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80.두륜산 산행기(1-2)

시인마뇽 2007. 8. 27. 12:07


                                                    두륜산(2)

 

                                                 *산행일자:2017. 12. 23()

                                                 *소재지 :전남해남

                                                 *산높이 :두륜산가련봉703m

                                                 *산행코스:오소재-오심재-노승봉-가련봉-너덜길

                                                  -만일암터(천년수)-대흥사-버스주차장

                                                 *산행시간:1150-1646(4시간56분)

                                    *동행 :경동고24회 명백회 회원 및 선후배 동문 등




   


                                                   

    산림청이 명산100산으로 선정한 두륜산은 한반도 최남단의 해남군이 자랑하는 천년고찰 대흥사가 자리하고 있어 더욱 유명합니다. 제가 이 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미술평론가 유홍준 교수의 명저 나의 문화유산기를 읽고 나서입니다. 대흥사 앞 유경여관에 투숙하는 손님에 길안내를 훌륭히 해주는 명견을 소개하는 글을 읽기 전에는 대흥사는 물론 두류산도 잘 몰랐습니다.


 

   두륜산은 2003(?)2007년에 정상을 오른 산입니다. 그럼에도 이번에 이 산을 찾아간 것은 집사람과 함께 거닐었던 대흥사 경내를 걸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20년 전의 일입니다. 1997년 큰아들이 이 나라 최고의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준 고교동문 김종화군에 고마움을 표하고자, 저희 부부와 그들 부부가 한 팀이 되어 남도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서울을 출발해 완도에서 일박하고, 보길도를 둘러본 후 땅끝마을과 여기 대흥사를 거쳐 광주로 올라가 다시 하룻밤을 묵고 나서, 장성의 백양사를 마지막으로 탐방한 귀경한 23일간의 남도여행을 잊지 못하는 것은, 그해 여름 집사람이 암에 걸렸고 3년 후 세상을 떠 다시는 남쪽 땅을 같이 여행하지 못해서입니다.


 

   스무 해 전 저희 넷이 대흥사의 경내에 이른 것은 5월 초순의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때마침 법고가 울려 천년고찰의 그윽함과 아늑함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큰아들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고 저도 4개월여 실직생활을 마감하고 며칠 후 유력회사에 임원으로 출근하기로 확정 된데다 고마운 친구 부부와 함께하는 여행이어서 얼마간은 들뜬 기분이었는데, 법고 소리를 듣고 나자 세속의 고통과 환희가 모두 사라진 듯 평안함이 느껴졌습니다. 일주문에서 대흥사경내로 들어가는 길 또한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푸르른 신록의 나무들과 길옆으로 흐르는 계곡물 소리가 빚어내는 봄의 생동감이 실직기간 중 저의 두 어깨를 짓눌렀던 초조감과 무력감을 날려버렸습니다. 아들의 대학입학과 저의 재취업에 대한 걱정에서 해방된 집사람의 얼굴에서도 이제 긴 터널을 빠져나왔다고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이번에는 집사람은 같이하지 못했지만 그때 동행했던 친구 부부와 함께 해, 저도 모르게 그때 같이 걸었던 일이 새록새록 생각났습니다.



   오전1150분 오소재를 출발했습니다. 아침 640분이 조금 못되어 교대역을 출발한 안내산악회의 관광버스가 5시간가량 남쪽으로 달려 땅끝기맥이 지나는 해발180m대의 오소재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아래 넓은 공터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산행채비를 마친 후 북서쪽으로 포장도로를 따라다가 오소재약수터를 막지나 왼쪽 들머리로 들어섰습니다. 들머리로 올라서서 한참을 걸었어도 잔설이 보이지 않아 아이젠을 차지 않고 그냥 올라갔습니다. 한겨울의 남도산행이 색다른 것은 동백과 산죽이 녹색을 잃지 않아서인데, 여기 해남군의 한 낮 기온이 영상12도로 예보됐을 만큼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이 산에서도 푸르른 수목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습니다. 왼쪽으로 가까이 보이는 땅끝기맥의 능선과 나란히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완만한 경사가 한 동안 지속되어 오름길이 별반 힘들지 않았습니다.



   1233분 오심재에 도착해 일행들과 같이 점심을 들었습니다. 오소재를 출발한지 반시간이 지나자 경사가 가팔라졌고 녹지 않고 남은 눈이 길을 덮은 곳도 간간히 눈에 띄었습니다. 오소재 출발 후 쉬지 않고 걸어올라, 일행보다 조금 빨리 해발450m대의 오심재에 이르렀습니다. 북쪽 고계봉과 남쪽 노승봉 사이에 자리한 오심재는 대흥사의 12대 강사였던 혜장선사가 당시 강진의 다산초당에 유배와 있던 다산 정약용과 교류하기 위해 넘어 다녔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고개라 합니다. 공터가 꽤 넓어 안부(鞍部)라고 부르기가 좀 뭣한 오심재에서 고교동문들과 함께 점심을 들면서 이런 저런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제가 일찍 식사를 끝내고 일행보다 먼저 139분에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그리하지 않으면 걸음이 느려 이번 산행의 끝점인 대흥사입구 주차장에 안내산악회에서 지정해준 1644분까지 대지 못할까 걱정되어서였습니다


 

     145분 정상봉인 해발703m의 가련봉에 올라섰습니다. 오심재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에는 눈이 녹지 않아 아이젠을 꺼내 찼습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냉기가 더해져 겨울산행의 묘미가 조금은 감지됐지만 워낙 날씨가 푸근해 등 뒤에 땀이 배기 시작했습니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지근거리에 있는 흔들바위를 들러보지 못하고 왼쪽으로 조금 올라 땅이 질펀한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헬기장을 가로질러 머리 위에 자리한 해발682m의 거암 노승봉을 왼쪽으로 에돌아 꼭대기에 올라서자 오심재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고계봉의 케이블카승강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파른 데크계단길로 내려가 노승복과 가련봉 중간의 안부삼거리에 이르자 오른 쪽 아래로 천년수로 내려가는 길이 보였습니다. 거대한 암봉인 가련봉을 오른쪽으로 에돌아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북동쪽의 오소재를 지나 여기 가련봉에 이른 다음 남서쪽으로 뻗어나가 두륜봉과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제 눈을 끌었는데. 이 산줄기는 호남정맥의 바람봉에서 시작해 한반도의 최남단인 땅끝마을의 사자봉에서 끝이 나는 땅끝기맥입니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은 후 하산시간을 줄이고자 앞서 지나온 안부로 되 내려갔습니다.


 

   1458분 천년수(만일암터)에 다다랐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남서쪽으로 내려가는 천년수로 가는 길은 너덜겅 지대를 따라 내려가는 길로 30분이면 충분할 것이다 했는데 48분이 소요됐습니다. 자칫 잘못해 발이 바위사이로 빠지게 되면 다칠 수도 있겠다 싶어 엄청 조심해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겨놓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중간 중간에 표지목과 표지기가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덜 했지만 더러 더러 녹지 않고 남은 눈이 바위를 살짝 덮은 곳도 여러 곳 있어 더욱 신경이 쓰였습니다. 안부삼거리에서 반시간 쯤 내려가서야 꼭 10년 전 천년수를 출발해 이 너덜겅 지대를 따라 올라가다가 제 길을 찾지 못해 포기하고 되돌아간 일이 생각났습니다. 너덜지대를 무사히 통과해 왼쪽 산길로 들어선 후 3-4분을 내려가자 천년수가 보여 반가웠습니다. 천년수 아래에서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른 후 북서쪽으로 15분가량 올라가 북미륵암 입구에 다다랐습니다.


 

   1646분 대흥사 입구에서 조금 떨어진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혹여 늦을까 마음이 안 놓여 북미륵암에서 쉬어가지 못하고 곧바로 서쪽으로 내려가면서 동백나무 숲도 지나고 너덜겅도 건넜습니다. 만일재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 얼마간 더 진행하자 대흥사로 이어지는 대로가 나타났습니다. 가련봉에서 두륜봉쭉으로 가다가 중간지점인 만일재에서 하산한 김종화 동문부부를 만나 대흥사 경내를 같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없어 표충사는 물론 대웅전도 둘러보지 못하고 주차장을 향해 내달았습니다. 발걸음은 빨랐어도 이 길의 평안함은 20년 전 집사람과 함께 걸었던 그때 그대로여서 옛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일주문을 지나고도 한참을 더 걸어 약속된 시간보다 2분이 늦은 1646분에 대기 중인 안내산악회의 버스에 올랐습니다.


 

   너덜겅이란 산사면 방향으로 흘러간 돌덩어리 암괴가 무수히 널리 퍼진 지대를 이르는 것으로 돌강 또는 암괴류(Block Stream)로도 불립니다. 이우평님의 저서인 한국지형산책에 따르면 너덜겅이 형성되는 과정은 대략 이러합니다. 먼저 지하 깊은 곳에 있던 화강암이 지표로 올라오면서 압력이 사라져 팽창하게 되어 암석에 절리가 발달합니다. 절리 사이로 물이 들어가 침식과 풍화작용이 진행되면서 절기의 간격이 커지고 핵석과 중간물질인 새프롤라이트가 만들어집니다. 침식에 의해 지표로 노출된 바위 덩어리들은 기온이 상승하자 활동층의 사면을 따라 계곡 아래로 서서히 내려갑니다. 빙하가 끝나고 활동층이 사라지면 바위덩어리들이 그 자리에 멈춥니다. 그 후 빗물과 계곡물에 의해 중간물질들이 모두 씻겨나가고 암괴들만 제자리에 남게 되는데 이 암괴들을 너덜겅 또는 암괴류라 부르는 것입니다.

 

   박종관 교수는 그의 저서 “Let's go 지리여행에서 경남 밀양 만어사의 너덜겅 형성시기를 대략 3만 년 전으로 잡고 있습니다. 여기 두륜산의 너덜겅도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번에 걸은 너덜겅 길은 지각 변동으로 융기된 노승봉과 가련봉이 오랜 세월 지속된 풍화작용을 견뎌내지 못하고 자기 몸을 떼어낸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만년동안 흘러내린 너덜겅 지대를 1시간도 못 걸어 통과해놓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푸념하는 것이 아무래도 경박한 짓거리이다 싶어 부끄러웠습니다.

 

 

   너덜겅의 바윗돌과 모암인 노련봉이나 가련봉과의 물리적 거리는 아주 가까워도 끝내 만날 수 없는 것은 3만년이란 시간적 거리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영혼이 없는 무생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집사람과 헤일 수 없이 먼 거리에 있어도 시간적 거리는 17년으로 아주 짧아 마치 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아마도 아직 집사람의 혼백이 아주 멀리 날아가 버리거나 여기저기로 흩어져 없어지는 혼비백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혼비백산을 막은 것은 공유하고 있는 추억 덕분이라는 생각입니다.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 기록해가면 더러는 역사로 남을 지도 모릅니다. 국가건, 개인이건 혼비백산을 막아주는 것이 결국은 기록된 역사의 몫일 것 같아 쓰답지 않은 글이지만 용기를 내어 이렇게 남기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선배님 새해인사가 늦었습니다.
2018한해는 건강하시고 봉마니 받으세요.
2017송년산행으로 두륜산을 다녀오셨네요.
산도 험하고 바위 봉우리의 연속인데 무사히 다녀오셨으니 다행입니다.
돌아가신 사모님과의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군요.
생각이 나실 때마다 산행사진 보면서 추억으로 들어가시는 것도
외로움을 달래는 하나의 방법일 겁니다.
다음에 만날 때까지 건강하세요~~~
세월, 참 빠릅니다.결혼해 같이 산 것은 23년 밖에 안되는데 보낸지가 벌써 18년이 됐습니다.   같이 산을 많이 다닌 편이어서 산에 가면 생각나곤 합니다. 새해에도 꾸준히 산에 다니실 수 있도록 건강하시기를   빌겠습니다.  
 

 

 

 

 

 

 

 

 

                                                      두륜산(1)


                    *산행일자:2007. 8. 25일

                    *소재지  :전남해남

                    *산높이  :703m

                    *산행코스:공원매표소-대흥사-북암-만일재-거연봉-만일재

                              -두륜산(거연봉)-만일재-대흥사-매표소

                    *산행시간:8시55분-15시55분(7시간))

                    *동행    :나홀로

 

 

   긴 시간 생고생을 하고도 두륜산의 상징인 구름다리를 다녀오지 못해 찜찜한 기분으로 산행기를 쓰고 있습니다. 4년 전 새빨간 동백꽃이 대흥사 주위를 화사하게 밝혔던 4월에 과천시산악연맹을 따라 이 산을 다녀갔으나 그 때는 산행기를 쓰지 않던 때라서 아무런 산행기록을 갖고 있지 않아 어딘가 허전했습니다. 그래서 언제고 다시 한 번 올라야겠다고 벼르면서도 워낙 먼 곳에 있어 이 산만을 다녀오겠다고 집 떠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마침 이번 10-11차 호남정맥 종주구간이 해남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흥 땅 산줄기를 지나도록 되어 있어 이틀간의 종주여정에다 하루를 더 잡아 어제 다시 고대했던 두륜산을 올랐습니다. 이틀 동안 폭서와 맞서며 정맥 길을 종주하느라 진을 다 뺀 터라 두륜산의 8봉을 모두 밟는 종주산행은 꿈도 꾸지 못하고 대흥사를 출발해 주봉인 가련봉과 양 옆의 노승봉 및 두륜봉을 오른 후 이 산의 상징인 구름다리를 건너 대흥사로 되돌아오는 원점회귀산행으로 코스를 짧게 잡고 산에 들었지만, 이 여름에 맹위를 떨치는 마지막 더위에 밀려 쉬엄쉬엄 산행을 한데다 도중에 엉뚱한 길로 잘 못 들어서 한 시간 넘게 헤매는 바람에 이미 표를 끊어 놓은 서울행 버스시간에 쫓겨 구름다리가 있는 두륜봉을 바로 코앞에 두고도 오르지를 못하고 쫓기듯이 하산했습니다. 이틀 연속 정맥을 종주하느라 더위에 시달려 잠시 정신이 혼미해진 것이 멀쩡한 제 길을 놔두고 엉뚱한 길로 잘 못 들어선 직접적인 원인이 된바 이번 더위의 기세가 과연 어떠했는가를 쉽게 가늠케 한 힘든 알바였습니다.


 전날 저녁 장흥의 시목재에서 장장 12시간의 정맥 종주를 마치고 장동으로 옮겨 장흥 경유 해남행 버스에 오른 시각이 밤 8시30분이었습니다. 50분 가까이 달려 도착한 해남에서 하차하여 인근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아침 6시40분에 출발하는 대흥사행 첫 버스에 오르겠다는 생각을 바꾸어 이 더위에 서두르지 말자고 마음을 다져 먹고 느지막하게 터미널로 가 저녁 5시30분 발 서울 행 고속버스를 예약한 후 8시30분에 출발하는 대흥사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논 뜰을 가르며 난 시골 길을 15분가량 달려 도착한 대흥사 입구 정류장에서 조금 걸어 내려가 공원매표소에 다다랐습니다. 문화유적 관람료로 2,500원을 냈는데도 원하는 두륜산이나 대흥사에 관한 자료는 얻지 못하고 해남군 관광용 리프렛만 받아들어 조금은 입장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 8시55분 매표소를 출발해 계곡 오른 쪽에 난 산책로로 들어섰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모기들이 덤벼들어 이들을 멀리 쫓느라 팔을 자주 휘저어야 했습니다. 동백나무 숲길을 지나고 구름다리도 두 번 건너 아스팔트 본길로 복귀한 후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소개되어 더욱 유명해진 오래된 여관 유선관(遊仙館)을 지나며 뜰 안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피안교 다리를 건너 이제부터 얼마동안 만이라도 속세와 등을 지겠다했는데 이름도 무색하게 가게 집이 한 채 더 있어 속세와의 별리도 만만한 일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9시40분 일주문을 지나 대흥사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백제 무령왕 14년에 신라의 고승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이 절은 신라 진흥왕 5년에 세워진 절로도 소개되어 혼란스러웠는데 알고 보니 두 설 모두 창건된 연도가 모두 서력 514년으로 결국 창건자 아도화상의 국적을 따라 신라 절로 본 것인가, 아니면 백제 땅에 세워졌으니 백제의 사찰로 보았느냐에 따른 혼란으로 여겨졌습니다. 서산대사에 의해 대흥사로 바뀐 원래의 절 이름 대둔사를 1994년에 되찾았다고 일러주는 한국관광공사의 안내문이 인터넷에 올려 있지만, 방금 지난 일주문에 엄연히 “두륜산대흥사”의 현판이 걸려있어 이 또한 혼란스러웠습니다. 일주문을 지나서 사천왕을 만났고 곧바로 넓은 경내로 들어섰습니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에 연잎이 수면을 가린 아담한 연못과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새 건물의 법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대웅전 앞뜰에 들어서자 불공을 끝내고 잠시 쉬는 아낙들의 얼굴에서 더할 수 없이 뿌듯해 하는 모습을 보고 저런 것이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은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꼭 10년 전에 한 고교동창과 부부 동반해 이 절을 들른 터라 대웅전이 생소하지 않았으며 그 때 저녁 6시가 되어 법고를 타종하는 스님 두 분의 엄숙한 모습을 지켜본 기억이 새록새록 났습니다. 대웅전을 일별한 후 표충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어떻게 한 울타리 안에 이름이 다른 두 절이 들어설 수 있을까 하는 저의 무식에서 비롯된 궁금증은 안내문을 보고나서 풀렸습니다. 서산대상의 전공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조선조 정조임금께서 손수 이름을 지어 내려준 사액사당으로 표충사의 사 자(字)는 절을 뜻하는 사(寺)가 아니고 사당의 사(祠)였습니다.


  10시23분 표충사를 출발해 동쪽의 북암을 향해 본격적인 산행에 나섰습니다.

표충사를 떠나 얼마큼 가다가 배탈이 난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다시 돌아와 법고 아래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10분여 늦어졌는데 몇 달 전부터 산에만 오르고자 하면 긴장되어 배가 사르르 탈이 나는 것도 이청준 선생의 오래된 단편 “조율사”에 나오는 “나”라는 화자가 중요한 계제에 긴장을 느끼면 어김없이 배알이가 일어나는 것처럼 일종의 기능적 질환(Functional Ailment)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산행시작 시간 반이 넘도록 화장실을 들른 시간을 빼고는 무거운 배낭을 벗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사흘 연속 산행을 해서인지 어깨가 아파와 오른 쪽으로 일지암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조금 지나 왼쪽의 북암을 향해 2-3분을 걷다가 길가에 앉아 배낭을 벗고 모처럼 편히 쉬었습니다. 한반도 최남단의 땅끝마을이 별로 멀지 않는 도립공원의 명산인데다 마침 토요일이어서 이 산을 오르는 분들을 많이 만나 반가웠습니다. 이틀간의 호남정맥 종주 중 사자산에서 딱 한 쌍의 부부를 만나 것이 전부였는데 오르내리는 사람들도 많고 길도 넓어 길 잃을 염려는 아니 해도 되어 모처럼 느긋하게 이것저것을 보며 산행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11시25분 북암에 다다랐습니다.

일지암 갈림길에서 시작된 돌 가닥 길이 꽤 오래 계속되었습니다. 초반에는 경사가 완만했으나 얼마 후 된비알 길로 변해 북암에 오르기까지 진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돌계단을 올라 북암에 다다르자 용화전 안에 자리한 석불인 마아여래좌상의 투박한 모습이 조금은 익살스러워 보였습니다. 용화전에서 동쪽의 노승봉을 거쳐 정상인 가련봉에 오르겠다는 생각을 바꾼 것은 연 3일 계속되는 산행으로 조금은 지친데다 만일암 터가 볼만할 것 같아서였는데 결과적으로 만일암터를 들러본 후 정상에 오르는 것으로 코스를 바꾼 것이 얼마 후 치러낸 알바의 근인이 되었습니다. 용화전에서 되 내려가 물을 받아 마시는 잠깐 동안에도 저의 목덜미는 살인적인 햇빛의 강도를 감지하고 이번만은 작렬하는 태양을 가려줄 나무가 별로 없는 암릉 길을 피해 편하고 그늘진 길로 가라고 간곡하게 일러주었습니다. 15분을 다시 쉰 후 가련봉을 오른 쪽으로 우회해 전체 규모는 작지만 바위 돌의 크기는 설악산의 황철봉을 방불한 너덜겅을 지났고 작은 계곡을 건너 12시 정각에 천년수의 느티나무 거목 앞에 다다랐습니다.


  한 많은 전설로 더욱 신비해진 천년수 나무 근처에 구름다리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어 그 길이 비록 넓게 잘 나있지만 두륜봉으로 가는 길이지 정상인 가련봉으로 오르는 길이 아닌 것으로 멋대로 예단하고 다시 계곡으로 돌아가 빨간 표지기가 붙어 있는 아주 좁은 길로 올라선 것이 구름다리를 건너지 못하게 한 알바의 시작이었습니다. 산죽을 헤치고 얼마고 올라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택해 조금 더 올라가자 너덜겅이 나타나 더 이상 길을 이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걸었어도 너덜겅 지대가 끝나지 않아 포기하고 삼거리로 내려와 이번에는 오른 쪽 길로 올라섰습니다. 이 길 역시 한참 후 너덜겅 지대로 이어져 또 한 번 너덜겅 길을 찾아 헤매다가 더 이상 오르는 것이 무리라고 결론짓고 천년수 거목 앞으로 되내려왔습니다. 꼬박 70분 동안을 길도 아닌 곳에서 헤매느라 기력을 많이 소진해 정상을 과연 오를 수 있을까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13시10분 천년수 앞 공터를 출발했습니다.

바로 위 만일암 터에 두륜봉을 바라보고 서있는 5층 석탑을 사진 찍은 후 15분이면 오를 수 있다는 하산객 들의 격려에 힘을 얻어 쉬지 않고 10분을 더 걷다가 안 되겠다 싶어 그냥 길가에 퍼져 앉아 준비해간 떡을 들면서 15분을 쉬었더니 다시 생기가 났습니다. 잠시 후 억새밭이 꽤 넓은 고개 마루 만일재에 올라서자 왼쪽의 가련봉과 오른 쪽의 두륜봉이 우뚝 서있어 위압감이 느껴졌고 고개 너머 바다 건너로 제가 쌍용제지의 충호남영업부장으로 일했던 십 수 년 전에 대리점 방문 차 다달이 들렀던 완도가 한눈에 들어와 엄청 반가웠습니다. 가련봉은 0.5Km, 두륜봉은 0.3Km 거리 밖에 안 되어 두 봉을 다 다녀와도 그 거리가 1.6Km로 1시간이면 충분하겠다 싶어 구름다리를 건너는 것은 문제될 게 없을 것을 생각됐습니다.


  14시14분 해발 703m의 두륜산 정상인 가련봉을 올랐습니다.

만일재에서 올려다 본 가련봉이 하도 높게 보여 거리는 0.5Km로 짧지만 20분은 족히 걸릴 것이다 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어 36분이 지난 후에야 정상에 올랐습니다. 사방을 휘둘러보아도 표지석이 보이지 않아 찜찜하면서도 실망스러웠습니다. 철계단을 오르고 로프를 잡고 쇠판을 딛고 올라 정상에 오르자 바다 풍경과 대흥사를 에워싼 능선과 암봉들이 시원스레 한눈에 들어와 전망이 일품이었지만 사방을 휘둘러보아도 어디에도 표지석이 보이지 않아 찜찜하면서도 실망스러움 속에 하산을 했는데 집에 돌아와 검색해보니 다른 분의 산행기에는 정상석 사진이 실려 있었습니다. 서둘러 깊고 넓은 억새밭 안부인 만일재로 내려서자 14시 40분이되어 눈앞의 두륜봉을 다녀오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16시45분에 출발하는 해남행 버스를 타야 17시30분 발 강남행 버스에 오를 수 있기에 구름다리 건너기를 포기하고 하산 길을 서둘렀습니다. 대흥사까지 1시간, 다시 매표소까지 40분이 걸린다면 중간에 쉬는 시간을 줄인다 해도 그리 넉넉한 것이 아니어서 곧바로 만일재를 출발했습니다.


  15시26분 표충사로 되내려왔습니다.

만일재에서 북암과 일진암 중간으로 난 지름길로 하산했습니다. 중간에 4-5분을 쉰 것 외에는 몇 곳의 갈림길을 지나면서 사진도 찍지 않고 그냥 내달려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만, 대부분이 돌 가닥 길이어서 발바닥이 아팠습니다. 오름 길에 그냥 지나쳤던 연못과 법고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일주문을 지나고 피안교를 건너 속세의 길로 들어서자 10년 전에 차를 타고 함께 이 길을 지났던 집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알바를 하거나 너무 힘들게 산행을 할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걷는 데만 몰두하지만 산행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는 가끔은 집사람이 머리에 떠오르곤 해 고행과 추억을 함께 반추하곤 합니다. 이번 두륜산 산행은 4-5시간이면 끝나는 편안한 산행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무더운 날씨와 엉뚱한 알바로 생고생을 했더니 머릿속에 떠오른 집사람이 저의 뜻하지 않은 고행을 위로해주었습니다. 매표소가 가까워지자 버스시간 걱정이 없어져 비로소 측백나무와 활엽수들이 그늘을 만든 넓은 길이  운치가 있어 보였습니다.


  15시55분 매표소 앞에 도착해 7시간 동안의 두륜산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산책코스를 따라 숲 안으로 조금 들어가 주 계곡으로 흘러들어가는 지류에서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고 나자 이제는 차를 타도 옆 사람에 찌든 땀 냄새를 풍기지는 않겠다 싶어 마음이 놓였습니다.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해 15분을 기다렸다가 3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해남행 버스를 16시45분에 올라타 17시30분 해남 발 강남행 고속버스에 여유롭게 올랐습니다.


 모기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이틀 전이니 이번 더위는 아무리 극성을 떤다 해도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의 시 “가을날”에서 읊은 대로 주님이 베푸시기를 원하는 마지막 이틀의  남국의 날이어서 마지막 과일을 무르익도록 하면 끝날 수밖에 없는 그런 더위입니다. 아직도 한 낮에는 폭염이 맹위를 떨쳐 한 밤에도 열대야가 계속될 만큼 열기가 대단합니다만 아침에는 이미 가을에 한발을 들인 것을 완연히 느낄 정도로 선선해진 것도 틀림없습니다. 바깥뜰의 나락을 익게 하고 미처 크지 못한 가을작물들이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릴 만큼 자라도록 도와주는 마지막 이틀의 여름을 호남정맥을 종주하면서, 또 두륜산에서 오르면서 산 에서 전송하느라 진땀께나 흘렸습니다. 이 여름에 흘린 땀이 그동안 쌓였던 노폐물을 밖으로 분비시켜 몸속을 깨끗이 했을 것이기에 다가오는 가을철과 겨울철 내내 제 몸 안 밖의 정신과 육체가 건강하게 유지될 것이 확실히 기대되어 이제는 여름을 편히 보내도 될 것 같습니다. 남국으로 먼 길을 떠나는 이 여름이 더위 먹어 아둔해진 저처럼 길을 잃고 헤매다 때 없이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두륜산의 영험하신 신령께 빌어볼 뜻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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