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북감악금병단맥 종주기
*단맥구간:세우개고개-금병산-너부여울 앞 문산천
*산행일자:2007. 4. 26일
*소재지 :경기 파주
*산높이 :금병산293미터
*산행코스:갈곡리점말-세우개고개-금병산-우두산
-가좌미고개-너부여울 앞 문산천
*산행시간:9시33분-17시12분(7시간39분)
*동행 :나홀로
아직도 저는 우리나라 산들의 족보를 체계적으로 알고 있지 못합니다.
최근 10년간 저 나름대로 높고 낮은 산들을 열심히 오르내렸지만 두 다리만 바빴을 뿐 관련지식을 배우고 익히는데 소홀해 대간과 몇 정맥을 빼고는 우리나라 산줄기의 세세한 족보를 잘 모릅니다. 그동안 다녀온 산들 하나하나를 점으로서는 기억하고 있지만 그 점들을 이어서 선을 만드는 산줄기를 제대로 그려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영조 때의 실학자 신경준 님이 1769년(?)에 우리나라 산을 다스리는데 소용되도록 펴낸 산경표는 그 후 45년 후에 물을 다스리고자 정약용 님이 써낸 대동수경표와 더불어 더 할 수 없이 소중한 역사적 유산임이 분명합니다. 신산경표를 낸 박성태님이나 한반도 남단의 크고 작은 산줄기를 하나하나 오르며 체계적으로 족보를 만들어가는 신경수님 모두 선현들의 역사적 유산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발품을 아끼지 않는 분들이어서 저는 항상 이 분들께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처음으로 단맥을 종주했습니다.
백두대간의 추풍령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려가 파주 교하의 장명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는 한북정맥이고, 한북정맥의 한강봉에서 북으로 내달려 감악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한북감악지맥입니다. 어제 종주한 단맥은 한북감악지맥의 노고산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문산천까지 뻗어나가는 산줄기로 금병산을 동서로 지나기에 한북감악금병단맥이라 부릅니다. (이 부분 신경수님의 분류를 따랐습니다.) 덕분에 경기도 파주의 광탄에 자리한 고향산 금병산을 다시 올랐습니다. 모교인 도마산초교에서 가파른 남사면을 올라 해발 293미터의 금병산을 두 번 밟은 제가 다시 이 산을 오른 것은 지맥에서 갈라져 나온 단맥의 고향 산줄기를 원 없이 밟아보고 싶어서였습니다. 2004년 여름 큰 비를 맞으며 힘들게 종주한 신경수님의 산행기가 없었다면 아무리 어려서부터 보아온 고향의 산줄기라 하더라도 결정적인 알바 한 번 없이 끝까지 완주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7시간 남짓한 산행 중 금병산 정상에서 딱 한번 표지기를 보았을 정도로 한북감악금병단맥은 인적이 뜸한 산줄기여서 어느 때보다 이 분의 산행기가 크게 도움이 됐음은 물론입니다.
아침9시33분 56번 도로상의 갈곡리점말에서 하차하여 하루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의정부 가능역에서 32번 버스를 타고 금촌으로 가다가 법원리를 얼마 앞에 둔 갈곡리에서 하차하여 왼쪽으로 난 367번 도로를 따라 세우개고개로 향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는 4월의 산하에 이끌려 고향 산을 찾은 것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산줄기일수록 길이 제대로 나있지 않고 도움이 될 만한 안내물이 거의 없어 녹음으로 시야가 막히는 한 여름에는 생고생을 하기가 일쑤여서 숲이 더 우거지기 전에 종주를 해야 길 찾는데 어려움이 없겠다 싶어서였습니다.
9시58분 세우개고개에서 단맥종주를 시작했습니다.
단맥이 시작되는 왼쪽의 노고산은 군사기지로 노고산에서 이 고개까지 0.7Km의 짧은 구간은 포기하고 오른 쪽으로 난 넓은 군사도로로 들어섰습니다. 베테랑 신경수님도 이 단맥에서 알바를 여러 번 한 터라 이번 산행에서는 산행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가는 괘념치 않고 오로지 제대로 길을 이어가는 가는 데만 목표를 두었습니다. 그러기에 산행 중 자연 지도에 눈이 자주 갔고 발걸음도 그만큼 더뎠습니다. 10분 가까이 걸어 만난 삼거리에서 임도를 버리고 좁은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바로 아래 벙커가 설치된 무명봉에 오르자 노고산에서 정북 방향의 파평산으로 이어지는 한북감악파평단맥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아무런 표시도 없는 정체불명의 삼각점을 지나 다시 임도로 내려서기 직전에 뱃속을 비워 부글거림을 진정시켰습니다. 임도에 내려서서 남진하자 금병산의 날카로운 봉우리가 비로소 눈에 잡혔습니다. 여기저기에 만개한 벚꽃들을 보고 그 화사함에 온 산이 환했지만 벌과 나비를 볼 수 없어 영락없는 봄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0시47분 2개의 벙커 위에 깃대를 세운 무명봉에 올랐습니다.
무명봉에 오르기 얼마 전에 임도에서 세우개고개로 내려가는 한 분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손에 들고 있는 종이뭉치가 이상해보였던지 그게 뭐냐고 자꾸 물어와 산행기와 지도임을 보여주고 금병산 가는 길을 물었으나 명쾌한 답변을 얻지 못했습니다. 무명봉에서 오른 쪽 임도로 내려서 반시간 넘게 계속 걸었습니다. 임도를 따라 계속 내려가지 말고 적당한 시점에 남쪽 산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먼저 오른 분의 산행기 내용에 신경이 쓰였으나 임도길 자체가 서쪽과 남쪽으로 방향을 번갈아 바꿔가며 나있어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산길로 들어서는 지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 분이 다녀간 후 3년 새에 좁은 산길로 들어서지 않아도 좋도록 임도가 다 뚫린 것 같습니다.
11시21분 서원밸리G.C의 골프장이 내려다보이는 임도 바로 위의 봉우리에 올라섰습니다.
이번에 밟는 산줄기가 전방 지역을 지나 이 봉우리 또한 벙커가 바로 아래 있었습니다. 남쪽으로 고령산 앵무봉과 그 앞으로 영조임금 생모를 모시는 소령원 뒷산의 말구리고개가 확연하게 보였으며고, 앵무봉 오른 쪽으로는 박달산으로 이어지는 한북지맥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임도는 남쪽으로 내려섰고 골프장 뒤편의 산줄기로 연결되는 단맥 길은 이제껏 편하게 걸어온 임도와 갈라서 서쪽의 금병산으로 향했습니다. 교통호를 따라 조금 내려갔다가 서서히 고도를 높여 첫 번째 봉우리에 올라 잠시 길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굵다란 수도파이프가 박혀있는 잣나무 밭 안부로 내려섰습니다. 안부에서 경사가 급한 길을 올라 다다른 두 번째 봉우리에서 바위에 걸터앉아 모처럼 10분여 편하게 쉬었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왼쪽 안부로 내려섰다가 12시 21분에 세 번째 봉우리에 올라서자 오른 쪽 멀리 연풍저수지와 제가 졸업한 중학교 교가에 나오는 봉소산이 보였습니다. 세 번째 봉우리에서 왼쪽 남사면이 암벽인 능선 길을 지나 네 번째 봉우리를 올랐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천천히 걸어 골프장의 서진을 가로막는 산줄기기가 뻗어나간 다섯 번째 봉우리에 올라서자 왼쪽 아래로 시골 형님집의 논밭에 물을 대는 발랑지 저수지와 어렸을 때 머루랑 다래를 따먹으러 들어갔던 천태동 골짜기가 보였습니다. 그 오른 쪽으로 금병산의 최고의 전망지인 말구리고개가 보여 반가웠습니다. 영조임금께서 생모 최숙빈의 묘지를 찾아 소령원에 왔다가 이 고개에 올라 앞에 보이는 저 산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신하들이 낙엽이 떨어져 나간 형상을 하고 있다 해서 풍락산으로 불린다고 답을 올렸더니 금으로 병풍을 친 것 같으니 앞으로는 금병산으로 부르라고 명하셨다는 일화가 전해지는 고개가 바로 이 말구리고개로 4월이면 진달래가 이 고개를 화사하게 밝혀 소령원으로 봄 소풍을 갈 때는 반드시 이 고개를 넘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13시 정각 해발293미터의 금병산에 올라섰습니다.
여섯째 봉우리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금병산으로 오르는 길은 조금 길고 경사가 졌으나 해발고도가 300m도 채 안되는 낮은 산인데다가 중간에 법원리 쪽에서 올라오는 산길과 합류하고부터는 길이 넓어져 어렵지 않게 정상을 올랐습니다. 이동통신 중계기와 헬기장이 들어선 정상에는 삼각점이 두개나 박혀있어 이상했습니다. 정상 남쪽으로 바로 아래 제2회로 졸업한 도마산 초교가 옛날 그 터를 여전히 지키고 있었고, 개천 건너 파란 지붕의 시골 큰집도 눈에 들어와 이 모두를 카메라에 옮겨 담았습니다. 남쪽 멀리 앵무봉 너머로 빠금히 얼굴을 내민 백운대가 반가웠고 반대편 북쪽의 파평산이 한북감악파평단맥의 종주나들이를 재촉하는 듯 했습니다. 개성의 진산 송악산이 잘 보일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능선만 흐릿하게 보여 안타까웠습니다. 큰 누님 때만해도 소학교 때 송악산이 둘러 싼 개성으로 원적을 다녀왔다는데 지금은 길이 막혀 경기 5악의 악산 중 송악산만 오르지 못했습니다. 어제 오른 단맥 중에서 금병산이 가장 높은 봉우리이어서 연풍저수지와 한강변 심학산 등 더 많은 명소들이 보였기에 여기서 짐을 풀어 점심을 들면서 충분히 쉬었습니다.
13시15분 금병산 정상에서 표지기가 걸린 방향으로 직진해 조금 더 가자 낭떠러지가 보였습니다. 지도상의 방향은 맞는데 긴가민가해 정상을 왔다 갔다 하다가 아닌 것으로 확정짓고 정상에서 오른 쪽의 올라온 길로 되 내려가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내려서느라 십 수분을 까먹었습니다.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봉우리에 올라서자 조팝나무가 하얗게 웃으며 저를 반겼습니다. 14시 정각에 닷새 만에 서는 법원리로 장보러 가시는 어머니가 제 손을 잡고 넘었던 33번 지방도의 삼방리 고개에 내려섰습니다. 그 때 그 일은 제 기억이 미치는 가장 오래된 다섯 살 때의 일로서 어머니와 같이한 일이었기에 이번에도 어렵지 않게 기억해 냈다는 생각입니다.
15시27분 인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는 가좌미고개에 다다라 퍼져 앉았습니다.
삼방리고개에서 공동묘지를 지나 줄을 잡고 가파르게 오른 봉우리가 삼각점이 세워진 해발 221미터의 무명봉인데 저희 시골에서는 쇠머리를 닮았다하여 우두산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바로 아래 마을이 양천 허씨 집성촌인 방축리로 아직도 시골마을을 지키고 있는 초교동창 몇 명은 이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우두산에서 가좌미고개로 내려서는 길이 이번 산행의 최대의 고비였습니다. 우두산에서 안부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른 낮은 봉우리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진행하다가 사진을 찍지 말라고 경고문을 붙인 군부대철조망을 만났습니다. 경고문이 붙여진 방향으로 보아서는 이 철조망을 따라 내려서면 가좌미고개에 다다를 것 같았지만 바로 아래로 군부대가 보여 헷갈렸습니다. 능선에서 한참을 쉬며 고민하다가 그래도 한번 내려가 보자하고 얼마를 내려섰다가 아닌 듯 해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는 일을 두 번이나 반복하느라 20분은 족히 까먹고 나자 북쪽으로 보이는 봉우리에 올라가 다시 한번 판단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던 길로 되돌아가 만난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들어서 그 봉우리에 올라섰습니다. 안부로 내려서다 왼쪽 산줄기를 잡아 내려서면 군부대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가좌미고개로 내려설 것 같아 직진해 내려섰습니다. 하루 종일 비를 맞은 신경수 님이 날이 어두워져 산행을 중단하고 연풍리로 내려선 길이 곧바로 나 있었고 저는 왼쪽으로 꺾어 산줄기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얼마 후 다시 만난 군부대 철조망을 오른 쪽으로 우회해 가좌미고개에 내려서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1960년대 후반은 가난과 희망이 뒤범벅된 몇 년이었습니다.
대를 이은 가난이 아직도 시골 살림을 쥐어짜고 있는 즈음 초등학교도 못나온 부모님께서는 저의 진학문제를 놓고 자주 다투셨습니다. 빨리 농사일에 투입하려는 아버지와 동네 아낙들 중에서 유일하게 한글을 깨우친 어미니의 강력한 중학교보내기에서 시작된 두 분의 다툼은 매번 어머니의 승리로 끝나 서울의 고등학교로 유학을 간 덕분에 이 동네 처음으로 서울의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하신 어머니와 함께 넘은 고개가 바로 가좌미고개입니다. 자취를 하던 고교시절 주말이면 먹을거리를 갖고 가고자 시골집에 내려왔는데 그 때마다 바쁘신 분은 어머니였습니다. 시오리 밖 용주골기지촌에 내다 팔 채소를 다듬느라 거의 밤을 지새우는 어머니와 함께 채소 단을 지게에 지고 넘은 고개가 바로 이 고개였습니다. 가좌미고개는 군부대가 길을 가로막아 사람들이 넘나들 수 없게 되어 빛 바란 천 조각만이 나부끼는 한적한 고개로 변해버렸지만 어머니와 함께 가난을 떨어버린 희망의 고개였기에 18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는 최고의 장소로 부족함이 없는 고개입니다. 어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온 저이기에 웬만한 어려움은 또 다른 기회로 생각하며 살 뜻입니다.
16시25분 삼각점이 세워진 무명봉에서 10분가량 쉬었습니다.
가좌미고개에서 산행을 끝내고 주저앉는 것은 어머니의 가르침이 아니기에 저의 단맥 종주는 계속됐습니다. 이 고개에서 맞은 편 봉우리에 올라섰다가 내려선 고개가 56번 국지도가 지나는 검전리-대추벌 간 고개 마루였습니다. 군인들의 훈련코스인 외줄오르기 시설물이 설치된 봉우리에 올랐다가 왼쪽 능선 길로 내려서 묘지를 지나고 안부를 지나 만난 삼거리에서 직진해 다다른 곳이 돌탑이 세워진 무명봉으로 왼쪽 아래로 검전리로 내려서는 길이 나있었습니다. 직진하면 문산천으로 내려서는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북쪽으로 보이는 봉우리를 지나는 산줄기가 더 멀리 문산천으로 내려서는 것 같아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올라 앞서 보았던 봉우리에 올라서 삼각점을 확인했습니다.
17시12분 너부여울 앞 문산천에서 단맥종주를 마쳤습니다.
삼각점이 서있는 무명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작은 돌탑 몇 개가 서있는 바위에 이르렀고 얼마 후 부곡3동의 너부여울 마을로 내려서자 차 길 건너 폭이 꽤 넓은 문산천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너부여울이란 고운 이름이 넓은 개천의 문산천을 이름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마을버스를 타고 주내로 나가 금촌행 버스를 잡아타고 월롱역으로 향했습니다. 월롱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이 여의도에 근무하는 큰 아들에 연락해 저녁식사를 같이하기로 약속을 해놓고 귀경했습니다. 큰 아들이 제 처와 여의도에서 일하는 동생에게 연락해 모처럼 네 식구가 저녁자리를 같이했습니다.
고향의 산줄기 한북감악금병단맥을 성공리에 마치고 나자 고향은 뚝배기 된장국 같은 발효식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을 삭여가며 맛을 내는 발효식품과 같이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고향의 맛과 멋이 그리워지기에 말입니다. 고향의 원형은 가족입니다. 고향산을 오르고 나서 자식들과 함께한 저녁식사가 유달리 맛있었던 것은 딸려 나온 된장찌개에서 어머니의 손맛이 느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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