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자:2007. 11. 22일
*소재지 :경남창녕
*산높이 :화왕산757m, 관룡산745m
*산행코스:옥천리화왕산군립공원주차장-관룡사-청룡암-관룡산
-청간재-화왕산-도성암-자하곡화왕산군립공원주차장
*산행시간:11시40분-15시40분(4시간)
*동행 :은하수산악회 회원
왼쪽 눈을 감으면 오른 쪽으로 곧추선 천 길 낭떠러지 암벽만 보이고 오른 쪽 눈을 감으면 왼쪽 아래로 드넓은 억새밭 평원밖에 보이지 않는 정상 가까이의 능선 길을 걸으며, 화왕산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이 안온한 평원과 저 아찔한 절벽의 극명한 대비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화왕산이 웬만한 악산을 뺨칠 정도로 절애의 암벽을 보여주리라 생각지 못한 저의 무지가 부끄러웠던 것은 이산은 억새밭의 산이라고 제 멋대로 예단하고 이미 여기저기에 많이 실려 있는 깎아지른 절벽에 관한 사진이나 이야기를 애써 찾아보지도 들어보지도 않았다는 점입니다. 경기 포천의 명성산과 전남 장흥의 천관산을 억새밭이 장관이라고 명산100산으로 선정한 우리나라 산림청이 억새밭이 넓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는 화왕산까지 명산의 반열에 올리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산이 명산으로 선정된 사유를 알아본즉 광활한 억새밭과 진달래군락지, 그리고 정상부에 자리한 산성 등이 명산선정에 한몫했음을 확인했습니다. 절애의 암벽이 그 사유에 들지 않아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화왕산이 명산으로 선정된 것은 단순히 억새밭만이 아니고 다른 볼거리가 더 있었음을 알고 나서 그러면 그렇지 하고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어제는 100대 명산 중 82번째로 명산탐방기를 남기고자 경기도 안산의 은하수산악회를 따라 경남창녕의 화왕산을 올랐습니다. 나라가 태평하고 국민들 생활이 평안하기를 염원하는 뜻에서 창녕군에서는 3년마다 윤달이 낀 정월 대보름날 밤에 억새밭에 불을 놓아 왔다 합니다. 텔레비전에서 이 불길이 시뻘겋게 사방으로 번져나가는 장면을 여러 차례 보아온 터라 화왕산하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억새밭이었습니다. 5만6천 평의 광활한 억새밭이 활활 타오르는 스펙타클한 불놀이로 전국의 관광객을 불러 모을 수 있고, 한번 불에 탄 억새들이 그 이듬해에는 오히려 더 크고 실하게 자란다고 하니 천성산에 터널을 내는 고속전철공사에 도롱뇽의 생존을 위하여 그토록 극렬히 반대했던 환경단체들도 억새밭에 불을 지르는 것이 식물학대행위라고 들고 일어날 수는 없었나 봅니다. 어쨌거나 화왕산(火旺山)은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태생적으로 불과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이산 정상부의 움푹 들어간 한 가운데에 자리한 억새밭이 선사시대에 화산이 폭발했던 그 옛날 분화구였다면, 동과 북 양쪽으로 직립해 서 있는 절애의 암벽은 뜨거운 용암이 분화구로 용출된 후 급작스럽게 식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관악산을 불로 만들어진 바위가 많다하여 화성산(火成山)으로도 부르듯이 여기 암벽도 불로 만들어졌기에 이제껏 이 산을 화왕산(火旺山)으로 불러왔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창녕군에서 억새밭에 불을 지르는 것은 이 산의 생성인자인 용암을 다시 찾는 의식으로 어쩌면 세상 밖에 나서기 전에 평안하게 지냈던 어머니의 뱃속을 향해 자궁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그래서 심원한 고향의 품에 안기고자 하는 우리네들의 원초적 몸짓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오전11시40분 화왕산군립공원의 옥천리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이른 아침 6시30분에 산본을 출발해 수원북문에서 대형버스를 갈아탔습니다. 영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 경부 고속도로를 차례로 지나 구마고속도로로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서 먼발치로 3년 전에 올랐던 비슬산이 보여 반가웠습니다. 창녕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버스가 창녕시내를 거쳐 내천교 앞 주차장에 도착하기까지 산본을 출발해 5시간이 걸렸습니다. 잠시 짐을 챙긴 후 왼쪽으로 난 아스팔트길을 따라 7-8분을 오르자 산신골로 갈리는 삼거리가 나타났고, 여기에서 오른 쪽 시멘트포장길로 들어서 관룡사로 향했습니다. 정오를 막 넘어서 푸르른 대나무 숲을 지나 작은 암문을 통해 관룡사 가람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불교가 신라 땅에서 공인받기 훨씬 전인 서기349년에 약사전이 세워졌다고 전해진 이 절은 원효대사가 100일 기도를 마친 날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하여 관룡사라는 이름을 얻었다는데 절터가 유구한 역사에 걸맞지 않게 너무 좁아 대웅전, 약사전등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푸르른 죽림과 더불어 여기 창녕 땅이 서울보다 위도가 낮아 훨씬 따뜻한 지방임을 일깨워 준 노란 탱자열매를 카메라에 옮겨 놓은 후 청룡암으로 올라갔습니다.
12시38분 청룡암을 들렀습니다.
관룡사를 지나서야 비로소 산 속으로 난 흙길을 밟았습니다. 거송들이 꽤 많이 들어선 송림 길을 올라 다다른 삼거리에서 용선대로 오르는 직진 길을 버리고 물이 흐르지 않는 오른 쪽 계곡을 건너 청룡암으로 향했습니다. 좁다란 너덜 길도 지나고 경사가 가파른 비알 길을 지그재그로 올라 청룡암40m전방의 약수터에 다다랐습니다. 왼쪽 위로 난 돌계단 길을 따라 커다란 암봉을 등지고 있는 청룡암에 이르자 북동쪽에 점잖게 자리한 매끈한 암봉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암자 뒤의 앙증맞은 마애불을 둘러보며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심은 불상의 크기에 있지 않으리라 기대를 했던 것은 그렇지 않다면 저 작은 마애불에는 여기까지 올라온 중생들에 베풀 자비가 벌써 동이 났겠다 싶어서였습니다. 산신각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과 그 풍경과 수 백 년을 교우해왔을 발가벗은 나목 한 그루, 그리고 모질게 불어대는 바람을 막아주는 영취산 산줄기가 한 폭의 그림과 같아 얼마고 쉬어가며 그동안 잠재웠던 문학적 상상력을 흔들어 깨우고 싶었습니다. 복작대는 관룡사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해 있고 피안의 극락세계로 떠나는 반야용선을 띄웠을 용선대가 서쪽으로 더 가까이에 있어 여기 청룡암이 극락정토를 만나보기에는 최적의 암자일 것 같았습니다.
13시21분 정상에 헬기장이 들어선 해발745m의 관룡산에 올랐습니다.
청룡암에서 약수터로 되돌아가 약수를 떠 마신 후 똑바로 올라가 해발고도를 높였습니다. 로프줄이 쳐진 바위 길을 올라 해발670m의 안부삼거리에 올라서서 만난 이 산악회의 후미대장 한 분이 제 뒤에도 몇 분이 더 있음을 알려주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암릉길이 관룡산으로 오르는 길로 커다란 암봉을 오른쪽으로 에돌고 난 후 솔밭사이로 난 넓은 흙길을 걸어올라 관룡산 정상에 다다르자 서쪽으로 화왕산의 억새밭이 빠끔히 보였습니다. 용선대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헬기장을 떠나 “번지없는 주막집”의 안내판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섰습니다. 685봉을 넘어 들른 전망지에서 오른쪽으로 멀리보이는 높은 산이 혹시 비슬산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널따란 고개마루인 청간재로 내려섰습니다. 동쪽의 청간에서 차로 이 고개까지 오르내릴 수 있어서인지 “번지없는 주막집”의 음식점이 여기 고개 마루에 넓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한 먼저 온 일행 몇 분들과 함께 서쪽으로 난 넓은 임도 길로 들어섰습니다. 길가에 철지난 개나리꽃이 만발해 이 길을 개나리길이라 불러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개나리 길(?)을 따라 나지막한 고개 마루에 올라서자 100m전방에 몇 년 전에 방영된 드라마허준의 세트장이 보였습니다.
14시30분 해발757m의 화왕산에 올라섰습니다.
고개마루에서 조금 내려서 허준이 살던 집을 지나지 않고 오른쪽 북봉으로 올랐습니다. 경북대의 천문관측소별터를 지나 북봉에 오른 다음 왼쪽으로 꺾어 서쪽으로 난 능선 길을 탔습니다. 722봉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은 오른 쪽 아찔한 암벽과 왼쪽 평온한 억새밭과의 경계선이어서 양쪽의 극명한 대비를 한 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고개마루에서 직진했다면 당연히 들러보았을 화왕산성과 창녕조씨 득성비가 내려다보이는 능선 길을 걸으며 연신해서 억새밭에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움푹 들어간 분화구 정 중앙(?)에 정방형의 연못이 자리해 있었고 그 위쪽으로 산성이 둘러싸여 있어 임진왜란 때 의병대장 곽재우선생께서 이 곳에 진을 쳤을 만큼 천혜의 요새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명성산이나 천관산에서 치러내지 못하는 위험한 억새밭 태우기를 화왕산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저 산성과 절애의 암벽이 억새밭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동쪽의 고산이 비슬산이 아니고 재약산임을 일러준 산행대장 한 분의 도움으로 정상에 올라선 제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15시15분 도성암을 둘러보았습니다.
하산 길은 산줄기를 타고 도성암으로 내려서는 솔밭 길이어서 미끄럽거나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서울 근교 산들 못지않게 먼지가 많이 일어 그리 편하지 못했습니다. 창원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하셨다는 산행대장 한분이 하산 길에 들려준 화왕산에 대한 칭찬은 한마디로 요약해 이 산이 창녕의 진산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창녕뿐만 아니라 창원과 진해, 마산에서도 이 산을 즐겨찾기에 억새꽃이 피는 가을날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루고도 남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제가 목요일인데도 산행 중에 수많은 산객 분들을 만나보았기 때문입니다. 자하골 북쪽 능선을 따라 도성암으로 내려서는 중 명상의 숲과 독서의 숲으로 명명된 소나무 숲을 지났습니다. 도성암에 다른 암자에서 보지 못한 대웅전이 자리하고 있어 의아했습니다. 도성암에서 군립공원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길은 차들이 왕래하는 넓은 길로 가게들이 문을 열었는데 평일이어서인지 한산했습니다.
15시40분 화왕산군립공원의 자하골 주차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개천 건너로 가야시대 고분 몇 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통일신라 북쪽에 자리한 발해만큼이나 삼국통일 전 신라의 서북쪽에 터를 잡은 가야국도 사료가 충분치 않은 터에 가야시대에 만들어진 고분의 발굴은 가야의 역사적 지평을 넓히는데 크게 기여했을 것입니다. 지난 5월에 시작한 호남정맥 종주를 마치면 낙남정맥에 발을 들일 생각입니다. 이때에 가야의 발자취도 함께 찾아볼 생각입니다. 긴 시간 버스를 타고 내려와 겨우 4시간을 산행으로 끝낸다고 생각하자 많이 아쉬웠습니다. 언제고 기회가 닿는다면 다시 창녕을 들러 자하골로 화왕산을 올라가볼 생각입니다. 이번에 걷지 못한 산성도 들러보고 영취산을 거쳐 종암산으로 이어가는 선의 산행을 마친 다음 부곡온천으로 내려가 볼 뜻입니다. 너무 짧게 산행을 마치고나자 아침저녁으로 두 끼씩 식사를 내는 산악회에 조금은 미안했습니다. 상경길이 막히지 않아 밤9시 조금 넘어 산본 집에 도착했습니다.
불의 산 화왕산을 올라 억새밭이 타오르는 불길을 관조할 수 있다면 최고의 산행이 되겠습니다만, 이는 3년에 하루만 가능하답니다. 귀경길 버스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제 가슴속에 옮겨 놓은 억새밭에 불을 질렀습니다. 제 가슴이 성곽이 되어 방화선 역할을 해주었기에 옆자리에 불이 옮겨 퍼질 걱정은 아니 해도 좋았습니다. 훨훨 타오르는 불길은 언제 어디서든 흥분과 열정의 도가니에 빠지게 합니다.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타오르는 억새 불꽃과 몇 마디를 나누었습니다. 가을 한 철 산 뜰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던 억새들이 온몸을 불태우고 한 줌의 재로 돌아가 다음해를 대비하는 지혜의 요체는 바로 자신의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무욕에 있음을 알았습니다. 오늘의 저를 과감히 불태우는 것이 자식들 앞날이 요원의 불길처럼 발전해 나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면 화왕산 불놀이 제전에 담긴 넓은 뜻을 제 가족으로 너무 좁혀놓는다고 한마디 들을 것 같아 같이 오른 모든 분들이 하시는 모든 일들이 타오르는 불길처럼 번창할 것을 함께 빌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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