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산(3)
*산행일자:2013. 8. 17일(토)
*소재지 :경북포항
*산높이 :향로봉930m
*산행코스:하옥리고개-하옥교-삼지봉/향로봉삼거리
-향로봉-청하계곡-보경사-주차장
*산행시간:11시27분-19시50분(8시간23분)
*동행 :경동고24회 명백회회원 총23명
산을 오르는 행위는 자연에 대한 도전이면서 또 자연이 주어진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어서 양면을 모두 살펴보아야 오늘날의 산행이 온전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은 도전의 성격이 강한 편이라면 계곡에서 쉬다 내려가는 입산은 순응에 가깝다 하겠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주로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중간에 계곡에서 머물며 머리를 감고 사타구니를 씻어낸 후 바람으로 말리는 즐풍과 거풍을 즐기고, 흐르는 물로 발을 닦는 탁족을 자주 한 것은 자연에 순응한 좋은 보기입니다.
요즈음 산행은 정상을 오르는 등산이 거의 다여서 일단 도전적인 것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히말라야나 알프스의 고봉들을 오르지 않아도 도전의 짜릿함을 우리나라 산에서 느낄 수 있는 데는 변화무쌍한 기후가 한 몫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연교차가 50도를 훌쩍 넘는 나라도 흔치 않을 터인데 해마다 폭우와 폭설이 내습해 산행하기 좋은 온전한 날씨에만 산을 오를 수는 없습니다. 미리 날짜를 정해놓고 하는 팀 산행은 날씨가 나쁠 때마다 번번이 산행일자를 변경할 수 없는 노릇이어서 조금 무리하다 싶은 도전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2007-2008년 중 총14회를 출산해 종주를 마친 한북정맥 종주도 꽤 여러 번 날씨가 나빠 동행한 고교동문들에 쉽지 않은 도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번 고교동문들과 함께 한 명산 100산 산행이 힘에 겨운 도전이 될 수밖에 없었던 주 요인은 폭염입니다. 짝수 달 세 번 째 토요일로 산행날짜가 못 박혀 제가 하는 일은 산행지와 산행코스를 정하고 길 안내를 맡는 것입니다. 포항의 내연산을 산행지로 정하고 하옥교-향로봉-청하계곡-보경사 코스를 밟기로 한 것은 이 여름이 지나면 청하계곡의 진미가 반감되고 해가 짧아져 어둡기 전에 산행을 마치기 어렵겠다는 판단에 근거해서였습니다. 뜻하지 않은 복병은 한낮의 기온이 섭씨 37도에 이르는 폭염과 오랜 가뭄으로 청하계곡의 수량이 엄청 줄어든 것입니다. 날씨 때문에 더해진 도전적 산행이 동행한 명백회 회원들에 고통을 안겨주었고 이 도전이 짐스러운 몇 친구들은 엄청 힘들어 했습니다.
문제는 60대 중반의 저희에 도전적 산행이 맞느냐하는 것입니다. 여러 이론이 있을 수 있는 명제여서 한 번 모여 토론을 하고 싶지만 나이 들수록 도전의 강도를 떨어트려야 하는 것은 분명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입산 수준으로 떨어트려서는 명산100산 산행의 참 뜻을 살려낼 수 없는 일이므로 적당한 수준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모든 산행조건이 가장 열악한 회원에 수준을 맞추어야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막을 수 있기에 이제껏 저는 나름 그런 기준을 갖고 산행지와 코스를 정했습니다. 이리해도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새로 산행을 시작하거나 오래 산행을 쉬다가 다시 시작하는 친구들의 산행조건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전 11시27분 하옥리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때보다 이른 아침6시38분 양재를 출발해 고속도로를 타고가다 서포항I.C를 빠져나왔습니다. 기계를 거쳐 상옥리로 가기까지 지난 번 낙동정맥 종주시 걸어오른 성법령고개를 넘었습니다. 상옥리를 거쳐 통점재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주유소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올라선 고개마루에서 더 이상 버스는 진입할 수 없다며 하차해 걸어가라는 경찰의 이야기를 듣고 하옥교로 걸어 내려갔습니다. 도로가 포장되지 않아 치른 흙먼지 세례를 이번에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은 도로가 포장되어서인데 도로의 폭을 넓히지 않아 5년 전과 똑같이 걸어가야 했습니다. 하옥교를 막 지나 오른 쪽 산길로 들어서는 들머리에서 산행코스를 설명한 후 곧바로 된비알 길을 걸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13시30분 평평한 능선에 둘러앉아 점심을 들었습니다. 된비알 길이 그다지 길지 않았고 바람이 때 맞춰 불어 염려했던 더위는 참아낼 만 했습니다. 한낮의 기온이 섭씨 37도로 올라가 폭염주의보가 발해진 포항의 산을 오르는 일을 극력 만류한 가족들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된비알 길이 끝나서부터는 쉬는 횟수도 줄일 수 있었습니다. 하옥교를 출발해 시간 반을 걸었어도 삼지봉/향로봉 삼거리에 이르지 못했는데 어느새 오후 1시 반이 훌쩍 지나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넓은 평지의 능선 길에다 짐을 풀고 점심을 들었습니다. 반주를 곁들인 오찬으로 원기를 되찾은 다음 14시6분에 자리에서 일어나 향로봉으로 향했습니다.
14시45분 해발930m의 향로봉에 올랐습니다. 하옥교 출발 후 동쪽을 향해 진행해온 산 오름은 점심 식사 후 남동쪽으로 바뀌어 삼지봉/향로봉 삼거리까지 계속됐습니다. 고도차가 크지 않은 능선 길을 20분가량 걸어 다다른 삼거리에서 후미를 기다려 합동사진을 찍은 후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편안한 능선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20분을 채 못 걸어 도착한 향로봉은 헬기장이 들어선 평지로 동해안을 조망하기에 딱 좋아 새해 첫 날 일출을 맞이하기에 최적지일 것 같았습니다. 하산 길에 이기후 동문이 일러주어 방파제가 보이는 곳이 3년 전 고교동기들과 함께 들른 호미곶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머리 위에서 작열하는 태양의 위세에 밀려 정상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청하계곡으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16시45분 첫 번 째 너덜지대를 지났습니다.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이어지는 고메이등 능선 길이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는 것은 재작년 이교수와 함께 이 능선 길을 숨가빠하며 걸어올라 확인한 바 있어 조심해서 내려갔습니다. 내리막길이 급경사 길인데다 오름 길에 고맙게도 땀을 식혀준 산바람이 스르르 잦아들고 대신에 폭염이 고개 들기 시작해 남은 산행 길이 만만치 않겠다 싶었습니다. 급경사 길을 1시간가량 내려가 고메이등 길이 끝나는 청하계곡의 지곡에 이르렀는데 두 해전 보다 물이 급격하게 줄어들어 남부지방의 최근 가뭄이 얼마나 심한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북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진행하면서 바짝 달궈진 좁은 띠의 너덜지대를 네 곳이나 지났습니다.
18시20분 관음폭포 앞에서 잠시 숨을 골랐습니다. 이달헌 동문 등 선두 몇 명은 부지런히 내려가고 그 뒤를 따르던 몇 몇 친구들은 계곡으로 내려가 몸을 물에 담갔으며 얼마 후 저 또한 물속으로 들어가 열을 식혔습니다. 물속에 들어갔다 나와도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이내 한계를 보인 것은 청하계곡에 물이 엄청 줄어든 데다 바람이 전혀 통하지 않아 몸을 적신 물기가 10분도 안되어 모두 말라버렸기 때문입니다. 죄여오는 더위를 이겨내지 못한 몇 친구가 많이 지쳐 가다 쉬기를 반복했습니다. 구두를 벗고 맨발로 물을 건너야 했던 곳이 오랜 가뭄에 바짝 말라 곳곳에서 바닥을 드러내 발 벗고 건너야 할 두 곳 모두 신을 신은 채 건너 탁족의 기회도 놓쳤습니다. 청하계곡의 명품 구름다리를 건너 최고의 명소인 관음폭포 앞에 이르자 이 계곡이 긴 가뭄에 얼마나 시달려왔는가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폭포수가 쏟아져 내려오며 만들어진 물보라가 햇빛의 도움으로 연출했던 무지개는 온 데 간데없이 사라지고 아래 못을 반도 못 채워 신기하기만 했던 중간의 바위굴이 몰골사나워보였습니다.
17시50분 보경사 일주문 앞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관음폭포에서 보경사로 내려가는 길이 이제껏 걸어 내려온 길보다 한결 수월한 편인데도 이미 많이 지친 두 친구들에는 여전히 힘든 길이어서 또 다른 명소인 상생폭포도 그림의 떡이었을 것입니다. 작은 시멘트 보(?) 앞에 이르자 어둠이 짙게 감지됐습니다. 십 수분 후면 어둠이 이 계곡을 에워쌀 게 분명한데 탈진한 두 친구들이 혹시라도 길을 밝힐 헤드랜턴을 준비 안했을지도 몰라 걱정됐습니다. 10분가량 기다려 배낭을 대신 메고 내려오는 하태연동문을 보고 두 친구들이 거의 탈진한 상태에 이르렀음을 알았습니다. 조금 지나 사방은 깜깜해졌으나 남은 길이 평평한 시멘트 길이어서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보경사에 이르기까지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지칠 대로 지친 일행들을 반겨 맞고 저녁식사를 대접해준 이종규 동문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울진의 평해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동문이 오전 진료를 마치고 보경사로 달려와 저희를 맞은 것은 국적은 바꿔도 학적은 바꿀 수 없다는 동창정신의 발로라지만, 평소 남에 대한 배려와 봉사가 몸에 배었기에 가능한 것이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번 산행이 더할 수 없이 고되었을 두 친구도 저녁시간을 함께 즐기면서 기력을 되찾은 것 같아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우리 명백회가 지금까지 견지해온 도전적 산행을 어느 정도 그 강도를 낮출 것인가는 향후 고심해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티 나게 드러낼 일도 아니지만 나이 조건을 무시하고 무조건 욕심을 앞세울 일 또한 아닙니다. 모두의 지혜를 모아 도전과 순응의 접점을 찾아볼 뜻입니다. 도전과 순응의 접점을 찾는 일은 꼭 산행이 아니더라도 세상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일이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산행사진>
내연산(2)
*산행일자:2011. 7. 15일(금)
*소재지 :경북포항/영덕
*산높이 :향로봉930m, 삼지봉715m
*산행코스:보경사입구주차장-연산폭-시명폭-향로봉-삼지봉
-문수암-보경사-보경사입구주차장
*산행시간:8시11분-18시3분(9시간52분)
*동행 :이규성교수 및 그의 제자 1명
한 여름 무더위를 피해 계곡을 찾아볼 뜻이라면 내연산의 청하골을 들러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6-7km의 청하골을 따라 오르면 이 계곡이 곳곳에 빚어낸 12폭포를 지나게 됩니다. 그 많은 폭포를 일일이 다가가 보기는 어렵지만 관음폭, 상생폭, 연산폭, 은폭 등의 대표적인 폭포 몇 곳만 보아도 청하골이 서울근교산의 여느 계곡도 따라올 수 없는 빼어난 계곡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까이에 자리해 폭포를 더욱 폭포답게 해 주는 것에는 입석이 있는데 청하골의 학소대가 바로 그 것입니다. 학소대가 이 계곡의 명성을 더해줄 수 있는 것은 주상절리의 암괴가 보여주는 질서감과 이 암괴에 뿌리박은 소나무들의 청청한 모습 덕분입니다.
청하골의 마지막 폭포인 시명폭포에 이르려면 몇 번은 맨발로 계곡을 건너야 합니다. 이번에는 계곡물이 허벅지를 조금 적시는 정도인데도 물살의 세기가 느껴졌는데 큰 비가 내리면 유속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빨라져 계곡을 건너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입니다. 동행한 이교수도 몇 년 전 이 계곡을 오르며 허리 차는 물을 한 번 건너고 나서 하도 무서워 결국 계곡에서 탈출해 오른 쪽 능선으로 올라갔다 합니다. 이번 계곡산행이 뜻 깊은 것은 이 교수는 그 때 물러난 계곡을 다시 오를 수 있고, 4년 전 은폭에서 보경사로 내려간 적이 있는 제게도 풀코스로 계곡을 전부 밟아볼 수 있어서입니다. 조금 귀찮기는 해도 발을 벗고 물을 건너자 발바닥의 열이 식어 피로가 사르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청하골을 지나 힘들게 향로봉을 오르면 동해바다가 가깝게 조망됩니다. 바다를 출발한 바람이 이 봉우리에 닿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쉽게 가늠되지는 않지만 중간에 높은 산이 없어 바닷바람이 온전하게 전해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바람이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 태풍이라도 좋고 살갗이 간지러워하는 미풍이라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여기 바닷바람은 단순히 시원한 공기만 전해주는 것이 아니고 동해안에 얽힌 역사의 향기도 함께 전해줄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골바람과 바닷바람이 한데 어우러져 돌개바람이라도 일으켜준다면 그 또한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름 산행 중 무더위 속에 맞는 바람(風)은 그 바람이 어떤 것이든 간절히 원해온 바람(願)이기 때문입니다.
아침8시11분 보경사 입구 주차장을 출발했습니다. 전날 밤 포항의 이 교수 친구 분 댁에서 일박한 후 이 교수 차로 이동했습니다. 중간에 이교수의 제자 1명을 태우고 보경사로 가는 길에 내리기 시작한 비는 주차장에 도착하고서도 그치지 않아 비옷을 꺼내 입고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상가를 지나 다다른 보경사는 내려오는 길에 둘러보기로 하고 시멘트수로 옆길을 따라 계속 올라갔습니다. 빗방울이 굵어지고 계곡에 물이 꽉 차보여 이러다가 이번에도 청하골을 다 오르지 못하고 중간에 능선으로 탈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내심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산자락을 반 쯤 덮은 비구름이 진퇴를 거듭하다 더 이상 산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고 산허리에서 머뭇거리는 동안 빗줄기가 좀 잦아든다 했는데 이 폭포에 이르자 비가 완전히 그쳐 참으로 다행이다 했습니다.
9시23분 관음폭포에 다다랐습니다. 청하골 12폭의 첫 폭포는 쌍폭(雙瀑)으로도 불리는 상생폭포(相生瀑浦)입니다. 1m(?)간격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두 갈래의 커다란 물줄기가 서로 자리다툼을 하지 않고 나란히 떨어지는 것을 보노라면 누구라도 한 번은 쌍폭(雙瀑)의 상생(相生)을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내킬 것입니다. 상생폭의 한 물줄기가 연초록색을 띄는 것은 바위에 낀 이끼 때문이 아니가 싶은데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바람을 맞지 않는다는 무풍폭포(無風瀑浦)에서 조금 더 올라가 눈에 익은 관음폭포에 이르렀습니다. 관음폭에 면해 직립한 암벽 여기 저기 움푹 파진 암혈로 들어가 더위를 피하는 사람들이 이번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관음폭 위 구름다리를 건너 연산폭 앞에 이르자 물보라가 빚어낸 무지개가 참말로 장관이었습니다. 4년 전에는 하산 길이 바빠 미처 들르지 못한 연산폭에서 이토록 영롱한 오색무지개를 만나본 것만으로도 그동안 동경해온 먼 곳이 바로 이곳이다 했는데 계곡 건너 우뚝 솟은 입석바위 학소대를 바라보자 “먼 곳에의 동경”이라는 이름으로 꿈꾸어 온 곳이 이렇게 눈앞의 현실로 구체화되는구나싶어 가슴이 뛰었습니다.
10시19분 은폭 앞에 도착했습니다. 관음폭포 앞 계곡을 시멘트구조물 위로 건넌 다음 암봉을 왼쪽으로 우회해 계곡을 다시 만났습니다. 좁은 폭의 너덜을 지난 지 얼마 후 구두를 벗고 맨발로 물이 무릎 위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계곡을 건너 은폭으로 향했습니다. 제 눈에는 여느 폭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그저 그런 폭포를 여성의 음부를 닮았다 하여 음폭이라 부르다가 보다 점잖은 이름인 은폭으로 고친 것으로 안내판에 나와 있는데 이는 개씹단추가 상스럽다고 매듭단추로 이름을 바꾼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구름다리를 지나 만난 정자에서 잠시 쉰 후 다시 물을 건넜으니 이번이 네 번째 물 건넘입니다. 물속에서 노니는 송사리(?)들이 여유롭고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오른 쪽 위로 미결등 길이 갈리는 삼거리를 11시9분에 지났습니다. 미결등 갈림길에서 조금 더 진행해 앞서 지나온 너덜보다 조금 더 큰 너덜을 지나느라 잠시 동안 땡볕을 고스란히 쬐었습니다. 출몰한 호랑이가 바위 위에 엎드려 있다하여 이름 붙여진 복호폭포는 아래 위 두 곳에 있다는데 계곡으로 내려가지 않아 직접보지는 못했습니다.
12시9분 삼거리갈림길에서 향로봉으로 코스를 잡았습니다. 복호1, 2폭포를 지나 마지막 남은 2개의 폭포는 실폭포와 시명폭포입니다. 청하골의 11번 째 폭포는 실타래를 풀어내는 듯한 가느다란 폭포다 하여 이름 붙여진 실폭포인데 길에서 오른 쪽 위로 청하골의 지곡인 잘피골을 따라 올라가야 만날 수 있어 그냥 지나쳤습니다. 마지막 시명폭포도 오른 쪽 위로 밤나무등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아래쪽으로 떨어져 있어 들러보지 못하고 조금 더 가 청하골의 지계곡인 시명골을 건넜습니다. “향로봉1.7Km/보경사6.2Km/삼거리2.4Km"의 표지판이 세워진 해발고도400m의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4-5분후 이름 모르는 지계곡을 건너 짐을 풀고 점심을 들면서 반시간 가량 쉰 다음 고메이등 길로 올라섰습니다.
13시53분 내연산의 최고봉인 해발930m의 향로봉에 올라섰습니다. 1.7Km를 걸어야 향로봉에 이르게 되는 고메이등 길은 고도차가 500m가량 나는 된비알길이어서 단숨에 오르지 못하고 중간에 한 번 쉬어야 했습니다. 때때로 골바람이 불어와 생각보다 오름 길이 덥지 않았으나 헬기장이 들어선 향로봉에 오르자 내리쬐는 햇볕이 따가웠습니다. 시원스레 동해바다가 조망되는 향로봉에서 청하골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상봉에 올랐다며 기뻐하다가 저희보다 두 시간 늦게 주차장을 출발해 청하골 남쪽의 길고 긴 둘레산줄기를 타고 올랐다는 젊은이들을 만나보고 과연 준족이다 했습니다. 사방을 휘 둘러본 후 같이 오른 이교수와 함께 후닥닥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향로봉을 떴습니다. 이 산의 상봉인 향로봉에서 주봉인 삼지봉에 이르는 길은 몇 해 전 한 번 걸었던 길로 고도차가 그리 크게 나지 않는 편안한 능선 길이어서 모처럼 속도를 냈습니다. 향로봉에서 15분쯤 걸어 왼쪽으로 향로교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이르러 10분가량 쉬었습니다.
15시12분 이 산의 주봉인 해발715m의 삼지봉에 올랐습니다. 왼쪽으로 향로교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동쪽으로 3km 떨어진 삼지봉으로 가는 능선 길이 더할 수 없이 편안하게 느껴진 것은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고 앞서 내린 비가 지열을 식힌 데다 간간히 바람까지 불어 4년 전에 오를 때보다 훨씬 덜 더워서였습니다. 밤나무등 길이 갈리는 840m봉 삼거리를 지나 7백m대의 나지막한 봉우리들을 오르내려 다다른 삼지봉은 이 봉우리에서 서쪽으로 향로봉, 북쪽으로 동대산, 그리고 남쪽으로 문수봉 등 3개의 봉우리로 가는 길이 갈린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합니다. 지난번처럼 삼지봉에서 바로 청하골로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 이번에는 남동쪽으로 뻗어나가는 문수봉 가는 길로 제대로 들어섰습니다. 문수봉에 이르기까지 청하골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연이어 나타났으니, 거무나리 코스, 조피등코스와 수리더미코스가 그것들입니다. 더러 더러 소나무 밭길을 지나며 한 눈 팔지 않고 계속 넓은 길로 직진 하다 딱 한 번 왼쪽으로 봉우리 하나를 우회했습니다. 이어서 나타난 삼거리에서 왼쪽 봉우리인 해발622m의 문수봉을 오르지 않고 오른 쪽 넓은 길로 우회해 16시11분에 문수봉 남쪽 아래 샘터인 문수정에 다다랐습니다.
17시 정각 아침에 지났던 상생폭전망대로 내려섰습니다. 문수정에서 얼마간 직진하다가 오른 쪽으로 내려선 길이 경사가 매우 급하다 했는데 이 길이 문수암으로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중간에 들른 문수암은 이 암자도 과연 보경사의 말사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초라했습니다. 가파른 길을 지나 청하골을 만난 지점이 상생폭포전망대로 이곳에서 왼쪽으로 꺾어 청하골을 따라 내려가다 잠시 쉬며 등 멱을 했습니다. 오름 길에 그냥 지난 보경사 경내로 들어가 여기저기를 둘러보았습니다. 신라 진평왕 때 지경법사가 왜적을 막고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진나라로부터 들여온 팔면보경(八面寶鏡)을 큰 못에 묻고 못을 메워 그 위에 오늘날의 보경사(寶鏡寺)인 금당을 세운 것이 무려 1,400여 년 전의 일이니, 이 절 마당에 세워진 오층석탑이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5층 석탑 중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데 이의를 달 수 없는 것입니다.
18시3분 보경사입구 주차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출발지인 주차장으로 다시 돌아오기까지 10시간 가까이 걸은 긴 시간 산행이 끝까지 같이한 이교수의 제자에게는 그가 아무리 해병대출신이라 해도 산 꾼들처럼 산을 오르내리는데 필요한 근육이 발달되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그리 쉽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몇 십 년을 산을 다니면 산신령께서 보너스로 일 년에 한 번 쯤은 산 높이를 몇 백m 낮춰줄 만도 한데 전혀 그런 것이 없어 서운한 생각도 들지만 그래서 산만은 누구나 공평할 수 있다 싶어 산신령에 대한 불평불만을 접곤 했습니다. 이런 산신령이니 그가 산에 대해 백면서생이라 해도 달리 봐줄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가 졸업 후 맞닥뜨리는 사회도 좀 힘들다고 봐주지 않는 점은 매몰찬 산신령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피서지로 이름난 내연산 청하골이 옛날에는 피난처이기도 했습니다. 신라의 한 임금은 견훤에 쫓겨 이 골짜기로 피난 온 일이 있고 평지에 부칠 땅이 없는 백성들은 살던 곳에서 쫓겨 와 여기 청하골 윗자락에 자리 잡고 화전을 일구어 살았다 합니다. 잘 모르기는 해도 청하골이 명성을 더 한 것은 인근에 포항제철이 들어서서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보경사까지 포장도로를 낸 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 옛날 배고픈 시절에는 피서지 청하골이 그림의 떡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합니다. 북한의 집권자들이 이 자명한 이치를 곱씹어 보았다면, 우리나라 관광객에 총질을 해대어 인민들이 끼니를 이어가는 데 도움되는 금강산관광을 중단하도록 만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산행사진>
내연산 (1)
*산행일자:2007. 8. 18일
*소재지 :경북 포항
*산높이 :내연산710m/향로봉930m
*산행코스:하옥리계곡도로변-하옥교-향로봉-내연산-은폭
-관음폭-보현암-상생폭-보경사-주차장
*산행시간:12시-18시9분(6시간9분)
*동행 :송백산악회
경북포항의 내연산(內延山)이 저의 눈을 끄는 것은 바로 산 이름입니다.
고유명사로 쓰인 내연(內延)이란 단어가 사전에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친구들이 지어준 저의 별명 시인마뇽이 원시인 크로마뇽의 축어이듯이 제게는 자꾸 내연(內延) 또한 내포(內包)와 외연(外延)을 합친 줄임말처럼 생각됐습니다. 명산이란 무릇 산이 내포(內包)하는 계곡, 폭포, 암봉, 가람 등이 볼만해야 하고 주봉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산줄기의 외연(外延)이 장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어느 산이 내포하는 계곡이 볼만하고 주봉의 외연인 산줄기가 웅장하다면 이들만으로도 명산으로 대접 받을 기본적인 요건은 갖춘 것입니다. 여기에 이 산이 위치한 지리적 여건이 어떠하냐와 이 산을 상징하는 전설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느냐가 추가적인 요건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요건들을 모두 갖춘 산들은 흔치않기에 이른바 명산100산에 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내연산에서 빼어난 것은 무엇보다도 이산이 내포하는 수려한 계곡입니다.
삿갓봉 바로 아래에서 시작된 깊은 계곡이 은태골, 시명골, 잘피골, 복호골, 거무날골, 초막골과 밀반골 등 여러 지류의 계곡물을 차례로 받아 시명폭, 복호2폭, 복호1폭, 은폭, 연산폭, 관음폭, 무풍폭, 잠룡폭, 삼보폭, 보현폭, 상생폭등 12개의 폭포를 만든 다음 보경사에서 그리 멀지 않는 동해로 흐르는 청하골과 이 계곡에 면해 곧추 선 절벽 등 암봉들이 어우러져 빚어낸 절경을 보고자 먼 길 마다않고 전국 각지에서 내달려온 사람들로 모처럼 계곡 안이 시끌벅적했습니다. 내연산의 주봉인 삼지봉만으로 저 많은 폭포들을 다 만들 수 없기에 외연을 확대하여 계곡 북동쪽의 문수산에서 시계반대 방향으로 주봉인 삼지봉과 상봉인 향로봉을 일군 다음 매봉과 삿갓봉, 그리고 유척봉의 천령산을 차례로 일으켜 세워 청하골에 물을 댄 것입니다. 이렇듯 내연산의 요체는 깊은 계곡과 이 계곡을 둘러 싼 산줄기에 있기에 아무래도 계곡의 아름다움에 비해 산세의 웅장함은 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이 산의 외연을 그리 멀지 않은 서쪽의 통점재까지 확대한다면 남북으로 시원스레 내닫는 낙동정맥의 산줄기 덕분에 달라지겠지만 말입니다.
아침 6시 반에 사당을 출발한 버스는 치악휴게소에서 한 번 쉰 후 내연산을 향해 죽어라고 달렸습니다. 전에 없이 힘들어하는 버스가 안동을 지나 더위를 먹었던지 속도가 급격히 떨어져 기사분이 차를 세우고 손을 보노라 10분 남짓 늦어졌습니다. 낙동정맥 상의 통점재(?)에 올라 왼쪽 비포장도로로 들어서 하옥교 방향으로 얼마고 내려가다 커브 길에서 저희들을 내려놓았습니다.
12시 정각 버스에서 하차해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와 붙어 있는 하옥교로 내려가는 비포장도로는 하옥리 계곡을 찾는 승용차들로 먼지가 풀풀 나 20분 동안의 보행이 짜증스러웠습니다. 다리 양편의 협곡이 만든 계곡이 절경인 하옥교를 건너 조금 후 좁은 임도만한 오른 쪽 숲속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번 내연산 산행은 산악회의 안내대로 온전히 따르지 않고 저 나름대로 코스를 일부 조정해 운행했습니다. 향로봉을 올랐다가 시명리로 내려가는 A코스나, 향로봉을 오르지 않고 능선삼거리에서 바로 삼지봉으로 직진하는 B코스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향로봉을 들렀다가 0.7Km를 되돌아와 능선 삼거리에서 동쪽에 자리한 삼지봉을 오르는 A, B 두 코스를 혼합해 잡은 것은 해발 930m의 향로봉은 이 산의 상봉이고 그보다 고도가 220m 낮은 삼지봉은 주봉이어서 명산탐방기를 써내려가는 저로서는 어느 한 봉우리인들 아니 오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옥교에서 향로봉으로 오르는 처음 십 수분 동안 바람 한 점 없는 불볕더위에 된비알의 오름길을 오르느라 숨이 막히는 듯 했습니다. 오름 길에 참나무 등 활엽수들이 햇빛을 가려주어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구릉에 올라선 다음 한동안 거의 평지 길과 같은 완만한 오름길을 걷다가 다시 경사진 길을 걸어 오르다 산행시작 1시간 만인 13시 정각에 산 중턱에서 짐을 내려놓고 숨을 돌렸습니다.
14시7분 해발930m의 향로봉에 올라섰습니다.
산중턱에서 10분을 쉬었어도 찜통더위의 극성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완만한 경사 길을 20분을 올랐어도 향로봉/삼지봉 갈림길이 나타나지 않아 산악회에서 정해준 17시 반까지 주차장에 도착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단 한 번도 내림 길이 없는 지루한 오름길은 860봉에서 일단 끝났고 처음으로 십m 가량 내려섰다가 3개의 봉우리를 오른 쪽으로 우회해 13시 54분에 향로봉0.7Km 전방의 삼지봉행 갈림길에 도착했습니다. 직진해 향로봉으로 내달린 결과 17분 만에 헬기장이 들어선 시야가 탁 트이는 향로봉에 다다랐습니다. 안내판에는 이 봉우리가 내연산의 주봉으로 적혀 있었으나 국립지리원에서 펴낸 지형도에는 삼지봉을 내연산으로 표기하고 있어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지형도를 따르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에서 향로봉을 상봉으로 적고 있습니다. 저보다 조금 먼저 도착한 모자 두 분에 기념사진을 찍어드리고 0.7 Km를 되돌아가 능선 삼거리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15시30분 해발710m의 내연산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능선삼거리에서 동쪽으로 3.2Km 떨어진 이산의 주봉 삼지봉에 이르는 길은 오르내림이 별로 없는 완만한 길이어서 속도를 냈습니다. 향로봉을 다녀와 점심을 먹느라 B코스 맨 후미보다 10분 늦은 14시35분에 능선삼거리를 출발했습니다. 어제 내린 비로 꾸덕꾸덕해진 흙길을 걷는 동안 발바닥에 전해지는 감촉이 한결 부드러웠습니다. 밤나무등 능선을 지나 시명폭포로 내려서는 갈림길에서 삼지봉을 들러 온 부부 한 팀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향로봉에서 하산하겠다는 계획을 바꿔 바로 시명폭으로 하산한 이분들을 나중에 은폭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능선삼거리출발 반시간이 지나 도착한 안부에서 삼지봉까지 0.6Km가 짧은 1.2Km의 왼쪽 길을 택해 올랐습니다. 봉우리에서 묘지로 내려서 오른 쪽 길과 합류한 후 얼마간 더 걸어 적송이 보이는 곳을 지나 이 산의 주봉인 빈터의 삼지봉에 올랐는데 나무들로 시야가 막혀 향로봉보다 전망이 훨씬 못했습니다. 하옥교에서 내연산 주봉인 이곳까지 산길은 길도 넓고 안내판도 곳곳에 잘 세워져 있어 이 산이 도립공원의 산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내연산에서 직진하는 길은 문수봉을 들러 보경사로 바로 내려가는 길로 판단되어 오른 쪽으로 꺾어 계곡으로 향했습니다.
16시37분 은폭에 도착해 표지판을 보고나자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10분 먼저 출발한 B팀의 후미를 삼지봉에서도 만나지 못해 오래 쉬지 못하고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정상에서 가파른 내림 길을 따라 안부로 내려와 바로 아래 물이 아주 조금 밖에 흐르지 않는 계곡을 따라 걷고자 오른 쪽으로 확 꺾어 은폭으로 향했습니다. 10분을 내려가 만난 석성(?)에서 왼쪽으로 들어선 길이 아래 계곡으로 이어지지 않고 산허리를 돌고 도는 길이어서 혹시나 이 길이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가해서 조금은 불안했습니다. 계곡에서 한참 위에 나있는 산허리 길을 20분 넘게 걸어 만난 커다란 바위에서 오른 쪽으로 난 비탈길을 내려가 커다란 청하골 계곡으로 내려서자 A코스와 합류했다 싶어 비로소 안심되었습니다. 시명폭, 복호1,2폭은 상류에 있어 보지 못했고 산허리 길을 한참 에돌다가 계곡으로 내려서 첫 번째 만난 폭포가 은폭으로 반가움이 앞서 찬찬히 뜯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계곡이 보기 드문 12폭의 계곡임을 자랑하기에 충분함을 느꼈습니다. 보경사를 4.2Km 남겨 놓은 은폭을 출발해 20분여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 관음폭을 조금 못가 맨 후미로 쳐진 일행 한 분을 만나 반가웠습니다. 초반에 향로봉을 오르는 중 사진을 찍느라 후미에 선 이분은 이미 다른 분들의 산행기를 읽고 나선 터라 저와 똑 같이 초행인데도 폭포 이름과 특징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17시21분 상생폭포(또는 쌍생폭포) 앞에 다다라 잠시 머물러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하산 길에 두 번째 만난 폭포는 관음폭으로 두 개의 물줄기가 낙차 크게 떨어져 밑으로 넓은 소를 만들어 마지막 더위를 피해 이 계곡을 찾은 피서객들을 말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이 소에 면해 직립한 암벽은 여기 저기 움푹 파진 곳이 있어 벌써 몇 사람들은 그 속으로 들어가 열기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자연이 만들어낸 폭포와 소, 그리고 절애의 암벽들이 어우러져 빚어낸 비경에 매료되어 이들과 하나가 되고자 풍덩 물속으로 들어가 폭포수를 맞는 피서객들이 이 계곡에 생기를 불러 넣어 활기가 가득 차 보였습니다. 사진 몇 커트를 찍고 나서 바로 자리를 뜨며 시간이 없어 오버브리지에 올라서 연산폭과 학소대를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정말 아쉬웠습니다. 관음폭에서 보현암으로 옮기는 중 동행한 한 분이 사진을 찍어 개인적으로 보관하고 있다고 해 저도 사진은 찍어 따로 보관하고 있지만 산행기는 “한국의 산하” 사이트에 시인마뇽의 필명으로 매주 올리고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마침 제 글을 이미 읽은 분이어서 제 필명을 아시고 있어 다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 못 쓰는 글이나마 3년 넘게 쉬지 않고 산행기를 쓸 수 있었기에 이분에도 마음 속 깊이 감사의 말씀을 올렸습니다. 처마 밑에 장작을 쌓아 놓은 보현암을 들러 목을 축인 후 이름을 모르는 하얀 꽃을 카메라에 담아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상생폭은 쌍생폭포로 불러도 좋을 만큼 연산폭포보다 훨씬 굵어 보이는 두 줄기의 폭포가 아래 소로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는데 두 개의 물줄기가 넓은 소를 공유하고 있어 상생의 현장을 보는 듯 했습니다. 시명폭에서 시작하여 숨 가쁘게 11폭을 거쳐 내려온 계곡 물이 마지막 관음폭에서 최고의 속도로 내리 떨어져 넓은 소에서 천천히 한 바퀴 휘돌며 숨을 고른 후 다시 동해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모습이 다른 일행들이 먼저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내달리는 저희들의 모습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에 들어가 튜브를 타고 물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이 계곡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고 더위를 즐기고자 적극적으로 물속으로 뛰어든 것이기에 폭포 옆에 세워놓은 수영금지 안내판에 아랑곳할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18시9분 보경사 아래 주차장에 도착해 내연산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잠룡폭 등 몇 개의 폭포를 거르고 마지막으로 들른 상생폭을 떠나 하산하는 중 보경사에 조금 못 미쳐 길 오른 쪽으로 비켜선 문인 한흑구선생의 추모비를 들러보았습니다. 비석에 새겨진 비문을 보고나서야 선생의 수필 “보리”를 중학교 교과서에서 읽은 기억이 어렴풋이 났는데 이곳을 자주 들렀다는 선생께서 산행기를 남겼다면 옥고임에 틀림없을 텐 데하며 아쉬워했습니다. 천년을 훨씬 넘긴 고찰 보경사 안으로 들어서자 무지막지 했던 한 낮의 햇살이 많이 수그러들어 적송림을 뒤로 한 대웅전과 적광전의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이제는 숨 좀 돌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1400여년 전인 신라 진평왕 때 지경법사가 진나라로부터 들여온 팔면보경(八面寶鏡)을 왜적을 막고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큰 못에 묻고 못을 메워 그 위에 금당을 세웠다는데 그 금당이 바로 보경사로 현존하는 것들 중 가장 오래된 5층 석탑을 사진 찍은 후 이 절에서 물러나왔습니다. 보경사에서 주차장으로 가는 길도 계곡물을 일부 돌려 콸콸 물이 흐르는 시멘트 도랑을 따라 나란히 나 있어 걸을 만 했습니다. 내연산의 비경은 계곡 속에 갇혀 있는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청하골 계곡위의 하늘을 일부 덮은 검은 구름을 뚫고 내비치는 석양의 붉은 색광이 내연산이 보여준 또 하나 비경으로 비로자나불님이 법계를 비춘 지혜의 빛이 색을 갖고 있다면 어두운 구름을 뚫고 내비치는 저런 광명의 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귀경길에 차창 밖으로 내다본 장사해수욕장의 바다풍경도 매혹적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지나는 영덕 땅을 차에서 내려 밟아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사진을 찍어 달랬습니다.
워낙 먼 곳이어서 가고 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귀가는 늦었지만, 다음(Daum)에 “먼 곳에의 동경”이라는 블로그를 개설해 놓고 명산100산의 산행기를 하나씩 하나씩 채워나가는 제게는 내연산이 내포하는 청하골도, 청하골을 둘러싼 외연의 산줄기도 모두가 팔면보경에 버금가는 보물이었습니다. 보물이 일반 물건과 다른 점은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거나 그 가치가 줄어들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청하골 만을 오르내리며 12폭을 완상하는 테마산행을 염두에 두는 것은 내연산 전체가 보물이어서 멀지 않은 시일 안에 “먼 곳에의 동경”욕구가 또다시 발동할 것 같아서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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