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I.지역 명산/지역명산 탐방기

B-19.노추산 산행기

시인마뇽 2016. 8. 8. 18:03

                                                            노추산 산행기


 

                                                       *산행일자:2016. 7. 27()

                                                      *산높이 :노추산 1,322m

                                                      *소재지 :강원 정선

                                                      *산행코스:절골입구-옹달샘-이성대-노추산-이성대

                                                                          -옹달샘-절골입구

                                                      *산행시간:747-1515(7시간28)

                                                      *동행 :서울사대 이상훈/원영환 동문



     산 이름을 종교와 연관 짓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일단 종교와 관계를 맺게 되면 산이 쓸데없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자주 들을까 걱정되어 하는 말입니다. 하느님의 본 뜻과 달리 많은 종교들은 그리 성스럽지 않으면서 세속의 다른 종교를 잘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같이 주 예수를 찬양하는 천주교와 개신교도 서로의 존재를 잘 인정하지 않으려는데 근본이 완전히 다른 종교들한테서 서로 인정하고 포용하는 미덕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종교의 편협함이 이러한데 어떤 산이 특정종교에서 그 이름 따온 것으로 밝혀지면 다른 종교와 소원해질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적절한 사례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조선 초기의 사대부들이 금강산을 유람하는데 유교적 명분이 필요했다 합니다. 고려의 국교인 불교를 억압하고 그 대신 유학을 숭배하는 숭유억불을 건국이념으로 삼은 조선 초기에 사대부들이 불교문화가 꽃을 피운 금강산을 쉽게 놀러 갈 수는 없었나 봅니다.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는 것은 송() 대의 중국인들이 생전에 꼭 한 번 이 산을 유람하고자 계를 들었을 만큼 더 할 수 없는 승경의 명승지가 바로 금강산이어서입니다.


 

   조선조 연산군 때 갑자사화(1504)로 참형을 당한 이원(李黿)은 금강산을 다녀와서 남긴 유산기 유금강록(遊金剛錄)”에서 금강산 유람의 명분을 분명히 밝혀 후세의 사대부들이 마음 놓고 금강산을 유람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았습니다.

 

   “!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하는 바, 높은 산을 올라가야만 멀리 가는 데 스스로 낮추게 되는 뜻을 알고, 물을 보고서야 흘러가는 것이 이 같은 뜻이었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니, 도중에서 스스로를 한계 짓는 나약함을 분발시키고 구덩이에 찬 뒤에 나아가는 학문에 힘쓰고자 할 뿐, 어찌 기이한 승경을 찾아나서 관유에 힘쓰겠는가. 산행이란 인지를 체화하고 사물을 궁리하는 일에 도움 되는 일이다. (. 仁者樂山. 智者樂水. 登高山而知行遠自卑之意. 觀水而思逝者如斯之旨. 一以起半途自畫之懦. 一以勉盈科後進之學. 此豈採奇採勝. 而務觀遊哉. 體仁智事物之一助也.)”

 

   이원이 <<예기>>酸如行遠, 必自邇에서 행원(行遠)”, <<맹자>>離婁下, 盈科而後進, 放乎四海에서 면영과후진(勉盈科後進之學)”은 따온 것만 보아도 금강산 유람의 명분확보에 애를 많이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들 중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불교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산들이 많습니다. 이는 오랜 세월 불교가 국교로 정해질 만큼 융성했고 사찰들이 산에 많이 자리하고 있어서가 아닌가 합니다. 금강산, 수미산, 연화산, 제석산, 미륵산 등의 산 이름도 그렇고 비로봉, 약사봉, 도솔봉 등의 봉우리이름도 다 불교와 관련된 이름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절 이름과 산 이름이 일치하는 산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금강산에 금강사가 없고 설악산에 설악사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남한의 산 중에서 가장 넓은 땅에 자락을 펴고 있는 지리산의 어느 곳에도 지리사가 없습니다. 용문산에 용문사가 있는 것은 예외로 정말 흔치 않은 경우입니다. 이는 산이 절보다 먼저 이름이 정해져서일 텐데 그렇다고 절 이름을 정할 때 굳이 산 이름을 피해 정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지는 저는 아직도 모릅니다.


 

   이번에 대학동기들과 같이 오른 산은 강원도 정선의 노추산(魯鄒山)입니다. 노추산은 공자가 탄생한 노()나라와 맹자가 태어난 추()나라에서 나라이름을 본 따 그 이름을 지은 특이한 산입니다. 제가 이 산을 특이하다 하는 것은 유학이 조선의 5백년을 지배한 통치이념이었는데도 유학과 관련된 이름의 산이 아주 드물어서입니다. 굳이 대라면 대덕산, 덕숭산, 군자산, 도덕산, 명지산, 문형산 등을 들 수 있지만 유학의 성현들이 태어난 나라이름을 따온 산은 이 산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이 산의 이름을 노추산으로 지은 분은 신라의 설총선생이라 합니다. 이 산에서 멀지 않은 강릉에서 태어나고 얼마간 기거한 이이(李珥) 선생께서 유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 놓고 이 산을 오르내릴 수 있어 설총선생에 엄청 고마워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침747분 절골입구를 출발했습니다. 전날 밤 이상훈 교수의 평창 집에서 하룻 밤을 묵은 후 새벽같이 서둘러 집을 나섰습니다. 이교수가 차를 끌고 가 아침 6시에 출발하면 7시부터 산행이 가능 하겠다 했는데 후년에 열리는 동계올림픽을 대비해 여기저기 도로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반시간 넘게 더 걸렸습니다. 말로만 들어온 아우라지에서 송천을 따라이어지는 415번 도로를 타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에 세워진 구절역 자리를 지나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절골입구에 도착해 산행채비를 했습니다. 도로변에 세워진 안내판을 보고 옹달샘과 이성대를 차례로 지나 정상에 오르는 가장 짧은 3코스로 오르기로 뜻을 모은 후 걸음이 느린 제가 앞장을 섰습니다. 민가 몇 채가 들어선 절골 초입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을 따라 오른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이내 산길로 들어섰습니다. 반바지를 입고 올랐다면 크게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싶었던 것은 인적이 드문 길이어서 풀들이 무성해서인데 그런 길은 그다지 길지는 않았습니다. 쓰러져 길을 가로 막은 꽤 큰 나무를 타고 넘어 얼마간 올라 왼쪽에 절터(?)가 자리한 임도 삼거리에 이르렀습니다. 복더위에 산 오름이 쉽지 않겠다는 예상과는 달리 그리 덥지 않은 것은 구름이 태양을 가려준 덕분입니다.

 

 

   930분 옹달샘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임도삼거리에서 표지목이 이성대 길을 가르키는 왼쪽 길로 들어섰습니다. 물소리가 제법 크게 나는 절골을 오른 쪽 아래에 두고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면서 북동쪽으로 진행했습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2002년에 과천 분들과 함께 올랐을 때는 절골 오른 쪽 길로 올라 이번에 오르는  절골 왼쪽 길은 초행이 아닌가 싶습니다. 절골이 시작되는 상류에서 지계곡을 건넌 다음 조금 고도를 높이자 샘물이 보여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쉬었습니다. 여기 옹달샘의 물맛이 일품인 것은 높은 곳에 위치한데다 땀 흘려 올라서입니다. 일반적으로 맛의 95%는 향이라는데 여기 옹달샘의 참맛은 그 50%가 땀이 아닐까 싶습니다. 계곡 물소리는 끝났지만 옹달샘의 해발고도가 1,000m에 미치지 못해서인지 매미소리는 여전했습니다. 옹달샘에서 이성대로 오르는 길은 제법 경사가 급했습니다. 얼마간 높인 고도를 다시 낮추기를 한 번 거친 후 너덜지대를 지났는데 2002년에 오른 너덜지대보다 그 폭이 훨씬 좁아 굳이 릿지화를 신고오지 않아도 됐을 것을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145분 해발 1,322m의 노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너덜지대를 지나고 가파른 길을 올라 이성대(二聖臺)에 도착했습니다. 중국의 성인인 공자(孔子)와 맹자(孟子) 두 분을 흠모해서 조선시대 율곡 이이선생의 후학인 박남현이 유림의 협조를 받아 축조했다 해서 이름을 얻은 이성대는 2층누각으로 魯鄒山 二聖臺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누각 안에다 두 성인의 위패가 모시고 매년 차례(茶禮)를 올린다 합니다. 이성대 누각 뒤 축대 위에 설치된 산신각에는 경찰종합학교에서 기증한 山王大新 神位라 쓰인 작은 비석이 세워져 있어 이채로웠습니다. 이성대 터가 과연 명당자리이다 싶은 것은 해발1,100m대의 높은 곳에 자리해 앞이 탁 트여 시원한데다 벼랑 밑에서 암간옥수가 흘러 이 산 최고의 쉼터로 손색이 전혀 없어서입니다. 이성대에서 오른 쪽인 동남쪽으로 진행하다가 왼쪽으로 꺾어 능선에 올라섰습니다. 북쪽 아래로 대기리 길이 갈리는 능선 사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몇 분 이동해 노추산 정상에 올라섰지만 사방이 숲으로 막혀 전망은 이성대에 비할 바가 못 되었습니다. 표지석이 세워진 정상에 노추산의 유래가 실린 안내판이 서있어 이 산을 노추산으로 이름 지은 분이 설총 선생이며 이 산에 들어와 도를 닦은 분이 이이선생 외에 설총선생이 더 계심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정상에서 사달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확인한 후 12시가 조금 못되어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1347분 옹달샘에서 다시 쉬어갔습니다. 왼쪽 다리가 저려 평상시보다 더 천천히 걸은 탓인지 3시간이면 족히 오를 산을 4시간이 다 걸려 올라 하산 길이 바빠졌습니다. 온 길로 되돌아가기로 하고 정상을 출발해 이내 이성대에 도착했습니다. 준비해간 점심을 같이 들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90세는 너끈히 살만하다는데 이견이 없어 어떻게 그 때까지 잘 사느냐가 우리 세대에 주어진 새로운 과제여서 이에 관한 얘기들을 빼 놓을 수 없었습니다. 동행한 원 선생이 정기적으로 외국인순교자묘지를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제가 뒤늦게 대학원을 들어간 것도 의학의 발달로 덤으로 받은 몇 십 년을 나름 잘 살아보겠다는 준비의 일환이라 하겠습니다. 이성대에서 옹달샘까지 내려가는데 딱 1시간이 걸려 올라갈 때보다 20분가량 덜 걸렸습니다. 옹달샘에서 먼발치로 북동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너덜 길이 2002년에 지난 바 있어 눈에 익었습니다. 옹달샘 샘물로 다시 목을 축이고 하산 길을 이어갔습니다.


 

   1515분 절골입구에 도착해 하루 산행을 마무리 했습니다. 옹달샘에서 조금 내려가 졸졸 흐르는 절골 지계곡을 건넜습니다. 올라가는 길보다 내려가는 길이 한결 발걸음이 가벼워서인지 푸르른 숲속의 싱그러움이 온몸에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우리나라 산의 조종이 백두산일진대 노추산의 시원은 마땅히 백두산입니다. 백두산에서 시작해 백두대간을 따라 남쪽으로 내닫다가 대화실산에서 서쪽으로 갈려 매봉산과 사달산을 차례로 지나 노추산에 다다른 산줄기는 송천으로 침잠합니다. 백두산을 출발해 1,100Km가 조금 더 되는 멀고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려와 일궈놓은 노추산이 정성들여 차려놓은 초록의 제전에 초대받은 여름 산꽃들이 세속에 시달린 제 눈을 편안하게 해준다 싶어 고마운 마음이 일었습니다. 절골을 따라 내려가 임도삼거리에 도착한 후 오름 길에 그냥 지나친 조주선관을 들렀습니다. 넓은 공터에 너와 지붕의 토담집이 몇 채 들어앉아 조금은 썰렁해 보였습니다. 조주선관 삼거리에서 15분을 걸어 내려가 이번 산행의 들머리인 절골입구에 도착해 노추산 산행을 모두 마쳤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산 중에서 기독교와 관련된 산 이름을 찾지 못했습니다. 낙남정맥 길에 자리한 마산의 천주산은 이름과는 달리 천주님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산입니다. 더러 산 속 높은 곳에 십자가나 성모상을 설치해 놓은 산들이 보이지만 이런 산도 기독교와는 무관한 산 이름을 갖고 있어 주님을 뵙고자 굳이 산을 오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천주교 신자인 저는 정맥 등의 긴 산줄기를 종주할 때 출발점에서 두 다리에 힘을 주시기를 간청하는 기도를 드리고, 끝점에서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돌봐주신 주님에 감시기도를 올리곤 했습니다. 산행 중에는 내내 산신령과 가까이 했습니다만, 정맥 길에 기독교와 관련된 이름의

산을 지났다면 잠시 짬을 내 감사기도를 올렸을 것입니다. 종교의 세속화로 이런 저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합니다만, 산 이름을 기독교식으로 바꿔달라는 청원이 없는 것은 기독교신자분들의 상식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산행사진> 


























'VIII.지역 명산 > 지역명산 탐방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A-64.구름산 산행기  (0) 2017.04.05
A-63.도드람산 산행기  (0) 2016.11.20
B-18.금병산 산행기(춘천)  (0) 2016.06.30
E-12. 영암산 산행기  (0) 2016.04.30
A-62.용마산 산행기(서울)  (0) 2016.02.22