리산, 방태산, 주왕산, 오대산과 황매산 등 여덟 산을 올랐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 분기마다 명산100산 중에서 한 산을 골라 오르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100산 모두 오르려면 18년을 더 산행해야 합니다. 그 때 되면 나이들이 80세가 다 되기에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오른다면 못 오를 것도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한 산 한산 오르다 보면 명산도 오르고 나이도 같이 먹어갈 것입니다. 더 늙어 나이 먹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것보다 명산을 탐방하며 더불어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한다면 저만치서 달려오는 나이도 비껴갈지도 모를 일이기에 가까운 동기들에 동참을 권유해볼 생각입니다.
<산행사진>
이명재, 이기후, 김종화, 정준식, 우명길과 29기정병기 부부)
황매산(1)
*산행일자:2008. 4. 29일(화)
*소재지 :경남합천
*산높이 :1,108m
*산행코스:장박마을-너백이쉼터-황매산-베틀봉-모암재-순결바위
-영암사지-모암재주차장
*산행시간:11시10분-16시20분(5시간10분)
*동행 :은하수 산악회원
(아래 사진은 은하수산악회의 수리님이 찍은 것을 전재했습니다. 수리님에 감사드립니다)
5년 전 철쭉 꽃 축제기간 중에 한번 다녀간 황매산을 그때보다 열흘 가량 일찍 찾아 다시 오르자 마치 개장 직전의 해수욕장을 들르는 것 같았습니다. 며칠 후면 떼 지어 몰려들 손님을 맞을 마음에 몽우리 진 철쭉이나 수온이 덜 오른 바다물이야 가슴 설레겠지만 미리 찾아간 손님들이 썰렁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은 매사가 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한 열흘 지나면 철쭉꽃이 만개해 절정에 이를 것임을 빤히 알고서도 황매산을 찾은 것은 그때쯤 철쭉꽃을 찾아 이 산을 오를 20여명의 고교동창들을 안전하게 안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번 산행 중에는 그래서 꽃보다는 길에 더 신경을 쓴다고 했는데 답사산행을 마치고 정작 기억에 남은 것은 잘 나있는 길이 아니고 여기저기 흩어져 꽃을 피운 진달래와 넓은 평원, 그리고 평원 위에 앉혀놓은 정상의 암봉과 모산재에서 내려가는 암릉 길이었습니다.
황매산의 브랜드이미지가 철쭉꽃과 너무 강하게 연계되어 있어 저 또한 직접 와서 보지 않았다면 진달래꽃이 활짝 핀 황매산이 잘 상상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직 몽우리를 터뜨리지 않은 철쭉나무가 대극장의 무대 뒤에서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곳저곳 소극장으로 손님을 끌어 모으는 일은 새빨간 진달래꽃이 했습니다. 참꽃으로 명성을 날리는 비슬산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여기 황매산이 그동안 철쭉꽃이미지가 너무 강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의 진달래꽃으로도 충분히 손님을 끌어 모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여름날의 푸르름을 되찾지 못한 칙칙한 참나무들 틈바구니에서, 또 암릉 길을 받치고 있는 암벽에 붙어 꽃을 피우는 황매산의 진달래들이 조금은 고고해 보였습니다. 그래도 이름이 진달래인데 아무려면 연달래인 철쭉에 밀릴까 보냐는 이 꽃의 오기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 산을 철쭉꽃이라는 단일한 이미지로 포장하는 것이 정말 잘하는 일인 지 모르겠습니다. 혹시라도 지자체에서 이 산을 브랜드화해 보다 많은 손님을 불러들이겠다는 경제적 동기에서 특정이미지의 강화에 힘써온 것이라면 이는 오판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산 사이트인 “한국의 산하”에 2008년 1-4월 중 등재된 산행기가 단 한 건도 없음에서 드러났듯이 대부분의 산객들이 일단 철쭉꽃이 지고나면 황매산은 더 볼 것이 없다며 발걸음을 다른 산으로 돌린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산하가 시장의 상품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산하는 바로 자연이라는 사실입니다. 어찌 이 황매산의 오묘한 자연을 특정 꽃 하나로 제대로 느낄 수 있겠습니까? 철쭉꽃에 가린 진달래와 드넓은 평원, 그리고 이 평원을 지켜주는 의젓한 암봉들이 수많은 산객들의 머릿속에서 되살아나야 황매산이 활기를 되찾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전11시10분 경남산청 차황면의 장박마을에서 답사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산악회버스가 대진고속도로의 생초 I.C를 빠져나와 장박마을에 다다르는데 27분이 걸렸습니다. 느티나무 정자를 출발해 수 분 동안 시멘트포장도로를 걷다가 산길로 들어섰다고 했는데 얼마 안 있어 앞서 걸은 시멘트포장길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계속 오르면 떡갈재에 닿는 시멘트 길을 몇 분 더 걷다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샘터에서 물 한 모금을 떠 마신 후 새 잎이 막 돋아난 낙엽송림을 지나 앞이 탁 트인 묘지 앞에 이르렀습니다. 소나무들이 많이 들어선 산허리 길을 에돌아 물이 흐르지 않은 계곡의 끝점을 지나자 몸을 숨긴 새들의 합창소리가 크게 들렸습니다. 활짝 핀 철쭉꽃을 보자 열흘 후에 동창들이 이 산을 오를 때는 꽃이 다 지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됐습니다.
12시24분 떡갈재에서 황매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진양기맥 상의 너백이쉼터를 지났습니다. 960봉의 너백이쉼터에 다다르기 얼마 전부터 고산지대의 기운이 역력해 참나무들이 아직 새순을 돋우지 못했고 철쭉들도 꽃 몽우리를 열지 못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소나무 몇 그루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쉼터에서 먼저 오른 몇 분들과 인사를 나눈 후 오른 쪽으로 멀리 보이는 정상으로 향했습니다. 능선 길 양옆으로 광활한 철쭉꽃나무 군락지가 펼쳐 지어 꽃들이 만개할 때 이 길을 걸으면 천상의 화원이 따로 없겠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1000m 안팎의 고지대에서 각광받는 4월의 꽃은 단연 진달래였습니다. 길섶의 억새 숲에 숨어 노란 꽃을 피운 양지꽃의 다소곳함은 다른 꽃이 따를 수 없다 해도 꽃의 본질인 화사함은 진달래나 철쭉꽃에 한참 뒤지기에 이 꽃이 천상의 화원을 대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13시9분 해발 1,108m의 황매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생중마을 갈림길의 헬기장을 지나고 넓은 평원에 삐죽이 서있는 우람한 바위를 지나 표지기가 많이 걸린 소나무 앞에 이르렀지만 키가 작아 땡볕을 가릴 만한 그늘을 만들어 주지는 못했습니다. 왼쪽의 1103봉과 오른쪽의 황매산 정상의 암봉을 받쳐주는 길 양쪽의 높다란 암벽에다 꽃을 피운 진달래가 없었다면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밋밋한 능선 길을 따라 걷다가 마지막 10분간 치받이 돌계단 길을 걸어올라 능선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너백이쉼터에서 여기 갈림길까지 이어진 진양기맥은 왼쪽 삼봉으로 갈라졌고, 저는 오른 쪽 가까이의 암봉을 올라 “黃梅峰” 표지석을 확인했습니다. 합천호에서 이 산의 하봉, 중봉과 상봉을 우러러보면 세봉우리가 마치 매화꽃처럼 보인다 해서 황매산(黃梅山)의 이름을 얻었다는 이산의 정상에 오르자 사방이 탁 트여 조망이 더 할 수 없이 시원스러웠는데 바테리를 집에다 빼놓고 와 합천호도, 영화주제마을도, 지나온 철쭉 군락지도, 지나갈 평전 길도, 또 외롭게 혼자 내달리는 진양기맥 산줄기 등 어느 것 하나도 카메라에 담아가지 못해 못내 아쉬웠습니다. 남중한 태양에 밀려 정상에서 내려와 앞의 암봉을 오르다가 바위아래 그늘에서 점심을 든 후 황매평전으로 내려섰습니다.
14시7분 해발946m의 베틀봉을 올랐습니다.
넓은 평원이 눈을 끄는 것은 눈을 끌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인데 어제는 황매평전에 세워진 하얀 몽고텐트들이 제 눈을 끌었습니다. 왼쪽 아래 마을에서 올라오는 포장도로가 끝나는 움푹 들어간 공터에 세워진 텐트는 5월4-6일에 열릴 철쭉꽃 축제기간 중 장터로 쓰일 것 같은데 5년 전에 보았던 것처럼 마이크를 크게 틀어놓고 대중가요를 들려줄 뜻이라면 그 시끄러움에 시달릴 철쭉꽃에 정말 미안한 노릇입니다. 오른 쪽 아래로는 단적비연수를 촬영한 영화주제마을이 보였습니다. 평전 길을 걸으며 철쭉꽃이 아니더라도 억새밭이 평안하게 다가와 먼지만 일지 않는다면 어느 계절이라도 걸을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얀 눈이 쌓인 드넓은 평전을 걷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뛸만한 일이기에 언제고 한 번은 겨울철에 올라보겠다는 생각을 굳힌 후 베틀봉을 올랐습니다. 남진 길은 여기서 멈추고 왼쪽으로 내려가 팔각정을 짓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산불감시초소에 이르렀습니다.
14시57분 해발 767m의 모산재를 올랐습니다.
남진하는 산줄기를 따라가면 감암산에 이르게 되는 산불감시초소 갈림길에서 왼쪽 길로 내려가 철쭉 군락지를 지났습니다. 앉은뱅이 철쭉들과 사용하기에는 너무 높아 보이는 평상 몇 개를 지나 데크에 다다르자 이번에는 제 위치를 찾은 낮은 평상과 키를 넘는 철쭉들이 보였습니다. 황매산 정상에서 내려와 몽고텐트를 가운데 놓고 시계반대방향으로 반 바퀴를 돌고나자 철쭉 군락지가 끝났고 이내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모산재도 고개마루 재려니 생각해 큰골로 내려서는 사거리안부가 모산재가 아닐까 머뭇거리다가 지도를 보고나서 앞에 보이는 비알 길로 올라섰습니다. 직진하면 무지개터로 이어지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모산재에 올랐습니다. 동강난 표지석이 놓인 돌돌무더기 옆에 새로운 표지석이 세워진 모산재에서 북동쪽으로 내려서는 암릉길로 접어들었습니다.
16시20분 모산재주차장에 도착해 답사산행을 끝냈습니다.
모산재에서 순결바위까지 이어지는 암릉 길도 주변 경관이 빼어나 걸을 만 했습니다. 오른 쪽 건너로 아슬아슬해 보이는 철계단 길과 절애의 암벽을 보고나자 황매산을 넓은 평전의 철쭉 동산으로 단정하는 것은 백번 잘못이다 싶었습니다. 암릉길에서 맞는 골바람도 시원했습니다. 순결바위를 지나며 뜨끔해할 처녀들은 거의 산을 찾지 않고 대신에 이미 결혼한 아주머니들이 주로 산을 오르기에 순결바위의 순결감지기능이 별 쓸모가 없어졌을 것입니다. 순결바위에서 가파른 길을 로프를 잡고 내려가다 산 중턱에 자리한 국사당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이 지방 관찰사가 매년 이곳에서 조선조 태조임금께 제를 올렸다 하는데 설마하니 가마를 타고 오르지는 않았을 것이고 거추장스런 도포자락을 날리며 오르내리기도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조금 더 내려가 만난 간이 찻집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영암사지로 내려섰습니다. 천 년 전의 영화가 어떠했는가를 일러주는 영암사 절터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지만 새로 지은 극락보전과 그 옛날의 삼층석탑의 시간적 간격을 메워줄 만한 다른 유적들이 또 있는 지는 확인하지 못하고 주차장으로 이동했습니다. 맨 꼴찌로 주차장에 도착해 산악회에서 준비한 국밥을 들기가 조금은 민망했습니다.
제 걸음으로 총 5시간 10분이 걸렸으니 5월11일에 있을 동창들과의 산행은 인파가 좀 몰리더라도 6-7시간이면 충분하리라 생각됐습니다. 그리 가파른 산길도 없고 모암재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길이 심하게 밀리지 않는다면 그 날 산행이 순조로울 것 같습니다. 그 때쯤이면 4월의 황매산을 지켜온 진달래도 5월의 주역인 연달래에 확실하게 자리물림을 마칠 것이고 연달래는 혼신을 다해 꽃을 피울 것입니다. 이와 같이 때를 맞춘 자리물림이 산속의 질서이고 자연의 로고스이기에 연달래가 연출하는 천상의 화원을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
<산행사진>
(아래 사진은 은하수산악회의 회원님들이 찍은 사진을 전재한 것입니다. 회원분들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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