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5대강둘레산줄기 환종주기/섬진강 둘레산줄기

2.조계산권 환주기(6-9)

시인마뇽 2010. 9. 10. 09:00

 

 

환주기6:호남정맥 4구간(노고치-조계산)

 

*산행일시:2008. 7. 8일/ 11시17분-19시7분(7시간50분)

 

*소재지  :전남 순천/곡성

 

*산높이  :조계산884m/오성산606m/유치산530m

 

*산행코스:노고치-닭봉-유치산-오성산-두월육교-조계산-선암사-선암사주차장

 

 

 

 

총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탄알 그 자체가 아니고 속도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혼자서 호남정맥을

 

종주해온 내가 백두대간을 같이 종주한 산악회원들을 만나보고 싶어 이 산악회 특유의 빠른 산행속도

 

를 따라잡는 것이 엄청 고되더라도 감수하리라 마음먹고 종주산행에 참여했다. 내가 갖고 있는 안내책

 

자에 10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는 노고치-조계사-굴목재 구간을 이 산악회에서 목표한 7시간

 

안에 주파하고자 죽어라고 뛰었으나 결국에는 굴목재 조금 못 미친 조계산의 장군봉에서 구간종주를

 

마치고 선암사로 하산했는데 8시간이 다 걸렸다. 이번 산행으로 힘들었던 것은 긴 산행코스가 아니고

 

빠른 속도 때문이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전의 미사치-노고치 구간의 종주거리가 이번

 

구간보다 훨씬 길었어도 내게 맞는 속도로 12시간에 걸쳐 산행한 결과 그다지 고되지 않았다.

 

 

 

 

 

술은 입으로 들어오고 님은 눈으로 들어온다는 에이츠의 명시 “술 노래(Drinking Song)"를 입버릇처

 

럼 되뇌는 내가 3개월이 지나도록 한 번도 이 산악회와 함께 산행하지 못해 이러다가는 회원들의 눈에

 

서 멀어져 영영 잊혀가는 것이 아닌 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한대가 넘쳐 봉고차 한대가 따라가야

 

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함께 산행 길에 나섰지만 인사를 나눌만한 친근한 분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구

 

면의 몇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빈자리를 찾아 뒷자리에 앉았는데 옆자리의 한 분도 얼굴을 전

 

혀 모르는 분이었다. 이분과 인사를 나눈 후 산경표와 산맥의 차이를 길게 설명해 드렸는데 처음 뵌 분

 

에 주제넘게 시간을 많이 뺐었다는 생각이 들어 죄송했다. 잠실 출발 5시간이 거의 다되어 들머리인

 

노고치에서 하차했다.

 

 

 

 

 

오전 11시17분 노고치고개에서 왼쪽으로 올라 하루 산행을 시작했다. 충전기에 꽂아 놓은 바테리를

 

두고 와 들머리인 노고치를 카메라에 담지 못했지만 사진 찍는 시간이 절약되어 차라리 잘 됐다 했다.

 

다 같이 기념사진을 한방 찍은 후 잽싸게 왼쪽의 시멘트축대를 올라 산속으로 질주하는 일행들과 보조

 

를 맞춘 것은 잠간뿐이고 이내 후미로 쳐졌다. 10분도 채 안 걸어 삼각점이 세워진 413.2m봉을 지났

 

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 오름을 계속해 620m능선에 오르자 비교적 길이 평탄해졌지만 이 시간도 길

 

않았고 노고치 출발 40분 만에 오른 634m봉에서 북쪽으로 꺾어 안부로 내려갔다. 어느새 대오가

 

정해져 후미대장은 나보다 몇 년 연배이신 노익장의 한 분이 맡으셨고 호남정맥 종주 팀의 영원한 후

 

미라는 부부 두 분과 젊은 여성 한분이 그 뒤를 따랐는데 네 분들 모두 백두대간을 함께 오르내린 분들

 

이어서 반가웠다.

 

 

 

 

 

12시32분 헬기장이 들어선 해발 744m의 닭봉에 올랐다. 634m봉에서 내려서 좌측사면이 벌목지여서

 

전망이 좋은 능선 길을 걸으며 배틀재를 지났는데 정신없이 걷느라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지 못했다.

 

산비탈에 일궈놓은 다랑 밭은 녹차재배지라는데 초라해 보였다. 얼마 후 커다란 암벽을 왼쪽의 너덜과

 

산죽 길로 우회해 능선으로 올라서자 모처럼 골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왔다. 능선을 올라 헬기장 바로

 

밑 그늘에서 쉬고 있는 후미 팀 네 분을 만나 안도했다. 털썩 주저앉아 쉬고 갈 형편이 못되어 선채로

 

목을 축인 후 바로 헬기장을 출발했다. 앞서간 네 분을 따라잡기를 포기하고 나자 혹시나 길을 잘 못

 

들지 않을까 염려되어 배낭에 쳐 넣은 산행기와 지형도를 꺼내들었다. 잡목 숲을 지나 헬기장 출발 10

 

분 만에 다다른 거암은 뱃바위가 틀림없는데 유치산 정상석이 서 있어 어리둥절했다. 조계산 너머 배

 

 

바위와 이곳의 뱃바위의 이름들이 이 산이 바다가 융기해 만들어졌음을 입증하는 좋은 자료라고 생각

 

하는 것은 외항의 망덕산에서 이 봉우리에 이르기까지 능선 길에 널려있는 하얀 조개껍질을 꽤 여러

 

곳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13시31분 해발530m의 유치산을 올랐다. 뱃봉에서 로프 줄을 쳐놓은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걸어 내

 

려가 임도에 다다랐다. 바로 임도에서 숲 속의 산길로 들어서 모처럼 편안한 길을 걸었다. 13시를 막

 

넘어 도착한 닭재 바로 앞 구릉에서 후미 팀과 함께 점심을 들었다. 유일하게 엉덩이를 땅에 붙이고 쉴

 

수 있는 점심시간은 고작 13분이었지만 졸고인 호남정맥 종주기에 댓글을 달아주시는 고마운 한분과

 

인사를 나누어 반가웠다. 13시15분에 선두팀이 점심을 들겠다는 오성산으로 출발했다. 이내 통나무의

 

자와 이정표가 있는 십자안부인 닭재를 지났다. 닭재에서 15분을 걸어올라 삼각점이 세워진 유치산 정

 

상에 다다랐는데 잡초가 무성했고 정작 이 봉우리에 있어야 할 정상석을 뱃바위에 세워놓아 산봉우리

 

가 허전했다. 유치산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 길을 따라 한망이재로 내려섰다가 474m봉

 

에 올라 일행 한분이 건네준 방울토마토를 먹으며 잠시 숨을 돌렸다. 474m봉에서 391m봉으로 옮기는

 

중 좌측 사면의 벌목지여서 전망도 좋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라오는 능선 길을 지났다. 유치산 출발

 

1시간이 다되어 깊숙한 안부인 두모재에 도착했다.

 

 

 

 

15시15분 해발 606m의 오성산을 올랐다. 두모재에서 한 걸음에 오상산을 오르기는 경사도 급하고 짧

 

은 길이 아니어서 선두대장이 일러준 대로  반시간 쯤 걸어올라 전망바위에서 5분을 쉬었다. 땅 바닥

 

을 살짝 덮은 진초록의 둥굴레가 제법 넓게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이 군락지를 지나는 얼마 동안은 둥굴

 

레의 싱그러움에 피로감이 가시는 듯 했다. 명산 팀과 종주 팀의 무전기들이 거의 동시에 작동되자 주

 

고받는 여러 교신소리로 쥐 죽은 듯이 조용했던 산속이 시끄러웠다. 이제껏 걸어온 길을 조망한 후 준

 

비해간 쥬스로 목을 축이자 다시 기운이 샘솟았다. 오성산을 오르는 중 능선 길에서 만난, 아침9시반

 

경에 굴목재를 출발했다는 광주 분이 정상이 얼마 안 남았다고 일러주어 산죽사이로 난 된비알 길을

 

쉬지 않고 올랐는데 반시간이 거의 다 걸려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진 정상에 도착했다. 정남쪽으로 조계

 

산이 보였고 무등산과 지리산의 정상봉은 보이지 않았다. 삼각점과 표지석이 세워진 오성산 정상에서

 

동쪽 아래에 진달래군락지가 자리하고 있어 봄이면 그 화사함이 장관이라 한다. 철지난 진달래를 찾아

 

보는 것보다 제시간에 선암사에 닿는 것이 급선무여서 남쪽으로 난 급경사 길을 따라 내려가 접치로

 

내달았다. 접치를 가로지르는 두월육교에서 산악회장으로부터 식수를 공급받은 후 15시48분에 접치

 

를 출발했다.

 

 

 

 

17시48분 해발 884m의 조계산 정상봉인 장군봉에 올랐다. 산악회에서 배포한 지형도에 접치에서 1시

 

간 10분 걸린다고 나와 있는 정상을 꼭 2시간 만에 올라 50분이 더 걸렸고 내가 갖고 간 안내도보다는

 

20분이 덜 걸렸다. 접치에서  장박몬당까지 1시간40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랐던 것은 정상까지

 

1시간 10분 소요된다는 지도를 믿어서였다. 반시간을 더 걸었어도 정상에는 근접도 못하고 겨우 능선

 

삼거리에 도착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접치에서 절개면을 오르는 길에 철계단이 놓여 있어 오름

 

길이 편했다. 절개면을 올라선 다음 넓은 길옆의 송전탑을 지나 나무 숲길로 들어서 이번 산행의 마지

 

막 깔딱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작동이 안 되어 조계산의 전설을 적어놓은 인오님의 전설

 

안내판의 내용을 옮겨가지 못해 아쉬웠다. “민재화장터이야기”, “장박골두꺼비처녀이야기”와 “송광사

 

해우소와 화엄사가마솥이야기”를 적은 전설안내팻말을 차례로 지나 접치 출발 1시간 20분이 지났어도

 

장군봉-연산봉 능선길이 나타나지 않았다. 접치를 4-5분 먼저 출발한 후미 팀 4분이 어디쯤 가고 있을

 

까 궁금해 무전을 때릴까 하다가 그만 두고 다시 20분을 걸어 장박몬당의 능선삼거리에 다다랐다. 여

 

기서부터는 지난 3월에 한번 걸었던 길이고 쉬지 않고 오르느라 많이 지쳐 바닥에 퍼져 앉아 5-6분을

 

쉬었다.

 

 

 

 

 

  “대저 생명이란 무엇입니까?  중력에 대한 저항입니다.”  1시간 40분을 쉬지 않고 오르면서 친구 이

 

규성 군의 산행기 한 구절을 떠올렸다. 중력에 대한 저항이 생명행위라면 나는 이 산을 오르며 치열한

 

삶을 산 것이다. 단 한 번도 중력의 방향과 똑 같은 방향으로 내려선 일이 없었기에 더 치열했다는 생

 

각이다. 마지막 한 방울의 땀을 짜내 산을 오르면서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뿌리를 내리고 한자리에서

 

살고 있는 나무들이 한 없이 부러웠다. 저들이 한곳에 저렇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것도 중력에 대해 치

 

열하게 저항하며 하늘로 치솟는 생명행위를 수없이 반복해왔기에 가능했겠다 싶어지자 친구의 생명에

 

대한 독특한 정의에 새삼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런 점에서 의식을 잃고 겨우 숨만 쉬는 환자들을 식물

 

인간이라 부르는 것은 아주 잘못된 표현이다. 하늘 높이 줄기를 올리며 가지를 뻗는 나무들의 중력에

 

대한 저항을 간과한 경박한 표현으로 나무는 하느님이 만든다는 미국의 시인 조이스킬머의 감탄에도

 

반하는 것이다. 나무들도 중력에 저항하며 치열하게 생명행위를 계속해왔기에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와 뿌리에서 끌어올린 물로 하늘로부터 받은 햇빛의 도움으로 포도당과 산소를 만드는 광합성이라는

 

생명행위가 가능한 것이다. 중력에 대한 순응이 생명행위라면 사람들은 벌써 땅속이나  바다 속으로

 

다 들어가 지구상에서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무거운 돌을 올렸다가 떨어지면 다시 올리는 시지푸스

 

신화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까뮤가 진단한 부조리(Absurdity) 때문만은 아니고 중력에 대한 끊임없는

 

저항이 처절하게 아름다워서다.

 

 

 

 

 

장박몬당의 표지판이 세워진 능선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장군봉으로 향했다. 지난 3월 하늘을 덮

 

었던 광란의 눈발 대신에 이번에는 구름이 하늘을 덮어 숲 속을 지날 때에는 산위에 내려앉기 시작한

 

어둠이 빨리 감지됐다. 돌탑이 세워진 정상에 다다라 굴목재로 내려갈까 아니면 보다 코스가 짧은 선

 

암사로 바로 내려갈까 잠시 고민했다. 선두대장과 후미대장 분에 무전을 보냈어도 응답이 없어 다음에

 

좀 힘들더라도 산행을 마치고 기다리는 분들에 송구스러워 짧은 길을 택했다.

 

 

 

 

 

19시7분 선암사주차장에 도착해 종주산행을 마쳤다. 장군봉에서 왼쪽 길로 내려가 선암사로 하산했

 

다. 다음 구간 종주 시에 다시 오를 길이 기에 주마간산 격으로 흘깃 보며 정신없이 내달렸다. 샘터와

 

돌탑을 거쳐 선암사에 내려선 시각은 18시40분으로 2.7km의 급경사 내림 길을 47분 만에 주파한 셈이

 

다. 지난 3월에 둘러본 선암사를 그대로 지나쳐 얻은 시간은 선암천에서 얼굴을 닦고 상의를 갈아입는

 

데 썼다. 선암사주차장에 도착하자 먼저 내려오신 분들이 나를 반겼다.

 

 

 

 

 

B코스라도 해냈다는 뿌듯함과 이 산악회와는 종주산행을 같이 하기는 무리임을 확인한 씁쓸함이 교차

 

됐다. 앞으로 나의 산행을 막는 것은 먼 거리가 아닌 빠른 속도에 있음을 확인했기에 무릎을 온건히 보

 

존하며 오래오래 산행하기위해서는 시간과 비용이 더 들더라도 혼자서 내 몸에 맞춰 천천히 산행하는

 

것이 맞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조계산 정상을 다시 올라 정맥 길을 이어가야 한다면 다음에는

 

종주구간을 짧게 잡고 송광사에서 조계산을 오르며 바테리 문제로 그대로 지나친 인오님의 전설이야

 

기를 담아볼까 궁리중이다.

 

 

 

 

귀경 길 버스 안에서 옆자리 분에 영화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이창동님이 감독하고 전도연/송강호 두

 

배우가 열연한 영화 “밀양(Secret Sunshine)"은 구원의 빛이 어떠해야하는 가를 보여주는 작품이었

 

다. 유괴범에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가 기독교에 귀의, 돈독한 신자가 되어 유괴범을 용서하고자 교도

 

소에 찾아갔다가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죄를 용서받았다는 유괴범의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당사자인

 

자신이 아직 용서를 안 한 범인을 하느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는 가하고 분노하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

 

인데 망월동 묘지에 자식을 묻은 광주 어머니들의 분노를 그린 것으로 알려진 작가 이청준의 ”벌레이

 

야기“가 뼈대가 되었다 한다. 병원에서 퇴원한 어머니에 은밀한 빛이 되어준 것은 하느님이 아니고 항

 

상 곁을 같이하고자 헌신해온 자동차정비소 아저씨일수 있음을 암시하는 끝부분의 장면들이 작은 소

 

읍의 지명인 고유명사 “밀양”을 구원의 빛을 의미하는 보통명사 "Secret Sunshine"으로 바꿔놓지 않

 

았나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하늘에 저항해 땅에서 빛을 만나는 어머니의 절규는 중력에

 

반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 그 후의 어머니 소식이 더 궁금해졌다. 작가도 감독도 모두 어머니의 그 후

 

삶에는 두 손을 놓고 있기에 나라도 이어서 글을 써볼까 하는 쓸데없는 욕심이 생겼다.

 

 

 

 

 

 

 

 

 

 

 

환주기7:호남정맥 5구간(조계산-석거리재)

 

*산행일시:2007. 7. 21일/ 6시40분-17시47분(11시간7분)

 

*소재지  :전남순천/보성

 

*산높이  :조계산884m/고동산709m/백이산584m

 

*산행코스:선암사주차장-조계산-고동산-빈계재-백이산-석거리재

 

 

 

 

 

혼자서 종주산행에 나선지 여러 해가 지났건만 아직도 멧돼지와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지 않아 안타깝

 

다. 호랑이가 사라진 이래 최고의 맹수로 군림하고 있는 멧돼지는 혼자서 정맥을 종주하는 산 꾼들에

 

는 위협적인 존재임에 틀림없다. 먹이사슬에서 사람이 최고 정점에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문명의 이기 덕분이고, 호신용으로 쓸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 1m가 조금 넘는

 

스틱 하나만을 믿고 산 속에서 멧돼지와 한판 붙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멧돼지와 서로 해치지

 

않고 도와가며 지내자고 친선조약을 맺어 지켜나가는 것이 상책이고, 아예 멧돼지가 나타날 만한 길을

 

비켜가 산속에서 조우하지 않는 것이 중책이며, 어쩔 수 없이 만나서 피할 수 없다면 기죽지 않고 한판

 

붙어보는 것이 하책이다. 마루금을 이어가야하는 종주 꾼들은 멧돼지가 다니는 길이 정맥 길이라면 달

 

리 피해서 다른 길로 갈 수는 없기에 중책을 택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한판 붙어보는 하책은 안 된다.

 

그러기에 상대가 도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멧돼지라 하더라도 진정을 알려주어 어떻게 친선조약을 맺

 

고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을까 하고 상책을 궁리하는 것이다.

 

 

 

 

 

말이 좋아 친선조약이지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멧돼지가 무슨 수로 조약을 맺을 수 있을 까 싶

 

었는데 얼마 전 멧돼지에 먹이를 주며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어느 산 속의 노부부를 텔레비전에서 보

 

고나서 짐승과의 대화에는 정성이 깃 들인 묵언의 대화가 더 유용함을 알았다. 그런 후로는 혼자서 산

 

에 들면 멧돼지를 돈공으로 부르며 오늘 하루 서로 불편하게 하지 말고 가까이 지내자고 마음속으로

 

비는 일을 빼놓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아직도 멧돼지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데 있다. 저 포악한

 

멧돼지가 내 진정을 정말 헤아릴 수 있을까 설사 그리하고 싶어도 언어가 다른데 알 수 있을 까 의심하

 

면서 나의 항심이 깨진다. 멧돼지가 분탕질을 한 흔적을 보면 스틱으로 돌을 치고 헛기침을 하며 멧돼

 

지에 내가 지나감을 알려주는데 이 스틱소리가 상당히 멧돼지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가보다. 그래서

 

대부분의 멧돼지는 이 소리를 피해 자리를 옮긴다. 스틱으로 효과를 본 나는 언제부터인가 멧돼지와

 

가까이 지내고자 하는 노력보다는 손쉬운 스틱소리로 멧돼지를 내쫓는데 더 열심이다.

 

 

 

 

 

멧돼지 한 마리가 이 스틱소리에 대담하게 반기를 들었다. 조계산의 큰굴목재를 출발한지 반시간이 조

 

금 넘어 산불감시초소를 막 지났다.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이 역력해 감시초소 4-50m전방에서부터 스

 

틱소리를 내며 어서 빨리 사라지라고 혼자서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정도로

 

사람소리를 내면 웬만한 멧돼지들은 자리를 옮기지만 어제 내가 간과한 것은 내리는 비였다. 멧돼지도

 

털 달린 짐승이라 비가 퍼붓는 날에는 한 곳에서 비를 피해 움츠리고 있는데 이런 날 자리를 옮겨달라

 

고 스틱을 쳐대면 나라도 짜증이 날 것이다. 어디엔가 숨어 있는 멧돼지가 쩌렁쩌렁하게 산을 울리며

 

더 이상 다가서지 말라고 경고음을 보냈다. 지난 달 한재를 지날 때 멧돼지와의 소리싸움에서 이긴 적

 

이 있어 이번에도 더 큰 소리를 내며 밀어붙일 양으로 앞으로 나갔더니 멧돼지의 굉음이 산을 흔들어

 

놓았다. 절대로 물러나지 않겠다는 멧돼지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하고 나서 어쩌겠는가? 내가 물러설

 

수밖에. 큰 소리로 3-4합을 더 겨뤄본 후 안 되겠다 싶어 먼저 꼬리를 내리고 감시초소로 물러났다. 뒤

 

늦게나마 다시 마음속으로 돈공을 불러내어 화해할 것을 얘기하며 7-8분을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전

 

진했다. 나의 화해를 받아들였는지 돈공은 어디론가 자리를 옮겼고 나는 두려움 속에 서둘러 안부로

 

내려섰다. 멧돼지들이 여기저기에 변을 보는 것은 여기서부터는 자기 영역이니 들어서지 말라는 경고

 

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잘 알면서도 달리 피해갈 방도가 없어 난감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영역을 침범

 

하는 것이 아니고 마루금을 잇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것이니 양해해 달라고 돈공에 내 진심을

 

전하고자 애를 쓰지 않았다. 끝까지 길을 내주지 않을 것 같은 멧돼지가 결국 길을 내주었다. 내가 진

 

정 저 멧돼지를 포함한 모든 산식구와 한 일원이 될 각오만 한다면 돈공 들과도 어느 정도 대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6시40분 선암사주차장을 출발했다. 밤차 타고 내려와 순천역사에서 2시간을 보낸 후 5시50분에

 

출발하는 선암사행 첫 버스에 올라탔다. 승객이라고는 나 밖에 없어 괜스레 기사분에 미안했다. 벼들

 

이 거의 다 자란 시골 논 뜰이 가을의 풍요로움을 잉태해가고 있어 보기에 참 좋았다. 삼인당 연못까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도로를 걸어 선암사 경내로 들어서자 아침청소로 스님들이 분주했

 

다. 배낭을 메고 나다니기가 미안해 대웅전과 그 유명한 해우소만 사진 찍고 바로 경내를 빠져 나왔다.

 

비를 맞자 더욱 어둡게 보이는 울창한 편백나무 숲을 지나 다다른 대각암 사거리에서 오른 쪽 길로 들

 

어서 장군봉으로 향했다.

 

 

 

 

 

9시1분 해발 884m의 장군봉에 올랐습니다. 두 주전 내려올 때는 반시간도 채 안 걸린 대각암사거리-

 

샘터 길을 이번에 오르는 데는 한 시간이 다 걸릴 정도로 경사도 급하고 계단도 많았다. 가까이에 산성

 

의 흔적이 남아 있는 샘터에서 십 여분을 쉬면서 차디찬 샘물을 받아마시자 밤차에 시달린 몸과 마음

 

이 한결 개운했다. 산죽들이 정상 가까이까지 길안내를 해준 오름길은 비가 내려 미끄러웠다. 이 산의

 

상봉인 장군봉은 이번이 세 번째인데 번번이 날씨가 나빠 한 번도 전망이 트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마

 

침 비가 그친 틈을 타 모여든 잠자리 떼들이 정상석을 맴돌며 가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일러주어 고마

 

웠다. 정상석을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곧바로 정맥종주 길에 나섰다. 

 

 

 

 

 

9시50분 선암사와 송광사로 길이 갈리는 십자안부인 큰굴목재로 내려섰다. 장군봉에서 왼쪽으로 방향

 

을 확 틀어 남쪽을 향해 고도를 낮추어 갔다. 한국판 “노아의 방주”의 전설을 갖고 있는 배맨바위의 아

 

래쪽 바위에 올라서자 구름이 이동하면서 조계산의 산자락들이 그대로 드러났는데 장관이었다. 계곡

 

을 가득 메웠던 구름들이 산 능선으로 물러나면서 내보이는 정경은 언제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서둘러 카메라에 옮겨 실었다. 경사 길이 끝난 작은굴목재에서 큰굴목재까지 넓은 길은 오르내림이 별

 

로 없고 편안한 흙길이어서 가히 명상의 길이라고 명명해도 좋겠다 싶었다. 큰굴목재에 이르러 짐을

 

 내려놓고 10분을 쉬는 동안 선암사에서 송광사로 넘어가는 부부 한 팀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

 

다.

 

 

 

 

 

10시54분 장안치를 지나며 잠시 숨을 골랐다. 조계산이 굴목재에서 끝나서인지 이 고개를 지나 첫 봉

 

우리를 오른쪽으로 우회하자 길이 다시 좁아졌고 이내 풀숲길이 나타났다. 임도를 지나 산 오름을 계

 

속하는 동안 멧돼지가 방금 분탕질을 한 것 같은 흔적이 나타나 긴장됐다.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진 봉

 

우리에 올랐다가 스틱으로 돌을 두드리고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며 2-3분을 전진하자 능선 왼쪽 아래

 

에서 몸을 숨긴 멧돼지가 괴성을 질러댔다. 서너 번 맞고함을 쳤는데도 물러서지 않고 으르렁대어 별

 

수 없이 초소로 되돌아가 한판 붙기로 마음을 다져먹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멧돼지가 이쯤해서 마루

 

금을 이어가야하는 내 사정을 감안해 조용히 물러서줄 것을 간절히 바랬다. 이곳에서 종주산행을 중단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나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시간이 얼마고 흐른 후 다시 앞으로 나섰더니 다행

 

히도 돈공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삼각점이 세워진 700.8m봉까지 정신없이 내달려 시계를 보니 10

 

시45분으로 감시초소를 떠난 지 10분밖에 안됐는데 몇 시간이 지난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본격적인

 

풀 숲길이 나타나 팔다리가 가시에 찔리자 비로소 멧돼지의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그래도 경고

 

메시지만 보내고 자리를 비켜준 멧돼지가 참으로 고마웠다.

 

 

 

 

 

12시13분 해발 709m의 고동산에서 점심을 들었다. 장안치에서 올라선 697m봉 바로 왼쪽 아래 공사장

 

에 기자재가 널려있었다. 풀들이 무성한 넓은 헬기장을 지나 660m봉을 넘는 길에 멧돼지가 지난 흔적

 

이 다시 보였다. SKT기지국이 있는 시멘트도로로 내려서 차도를 따라 한참을 걷다가 고동산에 오르고

 

자 왼쪽 길로 들어서 7-8분을 걸었는데 고동산이 나타나지 않아 나침판을 꺼내보았더니 엉뚱하게도

 

고동산과는 정반대방향인 북쪽으로 나가고 있었다. 10m 앞도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개 속에서 자칫 잘

 

못하다가는 이곳에서 계속 맴돌 것 같아 잠시 멈춰 서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다시 원 위치해 큰 길로

 

 나온 후  10분 가까이 북진을 계속하자 왼쪽으로 희미하게 고동산 정상에 자리한 중계탑시설물이 보

 

다. 안개만 걷히면 쉽게 찾을 산을 마음을 졸이며 오르다 보니 밋밋한 초원의 구릉에 세워진 정상석

 

엄청 반가웠다. 잠자리 한 마리가 바로 옆에 앉아 인절미를 먹고 있는 나를 끝까지 지켜보아 혼자 먹

 

기가 조금은 미안했다. 고동산에서 고동치로 내려서는 철쭉 숲길이 고생스러웠다. 편안한 큰 길로 가

 

도 만날 것을 고집스레 풀 숲길을 헤치며 마루금을 이어가는 것은 다름 아닌 정맥종주이기 때문이다.

 

 고동치의 시멘트 도로를 건너 임도를 따라 봉우리를 우회해 직진하다가 봉우리의 우회가 끝나는 즈음

 

에서 임도를 버리고 왼쪽으로 꺾어 좁은 산길로 들어섰다. 580m봉과 구릉 길의 바윗돌무더기를 지났

 

고, 녹슨 철조망이 쳐있는 봉우리를 지나 삼각점이 매설된 511.2m봉에 오른 시각이 13시30분이었는

 

데 풀 숲길을 지나느라 여전히 힘들었다.

 

 

 

 

 

15시6분 빈계재를 건너 20분 남짓 쉬었다. 가느다란 빗줄기가 시도 때도 없이 치근거리고 숲길을 뚫고

 

나갈 때마다 옷이 젖어 짜증이 났다. 511.2m봉을 출발한 얼마 후 키를 넘는 철쭉나무 터널을 지나

 

519m봉으로 오르면서 여름산행의 진수를 맛보는 듯했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는 길에 이번

 

에는 먼저 울타리보다 훨씬 새것인 마름모꼴 철망울타리를 만났다. 봉우리를 올랐다가 빈계재로 내려

 

서기까지 반시간 동안이나 울타리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 무지막지한 풀 숲길을 피할 수 있었다.

 

빈계재 조금 못 미쳐 철망 울타리는 우측으로 꺾어 멀어지고 빽빽이 들어선 편백나무 숲을 지나며 이

 

런 보너스 길도 있어 정맥종주를 이어갈 수 있다 싶었다. 멧돼지와 승강이를 벌인데다 풀 숲길을 헤쳐

 

나가느라 여느 산행보다 더 힘이 들었는지 빈계재에 다다르자 시장기가 느껴졌다. 긴 시간을 쉬면서

 

남은 떡을 마저 들어 백이산을 걸어 오를 에너지를 충전했다.

 

 

 

 

 

16시21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해발 584미터의 백이산을 올랐다. 빈계재에서 긴 휴식을 끝내고 봉우

 

리에 오른 다음 오른쪽 사면이 벌목지인 능선 길을 지났다. 나지막한 봉우리 2개를 더 지나 왼쪽 아래

 

로 아주 가까이 바다가 보이자 그동안의 피로가 한 순간에 가셨다. 가을이 오면 환상적일 광활한 억새

 

밭 길을 지나며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가파른 비알 길을 단숨에 올라 백이산에 다다랐다.  표

 

지석이 세워진 정상부는 평평한데다 사방이 탁 트인 최고의 전망지였다. 비가 그치고 산자락에 걸쳤던

 

구름들이 서서히 걷히어 이제껏 걸어온 능선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먼발치로 꽤 높은 봉우리들이 여럿

 

보였는데 남서쪽의 높은 산만 존제산으로 여겨질 뿐 나머지 산들은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없어 내게는

 

모두 무명봉이었다. 그러고 보니 2,100산을 넘게 올랐다는 한 분은 어떤 기준으로 그동안 오른 산들 하

 

나하나를 셌을까 궁금했다. 지형도에 나와 있는 “**산”만 세야 하는지, “**봉”을 같이 세어도 되는 것

 

인지 아니면 내가 자주 쓰는 무명봉도 이름을 알고 있다면 포함시켜야 하는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분이 대략적으로 추정한 남한의 산 2,500산을 기준으로 해서 80%를 넘게 오

 

른 셈인데 지형도에 이름이 나와 있는 산을 기준으로 아직도 400산을 채 못 오른 나로서는 이 분의 산

 

오름이 감탄스러웠고 존경의 마음이 일었다. 

 

 

 

 

 

17시47분 15번 국도가 지나는 해발240m의 석거리재로 내려서 하루 산행을 마쳤다. 백이산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내리뻗은 능선을 따라 내려오다가 넙적 바위를 만나 짐을 내려놓고 등산화 속으로 스며든

 

빗물을 빨아들여 흥건해진 양말을 벗어 단단히 짜낸 후 다시 신었다. 한참을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봉

 

우리에서 임도로 내려서는 동안 산자락에 내려앉기 시작한 어둠이 감지되어 하산을 서둘렀지만 풀 숲

 

길과 나무터널 길이 여전했고 내림 길의 경사가 급해 생각만큼 속도가 붙지 않았다. 밋밋한 능선을 가

 

로 넘는 임도를 건너 맞은편의 낮은 봉우리에 오르자 석거리재의 주유소와 휴게소가 보였고 얼마고 내

 

려서자 주유소의 흰 개 한 마리가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면서도 경계심을 풀지 못하고 계속 짖어댔다.

 

빈계재로 내려서 표지석을 사진 찍고 종주산행을 마쳤다.

 

 

 

 

 

벌교로 나가 다음 하산지인 무남이재에서 조성으로 가는 교통편을 확인했는데 택시이용이 불가피해

 

보였다. 벌교에서 직행버스를 타고 순천으로 향하는 중 멧돼지와의 대치시간을 떠 올렸다. 대치의 근

 

본 원인이 혹시나 해치지는 않을까 못 믿는데 있기에 문제해결도 신뢰구축에 있음이 분명하다. 한북정

 

맥의 수원산에서 멧돼지를 처음 만나 경악했던 3년 전에 비해 이제는 비교적 차분하게 대할 수 있을

 

만큼 멧돼지에 대한 내 믿음이 커졌다. 멧돼지 또한 나를 보고 무조건 덤벼들지 않고 자기 영역에 들어

 

오지 말라는 정도의 경고메시지만 보내와 어느 정도 나를 신뢰하는 것 같았다. 워낙 큰 소리를 질러대

 

순간 두렵기도 했지만 조금 더 노력하면 멧돼지와의 관계가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환주기8:호남정맥 6구간(석거리재-무남이재)

 

*산행일시:2007. 7. 22일/ 7시36 분-18시56분(11시간20분)

 

*소재지  :전남 보성 

 

*산높이  :존제산 704m

 

*산행코스:석거리재-485.5봉-주릿재-존제산-천치고개-613봉-무남이재-조성역

 

 

 

 

“언제 떠올랐는지 모를 그믐달이 동녘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밤마다 스스로의 몸을 조금씩 조금씩 깎아내고 있는 그믐 달빛은 스산하게 흐렸다. 달빛은 어둠을 제대로 사르지 못했고, 어둠은 달빛을 마음대로 물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달빛과 어둠은 서로를 반반씩 섞어 묽은 안개가 자욱히 퍼진 것 같은 미명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위 글로 시작되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읽노라면 우리 말글을 이토록 아름답게 다듬은 작가 조정래

 

선생에 존경의 마음이 절로 생긴다. 중학생 때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

 

을 宣言하노라.”의 기미독립선언문을 배우며 도시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 독립선언문과 공약 3장을

 

달달 외운 적이 있다. 아무리 유명한 육당 최남선 선생이 쓴 글이라 하더라도 우리나라 백성들이 알아

 

먹게 써야 하는데 거의다가 한자 단어로 된 이런 글로 어떻게 독립선언을 할 수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

 

되지 않았다. 단언하건대 기미독립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된 것은 재야사학가 이이화선생의 지적처럼

 

우리 선조들이 뜻도 모르는 독립선언문의 내용에 감동해서가 아니고, 일제의 만행에 대한 그동안 쌓인

 

분노가 고종의 장례식을 맞아 폭발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말과 글을 갈고 닦은 분들은 누가 뭐라 해

 

도 단연 소설가들이다. 그 후 홍명희, 최인훈, 이청준 선생 등의 뛰어난 소설가들이 우리 말글을 갈고

 

닦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직도 독립선언문과 같은 난해한 글들을 명문장으로 받들며 열심히 자전을 찾

 

고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태백산맥”을 통해 묻혀있던 우리의 말글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새롭게

 

다듬어낸 공만으로도 선생은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그럼에도 나는 소설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선생의 뛰어난 글 솜씨에

 

매료되어 자칫 공산주의와 이를 신봉하는 사람들에 긍정적 태도를 갖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출간되던 1980년대가 반문명적인 폭거로 집권했던 5공화국 때여서 많은 사람들이 이 정권에

 

반하는 것은 모두가 정의라는 생각을 얼마고 갖고 있던 때였기에 더욱 그러했다. 한번 잡으면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어 밤을 새가며 읽으면서도 작가와 대립적인 입장에 서서 비판적으로 읽어가느라 엄청

 

힘들었다. 왼쪽날개를 이토록 처절할 정도로 아름답게 보여주는 선생과 겨룰만한 분이 오른 쪽 날개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작가들 중에는 왜 없을까 하고 매우 안타까워했다. 이미 검찰에서 오랜 숙고 끝에

 

무혐의로 처리했듯이 선생의 “태백산맥”이 좌경불온서적으로 생각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선생이 의도

 

하지는 않았다 해도 이 소설을 읽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이 왜 그동안 포스터에 빨간 색깔을 이렇게 적게

 

썼냐며 파란 색의 크레파스를 내다버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을 것 같아 불안했다. 6.25 전쟁을 일으켜

 

한반도 전체를 비극의 바다로 침몰시킨 북쪽의 공산주의자들이 어떤 이유로든 남쪽의 집권세력보다

 

더 도덕적인 것처럼 미화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이 내 소견이었기에 “태백산맥”을 다 읽고 나서 이 소

 

설을 비판한 책자인 “소설 태백산맥 그 현장을 찾아서”를 사 읽기도 했다.

 

 

 

 

이번에 연 이틀 종주한 조계산-석거리재-무남이재 구간의 호남정맥 연봉들은 5-60년 전에 소설에서

 

묘사된 산 아래 해방구에서 좌우의 대립으로 수많은 지역주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되는 것을 말없이 지

 

켜보았던 산봉우리들이다. 그 후 세월이 흘러 해방구였던 인근 지역들은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당시

 

의 고통스러운 흔적은 온데 간 데 없어지고 이제는 다들 남부럽지 않게 살만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

 

실이다. 이를 보고 당시에 억장이 무너졌을 호남정맥의 연봉들도 이제는 기뻐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었다. 그래서 석거리재에서 시작한 8구간 종주를 무남이재에서 마치고 1시간 20분 동안 대곡리 저수

 

지와 논 뜰을 거쳐 조성역까지 천천히 걸어가며 “태백산맥”의 현장들을 느긋하게 보기도 하고 소설의

 

몇 장면들을 회상하기도 했다. 경향이 어떠했든 좌우이념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그 속에서 민중들이

 

겪은 참담한 고통의 실상을 “태백산맥”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낸 소설이 없기에, 이번의 호남정맥 종주

 

는 “태백산맥”의 현장을 지났다는 것만으로도 나름대로 뜻 깊은 산행이 되었다. 

 

 

 

 

 

아침7시 36분 해방구 벌교와 외서를 이어주었던 해발 240m의 석거리재를 출발했다. 순천 시내 찜질방

 

에서 하루 밤을 묵고 아침 일찍 공용버스터미널로 나가 직행버스를 타고가다 벌교에서 하차했다. 벌교

 

는 군청소재지가 아니면서도 경찰서가 있었을 정도로 꽤 큰 읍내였다는데 지금은 많이 후져보였다. 터

 

미널에서 7시 정각 외서로 가는 버스에 오른 지 20분 만에 다다른 석거리재에서 하차해 고개 넘어 바

 

로 왼쪽 숲길로 들어섰다. 하늘이 쾌청해 아침부터 햇살이 따가웠다. 숲길을 뚫고 나가 만난 임도를 따

 

라 오르다가 오른 쪽 능선으로 붙어서 땀 흘리며 얼마고 올라 415m봉을 지났다. 415m봉에서 40분을

 

더 걸어 8시55분에 한 구릉에 올라 첫 쉼을 갖기까지 그늘진 능선 길이 이어지고 풀 숲길을 몇 번 만났

 

어도 아주 짧아 힘든 줄 몰랐다.

 

 

 

 

 

9시32분 오른 쪽 아래로 빨간 지붕의 집 한 채가 아주 가깝게 보이는 500m봉 바로 옆을 지났다. 형체

 

가 있다면 사진을 찍어서 집에 갖다 놓고 싶을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산 밑에서 불어와 오른 쪽 사면이

 

벌목지인 능선을 지날 때도 햇살이 그리 따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벌목지를 지나 500m봉 구릉 바로 밑

 

으로 지나는 능선 길을 가로막은 잡풀들은 이번 코스 거의다가 풀 숲길이니 단단히 각오하라고 귀띔해

 

주는 인디케이터였다. 임도로 내려선 후 얼마 안가서 삼거리가 나타나 왼쪽으로 90도 이상 꺾인 길로

 

방향을 잡고 가다 이내 차량통제용 쇠줄을 건너 왼쪽 산길로 들어섰다. 넓은 억새밭을 통과해 500m봉

 

을 넘자 존제산의 KT중계소가 눈에 들어왔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철쭉나무 길을 올라 삼각점이 세워

 

진 485봉을 지난 시각이 10시13분으로 시원한 바람이 여전히 불어와 잠시 선채로 쉬면서 숨을 돌렸

 

다. 

 

 

 

 

 

11시8분 895번 지방도가 지나는 주릿재로 내려섰다. 485m봉에서 아스팔트길로 내려서는 내림 길은

 

경사가 꽤 급했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 커다란 소나무 밑 등에서 자라고 있는 노란 버섯을 보았다. 살

 

아 있는 나무에 기생하는 버섯을 만난 것은 두타산에서 처음 본 후 2년만의 일이어서 정성껏 카메라에

 

담아 왔다. 개통된 지 얼마 안돼 보이는 아스팔트길을 건너 철계단을 오르는 동안 헬기가 머리 위를 배

 

회해 시끄러웠지만, 이 정도의 굉음이라면 전날 내 앞길을 막은 멧돼지를 내쫓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철계단을 올라 다다른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벌목지를 지났다. 잠시 숲길로 들어섰다가 내려선 임

 

도를 따라 주릿재에 닿았다. 쉼터가 조성된 고개 마루를 경계로 오른쪽은 율어면이고 왼쪽은 벌교읍인

 

데 이 모두가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해방구여서 그 당시라면 지금처럼 대낮에 17분씩이나 마음 놓

 

고 편히 쉬지는 못 했을 것이다. 주릿재 고개 마루에서 왼쪽으로 조금 내려가 남쪽으로 뻗은 비포장도

 

로는 지금은 철수한 존제산의 군부대로 이어지는 길로 넓고 경사도 거의 없는 도로다. 바람 한 점 없는

 

넓은 도로를 복더위의 한 낮에 땡볕을 쬐어가며 걷는 것이 처음에는 그 지긋지긋한 풀숲길보다 낫다

 

했는데 그것도 한 시간을 넘게 걷자 차라리 가시덤불 풀숲길이라도 산길이 낫겠다 싶었다. 백림농장

 

입구를 지나 꼬부랑 고개 길을 한참을 걸었어도 KT중계소 입구가 나타나지 않아 커브 길 가 나무그늘

 

아래서 땅바닥에 능을 눕히고 10분을 쉬었다.

 

 

 

 

12시46분 달콤한 쉼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가 걱정하는 존제산으로 향했다. 10여분 후에 도

 

착한 KT중계소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이어지는 군사도로를 그대로 따라 걸었다. 전날 하늘을 덮었

 

던 먹구름은 하늘 한 구석에 움츠리고 있고  새하얀 새털구름, 뭉개구름과 조개구름들이 한가롭게 하

 

늘 높이 떠다니고 있었다. 매설된 지뢰가 제거 작업 후에도 남아 있을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판이

 

여기저기 세워졌지만 여름 한낮 존제산의 풍경은 마냥 평화로웠다. 백이산 정상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보이는 조성 앞바다의 한적한 해안선과 작은 섬들이 하늘의 평화를 받쳐주는 듯했다. 철조망과 으스스

 

한 경고판, 그리고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조각들을 보며 포크송 가수 정태춘의 “민통선의 흰나비”를 흥

 

얼거렸다.

 

 

 

 

 

   “맑은 햇살 푸르른 수풀 돌보지 않는 침묵의 땅

 

   긴 긴 철조망 살벌한 총구 저 갈 수 없는 금단의 땅

 

   바람에 눕는 억새 위 팔랑거리는 흰 나비

 

   저 수풀 너머 가려네 저 산도 넘어 가려네”

 

 

 

14시26분 난코스인 존제산 구간을 무사히 통과했다. 허리 정도 차는 낮은 키의 철쭉나무들이 존제산

 

의 군견묘지 봉우리출발 10분이 지나 마지막 철조망을 넘고 나자 모두들 키를 훌쩍 넘었다. 지뢰와의

 

심리전을 끝내자마자  철쭉나무가 끈질기게 발목을 잡으며 싸움을 걸어왔다. 이렇게 표독스러운 철쭉

 

숲을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아주 짧은 숲길을 빠져나가는데 25분이 걸렸다. 천치재로 내려가 

 

 편백나무 그늘아래서 25분을 쉬면서 점심을 든 후  14시51분에 다시 고행 길에 나섰다. 청초한 야생

 

화마저 없었다면 이번 종주 산행은 정말 황량했을 것이다. 

 

 

 

 

 

17시10분 무남이재로 내려서서 구간 종주를 마쳤다. 천치재에서 광대코재 조금 못 미쳐 600m봉에 이

 

르기까지 풀숲길만 걷느라 시간 반 동안 내내 힘들었다. 키가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으면 잡풀들

 

이 자리를 잡지 못해 무성한 풀숲길이 있을 수 없는데 사계정리를 위해서든 개간을 위해서든 한번 산

 

비탈의 나무들을 베어내면 그 위의 능선 길은 잡풀과 잡목이 왕성하게 자라 헤쳐 나가기가 정말 어렵

 

다. 매년 여름 정맥종주로 겪는 일이지만 호남정맥은 다른 정맥보다 벌목지가 많아 풀 숲길이 길고 잦

 

은 것 같다. 아무런 등산장비 없이 끼니도 제대로 못 이으면서 이 길로 쫓겨 도망쳤을 빨치산들의 고생

 

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이 악물고 걸었다. 천치재에서 고흥지맥 분기점까지는 가파

 

른 오름길이었다. 분기점에서 오른쪽으로 뻗어가는 능선 길은 몇 개의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들을 지

 

나 광대코재까지 이어졌다. 천치재 출발 44분 후인 15시36분에 삼각점이 매설된 571m봉을 지났다. 키

 

를 넘는 억새풀을 계속해 헤쳐 나가느라 숨이 막히는 듯 답답했다. 40분을 더 걸어 만난 나무그늘 아래

 

에서 짐을 풀고 10분을 쉬었어도 바람이 통하지 않아 땀이 별로 식지 않았다. 풀 숲길이 끝나는 600m

 

봉(?)에서 바위길이 시작되어 613m봉 바로 아래 이정표가 세워진 광대코재까지는 그래도 걸을 만 했

 

다. 광대코재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는 무남이재로 가는 길은 경사가 급하고 로프 줄이 쳐져 있었다. 오

 

랜만에 풀 숲길을 면하고 편안한 나무 숲길을 걸었다. 광대코재 출발 반시간이 지나 시멘트도로가 고

 

개를 넘는 무남이재에 내려섰다. 차 한대가 다닐만한 넓이의 길이지만 차가 다닌 흔적이 보이지 않는

 

한갓진 길이어서 마음 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택시를 부르려고 전화를 걸었으나 신호가 떨어지지 않

 

아  포기하고 한참을 쉰 후 17시36분에 무남이재를 출발해 대곡리 저수지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18시56분 조성역에서 하루 산행을 모두 마쳤다. 무남이재에서 골프장 공사로 시끄러운 대곡리 마을로

 

내려가자 방금 전에 조성 가는 버스가 출발해 조성시내까지 걸어갔다. 조성 벌에 물을 대는 대곡리저

 

수지는 산 밑에서 한참 떨어져 있어 “ㄴ”자 모양의 방축이 꽤 길어보였다. 꽤 넓은 논 뜰을 가로지르며

 

40분 가까이 걸어 조성시내에 도착해 조성역을 들렀다.

 

 

 

 

 

작은 소도시 조성시내는 면소재지로 거리가 깨끗하고 건물들도 깔끔해 “태백산맥”의 잔흔을 찾아볼

 

수 없었다. 좌우가 첨예하게 대립해 갈등이 극심했던 이 소도시를 진정으로 해방시킨 것은 공산주의의

 

북이 아니고 자유민주주의의 남이라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북의 해방구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면

 

호남정맥 종주 길에 짬을 내어 들러볼 수도 없을 뿐더러 어쩌면 오랜 흉년으로 기근이 들어 북한의 도

 

시들처럼 외국의 원조로 연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난코스인 존제산을 무사히 통과했다는 안도감에

 

다 승리한 역사의 현장에서 사 마시는 맥주가 더 입에 당겼다. 그리고 여기 조성 땅이 점점 살갑게 느

 

껴졌다. 이만하면 소설 태백산맥도 이제는 긴장의 끈을 놓고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족 한마디는 소설의 제목에 대해서다.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은 태백산맥이 아니고 호남정맥이다.

 

선생께서 이 소설을 썼을 당시에는 대간과 정맥이 널리 알려지기 전이어서 설사 호남정맥으로 이름을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호남정맥이라 하더라도 부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북으로 내닫는 태백산맥이 훨씬 장대해 남북의 갈등을 주제로 하는 대하소설의 제목으로는 호남정맥

 

보다 태백산맥이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한마디를 사족으로 달며 종주기를 맺는다.

 

 

 

 

 

 

 

 

환주기9:호남정맥 7구간(무남이재-그럭재)

 

*산행일시:2007. 8. 9일/ 6시20분-15시30 분(9시간10분)

*소재지  :전남 보성

*산높이  :주월산558m/방장산536m

*산행코스:무남이재-주월산-방장산-겸백고개-대룡산갈림길-그럭재

          

 

정맥 길의 하얀 조개껍질 덕분에 모처럼 시간여행을 즐겼다. 광양의 외망에서 망덕산을 올라 발을 들인 후 어제로 9구간을 종주해 보성의 그럭재에 다다랐는데, 그동안 능선에 놓여있는 엄지손톱 세 네 개만한 하얀 조개껍질이 눈에 띄지 않았던 적은 단 한 구간도 없었다. 바다에서 살고 있는 조개가 어찌하여 능선위에 올라와 있을까 조금은 이상했지만, 종주 길이 바쁜 나로서는 이들 조개껍질을 붙잡고 따져볼 계제가 아니어서 그냥 지나쳐왔다. 설사 바다가 융기해 이 산줄기가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몇 백만 년 전의 일일 텐데 그때의 조개껍질이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될 리가 만무할 테고, 어느 누군가가 조개음식을 싸갖고 올라와 먹은 후 껍질을 버리고 간 것이 틀림없을 것 같아 더 이상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이제껏 한 구간도 빼놓지 않고 조개껍질이 계속 눈에 띄어 누군가가 음식을 먹고 난 후 버리고 갔을 것이라는 내 추정이 틀린 것이 아닌 가하고 회의가 들던 중 어제 종주산행을 시작한 들머리 무남이재와 얼마 후 올라선 주월산에 얽힌 전설들을 알고 나서 여기 능선 길의 조개껍질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졌다. 2004년에 월간 “산”지의 별책시리즈로 발간된 “실전 호남정맥/낙동정맥 종주산행” 책자에 실린 전설은 이러했다. 문애미재 또는 무내미재로도 불리는 무남이재는 예전에는 큰 홍수가 져서 계곡의 물이 넘어가 물넘이재로 불렸다 하며, 주월산은 문자 그대로 큰 홍수로 물이 넘쳐 배가 넘어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렇다면 바다 속의 조개들이 물이 넘쳐 산줄기를 넘을 때 이곳 능선에 올라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옛날에 배를 매어두었다는 조계산 구간의 배맨바위의 전설도 무남이재와 주월산의 그것들과 맥을 같이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면 그렇지, 망덕산에서 여기 주월산까지 줄잡아 100Km가 넘는 원거리인데 어느 누가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정맥 길을 따라다니며 조개껍질을 버려두고 갔겠는가 싶어지자 위 전설들이 실제 있었던 일처럼 느껴졌다. 이상의 전설이 허구가 아니고 사실이었다 해도 궁금증이 완전히 풀리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때가 언제였느냐는 것이다. 그 때가 선사시대의 일이 아니라면 당연히 어디엔가 기록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조개껍질이 어떻게 해서 산길에서 발견되는가를 규명하는 것이 그리 간단할 것 같지 않아 정맥을 종주하는 내가 나설 일은 아니다싶었다.

 

 

내가 산행기에 뜬금없이 조개껍질 이야기를 올린 것은 혹시 누구라도 이 글을 읽고 이 궁금증을 풀어줄 분이 있지 않을까 기대해서다. 시작은 조개껍질 이야기로 미미하지만 잘만하면 호남정맥의 생성비밀을 밝혀 내 우리나라 지질학을 다시 가르쳐야할 만큼 장대한일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조개껍질을 단서로 한 고증과 추리, 누군가가 이 방면에 웬만큼 지식과 능력만 있다면 한번 빠져도 좋겠다싶어서다.

 

 

아침6시20분 안개가 가득한 무남이재를 출발했다. 순천 깜상님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무남이재에서 비옷을 갈아입은 후 왼쪽의 주월산으로 향했다. 밤새 내린 비로 풀숲에 들에선지 얼마 안 되어 바짓가랑이가 흥건히 젖었다. 길 양옆으로 흰색의 나일론 줄이 쳐져 있어 짙은 안개 속에 가려진 길 찾기가 한결 수월했다. 처음 십 수분은 오름길이 가팔랐지만 그 후로는 정상에 이르기까지 경사가 완만하고 도라지와 원추리 등 야생화들이 나를 반겨 키를 넘는 풀숲을 뚫고 가지만 않았다면 걸을만한 길이었다. 7시 반이 조금 지나 정상 바로 전에 오른쪽의 임도와 합류한 활공장을 정상으로 잘 못 알고 비닐이 쳐진 의자에 걸터앉아 왼쪽 무릎을 달래며 10분 넘게 쉬었다. 이틀 전부터 왼쪽 다리를 들어 올릴 때마다 무릎에 통증이 느껴져 이번 산행을 미룰까도 생각했는데 어정쩡하게 아픈 상태가 이어지는 것보다 아예 긴 시간 산행을 해 종주산행 가능여부를 확실하게 확인해 병원치료 여부를 분명하게 판가름 내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에서 강행군했다. 평지 길과 내림 길에서는 아무런 통증이 없었지만 오름길에서는 그 경사의 정도와 관계없이 무릎통증이 심하게 느껴져 멀쩡하던 머리도 띵하고 아팠다.

 

 

7시56분 해발558m의 주월산에 다다랐다. 표지석 대신 놓인 큰 돌은 묘지의 상석으로 쓰였을 법한 정방형의 화강암으로 아무런 기록이 없어 옆의 나뭇가지에 걸어 놓은 “주월산”이라는 빨간 글씨의 안내판이 없었다면 이곳이 정상임을 쉽게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자 안개 속에 감추어진 정광산활공장이 나타났다. 정식 비행기는 아니더라도 어쨌든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더의 이륙장이기에 안내판에 풍향, 고도, 주파수 등의 여러 가지 정보가 적혀있었다. 활공장을 떠나 방장산으로 가는 풀숲 길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배거리재를 지나 아드리재에 이르는 내림 길은 편안하고 제법 넓었다. 아드리재를 지나서부터는 주월산을 오를 때 만났던 풀숲 길의 산딸기와 청미래 가시가 다시 나타나 여지없이 팔다리에 상처를 남겼다.

 

 

 9시17분 해발 536m의 방장산에 도착했다. 안개가 자욱해 새들과 매미들 모두 울음을 그쳤는데 잠자리와 거미만은 일손을 놓지 않았다. 안개에 젖은 거미줄이 여러 곳에서 길을 가로 막고 있었고 풀숲 위를 나는 잠자리들이 바람을 거슬러 움직이느라 힘들어 했다. 아드리재를 지나 짙은 안개를 뚫고 경사가 별로 없는 작은 봉우리들을 몇 개 넘어 KBS 중계소가 있는 방장산에 다다르자 운무를 뚫고 올라온 바람이 씩씩거리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다. 운동기구들이 설치된 쉼터에서 10분을 쉰 후 파정치로 향했다. 중계소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느라 풀숲 길을 지나지 않아 모처럼 산행이 편했다. 방장산 출발 20분 동안 십자안부 호동재와 호동과 수남주차장으로 갈리는 방장산사거리를 차례로 지났다. 사거리에서 직진해 만난 임도를 따라 조금은 가파른 길을 내려가다 헬기장을 지나 임도사거리인 파정치에 도착한 시각이 10시7분이다.

 

 

11시30분 845번지방도가 지나는 겸백고개로 내려섰다. 파정치에서 7-8분을 쉬면서 스며들어온 물기에 다 젖은 양말을 벗어 힘껏 수분을 짜냈다. 파정치를 출발해 묘지를 지나고 구릉을 넘어 안부사거리로 내려섰다가 직진해 얼마큼 올라 길 오른 쪽의 철망을 만났다. 철망 왼쪽 길로 조금 내려가 왼쪽사면이 벌목지여서 시야가 탁 트인 능선에 다다르자 저수지 덕산제와 득량만 앞바다가 시원스레 보였는데 시꺼먼 적란운이 득량만 앞바다를 뒤덮어 곧바로 큰비가 내릴 것 같았다. 천의 얼굴을 가진 구름의 변화무쌍함이 최고조에 달하는 시기는 아무래도 지표가 가열되어 기단이 불안정한 여름일 듯싶다. 가을 하늘에 높이 떠 있는 새털구름은 아름답기는 해도 그 움직임이 다소곳해 역동적인 에너지를 느낄 수는 없다. 수직으로 발달한 시꺼먼 소나기구름을 보고 하늘의 에너지가 모두 구름 속에 집결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구름의 형상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변화무쌍함과 이 땅에 쏟아 붓는 소나기 때문이다. 전망 좋은 능선을 지나 된비알 길을 올라 삼각점이 매설된 335.5m봉에 서기까지 파정치에서 40분여 서진했다. 335.5m봉에서 서진을 멈추고 오른 쪽으로 확 꺾어 반시간 남짓 북진해 겸백고개에 다다르기까지 낮은 봉우리를 넘고 묘지를 지나 다다른 240m능선 봉우리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 마지막으로 콩밭을 지났다. 오랜만에 만나 본 연파란 콩 꽃이 화사하지는 않았어도 애잔한 모습을 해 내 눈을 끌었다. 도로변 나무아래에 털썩 주저앉아 점심을 들은 후 마침 파란 하늘이 열려 구두가 빨리 마르도록 다시 양말을 벗어 물기를 짜냈다.

 

 

14시13분 대룡산 갈림길을 지났다. 겸백고개에서 20분을 쉰 후 11시50분에 길 건너 숲길로 들어섰다. 이내 만난 묘지집단을 가로 질러 오른 쪽 아래에서 올라온 큰 길을 만나 왼쪽으로 꺾어 220m능선으로 올라섰다. 오전 내내 나를 괴롭혔던 왼쪽 무릎의 통증이 감쪽같이 사라져 계속되는 산 오름이 고통스럽지 않았다. 220m능선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직각되게 꺾어 묘지를 지나고 구릉을 넘어 276m봉에 오르기까지 겸백고개 출발 후 반시간 남짓 걸렸다. 오른 쪽으로 다시 꺾어 편백나무 숲을 지나고 무명봉을 오른쪽으로 에돌아 안부로 내려선 후 반시간 가량 편안한 길을 걸어 능선 삼거리에 다다랐다. 10분을 쉰 후 13시20분에 능선삼거리를 출발했다. 능선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어 오르는 중 호남정맥 종주 길에 여러 번 보아온 하얀 조개껍질이 눈에 띄어 사진을 찍은 후 주워왔다. 나뭇가지에 “삼각점봉 346m”안내판이 걸린 무명봉에 오르자 지형도에도 없는 삼각점이 세워져 있었다. 삼각점봉에서 내려선 안부에서 이번 산행 중 가장 경사가 심한 된비알 길을 20분간 올라 대룡산 갈림길에 다다르자 진이 빠질 대로 다 빠져 눈앞에 빤히 보이는 오른 쪽의 대룡산을 다녀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잠시 선채로 쉰 후 갈림길을 출발했다.

 

 

15시30분 2번국도가 지나는 그럭재로 내려가 하루산행을 마쳤다. 대룡산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완만하게 꺾이어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걷던 중 흐렸던 하늘에서 한차례 비를 뿌려 우의를 꺼내 입고 산행을 하다가 10분도 안되어 비가 그쳐 다시 벗어 배낭 속에 넣었다. 짧은 시간이나마 이번 산행에서 유일하게 암릉 길을 걸어 다다른 큰 바위에서 10분을 쉬면서 목을 축였다. 안부사거리로 내려섰다가 완만한 길을 걸어 삼각점이 세워진 315m봉에 올라선 시각이 14시56분이었다. 315m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얼마고 걷자 산 아래로 2번 국도가 보여 반가웠다. 오른 쪽에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버려진 밭을 지나 마지막봉우리를 올라선 다음 엄청 가파른 절개면을 내려가 그럭재에 도착했다. 2번 국도변 초당정류장에서 쉬면서 양말을 짜는 동안 국토를 순례중인 대학생들 한 떼가 지나갔다. 땡볕에 아스팔트길을 걷는 저들이 상당 부분 그늘진 산길을 걷는 나보다 몇 배 더 힘들 것이 분명한데 그 고됨을 감수하고 기꺼이 순례 길에 나선 젊은이들이 있어 이 나라가 든든하고 미더운 것이다.

 

 

호남정맥 종주 길에 몇 번을 이 지방 명소를 들러본 후 귀경했다. 순천만, 낙안읍성, 고인돌 공원에 이어 이번에는 그럭재에서 종주산행을 마친 후 하루를 묵어 소록도공원과 팔영산을 다녀왔다. 산림청에서 100대 명산의 하나로 선정한 팔영산을 오르며 정맥 길에서 본 하얀 조개껍질을 또 보았다. 고흥반도에 위치한 팔영산은 호남정맥보다 바다와 훨씬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맥 길에서는 아주 멀리 한 두개씩 보였는데 이 산에서는 7-8개가 한꺼번에 눈에 띄었다. 귀경길 기차 안에서 하얀 조개껍질에 숨어 있는 메시지를 찾아보고자 골몰이 생각했지만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렇다 해도 조개껍질 덕분에 모처럼 시간여행을 떠날 수 있어서 무궁화호의 기차여행이 지겹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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