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감악파평단맥 종주기
*단맥구간:(노고산갈림길)...오현리고개-비학산-파평산...(임진강)
*산행일자:2007. 5. 17일
*소재지 :경기 파주
*산높이 :파평산495m/비학산450m
*산행코스:오현리고개-390봉-비학산-개목이고개
-노파고개(350번지방도)-파평산-노파고개
*산행시간:9시30분-7시7분(9시간37분)
*동행 :나홀로
고향 산이라 해서 마냥 자비롭지만은 않았습니다.
별반 높지도 않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는 산들을 고향의 산이라고 찾아주는 것은 고마워할 일이지만 세심한 준비 없이 덜렁대고 산행하는 것만은 설사 고향 사람이라 해도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산 버릇을 혼을 내주어 새롭게 뜯어 고칠 요량으로 고향 산이 제게 든 회초리는 다른 산들보다 더 아팠고 매서웠습니다. 지도에 마루금도 정확하게 긋지 않고 종주를 하겠다고 덤벼든 제게, 또 가는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 가를 꼼꼼하게 챙겨 보지 않고 덜렁대며 내달리는 제게 고향의 산들이 들은 채찍은 단호했습니다. 9시간 반 동안의 산행 중 길에서 헤매도록 한 채찍의 시간이 무려 3시간이 넘었습니다.
고향의 산들은 제게 끝까지 가혹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채찍을 달게 받은 제게 다른 곳의 산들처럼 아예 내치어 산 밑으로 쫓아버리지 않고 길을 내주었습니다. 길 찾느라 기진맥진해 이제는 포기하자고 마음먹는 순간 다시 일어서 내달리라고 등 두들기며 살짝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길로 목적했던 산을 올랐음을 고마워하는 제게 고향의 산들은 파평산 정상에서 단맥의 끝 지점인 임진강으로 하산하는 마지막 길만은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어둠을 불러들여 임진강행을 막아 선 파평산에 조만간 다시 올라 미답의 마지막 구간을 기필코 밟겠노라고 약속하고 오른 길로 하산해 하루 산행을 마감했습니다. 이렇듯 고향 산들이 제게 든 회초리는 제 잘못에 한 치도 더함도 덜 함도 없는 꼭 그만큼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역시 고향 산은 자비로우면서도 엄격했습니다.
한북감악지맥의 노고산에서 갈라져 북서쪽으로 뻗어나가며 400m대의 비학산과 파평산을 일군 후 임진강으로 침잠하는 산줄기를 한북감악파평단맥이라 이름붙이고 손수 답사한 신경수님의 산행기와 제가 마루금을 대충 그려 놓은 5만분의 1 지형도를 챙겨 저 혼자서 종주 길에 나섰습니다. 산객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이름 없는 산들이지만 고향의 산들이어서 설레는 가슴에 밤잠을 설쳤습니다. 밤사이 내린 비로 막 목욕을 끝낸 듯이 싱그러운 숲 속이 어서 들라고 손짓하는 시발점 노고산은 군부대가 들어서있어 올라가지 못하고 북서쪽으로 얼마 떨어진 오현리고개에서 단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아침9시30분 오현리고개를 출발했습니다.
의정부가능역에서 32번 버스를 갈아타고 금촌 방향으로 가다가 법원리 못 미쳐 오현리고개 군부대 앞에서 하차하면 오른 쪽 바로 옆에 삼거리가 있는데 단맥 길은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난 시멘트길을 따라 났습니다. 4-5분후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진행하다가 마루금이 부대 안으로 사라지는 바람에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고 개들이 요란하게 짖어대는 동도라지 마을로 들어섰습니다. 몇 집을 지나서 왼쪽 산길로 접어들어 묘지를 지나고 3-4분 후 부대에서 빠져나온 단맥 길에 올라 오른 쪽으로 꺾어 마루금을 이어갔습니다. 아무런 표지가 없는 들머리를 눈짐작으로 들어서 다시 마루금을 밟은 것만으로도 1차 관문은 무사히 통과했다 싶어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둥굴레 꽃들이 막 피기 시작한 능선 길을 따라 가다 십자안부를 조금 지나서 법원리/동두천성당의 신도들이 걸어놓은 “신암-갈곡공소도보순례”표지기를 보았습니다. 둔덕을 올라 잠시 그대로 직진했다가 다시 둔덕으로 돌아온 시각이 10시 17분으로 경미한 첫 번째 알바가 더 큰 알바를 조심하라는 경고였음을 깨달은 것은 하루 산행을 다 마치고 나서였습니다.
10시53분 초리골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합류해 오른 쪽의 390봉으로 향했습니다.
되돌아온 둔덕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 오른 쪽 아래로 인삼밭이 있는 임도로 내려섰다가 이내 왼쪽의 산소가 있는 산길로 올라섰습니다. 10여분을 걸어 다다른 능선사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진행해 참호가 파진 낮은 봉우리 삼거리에 오르자 포성이 멈췄습니다. 56년간 끊겼던 경의선과 동해선을 다시 이어 철마가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는다고 축포를 터뜨린 같은 시간에 북쪽의 진의를 손 틈만치도 믿지 못하는 저로서는 서부전선에서 차분히 훈련하는 포격 소리가 우리 군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만들었습니다. 봉우리삼거리에서 오른 쪽 길을 잡아 연탄재가 내버려진 안부사거리로 내려섰다가 무명봉을 하나 넘어 "등산로/샘골동도라지 0.6Km" 이정표가 세워진 안부에 다다르자 하늘 높이 치솟은 푸르른 낙엽송이 저를 반겼습니다. 직진 길 등산로는 몇 걸음 안 걸어 왼쪽아래 초리골에서 올라오는 큰 길과 만났고 오른 쪽 멀리 비학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은 작년 7월 된 비를 맞으며 고향 선배이신 청파님과 함께 걸은 낯익은 길이어서 마음이 놓였습니다. 넓은 공터의 풀 숲길을 지나고 십 수분을 더 걸어 오른 통나무쉼터 둔덕에서 짐을 내려놓고 모처럼 15분간 긴 시간을 편히 쉬었습니다.
12시10분 해발450m의 비학산을 올랐습니다.
통나무쉼터에서 삼각점이 세워진 390봉에 이르는 길이 비알 길이었지만 비 그친 뒤 촉촉한 흙길을 밟는 발끝의 감촉이 편안하게 느껴져 힘든 줄 몰랐습니다. 사방이 탁 트인 390봉은 이 산 최고의 전망지여서 뒤쪽으로 노고산, 불곡산, 북한산, 고령산이 차례로 눈에 잡혔고 지난달에 종주한 한북감악금병단맥도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왼쪽으로 잠시 내려섰다 다시 오른 대피소 삼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내려가 금곡리임도를 만났습니다. 임도에서 똑바로 치올라 벙커 위 450봉인 비학산에 올라선 것까지는 깔끔한 산행이었는데 이 다음부터가 산행기로 남기기에 부끄러울 만큼 뒤죽박죽 엉망이었습니다. 다시 대피소로 돌아가 삼거리 평상에서 김밥을 든 후 신경수님의 산행기를 꺼내 다시 읽다가 마루금이 비학산에서 서북쪽으로 이어짐을 발견하고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땡볕에 금곡리임도를 다시 지나 비학산에 올라선 시각이 13시3분이었으니 점심시간을 빼더라도 반시간은 족히 알바를 한 셈입니다. 이번 알바도 예고편에 불과했고 30여분 후 더 큰 알바가 저를 기다렸습니다.
15시 정각 첫 번째 헬기장을 지나 바로 위에 있는 한 봉우리에 주저앉아 1시간 23분 동안의 긴 알바를 반추했습니다. 다시 오른 비학산은 나무들에 가려 전망이 별로여서 쉬지 않고 직진했습니다. 7분 후 길 왼쪽 북서쪽으로 시야가 탁 트이는 바위에 올라 파평산을 카메라에 담은 후 시꺼멓게 불에 탄 나무들이 을씨년스럽게 서있는 능선 길을 지나 헬기장에 다다르자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오른 쪽 아래로 직천리저수지가, 그 너머로 감악산이 선명하게 보였고 왼쪽 가까이에 법원리 시가지와 그 뒤로 문산 하동의 임진강이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헬기장을 지나 무명봉에 올라선 시각이 13시 37분으로 이 때부터 본격적인 알바가 시작됐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산행기에 적힌 대로 등산로를 버리고 왼쪽 길로 들어서 얼마고 내려갔는데도 길이 나오지 않아 아무래도 이 길은 아닌 듯싶어 다시 올라와 등산로를 따라갔습니다. 이내 두 번째 헬기장이 나타났고 조금 후 넓은 평상이 놓여진 십자안부에 다다라 잠시 쉬었습니다. 왼쪽 하산 길은 안개목이 길이고 직진 길은 4코스정상 행이라는 표지목의 안내를 보고 직진해 앞에 보이는 꽤 높은 봉우리를 힘들여 넘자 단풍나무 조림지 옆으로 왼쪽 아래로 이어지는 큰 길이 나타났습니다. 큰 길을 건너 벙커의 환기통이 서있는 암봉에 오르자 커다란 매 한 마리가 머리 위를 배회해 섬뜩했습니다. 다시 헬기장을 지나서 계속 내려가다 왼쪽 아래 마을이 보여 잠시 멈춰서 제가 선 위치를 헤아려 보았습니다. 내려다보이는 350번 지방도가 파평산 정상에서 오른 쪽으로 한참 비껴선 마을을 지나고 있어 이제야 길을 잘 못 들었음을 깨닫고 시계를 보니 14시13분이었습니다. 반시간 이상의 헛걸음을 되돌리는 데 47분이 걸려 다시 무명봉으로 돌아와 긴 시간의 알바를 끝냈습니다.
15시10분 다시 왼쪽 길로 내려섰습니다.
방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내림 길이 얼마 후 다시 나타나 이제는 알바를 끝냈구나 싶어 안도했습니다. 7-8분을 내려가 만난 봉우리삼거리에서 별 생각 없이 왼쪽 길로 내려가다가 제 방향이 아닌 것을 직감하고 다시 올라와 오른 쪽 길로 들어선 것이 네 번 째 알바로 그 시간은 2-3분밖에 안되는 아주 경미한 것이었지만 그 5-6분 후 다시 만난 삼거리에서는 또 다시 45분간을 왼쪽 길 오른 쪽 길을 몇 번이고 번갈아 오르내리는 알바를 하는 바람에 완전히 기진맥진해 무조건 삼거리에서 앉아 한참을 쉬었습니다. 가져간 지도가 별 도움이 안 된 것은 왼쪽 길-오른 쪽 길의 각도차가 아주 작았고 나뭇잎에 시야가 완전히 가려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데다 제가 지형도에 그려놓은 마루금이 정확하다는 확신이 서지 않아서였습니다. 산행기를 읽고나서 오른 쪽 길이 맞는 것 같아 한참을 내려가 보니 잡목이 우거진 풀숲이 길을 가로막아 더 이상 나가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다시 올라 왼쪽 길로 내려섰다가 이 길도 아닌 듯 해 다시 삼거리로 오르기를 3번이나 반복하고나자 맥이 빠졌고 더 이상 강행하다가는 사고가 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삼거리에서 꼼짝 않고 10분가량을 쉬었습니다.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기에 길이 제대로 나있는 왼쪽길이 마루금이 아니면 더 이상의 단맥 종주를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15시55분에 왼쪽 길로 내려섰습니다. 길은 맞았고 산행기를 잘못 읽어 생고생을 한 것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17시13분 350번 지방도가 지나는 노파고개에 도착했습니다.
문제의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 안개목이와 바깥개목이를 가르는 개목이고개로 내려서기까지 37분간도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갈림길을 만날 적마다 한번 되게 혼이 난 터라 길 잡기에 엄청 신경이 쓰였지만 제 길로 잘 들어섰고 몇 개의 봉우리를 더 넘어 시멘트 길의 개목이고개에 다다랐습니다. 곧바로 길 건너 산길로 다시 들어선지 20분후에 색동헝겊을 묶어 놓은 당산목이 서있는 성황당고개를 지나면서 산행기에 이 고개가 적혀있음이 생각나 이제야 제 길로 왔음에 비로소 안도했습니다. 다시 봉우리로 올라섰다가 가파른 절개지 왼쪽으로 내려서 밭을 지나 350번지방도로 내려섰는데 오른 쪽으로 보이는 고개 마루가 어려서 늘노리 큰 누님 댁에 놀러가느라 자주 넘었던 노파고개였습니다. 길 파평산 산신각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파평산으로 들어섰습니다.
18시15분 해발495미터의 파평산 정상 바로 앞에 섰습니다.
산신각에서 오른 쪽으로 들어서 능선으로 오른 후 왼쪽으로 따라 가다가 바로 오래 묵은 임도 길을 만났습니다. 파평산 산객들 대부분이 미타사 길로 올라서인지 임도에 사람들이 걸은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편안한 임도 길은 반시간만에 끝났고 마지막 반시간은 길도 없는 된비알의 산등성을 치고 올라가야 했습니다. 해지기 전에 산행을 마쳐야 했기에 잠시도 쉬지 않고 오름길을 강행했더니 뒷다리가 댕겼습니다. 정신없이 걸어 능선 바로 밑에 올라서자 파주시에서 세운 무인산불감시소가 나타났고, 10여m폭의 사계정리구역을 지나 군부대 철조망 바로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철조망 울타리 안에 둥그런 돔형의 군 건물이 들어선 곳이 파평산 정상지점으로 보였으며 오른 쪽 아래로 부대로 올라오는 시멘트길이 나있었습니다. 부대 울타리를 따라 왼쪽으로 조금 옮겨 능선에 오르자 임진강으로 이어지는 단맥 길이 잡혔습니다. 임진강 건너 개성의 진산 송악산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와 여기 파평산이 고향 산중 최전방의 고산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감악산, 도봉산, 북한산, 비학산과 고령산도 모두 보였습니다만, 메모리카드 용량초과로 어느 산하나 카메라에 옮겨 담지 못했습니다. 날이 흐리고 어둠이 나래를 펴기 시작해 임진강으로 내려서는 마지막 단맥 구간은 다음 숙제로 미루고 오른 길로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오름 길이 급했던 만큼 내림 길도 만만치 않아 조심스레 임도로 내려서는데 20분이 걸렸습니다.
19시7분 노파고개로 되돌아와 9시간 반이 넘는 장시간의 단맥 종주를 끝냈습니다.
정상에서 내려선 임도 길을 따라 산신각으로 하산하는 길은 낙엽이 쌓여 폭신하게 느껴졌으며, 산자락에 내려선 어둠이 숱한 알바로 도전과 응전을 반복한 낮의 하루를 먹어 삼킬 듯이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산신각과 인접한 파평윤씨 정정공파 사과공 18세손 이하 조상을 모시는 봉선단 옆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 바로 옆 350번 차도에서 하루산행을 마무리하고 금촌 행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엄격하고도 자비로운 고향 산들을 오르내리고 나서 제가 내린 결론은 산은 모두 그냥 산이었습니다. 고향 산이든 타향 산이든 서로 다를 바가 없는 산이었는데 산을 대하는 저의 생각이 달랐을 뿐입니다. 고향 산은 그저 포근하고 오르기 쉽고 길이 훤히 나있을 것이라고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던 반면에, 타향 산은 뭔가 어색하고 길이 잘 나있지 않을 것 같고 알바를 하면 큰일이다 싶어 두려움이 앞서는 등 저의 생각만 달랐을 뿐 고향 산이든 타향 산이든 엄격하고 자비로운 정도는 모두가 같다는 것이 이번산행에서 얻은 교훈입니다. 그러기에 앞으로 파주와 양주를 가르는 한북감악지맥은 다른 정맥 길과 마찬가지로 사전에 꼼꼼히 챙기고 준비한 후 종주 길에 나설 뜻입니다.
,산행사진>
'V.지맥·분맥·단맥 > 한북정맥 분기분맥·단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북화악삼악단맥 종주기 (0) | 2012.02.01 |
---|---|
한북감악팔일단맥 종주기 (0) | 2012.01.16 |
한북감악금병단맥 종주기 (0) | 2012.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