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지역 명산/지역명산 탐방기

A-48.고령산 산행기

시인마뇽 2009. 9. 15. 15:34

                                      고령산



            *산행일자:2009. 9. 13일(일)

            *소재지  :경기파주/양주

            *산높이  :622m

            *산행코스:야광동삼거리-임도사거리-수구암갈림길

                      -앵무봉정상-도솔암갈림길-보광사입구

            *산행시간:9시40분-13시20분(3시간40분)

            *동행    :나홀로

 


  고령산은 제 고향 파주에서 감악산 다음으로 높은 해발622m의 고산입니다.

이 산 아래 보광사는 인근 초등학교를 다니던 1950년대 말 걸어서 소풍을 몇 번 다녀온 절이기도 합니다. 당시는 보광사의 행정구역이 양주군의 광적면이어서 이절을 품고 있는 고령산을 고향 산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버스가 거의 다니지 않던 때여서 보광사 인근 주민들이 면사무소로 일보러가려면 한 시간만 걸으면 되는 제 고향 광탄면을 놔두고 행정소재지인 광적면사무소로 가야했는데 한 번 다녀오려면 한나절이 훨씬 더 걸렸습니다. 1970년대 후반 들어 보광사와 인근 마을이 파주의 광탄면으로 편입되고 나서야 주민들의 그러한 불편이 해소되었습니다. 휴전선에서 가까운 한수이북의 산들이 다 그렇듯이 고령산도 이 산에 들어선 군부대가 입산을 통제해 1980년대까지는 정상을 오를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산의 정상인 앵무봉을 처음 밟은 것은 2002년 봄이었습니다. 3년 후 한북오두지맥 종주 차 다시 올랐으니 고령산의 정상을 오르기는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이번에는 앞서 두 번과는 다른 코스로 앵무봉을 오르고자 야광동 삼거리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저녁6시에 과천에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한 분과 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이 잡혀있어 새벽부터 서둘렀습니다. 보광사행 333번 버스가 뉴타운공사로 구파발역에서 서지를 않아 삼송리를 지나서 이 차로 갈아탔습니다. 아침 6시10분 산본 집을 출발해 9시에 도착한 야광동삼거리의 슈퍼에서 들머리를 물어본 즉 여기서는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이 없으니 다시 보광사 입구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대답해와 뜨악했습니다. 개념도에 나와 있는 대로 동쪽 감사교육원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 걸어 능촌교에 다다랐으나 오른 쪽으로 나 있다는 산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포기하고 삼거리로 되돌아오느라 몇 십 분을 까먹었습니다.


  오전9시40분 야광동삼거리 슈퍼에서 길 건너 절개면 오른쪽의 풀 숲길로 올라섰습니다. 

슈퍼 주인 분은 그 길로는 중간에 끊겨 앵무봉을 오를 수 없다 했는데 마침 만난 금촌 분들이 이 길을 안내해줘 예정대로 산행할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맺힌 이슬이 아직 마르지 않아 구두가 금세 젖기 시작했습니다. 제게 길을 가르쳐준 금촌 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통성명을 해보니 몇 분은 문산중학교 후배 분들이어서 반가웠습니다. 꽤 넓게 자리 잡은 묘지를 지나자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따라 군부대에서 파놓은 교통호가 나타나  이 길을 따라 걷다가 물푸레나무 가지를 잡고 새로 길을 낸듯한 아주 가파른 십자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슈퍼주인분이 중간에 길이 끊겼다고 한 곳이 이 안부를 말하는 것 같았고 능촌교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오르다 이 산 능선과 처음 만나는 곳도 이 안부 같았습니다. 안부를 지나 낮은 봉우리를 넘고 흐릿한 안부를 다시 지나 170봉에 이른 시각이 10시17분으로 중간에 잠시 길에서 벗어나기도 했습니다.


  10시50분 노송이 서있는 임도사거리에 다다랐습니다.

170봉에서 남동쪽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오르다 북쪽으로 시야가 확 트인 개활지를 지났습니다. 지난4월 성묘 길에 오르내린 팔일봉과 꾀꼬리봉이 문산천 너머로 깔끔하게 보였습니다. 교통호를 따라 오르다 오른쪽으로 난 된비알 길로 들어섰는데 표고차가 100m이상 나는 봉우리를 오르느라 모처럼 진땀을 흘렸습니다. 봉우리에 올라 평평한 길을 걷다가 이내 내려선 곳이 차들이 다녀도 충분할 만큼 넓은 임도사거리였습니다. 후배 분들이 정성스레 건네준 찐 달걀과 포도를 받아먹은 후 정남쪽의 앵무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오른쪽 임도로 에돌며 358봉과 360봉을 밑으로 지났습니다. 임도 길은 넓고 평탄한데다 길가에 쑥부쟁이 등 가을의 전령들이 다소곳하게 자리하고 있어 이 길을 걷는 동안 저절로 평화가 느껴졌습니다. 20분 가까이 걸어 다다른 임도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서자 "보광사1.6Km/정상1.0Km "의 표지목이 서 있어 이제는 길 잃을 염려가 없겠다 싶어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두 번째 된비알 길은 표지목이 서있는 보광사 갈림길에서 앵무봉정상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만, 굴참나무와 쪽 동백 및 단풍나무 등의 활엽수들이 햇볕을 가려주어 그리 덥지 않았습니다.  직등 길을 20분 가까이 올라 만난 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은 수구암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정상에 이르는 길은 곧바로 나 있었습니다.


  11시50분 해발622m의 고령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수구암 갈림길에서 10분 남짓 걸어 데크가 설치된 전망대에 오르자 바로 아래 보광사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서쪽 멀리로 LG필립스 단지가 흐릿하게 보였고 앵무봉 오른 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의 군부대가 자리한 계명산에서 박달봉에 이르는 오두지맥의 산줄기가 한눈에 잡혔습니다. 4-5분을 더 걸어올라 이 산의 정상인 앵무봉에 올라섰습니다. 붙어 있는 두 봉우리 중에서 정상은 삼각점이 박혀있는 헬기장봉우리일 것입니다. 서쪽의 박달산, 북쪽의 꾀꼬리봉과 금병산, 북동쪽의 팔일봉은 제가 태어난 파주 광탄의 명산으로 이 명산들을 한꺼번에 조망해보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곳 정상에서 동쪽 먼발치로 희미하게 보이는 불곡산에 이르기까지 텅 빈 공간을 꽉 채운 한북정맥과 오두지맥의 연봉들이 다시 저를 부르는 듯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가고 싶었습니다만, 정작 카메라에 담아가고 싶은 남쪽의 북한산과 도봉산은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아 많이 아쉬웠습니다.


  11시58분 앵무봉을 출발해 보광사 길로 내려섰습니다.

앵무봉에서 안고령으로 내려가는 길은 북쪽으로 나있고,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한북오두지맥 길은 군부대가 들어선 계명산에서 막혀 그 전에 오른 쪽 보광사로 내려갔다가 됫박고개로 올라가 다시 이어가야 합니다. 앵무봉에서 남서쪽의 오두지맥길로 방향을 잡아 내려가다 조금 아래 헬기장을 지난 후 오른 쪽으로 꺾어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들어섰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지면이 채 마르지 않아 더러는 미끄럽기도 해서 하산 길이 무척 조심스러웠습니다. 20분을 채 못 내려가 만난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도솔암 가는 길이 갈리는데 낙석이 위험하다며 다른 길로 가달라는 도솔암의 안내문을 보고 보광사 쪽으로 곧바로 내려갔습니다. 길은 여전히 가팔랐고 땅바닥에 떨어진 도토리를 자칫 잘 못 딛다가는 엉덩방아를 찧기 십상이어서 지난 가을 다친 허리를 다시 다칠까봐  조심해서 내려갔습니다. 해발330m대의 능선에 세워진 벤취에다 짐을 내려놓고 굴참나무 그늘아래서 점심을 다 들은 시각은 12시40분이었습니다.


  13시20분 보광사 일주문 앞에서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산행재개 5분 만에 다다른 계곡은 보광천의 상류로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정감 있게 들렸습니다. 왼쪽으로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길이 갈리는 넓은 길로 내려서서 조금 내려가자 오른 쪽으로 보광사 경내로 들어가는 다리가 보였습니다. 보광사는 신라 진성여왕 8년인 894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 하는데, “명찰순례”를 쓴 최완수님은 우리나라 대개의 사찰이 가탁하는 바이라 믿을 수 없다 했습니다. 잘은 몰라도 저 또한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절이 여기저기에 엄청 많은데 그분 혼자서 무슨 수로 그 많은 절을 다 지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1740년에 중수된 보광사의 대웅보전은 단청의 빛깔이 거의 다 바래어 최근의 두 서너 세기동안 이절이 겪은 고초가 결코 만만치 않았음을 일러주는 듯 했습니다. 대웅보전의 열린 문사이로 빠끔히 보이는 석탑이 참으로 다소곳해 보였습니다. 이 절과 인연이 가장 깊은 임금은 조선의 21대왕이신 영조이십니다. 임금의 생모 숙빈최씨의 능침이 이 절에서 가까운 소령원에 있어 이절을 대웅보전과 관음전을 중수하고 만세루를 창건해서 숙빈 최씨의  원찰로 삼았다 합니다. 임금께서 이 절에 오실 적마다 소령원을 능으로 격상시키지 못해 생모이신 숙빈 최씨에  불효를 저지른다는 생가에서 많이 힘들어 하셨을 것입니다. 두 달 전에 한 번 이절을 다녀간 터라 이번에는 10여분 휘 둘러보는 것으로 보광사 탐방을 마치고 일주문으로 나갔습니다. 

 

  구파발행 333번 버스에 오르자 앵무봉의 한자표기가 새삼 궁금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앵무봉의 한자가 앵무새의 앵무봉(鸚鵡峰)인지 아니면 꾀꼬리가 춤춘다는 뜻의 앵무봉(鶯舞峰)인지는 끝내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꾀꼬리와 앵무새 중 역사서에 먼저 등장한 쪽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정시로 알려진 “황조가(黃鳥歌)”에 나오는 꾀꼬리로, 이 노래는 고구려의 2대 유리왕이 지어 부른 것으로 삼국사기에 나와 있습니다. 앵무새는 신라 42대 흥덕왕 때 어떤 사람이 당나라로 사신으로 갔다가 가져온 것으로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는바, 이 두 문헌에 따르면 꾀꼬리가 우리 역사에 출현한 것은 앵무새보다 무려 8백년 이상 앞선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여름철새인 꾀꼬리는 한 여름이면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든 쉽게 볼 수 있고 울음소리가 빼어나게 아름다워 누구에게나 친숙한 새였지만, 집에서 기르는 앵무새는 호주나 뉴기니아 등 원산지가 열대지방인 열대 새여서 옛날에는 쉽게 만나보기 힘든 희귀조였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앵무봉은 꾀꼬리가 춤춘다는 앵무봉(鶯舞峰)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겠다 싶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까이에 앵무봉이 새끼 친 꾀꼬리봉이 몇 있습니다. 소령원 뒤 높은 봉우리가 꾀꼬리봉이고 저 아래 계명산의 또 다른 이름도 꾀꼬리봉입니다. 아무리 꾀꼬리라 해도 그래도 춤을 추려면 여러 마리가 모여 군무(群舞)를 추어야 흥이 나지 혼자서는 좀 그렇겠다 싶어지자 두 꾀꼬리봉이 여기 앵무봉(鶯舞峰)과 가까이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이번 산행 중 단 한 마리도 꾀꼬리를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옛날에는 마음 놓고 여기저기 날라 다녔을 그 흔한 꾀꼬리들이 모두 자취를 감춘 것은 일요일 날은 수많은 산객들로 이 봉우리가 너무 시끄러워 조용한 인근의 꾀꼬리봉으로 잠시 옮겨가 몸을 숨긴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평일 날 하루 날 잡아 국민가수 조용필님을 모시고 이 봉우리를 다시 올라야 할 것 같습니다. 님의  “못 찾겠다 꾀꼬리”를 함께 부른다면 몸을 숨긴 꾀꼬리들도 국민가수의 얼굴을 보고싶어 그들의 모습을 내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입니다. 이제 앵무봉이 불러일으킨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펴보며 다음 산행을 그려보고자 합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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