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도지리산(2)
*산행일자:2011. 1. 1일(토)
*소재지 :경남통영
*산높이 :지리산398m
*산행코스:내지선착장-365m봉-지리산-절재
-불모산-질매재-대항선착장
*산행시간:8시7분-12시18분(4시간11분)
*동행 :경동고 서중원, 이규성, 이기후, 장광종 동기 및
뚜벅이산악회원
신묘년의 새아침이 밝았습니다. 경남 통영의 사량도 앞 바다에서 해오름을 지켜보면서 토끼해를 열었습니다. 새벽 6시가 조금 넘어 삼천포를 출항한 전세유람선이 사량도가 가까워지자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선체를 서서히 돌려가며 해뜨기를 기다렸습니다. 어떤 여객선이든 하루 중 첫 출항은 일출 한 시간 전쯤에 시작된다 합니다. 더 일찍 출항한다면 산위에서 장대한 해돋이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겠지만 선상에서 바다를 박차고 떠오르는 태양을 맞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다 싶어 신묘년의 첫 산행지로 남해의 사량도지리산으로 정하고 고교동창들과 함께 섬 산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맞는 일출은 높은 산위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다보는 것과는 그 맛과 멋이 얼마간 달랐습니다. 무엇보다 떠오르는 태양이 산상에서 맞을 때보다 훨씬 커보였습니다. 그동안 산상에서 바라다본 떠오르는 태양이 그 크기가 쪽박만큼 작지는 않았지만, 이번 선상에서 지켜본 떠오르는 태양은 분명 함지박보다 커 보였습니다. 또 하나 한 자리에서 차분하게 지켜볼 수 있는 산상과는 달리 선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선상에서 지켜보는 태양은 마치 춤을 추는 듯 했습니다. 오직 새해 첫 해오름을 가까이서 지켜보고자 천리 길을 멀다 않고 밤새 달려온 저희들에 날씨가 한몫해 새해의 첫 해오름을 온전하게 맞이했습니다.
떠오르는 태양을 맞아 주님께 올 한해 소원을 고하고 그 성취를 빌었습니다. 작년에는 남해 금산에서 일출을 맞으며 막내아들이 반려자를 만나 식을 올릴 것을 빌었는데 소원한대로 작년 10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때 맞춰 “섬진강 둘레산줄기에서 길을 찾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해 하객 분들께 드린 것도 새해 새아침의 기도 덕분이라 생각하고 올해도 소원성취를 비는 기도를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두 아들을 모두 출가시켰기에 올해는 저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첫 번째 소원은 4대강 둘레산줄기를 계속 환주할 수 있도록 두 다리에 힘을 달라고 빌었습니다. 작년에 마친 섬진강둘레산줄기 환주에 이어 낙동강, 한강, 금강과 영산강의 둘레산줄기를 마저 걸어볼 뜻이기에 이 기도는 앞으로 10년간 계속될 것입니다. 다음으로 방송대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있도록 더 이상 기억력이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기왕 시작한 국문학을 갖고 대학원도 진학해 석사, 박사과정을 모두 밟고 싶은데 그리하기 위해서는 한 번 배우고 나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가물가물 배운 것을 거의 다 잊어버리는 현재의 기억력이 더 이상 감퇴해서는 안 되기에 좀 더 구체적으로 빌었습니다.
아침8시7분 내지선착장을 출발했습니다. 3년 전 봄에 이 섬을 처음 찾아왔을 때 내지 마을을 지키던 몇 그루의 고목들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동리 앞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오른 쪽으로 몇 분간 걷다가 왼쪽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지난번에는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절재로 올라갔기에 내지마을에서 365m봉을 거쳐 지리산정상에 오르는 코스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규모가 크지 않은 섬에 들어앉은 산들은 높이가 웬만하면 거의 모든 오름길이 된비알 길이어서 숨이 가빴는데 이 길도 그러했습니다. 급할 것이 전혀 없는 여유로운 산행이어서 시야가 탁 트인 곳을 지날 때면 잠시 멈춰 서서 앞바다를 조망했습니다. 웬만큼 고도가 높아지자 파도의 움직임이 하나도 눈에 잡히지 않아서인지 바다가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묘지를 지나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암릉 길을 걸어 365m봉에 다다른 시각이 9시1분이었습니다.
9시51분 해발398m의 지리산을 올랐습니다. 365m봉에서 내려다 본 바다 풍경이 특별히 안온하게 느껴진 것은 그새 많이 올라와 선체를 뒤흔드는 파도의 거친 몸놀림이 눈에 잡히지 않는데다 이 봉우리에서 조망되는 섬들이 하나같이 올망졸망해서였습니다. 365m봉을 지나 조심해서 바위 길을 오르내렸습니다. 남쪽 아래 돈지선착장까지 거리가 1.66Km임을 알리는 표지목을 지나 커다란 암봉을 왼쪽 북사면 쪽으로 우회하면서 길바닥을 살짝 덮은 잔설을 보았습니다. 공터가 좁은 지리산 정상은 새해 해맞이를 마치고 올라온 산객들로 꽉 차 정상석을 옆에 놓고 동문들과 기념사진을 찍을 틈이 나지 않았습니다. 쾌청한 날씨 덕분에 저 멀리 눈 덮인 지리산의 천왕봉을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북적거리는 정상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암릉길을 따라 동쪽의 촛대봉으로 옮긴 다음 안부사거리인 절재로 내려갔습니다.
11시30분 질매재에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촛대봉에서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간 절재에서 옥녀봉을 오르는 세 친구는 앞장서 산행을 서둘렀고 얼마 전부터 오십견이 와 오른팔을 들어올리기가 전과 같지 못한 저와 한 친구는 옥녀봉 못 미쳐 질매재에서 대항선착장으로 하산하기로 하고 뒤로 쳐져 천천히 걸었습니다. 해발고도가 399m로 이 섬의 주봉인 지리산 정상보다 1m 더 높은 최상봉 달바위봉을 오른쪽 이래로 돌다가 양지바른 곳에서 짐을 내려놓고 친구가 내놓는 생률을 들면서 20분 가까이 푹 쉬었습니다. 얼마 후 깔끔한 계단을 따라 질매재로 내려서자 간이찻집에서 쉬어가는 산객들로 왁자지껄했습니다. 전망이 빼어난 옥녀봉을 들르지 않고 안부사거리인 질매재에서 왼쪽으로 꺾어 대항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번에 오르지 못한 옥녀봉과 관련해 입에 담기 힘든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섬의 한 아버지가 친 딸 옥녀를 강간했다는 이야기인데 아직도 이 섬에서 결혼할 때 대례를 치르지 않는 것은 금수 같은 아버지 때문에 혼례를 치르지 못한 옥녀를 불쌍히 여겨서라 합니다. 생전에 프로이드가 이 전설을 접했다면 신이 나서 이드가 어떻고 에고가 어떠하며 리비도가 어떻다고 장광설을 늘어놓았을지 모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디푸스 왕이 친모와 결혼한 것은 왕이 자의로 한 것이 아니고 자기도 모르게 운명적으로 한 것이지만, 이 섬의 아버지가 친딸을 강간한 것은 그런 것도 아니어서 충격적입니다. 이런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오늘도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어 더욱 충격적입니다. 전설은 단순히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고 면면히 이어져 오늘에도 살아있는 이야기임을 곱씹어 보았습니다.
12시18분 대항선착장에 도착해 이번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질매재에서 대항선착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북사면에 나있어 초반 몇 분간은 조금 남은 잔설로 미끄러운 길을 걸었습니다. 이내 눈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길이 미끄럽지 않아 동행한 친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하산했습니다. 포장도로로 내려선 다음 오른 쪽으로 걸어가다 왼쪽 아래 대항 선착장에 도착하자 옥녀봉을 오르기로 한 친구가 보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따라오지 않아 질매재로 되돌아가 바로 하산했다는 이 친구와 함께 술 한 잔을 들고 있는 중 옥녀봉을 오른 나머지 두 친구가 왼쪽으로 하산해야 할 것을 오른 쪽 금평 쪽으로 잘 못 내려가 늦어질 것 같다고 전화를 해왔습니다. 다행히 한 승용차 주인의 도움으로 배 뜨기 직전에 선착장에 도착해 함께 삼천포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대항선착장을 출발한 유람선은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듯했습니다. 이 섬으로 들어올 때는 해돋이를 기다리느라 바다 한 가운데서 빙빙 돌기를 20분 가까이 계속했지만 삼천포로 돌아가는 이 배는 그리할 이유가 없어 쾌속질주를 했을 것입니다. 선미에 서서 이 배가 바닷물을 가르고 낸 자취를 보고 수중에 고속도로를 낸다면 영락없이 이와 같겠다 했습니다. 삼천포시가 가까워지자 이 도시의 진산인 와룡산의 의젓한 자태가 선명하게 눈에 잡혔습니다. 큰 틀에서 배산임수의 전형을 보인 이 아름다운 항구도시를 두고 언제부터 “잘 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는 점잖지 못한 말이 유포됐는지 모르지만 그간 여기 분들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기에 삼천포를 사천으로 이름을 바꾸었을 것이라 생각하자 언어의 미학적기능을 높이는 시인들의 노고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바다를 박차고 떠오른 태양이 감동과 흥분을 자아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시뻘겋게 바다를 물들였던 황홀한 태양도 수면에서 멀어지자 다시 일상의 태양으로 돌아왔습니다. 삼천포로 돌아온 저는 다음 날 낙남정맥 한 구간을 종주하고자 진주로 옮겼고 다른 네 친구들은 산악회버스로 상경해 일상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장엄한 해돋이를 연출한 태양이 본래의 태양으로 돌아가듯이 저희들도 일상으로 되돌아가지만 내년 초 하룻날 다시 일출을 맞기까지 아침 일찍 지켜본 첫날의 해오름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올 한해 뜨겁고 열정적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댓글>
- 히말라야
- 2011.01.12
- 신년 일출을 사량도를 향하며 맞이하셨네요...
신묘년 새해 건강하셔서 꾸준한 산행과..
이어지는 기록들 계속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 시인마뇽
- 2011.01.13 13:55
- 고교 동창들과 해맞이 여행을 떠난지 몇 년 됐습니다. 새해에 복많이 받으시고 안산, 즐산하시기를 빌겟습니다.
- 바람
- 2011.01.16
- 내 고향 사량도 ..이젠 부모님이 나오셔서 가진 않치만 ..그립네요 ..
- 시인마뇽
- 2011.01.17 11:13
- 두 번을 다녀왔습니다. 좋은 곳입니다. 새해에 복많이 받으십시오.
사량도지리산 (1)
*산행일자:2008. 3. 8일(토)
*소재지 :경남통영
*산높이 :지리산398m, 달기봉399m
*산행코스:내지선착장-절재-지리산-절재-달기봉-옥녀봉-대항선착장
*산행시간:12시30분-16시18분(3시간48분)
*동행 :다솜산악회 회원
남쪽 나라는 누구에게나 한번은 찾아가서 머무르고 싶은 이상향인가 봅니다. 파인 김동환은 그의 시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에서 진달래 향기, 보리 내음새와 종달새 노래가 있는 남촌을 그렸습니다. 노산 이은상도 남쪽바다가 설사 그의 고향이 아니었더라도 가고파라 가고파하고 노래했을 것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또한 마지막 남은 단맛이 포도주에 스미게 하도록 이틀만 더 남국의 햇살을 베풀어달라고 주님께 빌었습니다. 21년 전 분단 이후 최초로 전 가족이 배를 타고 동해로 나가 북한을 탈출한 김만철씨 일가도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머물고 싶다했습니다. 이렇듯 남쪽 멀리 남촌과 남국, 그리고 남해는 북반구 사람들이 한번은 가보고 싶은 이상향임이 분명합니다.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라는 시에 곡을 붙여 박재란이 부른 노래가 널리 애창된 것도 이상향에 가고픈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서입니다. 이 노래를 부른 박재란도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한창 인기가 올랐을 때는 “엘레지의 여왕”의 이미자 못지않게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갈채를 받았었기에 이 시가 널리 알려진 데는 그녀가 한 역할을 한 것은 확실합니다. 시가 대중음악을 만나 대중들에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 사례는 더 있습니다. 요절한 시인 박인환은 박인희라는 가수를 만나 “세월이 가면”과 “목마와 숙녀”라는 시의 수명을 늘리는데 성공했고, 가수 송창식은 “그대 있음에”라는 노래를 불러 김남조의 시를 광장으로 끌어냈습니다. 그렇다 해도 산 너머 남촌이 이상향을 상징하지 않는다면 유명가수 박재란이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가수로서의 그녀의 수명보다 더 오래 이 노래가 불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제껏 가보지 못한 남해바다의 사량도 지리산이 산 너머 남촌이겠다 싶어 이 섬으로 산 나들이를 가겠다는 한 산악회에 전화를 걸어 재빨리 예약을 했습니다. 쪽빛바다와 기기묘묘한 바위, 그리고 넉넉한 인심 등으로 그냥 놓아두면 이상향으로 부족할 것이 없는 이 섬이 최근에는 관광객이 부쩍 늘어 몸살을 앓을 정도라 해 더 이상 제 모습을 잃기 전에 빨리 다녀오고 싶은 생각에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 시작된 감기몸살로 컨디션이 그리 개운치 못한 몸을 이끌고 사량도 탐방 길에 올랐습니다. 삼천포에서 40분 남짓 걸려 사량도 내지포구에 이르기까지 제가 그린 이상향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감흥에 겨워 몇 번이고 박재란의 “산 너머 남촌에는” 노래를 속으로 부르며 흥얼댔습니다.
한낮인 12시30분에 내지마을을 출발했습니다.
잠실을 출발한 버스가 삼천포에 도착한 것은 11시 40분경으로, 버스에서 내려 2-3분 거리의 선착장으로 이동해 대기 중인 배에 바로 올라탔습니다. 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다도해의 바다답게 여기 저기 섬들이 방파제 역할을 해주어 항해 중에 흔들림이 전혀 없었습니다. 삼천포와 남해를 잇는 주홍색의 조형미가 빼어난 연륙교가 점점 멀어지고 삼천포화력발전소의 우람한 굴뚝 세 개가 가까워지는 가 했는데 어느새 배는 사량도 섬에 이르렀습니다. 날씨는 쾌청하고 따뜻해 당장이라도 남촌서 봄바람이 불어올 기세였습니다. 허름한 간판의 민박집 외에 이렇다 할 음식점이나 가게가 없어 여느 어촌보다 더 한가해 보여 해안가의 가지런한 자갈들도 파도가 밀려오지 않는다면 엄청 심심해할 것 같았습니다. 왼쪽으로 도로를 따라 걸어가 이름 모르는 커다란 나무들이 여러 그루가 서있는 마을 어귀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내지마을을 지나는데 5-6분이 걸렸습니다. 내지마을 지나 길 섶 양쪽으로 돌담이 쌓인 좁은 길이 3-4분간 이어졌고, 이내 본격적인 오름길이 시작됐습니다. 얼마 안 걸어 쟈켓을 벗고자 걸음을 멈춘 몇 분들을 앞질러 산 오름을 계속하자 너덜 길이 나타났습니다. 이 길을 따라 15분여 걷는 동안 몸이 풀렸고 등에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내지마을 출발 45분이 지나 능선삼거리인 절재에 올라서자 먼저 오른 일행 몇 분들이 숨을 고르며 뒤따라 오르는 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3시44분 해발398m의 지리산(池里山)을 올랐습니다.
절재에 올라서자 산행대장께서 지리산과 반대방향으로 길안내를 해, 지리산은 오르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지리산보다 1m 더 높은 달기봉을 오르게 되며, 사람들이 몰리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줄 모르는 옥녀봉을 오르기 위해서 지리산은 생략한다는 답을 듣고, 저는 옥녀봉을 포기하고 주봉인 지리산을 다녀오겠다며 양해를 구한 후 오른 쪽으로 꺾어 0.6Km 떨어진 지리산으로 내달렸습니다. 상봉과 주봉이 서로 다른 산을 오르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어서 시간이 없을 때 어느 봉을 오를 것인가 고민해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만, 저는 이런 경우 상봉을 포기하고 주봉에 올랐습니다. 어느 한 산을 대표하는 주봉은 통상 가장 높은 상봉으로 정하는데 산세와 위치 및 전설 등을 감안해 간혹 상봉보다 낮은 봉우리를 주봉으로 삼기도 합니다. 장자가 신통치 못할 때 둘째나 셋째에 임금 자리를 넘겨주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그렇다면 당연히 주봉을 올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절재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자리한 몇 개의 암봉들이 빚어 낸 기암절벽도 일품이려니와 이 산줄기에서 내려다본 해안선과 섬, 그리고 바다가 더 절경이었습니다. 돈지포구의 평화로운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바다 건너 해발 700m대의 와룡산의 위용도 저 정도인데 해발 1,900m가 넘는 지리산(地異山)이 제대로만 보인다면 여기 지리산이 최고의 전망대로 자리매김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에도 보이지 않는 지리산(地異山)이 눈에 잡히기를 맥 놓고 기다릴 수 없어 자리를 뜬 저보다, 지리산의 현신을 이 산이 더 학수고대해왔기에 지리망산(地異望山)이라는 이름을 얻었을 것입니다. 바라봄(望)은 그리움의 몸짓이고, 그리움은 외로움의 발로입니다. 그러기에 외롭지가 않다면 누구를 바라보며 마냥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 지리산(池里山)이 바다 건너 지리산(地異山)의 드러남을 그토록 갈망하며 기다리는 것은 이 섬이 외롭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이번에 지리산(地異山)을 볼 수 없는 것은 이 섬이 외지에 알려지고 나서 주말이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외로울 틈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갓진 주중에 다시 와야 지리산(地異山)을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때이면 여기 사량도도 더 오래 머물다 가고 싶은 이상향으로 제게 다가설 것입니다.
14시42분 이 산의 상봉인 달기봉을 지났습니다.
지리산에서 절재로 되돌아가는 데 20분 남짓 걸렸습니다. 절재에서 잠시 쉬며 김밥을 꺼내 든 후 달기봉으로 향했으니 일행들보다 대략 1시간 늦게 절재를 출발한 것 같습니다. 달기봉에 오르는 길 오른 쪽 아래로 철조망 울타리가 쳐져 있어 이 섬이 이상향으로 남아 있기를 희망하는 제 기대가 실없다 했습니다. 주봉인 지리산보다 1m가 더 높아 상봉으로 대접받는 달기봉은 암봉으로 설악산의 주상절리를 옮겨놓은 미나아춰(miniature) 같았습니다. 옥녀봉을 오르겠다는 욕심이 동해 달기봉을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우회해 대항과 옥동 길이 갈리는 안부사거리로 내려서자 지나온 길에 “추억은 가슴속 쓰레기는 배낭속”의 플래카드를 걸어 놓은 달기봉매점이 이 사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옥녀봉을 거쳐 대항 선착장으로 내려가는데 한 시간 반가량 걸리고 길이 밀려 더 걸릴 수 있다는 매점아주머니의 말씀을 듣고 서둘러 옥녀봉으로 내달리는 바람에 가슴속에 묻어둘 추억도 배낭 속에 넣어둘 쓰레기를 만들 겨를이 없었습니다.
15시56분 해발281m의 옥녀봉을 올랐습니다.
안부사거리를 출발해 오른 기마봉은 연습코스였습니다. 두 줄을 걸쳐 놓은 오름 길은 스탠스와 홀드가 양호해 힘들여 이 줄을 잡고 오르지 않더라도 별 문제 없겠다 싶었는데 철사다리를 놓은 내림 길이 안전하기는 하지만 직벽의 낭떠러지 아래가 아찔해 보였습니다. 집 떠날 때 릿지화를 신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옥녀봉을 외줄 하나 잡고 오를 때였습니다. 이 길이 위험해 안전한 우회길이 나있었습니다만, 젊어 한 때 바위를 했다는 제가 피해 가기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아 심호흡을 하고나서 바위에 붙었습니다. 막상 붙고 보니 발 딛을 틈도 손잡을 곳도 곳곳에 있어 밑에서 보고 생각한 것보다는 쉬웠습니다만, 비바람이 부는 날은 고전할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오른 봉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옥녀봉의 돌탑이 보였습니다. 사량도 아래섬의 칠현산도 의젓해 보였고 위섬인 이 섬과 아래 섬 사이를 흐르는 동강으로 불리는 해협도 다른 곳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는 비경이었습니다. 대항선착장으로 길이 갈리는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줄사다리를 걸어 놓은 내림 길이 밀려 산악회가 정해준 16시20분까지 대항 선착장에 닿지 못할 까 엄청 마음 조렸는데 다행히도 대기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여기 지리산 옥녀봉의 입에 담기에 부끄러운 근친상간의 전설을 나중에 안 것이 다행이다 싶었던 것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옥녀봉 자체의 아름다움과 옥녀봉에서 조망하는 풍광의 빼어남이 제대로 느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여기 저기 옥녀봉에 얽힌 전설들은 주로 여자의 옥문에 관련된 것이어서 성과 밀접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만, 이 봉우리처럼 애비가 딸을 범하는 근친상간을 주제로 한 전설은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요즈음도 이 섬에서 결혼식 때 대례를 지내지 않는 것은 혼례를 치러보지 못한 딸 옥녀를 위한 것이라니 아직도 참담한 전설이 살아 있는 이 섬이 이상향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16시20분 대항 선착장에서 삼천포행 배에 올라 사량도 탐방을 마쳤습니다.
청주에서 오셨다는 저보다 훨씬 연배이신 두 분들을 뵈어 이런 저런 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그새 배는 삼천포항에 다다랐습니다.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버스에 올라 서울로 향했는데도 고속도로가 뻥 뚫려 밤11시 훨씬 전에 잠실로 되돌아 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사진들을 정리하며 어쭙잖은 제 글보다 이 사진들이 사량도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훨씬 잘 담고 있다 했습니다. 사량도에 관한 이런 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옥녀봉에 얽힌 근친상간의 전설을 접해 이 섬의 명과 암을 함께 보고나자 사량도도 결코 이상향이 아니고 더러는 뱀같이 사특한 인간들도 같이 사는 그저 그런 섬임을 깨달았습니다. 시인 김동환이 그리는 산 너머 남촌을 찾기 위해 몇 번 더 남해의 섬 산들을 찾아 올라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때마다 흥얼댈 이시의 전문을 아래에 옮겨 놓으며 뱀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량도의 지리산 산행기를 맺습니다.
산(山) 너머 남촌(南村)에는
1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南)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2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에 호랑나비때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제 나는 좋데나.
3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 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산행사진>
'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 > 명산100산 탐방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86.남산 산행기 (0) | 2008.04.21 |
---|---|
85.가야산 산행기 (0) | 2008.04.01 |
83.태화산 산행기(영월) (0) | 2007.12.21 |
82.화왕산 산행기 (0) | 2007.11.24 |
81.적상산 산행기(1-2) (0) | 2007.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