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산림청선정 명산100산/명산100산 탐방기

77.대암산 산행기

시인마뇽 2007. 8. 6. 18:03

                                               대암산


                *산행일자:2007. 8. 4일

                *소재지  :강원양구/인제

                *산높이  :대암산1,304m

                *산행코스:대암산 서쪽통문-1,304봉초소-대암산-1,304봉초소-서쪽통문

                *산행시간:10시2분-17시12분(7시간10분)

                *동행    :경동동문 및 지인 1명 등 총7명

                 (24이규성, 27송기훈,조동식,이수룡, 29정병기, 31강명세 및 지인 장낙승)

 

  

   온 산을 에워 싼 운무도, 억수같이 퍼부은 폭우도 대암산을 오르는 저희들을 내치지는 못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 날 마침 강원도 전역이 일본을 지나는 제 5호 태풍 우사기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 몇 차례 천둥번개가 치며 큰비가 내렸고 짙은 안개가 자욱이 끼어 가시거리가 10m를 넘지 못한 악천후의 하루였습니다. 홍천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양구로 옮겨 453번 도로상의 해발700m지점에 위치한 대암산의 서쪽통문에 다다르기까지 줄기차게 내리는 비로 산행을 다음 기회로 미룰까도 생각해봤습니다. 몇 해 전에 대령으로 예편한 장 낙승님의 도움으로 주둔 군부대로부터 어렵게 받아낸 입산허가를 그냥 날리기는 아깝다는 것이 중론이었고 비가 많이 내리면 물이 불어 위험해지는 계곡을 오르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이 능선 가까이의 군사도로를 걷는 것이어서 예정대로 강행했습니다. 군사도로에서 남동쪽으로 떨어진 대암산으로 향하는 중 구름떼들의 방전으로 전광석화 같은 섬광을 내는 번개에 뒤이어 우르릉 쾅쾅 지축을 뒤흔드는 천둥이 치고 집중호우가 쏟아져 한 주 전 낙뢰로 4명의 생명을 앗아간 북한산의 악천후가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아닌 가 가슴 졸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악천후를 무릅쓰고 정상을 오른 저희들에 대암산은 20분 가까이 앞가슴을 풀어헤치며 모든 것을 아낌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대암산이 저희들을 위해 첫 번째 한 일은 온 산을 휘감은 운무를 하늘 높이 거둬낸 것입니다. 무자비할 정도로 많은 비를 뿌려 운무를 내쫓았고 운무가 완전히 제거되자 이내 비를 멈추게 해 이 산의 속살이 훤히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이어서 곳곳에 뭉게구름을 잡아놓아 목가적 아름다움이 돋보이게 했고 태양의 출현을 끝까지 막아 아늑함과 그윽함을 더했습니다. 펀치볼 전투의 쓰라림도, 해발1300m대에 자리한 소중한 용늪의 보존가치도, 대우산 너머 북녘 땅 인민들의 배곯음도 모두 새까맣게 잊은 채 오로지 구름과 산  단 둘이서 빚어낸 아름다움에 넋을 빼앗겨 한동안 멍했습니다. 막 목욕을 끝낸 듯이 숲들의 싱그러움이 온 산에서 감지됐고 북서쪽으로 가까이 보이는 움푹 들어간 해안의 넓은 벌은 펀취볼의 그릇보다 훨씬 아늑해 보였습니다. 먼발치로 밀려나 7부 능선쯤에 걸쳐있는 안개가 먼 산들의 신비감을 더해주었으며 그리 높지 않은 곳에 여기 저기 떠 있는 뭉게구름이 이 산을 한층 더 그윽하게 만들었습니다. 저희들의 대암산 등정에 맞추어 구름과 산이 손잡고 빚어낸 이 비경들을 보고 어느 누가 감탄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싶어 궂은 날씨의 대암산 등정이 더욱 뜻 깊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침10시2분 700m지점의 남쪽 통문에서 대암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하룻밤을 묵은 홍천의 화랑회관을 6시 조금 지나 출발했습니다. 시내 해장국 집을 찾아 아침을 든 후 8시40분경에 양구의 모사단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예상보다 비가 많이 내려 통문을 출발해 대암산 정상에 오른 후 광치령으로 하산하겠다는 계획을 다시 출발지인 통문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변경하고 회관에다 주차할 예정이었던 차 2대를 통문까지 가지고 가 그곳에다 주차했습니다. 양구의 군휴게소를 출발해 통문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이 다 걸린 것은 지척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안개가 잔뜩 끼어 속도를 낼 수도 없었지만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한참을 가다가 다시 돌아와 통문을 지나는 453번 지방도로로 들어섰기 때문입니다. 453번 도로에 들어서서도 통문을 그냥 지나치고 해발 1,000m대의 돌산고개 마루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가느라 20분 가까이 늦어졌습니다. 해발 700m지점의 서쪽통문 안에다 차를 주차시킨 후 남동쪽의 대암산으로 이어지는 군사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짙은 안개로 대략적인 산세도 가늠할 수 없었지만 산허리를 잘라 길을 낸 큰 도로가 폭이 넓고 경사가 완만해 산행을 하는 데는 그리 문제 되지 않았습니다. 이내 빗줄기가 굵어져 배낭을 비닐 카바로 가리고 우의를 꺼내 입었습니다. 10분가량 걸어 다다른 길가의 넓은 공터에서 빙 둘러서서 27기 조동식 사장을 따라 스트레칭을 했습니다.


  11시52분 도솔지맥과 합류하는 1,304봉 바로 아래 초소에 도착했습니다.

공터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후 완만한 경사 길을 천천히 걸어 올랐습니다. 비포장 길과 시멘트포장 길이 반복해서 이어지는 군사도로에 병력의 승차지점과 하차지점을 알리는 표지목이 번갈아 나타났습니다. 초소에 닿기까지 한 번도 안개가 걷히지 않아 시계는 거의 제로상태였고, 능선과 골짜기 어느 하나도 보이지 않아 이 산에 올리고자 준비한 찬사는 뒤로 미루었습니다.  일행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산을 올랐는데 처음 만난 이들과도 스스럼없이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바꾸지 못한다는 동창의식의 발로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는 앞서가는 일행들의 뒷모습들이 깊은 산사에서 하안거를 하고자 원행 길에 나선 스님들과 같아 보였습니다. 저희들이 걸어 오르는 길이 몇 개의 산줄기와 계곡을 가로 질러 낸 군사도로여서 종종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습니다. 길섶의 이런 저런 꽃들에 눈길을 주며 도솔지맥과 만나는 능선에 다다르자 길을 가로 막고 초소를 지키는 초병들이 저희들을 반겨 맞았습니다.


  도솔지맥이란 백두대간의 금강산 매자봉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가다 휴전선을 넘어 도솔산-사명산-오봉산을 차례로 일군 후 남쪽의 소양강에서 그 맥이 다하는 총 연장 124Km의 산줄기입니다. 대간의 분기점인 북한 땅의 매자봉을 오를 수 없어 아침에 차를 타고 올랐던 남한 땅의 돌산고개에서 지맥종주를 시작하는 데 고개 마루 초소를 지키고 있는 초병에 도솔산을 오를 수 있는 가를 물어본 즉 길은 나 있지만 입산이 금지된 산이라고 답을 들었습니다. 돌산고개를 출발하여 남쪽에 자리한 해발 1,148m의 도솔산을 오른 후 남동쪽으로 뻗어 나간 산줄기를 걷다보면 1304봉의 초소에 다다르게 됩니다. 다시 20분여 걸어 다다른 대암산 분기점에서 남서쪽으로 꺾어 광치령으로 이어지는데 대체로 돌산고개에서 광치령까지 약 16Km의 구간을 지맥 종주 첫 구간으로 삼습니다. 어렵게 입산 허가를 받은 김에 도솔지맥 첫 구간을 종주해볼까 하는 욕심이 일었지만 제반 여건 상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어 엄청 아쉬웠습니다.               


  12시45분 부대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대암산으로 향했습니다.

초소 안으로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고 있는 동안 장병 한 명이 마중 나와 바로 아래 부대 식당으로 안내했습니다. 짐을 풀어 준비해간 음식을 선물로 장병들에 내준 후 식당에서 떡과 과일을 들었습니다. 이런 날씨라면 산행 중 선채로 바깥에서 비를 맞고 점심을 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식당에서 점심을 들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줄 몰랐습니다. 배식구 위에 써 붙인 “어머니의 마음으로” 글귀가 장병들의 입맛을 돋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8명의 일행들이 한 자리에 모여 앉아 느긋하게 이것저것 한껏 먹느라 생각보다 출발이 늦어졌지만 부대원이 길을 안내해 안심됐습니다. 광치령으로 이어지는 군사도로를 따라 15분여 걸어 다다른 용늪감시초소에서 잠시 발은 도솔지맥과 헤어지고 동쪽의 풀 숲길로 들어서 대암산으로 향했는데 숲 길 오른 쪽 철조망 너머로 지뢰가 매설되었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어  으스스했습니다.  대암산의 용늪은 4천 년 전에 형성된 남한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고층습원지대입니다. 정부는 이곳에 살고 있는 자주색의 금강초롱과 끈끈이주걱 등 희귀식물과 여기 늪지대을 보존하고자 1970년 국내 최초로 람사조약에 가입해 용늪을 습지로 등록했고, 또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해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14시10분 해발1,304m의 대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헬기장을 지나서 원대암봉을 우회할 즈음 번갯불이 번쩍하고 천둥소리가 요란해 간이 콩알 만해졌습니다. 빗물로 질펀해진 길이 마냥 미끄러워 내림 길이 조심스러웠고 대암봉 바로 앞에서 시작된 암릉 길의 경사진 바위에 흠뻑 젖은 구두가 잘 달라붙지 못하고 미끄러져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긴장됐습니다. 대암산 정상에 이르기 직전 그동안 쏟아 부은 비로 안개가 소멸됐고 이내 비가 그치자 대암산 정상을 중심으로 4-5Km 이내의 산들은 막 목욕을 끝낸 듯 차림새가 깔끔했습니다. 해안의 펀취볼과 1,304봉의 통신기지가 선명하게 보였고 북서쪽으로 오전에 걸어올라 온 군사도로가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한나절 내내 안개 속에 숨어 지낸 산자락들이 20분여 안 가슴을 드러내 보인 것은 한 친구의 표현대로 축복이자 은총 그대로였습니다. 필설로 다 옮길 수 없을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전하는 것은 사진의 몫이기에 사방을 휘둘러보며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지형도에는 해발고도가 1,304m로 표기됐는데 이름을 달리하는 두 산악회가 각기 다른 봉의 바위에 1,314m로 적혀있는 철판을 박아 놓아 헷갈렸습니다. 정상도착 20분이 지나자 다시 후드득 비가 내리기 시작해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15시44분 부대식당을 출발해 통문으로 하산했습니다.

길을 안내해준 부대원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큰 도로를 따라 초소로 올라갔습니다. 하루 종일 비를 맞은 길가의 야생화들이 이번에는 요염한 자색의 패랭이꽃도 제 색을 내지 못해서 특유의 화사함을 잃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5분 후 초소를 빠져 나와 오전에 걸어 올라온 큰 길로 내려섰습니다. 군부대의 협조를 이끌어내어 대암산 등정을 가능케 한 장 낙승님이 대학에서 학생들에 가르치는 전쟁사 일부를 들려주었습니다. 부대 식당에서는 펀취볼 탈환작전을 들려주었고 하산 길에 현리전투의 이야기를 들려주어 대암산 등정의의를 더해주었습니다. 해안면의 펀취볼(Punch Bowl)지역을 점령하고자 치러낸 도솔산 전투에서 승리한 우리 해병대에 이승만대통령이 무적해병의 휘호를 내려준 일, 이어지는 대우산 전투, 피의 능선 전투 등 치열한 펀취볼 탈환작전에서 밀고 밀리는 고전을 반복하다가 마침내는 승리하여 적군을 단장의 능선까지 밀어낸 일, 3주간의 밀고 밀리는 피 말리는 전투를 종지부 찍고 펀취볼을 탈환해 우리 국군이 입성한 일 등 우리나라 전사에 길이 남을 전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반도의 정중앙에 자리한 양구를 차지하는 것은 신라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점했던 만큼이나 상징적 의미가 커 더 격심한 전투를 벌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7시12분 출발지인 통문으로 되돌아와 대암산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번 대암산 산행이 날씨가 좋지 않고 장거리 산행이어서 무릎이 성하지 못한 송 부회장에는 큰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초소에서 통문으로 하산하는 중 조동식 동기가 내달려가 통문에 주차한 차를 끌고 되올라왔습니다. 무릎 통증이 심해 고통스러워하는 송부회장을 중간에 태워 내려가는 동창애의 현장을 보고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바꿀 수 없는 이유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생각보다 산행이 조금씩 지연되고 시간도 더 걸려 귀경길이 바빴습니다.

이 회장이 제안한 박수근 전시관을 들러보지 못하고 춘천으로 나가 춘천의 명물 막국수를 맛있게 들었습니다. 박수근 화백은 1914년에 양구면 정림리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마친 후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명암이나 원근감을 배제하고 형태를 단순화한 작품들을 주로 그렸다 합니다. 그림을 팔아 근근이 살아가는 중 백내장으로 한쪽 눈을 잃어 고생하다가 1965년에 사망한 박수근님이 생전에 그린 그림들은 6.25전쟁 중에 부인이 단지에 넣고 진흙으로 밀봉해 중공군이 파놓은 방공호에 묻어놓고 월남했다는데 현재 그곳은 지뢰가 묻혀있는 비무장지대여서 전시관에 전시된 그림들은 대개가 복제품이라 합니다. 가난과 신체적 고통으로 힘들게 살다 간 박수근 화백에게는 당신의 그림들이 국내화단에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우리나라에 체류했던 미국의 한 저널리스트에 의해 미국시장에 소개되어 많이 팔렸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대암산 주위를 피로 물들였던 6.25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종전이 아닌 정전상태로 아직도 남북 쌍방이 대치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은 인근의 제4땅굴과 평화의 댐입니다. 북이 몰래 뚫은 땅굴과 남이 국민성금으로 쌓아올린 댐은 평화구축은 고사하고 전쟁 수행에도 아무런 도움을 못주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어서 남북분단이 낳은 비효율의 극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1956년 해안면의 민통선 안에 입주한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지뢰로 목숨을 잃었다 합니다. 팔 다리를 잃어 고생하는 분들이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한 6.25전쟁의 상흔을 말끔히 닦아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다음에 도솔지맥 종주 차  양구를 다시 찾아올 때는 이번에 빼먹은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를 들러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정태춘 님이 가사를 짓고 곡을 붙이고 노래를 부른  “민통선의 흰나비”를 목청 높여 불러보고자 합니다.


                 민통선의 흰나비


     맑은 햇살 푸르른 수풀  돌보지 않는 침묵의 땅

     긴 긴 철조망 살벌한 총구 저 갈 수 없는 금단의 땅

     바람에 눕는 억새 위 팔랑거리는 흰 나비

     저 수풀 너머 가려네 저 산도 넘어 가려네


     기름진 땅, 무성한 잡초 흐드러진 꽃밭에서 쉴래

     소나무 그루터기 무너진 참호  녹슨 철모위에서 쉴래

     졸졸 시냇물 건네며 팔랑거리는 흰나비

     저 강도 넘어 가려네 저 언덕  너머  음.


     해 기울어 새들 날고 서편 하늘 노을이 지면

     산봉우리 스피커, 초소위의 망원경 날개짓도 조심 조심

     외딴 아기 새 둥지 위  팔랑거리는 흰나비

     어두워 지기 전 가려네 저 너머로 음

 

  대암산 등정을 허락하고 도움을 준 우리 군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대암산 산행을 주선한 송부회장과 군부대 허가를 받아내는데 큰 도움을 준 송부회장의 친구분인 장낙승 님에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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