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금오지맥 종주기3
(섬진강산줄기 환주51)
*지맥구간:12번도로변 금오산입구-금오산-대송마을1.1Km 전방지점능선
*산행일자:2010. 5. 29일(토)
*소재지 :경남하동
*산높이 :금오산849m
*산행코스:12번도로변 금오산입구-금오산-대송마을1.1Km 전방지점능선
-덕천리버스정류장
*산행시간:7시53분-15시40분(7시간47분)
*동행 :나홀로
문명이 새로 만든 길은 문화가 다져주어야 비로소 제 몫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역사에서 새롭게 길을 만드는 데는 문명의 발달이 큰 몫을 했습니다. 먼 옛날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할 수 있었던 것은 로마제국의 문명이 여타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더 발전했었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쌓아온 문명을 활용해 어렵게 열어놓은 길도 문화가 그 길을 다져놓지 않는다면 미완성의 길로 남게 됩니다. 문화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형성되고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에서 교류됩니다. 새 길 가까이에 사람들이 모여 살고 이 길로 서로 왔다 갔다 하면 길은 저절로 다져지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길은 인류에 최고의 편리함과 편안함을 안겨줍니다. 이렇듯 길은 문명과 문화가 손잡고 일궈낸 것이기에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작품반열에 들어갈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금오산을 오르며 길의 의미를 되새겨보았습니다. 경남하동의 남해바다에 면한 금오산은 그 높이가 거의 850m에 이르러 KT의 통신기지와 공군기지가 들어앉을 정도로 요지의 산이어서 정상을 오르는 길이 여기 저기 잘 나있습니다만, 제가 이어가야 하는 이 산 북쪽 산줄기만은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어서 그렇지 못했습니다. 12번 도로에서 정상으로 이어지는 북쪽 능선을 따라 이 산 중턱의 아스팔트길까지 오르는 2Km가 채 안 되는 능선이 낙남금오지맥의 마루금을 잇기 위해 제가 밟은 길인데 잡목들이 우거지고 가시나무들이 뒤엉킨 숲 길이어서 이 숲을 빠져나가 아스팔트길로 올라서는데 2시간이 넘겨 걸릴 정도로 엄청 고생을 했습니다. 그리 고생을 하고나자 길이란 참으로 편리하고 편안한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문명이라는 씨줄과 문화라는 날줄이 교직되어 만들어진 것이 길이기에 제대로 된 길이라면 그 길에 문명의 편리함과 문화의 편안함이 깃들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당연함에 묻혀 오래 잊고 지냈던 길의 고마움을 새삼 인식했습니다. 더불어 문명과 문화가 배제된 곳에서는 하루도 살 수 없음도 같이 느꼈습니다.
아침7시53분 12번 도로변에서 시멘트 길을 따라 남쪽 위에 자리한 금오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시멘트 길은 바로 끝나고 같은 노폭의 비포장 흙길을 따라 올라가 과수원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다닥다닥 달린 이름 모르는 풋과일이 풋풋해 보이는 것도 잠깐이었습니다. 과수원꼭대기에 이르자 길이 끊겨 길을 새로 내어 마루금을 이어가야 했는데 이 일이 결코 애들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지나간 발자국이 보일 듯 말듯 남아 있는 흐릿한 길을 쫓아가다가 관목들이 꽉 들어찬 숲속으로 들어간 길을 찾아 이어가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이제 길을 찾아 마루금을 이어간다는 것은 포기했고 대신에 남쪽으로 방향을 잡은 후 그래도 나무들이 덜 우거진 곳을 찾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고도를 조금씩 높여갔습니다. 작년여름 이 길을 먼저 오른 신경수님의 “그리운 마음으로 하늘금 따라 백두산 가네”의 핑크색 표지기가 없었다면 이 길을 포기하고 다시 내려가 약수골랜드에서 출발하는 편안한 길로 올랐을 것입니다. 산행시작 1시간 만에 올라선 해발고도가 380m가량 되는 능선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12번 도로를 지나는 차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는데 어인 일인지 새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아 차 소리가 끊어지면 사방이 쥐 죽은 듯이 조용했습니다.
9시12분 해발고도 380m대의 공터를 출발했습니다. 간벌을 한 소나무 밭을 지나 묘지에 다다르자 희미한 길마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아 난감했습니다. 길을 가로막아 진행을 막는 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철쭉과 싸리나무였고 겉옷을 뚫고 사정없이 찔러대는 가시나무는 도둑을 막고자 시골집에서 심기도 하는 청가시나무였습니다. 어렵게 나무숲을 뚫고 고도를 높여가다 묘지를 만나면 그래도 마음이 놓이는 것이 후손들이 성묘 차 다녀갔을 것이기에 잘하면 길이 나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묘지를 다시보자 그런 기대가 부질없어 보이는 것이 언제 후손들이 다녀갔는지 어림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묘지가 전혀 관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묘지의 공간은 여느 숲보다 넓어 쉬어가기에는 좋은 곳이기에 나무 숲을 뚫고 갈 힘을 비축하기 위해 10분여 쉬었습니다. 건너 산자락에서 멧돼지(?)가 포효하는 소리를 듣고도 두렵지 않은 것은 녀석이 이곳까지 와서 저를 해칠 리 만무하고 무엇보다도 이 숲을 어떻게든 빠져나가 금오산을 넘는 것이 더 다급한 일이어서 그러했습니다. 묘지를 지나 희미한 발자국(?)을 따라 좌우로 오가면서 고도를 높여 465m능선에 오르자 가지에 달랑 하나 남은 철쭉 꽃송이가 저를 반겼습니다.
10시35분 해맞이 쉼터로 이어지는 아스팔트로 빠져나와 잡목 숲과의 전쟁을 끝냈습니다. 465m능선에서 철쭉 꽃송이를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곧바로 치고 올라 처사김해김공 묘지에 이르렀고 얼마 후 다다른 또 다른 묘지에서 짐을 풀고 푹 쉬었습니다. 고통스러운 잡목 숲 빠져나가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면서도 전혀 두렵지 않았던 것은 신경수님의 산행기를 읽고 이러리라고 이미 각오한 바이고 지도, 나침반, 고도계 및 그동안의 경험을 총 동원한 진행이었기에 고되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히 이 숲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강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비가 오지 않았고 오전 이른 시각이어서 초조하지도 않았습니다. 10분간의 휴식을 끝내고 앞서보다는 흔적 같은 것이 제법 보이는 희미한 길을 따라 5분을 오르자 포장도로가 나타나 이제 살았다 싶어 5분간 꼼짝 않고 서서 숨을 골랐습니다. 아스필트 길을 따라 2-3분을 올라가 길 오른쪽에 서있는 “약수골1.4Km/해맞이정상2.6Km"의 이정표를 보고 이번 산행이 마루금을 이어가는 지맥종주가 아니었다면 저도 당연히 편안한 약수골 길로 올라왔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햇살이 따가워 그늘이 없는 아스팔트 길을 버리고 다시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이어지는 산길이 여느 산길보다 좁고 흐릿했지만 앞서 길이 없는 숲속을 뚫고 나와서인지 이 좁은 길이 마치 고속도로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2시32분 해발849m의 금오산을 올랐습니다. 산길로 들어서자 새들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쉬지 않고 조잘댔습니다. 나뭇잎에 가려 햇살이 미처 닿지 못하는 숲속에서 길을 찾아 헤맬 때는 침묵을 지켜 으스스한 분위기조성에 일조한 새들이 제가 훤한 곳으로 빠져나오자 마구 지저귀어 그리 곱게만 보이지는 않았다가 지리산과 백운산의 사이를 굽이돌며 흐르는 섬진강이 한눈에 잡히는 전망쉼터에 이르자 밉살스런 새들의 재잘댐도 비로소 산상의 음악으로 들렸습니다. 전북진안의 데미샘에서 발원해 광양제철소 앞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섬진강이 내달려온 길이 220Km 안팎인데 이 강에 물을 대는 울타리산줄기가 640km에 이르러서 환주 산행 중에는 멀리 떨어진 섬진강을 거의 만나볼 수가 없었습니다. 생고생을 하며 잡목 숲길을 빠져나와 저 아래 도도히 흐르는 섬진강을 내려다보자 더욱 반갑고 또 반가워 저도 모르게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기도문을 외운 후 산 오름을 계속해 12시2분 경 삼각점이 박혀 있는 무명봉에 올라섰습니다. 얼마 후 왼쪽으로 내려가 아스팔트 길을 따라 올라가며 통신소를 지나고 군부대를 왼쪽으로 휘돌아 길 아래 자리한 해맞이공원 위를 그냥 지나 금오산봉수대 앞으로 올라가 멈췄습니다. 정상에 군사기지가 들어앉아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금오산의 해발고도는 850m로, 바다 건너 정남쪽으로 보이는 남해의 금산보다 훨씬 더 높아 전망이 빼어납니다. 여기서 맞는 해돋이 또한 일품일 것이기에 하동군에서 이 산 남사면에 해맞이공원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봉수대 앞에서 조금 더 걸어 표지기가 많이 걸린 삼거리에서 왼쪽 아래로 덕천리 길로 내려섰습니다. 청소년수련원에서 올라오는 젊은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눈 후 조금 내려가 그늘진 곳에서 점심을 들었습니다.
14시20분 “대송입구 1.1Km/정상(해맞이공원1.9Km)” 이정표가 세워진 능선삼거리에서 3구간 종주를 마쳤습니다. 20분 넘게 쉬면서 점심을 들은 후 13시7분에 오후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남쪽으로 내려가다 바로 길옆의 마애불을 들러보았습니다. 굴 안의 암벽에 불상을 새겨 놓은 하동금오산마애불은 부처님 옆에 석탑도 같이 그려놓아 독특했습니다. 조금 더 내려가 왼쪽으로 청소년수련원 길이 갈렸고 금오지맥 길은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이 산 중턱을 가로지르며 너덜 길로 이어졌습니다. 산 중턱의 너덜길이 끝나고 나무계단 길을 따라 해발고도 500m대로 내려서자 경사가 완만해져 걸을 만 했습니다. 거북의 등처럼 표면이 갈라진 거북바위(?)를 지나 사방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큰 바위에 올라 남해바다를 조망했습니다. 올망졸망한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남해의 한낮 풍경은 졸리다 싶을 정도로 한가로웠지만 이 바다가 올려 보낸 바람은 그지없이 시원해 바로 이때다 싶어 바지춤을 내리고 거풍을 즐겼습니다. 이 바위에서 충분히 쉰 터라 7-8분 걸어 다다른 “대송입구 1.1Km/정상(해맞이공원1.9Km)” 삼거리에서 생각 없이 직진한 것이 금오지맥의 마루금을 벗어난 직접적인 원인이었습니다. 이 삼거리에서 5-6분을 더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 능선을 따라 직진코자 했으나 길이 끊겨 가지 못하고 길이 잘 나있는 오른 쪽으로 내려섰는데 한참 뒤에야 이 길이 지맥길이 아니고 덕천리 마을로 내려가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15시40분 덕천리버스정류장에서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금오지맥의 능선삼거리에서 덕천리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도 완만하고 길도 잘 나있었습니다. 얼마간 내려가 만난 임도를 따라 오른 쪽으로 내려가자 시멘트길이 나타나 이제 동리가 가까워졌다 했습니다. 금오산등산로안내판이 서 있는 시멘트 길 삼거리 바로 옆으로 지도에 나와 있는 덕포소류지가 보여 마루금에서 이탈한 것을 확실히 알았지만 어차피 이번 산행으로 섬진강산줄기 환주를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그대로 하산했습니다. 시멘트 길이 끝나고 아스팔트길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한 느티나무 쉼터를 들러 십 수분 간 편히 쉬었습니다. 모를 내느라 일손이 달리는 요즈음이 배낭을 메고 시골 길을 걷기가 가장 민망한 때여서 동리 앞을 지나는데 신경이 쓰였습니다. 17번 도로와 만나는 주유소 건너편 슈퍼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든 후 1시간 가까이 기다려 16시30분에 전도로 나가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 숲속에서도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고 잘 이어간 마루금을 “대송입구1.1Km"지점에서 벗어난 것은 순전히 순간의 방심 때문이었습니다. 가져간 신경수님의 산행기를 꺼내 읽었다면 직진해 덕천리로 잘 못 빠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곧바로 이어지는 능선을 놔두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싶어 그대로 직진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직진해서는 안 되는 것이 능선 끝머리에 낭떠러지 채석장이 있어 내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오랜만에 어려운 길을 뚫고 산행하고 나자 이제 어떤 어려운 길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번 산행의 최대소득이 바로 이 자신감입니다. 낙남정맥 능선길도 만만치 않기에 이러한 자심감이 정맥종주에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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