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5대강둘레산줄기 환종주기/섬진강 둘레산줄기

1.백운산권 환주기(1-5)

시인마뇽 2010. 9. 10. 09:12

 

 

환주기1 :호남기맥 1구간(외항-탄치재)

 

*산행일시:2007. 5. 3일/ 9시13분-17시30분(8시간17분)

 

*소재지  :전남 광양

 

*산높이  :망덕산196미터,천왕산228미터,국사봉445미터

 

*산행코스:외망-망덕산-천왕산-배암재-국사봉-탄치재

 

 

 

 

한반도 남쪽 최고의 명산인 지리산과 덕유산을 오른 것만으로 호남의 산들이 어떠하다고 쉽게 평할 수

 

는 없을 것이다. 정작 내장산, 무등산, 조계산과 백운산 등 호남의 명산들을 굴비 엮듯이 한 줄로 꿰어

 

호남 땅을 남북으로 또 동서로 이어주는 산줄기는 따로 있다. 호남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산줄기인 호

 

남정맥은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나가는 금남호남정맥을 3정맥분기점인 조약봉에서

 

이어받아 이 산 저산을 엮어가며 섬진강을 따라 남쪽으로 내달린다. 전남장흥의 사자산에서 방향을 확

 

바꾸어 동쪽으로 뻗어가는 호남정맥은 광양의 백운산에서 막을 내리고 백운산에서 섬진강 하구의 망

 

덕산까지 호남기맥이 도맡아 산줄기를 끌고 간다. 영취산에서 망덕산까지 5백Km에 가까운 금남호남

 

정맥, 호남정맥과 호남기맥을 다 걸어보지 않고 호남의 산과 섬진강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낯

 

간지러운 것 같아 이번에 큰 맘 먹고 호남의 산줄기에 발을 들였다.

 

 

 

 

  지난 4월 초 금남호남, 금남과 호남정맥의 3정맥분기점인 조약봉에서 금남정맥 종주를 마치고 딱 한

달을 쉬었다. 집에서 가까운 한강기맥을 종주할까, 좀 멀더라도 호남정맥에 발을 들여 6번째 정맥종주

길에 나설까, 이도 저도 아니면 한북정맥에서 가지 친 지맥들을 밟아볼까 이리저리 재는 동안 그 새 한

달이 흘렀다. 나머지 4정맥을 마저 밟아 남한 땅 9정맥을 모두 종주하겠다는 욕심에 더하여 남도예술

을 빚어낸 호남의 산수와 이에 어린 선조들의 체취를 직접 느껴보고 싶어 호남의 산줄기를 종주하기로

결정하고 5월2일 밤 11시15분 수원역에서 전라선 열차에 올랐다. 호남의 산들은 이미 종주를 마친 5개

정맥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거리가 멀어 비용과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는 가까운 찜질방에서 하루를

묵으며 이틀 연속 산행하는 것이 불가피해 야간열차에 몸을 실은 것이다.

 

 

종주산행에 필요한 정보는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한 “실전 호남정맥/낙동정맥 종주산행” 책자와 상세하

 

고도 생생한 내용을 담고 있는 성봉현님의 산행기에서 뽑아갈 수 있어 이번 산행이 그리 걱정되지 않

 

았다. 그보다는 밤새도록 야간열차를 타고 가서 이른 아침부터 산행을 시작하고 또 이틀 연속 9-10시

 

간을 걸을 수 있는 지구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해 무슨 일이 있어도 주 2회는 빼먹지 않고 산을 오르

 

는 등 내 나름대로 체력을 강화해왔다. 그래서인지 새벽 3시40분에 순천역에서 하차하여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피곤한 줄 전혀 몰랐다.

 

 

 

 

아침9시13분 섬진강의 하구인 외망포구에서 호남기맥 종주를 시작했다. 아침6시10분에 순천을 출발

 

하는 망덕행 버스는 책자의 내용과는 달리 노선이 없어져 당혹스러웠다. 별 수 없이 한참을 더 기다려

 

7시30분에 순천터미널을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광양으로 옮긴 다음 8시17분발 망덕행 시내버스

 

로 갈아탔다. 성봉현님의 산행기대로 밤9시30분에 용산을 출발하는 경전선 열차를 타고 광양으로 가

 

서 아침6시10분에 출발하는 망덕행 버스를 타는 것이 정석인 것을 기차역에서 맥없이 기다리는 시간

 

을 줄이고자 전라선을 탄 것이 실수였다. 발간된 지 오래된 책자에 실린 내용만을 믿고 점검하지 않은

 

 게으름이 잘못이었음을 첫 구간 산행에서 깨달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호남기맥의 첫 들머리는 망

 

덕산 산자락에 자리한 자그마한 사찰 덕선사 바로 아래 있다. 번듯한 건물로는 대웅전이 유일한 덕선

 

사를 지나서 풀 숲길을 치고 올라가 오른 쪽에서 올라오는 제대로 된 산길을 만났다. 왼쪽으로 꺾어 오

 

르다가 만난 능선 길에서 오른 쪽으로 다시 꺾어 얼마고 걸어올라 팔각정에 다다랐고 잠시 숨을 고르

 

며 섬진강을 조망한 후 묘지 옆에 삼각점이 박혀 있는 해발 196미터의 망덕산 정상에 올라섰다.

 

 

 

 

 

10시32분 2번 국도를 건넜다. 망덕산에서 2번 국도로 내려가 길 건너 194m봉에 오르기까지가 생각보

 

다 힘들었다. 급경사 길을 내려서기도 조심스러웠지만 중간에 길이 사라져 한참을 헤매다가 왼쪽으로

 

꺾어 2번 국도로 내려서기가 쉽지 않은데다 채석장에 인접한 왕복4차선 길의 중앙분리대를 무단으로

 

넘어 횡단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차도를 건너 또 얼마간을 청미래 가시에 찔려가며 194m봉의 암봉

 

에 올라선 다음 북쪽으로 뻗은 정맥 길을 따라 천왕산으로 향했다. 마치 섬진강이 망덕산을 에돌아 북

 

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강폭이 꽤 넓은 물줄기가 서쪽으로 보였는데 나중

 

에 알고 보니 수어천 하류였다.

 

 

 

 

11시48분 해발228미터의 천왕산을 올랐다. 194m봉에서 천왕산에 이르기까지 37분간은 능선 길이 완

 

만해 모처럼 편안한 시간이었다. 암봉의 정상이 훌륭한 전망지여서 남쪽의 광양만과 포스코는 물론 북

 

쪽으로 뻗어나가는 수어천 물줄기도 한눈에 잡혔다. 민들레꽃이 집단으로 피어있는 밤나무 밭을 지나

 

도로로 내려섰는데 밭에서 일하는 분들 곁을 등산복 차림으로 지나기가 민망했다. 오른 쪽의 지하도로

 

남해고속도로를 건너 대나무 숲 오른 쪽 옆길을 지나 다시 산길로 들어섰다. 밤나무 밭의 커다란 바위

 

에서 노랑꽃들에 취해 오른 쪽으로 꺾어 한참을 가다가 느낌이 이상해 방향을 체크했더니 지도에 나와

 

 있는 북향길이 아니고 그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어 다시 방향을 잡아 되돌아오는 데 5-6분이 걸렸다.

 

나지막한 구릉에 이름 모를 노란 꽃들이 만개해 신록의 푸름과 잘 어울러 보였으며 양 옆으로 밭떼기

 

와 묘지가 들어선 구릉 길에는 햇빛을 가릴만한 나무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장송들이 가득히 들어선

 

짧은 길을 지나기가 아쉬웠다.

 

 

 

 

 

12시53분 시멘트도로가 지나는 삼거리고개를 건너 그늘진 곳에서 짐을 풀었다. 전날 밤 집 근처 산본

 

에서 사온 김밥이라 날이 더워 시었을까 걱정했는데 말짱해 포도를 후식으로 곁들이며 맛있게 점심을

 

들었다. 점심을 들면서 20분을 쉰 후 맞은편에 돌을 캐낸 채석장의 절개지가 흉물스럽게 보이는 삼거

 

리안부를 떠나 기맥종주를 이어갔다. 여전히 낮은 구릉 지대여서 길 아래 밭과 묘지가 계속해 눈에 띄

 

었고 더러더러 소나무밭도 지났다. 해발117미터의 잼비산을 지나 13시40분에 2번국도가 지나는 배암

 

재를 건넜다.

 

 

 

 

 

14시 정각 해발167m의 입암에 오르자 동그란 동판의 소삼각점이 보였다. 높다란 송전탑이 서있는 시

 

멘트도로의 상도재 고개 마루에 내려서 10분을 쉰 후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르다가 이내 흙길로 들어섰

 

다.  가파른 능선 길을 올라 송전탑을 지난 후부터는 더 이상 밭이 보이지 않았고 얼마 후 만난 삼거리

 

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 된비알 길을 올라 돌무더기가 있는 구릉 같은 270m봉(?)에 다다랐다. 270m봉

 

을 넘어 개활지 상단을 지나는 동안 아직도 지지 않은 꽃송이가 한 두 개만 남아 있는 낮은 키의 철쭉

 

가지가 얼굴을 때렸고 청미래 가시가 길을 막기도 했다.

 

 

 

 

 

16시3분 해발445미터의 국사봉에 올랐다. 270m봉에서 국사봉가는 길에 청미래 가시에 많이 시달려

 

기맥길이 대간 길보다 훨씬 힘듦을 실감했다. 고도가 높아지자 늦깎이 철쭉들이 화사하게 활짝 피어

 

동산 길이 훤했다. 입암 출발 시간 반이 지나 다다른 능선 길에서 소나무가 햇빛을 가리는 큰 바위에

 

걸터앉아 11분을 쉬는 동안 비를 몰아 올 것 같은 시원한 바람을 맞아 땀을 식혔다. 7-8분을 더 걸어

 

개활지 상단 길과 함께 잡목 길도 끝나는 봉우리에 다다라 잠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가파른 길을 따라

 

올라 국사봉에 올라서자 삼각점과 돌무더기가 쌓인 성터가 나를 반겼다. 큰 바위에서 쉰지가 얼마 안

 

되어 곧바로 탄치재로 향했다. 반시간을 넘게 걸어 다다른 능선에서 내려서면 바로 탄치재에 닿을 것

 

같아 너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길을 잘 못 든 것이 아닌가하고 의심이 가서 몇 번이고 내려갔

 

다 다시 올라서기를 반복하다가 녹이 잔뜩 슬은 철제의 커다란 사각 통 옆에서 쉬면서 먼저 오른 분의

 

산행기를 꺼내 보았다. 길은 맞았고 이 길이 바로 286m봉 능선 길이었는데 한번 의심이 가면 쉽게 혼

 

란에 빠지기에 이런 때는 가던 길을 멈추고 쉬면서 생각을 끊는 것이 중요하다.

 

 

 

 

 

17시30분 해발169m의 탄치재에 내려서 8시간 남짓한 종주산행을 마쳤다. 286m봉에서 급하게 내려가

 

왼쪽 아래 밤나무 밭이 들어선 능선 길에 다다르자 249m봉이 저만치 우뚝 솟아 있어 그 너머 탄치재가

 

멀지 않음을 직감했다. 249m봉이라면 높은 봉우리가 아닌데도 오르기가 힘든 것은 이미 힘을 다 소진

 

해서다. 송전탑을 지나 헬기장이 들어선 249m봉에 올라서자 바로 아래 탄치재를 지나는 2번 국도가

 

보여 호남기맥의 첫 구간도 무사히 해낸다 싶었다.  헬기장을 가로질러 내려선 임도를 따라 잠시 걷다

 

가 오른 쪽 길로 들어서 성원레미콘 공장 안내석이 서 있는 탄치재에 다다랐다. 왕복 2차선의 2번국도

 

가 지나는 탄치재에서 40분을 기다려 하동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번 종주산행으로 내가 걸린 시간이 “실전 호남정맥/낙동정맥 종주” 책자에 실린 시간과 거의 같음을

 

확인했다. 다만 발간된 지 몇 년 지난 책이라서 들머리를 들고 날머리를 나는데 필요한 교통정보는 그

 

새 변동이 있는 것 같다. 일단 산길로 들어선 다음에 필요한 구체적인 산행정보는 성봉현님의 산행기

 

에 세세하게 적혀있어 호남의 산줄기종주도 혼자서 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환주기2:호남기맥 2구간(탄치재-외회갈림길안부)

 

*산행일시:2007. 5. 4일/ 6시45분-13시7분(6시간22분)

 

*소재지  :전남 광양

 

*산높이  :쫓비산537미터/갈미봉520미터/불암산431미터

 

*산행코스:탄치재-불암산-토끼재-쫓비산-갈미봉-외회갈림길안부-회두마을버스회차   

 

 

 

 

 

섬진강이 동편과 서편으로 가른 것은 망국적인 지역정서가 아니고 소리꾼들이 목청 높여 부르는 판소

 

리다. 아직도 판소리 여섯 마당 중 어느 하나도 끝까지 들어보지 못한 내가 동리 신재효의 판소리사설

 

을 한번 읽었다 해서 문외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누가 뭐라 해도 판소리는 소리이지 결코

 

사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산행기에 판소리에 대해 한 마디 써넣고자 하는 것은 호남

 

기맥을 종주하느라 쫓비산을 오르는 중 오른 쪽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보고 이 강이 호남의

 

산줄기와 힘을 합쳐 남도예술의 원형이랄 수 있는 판소리를 빚어냈다고 생각해서다.

 

 

 

 

이이화님의 저서 “한국사 이야기”에 따르면 판소리는 17-8세기에 생겨서 19세기에 한 단계 발전한, 당

 

시로는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었다. 아악이 양반들이 부르는 정가라면 타령은 창부나 서민들이 즐겨 부

 

르는 잡가로 즐기는 음악도 신분에 따라 달랐는데, 판소리만은 위로는 임금에서 아래로는 천민까지 모

 

두가 즐겼던 당대의 대표적인 대중음악이었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가 한 조가 되어 잔칫집마당이

 

나 공터, 대청이나 사랑방 등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판을 벌이는 열린 음악으로 경기도 일대와 충청도,

 

전라도를 중심으로 발전해나갔는데 가장 성행한 곳은 단연 전라도였다고 한다. 전라도 땅 고창에서 태

 

어나 동리정사에서 열두 마당으로 된 잡다한 사설을 춘향가, 심청가, 토별가, 박타령, 적벽가 및 변강

 

쇠가의 여섯 마당으로 집대성하고 판소리꾼을 양성하는데 일생을 바친 동리 신재효의 공이 지대했다

 

고 이이화님은 적고 있다. 전라도의 판소리는 1860년대에 들어서 섬진강을 중심으로 동쪽의 산악지역

 

에는 빠르고 웅장하면서도 거친 동편제가, 서쪽의 평야지역에는 느리고 애잔하면서도 기교를 부리는

 

서편제가 서로 경쟁적으로 발전했으니 이는 전라도 땅을 남도예술의 본향으로 만든 호남정맥 등의 산

 

줄기와 섬진강이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영화감독 임권택님이 1990년대의 서편제에 이어 판소리 소리

 

꾼의 애환을 담은 “천년학”을 그의 100번째 작품으로 올린 것도 관객들이 어깨를 으쓱이며 추임새를

 

넣을 수 있는 판소리가 이 나라 민초들에 진정한 우리의 고전음악으로 가슴속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

 

일 것이다.

 

 

 

 

 

광양의 한 찜질방에서 숙면을 취해 온몸이 개운했다. 전날 밤 기차에서 한잠도 못자서인지 시끄러운

 

찜질방에서도 5시간 넘게 푹 잤다. 해장국을 사든 후 6시10분에 하동행 시내버스를 타고가 탄치재 고

 

개 마루에서 하차했다.

 

 

 

 

 

아침 6시45분 탄치재에서 왼쪽으로 난 넓은 흙길로 들어서 불암산으로 향했다. 텅 빈 가건물이 있는

 

과수원을 지나 울타리로 쳐놓은 플라스틱 발을 들고 그 밑으로 통과했다. 곧 이어 당도한 능선 길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얼마고 걸어 오르자 광양터미널의 자판기에서 빼 마신 커피가 문제였는지 속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해 이른 아침부터 재잘대는 새들의 노래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몇 기의 묘

 

지를 지나 다다른 320m능선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 산 오름을 계속했다. 봉우리 몇 개를 더 넘

 

자 억새풀 길 끝의 불암산이 바로 눈앞에 다가섰고 뒤돌아 본 국사봉 가는 길도 날씨가 쾌청해 선명하

 

게 보였다. 

 

 

 

 

 

7시43분 해발431미터의 불암산 정수리에 섰다. 한참 아래로 내려가서 몸을 숨길만한 곳을 찾아 속을

 

비운 후 다시 정상에 서자 비로소 사방이 탁 트였다. 쫓비산 산줄기를 중심으로 왼쪽으로 수어저수지

 

와 오른 쪽으로 전날 다녀온 하동 읍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고, 바로 그 앞으로 섬진강이 도도하게

 

흘렀다. 탄치재 동쪽에 사는 광양 주민들은 아직도 강 건너 하동으로 장보러 간다는 기사분의 얘기가

 

맞는다면 영호남을 갈라놓은 것은 섬진강이 아님이 분명하다. 기왕에 시골 장 이야기가 나온 김에 내

 

소견 한 꼭지를 남기고자 한다. 광양을 출발한 하동행 첫 버스가 닷새 만에 장이서는 옥곡을 경유하는

 

데도 차안이 거의 텅 비어 이상하다 했다. 이제는 시골 길에서 장보러 버스를 타는 아낙네들을 거의 없

 

다며 이러다가는 우리 고유의 닷새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는 기사분의 이야기를 듣자 고

 

개가 끄덕여졌다. 전통적인 시골의 닷새 장은 물물교환의 장이자 정보교환의 장으로 큰 역할을 해왔는

 

데 물물교환은 인근 슈퍼마켓이 대행하고 정보교환은 상당부분 인터넷에서 이루어져 굳이 장을 보러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어떤 문물이든 또 제도이든 모두가 시대적 소산이기에 점점 자리붙일 데가

 

마땅찮은 닷새 장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야한다고 고집할 뜻은 없지만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만

 

나 값을 흥정하고 또 장돌뱅이들이 실어 나르는 새로운 소식을 접하며 나누었던 세상 살아가는 풋풋한

 

 정마저 같이 보내야한다 생각하니 아쉽기 이를 데 없다.

 

 

 

 

 

8시45분 왕복2차선도로가 지나는 토끼재에 내려섰다. 대나무 깃봉 옆에 삼각점이 세워진 불암산 정상

 

에서 18분을 머무르는 동안 산 밑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골바람과 계속해서 재잘대는 새들 모두와 묵언

 

의 대화를 나누었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몇 년간 혼자서 산을 다니다보니 나도 어느새

 

산식구가 다 되었다는 착각이 들곤 한다. 혼자서 종주하는데 가장 큰 적은 두려움과 외로움이다. 대간

 

길 반 정도와 5개 정맥 길을 혼자서 종주해왔지만 아직도 산짐승을 만날 까 두렵고 하루 종일 누구하

 

나 말 건넬 사람을 만나지 못해 이러다가 실어증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걱정 될 때도 있다. 이럴 때 특

 

효약은 산식구들과 한 통속이 되어 묵언의 대화를 주고받는 것인데 말처럼 쉽지 않다. 산식구들과 대

 

화를 이어가려면 그들의 속성을 알고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어야하기에 말이다. 산 속에 사는 생물과

 

바위와 흙 등은 물론 바람과 구름도 모두가 산식구이기에 이들 모두에 가슴을 열고 사랑하자고 마음먹

 

고 나서도 갑자기 나타난 뱀에 질겁하고 방금 전 멧돼지가 분탕질한 흔적에 섬뜩해 한다. 불암산에서

 

토끼재로 내려서는 길은 편안했다. 키를 넘는 철쭉나무 숲을 지나가는 것도 색달랐고 올 들어 처음 만

 

난 둥굴레 꽃도 반가웠다. 한참을 내려와 왼쪽아래가 개활지인 능선 길에 다다르자 들어오면 고발하겠

 

다는 어느 산주의 경고판이 서있어 살벌한 느낌이 들었다. 채석장 공터를 가로 질러 내려선 토끼재 차

 

도를 건너 컨테이너 박스 옆으로 난 산길로 들어섰다.

 

 

 

 

 

10시22분 해발536미터의 쫓비산 정상에 올랐다. 토끼재에서 380m봉에 이르는 능선길이 가팔랐다. 길

 

섶의 소나무들을 적당히 간벌해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으나 높이 솟은 소나무들이 대부분 죽어있

 

었고 능선 길 오른 쪽에 쳐놓은 철조망도 녹슨 지 오래되어 산속이 우중충했다. 쫓비산에 오르는 능선

 

길은 점차 고도가 높아졌다. 380m봉을 출발해 소나무숲길과 측백나무가 자라는 곳을 지나 460m봉에

 

오른 다음 오른 쪽으로 내려갔다가 장송이 숲을 이룬 완만한 오름 길을 따라 걸어 490m봉에 도착했다.

 

490m봉의 능선분기점에서 왼쪽 길로 내려가 철쭉꽃이 활짝 핀 능선 길을 걸어 쫓비산에 오르자 올 들

 

어 처음으로 검은등뻐꾸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오름 길에 고개를 바짝 든 흑갈색의 새끼 뱀도 만났

 

으니 이 정도면 5월의 산 식구들과는 인사를 다 나눈 셈이다. 산 이름을 써 놓은 대삼각점이 맨 흙의 공

 

터 한가운데 서있는 쫓비산 정상은 나뭇잎에 시야가 가려 이 산 동사면의 산자락에 들어선 섬진마을의

 

매화나무를 한 그루도 볼 수 없었다.  해마다 3월이면 많은 손님들이 이 나라 최대의 매화꽃 축제가 열

 

리는 이 마을을 찾는다는데, 이 때 손님들의 눈길을 끄는 또 하나는 마을 앞을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으

 

로 쪽 빛나는 푸른 강물과 강 건너 백사장이 일품이라 한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얼마고 진행하다가 너

 

럭바위에서 잠시 쉬며 오른 쪽 아래의 섬진강을 조망했다. 과연 푸른 물결과 백사장이 일품이었고 그

 

래서 쫓비산의 쉽지 않은 산 이름이 바로 아래 쪽 빛나는 섬진강에 드리워진 봉우리가 쪽빛산이라는

 

데서 유래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그럴 듯하게 들렸다. 

 

 

 

 

 

12시02분 해발 520미터의 갈미봉에 다다랐다. 섬진강을 조망하느라 잠시 쉰 너럭바위에서 갈미봉에

 

이르는 길은 곳곳에 바위무더기가 있었고 내려서는 안부도 깊었으며 오름길도 급한데다 가파르게 내

 

려서는 바위 길도 있어 능선 길이 단조롭지 않았으나 간간히 철쭉꽃도 보였 다. 왼쪽 멀리로 나뭇잎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던 백운산 정상이 통째로 보이는 바위에 올라 정상봉 전신을 카메라에 옮겨 담았

 

다. 꽤 굵은 참나무 줄기에 붙어서 수직으로 뻗어 올라가는 이름 모르는 가느다란 나무가 참나무껍질

 

속으로 파고든 것을 보고 이런 삶은 기생과 공생 중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지 궁금했다. 쫓비산에서 갈

 

미봉에 이르는 길은 정상 바로 못 미쳐 마지막 오름 길을 빼고는 그리 힘들지 않아 한 시간여 오붓한

 

산행을 즐겼다. 신록의 싱그러움과 골바람의 살가움, 재잘대는 새소리에 봄꽃들이 불러들인 색색 나비

 

들의 나팔거림, 그리고 나무그늘 속에 쉼터를 마련해 준 너럭바위들과 같이하는 능선 길 한 시간이 모

 

처럼 5월의 산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어서 행복했다. 아침부터 서둘렀고 길 찾기가 쉬워 산행

 

속도가 빨라진 덕에 혹시 13시40분에 회두마을을 출발하는 버스를 타지 못할까하는 걱정은 사라졌고

 

갈미봉에 올라서 사과를 까먹으며 모처럼 충분히 쉬었다.

 

 

 

 

 

12시37분 왼쪽 아래 외회로 내려서는 갈림길인 십자안부에 내려섰다. 갈미봉에서 급경사 길을 내려가

 

고도가 3백m대로 낮아지자 능선길이 비교적 평평했다. 평평한 능선 길을 따라 걷다가 잠시 걸어올라

 

390m봉을 넘어 십자안부에 도착해 2번째 구간 종주를 마쳤다. 안부에서 정맥 길을 벗어나 외회로 내

 

려서는 길은 사람들이 흔하게 다니는 길이 아니어서 낙엽이 소북이 쌓여 있었다.

 

 

 

 

13시7분 회두마을 버스 회차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무리했다. 십자안부에서 십 수분을 걸어 내려

 

가 경사가 급한 과수원 밭을 지났고 이내 된비알의 시멘트 길로 내려섰다. 주인으로부터 길이 아닌 데

 

를 다닌다고 싫은 소리를 들으며 민박집 앞마당을 지나 지계교 다리를 건넜다. 회두마을 이정표가 세

 

워진 합수점에서 왼쪽 계곡으로 내려가 몸을 닦고 나서 버스에 올라 정확히 13시40분에 회두마을을

 

떠났다. 수어저수지를 따라 낸 찻길은 전형적인 시골 길이었다. 이 길에 인접한 야산의 나무들이 대개

 

가 밤나무와 매화나무라고 기사분이 말씀해 주어, 이제껏 산길을 걸으며 보았던 초록색의 작은 열매가

 

바로 매실이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이번에는 산행계획을 느슨하게 잡아 한 낮에 일찌감치 산행을 마쳤다. 앞으로도 첫날은 코스를 길게

 

잡고 다음날은 좀 짧게 잡아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너무 늦지 않도록 할 생각이다. 다행히 내 산행속도

 

가 책자에 나온 것과 거의 같고 이 책자를 발로 쓴 탐사 팀도 첫날은 길게 그리고 끝 날은 짧게 코스를

 

잡았기에 교통편만 새로 확인해서 문제가 없다면 이 책대로 따라할 뜻이다.

 

 

 

 

 

내게는 이번 종주길이 새로운 도전이다. 그러기에 산에 들 때마다 가슴이 뛰고 종주산행을 끝내고 나

 

면 할 이야기가 많아지나 보다. 가슴 뛰는 열정으로 열심히 걷고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산행기에 담을

 

것이다. 30여 년 한번 읽고 처박아 둔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집”을 다시 찾아 꺼낸 것도 내 산행기에 보

 

다 많은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다. 호남의 산줄기야 백년이 지난 들 어디 가겠느냐만 이 산줄기가 만든

 

어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은 시골의 닷새 장처럼 언제고 사라질 수 있기에 종주산행 동안만이라도 열심

 

히 듣고 기록해둘 뜻이다.

 

 

 

 

 

 

 

 

 

 

 

 

 

환주기3:호남정맥 1구간(외회갈림길안부-백운산-한재)

 

*산행일시:2007. 6. 6일/ 8시-17시20분(9시간20분)

 

*소재지  :전남 광양

 

*산높이  :백운산1,218m

 

*산행코스:지계교-외회갈림길안부-매봉-백운산-신선대-한재-논실

 

 

  

 

 

달포 만에 산줄기 종주에 다시 나서 호남정맥에 첫 발을 들였다. 앞서 이틀 연속 산행을 해서인지 허리

 

가 아프고 옆구리가 결렸다. X-Ray를 판독한 의사선생께서 별 이상이 없다며 처방해준 약을 먹었더니

 

통증이 감쪽같이 사라졌지만 무리한 산행은 삼갈 뜻으로 종주산행을 미루다 한 달이 지났다. 이러다가

 

무더위가 찾아오면 올 여름은 그냥 주저앉을 것 같아 벌써부터 백운산 정상을 오르겠다고 별러온 고교

 

친구 이규성교수와 둘이서 호남정맥 종주 길에 올랐다. 호남정맥이 백운산에서 끝나는 것으로 나와 있

 

는 산경표에 따르면 이번이 호남정맥 종주산행의 시작인 셈이다.

 

 

 

 

 

아침8시 외회마을의 장안민박집 앞 다리에서 하루산행을 시작했다. 순천역에서 택시를 타고 광양으로

 

옮겨 농협 건너편 정거장에서 회계 가는 30번 첫 버스를 25분이나 기다렸어도 오지 않아 진상까지 버

 

스타고 가서 택시를 잡아타고 회계로 갔다. 어엿한 정류장을 들르지 않고 그냥 가버린 버스회사에 분

 

통이 치밀었다. 외회마을에 도착해 장안민박집 앞 다리를 건널 즈음 주인남자가 건너갈 수 없다고 버

 

럭 소리를 질렀다. 사유지이니 다른 길로 돌아가라는 고성에 세상에 버젓한 길을 가로막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맞고함으로 대응하다가 목소리를 낮추고 주인분의 이야기를 들어본 즉 다리 건너 민박집을

 

하는 주인분이 정성들여 재배하는 동산의 고사리를 관광버스를 타고 온 한 떼의 산객들이 산으로 들어

 

가서 모두 따갔다는 것이다. 법 이전에 생존차원에서 길을 내줄 수 없다고 고집하는 주인 분에 우리들

 

은 그런 사람들이 아님을 말씀드리고 화를 내서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더니 심기가 풀린 주인분이 길을

 

 내주어 가파른 시멘트 길을 지나 산길로 들어섰다. 외회갈림길 안부에 다다라 잠시 쉬면서 한강에서

 

뺨 맞고 종로에서 화풀이한 속 좁은 소갈머리를 부끄러워했다.

 

 

 

 

8시36분 외회갈림길 안부에서 왼쪽으로 꺾어 종주산행을 시작했다. 출발지의 높이가 360m대이니

 

860m는 더 올라가야 백운산 정상에 이르게 되어 산 오름이 쉽지 않았다. 커다란 바위의 437m봉을 지

 

나 십자안부 천황재를 지났는데 양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하도 희미해 천황재가 맞는지 의심이 갔다.

 

512.3m봉 헬기장에서 연초록의 가지들이 건강해 보이는 키 작은 소나무들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우리

 

나라 산림의 41%를 점하고 있는 소나무 숲이 위기를 맞는 것은 재선충 때문만은 아니다. 소나무가 대

 

표수종이 된 것은 다른 나무들보다 양분과 수분이 적게 들어 우리나라 기후와 토양에 잘 적응해서이기

 

도 하지만 난방용 땔감으로 한번 베어내면 그 밑동에서 다시 줄기가 자라지 않는 소나무보다는 새로운

 

줄기가 끊임없이 돋아나는 참나무 등이 더 많이 쓰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땔감으로 나무들이 쓰이지

 

않는 요즈음 천이싸움에서 밀려 극상림의 자리를 참나무에 내줄 수밖에 없는 소나무를 보노라면 왠지

 

모르게 초록의 싱그러움도 잃은 듯하고 가지도 축 늘어져 보기에 안쓰러웠는데 이곳에서 싱싱하게 자

 

라고 있는 어린 소나무들을 만나보자 반가운 마음이 절로 일었다.

 

 

 

 

 

10시40분 해발 865.3m의 매봉을 올랐다. 512.3m봉에서 직진하여 오른 적송지대의 588m봉에서 오른

 

쪽 길로 내려섰다가 840m능선으로 오르는 중 눈에 띈 길바닥의 빨간 버찌열매에 전혀 손이 가지 않았

 

다. 당분이 절대 부족했던 옛날에는 언 땅이 녹기시작하면 칡뿌리로 시작해 버찌와 오디와 산딸기를

 

따먹고자 자주 올랐지만, 갖가지 과자와 음료 등 단 맛의 주전부리 감이 넘쳐나는 요즈음 달콤한 열매

 

를 따먹고자 산에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능선삼거리에서 왼쪽 능선 길을 따라 올라 삼각점

 

이 매설된 매봉에 다다랐으나 나뭇잎에 시야가 가려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매봉에서 내려섰다 바로

 

오른 구릉에서 오른 쪽 길로 진행해 827m봉에 올랐다. 827m봉에서 백운산으로 향하는 중 백운산을

 

올랐다가 하산하는 젊은이를 만나 외회로 내려가는 길을 알려줬다.

 

 

 

 

 

12시53분 묘지가 들어선 1115m봉에서 조금 내려가 그늘진 곳에서 점심을 들었다. 젊은이와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어 긴급구조안내판에 매봉으로 잘 못 적어 넣은 1016m봉에 올랐는데 여기서도 3km 떨

 

어진 백운산 정상이 꽤 멀리 느껴졌다. 이번 구간의 끝 지점인 한재에서 논실로 내려가 21-3번 시내버

 

스를 타야 광양으로 갈 수 있는데 버스가 18시20분에나 있어 산행을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다는 판단

 

한 친구는 커다란 카메라를 꺼내들고 본격적으로 사진 찍기에 나섰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 사진을 찍

 

고자 일반렌즈를 접사렌즈로 바꿔 끼고 나서 가만히 주시하고 있다가 한 순간을 잡아 촬영을 하는 친

 

구에게서 산사진전문가가 되겠다는 열의가 보였다. 자연 산행이 더뎌져 앞서 오른 한 분이 20분 걸린

 

길을 1시간 가까이 걸려 1115m봉에 도착했다. 길섶의 야생화도 모처럼 임자를 만나 아름다운 자태를

 

뭇 사람들에 자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겨서인지 청아한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듯했다. 40분 넘

 

게 점심을 들면서 모처럼 편하게 쉰 후 13시37분 자리를 떴다.

 

 

 

 

 

14시20분 해발1,218m의 백운산 정상에 올라섰다. 하늘은 푸르렀고 햇살은 따가웠지만 바람이 선선했

 

고 정상이 암봉으로 되어있어 시야가 탁 트였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20분 가까이 올라 전망바위에 올

 

라서자 이제껏 걸어온 능선 길이 한 눈에 잡혔지만 남동쪽의 뾰족 봉과 북동쪽의 삼각 봉이 어느 산인

 

지 가늠되지 않았다. 지도를 꺼내보니 남동쪽의 높은 봉은 억불봉인 듯 했으나 또 다른 한 봉은 확인하

 

지 못했다. 나뭇잎 위로 하얗게 피어 주위를 환하게 만드는 산딸나무는 꽃송이가 크고 생김새도 시원

 

시원해 앙증맞은 풀꽃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전망바위에서 물이 흐른 흔적이 분명한 길을 올라 호

 

남정맥이 시작되는 백운산 정상에 올라섰다.

 

 

 

 

 

백운산은 역시 호남정맥 최대의 고산이었다. 동서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산줄기가 거대했고 이만한 높

 

이에 자리한 바위로는 보기 드물게  그 규모도 엄청 컸다. 그 많은 백운산 중 함백산에서 가지 친 강원

 

도 영월의 백운산이 1,426m로 가장 높지만, 한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이곳 백운산의 산자락 여기저기

 

에 전국 최고의 매실단지가 들어선 데다 생명수 고로쇠도 생산해 이만하면 여러 백운산들을 대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쫓비산을 오르며 보았던 암봉은 이제와 다시 보니 백운산이 아니었고 이산이

 

동쪽 멀리에 망을 세운 억불봉인 것 같았다. 서쪽의 신선바위는 지근거리에 놔두면서도 억불봉을 멀리

 

한 것은 암봉들도 가까이에 놓아두면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북쪽 멀리 포진한

 

지리산 주능선이 보이지 않아 아쉬워하면서 14시32분에 백운산 정상을 떠났다.

 

 

 

 

 

15시54분 해발 860m의 한재로 내려가 호남정맥의 첫 구간 종주산행을 마쳤다. 정상에서 암릉을 왼쪽

 

으로 우회해 신선대로 옮기는 중 등산객들을 많이 만났다. 철 계단을 오르내려 올라선 신선대에서 10

 

분을 쉬면서 부지런히 능선 길과 봉우리를 카메라에 옮겨 실었다. 신선대에서 반시간 가까이 걸어 헬

 

기장에 다다르자 목덜미를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게 느껴졌다. 헬기장을 또 지나고 편안한 길을 걸어

 

장송이 들어선 한재로 내려서자 차가 지나다녀도 충분할 만큼 넓은 도로가 고개를 가로 질러 광양의

 

논실과 구례의 다압하천을 이어주었다.

 

 

 

 

 

17시20분 논실 버스종점에서 하루 산행을 끝냈다. 한재에서 논실로 내려가는 길은 좌우의 서울대학교

 

연습림 사이로 낸 넓은 길로 시멘트 길과 맨 흙길이 번갈아 나타났다. 가다가 쉬기를 반복하면서 모처

 

럼 느긋하게 사진을 찍은 친구가 찔레꽃 사진을 여러 커트 찍고 나서 장사익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

 

을 보고 1960년대 고교생으로 서울시내 유수대학 백일장을 휩쓸었던 이 친구의 문학적 상상력을 너무

 

 오래 잠재웠다 했다. 계곡으로 내려가 발을 닦으며 시간을 죽였어도 논실에 너무 일찍 도착해 일 없이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너무 무료할 것 같아 차도를 따라 얼마고 더 걸어 내려갔다. 광양시내로

 

돌아가 친구는 내게 저녁을 산 후 서울로 돌아갔고 나는 찜질방에서 머무르며 다음 구간 산행을 준비

 

했다.

 

 

 

 

 

산경표상의 호남정맥 끝 지점인 백운산 산행을 겸한 이번 산행은 오랜 지기와 함께 해 힘든 줄 몰랐다.

 

흰 구름이 이산 고스락에 걸치지는 않았어도 묵직한 바위만으로도 멀리서는 허옇게 보이는 여기 백운

 

산이 우리들의 산행을 지켜보았다면 속세의 사람들도 흰 구름처럼 마냥 떠돌며 가볍게 사는 것만이 아

 

니고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며 바위처럼 묵직하게 사는 법도 깨우쳤구나 하고 고개를 끄떡였을 것이다.

 

 이 산에 사는 야생화와 나무들, 또 산새와 짐승 등의 산식구들에 우리들처럼 산을 아끼는 사람들이 살

 

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산속에 있는 동안은 모든 산객들도 똑같이 산 식구라고 일러 주었을 것이

 

다. 

 

 

 

 

 

환주기4:호남정맥 2구간(한재-미사치)

 

*산행일시:2007. 6. 7일/ 6시50분-16시10분(9시간20분)

 

*소재지  :전남 광양/구례/순천

 

*산높이  :따리봉1,127m/도솔봉1,123m

 

*산행코스:논실-한재-따리봉-도솔봉-형제봉-월출봉-깃대봉 -미사치-심원마을

 

 

 

 

그놈이 내는 소리는 쩌렁쩌렁 산을 울렸다. 누구라도 처음 듣는다면 겁먹기에 충분한 포효소리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이름 모르는 새와 내가 소리를 내어 응답했다. 산속에서 몸을 숨기고 으르렁대는 그

 

놈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해 그 정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포효하는 소리만으로도 이 산을 휘젓

 

고 다니는 맹수임에 틀림없다. 종을 달리하는 그 동물과 새가 어떤 사연으로 이른 아침부터 서로 울음

 

소리를 나누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산 속을 지나 호남정맥을 종주해야겠기에 그 놈을 소리로 제

 

압하고자 있는 힘을 다해 같은 박자로 소리를 질러댔다. 이 때 내가 질러대는 소리는 인간의 언어가 아

 

니고 동물의 울부짖음이었기에 그 놈과 경쟁이 가능했을 것이다. 목소리 크기로는 누구한테도 빠지지

 

않기에 그놈과의 괴성질러대기 싸움은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는 내 승리로 끝났다. 괴성지

 

르기 몇 합으로 이겼다고 판단한 것은 더 이상 그놈의 포효소리가 들리지 않아서였다. 게임이 끝나자

 

그놈은 이 산 속에 천적이 없는 최고 강자 멧돼지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4년 9월 대간 종주

 

차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고 덕유산구간을 지날 때였다. 어떤 짐승이 큰 소리를 내어 접근을 막았

 

는데 소리의 크기로 미루어 멧돼지였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다리야 날 살려라하고 능선 길을 버리고 한

 

참 밑으로 뛰어 내려가 우회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그 후 약 3년 동안 혼자서 종주산행을 꽤

 

많이 한 터라 언제고 멧돼지와의 조우를 피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나 나름대로 담력을 키워 왔다. 멧돼

 

지가 운다고 종주산행을 포기한다면 어느 명년에 9정맥 종주를 다 마칠 수 있으랴 싶어 이번에는 소리

 

는 소리로 겨뤄보자는 생각에서 큰 소리를 냈는데 작전이 주효했던지 그놈은 내가 가는 길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괴성도 지르지 않았다. 내가 소리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되자 얌전히 길을 내준 그

 

짐승에 이제껏 그놈이라고 부른 점이 미안했다. 어디서든 만나면 우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앞으로는

 

서로 눈인사라도 나누며 잘 지내자고 손을 내밀고자 한다.

 

 

 

 

 

아침6시50분 논실마을을 출발했다. 광양에서 하루를 묵은 후 아침6시20분경 인근 정류장에서 21-3번

 

시내버스를 탔다. 30분 가까이 시골 길을 달려 한재 바로 아래 논실마을에 도착했다. 친구와 함께 한재

 

에서 걸어 내려온 길을 이번에는 혼자서 한재를 향해 올라가면서 혼자 걷는 오름 길이 둘이 걷는 내림

 

길보다 훨씬 힘이 들음을 확인했다. 아침햇살에 해말간 모습을 한 찔레꽃들이 저녁햇살을 받으며 열심

 

히 사진을 찍어댄 친구의 안부를 물었다. 한재에 거의 다 다다라 부글대는 뱃속을 비우고자 숲 속으로

 

들어갔는데 길 건너 산속에서 멧돼지가 포효하는 소리가 쩌렁쩌렁 산을 울려 겁이 덜컹 났으나 가만히

 

들어보니 어떤 새의 울음소리에 화답하듯 소리를 내는 것 같아 조금 안심했다. 저 정도의 소리라면 나

 

도 한번 질러볼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다면 소리로 한번 제압해보자는 생각이 동했다. 멧돼지는 생각

 

지 못한 내 큰 소리를 듣고 꼬리를 내렸는데 새는 아랑곳 않고 울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전7시50분 한재를 출발했다. 한재에 올라 10분을 쉬면서 그새 멧돼지가 사라지기를 빌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따리봉으로 오르는 숲길이 음침하거나 스산하지 않았고 이 길을 지나자 이제는 멧돼지를

 

만날 만한 길은 벗어났다싶어 안심됐다. 고바위 길을 올라 키가 작은 산죽 길을 지났고 다시 된비알 길

 

을 치켜 올라 한 봉우리를 만나 이제는 따리봉에 다 올라왔다 했는데 이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난 비교

 

적 밋밋한 능선 길을 따라 한참을 더 걸었다. 8시33분정상석이 세워진 해발1,127m의 따리봉에 도착했

 

다. 이번 산행 최고봉인 따리봉은 훌륭한 전망지여서 전날 걸은 백운산구간의 종주길이 한눈에 들어왔

 

으나 북쪽방향으로 자리한 지리산의 연봉들이 너무 흐릿해 답답했다. 왼쪽 논실마을로 내려가는 계곡

 

은 상당히 깊어보였고 정면으로 보이는 도솔봉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이 멈춰선 듯 따리

 

봉이 마냥 평화롭다고 생각된 것은 늦잠자다 막 깨어나 기지개를 펴는 새들과 이 들을 잠에서 깨운 바

 

람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직은 따갑지 않은 아침햇살이 산속을 고루 비춰주어 모든 나무들이 광합

 

성에 열중하느라 숨을 죽이고 있어서 더욱 그러했다.

 

 

 

 

 

9시54분 해발1,123m의 도솔봉을 올랐다. 따리봉을 출발해 왼쪽으로 논실 길이 갈리는 삼거리 안부인

 

 참재로 내려서기까지 철계단을 5번 내려갔다. 다른 정맥 길에도 빠지지 않고 걸려있는 강성원우유의

 

넓은 표지기가 눈에 띄었다.  헬기장을 지나자 철쭉꽃이 보였지만 철 지나서인지 꽃송이가 많지 않고

 

화사함도 많이 떨어졌다. 다시 안부삼거리를 지나서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숨 가쁘게 비알 길

 

을 오르는 나를 잠시 불러 세운 것은 참나무 밑동에 자라고 있는 자그마한 노랑 버섯이었다. 이달 하순

 

이나 내달 초쯤에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 버섯이 너무 일찍 선보여서인지 아직은 앙증맞게 작고 제

 

살색이 나지 않았다. 전망바위에서 급한 오름길은 끝났지만 햇빛을 바로 받는 길이 계속 되어 철계단

 

을 밟아 헬기장 바로 옆의 도솔봉의 고스락에 올라서기 몇 분간이 힘들었다. 도솔봉에서 바라다본 백

 

운산 줄기는 이제껏 보아온 모든 것을 총 정리해 놓은 듯 압권이었고 억불봉이 백운산의 최동단의 초

 

계봉이라면 정상에 인접한 신선대는 근위봉으로 보였다. 백운산-도솔봉의 주능선에서 남북으로 가지

 

쳐나간 산줄기들이 만드는 골짜기들에 숨겨졌을 이 산의 전설을 찾아 그 내용을 알아본다면 사바세계

 

인 저 골짜기로 내려서기 전에 성불하고자 도를 닦고 기다리는 도솔천이 바로 내가 서 있는 도솔봉임

 

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수분 간 팬티를 내리고 사타구니를 시원하게 한 다음 형제봉으로 향했다.

 

도솔봉에서 조금 내려서 평지 길을 걷다가 다시 올라 물푸레나무가 들어선 무명봉에 다다랐다. 바람이

 

시원했고 모처럼 낙엽이 쌓인 길을 걸어 발바닥이 좀 편안했는데 한 동안 표지기가 나타나지 않아 혹

 

시 길을 잘 못 든 것이 아닌 가 염려되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지도를 꺼내 제 길임을 확인한 얼마 후

 

올라선 등주리봉에서 왼쪽으로 성불사로 갈리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목을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

 

였다. 

 

 

 

 

 

11시31분 해발 861m의 암봉인 형제봉에 올라섰다. 형제봉을 1.0Km 남겨놓은 삼거리봉우리인 등주리

 

봉에 오른 시각은 10시57분으로 도솔봉 출발 50분 후였다. 등주리봉에서 철계단을 밟고 내려가 안부

 

인 새재에 다다르자 밑에서 불어올라오는 골바람이 내 몸을 휘돌고 지나가 시원했다. 새재에서 전망봉

 

으로 오르는 길섶에 찔레꽃 몇 송이가 눈인사를 해왔다. 꽃이야 장미처럼 화사하지는 않아도 돋친 가

 

시의 찌르는 위력은 장미를 뛰어넘기에 찔레로 불리는 것일 텐데 장사익님의 노랫말에는 찔레꽃의 날

 

카로움은 온데 간 데 없고 정감만 넘쳐흐르는 듯했다. 전망봉에서 철계단에 내려섰다가 다시 철계단을

 

올라 형제봉에 다다르자 도솔봉이 앞을 가려 철계단을 따라 전해지는 백운산의 보살핌도 서쪽 끝 초계

 

봉인 형제봉에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리봉-도솔봉-형제봉의 남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을

 

카메라에 담고 나서 북서쪽에 위치한 월출봉을 향해 형제봉을 출발했다. 형제봉에서 내려서 서쪽으로

 

조금 옮기자 정상에 있어야 할 삼각점이 능선 길옆에서 보였다. 삼각점을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마사치

 

아래에 차를 주차시켰다는 마주 오는 젊은 산객 한분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형제봉 출발 20

 

분이 다 되어 844m봉에 올라섰는데 이 봉우리에서 걷기 좋은 길은 끝났다.

 

 

 

 

 

13시5분 해발768m의 월출봉에 도착해 점심을 들었다. 호남정맥 종주 중 처음으로 풀 숲길을 만나 곳

 

은 844m봉을 지나서였다. 844m봉에서 내려선 안부가 억새와 관목의 가지가 무성해 이들을 헤치고 나

 

가면서 이미 여름이 시작됐음을 실감했다. 지난해 9월 한북금남정맥을 종주하며 음성을 지날 즈음 풀

 

숲 길을 헤쳐 나가느라 된 고생을 한 기억이 생생해 호남정맥을 종주하면서도 그에 버금가는 풀 숲길

 

을 만나리라 각오했는데 이번에 만난 풀숲 길은 그저 여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정도로 미미했다. 풀

 

숲 길을 빠져 나와 월출봉에 이르기까지 능선 길은 몇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고 바위 길도 지났으며

 

산 죽 길도 지났지만 전체적으로 별 어려움 없이 진행했다. 어서 빨리 월출봉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쉬지 않고 내달려 지도에 적힌 대로 1시간20분이 다 되어서 월출봉 바로 아래 임도사거리에 내려섰고

 

그 4분 후에 월출봉에 올랐다. 날 맑은 밤에는 중천에 뜨는 보름달이야 볼 수 있겠지만 나무에 시야가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봉우리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아무런 표지물도 없는 월출봉에서 20분을

 

쉰 후 남쪽으로 방향을 확 틀어 깃대봉으로 내달렸다.

 

 

 

 

 

14시18분 해발858미터의 깃대봉에 올라섰다. 월출봉에서 내려가다가 임도를 두 번 가로질러 참나무

 

들이 들어선 넓은 안부에 다다라서는 16시40분에 심원마을을 출발하는 버스를 놓칠까봐 있는 힘을 다

 

해 내달렸다. 안부에서 후다닥 참호 2곳이 있는 720m능선에 올라섰고 바람소리를 내며 편안한 능선

 

길을 빠르게 지났다. 833m봉 바로 아래서 잠시 숨을 고른 후 고바위 길을 단 번에 내달아 833m봉에

 

올라서자 “아빠랑 나랑 마루금 잇기” 표지기가 눈을 끌었다. 왼쪽으로 꺾어 아주 편안한 능선 길을 15

 

분간 더 걸어 깃대봉에 다다랐다. 월출봉 출발 52분 만에 도착해 지도에 나와 있는 시간보다 18분을 단

 

축했기에 버스시간은 더 이상 걱정되지 않았다. 햇빛이 들지 않는 스틸파이프 의자에는 다른 분이 앉

 

아 있어 깃대봉에서 조금 내려가서 남아 있는 포도를 마저 먹으며 8분을 쉬었다. 3개면 경계판이 세워

 

진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전망바위를 지났다.

 

 

 

 

 

15시24분 미사치로 내려가 정맥 종주를 마쳤다. 전망바위에서 내려가 다다른 능선 길을 얼마고 걷자

 

“등산로 아님”의 간판을 만나 직진을 멈추고 오른 쪽으로 내려갔다. 밑창이 얇은 등산화를 신고 이틀

 

연속 걸었더니 발바닥이 아파 왔다. 길은 넓었고 구릉을 몇 번 오르내리니 송전탑이 보이고 차 소리가

 

들려왔다. 송전탑과 헬기장을 차례로 지나 이번 종주구간의 끝 지점인 미사치고개로 내려섰다. 시간이

 

 넉넉해 나무의자에 앉아 15분가량 아무런 생각 없이 편안히 쉰 후 심원마을로 내려갔다.

 

 

 

 

 

14시10분 심원마을 입구정류장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끝냈다. 미사치에서 왼쪽으로 난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황전터널 공사현장을 지났는데 미사치고개 밑으로 내는 터널이어서 동물이동통로를 따로 내

 

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도룡뇽을 보존한다고 터널 뚫는 것을 목숨 걸고 반대한 한 스님 때문에 수많

 

은 추가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천성산 터널공사로부터 확인한 것은 정부가 줏대 없이 흔들리면 국민들

 

이 고달파진다는 것이다. 소위 시민단체들에 그들의 잘못으로 발생한 비용을 어떤 방법으로든 부담지

 

우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시민의 이름을 내걸고 반시민적인 일들을 얼마든지 저지를 수 있기에 세금을

 

내는 보통의 시민들도 두 눈을 부릅뜨고 시민단체의 비합리적인 소행들을 계속 감시해야 할 것이다. 

 

 

 

 

14시40분에 21-3번 버스를 타고 순천역으로 가서 18시발 기차를 탔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멧돼지를 그놈이라 부른 것은 잘못이었다. 폭음을 내며 터널을 뚫는 을 전혀 하지

 

않는 멧돼지에 괴성을 좀 냈기로서니 그놈으로 표현한 것은 좀 과했다는 생각이다. 일본의 물 연구가

 

에모토 마사루는 어떠한 마음으로 물을 대하느냐에 따라 물의 결정체의 모습이 변한다 했다. 그래서

 

그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고 했다. 무생물인 물이 이럴진대 생명을 갖고 있는 멧돼지는 내가 어떤 마음

 

을 갖고 대하는 가를 더 잘 알 것이다. 욕을 듣고도 좋게 대할 짐승이 과연 있을까 싶은 것은 만물의 영

 

장인 사람도 그리하지 않아서다. 소리싸움은 이겼지만 마음 씀의 싸움에서 아무래도 멧돼지에 진 것

 

같아 부끄럽다. 

 

 

 

 

 

 

환주기5:호남정맥 3구간(미사치-노고치)

 

*산행일시:2007. 6. 26일/ 7시-19시32분(12시간32분)

 

*소재지  :전남 순천

 

*산높이  :갓거리봉688m, 농암산410m, 바랑산619m, 문유산688m

 

*산행코스:심원마을-미사치-갓거리봉-마당재-죽정치-농암산-송치재-바랑산-문유산-노고치

 

 

 

 

이제는 밤차를 타고 기차 여행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다. 열차 안에서 잠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지새기가 일쑤였는데 이제는 그럭저럭 두 시간 가까이 눈을 붙일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막

 

차로 밤을 달려 이른 새벽 순천역에 도착한 것이 이번이 세 번째로, 횟수가 더해질수록 열차 안에서 눈

 

붙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은 변화하는 환경에 몸이 잘 적응해나가는 덕분이다. 그래서 나는 내

 

몸 동아리에 무한히 고마워하고 있다. 만약 내 몸의 어느 일부라도 고장이 난다면 매주 산에 오르는 것

 

이 불가능하게 되고 그리되면 그렇지 않아도 고민스러운 체중이 지금보다 더 불어나 무릎을 짓누르고

 

산행을 못할 상황으로 내닫게 되어 악순환의 늪에 빠져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 혼자서 호남정맥을 종주하는 데도 많이 익숙해졌다. 정맥의 산줄기를 웬만큼 밟고 나면 남아 있

 

는 마루금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미 종주를 마친 5정맥은 당일로 다녀올 만큼 집에서 멀지

 

않아 마음이 편안해서인지 중간 정도 진행하면 지도와 산행기만으로도 갈 길이 보였다. 그러나 호남정

 

맥은 그렇지 못했다. 밤에 출발해 그 이튿날 아침에야 산행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멀리 떨어져 어떤

 

작은 실수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감이 머리를 짓누르곤 했다. 그런데 이러한 호남정맥도 종주횟수

 

가 더해지자 길이 보이는 듯했다. 그러기에 이번에는 미사치-노고치 구간을 12시간 넘게 걸으면서 단

 

한 번도 알바를 하지 않았다. 호남정맥이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분명한 징표여서 기쁘다. 백두

 

대간의 영취산에 다다르기까지 순조롭게 정맥종주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밤차를 타고서도 숙면을 취할

 

수 있어야하고 또 호남정맥이 혼자 오르는 나를 내치지 않아야 하는데 어제 산행에서 그런 조짐을 보

 

아 마음이 놓였다.

 

 

 

 

아침7시 심원마을에서 하루 산행을 시작했다. 자정 3분전에 천안역을 출발하는 전라선 열차에 몸을 실

 

고 잠을 청해봤지만,  건너편 자리의 남자 한명이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아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도 서대전을 지나 남원에 이르기 까지 두 시간 가까이 눈을 붙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새벽 4시가

 

다 되어 순천역에 도착했고 6시10분 경 순천역에서 53번 버스에 올라 심원마을로 향했다. 이름그대로

 

깊고도 먼 산골의 심원마을에 도착해 시골여름의 건강한 아침을 보았다. 아스팔트 찻길을 따라 오르다

 

가 황전터널 공사장에서 오른 쪽의 산길로 들어선 후 대나무 숲을 지나 지난번에 하산한 미사치고개

 

마루에 다다랐다.

 

 

 

 

 

7시37분 미사치고개에서 정맥 종주를 시작했다. 이번 구간의 끝 지점인 노고치까지 12시간은 족히 걸

 

릴 것 같아 구름이 잔뜩 끼고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에 초반부터 진땀 뺄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서 갓거

 

리봉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시멘트계단 길이 끝나자 경사가 급해졌고 전날 내린 비로 흙길이

 

미끄러워 산 오름이 생각보다 더뎠다. 풀숲을 지나는 동안 바지 단이 젖어들고 가끔 거미줄도 만나 어

 

느새 여름 한 가운데 서 있음을 체감했다. 긴 옷에 감춰진 팔다리가 풀숲의 가시들에 여러 번 긁혀 집

 

에 돌아와서도 가려움증과 싸워야 하는 여름산행이 벌써 시작됐다. 반시간을 걸어 전망바위에 올라섰

 

어도 산자락에 안개가 자욱해 제대로 조망되지 못했고 바람 한 점 불지 않았다.

 

 

 

8시50분 해발688m의 갓거리봉에 올라섰다. 두 곳의 전망바위를 지나 올라선 650m봉에서 십 수분을

 

걸어 708m봉에 이르기까지 안개가 자욱하고 숲이 우거져 전설의 고향 같은 스산한 분위기가 느껴졌

 

다. 딱 벌어진 참나무가 서있는 708m봉에서 갓거리봉으로 가는 길은 땅바닥에 낙엽이 쌓여 미끄럽지

 

않았고 높이 차가 별로 안 나는 구릉만 몇 개 오르내려 걷기가 편했다.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진 갓거리

 

봉에는 순천시에서 세운 화강암의 표지석이 심원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왼쪽 아래가 암벽 면인 바

 

위 상단에 걸터앉아 잠시 쉬노라니 솔가지에 다닥다닥 달려 있는 연초록의 솔방울이 눈을 끌었는데 마

 

치 풋과일처럼 싱싱했다. 휴식을 끝내고 갓거리봉을 출발해 조금 후 밧줄을 잡고 바위를 내려선 후 풀

 

숲이 우거진 공터를 지났다. 헬기장에 내려앉은 호랑나비와 어울려 날개 짓을 해대는 노란 나비가 무

 

척 커보였다. 온 산을 하얗게 밝혔던 산딸나무 꽃들이 가지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보고 화사함 뒤에 감춰진 발가벗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씁쓰레했다.

 

 

 

 

 

10시40분 잔 자갈이 고르게 깔린 비포장도로의 죽정치로 내려섰다. 헬기장에서 마당재로 내려서는 길

 

가까이에는 주홍 꽃의 산나리와 보라색이 곱디고운 엉겅퀴가 이 산속의 여름 꽃으로 자리 잡고 있었

 

다. 내려서는 길도 편했고 재잘대는 산새들의 노래 소리도 듣기에 좋았다. 갓거리봉 출발 43분 후에 다

 

다른 마당재는 잡목이 무성한 십자안부로 형형색색의 표지기가 많이 걸려 있어 성황당을 보는 것 같았

 

다. 마당재에서 철쭉나무가 터널을 만든 시원한 길을 걸어 무명봉에 오르고 구릉 몇 개를 더 오르내려

 

풀숲 속에 삼각점이 매설된 해발508m의 갈매봉에 올랐다. 갈매봉에서 죽정치로 내려서면서 방향을

 

점검한 결과 지도에는 남서방향으로 나와 있는데 나는 북쪽으로 향하고 있어 깜짝 놀라 멈춰 섰다. 여

 

차하면 갈매봉으로 다시 오를 생각으로 여기저기를 살펴본 결과 북진 길은 바로 앞에서 왼쪽으로 확

 

꺾여 지도에 나와 있는 남서방향으로 진행됨을 확인했다. 죽정치의 넓은 고개 길을 건너자마자 나무

 

밑에서 준비해간 어묵을 꺼내 먹으며 16분을 쉰 후 농암산으로 향했다. 가파른 오름길이 거의 끝나는

 

능선 길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제 길로 들어섰다. 비교적 평평한 길을 걸어 11시21분에 477봉에 도착

 

해 다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12시17분 해발410m의 농암산을 올랐다. 477m봉에서 잠시 가파르게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선 376m봉

 

에서 편백나무 숲길을 따라 조금 걸어 오르자 거의 평지 같은 밋밋한 숲 속 길이 계속되어 임도가 나오

 

는 장자굴재를 지났어도 안부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길 왼쪽이 벌목지인 임도를 따라 잠시 오

 

른쪽으로 진행하다가 숲길로 들어서 농암산으로 올랐다. 웬만큼 오르자 봉분의 떼가 떨어져 나가 흙이

 

그대로 드러난 커다란 묘지가 보였다. 477m봉 출발 50분 후에 올라선 농암산에는 나뭇가지에 걸어놓

 

은 스텐 안내판이 표지석을 가름했고 삼각점이 서있어 위치확인이 쉬웠다. 580m봉으로 향하는 능선

 

길에 우뚝 서 있는 불그스름한 큰 바위는 한 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나있어 눈이 갔는데 화강암이 아니

 

어서 궁금했다. 550m봉에서 570m봉으로 난 능선 길이 편안해 빠른 속도로 옮기는 중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배낭만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있어 섬뜩했다. 농암산 출발 1시간 만에 오른 쪽으로 병풍산

 

이 갈리는 돌기둥이 세워진 봉우리삼거리에 다다랐다.

 

 

 

 

 

14시3분 한국전쟁 때 소련군이 넘어 온 것으로 잘 못 알려져 한 때 쏘련재로 불렸다는 송치재에 내려

 

섰다. 병풍산 갈림길에서 왼쪽 가파른 길로 내려섰다. 얼마 후 임도에서 만난 흑염소 세 마리가 소나무

 

밑에서 꼼짝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들은 이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저 과객일 뿐 이 산에서 풀을

 

뜯어먹고 사는 자신들이 이 산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싶었다. 주황색 지붕의 건물을

 

지나 오래된 아스팔트길로 내려섰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산길로 들어서고 다시 나와 아스팔트길

 

을 걷기를 몇 번이고 반복해 오른쪽으로 산돌수양관 교회건물이 들어서 있는 17번 국도의 고개 마루

 

송치재에 다다랐다. 순수한 우리말인 솔재라고 부르면 더 정감 있을 송치재에서 샌드위치로 꺼내 먹으

 

며 20분 넘게 푹 쉬었다.

 

 

 

  15시39분 해발619m의 바랑산을 올랐다. 송치재에서 밧줄을 쳐놓은 된비알 길을 걸어 벙커와 묘지가

 

있는 구릉에 올라서기까지 20분 동안 비지땀을 흘렸는데 구릉에서 내려서서 벌목지인 안부를 지나는

 

동안에도 머리위로  햇볕이 내리쬐어 숨이 막히는 듯했다. 송치재 출발 1시간 후에 지난 너럭바위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모처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았다. 이번 산행에서 제일 힘들었던 곳은 이곳에

 

서 바랑산까지 오름 길이다. 경사가 그리 급한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 동안 많이 지친데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루금에서 조금 떨어진 바랑산의 정수리에 올라서자 정작 산 오름에 걸린 시간

 

은 반시간 남짓한데 한 시간이 훨씬 더 걸린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텅 빈 산불감시초소와 벗해 왔을

 

표지석이 정상에 세워진 바랑산에서 남서쪽으로 막힘없이 펼쳐지는 전망이 뛰어나 보였다. 아직도 4

 

시간을 더 걸어야 노고치에 이르겠기에 여기서 마냥 쉬어갈 형편이 안됐다. 왼쪽 길로 얼마만큼 내려

 

선 후로는 이번 산행에서 가장 편안한 평지 같은 길이 펼쳐졌다. 바랑산 출발 35분 후에 월내-노고치

 

를 잇는 넓은 자갈길로 내려서 다시 쉬었다.

 

 

 

 

 

18시9분 해발 688m의 문유산을 들렀다. 바랑산에서 내려선 임도에서 두 다리를 쭉 뻗고 5분을 쉰 것

 

은 문유산을 오르는 마지막 힘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16시24분에 임도를 출발해 이 악물고 직등 길을

 

올랐는데 13분 만에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519m봉을 올라섰다. 519m봉에서 잠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천천히 다시 올라 죽은 소나무가 서있는 590봉에 다다른 시각이 17시7분이었습니다. 590m봉에서

 

580m봉으로 옮기면서 올 들어 처음으로 산딸기 몇 개를 따먹었다. 바랑산에서 내려와 쉬었던 자갈길

 

의 비포장도로가 이제껏 지나온 능선 길 아래로 산허리를 휘돌아 580m봉 북쪽 아래로 지나갔다.

 

580m봉에서 이 도로로 내려서 10분을 쉬었다. 벌재-저수령 구간을 지나는 대간 길 옥녀봉의 광활한

 

둥굴레 군락지에 버금 갈 대규모 군락지를 지나며 산 능선을 가득 덮은 진초록의 둥굴래 밭에 새삼 놀

 

랐다. 바랑산은 마루금에서 10m도 안 떨어졌지만 문유산은 조금 멀었다. 둥굴레 군락지를 지나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6-7분을 뛰다시피 빨리 걸어 문유산에 오르자 한 낮에 맹위를 떨쳤

 

던 태양이 서쪽으로 몸을 숨기는 중이었고 그동안 숨죽였던 골바람이 되살아나 모처럼 시원했다. 정상

 

석과 삼각점이 세워진 암봉의 문유산에 오르자 앞이 탁 트여 지나온 길이 잘 조망되어 이 산에 들르기

 

를 잘 했다 싶었는데 남서쪽 아래로 시꺼멓게 불에 타 죽은 소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어 안타까웠다.

 

19시32분 노고치고개에서 정맥종주를 끝냈다. 문유산에서 삼거리로 되돌아와 660m봉으로 직진했습

 

니다. 축대를 높게 쌓은 대규모의 묘지를 지났는데 봉분의 잔디가 떨어져나가 보기에 흉했다. 660m봉

 

에 올라 직진 길을 버리고 오른 쪽으로 확 꺾인 길로 내려섰다. 나뭇가지가 하늘을 가려 밀림 속을 지

 

나는 듯 음습하고 스산해 서둘러 이 숲을  빠져나갔다. 기능성 팬티인데도 너무 오래 걸어서인지 사타

 

구니가 쓸려 어기적거리며 걷느라 불편했다.  마침 비를 몰아 올 듯이 바람이 세게 불어 너럭바위에 올

 

라가 팬티를 무릎 아래로 내리고 이 바람을 맞았다. 19시가 막 지나 이번 구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점터

 

봉에 올라서자 어둡기 전에 노고치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아 비로소 안심됐다. 얼마고 내려가서 오른

 

쪽 사면이 과수원으로 개발된 능선에 다다르자 가는 철사 줄이 능선을 따라 쳐져 있었다. 이 줄을 따라

 

능선 길을 걸어 임도로 내려섰다.  임도 옆의 농익은 산딸기들을 싫도록 따 먹으며 산딸기 가시에 긁힌

 

살갗을 달랬다. 노고치에 내려서서 대충 옷을 갈아입고 왼쪽의 고산 정류장으로 옮겨 20시30분에 순

 

천행 시내버스에 올랐다. 순천 시내로 돌아와 맥주 한 캔을 사들어 12시간의 긴긴 종주산행을 무사히

 

마쳤음을 자축하고 나자 사타구니가 쓸려 걷기가 불편하고 바테리가 다 나가 사진 찍기가 불가능한 상

 

황에서 10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노고치-조계산-굴목재 구간을 연이어 할 것인가가 고민됐다.

 

하룻밤을 자고나서도 사타구니가 쓰라린 것이 낫지 않는다면 장시간 종주산행은 무리이기에 순천만

 

탐방으로 바꾸기로 마음먹고 인근 찜질방으로 옮겼다.

 

 

 

 

 

어제 하루 호남정맥이 나를 온전하게 받아들여 고마웠다. 미사치를 출발해 송치재에서 구간종주를 마

 

치기는 너무 짧고, 12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노고치까지는 무리여서 구간 끊기가 난망했다.

 

마침 요즈음이 해가 가장 긴 때라서 서두르면 어둡기 전에 충분히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아 노고치까지

 

강행했다. 중간에 길을 잃거나 큰 비가 쏟아져 늦어진다면 낭패다 싶어 산행 이 끝날 때까지 내내 가슴

 

을 졸였는데 호남정맥은 알바도 시키지 않았고 제우스신을 달래어 비를 뿌리지 않도록 해주었다. 또

 

문유산을 지나서는 내 몸에 남아 있는 마지막 에너지를 모두 두 다리에 모아주어 바람을 일으키며 노

 

고치로 내달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토록 너그러운 호남정맥이 고맙고 또 고맙기에 다시 노고치를

 

찾아와 끝까지 마루금을 이어갈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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