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지역 명산/지역명산 탐방기

A-63.도드람산 산행기

시인마뇽 2016. 11. 20. 23:21

                                                              도드람산 산행기

 

 

                                                       *산행일자:2016. 11. 19()

                                                       *산높이 :349m

                                                       *소재지 :경기이천

                                                       *산행시간:125-1510(3시간5)

                                                       *산행코스:SK텔레콤인재개발원옆 굴다리-1-4-돼지바위

                                                                           -샘터석이약수-SK텔레콤인재개발원옆 굴다리

                                                        *동행 :서울사대 동기 김종화, 원영환, 이상훈, 우명길






  어제는 대학동기들과 함께 이천의 도드람산을 올랐습니다. 12년 전에 한 번 오른 이 산을 다시 찾아 오른 것은 그 때 쓰지 못한 산행기를 남기기 위해서였기에 제가 나서서 이번 산행을 준비했습니다. 이천시내에서 용인 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어 대중교통편이 다소 불편했는데 지난 9월 판교-여주 간을 오가는 경강선의 전철이 개통되어 편하게 다녀왔습니다. 전철이 개통되어 새롭게 각광받은 산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중앙선과 경춘선의 개통에서 익히 확인했습니다. 때 맞춰 경강선이 개통되지 않았다면 친구들과의 도드람산 등산은 한참 뒤로 미루었을 것입니다. 공급이 수요를 창조한다는 세이의 법칙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이 산행에서도 확인된 셈입니다.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는 에디슨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공급이 수요를 창조한다는 세이의 법칙에도 찬사를 보냅니다. 미국의 기업인 에디슨은 수요의 중요성을, 프랑스의 재상 세이는 공급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어서 일견 상호 모순되어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유선전화로 전화를 걸고 받는 것은 가능하지만 전화선이 연결된 곳에서만 통화가 가능해 생활이 윤택해질수록 무선전화의 필요성이 부각됐습니다. 이런 필요성의 증대가 무선전화를 낳았고 페이저를 거쳐 휴대폰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렇다고 유선전화의 변신이 단순히 전화선을 떼어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와 MP3기능을 통합하고 나아가 컴퓨터 기능을 추가해 다기능 전자기기로 발전한 것은 필요에 한 발 앞서 공급한 것이 새로운 수요를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어느 기업이든 필요하다고 확인된 것만 만들어 공급했다가는 쪽박 차기 쉬운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창의와 기술혁신이 더욱 필요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오전10시 경에 판교역에서 만나 1035분 여주행 전철을 탔습니다. 전철이 거쳐 간 광주는 40여 년 전 집사람과 한 학교에서 근무했던 곳이어서 주위 정경이 눈에 많이 익었습니다. 이천역에서 하차해 20분 여 기다렸다가 청강대로 가는 12번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이천 시내를 거치지 않고 바로 용인 쪽으로 가다가 표교초교정류장에서 내렸습니다. 인근의 표교초교에서 왼쪽으로 난 차도를 따라 서진해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굴다리를 건너기까지 20분이 걸렸습니다

 

 

   1244번국도 아래를 지나는 SK인재개발원옆 굴다리 앞에서 산 오름을 시작했습니다. 굴다리에서 이어지는 시멘트 길은 체육공원 앞에서 이내 끝났고 산길은 오른 쪽으로 이어졌습니다. 안내판에서 앞에서 산행채비를 한 후 낙엽이 길을 덮은 가을의 뒤안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오르지 않아 오른 쪽으로 영보사 길이 갈리는 삼거리 쉼터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떡 한 팩 달랑 싸간 제가 점심을 맛있게 들 수 있었던 것은 김종화 동문이 밥과 반찬을 충분히 싸와서였습니다.  반시간 넘게 점심을 들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자리에서 일어난 시각이 1254분이었습니다. 북서쪽으로 조금 진행해 다다른 삼거리에서 제3봉으로 가는 직진 길을 버리고 제1봉 가는 오른 쪽 길로 진행했습니다. 전날 내린 비로 물기가 남아 오름 길 몇 곳이 미끄러웠습니다.


 

   1342분 해발349m의 도드람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1/3봉의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제1봉으로 오르는 길이 가파른 비알 길인데다 낙엽이 살짝 길을 덮어 뒤로 미끄러질까 신경이 많이 쓰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반시간을 조금 못 걸어올라 다다른 제1봉 앞에 자그마한 표지석이 서 있어 도드람산의 연봉이 여기서 시작됨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같이 오른 친구들이 모두들 60대 후반이어서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은 바위봉인 제 1봉을 오르지 않았습니다. 암봉들을 이어주는 암릉 길 대신 왼쪽 아래로 내려가 안전한 우회 길로 진행했습니다. 2봉 아래로 얼마간 내려갔다 올라선 제 3봉 역시 고스락에 오르지 않은 채 정상봉인 제 4봉으로 향했습니다. 몇 분 후 도착한 제4봉은 이 산의 주봉으로 효자봉(孝子峰)’이라는 이름의 정상석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동쪽 사면이 천애의 절벽이어서 그 방향으로 시야가 탁 트였으나 하늘에 낀 황사가 다 가시지 않아서인지 건너편 설봉산이 선명하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4봉에서 조금 떨어진 암봉은 철조망이 쳐져 바로 앞까지만 다가갔습니다. 왼쪽 아래로 조금 내려가 이 바위를 에돌다가 왼쪽 아래로 장암리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지형도에 저명산(猪鳴山)으로 나와 있는 이 산을 도드람산으로 부르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 산과 관련된 전설입니다. 이 산 근처마을에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가 살았다고 합니다. 이 산 최고봉에 효자봉(孝子峰)’의 정상석을 세운 것은 이 때문입니다.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위독한 어머니를 구하고자 이 효자는 스님이 일러준 대로 밧줄에 몸을 묶고 바위아래 절벽으로 내려가 석이버섯을 뜯고 있었습니다. 저 아래 약수터를 석이약수터로 부르는 것도 석이버섯에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바위에의 마찰로 밧줄이 거의 끊어져 목숨을 잃을 번한 효자를 구한 것은 좀처럼 울지 않는 멧돼지의 울음이었으니, 이 울음소리를 들은 효자는 바위 위를 올라가 밧줄이 끊어지는 것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산의 산신령이 멧돼지로 변신해 울음으로써 효자를 구했다는 아름다운 전설은 이 산을 돼지를 뜻하는 이 울었다는 돋울음산으로 부르게 했고, 부르기 쉬운 도드람산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이 산 전설의 주요 내용입니다.


 

   저명산(猪鳴山)돋울음산을 한자로 표기한 새 이름입니다. ‘돋울음산도드람산으로, 또 저명산으로 언제 바뀌었는지는 저는 알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지명이 고유의 우리말에서 한자로 표기가 바뀐 것은 통일신라의 경덕왕 때가 처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점령지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각기 다른 언어로 불렸던 지명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고자 한자로 표기를 통일했습니다. 그 후 수도 없이 지명이 바뀌어 원래 이름을 찾아내는 일도 참으로 지난합니다. 먼 훗날 도드람산의 이 산이 한자로 암출산(巖出山)으로 바뀔지도 모릅니다. 도드람산을 돋울 암산에서 왔다며 바위가 돋아났다는 뜻의 암출산(巖出山)으로 불리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엉뚱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막기 위해 한자이름인 저명산으로 표기한 것이 아닌가 하고 합리적으로 추론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159분 출발지인 굴다리로 되돌아와 하루 산행을 마쳤습니다. 장암리로 길이 갈리는 삼거리에서 오른 쪽 위로 조금 올라가 돼지바위 앞에 이르렀습니다. 돼지바위의 침니(chimney) 길은 폐쇄되었고 대신에 급경사 철제 계단이 설치되어 바위 위를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정상봉인 효자봉이 이 산의 동쪽 전망대라면 돼지바위는 서쪽 전망대여서 이 두 봉우리를 다 올라야 도드람산 주위의 전경을 두루 조망할 수 있습니다. 돼지바위에서 내려가 제1-4봉의 연봉들을 받쳐주는 동쪽사면으로 내려갔는데 서쪽사면으로 올라올 때보다 길이 더 미끄러웠습니다. 떼 지어 꽃이 피는 화사한 봄꽃 철쭉이 딱 한 송이만 꽃을 피워 초라하다 못해 애절해 보였습니다. 하산 길에 만난 석이약수터는 수량도 얼마 안 되는 데다 물이 깨끗하지 못해 그냥 지나갔습니다. 4번 국도가 가까운 곳에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고 오른 쪽으로 진행하다가 오래 내버려져 을씨년스러운 시멘트 건물 옆을 지났습니다. 몇 분 후 규모도 크고 깔끔해 보이는 SK텔레콤인재개발원 건물 정문 앞에 이르러 올려다 본 도드람산의 연봉들이 마치 병풍을 쳐 놓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그 정경을 카메라에 옮겨담아 왔습니다. 정문에서 십 수m 떨어진 굴다리에 도착해 3시간 남짓 걸린 원점회귀산행을 마무리했습니다.


 

   굴다리 건너편 마을까지 들어오는 버스가 뜸해 올 때 내렸던 표교초교앞 정류장까지 걸어갔습니다. 길 옆 논배미 몇 곳에 쓰레질을 해도 될 만큼 물이 가득 채워져 있는데다 영상 15도를 오르내릴 만큼 기온이 높아 마치 봄 길을 걷는 듯 했습니다. 길을 건너자마자 정류장으로 내달려 12번 버스를 잡아탔습니다. 곧 바로 갈아타는 행운은 계속되어 이천역, 판교역, 강남역에서 전철을 기다린 시간은 다 합해도 10분을 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산을 처음 오른 것은 2004년의 여름입니다. 그 때만 해도 50대 중반이어서 겁도 없이 암릉 길로 연봉들을 오르내렸습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방의 유명한 산들에 보다 안전한 등산로를 새로 내 이제는 위험한 길은 피해 갈 수 있습니다. 위험한 바위 길을 어떻게 지날까 은근히 걱정했는데 안전한 새길이 나 있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산을 자주 오르는 이들에는 이 같은 산길 정비도 훌륭한 복지입니다.


 

   새로 놓은 경강선으로 이천까지 무료로 다녀오고 나서 우리나라도 나이든 사람들에 대한 복지가 상당수준에 다다랐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러면서도 힘들게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 노인복지의 짐을 떠안기는 것이 아닌가 싶어 마냥 고맙지만은 않았습니다. 청년들의 일자리 마련에 예산을 쓰고자 노인복지를 일반복지에서 선별복지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마땅히 그리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벌써부터 우리 젊은이들에 널리 회자되고 있는 말은 헬조선(hell 朝鮮)’입니다. 취업도 잘 안되고 결혼하기도 겁나니 애를 낳아 기르는 선남선녀의 소박한 꿈조차 이룰 수 없다 해서 이르는 말 같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우리 역사에서 언제 쌀밥을 배불리 먹고 옷을 제대로 입은 적이 있었는지 저는 알고 있지 못합니다. 온갖 학정에 시달려 고환을 잘라내고 절양가를 불러야했던 조선 후기의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저 또한 어렸을 때는 여전히 배고프고 힘들었습니다. 한 해 겨울 온 식구가 메밀로 수제비를 만들어 먹은 적도 있고, 중학교 3학년 때는 1년 내내 점심을 굶기도 했습니다. 1950-1970년대 소설을 읽노라면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는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북한주민들은 수령 동지의 쌀밥 약속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도 여전히 배를 골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옛날 삶이나 북한주민들의 오늘의 삶을 헬조선에 비유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의 삶을 헬조선이라 부르는 것은 지나친 과장입니다. 청년실업률이 높고 소득격차가 심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다른 나라들보다 덜 심각한 것도 사실이어서 지옥에 비유할 만큼 절망적인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정부, 기업, 가계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슬기를 모아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충분히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오늘의 부를 이루기까지 여러 번의 경제적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금을 모아 IMF금융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것이 좋은 사례입니다.

 

   문제의 정확한 진단은 적확한 언어사용으로 가능합니다. 고의적이거나 지나친 과장은 문제의 진단을 그릇되게 해 올바른 처방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 했습니다. 과장된 언어로 지은 집에 오래 살다보면 우리의 사고도 얼마든지 뒤틀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옛 어른들이 말이 씨가 된다며 함부로 말하는 것을 극력 피해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삶이 많이 고되다 해서 극단적인 단어인 헬조선을 입버릇처럼 되뇌다가 정말 헬조선의 세상을 맞게 될까 두렵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언론의 책임이 큽니다. 극단적인 언어로 우리 사회를 선동하지 말고 적합한 단어를 찾아 써 들끓는 이 사회를 진정시키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주기를 간곡히 원하는 바입니다.



                                                                                          <산행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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